Cross Street

왜 내 주변에는 늘 나보다 잘난 사람이 있을까?

2015년 8월 통권 119호


  한때 ‘엄친아’라는 말이 유행한 적이 있다. 엄친아는 ‘엄마 친구 아들’의 줄임말이다. 자신의 아들이 뭔가 부족해 보일 때마다 그보다 더 나은 친구의 아들 얘기를 꺼내어 비교하는 상황을 풍자한 것이다. 그래서 엄친아는 모든 면에서 자신보다 뛰어나서 아무리 노력해도 이길 수 없는 사람을 가리키기도 한다. 물론 이는 ‘아들’에게만 해당하는 것은 아니고 ‘엄친딸’이라는 말도 있으며, 더 나가서 ‘아빠 친구 아들/딸’이나 그 외 다양한 변주도 얼마든지 가능하다. 그런데 비교를 당하는 입장에서는 이런 엄친아의 존재가 그리 반가운 일이 아니며 맥 빠지고 우울해지기 일쑤다. 왜 부모님 주변에는 늘 나보다 공부도 잘 하고 나보다 외모도 뛰어나고 나보다 성격도 좋은 사람이 있을까? 아니, 왜 내 주변에도 늘 그런 사람이 있을까? 엄친아는 꾸며낸 얘기일까, 아니면 실제로있을까? 실제로 있다면 그런 사람이 얼마나 많길래 그렇게 자주 화제에 오르는 것일까?

 나의 학창시절을 되돌아보면 내 주변에는 언제나 나보다 더 똑똑하고 공부도 잘 하는 친구들이 있었다. 그중 많은 친구들이 이미 학계에서 명성을 얻거나 높은 위치로 올라갔으며 이른바 ‘잘 나가고’ 있다. 물론(?) 모든 친구들이 그렇지는 않다. 하지만 우리는 대개 자신보다 성과가 적은 사람보다는 자신보다 성과가 많은 사람과 비교하곤 하지 않던가. 무엇보다 성과가 뛰어난 사람에 관한 얘기는 더 많이 알려지고 더 널리 퍼지기 마련이다. 그렇다보니 그런 사람은 인기도 많고 인간 관계가 넓어질 기회도 늘어난다. 동시에 그런 사람을 친구로 둔 사람들의 대부분은 상대적으로 성과가 뛰어나지 못할 가능성이 높다. 

 성과가 뛰어난 사람을 편의상 갑이라 부르고, 갑보다는 성과가 못한 다른 사람을 을로 부르겠다. 갑과 을의 성과는 그대로인상황에서, 갑과 을이 서로 모르다가 어느날 학회에서 만나서 아는 사이가 되었다고 해보자. 갑의 이웃들의 평균 성과가 갑보다 상대적으로 얼마나 나은지는 을로 인해서 낮아질 것이다. 반면 을의 이웃들의 평균 성과가 을보다 상대적으로 얼마나 나은지는 갑으로 인해 높아질 것이다. 이웃들의 평균 성과가 자신의 성과보다 클 때 더 잘 해야 한다는 스트레스를 받는다고 하자. 그러면 앞의 경우 갑의 스트레스는 줄어들고 을의 스트레스는 커진다. 이는 갑과 을의 성과가 그대로라고 해도 벌어지는 일임을 기억하자. 더 큰 문제(?)는 앞서 말했듯이 갑은 수많은 을들과 아는 사이가 될 것이며, 갑이 만나는 을들이 많아질수록 사회 전체적인 스트레스의 정도도 높아진다는데 있다. 또한 갑을 아는 을이 많아질수록 갑에 대해 얘기하는 을이 많아질테니 갑 같은 사람이 실제보다 훨씬 더 많다고 느껴질 것이다.

 

 

사회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을의 입장에서 보자면 다음과 같이 말할 수 있다. 이웃수 측면에서 “내 이웃들은 평균적으로 나보다 더 많은 이웃을 갖는다”는 것이다. 이를 친구관계 역설(friendship paradox)이라 부르는데 사회학자 스콧 펠드가 1991년에 제시한 개념이다. 성과라는 면에서 보면 “내 이웃들의 성과는 평균적으로 내 성과보다 더 크다”라고 말할 수 있다. 물론 이는 ‘성과’가 아닌 다른 경우에도 얼마든지 따져볼 수 있다.

 나의 공동연구자인 엄영호 박사는 공동저자 연결망 데이터를 분석함으로써 연구자 사이에서도 이런 현상이 나타남을 보였다. 이를테면, 한 연구자는 다른 연구자들과 함께 연구를 하여 논문을 써서 성과로 인정받는다. 각 연구자가 쓴 논문의 수를 알 수 있으므로, 그 연구자의 논문수와 그 공동연구자들의 논문수의 평균을 비교해보면 된다. 거의 대부분의 경우 자신의 논문수보다 공동연구자들의 논문수 평균이 더 높다. 이제 갓 본격적인 연구를 시작한 초년생이 연륜이 있는 연구자와 함께 일을 하는 경우라면 당연해보이는 일이다. 하지만, 실은 최상위 소수를 제외하고 대부분의 연구자가 이런 일을 겪는다. 연륜이 있는 연구자 주변에는 그보다 더 많은 연륜을 쌓은 연구자가 또 있기 마련이기 때문이다. 

 이런 현상은 논문수 외의 다른 다양한 개인적 특징들을 비교해도 나타나는 일반적인 현상이다. 기존의 친구관계 역설을 개인이 가진 다양한 특징들로 일반화했으므로 우리는 이를 일반화된 친구관계 역설로 부르기로 했다. 이웃이 많은 사람일수록 성과와 같은 어떤 특징이 높아진다고 생각하면 이해하기 어렵지 않을 것이다.

 최근 친구관계 역설이 새롭게 조명받고 있다. 이전에 구하기 힘들었던 대규모 사회연결망 데이터를 이용하기도 하고 정교한 계산모형을 이용한 연구도 있다. 심리학자들은 페이스북 같은 사회연결망서비스(SNS) 사용자들이 SNS로 인해 더 행복해지는지 아닌지를 연구하기도 한다. SNS로 인해서 행복한 정도가 줄어든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자신보다 더 행복해보이는 이웃들을 보면서 상대적인 박탈감을 느끼는 것도 한 가지 이유일 것이다. SNS에 올라오는 이웃들의 사진과 글을 보면 이웃들은 전부 경치 좋은 곳으로 여행을 다닐 뿐 아니라 맛있는 음식을 먹고 항상 행복한 것처럼 보인다.

 물론 그 반대(?)의 경우도 많다. 이를테면 친구의 좋은 일에 함께 기뻐하고 진심어린 축하를 하는 사람이 여전히 많다. 또한 이 역설을 역으로 이용하여, 주변의 인기 많고 잘난 친구의 도움으로 자신의 부족한 부분을 채워넣을 수도 있고 중요한 소식을 더 빨리 접할 수도 있다. 인기 많고 이웃이 많을수록 새로운 정보를 더 빨리 접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모든 게 마음 먹기에 따라서 달라진다고 말하려는 건 아니다. 입시, 취직, 승진 등 제한된 자원을 놓고 벌이는 경쟁에서 이른바 ‘엄친아’의 존재는 내 생존에도 영향을 줄 수 있기 때문에 기분의 문제를 넘어선다. 그런데 세상이 모든 면에서 완벽하게 평등해지지 않는 이상 우리는 이 역설에 따른 결과에서 영원히 벗어날 수 없을 것 같다. 앞서 보였듯이 이는 극소수를 제외한 대부분의 사람들이 겪는 일이기도 하다. 오히려 그렇기에 나 혼자만 겪는 일이 아니라는 데서 잠시나마 안도할 기회를 가져보는 것은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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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항현/POSTECH