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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항현/POSTECH
한때 ‘엄친아’라는 말이 유행한 적이 있다. 엄친아는 ‘엄마 친구 아들’의 줄임말이다. 자신의 아들이 뭔가 부족해 보일 때마다 그보다 더 나은 친구의 아들 얘기를 꺼내어 비교하는 상황을 풍자한 것이다. 그래서 엄친아는 모든 면에서 자신보다 뛰어나서 아무리 노력해도 이길 수 없는 사람을 가리키기도 한다. 물론 이는 ‘아들’에게만 해당하는 것은 아니고 ‘엄친딸’이라는 말도 있으며, 더 나가서 ‘아빠 친구 아들/딸’이나 그 외 다양한 변주도 얼마든지 가능하다. 그런데 비교를 당하는 입장에서는 이런 엄친아의 존재가 그리 반가운 일이 아니며 맥 빠지고 우울해지기 일쑤다. 왜 부모님 주변에는 늘 나보다 공부도 잘 하고 나보다 외모도 뛰어나고 나보다 성격도 좋은 사람이 있을까? 아니, 왜 내 주변에도 늘 그런 사람이 있을까? 엄친아는 꾸며낸 얘기일까, 아니면 실제로있을까? 실제로 있다면 그런 사람이 얼마나 많길래 그렇게 자주 화제에 오르는 것일까? 나의 학창시절을 되돌아보면 내 주변에는 언제나
이권우/도서평론가
프리먼 다이슨의 자서전 <프리먼 다이슨 20세기를 말하다>를 읽고 나서 한동안 큰 감동에 휩싸여 있었다. 수학자였던 그가 물리학을 익히고 도모나가, 슈윙거, 파인만의 이론을 종합해내는 출중한 업적을 이루고, 안전원자로와 핵추진 우주로켓개발에 열중하는 모습은 정말 흥미로웠다. 책 후반부로 오면 관심영역이 더 확장하여 외계생명체와 우주로 이주하는 문제를 다루는 바, 읽으면서 그 박식함과 상상력에 혀를 내두르지 않을 수 없었다. 더욱이 연극 에 비추어 오펜하이머의 운명을 평한 대목이나, 신의 왕좌에는 백일쯤 된 아이가 있었다는 꿈 내용으로 대미를 장식하는 장면에서는 다이슨의 섬세한 문학적 감수성을 느낄 수 있었다. 다이슨 자서전의 미덕으로 추켜세울 것은 더 많다. 그럼에도 나를 사로잡은 것은 자서전에 나오는 빼어난 물리학자들 이야기였다. 다이슨이 영국에서 공부하다 미국으로 와서 코넬대학교 물리학과 대학원생이 된 것은 1947년 9월이었다. 그의 지도교수는 한스 베터였는데, 그 인연 덕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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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민/(주)기술과가치 이사
일평생 유머감각이라고는 찾아 볼 수 없는 아버지, 잠시도 지루한 것을 못 참고 매사 재미를 추구해 온 어머니. 나의 존재는 그렇게 이질적인 사이에서 시작되었다. 나의 부모님들은 순서를 헷갈리기는 했지만 어쨌든 합리적 분할의 원리에 충실하셨다. 그래서 나의 언니는 재미만 알고, 내 남동생은 재미만 모른다. 그리고 나를 유머나 재미가 없는 진지함에는 지루해하고, 재미가 넘친 나머지 경박하거나 진지하지 못한 것도 견디기 힘들게 만들어 버리셨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두 분이 그런 이질적인 결합에도 토닥토닥 평생을 해로하셨던 것처럼, 내가 그 이상한 기질 때문에 마냥 피곤하기는 하지만 그래도 그냥저냥 모나지 않게 세상을 살아가고 있다는 사실이다. 만사 유머나 재미가 있어야 한다는 근거 없는 강박 때문에 지구가 자전을 멈추는 상황만 아니라면 어쨌든 유머 코드를 발견할 수 있는 나만의 필살기가 있기는 하다. 물론 그 필살기가 ‘오직 나만’의 것이라는 사실은 여전히 함정이지만. 마치 손바닥도 마
정세호/소설가
1. 마멀레이드는 달았다. 유하는 또래 아이들답게 단것을 좋아했다. 그 평범함이 단미를 슬프게 했다. “더 일찍 만났으면 좋았을걸.” 영리한 아이였다. 겉보기와 달리 단미가 자신보다 어리다는 사실을 알았지만 신경 쓰지 않았다. “나는 죽어.” 침대에 누운 유하는 곧 찾아올 죽음과 누리지 못할 삶에 대해 이야기했다. 생산 직후의 로봇이었던 단미는 죽음의 무엇이 철모르는 어린아이가 자신의 운명을 한 걸음 물러서서 바라보게 했는지 알지 못했다. 첫 만남 후 3년, 아이는 죽었다. 이윽고 한 시대가 끝났다. 2. 단미는 언덕 꼭대기에 섰다. 풀 위로 낙엽들이 굴러다녔다. 얼레가 돌아가며 방패연이 솟았다. 낡은 목제 손잡이를 통해 실의 떨림이 느껴졌다. 연은 몇 차례 흔들리다 바람의 흐름 사이에 자리를 잡았다. 아이가 달리고 연이 떠오르던 광경은 태어날 때부터 많은 사실을 알았던 단미가 경험한 첫 번째 경이였다. 단미에게 얼레를 쥐어주던 손의 따스함, 뛸 때마다 작게 흔들리는 귀밑머리와 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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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승희/동화작가
세상을 있는 그대로 서술하는 것. 그것들의 기본 법칙을 세우는 것. 가설과 관측 값을 기반으로 새로운 법칙들이 생겨나고 세계를 확장해 나가지만, 이것들은 검증과 반증 가능성이라는 과정을 통해서 합의된다. 불변의 진리라는 것은 언제든 새로운 진리에 자리를 내 줄 수 있다. 이것은 내가 이해하는 물리학이다. 물리학적 태도란 선험된 전제들, 법칙들조차 의심의 대상이 되는 것을 말했다. 감성 좌파였던 나에게 완전히 다른 인식의 지평을 열어준 것이 현대물리학이었다. 역사는 합법칙성과 합목적성을 가진다고 생각했었던 나에게 인류 역사는 오히려 브라운 운동에 가까운 우연성과 비목적성을 가진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던 것도 그로부터였다. 그런 인식이 삶의 목표를 상실했냐면 오히려 반대이다. 결과에 좌절하지 않고 매 순간 충실할 수 있는 의미가 생겼다. 그 다음으로 나에게 충격을 준 것은 그리스의 자연철학자들 중 에피쿠로스학파였다. 무한한 우주에서 세상의 모든 현상들은 궁극적으로 빈 공간을 움직이는 원
박정영/POSTECH
들어가며 이상하다. 왜 굳이 한가지 얼굴을 떠올리려 애썼을까. 우리 모두는 저마다 여러 가지 모습들을 지니고 있지 않은가. 내가 알고 있는 나의 모습도 있고, 새로운 나를 발견하기도 하고. 가끔은 생각지도 못했던 사람이 더없이 따듯한 모습으로 내 옆에 서있는 것을 발견하기도 한다. 그럴 땐 참, 고맙기도 하지만 괜히 잘못한 것도 없이 미안하다. 이처럼 자연스러운 일인데 미처 인지하지 못한 걸 보면, 같은 실수를 반복하고 틀린 문제를 또 틀리는 것처럼 사고는 대체로 흐르던 대로 흐르나 보다. 아시아태평양 이론물리센터 신임 소장 이범훈. 인터뷰 내내 그에게서는 굳이 하나를 고르려고 내가 열심히 상상했던 세 가지의 모습들이 동시에 보인다. 그 중심에는 물리학자 이범훈의 얼굴이 있다. 마치 ‘물리학자’ 라는 핵에 여러 전자들이 붙어 다양한 원자가 되는 것처럼. 소장 이범훈, 한 조직의 수장으로서 그의 열정은 절실함으로 다가온다. 십년 이십년 후에 나도 저런 열정을 지니고 있을까. 그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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