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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기진
이번 여름처럼 덥게 지낸 적은 없었던 것 같다. 매일 밤 에어컨과 싸움을 하며 잠을 청했다. 아침이면 물에 젖은 솜마냥 처진 몸으로 땀에 젖어 학교에 도착했다. 학교 연구실은 에너지 절약을 이유로 오전과 오후 몇 시간씩 에어컨 작동이 안됐다. 연구실에서 더운 선풍기 바람으로 하루종일 땀을 흘리면서 지내다 집으로 가길 반복하다 보니 방학이 지나가면서 체력은 바닥이 났고 몸은 지쳐만 갔다. 8월이 되면서 지친 마음에 위안을 삼은 것은 단 한 가지, 8월 15일 정도가 지나 태양이 사그라지고 밤이 되면 바람이 불 것이라는 확신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이 확신은 지구가 지금까지 우리에게 보여준 약속과 같은 것이다. 그 시간이 지나자 낮에는 덥긴 했지만 어김없이 코끝에 가을바람의 기운이 느껴졌고 하늘은 점점 청명하게 변해갔다. 이제 가을을 만끽하고 있다. 가을 맥주, 가을 바람, 가을 공기, 가을 하늘, 하늘을 나는 깃털 같은 구름, 일요일 오후의 노을, 가을 등산, 가을 꽁치, 가을 낙엽과
이강영
하버드에서 공부한 적이 있는 윌리엄 헌팅튼 라이트 (William Huntington Wright)는 1910년대부터 편집자 및 다양한 예술 평론가로 활동했는데, 그다지 성공을 거두지는 못했고 병까지 얻어서 한동안 요양 생활을 했다. 요양을 할 때 라이트는 범죄 소설 및 탐정 소설을 탐독했다. 그러면서 라이트는 나름대로 탐정 소설에 대한 자신만의 이론을 갖게 되었고, 나아가서 스스로 탐정 소설을 써보겠다고 결심을 한다. 1926년에 그의 첫 탐정 소설이 필명으로 발표되었는데, 본인도 뜻밖일 정도로 엄청난 성공을 거두었다. 자신의 이론에 기반을 두고 전략적으로 쓰여진 그의 소설들은 후속작까지 모두 크게 성공해서, 그를 돈방석에 앉게 해 주었고, 심지어 엘러리 퀸, 렉스 스타우트 등의 작가로 이어지는 미국 탐정소설의 황금기를 열어젖힌다. 파일로 번스 (Philo Vance)라는 고급 백수 탐정을 창조한 그의 필명은 S. S. 반 다인 (S. S. Van Dine)이다. 반 다인의 작품
pilza2
막 잠이 들었다 싶은 순간 눈이 떠졌다. 시간을 확인해보니 한 120년 정도 잠들었던 모양이다. 뚜껑이 열리자 나는 꼬리지느러미를 살살 움직이며 몸을 일으켰다. 지난번에 입었던 육체인지 다른 새것인지 모르겠지만 알 필요도 없었다. 지금 나를 깨우러 온 녀석도 똑같은 선내 작업용 규격품을 입고 있으니까. 꼬리지느러미로 균형을 잡으며 무중력 공간으로 떠오르니 상대방이 보내온 메시지가 머릿속을 유성우처럼 두드렸다. 잠에서 깨자마자 성가시게 말이야. “무슨 일이야?” 나는 입을 열어서 말을 걸어봤다. 상대방은 내 말에 대꾸도 안 하고 대신 내 뇌리에 직접 신호를 보내왔다. 수많은 정보와 메시지가 들어왔지만 일부러 싹 다 무시하고 거듭 물었다. “말로 하라니까.” 상대의 굳게 닫혔던 입술이 겨우 열렸다. “……비효율적입니다. 보낸 정보를 열람하십시오. 음성으로 전달할 경우 약 7분 20초가 소요됩니다.” “상관없어. 시간은 얼마든지 있으니까.” 우주에선 남아도는 게 시간이다. 내가 그동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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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rossroads
"그 후 8년, 그래도 줄기세포는 있다." 지난 7월 6일 이런 비장한 제목의 탐사(?) 보도 프로그램이 공영 방송의 공중파를 탔습니다. 지난 5월 미국 오리건보건과학대학의 슈크라트 미탈리포프 박사가 세계 최초로 인간 복제 배아 줄기세포를 만들어낸 사실이 알려지자 한국 언론에서는 부쩍 이런 식의 보도가 늘었습니다. 조작 논문, 난자 매매 등 추문으로 얼룩진 '황우석 트라우마' 때문에 세계 최고 수준이었던 한국의 줄기세포 연구가 발이 묶인 틈에, 후발 주자였던 미국의 과학자가 추월했다는 것이죠. 여기에 황우석 사태 이후에 "신선한 난자"를 공급받을 수 없게 된 한국 줄기세포 연구자의 푸념도 뒤따릅니다. 그러고 보니, 이런 논조의 기사는 2012년 노벨 생리의학상 수상자로 일본의 줄기세포 연구자 야마나카 신야 교토 대학 교수가 결정되었을 때도 있었습니다. 한국의 줄기세포 연구가 발목이 잡힌 사이에 일본은 저만치 앞서갔다는 지적이었죠. 야마나카 교수의 업적이 배아 줄기세포와는 전혀 다른
한 권의 책을 내용 중심으로 소개하던 일반적인 서평 쓰기에서 벗어나 물리학의 역사에서 이정표 역할을 했거나 과학을 대중화시키는데 지대한 공헌을 한 책들을 중심으로 <크로스로드>와 <프레시안 books>가 색다른 북배틀을 준비했습니다. 과학을 좀 더 깊이 있게 이해하려는 이들에게 좋은 안내가 되기 위해 읽어야 할 책들을 따로 소개하며 과학의 핵심 개념에 한 걸음 더 다가갈 수 있도록 서평자의 글을 전달합니다. "배아복제 성공의 다양한 의미" 필자 / 김병수(시민과학센터 부소장) 개체복제의 문턱에서 지난 5월 세계 최고의 학술지 중 하나인 셀(cell)지에 배아복제를 통해 줄기세포를 확립했다는 논문이 실려 세계를 놀라게 했다. 미국 오리건 보건과학대학 슈크라트 미탈리포프 (Shoukhrat Mitalipov) 교수 연구팀이 체세포 핵이식(SCNT)을 통한 배아복제를 성공했고 여기서 줄기세포주를 확립한 것이다. 이 실험의 특징은 기존의 핵이식 방법과 달리 세포 융합 전에 센다이 바이러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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