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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기진
일 년을 2주기로 움직이는 대학의 여름 방학은 적막에 빠져있다. 다시 가을바람이 불면 학생들로 넘쳐날 것이다. 하지만 이 뜨거운 여름의 열기 속에 학생들은 다 어디로 간 것일까? 우리 연구실은 다른 어느 날과 다르지 않다. 아침 일찍 더위를 피해 학교 연구실 건물에 들어와 있으면 아침이 가고, 점심을 먹기 위해 식당으로 향하고, 다시 오후의 일이 기다린다. 다시 해가지면 다시 집으로. 수업이 없어 집중을 할 수 없었던 일을 할 수 있는 때가 방학이다. 대학원생들 역시 논문을 쓰기 위해 실험에 매달린다. 그건 그렇고, 방학이 중요하다는 이야길 하고 싶다. 수업에 열중해야 하는 학기도 물론 중요하지만 방학은 학생들과 교수의 연구력 향상에 중요한 시간이다. 내가 방학의 소중함을 안 것은 졸업을 한 학기 앞둔 여름 방학 이었다. 당시는 공부가 하고 싶었다. 누구는 학교를 끝내는 입장에서 철이 들었다고 표현을 할 수 있겠지만, 그것과 상관없이 도서관이 주는 삶의 충만감에 빠진 것 같다. 도
이강영
프란츠 카프카는 친구에게 쓴 편지에서 “프라하는 사람을 놓아주질 않는다... 이 할멈은 맹수의 발톱을 지니고 있다.”라고 적고 있다. 보헤미아 왕국과 신성로마제국의 수도였던 중부 유럽의 천년 고도 프라하에서 태어나서 길지 않은 생애의 대부분을 이 도시에서 보낸 카프카에게, 프라하는 어린 시절과 젊은 시절의 기억을 이루는 그의 일부이면서 동시에 증오와 저주의 대상인, 모순의 도시였다. 프라하의 역사가 오랜 만큼, 프라하 카를 대학교의 역사도 무려 1348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보헤미아 왕이자 신성로마제국의 황제였던 카를 4세가 세운 카를 대학교는 볼로냐 대학과 파리의 소르본 대학 다음으로 세워진 유럽에서 세 번째로 오래된 대학교이며, 중부 유럽에서는 최초의 대학교다. 그래서 카를 대학교에는 보헤미아와 모라비아, 헝가리 등의 중부 유럽은 물론, 오스트리아 및 라인 강 유역, 폴란드와 러시아, 심지어 덴마크나 스웨덴에서도 학생이 찾아왔다. 1409년 라이프치히 대학이 세워지면서 독일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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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영도
오늘 선장은 우주선으로 나를 때려 죽였다. 뭔가 날짜에 관련된 문제가 있다는 건 처음부터 짐작할 수 있었다. 선장은 지구 로컬을 계산해 본 직후 갑자기 눈을 홱 뒤집더니 손에 잡히는 걸 내게 집어던지기 시작했다. 그 무차별적인 투척은 곧 주먹질과 발길질로 바뀌었고, 가장 가까운 의사가 26광년 저편에 있는 처지에 골절이라도 입으면 겪게 될 문제들을 선장이 떠올린 후 행성인들은 상상하기 힘든 살해 방식으로 바뀌었다. 우주선으로 사람 때려 죽이기. 주인공이 벽을 향해 달리면 잠시 후 벽에 주인공 모양의 구멍이 생기는 세계가 떠오르는 이야기지만, 그렇게 카툰 같은 이야기는 아니다. 사실 인류에겐 행성으로 사람을 타격하는 격투술도 있다. 대표적으로 유도가 그러하다. 유도가의 무기는 지구이며, 그 적수를 다치게 하는 건 유도가의 힘이 아니라 지구 중력이다. 그 사실을 이해한다면 선장의 우주선 살법을 이해하는 건 어렵지 않다. 유도의 경우와 달리 우주선엔 중력이 없지만 가속도가 중력을 대신했
이관수
물리학을 대표하는 상징은 무엇일까? 많은 것들이 있지만, 아무래도 “입자”를 떠올리는 경우가 많다. 중성자, 양성자, 입자가속기 등등. 입자물리학은 물리학을 꿈꾸는 사람들의 로망이다. 물질과 우주의 근본을 탐구하는 일은 물리학만의 고유한 영역이 아닌가? 최근 입자물리학 실험이 더욱 주목을 받게 된 데에는 지난 몇 년간 전 지구적으로 이목을 끌고 있는 CERN의 LHC 실험도 한몫했다. 누구나 무엇인가 “큰 일”이 벌어지고 있다고 알고는 있다. 대부분의 사람들에게는 “큰 일”의 내막이 분명치 않은 점도 입자물리학실험의 아우라를 더하고 있다. 한국에서는 간간히 중요한 중성미자 실험이 한국 땅에서도 진행되고 있다는 보도들이 계속되었다. 덕분에 입자물리학실험이 외국의 일만이 아니라 우리나라의 일이기도 하다는 인식이 늘었다. 사실 한국의 입자물리학실험은 시작만큼은 오래되었다. 지난 1950년대 말 동숭동의 서울대 문리과대학에서 권영대 교수의 지도로 작은 사이클로트론을 제작해서 의미 있는 측
Crossroads
과학의 역사에서 이정표가 되었거나 과학 대중화에 지대한 공헌을 한 책을 중심으로 인물 대 인물, 이론 대 이론, 명강의 대 명강의 등 두 권의 책을 비교 분석하는 <책 대 책>. 그 열한 번째 대담회가 APCTP(아태이론물리센터)와 사이언스북스, 채널예스 공동 기획․주관으로 지난 7월 17일(화) 저녁 7시 강남 출판 문화 센터 5층 민음사 대회의실에서 열렸다. 두 번의 세계대전과 나치의 공포정치라는 서구 역사 중 가장 급박하고 가장 모순적이며 가장 참담한 시기를 살았음에도 가장 위대한 과학 연구소에 자신의 이름을 남긴 막스 플랑크. 2차 세계대전의 종지부를 찍은 맨해튼 프로젝트의 총책임자를 맡아 원자 폭탄을 개발에 성공했지만, 핵전쟁을 막기 위해 정보 공유의 중요성을 강조한 순간 매카시즘의 광풍에 휩쓸려 버린 비운의 물리학자 로버트 오펜하이머. 찬란한 성공과 몰락이라는 상반된 후대의 평가를 받은 이 두 사람은 자신의 앞에 등장한 크고 작은 사건들을 어떤 자세로 맞이했는가? 그리고
* Book Battle 소개 한 권의 책을 내용 중심으로 소개하던 일반적인 서평 쓰기에서 벗어나 물리학의 역사에서 이정표 역할을 했거나 물리학을 대중화시키는 데 지대한 공헌을 한 책들을 중심으로 인물 대 인물, 이론 대 이론, 이론 대 현실(혹은 상상), 명강의 대 명강의 등 두 권의 책을 비교분석하는 코너입니다. ▣ ‘부분과 전체' 대 ‘슈뢰딩거의 삶’ ▣ APCTP(아태이론물리센터), 사이언스북스 공동 기획 ▣ 도서 정보 <부분과 전체> : 베르너 하이젠베르크 저 / 김용준 역 / 지식산업사 <슈뢰딩거의 삶> : 월터 무어 저 / 전대호 역 / 사이언스북스 “불확정적인 사유와 삶의 기록” 서평자 / 이상욱(한양대 철학과) <부분과 전체(Der Teil und das Ganze)>는 양자역학의 창시자 중 한 사람인 하이젠베르크의 지적 회고록이다. 그의 고등학생 시기의 단편적 기억에서 시작하여 1960년대 중반까지의 삶의 모습과 사유의 흔적이 기록되어 있다. 하지만 머리말에서 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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