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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장원
A.D. 8년 무자년(戊子年) 9월 17일 별궁(別宮)은 뉘엿뉘엿 넘어가는 가을 햇살을 끝내 부여잡으려는 양 붉은 빛을 한껏 머금었다. 궁인(宮人)들의 발걸음이 분주했다. 왕이 사냥터에서 방금 돌아온 것이다. 왕의 행보는 평소와 달랐다. 사냥에 나섰던 가신들과 오후 늦게라도 밀린 정무를 논의하는 게 보통이었다. 하지만 오늘은 돌아오자마자 신료들과 작별을 고했다. 어전 대신 왕이 찾은 곳은 널찍한 연못이 내려다보이는 정자였다. 내관과 시녀들이 서서 기다리고 있었고 정자 아래에는 악공 몇이 돗자리를 펴고 요고(腰鼓)[1]와 피리, 공후(箜篌) [2], 비파, 오현금, 탄쟁(彈箏) [3] 등 저마다의 악기를 나직이 조율하던 참이었다. “데려오라.” 맨 앞에서 머리를 조아리는 내관에게 왕이 명했다. 상좌(上座)에 앉으며 왕의 입에서 절로 웅얼거림이 새어나왔다. “신이(神異)한 일이로고.” 요즘처럼 심사가 편치 않은 때, 오늘의 인연이 혹여 한 가닥 단비가 되어줄까. 왕은 잠시나마 실낱같은
Crossroads
안녕하세요? 크로스로드입니다. 2010년 9월 호 서평 선정 대상 도서는 최무영의 <최무영교수의 물리학강의> 입니다. 우수 서평을 써주신 1분을 선정하여 APCTP의 기획도서 3종(3만 9천원 상당)을 선물로 드립니다. (분량은 A4 1페이지 정도) APCTP 기획 도서 3권 안내 앱솔루트 바디 과학이 나를 부른다 얼터너티브 드림 서평은 답글로 달아주시면 됩니다. * 도서 : 최무영 교수의 물리학 강의 * 저자 및 역자 : 최무영 지음 * 출판사 : 책갈피 * ISBN(13) : 9788979660562 흔히, 물리학을 배우려면 머리도 좋아야 하지만, 재미없고 어렵기만 한 공부를 하기 위해서는 대단한 인내도 필요할 것이라고 말한다. 물리학에 대한 이런 선입견이 크게 잘못된 오해는 아닌 듯싶다. 하지만 어느 공부인들 식은 죽 먹기로 쉬운 것이 있을까? 새로운 것을 배우고자 할 때 여러 가지 장벽이 있을 수 있지만, 자신이 그것을 왜 공부하려고 하는지에 대한 마음의 준비 여하에 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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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진우
‘과학커뮤니케이션’이 무엇일까 궁금한 마음에 8월 11일(수)~13일(금)까지 2박 3일간 개최된 제9기 APCTP 과학커뮤니케이션 여름학교를 다녀왔다. 행사에 참가하기 전날 밤, 참가자들이 모두 대학(원)생이라는 것을 알고 설렌 마음에 도무지 잠을 이룰 수가 없었다. 나와 같은 또래의 이공계 대학생들이 온다는데 전공은 무엇이며, 참가하게 된 동기는 무엇인지 이런 저런 생각과 기대감에 벌써부터 가슴이 벅찼다. 그러나 이런 나의 기대감에 찬물을 끼얹기라도 하듯 태풍 ‘뎬무’가 8월 10일 새벽에 한국에 상륙했다. 비를 뚫고 포항까지 먼 길을 가려니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그러나 태풍도 여름학교에 참가하려는 나의 열정을 꺾을 수는 없었다. 우여곡절 끝에 포항에 도착할 수 있었다. 행사가 개최되는 무은재기념관에 도착하자마자 시간계획표를 건네 받은 나는 3일 동안의 여름학교가 쉴 틈 없이 빠듯함에 놀랐다. 참가한 학생들과 인사를 채 나누기도 전에 과학커뮤니케이션 총론에 대한 강의가
유효석
무더위와 열대야가 한참 기승을 부리던 2010년 8월 중순, 나와 과학커뮤니케이션의 씨름의 막이 오르고 있었다. 아시아 태평양 이론물리센터에서 과학의 대중적 글쓰기에 대한 중요성을 확산시키고, 과학지식을 기초로 논리적인 글쓰기 및 프레젠테이션에 능숙한 과학자들을 양성하기 위해 개최하는 제9기 APCTP 과학커뮤니케이션 여름학교가 8월 11일(수)부터 13일(금)까지 2박 3일간 포항에 있는 포항공과대학교 무은재기념관에서 열렸다. 이번 여름학교는 전국에서 24명의 이공계 대학(원)생들이 참여한 가운데 개최되었으며, 과학글쓰기 및 과학프레젠테이션에 관련된 교육과 실습, 대회 등 여러 프로그램이 진행되었다. ROUND 1. 과제와의 씨름 이번 행사에 참가하기 전에도 공학글쓰기와 공학프레젠테이션에 관련된 강의를 여러 차례 들어 본경험이 있었다. 그러나 프레젠테이션에 대한 정확한 개념과 방식에 대해서는 제대로 알지 못하고 참가한 것이 사실이다. 그래서 더욱 기대가 된 것도 사실이다. 행사
김경옥
2010년 수치상대론 및 중력파[1] 국제스쿨 7월 26일부터 30일까지 5일간 POSTECH에 위치하고 있는 아태이론물리센터(APCTP)에서 2010년 수치상대론 및 중력파 국제스쿨(2010 International School on Numerical Relativity and Gravitational Waves)이 개최되었다. 아태이론물리센터에서는 회원국 뿐만이 아니라 아시아태평양 지역의 학술 활동을 지원하는 행사의 일환으로 국제 학술회의, 워크숍 및 스쿨과 같은 학술활동을 지원하고 있다. 이번에 열린 이 행사 또한 아태이론물리센터의 지원을 비롯하여 한국과학기술정보연구원(KISTI), 국가수리과학연구소(NIMS), 유카와 이론물리연구소(YITP)와 공동으로 주최되었다. 이번 국제스쿨의 개최 목적은 저명 연사들이 석, 박사 과정의 학생들에게 수치상대론과 중력파에 대한 심층적인 강연을 제공함으로서 젊은 예비과학자들의 연구능력을 증대시키고 국내 연구자들과의 학술정보 교류 및 공동 연
전중환
여름 휴가를 설악산에서 보냈다. 이제 17개월 된 아기를 달래가며 간신히 가족여행을 다녀왔다고 하니, 다들 한 마디씩 던진다. “아기들은 어차피 나중에 기억도 못 하는데 헛고생만 했구먼!” 어떤 분은 딸이 네 살 때 함께 외국여행을 다녀왔는데 딸이 전혀 기억을 못 하더란다. 거짓말하는 것 같아서 여행지에서 딸과 같이 찍은 기념사진을 내밀었더니, 딸이 대체 이 계집애는 누구냐며 벌컥 화를 냈다고 한다. 사람들은 대개 어른이 되고 나면 만 3살 반 이전에 일어난 일은 전혀 기억하지 못한다. 그냥 머리가 아직 여물지 않아서 그런 것 아니냐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문제는 그리 간단치 않다. 만 3살 된 아이들에게 몇 달 전에 있었던 일, 이를테면 생일날 누구와 어디에 갔었는지 물어보라. 유아들의 장기 기억이 놀랄 만큼 정확함을 알 수 있다. [1] 왜 유아들은 기억 저장소에 이미 잘 보관해 놓은 기억들을 정작 어른이 되고 나면 본체만체하는 것일까? 유아 기억상실증(infantile amne
이명현
고등학교 2학년에 진급하면서 이과와 문과 중 하나를 선택하도록 강요받았었다. 나는 문학에도 관심이 많았지만 천문학과를 가기 위해서 이과를 선택해야만 했다. 그 때문이었는지 담임선생님이 내 의견도 묻지 않고 나를 문과로 배정해버렸던 해프닝도 있었다. 세월이 한참 지난 요즘에도 고등학생들은 여전히 똑같은 어처구니없는 강요를 받고 있는 것이 못내 안타깝다.모두들 유행처럼 통섭이니 융합이니 하고 외친다. 이를 위한 소통의 도구로서 과학커뮤니케이션이나 과학글쓰기 같은 말들도 유행처럼 번지고 있다. 이공계 학생이 반드시 갖춰야 할 새로운 덕목이라는 것이다. 한 청소년 대상 과학잡지의 이번 여름 별책부록도 이공계 글쓰기에 관한 것이었다. 비슷한 제목을 단 책들도 쏟아져 나오고 있다.우리도 지난 8월 11일부터 13일까지 제9기 APCTP 과학커뮤니케이션 여름학교를 열었다. 전국에서 모인 24명의 이공계 대학생들이 참가했다. ‘과학’이라는 수식어를 앞에 달고 글쓰기, 프레젠테이션, 강연, 토론
김재완
'호기심이 고양이를 죽이다'에서 호기심은 원래 고양이 자신의 호기심이다. 요즘 많이 쓰는 말로 '너무 알려고 하지 마. 다쳐.'라는 뜻이다. 양자역학의 역사에도 고양이가 나오는데, 슈뢰딩거의 고양이다. 고양이는 죽음과 삶이 중첩된 상태에 있다가, 누군가의 호기심 때문에 상자가 열리는 순간, 그 중첩이 깨어지면서 고양이는 죽든지 살든지 둘 중에 한 상태로 된다. 슈뢰딩거의 고양이는 양자역학과 고전역학의 경계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여기서 호기심은 고양이가 아니라 외부관측자의 호기심이다. 한국 민담에도 비슷한 이야기가 있다. 어떤 선비가 과거 시험을 보러 한양에 가다 깊은 산 중에서 길을 잃었다. 멀리 불빛을 보고 찾아갔더니 아름다운 여인이 그를 맞아들인다. 그 여인은 식사와 잠자리를 준비해주고, 밤 동안 자신의 방에서 이상한 소리가 들리더라도 절대 들여다보지 말라고 당부한다. 이 선비는 과연 이상한 소리를 듣고 그 여인이 걱정되어 그 방을 엿본다. 그 순간 그 여인이 꼬리 아홉 달린
김창규
미지(未知)가 무슨 뜻인지 모르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비록 너무나 기계적으로 사용한 나머지 지금은 흔적도 남지 않을 만큼 녹아버리긴 했지만 말이다. 미지수. 미지의 세계. 미지에 대한 두려움. 오래전 내 머릿속의 ‘미지’라는 개념 또한 그랬다. 추상적인 단어가 흔히 그렇지만 ‘미지’라는 단어는 (‘나’라는 인지권 안에서) 금세 기호형태(sign-Gestalt)를 이루고 실용의 단계로 넘어가 버렸다. 그리고 나는 꽤 한참 동안 그 상태를 유지하며 살았다. 매일 같이 무심코 지나치던 지하철 역사 벽의 타일 무늬를 주의 깊게 들여다보는 순간 그게 무슨 형태를 이루고 있는지 전혀 인식할 수 없게 되는 경우가 있다. 그러면 일상적인 생활을 계속 유지하기 위해서, 내 두뇌에 대한 신뢰를 되찾기 위해서 그 무늬가 어떤 모양인지 애써 다시 파악해야만 한다. 당연한 얘기지만 이런 현상은 시각을 통해서만 일어나는 게 아니라 언어와 인식 사이에서도 일어난다. 나는 어떤 책 속의 한 구절을 읽으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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