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4
0
김현중
그날 두 번째로 잠에서 깬 뒤 벽시계를 봤다. 낮 열두 시 십오 분. 날이 흐린지 회색 창문으로 들어오는 빛이 인색했다. 첫 번째 기상 후에 마셨던 술 때문에 머리가 아프고 속이 아렸다. 책상 위에 놓인 진통제 약병에는 딱 두 알이 남아 있었다. 생수와 소주 사이에서 잠깐 망설이다가 생수로 약을 넘긴 뒤 소주로 입가심을 했다. 입가심이 반병 넘게 이어지자 이번에는 위가 따끔거리기 시작했다. 위장약을 찾기가 귀찮아서 그냥 침대 위로 몸을 던졌다. 쿨렁, 하고 몸이 진동하며 기다렸다는 듯 현기증과 구토감이 동시에 밀려왔다. 현기증이 찾아올 때면 항상 하던 식으로, 등을 바닥에 붙이고 누워 두 다리만 침대 위로 올렸다. 천천히 머리로 피가 몰리면서 현기증이 조금씩 가셨고 다시 두통이 그 자리를 대신했다. 머리를 뒤로 곧추세워서 방안을 둘러보았다. 침대 하나, 책상 하나, 의자 하나, 그리고 TV 한 대가 전부 거꾸로, 마치 내가 물구나무서기를 하고 있는 것처럼 뒤집혀 보였다. 똑똑, 하
Crossroads
안녕하세요? 크로스로드입니다. 2010년 4월 호 서평 선정 대상 도서는 이석영의 <모든 사람을 위한 빅뱅 우주론 강의> 입니다. 우수 서평을 써주신 1분을 선정하여 APCTP의 기획도서 3종(3만 9천원 상당)을 선물로 드립니다. (분량은 A4 1페이지 정도) APCTP 기획 도서 3권 안내 앱솔루트 바디 과학이 나를 부른다 얼터너티브 드림 서평은 답글로 달아주시면 됩니다. * 도서 : 모든 사람을 위한 빅뱅 우주론 강의 * 저자 및 역자 : 이석영 지음 * 출판사 : 사이언스 북스 * ISBN(13) : 9788983711182 무엇 보다 반가운 것은 이 책을 천문학자가 썼다는 사실이다. 당연히 우주를 사랑하는 사람 누구나 감동적이고 멋진 우주이야기를 책으로 쓸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현장에서 활동하고 있는 현역 천문학자가 직접 쓴 대중천문학 책이 절대적으로 부족한 우리 출판 현실을 생각하면, 이 책에 대한 반가움을 숨길 수가 없다. 더 많은 책을 위한 신호탄으로 받아들이고
전중환
필자의 한 지인은 최근 적지 않은 나이에 아기를 낳았다. 간절히 바라왔던 아기여서일까, 맞벌이 생활을 하던 그녀는 1년간의 무급 육아휴직을 직장에 신청했다고 한다. 우리나라의 기업 풍토상 다음 해 직장에 복귀할 자리가 아예 없어질 가능성도 있지만, 그녀는 별로 개의치 않는 듯했다. 가족이나 친지들도 다들 이해해 주었단다. 만약 그녀 대신 남편이 1년간의 무급 육아휴직을 직장에 신청했다면 가족들의 반응은 사뭇 달랐을 것이다. 일반적으로, 여성은 남성보다 자식을 더 돌본다. 반면에 남성은 배우자를 얻기 위한 경쟁에 여성보다 더 열심히 뛰어든다. 여성은 양육하고 남성은 경쟁한다는 이 친숙한 성차는 비단 우리 인간 종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부모의 자식 돌보기가 행해지는 포유류, 조류, 파충류, 양서류, 어류, 일부 무척추동물들을 자세히 살펴보면, 암컷의 자녀 양육이 자연 상태에서 완연히 대세임을 알 수 있다(유일한 예외는 수컷 혼자서 자식을 키우는 종이 다수를 차지하는 어류이다). 암컷은
박상준
현대 사회과학을 정초한 막스 베버에 따를 때 현대사회의 가장 중요한 특징은 사회의 각 부문이 자율화되었다는 점이다. 전근대사회의 경우 종교가 선험적인 층위에 자리하여 사회의 모든 부문을 주재했다. 예컨대 이해관계를 달리하는 장사꾼과 시인이 갈등을 빚어 문제를 직접 해결하지 못할 때, 서양의 경우 가톨릭 사제가 동양의 경우 유교의 선비가 중재를 하는 식이었다. 이에 반해 종교개혁을 거치며 형성된 현대사회에서는 종교 또한 사회의 한 부문으로 격하되었다. 그 결과 사회의 각 부문 곧 정치, 경제, 행정, 문화예술 등이 모두 자율성을 갖고 제각각의 존재 근거와 발전 원리를 내세우게 된다. 마키아벨리즘이나 경제논리, 관료주의, 예술의 자율성 등이 그 결과이다.과학 또한 예외가 아니어서 이른바 과학 고유의 원리에 입각하여 비약적으로 발전하게 되었다. 과학이 사회 다른 분야의 논리와 부딪힐 때 내세우는 가치중립성 주장이 이러한 사정을 잘 보여 준다. 그런데 곰곰 생각해 보면, 과학은 다른 경우
오길영
최근 헐리웃 영화의 특징은 컴퓨터 기술을 이용한 새로운 기술미학을 전면에 내세운다는 점이다. 간단히 말해 이들 영화는 ‘기술복제’를 넘어선 ‘기술융합’시대의 영화이다. [트랜스포머] 시리즈에서 이미 현란한 기술미학이 그 모습을 드러냈고, 역대 흥행기록을 갈아 치운 [아바타]는 그 정점을 보여준다. 두 영화는 일단 그 발상이 흥미롭다. [트랜스포머] 시리지의 변신로봇이라는 발상 자체가 흥미롭지 않은가. 우리가 어린 시절 만화책으로만 상상의 변신로봇이 눈앞에 입체적으로 생생하게 살아 움직이는 시각적 표현으로 만들어졌다는 것은 놀랍다. 그리고 놀라운 풍경과 동식물들이 바로 관객의 눈앞에 생생한 3D 화면으로 펼쳐지는 [아바타]를 보면 영화가 보여주는 기술융합의 수준이 어디까지 왔는지 확인할 수 있다. 한국의 영화 제작자들이나 감독들이 [아바타]를 보고 10년 후에 나올 영화가 벌써 나왔다고 그 기술적 수준에 한숨을 내쉬었다는데 이해할 만하다. 그런데 내가 이들 영화를 보면서 떠올린 것은
양형진
1. 세계에 대한 지식과 세계관 고대 그리스인들은 지구를 평평한 원반이라고 생각했다고 한다. 원반의 한 가운데에 올림포스 산이 있고 그 옆에 그리스와 지중해가 있으며, 폭풍우가 몰아쳐도 범람하지 않는 바다가 이들을 에워싸고 있다고 생각했다. 그 주변에는 영원한 기쁨과 봄을 즐기는 종족, 신의 축복을 받아 영원한 행복을 누리는 종족 등이 살고 있다고 믿었다. 우리와 같은 지적 생명체가 우주 어딘가에 있을지 모른다고 오늘날의 우리가 생각하듯이, 그리스 사람들도 자신들 주위의 어딘가에 인간과 다른 어떤 지적 생명체가 살고 있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그런 존재에게 기쁨, 봄, 신의 축복 등 자신들이 바라기는 하지만 실제로 존재하지 않는 것을 투영하기도 했다. 이렇게 현실과 신화적 상상력을 중첩시키면서 우주가 어떻다는 그림을 그려갔다. 그들이 이런 상상을 펼칠 수 있었던 것은 그 당시에는 지구가 둥글다는 것 뿐 아니라 그리스와 지중해 이외의 다른 세계에 대해서도 아는 것이 거의 없었기 때문
독자님의 정보를 입력해주세요.
* 는 필수항목입니다
첨부파일은 최대 3개까지 가능하며, 전체 용량은 10MB 이하까지 업로드 가능합니다. 첨부파일 이름은 특수기호(?!,.&^~)를 제외해주세요.(첨부 가능 확장자 jpg,jpeg,png,gif)