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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인효
1 완연한 가을로 접어든 초저녁의 풍광이 창 너머로 비치고 있었다. 경수는 잠시 책을 덮고 멀리 보이는 공원 단풍나무에 초점을 맞췄다. 계절은 사람의 일생과 같다. 파릇파릇 돋는 새싹처럼 시작된 인생이 가을에 접어들면 지나온 시간들을 되돌아보게 된다. 각색의 단풍들이 다양한 추억을 가진 사람들의 일생처럼 보였다. 뒹구는 낙엽에서 애수를 느끼는 것은 언젠가 맞이하게 될 인생의 황혼을 미리 연습하는 것이다. ‘띠리리릿.. 띠리리릿..’ 한 통의 전화가 걸려왔다. 경수는 책상 위에 놓인 핸드폰을 집어 들었다. ‘여보세요.’ 누구와의 통화인지 경수는 더 이상 말을 잇지 못하고 핸드폰을 귀에 댄 채 멀리 공원만을 응시했다. 잠시 후 그는 무엇인가 깊은 상념에 잠긴 듯 고개를 숙였다가 어떤 결심이라도 한 듯 자리를 박차고 일어섰다. 문을 열고 짧은 복도를 지나 부엌에 이르렀을 때 그 물건 외에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이미 호흡은 가빠져 있었고 어금니는 단단히 악다물렷다. 물건을 집어 들며
Crossroads
안녕하세요? 크로스로드입니다. 2009년 7월 호 서평 선정 대상 도서는 대니얼 J. 레비틴의 <뇌의 왈츠> 입니다. 우수 서평을 써주신 1분을 선정하여 APCTP의 기획도서 3종(3만 9천원 상당)을 선물로 드립니다. (분량은 A4 1페이지 정도) APCTP 기획 도서 3권 안내 앱솔루트 바디 과학이 나를 부른다 얼터너티브 드림 서평은 답글로 달아주시면 됩니다. * 도서 : 뇌의 왈츠 * 저자 및 역자 : 대니얼 J. 레비틴 지음, 장호연 옮김 * 출판사 : 마티 * ISBN(13) :9788992053167 『뇌의 왈츠』는 누구나 궁금해 할 질문 '음악을 들을 때 우리의 뇌에선 무슨 일이 벌어지는가'에 관한 신경생리학적 보고서다. 음악생리학 분야에서 최근 가장 활발히 활동하고 있는 맥길대학 연구팀의 다니엘 레비틴 교수가 유려한 문체로 써내려간 이 책은 최근 봇물 터지는 쏟아진 '음악에 관한 과학' 서적들 중 단연 돋보인다. 음악 생리학의 주요 쟁점들을 일목요연하게 정리하고 있는
최나리
지난 5월 27일, 포스텍 정보통신연구소 중강당에서는 특별한 강연이 열렸다. 강연의 주인공은 다큐멘터리 독립영화 <워낭소리>의 이충렬 감독. 독립영화로써는 유례없는 관객 수 295만이라는 기록을 남긴 영화 <워낭소리>는 제작기간 3년, 제작비 1억 원을 들인 첫 극장용 장편 다큐멘터리 독립영화로, 인간과 동물 간의 상호교감을 통해 가슴 따뜻한 우정과 시골, 그리고 부모님에 대한 향수를 그려낸 작품이다. ‘워낭소리가 만들어지기까지’라는 주제로 약 한 시간에 걸쳐 진행된 이번 강연에서 이충렬 감독은 영화 <워낭소리>를 제작하게 된 동기와 배경, 제작과정의 에피소드, 제작 후 감회 등에 대해 이야기했다. 아버지께 바치는 헌사, <워낭소리> <워낭소리>를 제작하게 된 데에는 이 감독의 아버지의 영향이 크다. “아버지께 사랑한다는 말 한마디를 해 본 적이 없었습니다.” 제작 배경에 대해 이 감독은 이렇게 첫 마디를 열었다. 자신이 어릴 때부터 농촌에서 일하시던 우직한 아버지에 대한 기억,
전중환
빙산에 부딪혀 서서히 침몰하는 타이타닉호. 사람들은 저마다 살기 위해 몸부림친다. 죽음의 공포가 엄습한 아수라장에서 담담히 음악을 들려주던 악사들도 마침내 서로 행운을 빌며 뿔뿔이 흩어진다. 그러나 바이올리니스트 월리스 하틀리(Wallace Hartley)는 그 자리에 남아 홀로 새로운 곡을 시작한다. 다른 악사들도 황망히 되돌아와서 함께 곡을 연주한다. 실제로 타이타닉호가 침몰하는 마지막 순간까지 연주되었다는 찬송가 338장 "내 주를 가까이 하게 함은(Nearer my God to thee)"의 바이올린 선율은 영화를 보는 이들에게 가슴 벅찬 감동을 안겨주기에 모자람이 없다. "숨질 때 되도록 늘 찬송하면서 주께 더 나가기 원합니다." 어떻게 음악은 실존했던 연주자 하틀리로 하여금 자신의 유전자 따윈 돌보지 않게 만들었을까? 사실, 음악이야말로 우리 인간이 생존과 번식 같은 저급한 목표를 넘어서는 고귀한 영혼을 지녔음을 보여주는 증표가 아닐까? 음악은 고금을 막론하고 전세계 모
피터 풀데
최근 한국 과학계와 정부는 세계적 과학자를 유치하려는 세계수준의 연구중심대학(WCU) 사업과 세계적 연구소 유치 사업 등을 통해 대학과 연구소 시스템을 글로벌화하려는 강력한 의지를 보이고 있다. 이미 한국 과학계와 전 세계는 긴밀한 유대관계를 형성하고 있긴 하지만 지금까지의 글로벌화 과정은 일방통행에 머무르고 있다. 한 예로 약 13만 명의 한국인들이 해외에서 유학 중이나 이에 상응하는 유학생이 한국으로 오지는 않는다. 특히 해외 고급인력의 한국 유치는 더욱 어려운 과제이다. 과연 한국이 이러한 불균형을 언제까지 감당할 수 있을까? 사실 한국은 세계 최저 수준의 출생률 때문에 노동시장, 고등 교육 및 의료 분야, 은퇴 후 계획 등 사회 전반에 걸쳐 수많은 문제가 초래될 전망이다. 이미 한국보다 훨씬 앞서 저출산 문제를 겪은 유럽 국가들은 이 점에서 좋은 반면교사가 되고 있다. 국가의 귀중한 인력자원의 해외 유출 현
김상욱
사형제를 폐지해야하나, 유지해야하나. 일제고사를 치러야하나 거부해야하나. 자장면을 먹을까 짬뽕을 먹을까. 우리는 살아가며 많은 선택의 순간들을 경험한다. ‘사느냐 죽느냐 그것이 문제로다!’라고 고민하는 햄릿이 아니더라도, 매 순간 우리 모두 햄릿의 소리 없는 아우성 속에 살아가고 있는 건지도 모른다. 우리가 몸담고 있는 이 우주도 선택의 스트레스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강원도 정선 카지노에서 던져진 주사위가 6이 나오도록 해야 하나, 1이 나오도록 해야 하나. 설날 어느 아파트의 할머니가 던진 윷은 도가 나와야 할까, 모가 나와야 할까. 능력 없는 필자는 젊은 시절 삼각관계를 경험해보지 못했지만, 더 나은 상대를 골라야 하는 연인의 난처함은 짐작하고도 남음이 있다. 선택의 순간에서 무엇이 결정을 내리도록 하는 것일까? 우리가 내리는 결정이 모두 뇌에서 이루어지는 것이고 보면 뇌 어딘가에서 자장면을 먹으라고 우리를 부추기는 것이 분명하다. 뇌라는 것도 사람 몸을 이루는 한 기관이니까
황은주
언제부터인가 공익광고가 늘고 있다. 휴대폰은 진동으로, 노약자에게 자리양보를, 큰소리로 떠들지 않기 등 사람이 많이 모일만한 곳이면 어디든지 쉽게 이러한 문구들이 사람들에게 지시하는 것을 볼 수 있다. 이렇게 공익광고를 하지 않으면 현대인들은 이러한 행동이 타인에게 손해를 끼치는지 아닌지 생각조차 하려고 하지 않는다. 현대인들은 끊임없이 누군가에게 지시를 받고 따르는 존재가 되었고, 그러한 지시가 없을 시에는 오히려 불안해한다. 노약자에게 더 많은 배려를 하라는 말을 듣기 전에는 노약자는 배려의 대상으로 인식 되지 못한다. 나 스스로 교육이나 광고의 효과 없이 자발적으로 무언가를 해야겠다는 생각을 하기 힘들어졌다. 언제부터, 무엇이 현대인들을 이렇게 수동적인 존재로 만들었을까? 무엇이 현대인들을 스스로 생각하고 행동하는 것을 끔찍이 싫어하게 만들었을까? 여러 가지 원인 분석과 해석이 있을 수 있겠지만 나는 그 원인을 과학 기술이 낳은 부산물(또는 부작용)인 능동적인 두뇌활동의 결여
박노해
별의 시간 박노해 이렇게 긴 이별을 견뎌내기엔 우리 사랑 너무 짧았다고 말하지 말아요 이렇게 거친 날들을 이겨내기엔 우리 사랑 언약도 없다고 슬퍼하지 말아요 우리 사랑은 별이었어요 자신을 온전히 불태운 별의 시간이었어요 차디찬 바람이 모든 꽃을 쓸어가도 그대 얼굴 그대 음성마저 희미해가도 내 가슴에 그대로 살아 있는 별 진달래는 사계절을 다 살아도 언제나 불타는 꽃으로만 기억되듯 그 짧았던 별의 시간 그 강렬했던 순수의 시간 그것은 이대로 영영 다시 볼 수 없다 해도 세월을 거슬러 한순간 환히 시린 별 시간을 이겨내는 눈물 어린 힘입니다 빛과 어둠 박노해 뜨거운 태양 아래서 그림자는 검고 깊어라 너무 많은 세상의 빛을 받은 자의 내면에는 어둠이 들어차리라 캄캄한 어둠 속에서 검은 눈동자는 별처럼 빛나라 너무 많은 세상의 그늘을 걸은 자의 내면에는 맑은 빛이 동터 오리라 눈부시게 빛나는 자여 너무 기뻐하지 말아라 어둠 속에 우는 사람아 너무 슬퍼하지 말아라 아픈 날 박노
새벽별 박노해 새벽 찬물로 얼굴을 씻고 나니 창살 너머 겨울나무 가지 사이에 이마를 탁 치며 웃는 환한 별 하나 오 새벽별이네 어둔 밤이 지나고 새벽이 온다고 가장 먼저 떠올라 새벽별 아니네 뭇 별들이 지쳐 돌아간 뒤에도 가장 늦게까지 남아 있는 별 끝까지 돌아가지 않는 별이 새벽별이네 새벽별은 가장 먼저 뜨는 찬란한 별이 아니네 가장 나중까지 어둠 속에 남아 있는 바보 같은 바보 같은 별 그래서 진정으로 앞서가는 희망의 별이라네 지금 모든 별들이 하나 둘 흩어지고 사라지고 돌아가는 때 우리 희망의 새벽별은 기다림에 울다 지쳐 잠든 이들이 쉬었다 새벽길 나설 때까지 시대의 밤하늘을 성성하게 지키다 새벽 붉은 햇덩이에 손 건네주고 소리없이 소리없이 사라지느니 앞이 캄캄한 언 하늘에 시린 첫마음 빛내며 떨고 있는 바보 같은 바보 같은 사람아 눈물나게 아름다운 그대 오 새벽별이네! 眞光不輝 박노해 밤하늘에 가장 빛나는 별은 북극성도 명왕성도 아니다 인공위성이다 眞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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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명훈
지구인 13년차에 그 아이를 보았다. ‘그 여자’라고는 할 수 없는 게 그 아이도 그때는 열세 살밖에 안 됐다. ‘만났다’고도 할 수 없는데, 내가 그 아이를 본 게 그날이 처음인 것이지 우리 사이에 무슨 대화가 오갔다거나 서로 눈길이 마주쳤다거나 한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1990년 12월 18일 4시에서 5시 사이에 일어난 일이다. 그리고 그 무렵부터 기나긴 사춘기가 시작됐다. 사춘기가 정확히 언제부터 언제까지였는지 정확히 기억하는 지구인은 하나도 없겠지만, 아무튼 나는 그날 이후 3년이 넘도록, 구제받지 못할 영혼의 감옥, 짝사랑 상태에 돌입하고 말았다. 왜 그런 짓을 하느냐고 위에서 질타가 쏟아졌다. 지구인들의 상호 교류 관습 중에는 그런 식의 감정이 발생했을 때 이를 원만히 해결하기 위한 절차가 이미 마련되어 있으니 참고하라는 것이었다. 하지만 나는 그 절차를 받아들이기가 힘들었다. 일단 상대에게 물어 봐서 저쪽에서 좋다면 더 친밀한 관계가 되고 그렇지 않다면 아예 없었던
민영철
물론 아니겠지요. 천문학을 잘 아는가 아닌가가, 꼭 천문학적인 마음을 가지고 있는가 아닌가를 결정하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때로는 오히려 그 반대도 있구요. 설사 천문학은 모른다 하더라도, 천문학적인 마음을 가지고 있어야, 품위가 있을 수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보통 방송 뉴스 시간에 천문학적이라는 말은 좋은 데 쓰이지 않는 경우가 많은 것 같습니다. 그렇지만 제가 여기서 천문학적이라고 하는 것은 좋은 뜻으로 드린 말씀입니다. 좋은 의미에서의 천문학적인, 그런 우주적인 마음을 가지고 있는 분들이 실제로 많이 계시리라 생각합니다. 길에서 힘들게 일하시는 분들로부터 높은 이상을 실현하시는 분들에 이르기까지, 많은 분들이 천문학적인 마음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렇지만 천문학적인 마음과 품위, 그 두 가지가 무슨 상관이 있냐구요? 절대적인 상관이 있습니다, 제 생각에는. 혹시 “품위”라는 말을 하면, 무슨 배부른 소리냐 하실 분이 있을 것 같습니다. 하지만 배고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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