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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기욱
2010년에 대한 기억은 언제나 어린 시절 읽었던 낡은 과학 문고로부터 시작된다. 아직 글자를 띄엄띄엄 거리던 때라 자연 내 눈길은 책 속의 색 바랜 삽화에 머물러 있곤 했다. 그림에는 신호등도 없는 도로를 질서정연히 오가는 차량들과 혼탁함을 찾을 길이 없는 맑은 도심 풍경이 있었으며, 한편으로는 외국인 친구의 흐릿한 3차원 영상을 마주한 사람들이 자연스러이 대화를 나누는 모습도 담겨 있었다. 세련된 미래를 탐색하는 일은 더없이 즐거워서 나는 곧 정신없이 책에 빠져들었는데, 그런 모습을 지켜보던 아빠는 작은 웃음소리와 함께 당신의 어린 딸에게 말했다. "그림 속 모습이 신기한 모양이구나? 하지만 그건 미래가 아니라 네가 태어났던 과거를 그린 거야. 자, 여길 봐라." 아빠의 손가락이 책의 한 귀퉁이를 집었다. 세월의 상흔이 가득한 누런 종이 위에는, 과연 2010이라는 숫자가 또렷이 제 원형을 간직한 채로 남아있었다. "80년대 사람들이 상상하던 2010년의 모습이란다. 그런데 난
Crossroads
안녕하세요? 크로스로드입니다. 2009년 1월 호 서평 선정 대상 도서는 앨런 와이즈먼의 <인간없는세상> 입니다. 우수 서평을 써주신 1분을 선정하여 APCTP의 기획도서 3종(3만 9천원 상당)을 선물로 드립니다. (분량은 A4 1페이지 정도) APCTP 기획 도서 3권 안내 앱솔루트 바디 과학이 나를 부른다 얼터너티브 드림 서평은 답글로 달아주시면 됩니다. * 도서-인간없는 세상 * 지은이-앨런 와이즈먼 저/이한중 역 * 출판사-랜덤하우스코리아/자연과학특별전(기획사) * 출판년도-2007년 10월 * ISBN-13 : 9788925513614 어느 날 갑자기 인류가 사라진다면지구에선 어떤 일이 벌어질까? 의심할 여지없이 이 지구를 인류와 나눠 쓰는 대다수 생물은 (그들을 의인화하자면) 지금보다 훨씬 더 행복할 것이다. 그러나 인간이 수천 년간 만들어 놓은 이른바 '문명'은 더 행복할 그들에게 어떤 영향을 줄까? 이 책은 바로 이 질문에 답한다. 도시의 빌딩 숲은 진짜 숲으로 대
최나리
지난 12월 2일 오후 5시, 서울 광화문 코리아나호텔에서 '아태이론물리센터 네트워크의밤' 행사가 열렸다. 이번 행사는 센터의 아태과학자 네트워크 구축사업의 일환으로 매년 개최해 온 행사인 ‘올해의 과학도서 선정’ 기념식과 아태이론물리센터 기획도서 2권의 출판을 기념하는 자리였다. 아태이론물리센터 김승환 사무총장은 환영사에서, "올해로 네 번째를 맞는 과학도서 선정 행사는 그 동안 40권의 도서를 선정해 오면서 과학 꿈나무들의 꿈을 키우는 계기가 됐다” 고 자평했다. '올해의 과학도서 10권'은 아태이론물리센터가 과학대중화사업의 일환으로 과학양서를 널리 알리기 위해 해마다 센터에서 주최해 온 행사로, 1차와 2차에 걸쳐 과학계와 출판계 전문가들의 엄선을 통해 추천된 과학양서를 선정하는 행사이다. 이번 선정 작업에는 1차로 김상표 교수(군산대 물리학과), 김웅서 해양자원연구본부장(한국해양연구원), 박종오 교수(전남대 시스템공학부), 소설가 복거일, 신상진 교수(한양대 물리학과), 오
전중환
다음을 읽고 물음에 답하라. 민준이란 남자는 매주 슈퍼마켓에 들러서 냉동 통닭을 한 마리 산다. 닭을 요리하기 전에, 민준은 통닭과 성관계를 가진다. 그리고 난 다음 통닭을 요리해 먹는다. 물음: 민준의 행동은 도덕적으로 용납될 수 있을까? 대다수 사람은 이 이야기를 듣자마자 고개를 젓는다. 그리고 왜 도덕적으로 잘못된 행동인지 그 이유를 찾아내려고 애쓴다. 동물권을 침해했으니까? 통닭은 이미 죽은 상태였다. 사람들이 먹으라고 판매하는 식품을 다른 용도로 썼으니까? 민준은 성관계 후 통닭을 맛있게 먹었다. 남들에게 혹시 피해를 줄 수 있으니까? 어느 누구도 민준의 행동 때문에 손해를 입지 않았다.합당한 이유를 끝내 찾지 못한 많은 사람은 결국 선언한다. "몰라. 설명할 순 없지만, 하여튼 그건 잘못된 거야." 정상적인 성인이 취한 행동이 타인의 권리를 침해하지 않았다는 점에서 민준의 행동은 그릇되지 않다고 도덕철학자들은 말한다. 하지만, 보통 사람들에게 민준이 저지른 짓은 아무리
강양구
K 독자님, <크로스로드>를 응원하는 새해 인사 잘 받았습니다. 고맙습니다. 안타깝지만 새해가 밝았지만 사람의 얼굴은 그다지 밝지 않습니다. 새로운 시작에 설레기보다는 어두운 미래를 불안해하는 사람이 더 많은 게 사실입니다. 당장 지난해 미국에서 시작된 금융 위기가 어떻게 세계 경제를 악영향을 미칠지 알 수 없는 상황입니다. 미국, 중국을 비롯한 세계 각국의 경제지표는 낙관보다는 비관을 부추기는 게 사실입니다. 극단적인 비관론자는 양차 세계대전이 자본주의를 살린 20세기의 역사를 회고하면서, 자본주의가 위기를 극복하고자 전쟁과 같은 효과는 확실하지만 있어서는 안 될 방법을 선택할 가능성을 강하게 제기하고 있습니다. 다행히 이번 경제 위기를 해결할 과제를 우선적으로 떠맡을 미국의 새로운 대통령 버락 오바마는 ‘전쟁’ 대신 ‘녹색’을 말하고 있긴 합니다. 그러고 보면, 2009년은 녹색의 눈으로 봐도 아주 중요한 해입니다. 올해 연말 세계 각
김정호
얼마 전 ‘사라져버린 것들’에 대한 추억을 떠올리며 취재를 나갈 일이 있었다. 지금은 기억의 저편에 자리 잡고 있는 ‘헌책방’이 그곳이다. 조그만 가게를 찾아가 연세가 지긋한 주인과 인사한 나는 오랜만에 보는 헌책방을 구석구석 둘러봤다. 작은 공간 여기저기에는 오랜 시간 동안 주인의 손을 떠난 책들이 먼지를 가득 뒤집어쓴 채 빼곡히 자리하고 있었다. 지금은 쓰지 않은 옛날 참고서나 출판된 지 20년 가까이 된 소설들 사이에 서 있자니 타임머신을 타고 시간 여행을 하는 기분이었다. 마른 사람들만 들어갈 수 있을 것 같은 책 뭉치 사이로 향수에 젖어 ‘취재’라는 본분을 잊어버리고 헤집고 다니다 필자의 기억 속의 작은 부분을 차지하던 책 한 묶음을 발견했다. ‘학생과학’이라는 네 글자. 어린 시절 풀빵 냄새와 함께 겨울 밤을 하얗게 새게 하던 그 책을 여기서 발견하리라고는 생각지도 못했다. 한참을 서서 이 책을 바라보다 반가운 마음으로 오랜 친구에게다가갔다. 지금 보면 조잡한 인쇄품질과
이명현
길모퉁이 카페는 우리들의 아지트였다. 물론 노천 카페였고 탁자도 의자도 커피도 없었다. 좁은 골목길 모퉁이에 있었던 촌스러운 낡은 파란색 철대문으로 들어서는 시멘트 문턱이 제법 높았었는데, 우리들은 그곳에 이런 저런 물건들을 가져다 놓고 모여 앉아서 소꿉놀이도 하고 물건을 서로 바꿔갖기도 했었다. 딱딱한 10원짜리 삼립 크림빵과 성게 가시를 막 쳐낸 것 같이 생겼던 가지각색의 왕사탕이 단골 메뉴였다. 왕사탕을 빨다가 남겨서 친구에게 넘겨주기도 했다. 크림빵은 늘 몇 조각으로 쪼개서 나눠 먹곤 했다. 민트향 껌도 자주 등장했는데, 나는 사실 껌 자체보다도 껌을 싸고 있던 겉종이에 더 관심이 있었다. 나눔의 시간이 되면 늘 껌을 포기하고 종이에 집착했었다. 시옷자처럼 생긴 꺽쇠 문양이 너무 멋졌기 때문이었다. 물론 다툼이라도 벌어졌던 날에는 내편 네편으로 갈라서서 크림빵도 왕사탕도 민트향 껌도 같은 편끼리만 나눠 먹었다. 그럴 때면 나는 늘 하늘이 편이 되고 싶었다. 싸움의 원인이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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