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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형석
듣는 사람의 기분 같은 것은 털끝만큼도 고려하지 않는 경보음이 요란하게 울렸다. 당신은 규격외품입니다, 라고 외치는 것 같은 그 소리가 퍼지기 무섭게 사람들의 시선이 내 쪽으로 모인다. 얼굴에 피가 몰리는 것을 느끼면서도 어머, 어쩌면 좋아, 그런 말밖에 할 수 없었다. 일찌감치 옆줄로 빠져 있을 것을, 후배 은영이와 이야기를 하느라 정신을 놓고 있던 것이 실수였다. 경고음이 나자 저쪽에서 검사관이 다가와 내게 말을 했지만 축약어를 잔뜩 사용하는 2세대 영어라 절반도 이해할 수 없었던 난 어쩔 줄 모르고 우물쭈물했을 뿐이다. “선배, 손가락을 다시 대래요.” 뒤에서 은영이가 속삭이는 소리가 그렇게 고마울 수 없었다. 다른 동료들은 이미 검사대를 빠져나가 10미터는 떨어진 곳에서 일행이 아닌 척하는 중이었고, 가장 뒤에 있던 우리 둘만 검사대에 걸려 있었다. 매정한 사람들. 계속 같은 말을 반복하는 검사관에게 고개를 끄덕이고, 손가락을 다시 검사대에 대었다. 손가락 끝에 따끔한 느낌
강양구
아시아태평양이론물리센터(APCTP)는 <프레시안>과 공동으로 2008년 특별한 기획을 마련한다. 대만, 베트남, 중국, 일본, 필리핀 등 아시아 각국의 과학자를 직접 만나 그들의 생생한 육성을 통해서 이른바 ‘아시아에서 과학자로 살아가는 게 어떤 의미가 있는지’를 따져보기로 한 것. 이 기획을 통해 독자들은 오랫동안 긴밀하게 교류해왔고, 앞으로도 어떤 식으로든 공동체를 꾸려갈 수밖에 없는 아시아 각국의 과학 현실을 직접 살피고, 현장 과학자의 생생한 고민을 들을 수 있을 것이다. 이 기획의 첫 주인공은 일본의 세계적 물리학자 아리마 아키토(有馬朗人·78) 박사다. 아리마 박사는 말 그대로 일본의 ‘대표’ 과학자다. 그는 24세 때인 1954년 ‘원자핵의 자성(磁性)’을 규명한 논문으로 전 세계 물리학계의 주목을 받으며 학계에 등장했다. 그 후 37세 때인 1967년, 원자의 구조를 설명하는 새로운 모델을 제시하면서 세계적인 물리학자로 확실히 자리매김했다. 그의 이런 업적은 모두 교
자유로운 연구 분위기는 훌륭한 업적으로 이어져 프레시안 : 자, 이제 화제를 바꿔볼까요. 선생님은 공히 일본을 대표하는 성공한 과학자입니다. 자신의 삶을 회고해볼 때, 과학자로서 정체성을 형성하는 특별한 경험을 한 가장 결정적인 시기는 언제였습니까? 아리마 : 과학자가 되고 싶다, 이런 꿈을 처음 품은 것은 초등학교 때였던 것 같아요. 모터, 라디오를 직접 만들면서 과학자가 되고 싶다고 생각을 했지요. 그렇게 꿈을 키우다 물리학과를 들어가게 됐지요. 그러나 아무래도 본격적인 물리학자의 길을 걷기로 결심한 것은 학부 4학년 때였습니다. 일본에서는 학부 4학년이 되면 특정 실험실에 배치가 돼 졸업 연구를 하게 됩니다. 내가 학부를 졸업하던 1950년대 초에도 그랬고, 그 전통은 지금까지 계속되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 때 일본은 패전 직후였기 때문에, 당시에는 원자핵물리학을 전문적으로 가르칠 수 있는 선생님이 한 명도 없었습니다. 그래서 독학으로 공부해야 했지요. 그때 독학으로 공부하는
2008년 아시아태평양이론물리센터(APCTP)는 특별한 기획을 마련했다. 대만, 몽골, 베트남, 일본, 중국, 필리핀 등 아시아 각국을 직접 방문해 현지 과학자의 목소리를 직접 들어보기로 한 것이다. 그들이 갖고 있는 여러 가지 고민과 그것을 극복하려는 그들의 다양한 시도를 갈무리하다보면 자연스럽게 아시아 과학자 공동의 미래를 모색할 수 있으리라. 결코 간단치 않은 이 기획을 위해서 지난 1월 4박5일간 일본의 기초과학을 선도하는 이화학연구소(RIKEN)를 다녀왔다. 아주 짧은 일정이었지만, 다행히 팔순에 가까운 원로 과학자부터 이제 막 박사 학위를 받은 소장 과학자까지 아홉 사람의 다양한 과학자를 인터뷰했다. 일본에서 만난 과학자 중에는 이번호에 소개한 아리마 아키토 박사처럼 최고의 과학 업적을 남긴 이들이 상당수였다. 그러나 오히려 기억에 남는 이들은 아직 그런 업적을 쌓지는 않았지만 그들 못지않은 고민을 안고 있는 과학자들이었다. 그중에는 비정규직으로 채용된 이들도 있었고,
최종덕
1. 한 청소년의 이야기 한 젊은이가 경찰서에 강도상해 피의자로 잡혀 들어와 조서를 받고 있다. 그의 이름은 누현이며 나이는 17세다. 경찰은 늘 있어왔던 강도 사건을 처리하듯이 그를 다루었다. 그의 친척들조차 경찰서에 잡혀간 그를 외면한 상태다. 다니던 학교의 담임선생님에게 연락을 해봤지만 3개월 전에 이미 퇴학을 하여 학교를 그만둔 터라 관심 없다는 답변만을 들을 수 있었다. 비난의 칼을 휘두르는 매스컴과 경찰은 마치 태어날 때부터 범죄인으로 출생한 것처럼 그 청소년을 취급할 뿐이다. 술집에 갈 돈이 당장 궁해서 그런 짓을 했느냐 혹은 편의점 주인에게 앙갚음을 하려고 했느냐 등등, 형사는 그에게 강도짓을 하게 된 직접적인 원인을 캐물을 뿐이다. 주변 사람들은 17살 그 젊은이가 오늘에 이르기까지 불운했던 성장 배경에 대하여는 관심이 없다. 이런 상황을 과연 청소년 한 개인의 책임으로만 돌릴 수 있을까? 우리가 그를 진정으로 이해하고자 한다면 문제가 된 강도 행위 이전에 오늘의
조아라
현재 나는 ‘한국의 여성 과학자들’을 연구 주제로 논문을 준비 중이다. 이를 위해 해방 전후 한국에 여성 과학자가 거의 전무했던 시기에 과학을 공부했던 이들부터 현재 과학연구 현장에서 활동하고 있는 여성 과학자들을 만나 그들의 유년 시절, 과학자가 된 동기와 과정, 전문 연구자가 된 이후의 생활 등에 대한 이야기를 담고 있다. 한국에서 여성 과학자들에 대한 연구가 본격적으로 시작된 것이 오래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그 수도 남성 과학자들에 비해 적기 때문에 이에 관한 분석이 그리 많지는 않다. 비단 학술연구에서만이 아니다. 분야를 막론하고 ‘21세기’라는 말로 시작되는 논의에서는 그 뒤에 습관처럼 과학기술을 언급하면서도 정작 과학기술을 연구하는 사람들에 대해서는 상대적으로 관심이 적은 것이 현실이다. 더군다나 크게 눈에 띄지도 않는 여성 과학자라니 관심이 적은 것은 어찌 보면 지극히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한국사회의 ‘여성’이자 여성 과학자들에 대해 공부한 나 또한 불과 몇 년 전
김재완
공부하고 때에 맞추어 실행하니 그 또한 기쁘지 아니한가? 뜻을 같이하는 자 먼 곳으로부터 찾아오니 그 또한 즐겁지 아니한가? 사람들이 알아주지 않아도 거리끼지 않으니 그런 사람이 군자가 아니겠는가? 공자의 어록인 《논어(論語)》는 이와 같은 문장으로 시작한다. 공자(孔子)는 일찍이 천지만물의 끊임없는 변화를 읊은 《역경(易經)》을 공부하였는데, 워낙 열심히 공부하여 책을 묶은 끈이 서른 번이 넘게 끊어졌다고 한다. 《역경》은 점성술(占星術)에 관한 책이 아니라 만물(萬物) 역동의 원리를 이야기한 책이다 역경은 고대 그리스의 물리나 철학과 비슷한, 동아시아의 과학과 철학이다. 공자는 그 《역경》을 세상만물의 원리로 이해하는 관점으로 세상을 바라보았다. 다시 말해, 공자에게는 공부하는 것이 과학이었다. 미래를 예측하는 데에 과학이 사용되지만, 과학이 그 한도를 벗어나 사용되면 그것은 점성술이 된다. 많은 아시아 국가들이 유교의 이상에 지배를 받았다. 유교가 권위주의적 성격 때문에 비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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