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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림(silverforest)
“숲 너머에 누가 사는지 혹시 압니까? 멀리서 골조가 보이던데.” 샤워 후 뜨거운 밀크티를 홀짝이자 온몸이 다 노곤해졌다. 연희는 무심한 표정으로 고개 저었다. “난 몰라요. 검색해보든지요.” 검색한다고 나올 것 같지는 않은데. “뭔가 있더라도 아무도 살지 않을 거예요. 거긴 이미 오래전에 버려진 구시가지인걸요. 왜요?” “아무것도 아닙니다.” 어떤 담대한 꼬맹이가-어른일 리는 없겠지-그 숲을 쏘다니는 걸까? 플랜의 위험에 대해 충분히 알려지지 않은 걸까? “직업 정신 발휘 중인 거예요? 근방에서 플랜이 발견된 적은 한 번도 없어요. 집중 분포 지역과도 꽤 떨어져 있구요. 여기 숲은 별로 깊지가 않아서 자생할 수도 없을걸요?” 어깨 너머로 화면에 뜬 지도를 보고 연희가 말했다. 그녀는 아마 최근에 정원석을 넘어가 본 적이 없는 모양이다. 그곳은 이상 기후로 인해 밀림이라고 해도 어울릴 정도가 되어 있었다. 작년 연말 데이터만 해도 숲의 너비는 무척 미미했다. 이곳을 기준으로 했다면
강양구
올해 나온 과학 책 중에서 과학자의 눈길을 끈 것은 무엇일까? 과학계 안팎의 내로라하는 ‘책벌레’들이 과학 책 10권을 선정해 발표했다. 아시아태평양이론물리센터(APCTPㆍ소장 피터 풀데)는 14일 ‘올해의 과학도서 10권’을 발표했다. 이날 선정된 책은 《마음은 어떻게 작동하는가》(소소 펴냄), 《소수의 음악》(승산 펴냄), 《스트링 코스모스》(지호 펴냄), 《스피노자의 뇌》(사이언스북스 펴냄), 《진실을 배반한 과학자들》(미래M&B 펴냄), 《인간 없는 세상》(랜덤하우스 펴냄) 등이다. 두 차례에 걸쳐 진행된 이번 선정에는 곽영직 수원대 교수, 국형태 경원대 교수, 김상표 군산대 교수, 김영태 아주대 교수, 박종오 전남대 교수, 이덕환 서강대 교수, 이명현 연세대 교수 등 각 분야에 포진한 과학자들이 직접 참여했다. 최종 선정은 정재승 한국과학기술원(KAIST) 교수, 장대익 서울대 교수, 도서평론가 이권우 씨 등이 맡았다. 정재승 교수는 “대중성보다는 일반인에게 과학과 관련한
이상상
포항시 주최, 아·태이론물리센터(APCTP, 소장 피터 풀데) 주관으로 지역의 과학학습에 대한 관심을 높이기 위해 지난해 12월 포스텍(POSTECH)이 위치한 지곡연구단지 내 지능로봇연구소 대강당에서 포항시 과학교사 120명을 대상으로 과학커뮤니케이션 포럼과 강연을 개최하였다. 이날 행사는 지역의 초·중등 과학교사들을 대상으로 오전에는 포항시의 과학 인프라 소개에 이어 한국과학커뮤니케이션 연구소장의 과학강연 및 과학마술에 대한 특별강연이 있었으며 오후부터는 지능로봇연구소와 가속기연구소 등 첨단과학시설 투어로 진행되었다. 이번 포럼의 주된 목적은 미래 과학자를 꿈꾸는 청소년들을 지도하는 교사들에게 지역의 첨단 과학시설을 소개하고 첨단 과학도시 포항의 비전을 이해시켜 과학교육의 열의를 높이고, 최첨단 과학시설 인프라를 갖추고 있는 포항시가 한국의 실리콘 밸리로 거듭나기 위해서는 일선 과학 선생님들의 역할과 관심이 매우 중요하다는 취지 때문이었다. 아·태이론물리센터 소개(APCTP,
김명진
대충 ‘20세기 과학기술의 사회사’쯤으로 이름 붙일 만한 내용의 강의를 이곳저곳에서 해온 지도 여러 해가 되었다. 학부 교양과목인지라 과목 명칭은 조금씩 달랐고 그에 맞춰 약간씩 내용을 바꾸기도 했지만, 기본적인 틀은 대체로 비슷했다. 주된 강의 주제는 원자폭탄과 군비 경쟁, 컴퓨터와 인터넷, 전 지구적 환경문제, 분자생물학과 생명공학의 쟁점들, 여성 과학자 등이었는데, 대략 3년 전쯤부터 우주개발과 관련된 내용을 새로운 강의 주제로 끼워 넣기 시작했다. 20세기를 주름잡은 정부 주도 거대과학기술의 사례이자 대중의 상상력을 사로잡았던 기술적 성취의 한 사례로서 흥미 있는 얘깃거리가 될 거 같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주제로 처음 강의를 했을 때 조금 당황스런(?) 경험이 있었다. 반쯤은 장난으로 인간이 달에 마지막으로 간 때가 언제쯤일 것 같냐는 질문을 던졌는데, 학생들의 답변이 1970년대부터 1980년대, 1990년대에 이르기까지 그야말로 제각각이었던 것이다. 예상보다는 우주개
정영목
간혹 흥미로운 번역이 눈에 띌 때가 있다. “이웃을 네 몸같이 사랑하라”는 유명한 성경 구절도 그런 예다. 왜 “네 몸같이”라고 번역을 했을까? 물론 영어 번역에는 “as yourself”로 나와 있다. “몸”과 “self”가 대응하고 있는 셈이다. 원문도 모르는데다가 기독교 신자도 아니니 성경의 원래 의도가 무엇이었는지는 알 수 없다. 따라서 어느 쪽 번역이 원문에 더 가까운지도 모르겠다. 어쨌든 ‘몸’이라는 말 때문에 이 구절이 그야말로 머리가 아니라 몸에 와 닿는 느낌을 준다. 이웃 사랑이 추상적인 명제가 아니라, 마치 본능적인 수준에서 이루어져야 할 끈끈한 일처럼 느껴지기까지 한다. 혹시 이 구절의 번역자는 몸과 이웃 사랑을 연결시킴으로써 몸이 가장 본능적인 애착의 출발점인 동시에 서로에 대한 존중, 나아가서 인간 존엄의 뿌리임을 말해주려 했던 것은 아닐까? 갑자기 이런 생각을 하게 된 것은 종두법으로 유명한 에드워드 제너가 첫 우두 실험을 한 대상이 아들이 아니었다는 사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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