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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림(silverforest)
정신을 차려 보니 온몸에 ‘플랜(plant)’의 뿌리 덩굴이 감겨 있었다. 시꺼멓고 축축한 데다 끈끈하기까지 해서 그냥도 떼어내기가 번거로운데 하나를 떼면 두 개가 더 얽혀 들어서 어설피 건드렸다간 숨도 쉴 수 없게 될 게 분명했다. 명색이 플랜 헌터(Plant hunter)인데 이런 꼴이라니 어이가 없다. 대체 왜 이렇게 된 걸까? 활짝 핀 꽃잎에서 피어오르는 몽환향 때문에 정신을 차리기가 무척 힘들다. 뇌를 꺼내 버터에 버무린 다음 싸구려 술에 푹 절여 다시 되는 대로 쑤셔 넣은 것처럼 엉망진창이었다. 그래도 나는 생각해야만 했다. 안개처럼 부연 밤을 청명하게 흩트리는 웃음소리가 귓전을 때렸다. 소름끼치게 듣기 좋은 플랜의 웃음소리였다. 덕분에 흐느적거리며 녹아내리던 머릿속이 굳어지며, 뒤엉켜 있던 기억의 실타래가 느리게 풀려나가기 시작했다. 등에 미지근한 수액이 흐르는 보드라운 플랜의 팔이 느껴졌다. 예쁘고 하얀 작은 발은 벌거벗은 채로 내 허벅지에 감겨 있었다. 쓸모없는,
Jan Zaanen
I want to tell you a very strange story, having to do with very modern physics. It is very fresh, and it might well be that it will prove to be a red herring. However, I am a believer inthe hedonist method of scientific enquirie, and this is fun. In fact, it is the best fun I have encountered in physics in a long time. Physics is that part of science where mathematics makes the difference. Accordingly, the best fun in physics is invariably related to the magical powers of mathematics to uncover
Se-Jung Oh
Condensed-matter physics is a fascinating field in that it tries to describe physical properties of macroscopic objects such as metals or insulators as we encounter them in daily lives, but the basic understanding requires microscopic descriptions such as quantum mechanics in the atomic or molecular level. Even more fascinating is the very fact that we understand them at all --- ordinary macroscopic objects are composed of atoms of the order of Avogadro’s Number (~ 10 23), and how can we unders
방윤규
20세기의 물리학은 매우 상반되는 두 가지 면에서 모두 성공을 거두어 명실 공히 과학 또는 학문의 왕의 자리에 올랐다. 그 두 가지 면이란 첫째, 인간이 생각할 수 있는 가장 궁극적이고 원천적인 한계까지 자연현상의 원리를 탐구하였다. 둘째, 이러한 탐구의 방법론으로서 수학적 엄밀성과 실험 및 관측에 의한 검증을 통하여 획득한 지식의 보편타당성을 확립하였다. 그 결과 인간 역사에서 그 이전에 경험하지 못한 어마어마하게 놀랍고도 일상적인 상식을 철저히 붕괴시키는 자연의 진리를 발견하였다. 양자역학과 상대론으로 대표되는 이러한 놀라운 성과는 단지 인간의 호기심과 지적 열정을 만족시킨 것뿐만이 아니라, 20세기의 정치, 경제, 문화를 송두리째 바꿔놓은 다양한 기술적 응용의 토대를 마련하였다. 대표적인 예를 들자면, 원자력 에너지, 원자폭탄, 반도체, 컴퓨터, 레이저 기술, 인터넷 등은 이러한 물리학 연구의 몇 가지 파생상품에 지나지 않는다. 이번 호에 실리는 두 편의
김병익
지난봄 내게 디카 하나가 생겼다. ‘생겼다’란 말 그대로, 나는 그 디카를 돈 주고 산 것도 아니고 굳이 필요해서 구하려고 애쓴 것도 아닌데 참한 국산 디지털 카메라 하나가 내 손안에 들어온 것이다. 외국 지사에 나가 있는 사위가 회사 창립 기념일에 같은 계열사 제품인 디카를 선물로 받았는데 딸네는 두 개까지 소용이 없다며 내게 인심을 쓴 것이었다. 먼저 그걸 보내도 되겠느냐는 지레 전갈을 받았을 때 나는 좀 떨떠름해했다. 딸은 내게 그리 쓸모 있을 것 같지 않을 것을 주고서 선심을 쓴 듯 생색을 내기도 하겠지만, 무엇보다 내가 디카를 가지고서는 오히려 불편해할 것이 어렴풋하나마 예상되었기 때문이었다. 그럼에도 그것을 받은 것은 거저 주겠다는 것을 거절하는 것도 마땅한 인심이 아니기도 하지만, 안 쓰더라도 없는 것보다는 있는 것이 당연히 나을 것이겠고, 무엇보다 나 스스로도 디카의 용법을 알아두어야겠다고 생각한 탓이었다. 한창 때 친구들과 국내외를 함께 여행하면 으레 사진들을 찍어
이성렬
1. 몇 년 전, 어느 작가의 흔적을 찾아 일본 중부 지방을 여행한 적이 있었다. 온천으로 유명한 소도시에는 마침 작가의 이름을 딴 박물관이 있었는데, 건물 이층 한구석에 그가 살았음직한 방의 모형이 실물 크기로 전시되어 있었다. 화로, 담뱃대, 가정상비약…… 등등의 고풍스런 일용잡화들이 전시된 그 방 앞에서 나는 작가의 생생한 숨결을 느끼며 잠시 그가 쓴 소설의 한 장면을 떠올렸다. 그런데 잠시 후 안내문을 자세히 읽어 보니, 그 방은 작가의 삶과 아무런 관련이 없는, 그 지방의 전형적인 중세 가옥을 재현한 것이었다. 불과 몇 분 동안 내 안에 ‘존재’했던 감동, 그러나 흔적도 없이 증발해버린 감각의 그림자. 그것은 내 안에 실재했던 것일까, 아니면 단지 하나의 ‘환상’으로 치부해버릴 순간적인 감각의 왜곡이었을까? 그 기억은 내게 오랫동안 세계의 실상에 대한 진지한 성찰을 하게 하였고, 세계를 이해한다는 것이 과연 무엇인지에 대해 깊이 생각할 수 있도록 한 계기가 되었다. 어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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