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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태운
Prologue. 에이프릴, 내 딸아. 아빠의 마지막 말을 이렇게 영상으로 전하는 것을 용서해다오. 이걸 볼 때쯤이면 너는 아마 대강의 이야기는 전해 들었을 거다. 아빠의 동료 형사들이 아무것도 모르는 너를 붙잡고 괴롭혔을지도 모르겠구나. 하지만 그들은 내가 어째서 이런 결정을 내릴 수밖에 없었는지는 끝내 알 수 없을 거야. 사실 나는 누군가 그 사정을 알아주기를 바라는 건 아니란다. 어쩌면 이대로 진실이 묻혀지는 것이 더 나을지도 모르지. 하지만 너만큼은 알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아빠 때문에 네가 흘릴 눈물을 생각하면 가슴이 찢어지는 것 같지만 딸아, 나는 그럴 수밖에 없었단다. 사랑하는 에이프릴. 지금부터 내가 남기는 말을 잘 듣거라. 네 아빠가 이런 결단을 내린 이유는 너를 내 목숨보다 사랑하기 때문이란다. 1. “뇌사인데 뇌사가 아니라니?” 뉴욕경시청 의문사 전담반의 데커드 파르손은 보고서를 들고 있던 검시관의 콧잔등을 노려보며 윽박질렀다. 검시관 핀셀은 경찰수첩보다 수배전
고중숙
허전함과 아쉬움 자료에 따라 다르기는 하지만 인류가 지구상에 나타난 지는 적어도 몇백만 년이 넘었다고 한다. 그런데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은 이 세월 동안 인류는 이른바‘문명’ 또는‘문화’라고 부를 만한 성과를 일궈냈다는 점에서 다른 생물들과 본질적 차이를 보인다. 물론 생물은 아무리 단순한 것이라도 그 자체로 경이로운 현상이다. 그러나 이전의 훨씬 엄청난 세월을 보낸 생물들이 오직‘살기 위한 삶’을 살았던 데 반해 인간은 뭔가 ‘의미 있는 삶’을 꽃피웠다는 점이 크게 다르다. 이 의미는 여러 면에서 찾을 수 있는데, 그 가운데서도 ‘과학문명’이 전해주는 것은 각별하다. 인류가 보낸 세월의 끝자락에서 미래로 이어지고 있는 이 시대가 바로 과학문명의 시대이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서 우리가 과학을 통해 영위하고 있는 삶은 최첨단의 것이며, 이 때문에 현대의 과학문명은 역사상 가장 깊고도 넓은 의미들을 품고 있다고 말할 수 있다. 하지만 오늘날 우리 세대가 이처럼 풍성한 의미를 널리 공
정희모
2004년 겨울 나는 학술진흥재단의 도움을 받아 미국 대학의 글쓰기 교육시스템을 살펴보기 위해 MIT에 간 적이 있다. 보스턴의 날씨는 추웠지만 거기서 보고 느낀 것은 대단했다. MIT는 이공계 대학임에도 커뮤니케이션 교육에 많은 시간과 예산을 투자하고 있었다. 교육 시스템도 매우 치밀하고 정교한 것도 놀라웠다. MIT는 토론과 쓰기 교육에 많은 것을 투자하고 있었다. 기본적으로 글쓰기 관련 강좌를 졸업할 때까지 네 과목을 들어야 한다. 또 글쓰기와 토론이 포함된 소수 정원의 강좌 HASS-D를 세 개 이상 들어야 한다. 졸업 이수 학점이 우리보다 훨씬 적은 MIT 학생들이 토론과 글쓰기에 이렇게 많은 시간을 투자하기란 쉽지 않은 일이다. 이는 MIT가 얼마나 커뮤니케이션 교육을 중시하는지 알 수 있게 해주는 대목이다. 나는 마침 MIT에서 만난 한국 유학생의 도움을 받아 전자공학과에서 개설한 한 강좌의 수업 과정을 조사해볼 수 있었다. 그 강좌는 ‘Computer System E
이권우
사회 전반에 걸쳐 의사소통 능력이 중요시되고 있다. 과거의 권위주의 시대와는 사뭇 다른, 합리적이며 논리적인 의사결정 구조가 자리 잡고 있는 덕으로 보인다. 이 같은 의사소통 능력은 과학 분야에서도 강조되고 있다. 과학의 성과가 과학자들의 울타리 안에서만 논의되는 것이 아니라, 시민들도 이해하고 참여할 수 있는 계기를 만들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진 탓이다. 더욱이 전공 분야가 더 세밀하게 나누어지면서 과학자들 사이의 의사소통에 대한 문제의식도 커졌다. 최근 《사이언스》지가 실험적으로 연구 논문과는 별개로 ‘저자의 요약문’을 따로 싣기로 한 것도 같은 이유다.이에, 이번 크로스로드 특집은 과학 커뮤니케이션으로 잡았다. 어떻게 하면 과학 분야의 연구 성과를 전공자는 물론 일반시민들도 이해할 수 있도록 이끌 것인지를 살펴본 것이다. 대중적인 과학 저술로 이름이 난 고중숙 교수는 <과학지식 전달의 아홉 원칙>에서 전문가들에게 유용한 귀띔을 해주고 있다. 각별히 과학에 대한 태도
김용규
1. 홈스는 느긋하게 안락의자에 몸을 묻으며 담배 연기로 굵고 푸른 동그라미를 연속해서 만들어 보였다. 그가 말했다. “예를 들면 나는 관찰을 통해 오늘 아침 자네가 위그모어(Wigmore)가에 있는 우체국에 다녀왔다는 사실을 알았네. 그리고 추론을 통해 자네가 전보를 쳤다는 것을 알게 됐지.” “둘 다 맞았네. 하지만 도대체 어떻게 그것을 알아냈는지 모르겠군.” 내가 말했다. 홈스는 내가 놀라는 것을 보고 쿡쿡 웃으며 대답했다. “그건 아주 간단하지. 정말 우스울 정도로 간단해서 설명하는 게 불필요하다고 느낄 정도라네. … 나는 자네의 발등에 황토가 묻어 있는 걸 관찰을 통해 알았네. 위그모어가 우체국 건너편에는 도로공사를 하느라 길을 파헤쳐놓아서 흙이 드러나 있지. 그 흙을 밟지 않고 우체국에 들어가기는 어려워. 그리고 그 유난히 붉은 황토는 내가 알기로는 이 근방에서 거기 말고는 없네.” “내가 전보를 쳤다는 사실은 어떻게 연역했지?” “나는 자네가 편지를 쓰지 않았다는 것을
이재열
눈은 사람의 마음을 표현한다고 모두가 말한다. 상대방의 눈을 바로 보지 못하는 사람들은 무엇에 쫓기는 듯한 불안한 마음이 있기 때문이다. 누구나 한번쯤은 이러한 모습을 경험했을 것이다. 강의하는 도중 앞에 앉은 학생들의 눈을 바라보면 많은 이야기를 들을 수 있다. 잃어버린 보석을 찾으려는 듯이 정성을 다해 진리를 좇는 학생도 있고, 어쩌다 눈길이 마주치고서 놀라는 학생도 있으며, 눈을 마주치는 것이 부담스러운지 슬며시 피하는 학생도 있다. 학생들의 반짝이는 눈동자 속에 감추어진 여러 가지 이야기를 그려보는 것은 매우 흥미로운 일이다. 티끌 하나 없이 맑은 어린아이의 눈을 바라보고 있노라면 그 속으로 스르르 빠져들 것만 같다. 티 없이 맑고 깨끗한 눈동자는 마치 거울처럼 반짝이는 호수와 같다는 생각도 든다. 더욱이 해맑은 웃음을 띠고 있는 어린아이의 반짝이는 눈망울은, 그 눈을 바라보는 사람을 또 다른 세계로 이끈다. 그래서인지 아직 말도 못하는 어린아이를 볼 때마다 사람들은 자신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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