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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자
그곳은 정부 청사라고 부르기엔 너무나도 작고 초라했으며 만남이 이루어진 먼지 쌓인 남루한 집무실의 모습이 그들이 처한 상황을 여실히 보여주고 있는 듯했다. 인터뷰를 시작하기 직전까지만 해도 기사를 이런 문장으로 시작하려고 생각하고 있었다. 보기만 해도 불편할 듯한, 바닥에 끌리는 헝겊 치마를 입은 초라한 노인. 지구 임시정부의 주석 양첸 케촉의 첫인상을 극복하기에도 적잖은 시간이 걸릴 것만 같았다. 처음 만난 그에게 나는 그만 주석께선 사무실에 계시냐고 물었던 것이다. 나중에 무안해하며 사과하는 내게 거듭 손을 내저으며 괜찮다고 말했다. “원래 우리 직원이 마중을 나오기로 했는데 마침 일이 있어서 자리를 비웠습니다. 제가 안내를 해드릴 테니 어서들 들어오세요.” 우리는 그의 안내를 받으며 임시정부 청사를 둘러보았다. 말이 청사지 그저 일층을 전시관 비슷하게 꾸며놓은 사 층짜리 허름한 건물에 불과했다. 일을 도와주는 두 사람은 근처에 있는 집에서 살면서 출퇴근을 한다고 하니 이 건물
박상준(朴相俊)
들어가며 우리나라에서 SF에 대한 선입견은 대체로 세 가지 모습으로 나타난다. 첫째는 아이들이나 보는 유치한 대중소설이라는 것이고, 두 번째는 어렵고 복잡한 과학 이론을 알아야만 이해할 수 있는, 일부 소수 독자들의 지적 유희라는 것이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둘 다 옳다고 할 수 없다. SF에는 통속적인 오락 소설들도 많지만 뛰어난 예술성과 문학성을 공인받은 걸작들도 적지 않으며, 이런 점은 주류문학(mainstream literature)에서도 마찬가지다. 그리고 SF에 등장하는 대부분의 과학 이론들은 중학생 정도의 과학 상식만 있으면 누구나 이해할 수 있는 수준이다. 세 번째 선입견은 최근에 영화 <디 워(D-War)>로 인해 생겨난 것인데, SF는 화려한 볼거리만 있으면 이야기가 허술해도 상관없다는 생각이다. 다시 말해서 아이디어가 뛰어나면 스토리 구조는 탄탄하지 않아도 좋다는 얘기가 되지만, 이는 SF가 기본적으로 문학적 창작물임을 간과하는 잘못된 생각이다. 흔히 과학계몽소설
구광본
내 주위 사람 가운데 새로운 발명이나 새로운 발견, 그리고 믿거나 말거나 식으로 유포되는 비행접시와 외계인에 대한 이야기에 가장 많은 관심을 가지고 있는 사람은 누구인가 하면 초등학교 4학년생인 아들이다. 집에서 구독하는 어린이 신문과 학교 도서관의 책들은 그런 정보를 어른들 세계의 그것보다 훨씬 눈에 잘 띄도록 배치해 놓는 모양이다. 아이들의 관심사를 꿰뚫어보고 있는 그곳 어른들은 그럼 어떨까? 그들도 내 주위 사람들과 크게 다르지는 않을 듯하다. 아이들의 관심이 한때의 현상, 그러니 시간이 흐르면 다른 곳으로 돌려질 관심이라고 받아들이고 있지 않을까 한다. 일반적으로 봐서 분명히 그렇다. 우리 집 아이도 언제인가부터 새로운 발명과 새로운 발견을 알리는 신문 기사를 슬쩍 흘려 읽거나 아예 건너뛰게 될 것이다. 그리고 더 이상 비행접시와 외계인에 대해서는 진지하게 묻지 않을 것이다. 책을 뒤적여 탐구해보려고 하지도 않을 것이다. 대신 또래들 사이에 인기 있는 연예인이나 스포츠 스타
박상준(朴商準)
SF를 전혀 읽어보지 않은 사람은 아마 없을 것이다. 그러나 SF에 우호적인 생각을 갖고 즐겨 읽으면서 그 문학적 가치를 인정하는 사람이 많지 않은 것 또한 엄연한 현실이다. 사정이 이렇게 된 데는, 올해로 100년을 넘기는 한국 SF 역사 내내 지워지지 않았던 부정적인 인식, 곧 SF를 공상적인 소설로 규정하고 기껏해야 아동용 독서물로 치부하던 태도가 깔려 있다. 그 결과로 SF 팬덤의 열광과 일반 독자의 무관심이 병존하게 된 것이 사실이다. 읽는 즐거움을 주고 미래에 대한 꿈과 인간과 세계에 대한 이해를 증진시키는 데 기여하는 SF의 가치를 생각할 때 이러한 현상은 우리를 안타깝게 한다. 전반적으로 볼 때 한국 SF가 해쳐나가야 할 상황은 순탄하지 않다. 그러나 우리는 미래를 밝게 본다. 여전히 미흡하긴 해도 SF 작가층이 두터워지고 있는 것이 사실이고, 가장 중요한 물적 토대에 해당하는 발표 지면도 늘고 있다. 이 위에서 한국식 SF라 할 만한 작품들이 발표되고 있어 우리를
김동광
문학은 오랜 비평(批評)의 역사를 가지고 있다. 좋은 비평은 작가에게 자신의 창작물을 타인의 눈으로 볼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할 뿐 아니라, 문학을 애호하는 독자들에게도 작품에 대한 시야를 넓히고 그 속에 들어 있는 여러 가지 의미와 메시지들을 해석할 수 있는 다양한 관점을 제공한다. 둘은 매우 독특한 관계를 가진다. 우선 창작이 없으면 비평은 존재할 수 없다. 반면 비평은 작품 자체에 대해서뿐 아니라 그 작품의 사회문화적 배경과 그 속에 배태된 역사성과 같은 거시적인 맥락을 짚어준다. 따라서 창작도 비평 없이는 온전히 그 존재의의를 확인받지 못한다. 더구나 비평은 작가와 그의 작품을 읽는 독자들을 연결해주는 일종의 소통 구조 역할을 한다. 어떤 면에서 비평이라는 작업은 가장 엄밀한 독서 행위이며, 비평가는 주요한 독자층의 하나다. 창작 없는 비평이 있을 수 없듯이 독자 없는 창작도 있을 수 없다. 그런 면에서 ‘창작과 비평’은 같은 이름의 오래된 잡지도 있듯이 서로 떼려야 뗄 수
최재봉
종말에 대해 상상하는 것은 두렵고도 매혹적인 일이다. 종말이란 물론 경험은커녕 생각조차 하기 싫은 끔찍한 사태임이 분명하지만, 인간에게는 공포의 대상에 끌리는 알 수 없는 충동 또한 엄연히 있는 것. 종말에 관한 상상은 사실상 인류의 역사와 궤를 같이해왔다고 해도 좋을 것이다. 인간을 다른 동물과 구별하는 유력한 잣대의 하나로 종교를 들 수 있을 텐데, 종교야말로 대표적인 종말 이야기가 아니겠는가. 그렇다면 종말에 관한 상상은 인간에 고유한 유적 특질이라 할 수도 있겠다. 과학의 발달이 초래할 인류의 가깝거나 먼 미래를 상상하는 에스에프 소설에서 종말은 유력한 미래상의 하나로서 종종 등장하곤 한다. 소설로서 함량미달이긴 하지만 프랑스 작가 베르나르 베르베르(Bernard Werber)의《파피용(Papillon)》도 지구의 종말과 그에 따른 우주 개척을 소재로 삼았다. 과학이 인간의 삶을 갈수록 편리하게 만드는 것은 사실이지만, 특히 핵무기와 같은 군사 기술의 과도한 발달이 인류와
이은희
십 대 시절, 나는 틈만 나면 나만의 비밀 노트에 무언가를 끼적거리는 버릇이 있었다. 누구에게 보여주려고 쓰는 것도, 무언가를 얻기 위한 일도 아니었지만 입시 준비에 바쁜 고교 시절에도 가끔씩 비밀 노트와 연필을 들고 도서관 구석으로 숨어들곤 했을 정도로 그 일에 빠져들곤 했었다. 한동안 까맣게 잊고 있던 비밀 노트를 오랜만에 친정에 들렀다가 발견했다. 결혼 전에 쓰던 물건들을 넣어둔 잡동사니 상자에서 발견한 노트는 누렇게 변하고 군데군데 지워져―여담이지만 난 글을 쓸 때 항상 연필만 고집했었다. 볼펜은 너무 쉽게 미끄러지는 것이 오히려 손에서 겉돌아서 싫었지만, 연필은 꼭꼭 눌러 쓸 수 있어서 좋았다. 뿐만 아니라 글을 쓰기 전에 직접 연필을 깎는 것은 하나의 의식처럼 마음을 진정시켜 주었다-있었다. 노트 속의 이야기는 나를 다시 감수성이 예민하지만 지금 내가 겪는 세계가 세상의 전부라고 생각했던 열여섯 소녀의 눈높이로 이끌었다. 십 대 시절의 나는 나름대로 세상에 대해 많이 안
창칭레이
내 친구들은 내게 주당 강의 부담을 물을 때마다 그것이 상대적으로 얼마 되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 놀라곤 한다. 그들은 또 내가 7년마다 정규 학기가 시작되는 것에 맞춰 안식년을 갖는다는 것을 알면 더욱 충격을 받는다. 초등학교나 중등학교 교사들에 비하면 일반적으로 대학 교수들은 강의 부담이 다소 적고 안식년 혜택도 누릴 수 있다. 그렇다면 물리학 교수들의 의무는 무엇일까? 우리는 대중의 무지를 비난할 수는 없다. 국회의원, 정부관리, 학생들, 그리고 교수 자신들조차도 비슷하게 혼동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확실한 것이지만, 압도적인 다수가 물리학 교수의 사회적 책임을 인식하지 못한다면 현재의 상황은 변하지 않을 것이다. 대학의 기원에 대해 위키피디아를 참조하면(참고문헌1), 중국의 상양(上庠)이 세계 최초의 대학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물론 오늘날의 대학과는 그 기능이 매우 달랐다. 대학이라는 단어의 어원은 라틴어 'universitas magistrorum et 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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