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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애진
1. 문이 열리는 소리가 귀에 있는 마이크로 폰 센서를 통해 입력된다. 마님과 다른 사람이 들어오는 모습이 양쪽 눈에 있는 카메라 네 대에 잡힌다. 나는 현관으로 간다. 나는 모니터에 인사를 띄운다. - 어서오세요, 마님과 친구 분. - “아, 얘야?” “어.” 마님과 다른 사람의 목소리가 귀에 있는 마이크로 폰 센서를 통해 입력된다. 나는 처음 보는 사람에게 호기심을 보인다. 눈두덩이 두 단계 밑으로 내려오고, 입술 양끝이 한 단계 올라간다. “이름이 뭐니?” 다른 사람이 내 얼굴 쪽으로 얼굴을 가까이 대며 묻는다. - 집사입니다. - 나는 가슴에 있는 모니터에 대답을 띄운다. 내게 관심을 보이자 나는 기뻐진다. 나는 웃는다. 입술이 한 단계 벌어지고 양끝이 한 단계 올라가고 눈이 두 단계 작아진다. “뭐야, 얘 말 못해?” “어, 음성 껐어.” “왜?” “왜냐니? 켜서 뭐하게?” “집에 들어올 때 누군가가 어서오세요, 라고 말하면 좋지 않아?” “로봇이?” “로봇이든 뭐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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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경렬
초보적인 지리상식만 알고 있는 저자가 런던의 위도가 51.5도나 된다는 사실을 깨달은 것은 몇 년 전 겨울 처음으로 영국을 방문하면서였다. 이 위도는 겨울의 평균 온도가 영하 10도밖에 되지 않는 사할린 북부의 위도와 같다. 그런데 어떻게 런던의 겨울은 이렇게 따뜻할까? 표층해류가 결정하는 지구의 기후 유럽인들이 바다에 감사해야 할 특별한 이유가 있다. 대서양 적도지방에서 출발한 더운 멕시코만류(Gulf Stream)가 북대서양해류(North Atlantic Current)로 이어져 멀리 스칸디나비아 반도까지 북상하면서 열기를 운반해 주는 덕분에, 영국과 서부 유럽 지역의 겨울철 기온이 훨씬 높게 유지될 수 있기 때문이다. 적도지방의 더운 해수가 고위도 지역으로 북상하면서 더운 열기를 전달하여 고위도 지역에 위치한 대륙을 따뜻하게 하는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그림 1] 표층 해류의 움직임. 적도지방의 더운 해수가 고위도 지역으로 북상하면서 더운 열기를 전달하여 고위도 지역에
김웅서
들어가며 1555년 출판된 노스트라다무스(Michel de Nostredame)의 『예언록(Les Propheties)』에 따르면 인류는 1999년 7월 지구상에서 사라졌어야 했다. 만약 그의 예언이 맞았더라면 우리는 21세기를 맞이하지 못했을 것이다. 이런 불안감 속에서 21세기가 되면 컴퓨터가 오작동해서 지구가 큰 혼란에 빠질 것이라는 둥 Y2K 문제로 호들갑을 떨던 것도 세월이 흘러 벌써 망각 속에 묻혔다. 무사히 찾아온 21세기의 미래는 어떤 모습일까? 많은 미래학자들이 21세기는 바다를 통해 인류의 삶을 영위하는 해양혁명 시대가 될 것이라고 예견하고 있다. 이제 바다는 문학작품 속에 나오는 동경과 낭만의 대상이 아니라 생존 현장이 되었다. 선진국들이 해양개발에 열을 올리는 이유도 자국의 미래가 바다에 달려 있다는 확신이 있기 때문이다. 미국의 미래학자 앨빈 토플러(Alvin Toffler)는 1980년 발간된 그의 유명한 저서 『제3의 물결(The Third Wave)』에
국형태
지난 4월 세계박람회 여수 유치를 위한 세계박람회 사무국의 실사단 방문이 많은 국민의 관심을 끌었다. 여수 세계박람회는 “살아 있는 바다 숨쉬는 연안(The Living Ocean and Coast)”을 캐치프레이즈로 내걸고 바다를 주제로 하는 다채로운 행사를 진행할 예정인데, 지구촌 구성원들에게 바다와 연안의 중요성과 보존 필요성을 인식시키는 장이 될 것으로 기대가 된다. 바다는 인류를 비롯한 지구상의 모든 생물이 생명을 영위할 수 있는 자원을 공급하며 또한 대기를 정화하고 지구의 기후를 조절하는 기능을 한다. 지구 표면적의 70%를 바다가 덮고 있으며 지구상에 존재하는 물의 97%가 바다에 있다는 통계만으로도 이미 바다가 우리에게 매우 중요한 환경이라는 것을 충분히 느낄 수 있다. 바다를 아끼고 보존하는 지혜를 갖기 위해서는 우선 먼 과거에서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지구의 생태와 인류의 생존이 바다와 어떤 관계를 맺어 왔는지를 잘 이해할 필요가 있다. <크로스로드> 금
이원중
2006년 8월 25일 <한겨레신문>에 127*112㎜ 크기로 내 사진이 첫 등장했다. 사진 밑에 새겨진 ‘ⓒ이원중’. 『들풀에서 줍는 과학』(김준민 지음)을 출판하면서 평소 산이나 들, 수목원 같은 곳에서 직접 찍어두었던 사진 몇 장을 썼다. 편집자들이 사진을 이용하면서 ‘ⓒ이원중’ 표기를 해주었을 때도 기분이 좋았는데, 내 식구가 아닌 다른 사람이 그것도 문학 전문기자로 활동하고 있는 최재봉 기자가 인용을 해주니 무척이나 뿌듯했다. 이런 이유로 출판사를 방문한 분들께 우리 책을 건넬 때면 『들풀에서 줍는 과학』을 은근히 선호한다. 물론 책의 내용이 좋기도 하지만…. 내 나이 지금 마흔다섯(지성사를 시작할 때 나이는 서른둘)이다. 주변 출판사 사장들이나 내 또래 친구들은 지금 골프에 관심들이 많은데 나는 꽃을 좋아한다. 등산을 하면서 꽃을 사진기에 담는 것을 행복해하고, 수목원을 쫓아다니기를 즐긴다. 그렇게 해서 찍은 사진들을 외장하드에 별도로 저장해 두고 있는데 그것이 이제는
김연수
나는 초등학교 시절부터 세계문학을 줄줄이 읽은 문학적 천재도, 그렇다고 수천 권의 무협지를 섭렵한 이야기꾼의 기질도 지닌 바 없었다. 물론 나는 독서를 좋아했다. 초등학교 3학년이던 내가 수십 번씩 되풀이해서 읽은 책은 코난 도일의 추리소설이었다. 그 다음에는 모리스 르블랑과 아가사 크리스티였다. 초등학교 내내 추리소설만 읽던 내가 다른 장르에 눈을 뜨게 된 것은 중학교에 들어가고 나서부터였다. 나는 상업고등학교에 딸린 부록처럼 작은 중학교를 다녔다. 소위 ‘뺑뺑이’를 돌려서 들어간 학교였는데, 그 중학교에 배치 받은 학생들은 모두 울상이었다. 내 고향은 비평준화 지역이어서 고등학교 입시가 인생의 모든 것을 결정하는 분위기에서 자랐다. 그런 점에서 보자면, 그 중학교에 입학한다는 것은 좋은 고등학교에 들어가기가 매우 어렵다는 사실을 뜻했다. 아니나 다를까, 입학해보니 선생님들도 학생들에게 공부를 강요할 마음이 그다지 없는 것 같았다. 덕분에 중학교 신입생 시절, 나는 내 인생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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