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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태운
메사슈미트 선생님께. 저는 뷔겐 자르라고 합니다. 이탈리아 촌구석 파이프 공장의 말단 직원이죠. 세계 최고 권위의 물리학자인 선생님께 별 볼 것 없는 녀석이 무슨 볼 일이냐고 생각하시겠지요? 지금부터 선생님께 보내는 이 글이 미친 소리처럼 들릴 지도 모르고 말입니다. 하지만 박봉의 월급을 받고, 겨우 지하 34층의 저소득 아파트에 살고 있지만, 전 절대 미친놈은 아닙니다. 그러니 제발 이 메일을 닫지 마시고 끝까지 읽어 주시기 바랍니다. 제 목숨이 달린 일이거든요. 선생님. 저에겐 굉장히 희귀한 병이 하나 생겼습니다. 어쩌면 지구상에 보균자가 저 하나뿐인 괴상한 바이러스에 걸린 것인지도 모릅니다. 조금만 흥분해도 모세혈관이 스프처럼 녹아내리는 하브챠일 병도 아니고요, 피부가 색소를 잃어버린 채 투명해져서 심장이 콩닥콩닥 뛰는 모습이 훤히 드러나는 구아누챠르 증후군도 아닙니다. 어쩌면 선생님께선 기형적으로 등뼈가 튀어나와 ‘악마의 날개’라고 불리는
김상표
나사 고다드 센터의 매더(John C. Mather)박사와 캘리포니아 대학의 스무트(George F. Smoot)교수는 2006년 노벨 물리학상을 공동 수상하였다. 수상업적은 우주배경복사(cosmic microwave background)의 흑체분포와 비등방성을 발견한 것이었다. 그들은 1989년 나사가 발사한 코비 인공위성(COBE, COsmic Background Explorer)을 이용하여 우주배경복사가 절대온도 2.726도인 흑체의 분포를 갖고, 십만 분의 일정도의 온도 변화(비등방성)를 갖고 있음을 발견하였다. 이 업적은 초기우주와 은하와 별의 생성을 밝히는데 초석과 같은 역할을 한다. 펜지아스(Arno A. Penzias, 1933-)와 윌슨(Robert W. Wilson, 1936-)은 1964년에 우주배경복사를 처음 측정하였고, 이 업적으로 1978년에 노벨 물리학상을 수상하였다. 그들은 벨연구소의 안테나를 이용한 인공위성 통신을 시도하던 중 절대온도 3.5도 근처에
Don N. Page
, 우주론학자, 물리학자 그리고 다른 과학자들은 우주를 연구할수록 우주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크다는 것을 깨닫는다. 물리적 크기에 관한한 우리인간은 우주에서 극히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작은 부분인 것 같다. 그러나 다른 방식에서 볼 때 우리가 광대한 우주의 아주 중요한 부분이라고 여전히 믿고 있다. 고대인들은 우주가 인간보다도 훨씬 크다는 것을 알았다. 예를 들어 약 3,000년 전에 쓰인 성경 시편 8장은 “주의 손가락으로 만드신 주의 하늘과 주의 베풀어 두신 달과 별들을 내가 보오니, 사람이 무엇이관대 주께서 저를 생각하시며”라고 우주를 정성적으로 언급하고 있다. 첫 번째 정량적인 접근의 한 예가 에라토스테네스(Eratosthenes)가 약 2,200년경에 지구의 크기를 몇 퍼센트 오차 내에서 측정한 것이었다. 그와 동시대 사모스(Samos)의 아리스타쿠스(Aristarchus)는 상현, 하현일 때 태양과 달의 사이 각과 다른 각들을 측정하여 태양까지의
국형태
전문가일지언정 그 첨단을 가늠하랴 싶을 정도로, 발전을 거듭해온 과학기술은 헤아리기 어려울 정도로 급속히 자신의 영토를 넓혀가고 있다. 뉴스미디어는 연일 새로운 과학적 발견을 보도하여 동료 과학자들을 주눅들게 하는 한편, 첨단과학을 적용했다는 새로운 제품들의 경쟁적인 광고는 남녀노소 모든 이들을 현혹하면서 우리가 “멋진 신세계”에라도 와있는 듯한 느낌에 빠지게 한다. 인류의 역사는 과학의 역사와 그 궤를 같이 해왔을 터이다. 얼마 전 TV의 한 다큐멘터리 프로그램은 “차마고도”라는 고대의 교역로를 따라가는 소금대상의 여정을 보여주었다. 중국의 쓰찬성에서 생산된 소금이 야크와 말을 번갈아 타며 티벳 고원과 히말라야 설원을 넘어, 드디어 네팔의 산간 오지 마을에 팔려가는 그것은 실로 감동적인 목숨을 건 여정이었다. 우리가 살고 있는 동시대의 지구 상에서 이렇게도 과학의 혜택이 다른 세계가 존재한다는 것이 새삼 놀라웠다. 동시에, 문명의 때가 묻지 않은 자연에서 지내는 그 사
홍성욱
흔히 물리학과 철학은 매우 다른 학문 분야라고 한다. 그렇지만 이 둘은 방법론에서의 유사성은 물론, 관심 주제가 겹치는 영역도 존재한다. 실재(reality)란 무엇인가, 물리학자가 발견한 자연의 법칙이 어떻게 보편적일 수 있는가, 이론과 실험 데이터와의 일치는 어떻게 설명할 수 있는가, 시공간의 본질은 무엇인가, 외부 세계에 대한 인간의 인식의 조건들은 무엇인가, 현대 과학은 세계에 대해 얼마나 진실된 이해를 제공해 주는가, 과학자들은 자신의 연구에 대해서 어떤 윤리의식을 가져야 하는가? 이러한 문제들은 물리학과 철학이 모두 관심을 두는 문제들인데, 이에 대한 해답을 개별적으로 추구하기 보다는 대화를 통해서 서로의 문제의식을 공유하고 둘의 노력을 합치면 더 의미 있는 해답을 찾아낼 수 있다. 물리학과 철학의 유용한 상호 영향을 우리는 아인슈타인에게서 찾아볼 수 있다. 아인슈타인의 ‘과학철학’ 아인슈타인은 1952년에 그의 평생지기인 모리스 솔로빈(Maurice Solovin)에게
정남영
나는 학술연구의 측면에서는 영문학자이고 사회활동의 측면에서는 문학비평가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나의 공부 과정에는 인문과학과 자연과학의 뿌리가 동일하다는 인식의 발전과 구체화가 포함된다. 나는 이 과정을 간략하게 서술함으로써 내가 생각하는 인문과학과 자연과학의 친화성을 말하고 아울러 이른바 ‘정보화’로 종종 특징짓는 현대 자본주의사회에서 이 친화성이 띠는 의미를 생각해 보고자 한다. 우리 세대의 어릴 적 꿈은 대부분 과학자가 되는 것이었고, 나도 그랬다. (부모님의 희망은 다른 많은 부모님들이 그렇듯이 의사가 되는 것이었다.) 고등학교를 거치면서 이 꿈은 점점 변했다. 나는 문과를 택했고 대학을 영문과로 갔으며 영문과 교수가 되었다. 대학은 연구분야가 칸칸이 나누어져 있는 곳이다. 최근에 와서 이른바 ‘학제간’ 연구가 많이 이루어지고 있지만, 전체적으로 이러한 상호 고립적 성격은 변하지 않고 있다. 따라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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