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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민기영국 버밍엄대학교
어른이 되기 한참 전에 세상은 벌써 많이 익숙하다. 다양하고 수많은 ‘물질’로 가득 찬 세상. 일상은 끊임없는 물질과의 접촉이고, 경험은 상식이 된다. 단단한 나무의자와 푹신한 소파, 투명한 유리구슬과 속이 안 뵈는 돌멩이, 전류가 흐르고 빛을 내면서 따뜻하기까지 한 전구 등등. 학교에서 물질의 세 가지 상태(기체, 액체, 고체)를 흘려들어도, 물 분자를 이용해 세수하고 얼음을 얼리고 밥을 짓는데 어려울 게 없다. 인간사로 복잡한 세상이지만, 물질로서 세상은 일찌감치 깨친다. 그런데 쉽게 잊고 지내는 게 있다. 우리는 아주 ‘특별한’ 환경 속에서 살아간다는 점이다. 나는 지금 쾌적한 온도와 기압, 적당한 조명 아래서 글을 쓰고 있다. 아주 약한 지구 자기장과 자연에서 방출되는 미미한 방사선이 언제나 내 몸을 통과하고 있다. 사람 살기 알맞은 지구라는 환경이 우리 상식의 바탕이다. 하지만, 우주 어딘가, 지구와는 너무도 다른 곳에선 어떨까? 훨씬 뜨겁거나 차갑고, 상상할 수
장동선뇌과학 박사, 과학커뮤니케이터
#시작하는 질문 – 전문가는 누구인가 최근에 비트코인과 블록체인 기술을 놓고 온라인/오프라인에서 벌어진 일련의 논쟁들과 TV 토론을 흥미롭게 지켜보았다. 그러면서 마음 속에 한 가지 질문이 생겼다. 대체 이 분야의 전문가는 누구일까? 다양한 의견(Opinion)들이 오고가는 것도 흥미로웠지만, 어떠한 분야의 전문가(Expert)로 불리기 위해서는 전문 지식(Expertise)이 있어야 한다. 그런데 왜 진정한 전문가의 목소리는 들리지 않는 것처럼 보일까? 무엇보다, 이렇게 다양한 분야의 지식(Knowledge)들이 고루 요구되는 새로운 기술 분야에서 진정한 전문가는 누구일까? 관련 분야의 박사 학위를 가지고 있으면? 관련 분야에서 일정 기간 이상 실무를 익히며 일해왔으면? 공인된 전문가 자격 수료증을 지니고 있으면? 아니면 일반인들이 이름만 말해도 대부분 알고 신뢰할 정도의 인지도와 유명세를 지니고 있으면 전문가로 인정되는 것일까? #개인적인 기억 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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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정완한국과학창의재단 과학커뮤니케이터
작은 도전, 큰 변화 “안녕하세요, 한국과학창의재단 과학 커뮤니케이터 목정완 입니다.”요즘 나 자신을 소개해야 하는 자리가 있을 때 매번 튀어나오는 말이다. 불과 일 년 전만 해도, 나는 이런 거창한 내 소개를 할 생각도, 아니 솔직히 말하면 ‘과학커뮤니케이터’라는 표현이 존재하는 지도 몰랐다. 생명과학을 연구하는 박사과정 학생으로, 집과 연구실을 오가던 내게 과학커뮤니케이터라는 정체성이 생긴 것은 불과 몇 달 전이다. 어릴 적 나는 개미를 좋아하는 평범한 꼬맹이였다. 아니, 하루에 4시간씩 개미를 보곤 했으니 조금은 특이한 녀석이었을 지도 모르겠다. 집의 막내가 되어 무소불위(?)의 권력을 가진 양 까불어 대는 나를 피해 누나들은 방에 들어가 문을 걸어 잠그곤 했다. 그들이 본인들만의 시간을 가질 동안, 나는 별 수 없이 마당으로 나와 흙을 파고 놀았던 것이 개미와의 첫 만남이었던 것으로 기억된다. 조그마한 몸통으로 더듬이를 치켜들
이은희과학커뮤니케이터
애니메이션 <인사이드 아웃>에서는 기억저장소에서 일하는 직원들이 가끔씩 엉뚱한 기억을 끄집어내 중앙본부로 보내는 통에 아무 이유없이 불쑥불쑥 껌 광고 노래를 흥얼거리는 장면이 등장한다. 내게도 그런 ‘껌 광고’ 같은 기억의 토막이 있다. 차이가 있다면 특정한 멜로디나 노래가사가 아니라 학창시절 영어시간의 기억 한 토막이라는 것뿐. 지금도 기억나는 건 칠판에 나란히 쓰인 'beat around the bush'와 “변죽을 울리다”라는 글씨들과, ‘변죽’이 뭔지도 모르는 채로 무조건 반복해서 그걸 읽던 기억이다. 아무도 모르지만 누구도 묻지 않고 주문처럼 계속 반복해서 읽던―그것도 반 아이들이 모두 한꺼번에!― 기억은 지금도 뭔가 우스꽝스러우면서도 부끄럽고 간질거리는 기억으로 남아버렸다. 변죽이란 ‘그릇이나 세간의 가장자리’를 뜻하는 우리말이며, 따라서 ‘변죽을 울리다’는 ‘바로 집어 말을 하지 않고 둘러서 말을 하다’라는 의미라는 것을 알게 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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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성환작가
1.잠에서 깬 P선생은 하루가 두 갈래로 갈라진 것을 깨달았다. 삶과 꿈으로, 혹은 꿈과 삶으로. (과연 어느 것이 꿈이고 어느 것이 삶이라고 단정해서 구분할 수 있을까, 만일 꿈과 삶이 동시에, 매 순간마다 함께 펼쳐진다면? 겹쳐진다면?)아내가 깰세라 조심스럽게 침대에서 일어난 P선생은 거실에 나와 물을 마셨다. 비쩍 마른 노란 고양이가 어디선가 나타나 등으로 뛰어오르더니 어깨 위에서 냥냥거렸다. 알았어. 텅 빈 그릇에 사료를 덜어주고 베란다 문을 열어 환기를 시켰다. 베란다에 나가 계단식 텃밭 화분마다 물을 주고 고양이 모래상자를 치운 다음 손을 씻고 돌아와 식탁 위의 워드프로세서를 다시 켰다. 그 순간 다시 삶과 꿈이 다시 뒤섞였다. 고양이? 무슨 고양이? 무슨 텃밭? 다시 바라본 베란다 바깥은 온통 회색 풍경―청회색 새벽하늘 아래 회청색 고층 아파트 그림자들, 피로에 지친 누런 가로등 불빛과 벌써 줄지어 달리기 시작한 출근길 자가용들의 창백한 전조등과 불길한 정지등 불빛들로
이정모서울시립과학관 관장
『생각의 기원』(2017, 마이클 토마셀로 지음, 이정원 옮김, 이데아) 수많은 영장류, 그 중에서도 여러 유인원 종 가운데 유일하게 호모 사피엔스만 문명을 탄생시켰다. 그 원동력은 무엇일까? 어떤 이는 쉽게 “생각하는 능력”이라고 말한다. 하지만 사람만 생각하는 것은 아니다. 적어도 척추동물들은 모두 생각을 한다. 따라서 다른 답이 필요하다. 그렇다면 “지향적인 행위자로서 서로를 이해하는 문화”라는 답은 어떨까? 그런데 대형 유인원들은 다른 개체를 지향적 행위자로서 충분히 이해하고 있다는 증거들이 많다. 그렇다면 인간만의 특징은 무엇일까?독일의 막스플랑크 진화인류학연구소 공동소장을 맡고 있는 미국인 영장류학자 마이클 토마셀로는 “인간의 생각은 근본적으로 협력적이다.”라고 말한다. 인간은 다른 사람들을 지향적 행위자로 이해할 뿐 아니라 공동의 목적을 위해 다른 사람들과 머리를 맞대고 문제를 해결한다는 점에서 대형 유인원과 결정적인 차이를 보인다는
윤가야명지대학교
음료수 자판기를 보듯 도서관에서 책들을 훑는 건 참 재미있다. 이 책들만 보면 궁금증에 목마른 내 갈증이 다 해소될 것 같은 기분이 든다. 그때도 여느 때와 다름없이 책 제목들을 보며 무슨 내용들이 적혀있을까 상상하던 중이었다. 그러다 내 상상을 확인하고 싶은 책 제목이 눈에 들어왔다.『인간 불평등 기원론』이라는 책이었다. 내용이 어려워 읽는데 조금 힘들었지만 흥미로운 저자의 견해를 이해하고 싶어 끝까지 읽었다. 그 책을 반납하는 것을 마지막으로 도서관에 한동안 못 가다가, 시험공부 할 때 나는 다시 루소를 만날 수 있었다. 문제집에는 ‘루소 : 이러이러한 견해를 갖고 있다. 그를 반대했던 사람은, 땡땡 철학자이다.’ 라는 식으로 많은 철학자들의 이름이 열거되어 있었다. 기분이 이상했다. 루소를 한 줄 평으로 외우고, 누가 어떤 견해를 갖고 있었는지를 요약한 키워드를 그 사람과 매치시키려는 문제를 풀어야 한다는 것 때문이었다. APCTP에서 과학커뮤니케이션 스쿨을 연다는 소식을 접
오동현POSTECH
글은 내 생각을 더욱 많은 사람과 나눌 수 있게 도와주는, 의식의 매개체이다. 그래서 대학원에 진학해 의공학을 연구하는 나는 내 연구의 의미를 듬뿍 담은, 매력적인 글을 쓰고 싶었다. 내가 미처 몰랐던 분야의 전문가가 내 글을 읽고 나의 분야에 흥미를 들이면 우리 모두 한 주제 속에서도 넓은 연구로 거듭나도록 말이다. 그래서 어려운 어휘로 서술된 논문 필체 말고도 보다 많은 독자를 끌어들이는 매력적인 필력을 가지고 싶었다. 이번 기수로 17회를 맞은 APCTP 커뮤니케이션 스쿨은 이론 연구를 넘어 과학적 지식을 대중에게 소개하는 과학 커뮤니케이터 양성을 목적으로 운영되는 과학문화사업이다. 전국 대학 대상으로 참가자를 지원받는 만큼 운영 위원 및 강연단의 규모가 대단했다. 주제가 글쓰기 및 발표인 만큼 왕성한 집필 현장에 계셨던 기자와 작가, 또 명강의로 인기 많으신 본교 인문사회학부 교수님들께서 사흘간 강단에 올라 힘써주셨다. 이번 주제였던 ‘CRISPR 유전자
정두석연세대학교
올해 APCTP 의 신임 소장으로 임명되신 방윤규 소장님과 함께, APCTP 와 대한민국 물리학이 나아가야 할 방향에 대해 허심탄회하게 이야기를 해보았다. Q1. 방윤규 소장님, 반갑습니다. 간단히 자기소개 부탁드립니다.A1. 저는 이론물리학 중에서 초전도 현상과 원인에 관한 연구를 주로해온 연구자입니다. 제가 박사과정을 밟은 학교인 럿거스 대학에 고체물리학을 연구하는 저명한 교수들이 많이 있어서 자연스럽게 이 분야를 택하게 되었습니다. 고온초전도체의 비밀이 아직까지 풀리지 않고 있고, 저도 아직까지 이 분야의 연구를 계속하고 있습니다. Q2. 소장님께서 주로 다루시는 연구 주제에 대해 간략히 설명해주세요.A2. 제가 다루는 분야는 많은 사람들이 노력하고 있는 현대 물리학의 난제 중 하나인 “강상관계” 입니다. 좀 더 설명을 드리자면, 일반 금속이나 초전도체나 모두 고체 안에 있는 전자들의 상호 작용에 의해서 생기는 물질의 특성들입니다. 이 분야의 연구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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