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6년 ‘벌레의 마음’ 논문이 발표되었을 때, 연구자들이 손에 넣은 것은 하나의 동물 전체 신경계가 어떻게 연결되어 있는지를 보여주는 최초의 완전한 지도였다. 그러나 지도는 어디까지나 지도일 뿐이다. 도시의 도로망을 모두 안다고 해서 그 도시의 교통 흐름과 사람들의 실제 이동을 저절로 이해할 수는 없는 것처럼, 커넥톰 또한 신경계의 구조를 보여줄 뿐 그 구조가 실제로 언제, 어떻게, 왜 특정한 행동으로 이어지는지까지 곧바로 말해주지는 않는다. 그렇다면 이 작은 벌레의 302개 뉴런은 실제로 어떻게 벌레의 일상을 만들어내고 있을까?
이 질문이 중요한 이유는 예쁜꼬마선충이 단순히 “작은 신경계”를 지닌 동물이기 때문만은 아니다. 이 벌레는 작지만 이미 좌우 대칭 동물다운 문제를 풀고 있다. 몸의 앞과 뒤를 구별해야 하고, 앞쪽에서 들어오는 감각 정보를 바탕으로 계속 나아갈지, 물러설지, 방향을 바꿀지를 결정해야 하며, 길쭉한 몸 전체의 움직임을 축 방향으로 조율해야 한다. 자포 동물의 신경계가 몸 전체에 넓게 퍼진 분산형 신경망에 가깝다면, 포유류의 뇌처럼 뚜렷하게 구획된 중추신경계는 아니지만, 예쁜꼬마선충의 신경계는 훨씬 더 작고 압축되어 있으면서도 이미 전방 머리 부분에 감각 정보의 입력과 처리가 집중되는 구조를 보여준다.
미니멀리즘 속에 구현된 중앙 집중화
1밀리미터 남짓한 몸 속에 일종의 미니멀리즘을 구현한 최소형 좌우 대칭 동물이라 할 수 있는 예쁜꼬마선충의 신경계도 우리 신경계와 마찬가지로 크게 감각 뉴런(sensory neuron), 연합 뉴런(interneuron), 운동 뉴런(motor neuron)으로 구성되어 있다. 감각 뉴런은 외부의 화학적·기계적·온도 자극 등 환경 정보를 받아들이는 역할을 하고, 연합 뉴런은 이렇게 들어온 정보를 서로 연결하고 통합하며, 운동 뉴런은 최종적으로 근육에 신호를 전달해 몸의 움직임을 만들어낸다. 즉 규모는 극도로 작지만, 감각 입력–정보 통합–운동 출력이라는 신경계의 기본 삼단 구조는 이미 예쁜꼬마선충 안에 뚜렷하게 갖추어져 있다.
그림1. 예쁜꼬마선충 전체 신경계 모식도. (출처: doi:10.1016/B978-0-12-809633-8.06787-X)
그런데 이들 뉴런은 몸 전체에 균일하게 흩어져 있지 않다. 오히려 대부분의 감각 뉴런과 연합 뉴런은 몸의 앞쪽, 즉 머리 부분에 밀집해 있다(그림 1). 이는 좌우 대칭 동물의 생활 방식과 깊은 관련이 있다. 예쁜꼬마선충은 길쭉한 몸을 앞뒤로 굽혀 앞으로 나아가는 동물이기 때문에, 다른 좌우대칭동물들과 마찬가지로 환경과 가장 먼저 맞닥뜨리는 부위 역시 몸의 앞쪽이다. 먹이의 냄새, 해로운 화학물질, 장애물이나 촉각 자극은 대개 먼저 머리에서 감지된다. 따라서 감각기관과 그 신호를 처리하는 회로가 앞쪽에 집중되는 것은 자연스러운 귀결이다. 말하자면 예쁜꼬마선충의 몸은 작지만, 이미 ‘앞에서 느끼고, 앞에서 판단하고, 몸 전체를 움직인다’는 좌우대칭동물적 설계를 따르고 있는 셈이다.
이러한 전방 집중화가 가장 또렷하게 드러나는 구조가 바로 신경환(nerve ring)이다. 신경환은 머리 부분의 인두(pharynx)를 고리처럼 둘러싸고 있는 치밀한 신경 섬유층으로, 예쁜꼬마선충 신경계에서 가장 중심적인 구조다. 포유류의 뇌처럼 분명한 영역 구획을 지닌 중추는 아니지만, 기능적으로 보자면 감각 입력이 모이고, 연합 뉴런들이 서로 연결되며, 운동 회로로 신호가 흘러나가는 핵심 허브에 해당한다. 실제로 예쁜꼬마선충의 중요한 감각 뉴런 다수가 이 신경환으로 연결되고, 주요 연합 뉴런들 또한 이 주변에 집중되어 있다. 그래서 흔히 신경환은 예쁜꼬마선충의 일종의 ‘뇌에 해당하는 구조’로 간주되곤 한다.
물론 신경계의 전부가 머리에만 몰려 있는 것은 아니다. 신경환에서 출발한 신경 돌기들은 몸통을 따라 길게 뻗은 종주 신경삭(longitudinal nerve cords)을 이루며 뒤쪽으로 이어진다. 이 가운데 특히 복측신경삭(ventral nerve cord)은 몸 전체의 운동 조절에 핵심적인 역할을 하며, 여러 운동 뉴런의 세포체와 돌기들이 이 축을 따라 배열되어 있다. 등쪽에도 신경 섬유가 지나가고, 꼬리 쪽에도 감각과 운동 조절에 관여하는 뉴런들이 모여 있다. 그러나 전체적인 배치를 놓고 보면 구조적 중심은 분명히 앞쪽에 있다. 자포 동물의 신경망이 몸 전체에 넓게 퍼져 있는 분산형 구조라면, 예쁜꼬마선충의 신경계는 작은 규모 안에서도 좌우 대칭 동물 계통에서 이뤄진 두뇌화(cephalization)의 패턴을 보여주고 있다.
연결의 지도에서 행동의 회로로
신경환과 종주 신경삭, 감각 뉴런과 운동 뉴런의 배치를 살펴보면 예쁜꼬마선충의 신경계가 단순한 선들의 집합이 아니라 이미 질서 있는 구조를 이루고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그러나 신경계의 구조를 안다는 것과, 그 구조가 실제로 어떻게 행동을 만들어내는지를 이해하는 것은 또 다른 문제다. 감각 뉴런과 운동 뉴런이 존재한다는 사실만으로는, 어떤 자극이 들어왔을 때 왜 어떤 경우에는 앞으로 나아가고 어떤 경우에는 뒤로 물러나는지까지 설명할 수 없기 때문이다. 바로 이 지점에서 중요한 개념이 등장한다. 그것이 ‘신경 회로(neural circuit)’다.
신경 회로란 간단히 말해, 특정한 정보를 받아들이고 처리하여 일정한 행동이나 반응을 만들어내는 뉴런들의 연결망이다. 하나의 감각 뉴런이 자극을 감지하고, 그 신호가 몇 개의 연합 뉴런을 거쳐 운동 뉴런으로 전달되어 근육의 수축을 유도한다면, 그 일련의 연결 전체를 하나의 회로라고 볼 수 있다. 물론 실제 신경계의 회로는 전기 회로처럼 깔끔하게 분리된 독립 단위만으로 존재하지는 않는다. 하나의 뉴런이 여러 회로에 동시에 참여하기도 하고, 같은 회로도 몸의 상태나 맥락에 따라 전혀 다른 방식으로 작동하기도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회로’라는 개념은, 신경계가 어떻게 감각을 행동으로 바꾸는지를 이해하기 위한 가장 기본적인 틀을 제공한다.
예쁜꼬마선충 연구가 신경 생물학에서 특별한 위치를 차지하는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우리는 이미 이 작은 벌레의 전체 신경계 연결 지도를 손에 쥐고 있다. 어떤 뉴런이 어디에 있고, 누구와 시냅스를 맺고 있으며, 신호가 어떤 방향으로 흐를 수 있는지에 대한 정보가 거의 완전한 형태로 정리되어 있는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예쁜꼬마선충의 커넥톰(connectome)은 단순한 해부학 자료를 넘어, 벌레의 행동을 이루는 회로들을 해독할 수 있는 일종의 ‘회로 설계도’라 할 수 있다. 다른 동물에서는 너무 복잡해서 아직 전체를 끝까지 따라가기 어렵지만, 예쁜꼬마선충에서는 적어도 원리적으로는 감각 입력에서 행동 출력에 이르는 경로를 처음부터 끝까지 추적해볼 수 있다.
전진할 것인가 말것인가, 그것이 문제로다
예쁜꼬마선충의 몸통 운동은 크게 전진과 후진이라는 두 가지 상반된 프로그램으로 정리할 수 있다. 이 단순한 행동 대립 뒤에는 비교적 분명한 회로 조직이 놓여 있다. 고전적인 레이저 절제 연구와 해부학 연구를 통해, AVB와 PVC라는 연합 뉴런은 주로 전진 운동을 촉진하고, AVA·AVD·AVE는 후진 운동을 촉진하는 데 중요하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이 연합 뉴런들은 다시 몸통의 운동 뉴런들과 연결되는데, B형 운동 뉴런은 전진 운동을, A형 운동 뉴런은 후진 운동을 주로 담당한다. 즉, 벌레의 신경계는 전진과 후진이라는 서로 다른 운동 프로그램을 별개의 회로 축으로 조직하고, 감각 입력에 따라 둘 가운데 하나를 선택하는 최소한의 행동 기계를 이루고 있다.
이 회로의 작동을 가장 직관적으로 보여주는 사례가 바로 촉각 회피 행동이다. 예쁜꼬마선충의 몸 앞쪽에는 ALM, AVM 같은 촉각 수용 뉴런이, 몸 뒤쪽에는 PLM 같은 촉각 수용 뉴런이 배치되어 있다. 이 뉴런들은 몸 표면을 따라 길게 뻗어 있어 외부에서 가해지는 기계적 자극을 감지하기에 유리한 구조를 지닌다. 앞쪽에 자극이 들어오면 벌레는 대개 뒤로 물러나고, 뒤쪽에 자극이 들어오면 다시 앞으로 나아간다. 다시 말해 같은 “촉각”이라도 어디에서 들어왔는가에 따라 정반대의 운동 프로그램이 유도되는 것이다. 이는 예쁜꼬마선충의 신경계가 단순한 반사궁의 집합이 아니라, 몸의 앞뒤 축에 따라 감각 입력을 구획하고, 그 구획된 정보를 운동 선택으로 번역하는 체계를 이미 갖추고 있음을 보여준다.
흥미로운 점은 이 과정이 생각보다 훨씬 복잡하고 섬세하다는 사실이다. 예를 들어 앞쪽 촉각 수용 뉴런은 후진을 담당하는 연합 뉴런과 특히 강하게 연결되지만, 동시에 전진 회로와도 완전히 단절되어 있지는 않다. 뒤쪽 촉각 수용 뉴런 역시 마찬가지다. 또한 전진을 촉진하는 연합 뉴런과 후진을 촉진하는 연합 뉴런 사이에도 서로 얽힌 연결이 존재한다. 이런 배치는 벌레의 반응이 단순한 on/off 스위치가 아니라, 서로 경쟁하는 회로들 사이의 균형으로 결정됨을 시사한다. 실제로 접시를 가볍게 두드리는 탭 자극처럼 앞뒤 촉각 수용기를 동시에 활성화할 수 있는 자극에서는, 벌레가 어떤 때는 뒤로 물러나고 어떤 때는 앞으로 가속하는 식의 가변적 반응을 보인다. 아주 작은 신경계에서도 이미 입력의 통합과 선택의 문제가 등장하는 것이다.
운동 자체도 단순히 머리가 내려보내는 전진 명령만으로 결정되지 않는다. 예쁜꼬마선충은 95개의 체벽 근육과 약 70개의 운동뉴런을 이용해 몸 전체에 굴곡의 파동을 만들어낸다. 그런데 이 파동이 단순히 머리에서 꼬리로 일방적으로 전달되는 것이 아니라, 몸 각 부위의 운동뉴런이 자신의 굽힘 상태를 감지하는 고유수용성(proprioceptive) 피드백을 이용해 바로 앞 구간의 움직임을 이어받고 다음 구간으로 전달하는 방식으로 작동한다. 즉, 벌레의 신경계는 중앙집중화되어 있지만, 실제 행동은 중앙에서 모든 것을 지휘하는 단일 사령탑의 산물이라기보다, 작은 회로와 몸의 물리적 상태가 서로 맞물려 만들어내는 동적인 패턴의 결과물이다. 이처럼 302개라는 적은 숫자 속에 이미 감각 입력, 회로 선택, 운동 실행, 신체 피드백이라는 신경계의 핵심 요소들이 모두 들어 있다는 것은 놀라운 효율성이라고 할 수 있겠다. (다음 연재에서 이어짐)
참고문헌
Altun, Z.F. and Hall, D.H. 2011. Nervous system, general description. In WormAtlas. doi:10.3908/wormatlas.1.18
Goodman, M. B. 2006. “Mechanosensation.” WormBook.
Wen, Q., Po, M. D., Hulme, E., Chen, S., Liu, X., Kwok, S. W., et al. 2012. “Proprioceptive coupling within motor neurons drives C. elegans forward locomotion.” Neuron 76: 750–7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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