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생대의 시작, 캄브리아기에 생물학적 빅뱅이 일어나며, 현존하는 동물들의 거의 모든 가문이 형성된다. 이 때 해파리는 이미 현재와 비슷한 모습으로 바닷속을 누비고 있었음이 화석으로 확인된다.>
약 5억 2천만 년 전, 캄브리아기의 바다에서는 대격변이 진행되고 있었다. 이른바 생물학계의 ‘빅뱅’이라고도 불리는 캄브리아기 대폭발(Cambrian explosion) 시대에, 수많은 동물들이 무더기로 화석 기록에 등장하기 시작한다. 그 이전 시기인 에디아카라기 화석들이 해석에 논란이 많은 반면, 캄브리아기 지층에선 의심의 여지가 없는 뚜렷한 동물 화석들이 쏟아져 나온다. 그 화석들 중에는 지금은 찾아볼 수 없는, 마치 외계에서 온 괴생명체 같은 동물들도 있지만, 그 가운데에서 오늘날 우리에게 익숙한 모습과 거의 똑같은 형태를 한 생물들이 다수 나타난다. 바로 해파리를 포함한 자포동물(Cnidaria)이다.
캄브리아기 화석층에는 해파리뿐 아니라 말미잘, 산호 등 현대 자포동물의 명백한 조상들이 발견된다. 이 화석들에서 이미 자포동물의 기본적인 신체 구조인 방사대칭의 몸체와 촉수의 배열, 그리고 자포동물의 이름에도 담겨 있는 독침세포(자세포, cnidocyte)가 잘 확인된다. 자세포는 자포동물의 강력한 무기로, 촉수에 달린 독침 캡슐들이 접촉 자극에 반응해 발사되어 먹이를 마비시키거나 포식자를 물리친다. 이 정교한 사냥 시스템은 자포동물이 지난 5억 년 이상 바다의 효율적인 포식자로 군림할 수 있게 한 핵심 병기였다.
해파리, 히드라, 말미잘, 산호 등을 포함하는 자포동물문은 해면동물, 판형동물, 유즐동물과 함께 동물 계통수에서 기저에 위치한 가문으로, 복잡한 기관계가 분화되기 이전의 원시적 다세포성을 간직하고 있다. 그 중에서도 사냥꾼 기질을 지닌 자포동물은 신경계 진화사에 있어 매우 중요한 분류군으로 여겨진다(Kelava Iva, Rentzsch Fabian, and Technau Ulrich 2015). 화학적 소통 시스템에서 시냅스 기반 신경계로의 도약이라는 결정적인 전환점에 자리잡은 계통이기 때문이다. 지난 연재에서 살펴본 가스파르 젝켈리(Gáspár Jékely)의 '화학적 뇌 가설'에 따르면, 초기 신경계는 뉴로펩타이드 같은 확산성 화학 신호에 기반한 볼륨 전달에서 출발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해면동물의 뉴로이드 세포나 판형동물의 펩타이드성 세포가 보여주는 것처럼, 신경계의 가장 원시적 형태는 시냅스 연결 없이도 화학적 신호를 통해 세포들 간에 소통하는 시스템이었다.
자포동물은 기저동물 중에서 유일하게 고전적 신경전달물질 체계와 정교한 시냅스 구조가 발달한 신경계를 지닌 계통이다. 이 신경망에서는 RFamide와 GLWamide처럼 단세포 조상에서부터 존재했던 오래된 뉴로펩타이드를 통한 볼륨 전달이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으나, 동시에 GABA, 글루탐산, 아세틸콜린 같은 고전적 신경전달물질과 시냅스 기반의 정밀한 신호 전달 시스템도 공존하는 '과도기적' 특성을 나타낸다고도 볼 수 있다. 그리고 아직 동일한 기원을 가지고 있는지 불분명한 빗해파리(유즐동물)의 신경계와 달리, 자포동물의 신경계는 우리 인간을 비롯한 좌우대칭동물의 신경계와 상동으로 확인된다. Notch와 Wnt/BMP와 같은 고도로 보존된 신호전달 경로 역시 자포동물에서 신경계의 분화와 발달에 관여하고 있으며, SoxB, achaete-scute와 같은 주요 전사인자들 또한 좌우대칭동물에서와 매우 비슷한 역할을 한다. 이러한 공통점은 시냅스 구조에서도 발견된다. 자포동물에서도 인간 신경계에서 관찰되는 시냅스 활성구역(active zone)과 신경전달물질을 함유한 시냅스 소포체가 발견될 뿐만 아니라, 시냅스후 영역에 존재하는 PSD-95와 같은 단백질 역시 이미 자포동물 단계에서 확인된다.
자포동물의 신경계는 근본적으로 인간을 포함한 좌우대칭동물과의 유사성과 상동성을 나타내지만, 중추신경계가 발달하지 않고 전신에 퍼져있는 분산형 신경망(diffuse nerve net)을 갖추고 있다는 점에서 근본적인 차이도 보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포동물은 이러한 신경망만으로도 감각과 운동을 정교하게 조율하며, 포식자나 먹이에 효과적으로 대응하는 복잡한 행동을 보인다. 예컨대 해파리는 리듬감 있는 수축과 이완을 통해 효율적으로 유영하며, 중력 방향을 감지해 수직 위치를 조절하고, 빛의 방향을 인식해 이동 경로를 바꾸는 복잡한 행동들을 보여준다. 특히 상자해파리(box jellyfish)의 경우 독립적으로 획득한 렌즈형 눈 구조를 갖추고 있으며, 놀랍도록 정교한 시각 기반 행동을 보인다. 이들은 맹그로브 나무 사이를 헤엄치면서 장애물을 피하고 먹이를 추적하며, 심지어 학습 능력까지 보이는 것으로 최근 연구에서 밝혀졌다(Bielecki et al. 2023).
자포동물 중에서 가장 많은 연구가 된 종 중 하나인 스타렛 말미잘(Nematostella vectensis) 또한 신경계의 정교한 행동 조절 능력을 보여준다. 겉보기에는 단순한 원통형 생물처럼 보이지만, 말미잘은 놀랍도록 정교한 감각 능력과 행동 레퍼토리를 갖추고 있다. 먹이가 촉수에 닿으면 자세포가 독침을 발사하고, 동시에 촉수들이 협조적으로 움직여 먹이를 입쪽으로 운반한다. 위험한 상황에서는 온몸을 움츠려 바위 틈으로 들어가거나, 심지어 부착 기질에서 떨어져 나와 다른 장소로 이동하기도 한다.
2023년에는 스위스 프리부흐 대학 사이먼 스프레쳐(Simon G. Sprecher) 연구팀으로부터 기존의 통념을 뒤집는 말미잘에 대한 흥미로운 연구결과가 발표되기도 했다(Botton-Amiot, Martinez, and Sprecher 2023). 스타렛 말미잘은 눈과 뇌가 없다. 하지만 연구팀은 이 말미잘이 빛과 전기자극이라는 두 가지 자극을 짝지어 학습하는 능력을 가졌음을 보여주었다. 조건화 실험에서 동물들은 단순한 빛 자극만으로도 전기충격을 예상하고 몸을 움츠리는 반응을 학습했다. 이는 ‘파블로프의 개’ 실험으로 유명한 전형적인 고전적 조건형성(classical conditioning), 즉 연합학습(associative learning)의 존재를 증명한 것이다. 뇌가 없는 동물에서도 학습과 기억이 가능하다는 관찰은 신경계 진화 초기 단계에서도 이미 복잡한 신경 기능이 존재했으며, 신경회로의 구조적 집중화가 곧바로 인지 능력의 출현을 의미하지 않을 가능성, 즉 ‘뇌 없는 동물의 인지(cognition without a brain)’ 가능성을 시사한다.
최근에는 자포동물의 신경계가 중앙집중화가 되지 않은 신경망 구조라는 기존의 통념까지 흔들리고 있다. 단순하고 원시적이라고 여겨져 온 해파리의 신경망이 생각보다 훨씬 정교하고 복잡하게 작동할 가능성이 확인되고 있기 때문이다. 작은 투명 해파리인 Clytia hemisphaerica는 최근 새로운 신경 진화 연구 모델로 각광받고 있다. 칼텍(Caltech)의 데이비드 앤더슨(David J. Anderson) 연구팀은 생애 주기가 짧고 다루기가 간편한 이 해파리에 유전자 조작 기술을 적용하여 신경계에 존재하는 특정 신경세포군의 활동을 선택적으로 관찰하고 조작하는 데 성공했다(Weissbourd et al. 2021). 이를 통해 Clytia 해파리에서 RFamide라는 뉴로펩타이드를 생성하는 특정 신경세포들이 먹이 섭취 행동에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는 사실이 입증되었다. 해파리가 촉수로 먹이를 잡으면 이 신경세포들이 작동하여 촉수가 있는 부분에서 입까지 먹이를 운반해야 하는데, 이 때 우산형 몸체(umbrella)의 비대칭적 수축이 필수적이다. Clytia 연구는 중앙집중식 뇌가 없어도, 특정 신경세포 네트워크가 이러한 행동을 지휘할 수 있음을 보여준다.
더욱 놀라운 점은 Clytia 해파리에서 확인된 신경망의 구조적 조직화였다. 해파리 신경망에는 강력한 방사형 연결망(radial connectivity)이 존재하는데, 이는 먹이가 포획된 촉수 위치에서 중앙의 입 방향으로 효과적으로 신호를 전달할 수 있도록 최적화된 구조다. 이에 더해 연구팀은 신경세포들의 활동을 고해상도로 분석한 결과, 겉보기에는 분산되어 보이는 이 신경망이 실제로는 잘 구조화된 국소적인 신경세포 집합(subassembly)들로 이루어져 있음이 확인했다. 해파리 몸체 곳곳에는 각기 별개의 기능적 단위를 이루는 신경세포들의 국소적 그룹들이 존재했고, 이들이 동시다발적이면서도 국지적으로 활동하며 먹이를 이동시키는 행동을 조율했다. 이렇게 신경계가 국지적으로 구조화된 단위들로 이루어져 있으면 손상 후 빠르게 회복되거나 개체가 성장하면서 새로운 신경세포를 쉽게 추가할 수 있다.
이 연구는 뇌를 갖춘 복잡한 좌우대칭동물들의 신경계가 등장하기 이전에 이미 신경계가 조직화된 형태로 존재했음을 시사한다. 즉, 동물 가문이 생성된 후 얼마 되지 않은 시점에 등장했던 좌우대칭동물과 자포동물의 공동조상 단계에서 이미 신경계는 단순한 분산 구조에서 벗어나 기능적으로 구획화되고, 국지적인 네트워크를 형성하며 더 높은 복잡성의 기반을 갖추었다는 추정할 수 있다. 해파리를 비롯한 자포동물이 지닌 분산형 신경망은 원시적으로 여겨졌지만, 이를 자세히 들여다 본 연구 결과 오히려 신경계 진화 초기부터 정교한 기능적 조직화가 진행되었음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참고문헌
Bielecki, Jan, Sofie Katrine Dam Nielsen, Gösta Nachman, and Anders Garm. 2023. “Associative Learning in the Box Jellyfish Tripedalia Cystophora.” Current Biology: CB 33 (19): 4150–59.e5.
Botton-Amiot, Gaelle, Pedro Martinez, and Simon G. Sprecher. 2023. “Associative Learning in the Cnidarian Nematostella Vectensis.” Proceedings of the National Academy of Sciences of the United States of America 120 (13): e2220685120.
Kelava Iva, Rentzsch Fabian, and Technau Ulrich. 2015. “Evolution of Eumetazoan Nervous Systems: Insights from Cnidarians.” Philosophical Transactions of the Royal Society of London. Series B, Biological Sciences 370 (1684): 20150065.
Weissbourd, Brandon, Tsuyoshi Momose, Aditya Nair, Ann Kennedy, Bridgett Hunt, and David J. Anderson. 2021. “A Genetically Tractable Jellyfish Model for Systems and Evolutionary Neuroscience.” Cell 184 (24): 5854–68.e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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