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부
오, 눈치 빠른데? 맞아. 제보자가 반달날개밤나방을 목격한 게 그때야. 1992년 10월 28일. 휴거 소동 당일. 아니, 참, 휴거 자체는 우리랑 아무 상관 없는 일이라니까. 우연이야, 우연. 그때 기도원이 있던 자리가 공교롭게도 나방 서식지랑 겹친 것뿐이라고. 뭐, 지금은 없어진 서식지겠지만. 내가 알기로 지금 거긴 무슨 버려진 반도체 공장인가 있고 그럴걸. 우리 어릴 때까지만 해도 잘나갔던 무슨 큰 회사 공장이었을 텐데, 이름이……. 그게 중요한 게 아니고! 휴거 소동은 우리 어릴 때보다도 더 전이니까, 당시에는 공장도 없었고 그 동네는 거의 논이나 풀밭이었을 거야. 밤나방은 벼의 해충이기도 하니까 생각해 보면 딱히 대단한 우연이라고 할 것도 아니겠다. 조용한 데서 휴거 대비하려고 모인 신도들이 밤나방이랑 마주치는 일쯤은 얼마든지 일어날 수 있었을 거 아냐.
그 제보자가 딱 그랬다더라. 왜, 휴거가 일어나면 몸이 정말로 둥실둥실 들려서 하늘로 날아간다고 생각한 사람이 제법 많았단 말이야? 그래서 평소에는 기도원 안에서 예배를 봤지만, 그날만큼은 다 같이 밖으로 나왔다는 거야. 실내에 있으면 날아가다가 지붕에 머리를 부딪칠 테니까. 우습지만 합리적인 결정 아냐? 아무튼 그래서 야외 예배를 하려고 바깥에 나왔더니. 신도들만 있던 게 아니라 기자며 경찰이며 동네 사람이며 벌써 다 몰려와서 바글바글했더래. 그 많은 사람이 깜깜한 데에 몰려있진 않았을 테니까 당연히 불도 환하게 밝혀 놨겠지. 그러면 어떻게 됐겠어? 당연히 나방도 이끌려 왔던 거야. 옛날엔 종종 있는 일이었으니까. 응, 여기까진 하나도 이상할 게 없어. 진짜 재미있는 건 지금부터야.
아까 휴거 얘기하면서는 빼먹었는데, 당시 사건 다룬 기사들 보면 곁다리로 꼭 같이 언급되는 일화가 하나 있어. 휴거 직전에 누가 조명 불빛 속에서 나방 날아가는 걸 보곤 ‘나방이 휴거된다!’라고 외치는 바람에 잠깐 소란이 일었단 얘기 말이야. 유명한 얘기인데 정확히 어디서 일어난 일이었는지는 어떤 기사에서도 못 찾겠더라. 무슨 구전 설화 비슷하게 된 건지 뭔지……. 그런데 우리 제보자가 말하기로는, 그게 글쎄 자기네 기도원 일이었다고 하더라. 아니, 자기가 외쳤단 건 아니고. 주변에서 누가 그렇게 외치는 소릴 듣고서, 자기도 나방 휴거되는 모습 보려고 고개를 돌린 거래. 응, 그렇지. 그 나방이 바로 반달날개밤나방이었단 거야.
당연히 그땐 몰랐겠지. 무슨 곤충학자도 아니고. 하지만 어떻게 생긴 나방이었는지는 아주 똑똑히 기억난다는 거야. 왜, 아무것도 아닌데 괜히 머릿속에 강렬하게 박혀서 안 지워지는 장면이란 게 있잖아? 우리 제보자한테는 그게 그런 장면이었겠지. 최근까지는 그날 일을 별로 생각하고 싶지 않아서 머릿속 어느 구석에 죄다 밀어놓고 지냈는데, 그놈의 카드뉴스 논란이 기사까지 나는 바람에 우연히 ‘사라진 곤충을 찾습니다’ 프로젝트를 알게 돼서. 무슨무슨 곤충이 사라졌다는 건지도 좀 궁금해졌겠다 심심풀이로 홈페이지 들어가서 목록을 쓱쓱 내려보다가……. 머릿속이 순간 번쩍하면서 그날의 그 장면이 생생하게 떠올랐다지 뭐야. 그래서 뒤늦게야 정체를 알게 된 거래. 1992년 10월 28일 밤에 자기가 본 나방이 하필이면 처음 학계에 보고된 이후로 어디서든 단 한 번도 목격되지 않은, 어쩌면 진작에 멸종했을지도 모르는 엄청나게 드문 종이었다는 걸.
응? 말해 봐. 괜찮아, 괜찮아. 뭐라고 안 해……. 와, 예리한데? 네 말이 맞아. 나방 날아다니는 걸 슬쩍 한 번 보고서 모습을 똑똑히 기억했다는 건 말이 안 되지. 그건 우리 프로젝트 책임자 같은 나방 전문가도 힘들 거야. 나방이 날갯짓을 하고 있으면 생김새도 무늬도 전혀 안 보일 테니까. 그러니까 정확히 말하자면, 우리 제보자가 본 건 날아가는 나방이 아니었어. 하늘로 이끌려 올라가는 나방이었지. 날개를 이렇게 쫙 펼치고서, 천천히, 빛 속으로. 그래서 기억에 남을 만큼 선명하게 보였던 거야. 그 사람이 그러더라. 그때 조명 보고 몰려든 날벌레가 한두 마리도 아니었는데, 자기네들이 그때 아무리 들떠 있었다고는 해도 평범하게 날아가는 나방 보고서 휴거한다고 착각했을 리가 있겠냐고.
저기, 우리가 이걸 의심을 안 했겠니? 했어, 했다고. 나방이 휴거하는 황당한 얘기를 과학자들이 냉큼 믿을 리가 없잖아. 하지만 그 사람의 나방 묘사가 제법 정확했단 말이야. 우리 책임자가 함정 질문 던지는데도 안 걸려들었고. 증언 본격적으로 늘어놓기 전에 갑자기 끼어들어선, 날개 무늬가 어땠는지부터 기습적으로 물어봤거든? 왜, 곤충 이름이 반달날개밤나방이라고 하면 꼭 날개에 반달 모양이 그려져 있을 것 같잖아. 장난치려고 이야기를 적당히 꾸며낸 사람이라면 반사적으로 그렇게 대답할 가능성이 높고. 그런데 실제론 날개가 반원형에 가까워서 붙은 이름이고, 날개에는 갈색 세로줄 무늬만 있단 말이야. 응, 그렇게 답하더라. 그림도 정확하게 그렸고. 제보자가 우릴 속이려고 미리 철저하게 연습해 왔거나, 아니면……. 아니면 진실을 말한 거겠지.
그리고 만일 제보자가 정말로 우릴 속인 거라면, 적어도 그 연기력만큼은 칭찬해 줄 만했다고 생각해. 못 해도 아마추어 배우 정도 실력은 된다는 소리니까. 입 열기 힘들어하는 모습도 그렇고, 종이컵 잡은 손 벌벌 떨던 것도 그렇고, 무엇보다도 마지막에 이 말을 하는데 그게 도저히 가짜 같지가 않더라. 무슨 말이었냐면, 음, 자기가 나방 얘기를 꺼낸 게 이번이 처음었대. 휴거 소동 현장에 있었던 게 부끄러워서가 아니라, 그때 본 광경을 남한테 말하기에는 일단 자기부터 도무지 받아들일 수가 없어서.
생각해 봐. 한때 그 사람은 독실한 기독교인이었고, 휴거의 날이 오면 자기처럼 독실한 사람들만이 따로 부름을 받아서 하늘로 올라갈 거라고 굳게 믿었어. 그런데 어떻게 됐어? 자기네들 중엔 아무도 휴거된 사람이 없었잖아. 그것만으로도 이미 받아들이기 쉽지 않은 사건이었을 텐데, 하필 그러는 와중에 나방이 휴거되는 듯한 광경만큼은 똑똑히 봐 버렸다면……. 그걸 도대체 무슨 수로 이해할 수가 있겠어, 안 그래?
참 안타까운 일이지.
나한텐 충분히 이해되는 일이니까.
*****
아니, 아니라고. 교회 안 다녀. 너한테 전도하는 거 아니라니까.
그냥 그런 생각이 들었을 뿐이야. 우리 제보자는 사람 대신 나방만 휴거됐단 사실을 받아들이기가 너무 힘들어서 수십 년을 끙끙 앓았지만, 내 기준에서 그건 오히려 너무 자연스러운 사건이라고. 나방 휴거설은 아마 그날 신도들이 가졌던 믿음 중에서 제일 말이 되는 축에 들 걸? 그야 신이 존재한다면 분명히 인간보다 나방을 더 구원하고 싶었을 거 아냐. 왜냐하면 신은 분명 세상에서 절지동물을 제일 예뻐할 테니까. 자기가 만든 그 어떤 피조물보다도 말야.
생각해 보라니까. 지구상에 존재하는 동물 중에 적어도 80%가 절지동물이야. 그 애들은 아주 아주 옛날부터 번성했고, 땅이며 하늘이며 바다며 상상할 수 있는 거의 모든 서식지를 전부 손에 넣었어. 심지어는 다른 동물의 몸속까지 구석구석 비집고 들어갔단 말이야. 생활사야 말할 것도 없이 그 어떤 동물보다 다양하고, 복잡하고, 경이롭지. 그러면 우리랑 걔들 중에서 신이 더 공을 들여서 창조한 게 어느 쪽일지는 뻔하잖아. 세상의 종말이 다가올 때 구원받는 게 누구일지도……. 똑 같이 뻔하잖아. 오히려 안 그러면 이상한 거지. 여태 안 그랬으면 지금부터라도 그래야지.
잠깐, 너 지금 나한테 오컴의 면도날을 설명하려고 한 거야? 정말로? 제발, 좀. 미안한데 나도 면도날이라면 차고 넘치게 휘둘러 봤어. 그래, 제보자가 철저하게 거짓말을 꾸며내지 않았단 보장은 물론 없지. 연기력도 갖추고, 시나리오도 쓰고, 반달날개밤나방에 대한 정보도 꼼꼼하게 머릿속에 넣어 가면서 말이야. 응, 그래. 그것도 이미 다 생각해 봤어. 거미줄에 걸려서 죽은 나방을 착각했을 가능성도 있지. 기억이 왜곡됐을 가능성도 충분히 있고. 그걸 전부 고려한 다음에 말하는 거야. 어디까지나 이성적으로. 어디까지나 과학적으로.
응? 모든 가능성을 전부 고려한 결과가 어떻게 이거냐고? 이것 봐, 역시 하나도 모르잖아. 하기야 모르는 게 당연하긴 해. 왜냐하면 너는 절지동물 연구자가 아니니까. 내가 왜 휴거하는 나방 따위의 증언을 진지하게 고려할 수밖에 없었는지 진짜로 이해하려면 논문에는 실리지 않는, 이쪽 학계 바깥으론 절대 안 나가는, 자기들끼리만 연구실에서 몰래몰래 소곤거리는 종류의 얘기가 정확히 어떤 것들이 있는지를 먼저 알아야 할 테니까. 오, 혹시 궁금해? 말해 줄까? 좋아. 그렇게까지 알고 싶다면야.
있지, 절지동물 개체수 감소 문제에서 진짜 설명하기 힘든 사례는 아기멧돼지이 따위가 아니야. 그건 흔하고 평범한 사례지. 신기하다는 건 이런 걸 말한다고. 실험실 사육장에서 애지중지 기르고 있던 마지막 녹색길앞잡이 한 쌍이 어느 날 모래 위에 발자국만 남기고 증발했다거나, 방금까지 먹잇감 잡아먹는 카우아이동굴늑대거미를 관찰하고 있었는데 눈 한 번 깜박였더니 반쯤 먹힌 먹이밖에 안 남았다거나, 몸속까지 파고들었던 기생따개비들이 어느 날 몽땅 사라져 버린 것처럼 살에 구멍만 뻥뻥 뚫린 상어가 그물에 낚여 올라온다거나……. 그래, 말도 안 되지. 터무니없지. 그 잘난 오컴의 면도날로도 썰어버릴 방법이 보이질 않지. 하지만 전부 실제로 일어난 일이거든.
옛날에는 이런 사례가 학계 구석에서만 무슨 괴담처럼 한두 건 떠돌고 그랬단 모양이야. 요즘은? 하나라도 직접 못 들어본 연구자가 없을 정도일 걸. 이런 소릴 밖에서 크게 떠들었다간 높으신 분들이 절지동물 개체수 감소 문제를 진지하게 생각하지 않을까 봐서, 괜히 예산이나 더 깎일까 봐서 굳이 말을 안 하는 것뿐이지. 그리고, 봐, 이런 말도 안 되는 일을 연구자들이 대체 뭐라고 불러야 하겠어? 더는 ‘개체수 감소’라고 표현할 수 있는 차원의 얘기가 아니잖아. 새로운 현상에는 새로운 이름표가 필요한 법인데, 아주 최근까지는 이런 현상을 부를 적당한 표현조차 아무도 못 찾고 있었단 말이야. 그래, 최근까지는. 왜냐하면 내가 바로 얼마 전에 딱 좋은 용어를 찾았으니까.
휴거잖아. 그것 말고 대체 뭐가 있겠니.
1992년에 상상했던 휴거가 정확히 그런 거였잖아.
네, 네, 말도 안 되죠. 나방이랑 따개비가 휴거할 리 없죠. 그 어떤 과학자라도, 하다못해 목사나 신부라도 아마 대다수는 똑같이 이렇게 대답하시겠죠. 하지만 있지, 그분들 중에 두 달 전쯤 경기도 연천 전곡읍 산속 계곡을 찾아가서 밤을 지새 보신 분이 과연 얼마나 계실 것 같아? 아니, 그러려고 간 건 아냐. 늘 하는 생태조사였어. 아직은 생태계다운 생태계가 조금이나마 살아남아 있는 동네니까 누군가는 신경을 써야지. 그치만 멸종위기종 절지동물 서식지를 기껏 방문한 김에, 연구실에서 주워들은 얘기도 겸사겸사 한 번쯤 검증해 보지 말란 법은 또 없잖아. 안 그래? 마침 술 취한 곤충학자 녀석들이 말해 준 비법도 있었고 말이지. 반딧불 서식지에서 조그만 빛 움직이는 걸 포착하려고 시야를 넓게 잡는 방법이라는데, 너도 알다시피 그딴 걸 쓸 이유는 한참 전에 없어졌거든. 반딧불은 제보도 한 건 없었다고. 그치만, 있지, 통하기는 확실히 잘 통하더라. 찾은 게 반딧불은 아니었지만.
응. 이번에는 네가 제대로 이해한 거 맞아.
나는 휴거를 직접 봤어.
*****
너라면 알겠지? 내가 전곡으로 생태조사를 나간 이유. 하필이면 거기서 휴거 얘기를 검증하고 싶었던 이유. 거기잖아. 내 옛날 연구 주제 서식하는 데가. 연구비고 뭐고 도저히 한 푼도 떨어지는 게 없어서, 먹고 살겠다고 그나마 사정 나은 곤충학계에 빌붙기 전에 진짜 열심히 연구하던 애들 말이야. 응, 걔 맞아. 감마루스 전고겐시스. 칼세오리옆새우. 정말 하루 종일 지긋지긋하게 붙어 살았는데, 백령도는 그 꼴이 났고 남은 서식지라곤 전곡뿐이고, 더는 연구할 수도 없고 멀리서 계속 발 동동 구르면서 걱정이나 하고……. 정말, 정말 걱정했거든. 확인하고 싶었어. 세상이 이 난리가 나는 와중에 다들 좀 건강한지, 하다못해 몇 마리쯤 남아 있기라도 한지. 아니면, 아니면 정말 만에 하나라도, 기적적으로 살아날 길을 찾아냈는지.
아니나 다를까, 순조롭게 줄어들고 있더라. 계곡 바닥 몇 분만 뒤적여 봐도 알겠던데. 이대로라면 다음 10년을 견딜 수 있을까, 아마 힘들겠네, 그렇게 결론 내릴 수 있을 정도였어. 너무 당연한 결론이라 눈물도 안 나더라고. 그 작고 보잘것없는 등각류 녀석들이, 굼실거리고 톡톡 튀고 밥 먹고 짝짓기하는 것밖에 모르는 불쌍한 것들이 요즘 같은 세상에서 대체 뭘 어쩔 수가 있었겠어. 훨씬 크고 똑똑한 우리도 손을 전혀 못 썼는데. 그래도 그냥, 이렇게 되기 전에 논문 한 편이라도 더 쓸 걸 그랬나 싶긴 하더라. 세상에 이름 한 줄이라도 더 남겨놓게.
별로 오래 감상에 잠겨있진 않았어. 나는 공식적으로 옆새우 개체수 세려고 간 게 아니었으니까, 낮에는 일단 곤충 조사하면서 좀 돌아다녔지. 어차피 내가 곤충학자들한테 배운 방법은 밤에만 통하는 거였으니까, 그때까지 시간을 좀 의미 있게 때우고 싶기도 했거든. 온통 깜깜하고, 서늘하고, 풀벌레 소리 들리고, 그렇게 될 때까지 말이야. 응, 산속에서 밤까지 기다렸어. 그리고 그거 알아? 밤에는 정말 조용하더라. 조용해서 귀가 아플 정도로. 난 거기가 그새 그렇게까지 조용해졌을 줄은 몰랐어. 풀벌레 소리가 없어진 산이 그렇게 조용할 거라고는 미처 생각 못 했어. 너무 충격을 받아서 시야 넓게 잡는 걸 한동안 잊어버렸을 정도였다니까.
그러다가, 응, 보인 거야. 무언가 밝은 게 순간 어른거린 거야. 그래서 퍼뜩 정신 차리고, 배운 대로 눈 크게 뜨고서 곁눈질로 계곡 쪽을 천천히 훑으니까……. 그래. 있었어. 계곡 한가운데. 희미하고 둥근 빛 하나가. 대충 골프공 정도 크기였을까? 하얗고 반짝거렸어. 빛으로 된 동그란 솜사탕 같은 느낌이었다고나 할까. 느낌 알겠어? 모르겠으면 됐고. 중요한 건 그게 얼마나 둥글고 반짝였는지 같은 게 아니니까. 그 빛이, 돌 틈에서 잠시 일렁이다가 천천히 허공으로 떠오르기 시작한 그게 대체 뭘 감싸고 있었는지가 진짜 중요한 거야. 뭐겠니, 그게. 가까이 가서 보니까 그 조그만 애들이, 지구상에 마지막으로 남은 칼세오리옆새우 한 무리가, 물 밖으로 끄집어냈을 때처럼 요란하게 톡톡 튀기는커녕 그냥 편안하게 둥실거리면서 떠오르고 있더라. 점점 높이, 점점 멀리.
그때 깨달은 거야. 이러다가 빛이 머리보다도 나무보다도 높이 올라가고 나면, 그 뒤로는 내 불쌍한 연구 주제 녀석들을 영영 못 보게 되리란 걸. 그러면 어떻게 해야겠어? 난 아무 생각 안 했어. 그냥 눈을 들이밀었어. 빛 속으로. 그 안에서 도대체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그 애들을 대체 어디로 데려가려는 건지 내 눈으로 똑똑히 확인하려고. 반짝임이 온 시야를 다 채울 때까지. 빛 말고는 아무것도 안 보이고, 안 느껴지고, 몸은 가만히 있는데 의식만 둥실둥실 떠오르는 것처럼 빛에 이끌려 올라가 그대로 집어삼켜질 때까지. 정신을 차렸을 때 나는 정말로 그 빛 속에 있었어. 빛 속의 세상을 보고 있었어.
이제부터 해줄 얘기를 못 믿겠다면, 뭐, 그것도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해.
하지만 너도 겪었다면 믿을 수밖에 없었을걸.
*****
빛 속에는, 그게 사실은 그냥 빛이라기보단 엄청나게 반짝반짝하는 온갖 보석으로 된 터널 같은 거였는데, 그게 까마득하게 길고 눈부시고 나는 그대로 쭈욱 빨려 들어가는 기분이었어. 그러다가 그 끝으로 나오니까 거기에는 방금까지 있었던 산속이랑 똑같이 나무가 있고, 풀이 있고, 또 개울도 졸졸 흐르고 있었어. 한눈에 보기에도 이상적인 서식지였어. 물 맑고, 수온 적당하고, 수생식물도 풍부하고, 옆새우가 서식하기 적당한 돌도 많고. 옛날에는 아마 전곡에도 백령도에도 그런 데가 있었을 거야. 지금은 세상 어디에도 없겠지만. 하지만 거기엔 정말로 있었단 말이야. 그 애들이, 나보다 조금 먼저 빛에 감싸여 있었던 칼세오리옆새우들이, 벌써 새 서식지에 적응해서 돌 틈으로 꾸물꾸물 기어들고 있었단 말이야.
그리고……. 개울만이 아니었어. 칼세오리옆새우만이 아니었어. 나는 1960년대 이래로 세인트헬레나집게벌레를 직접 본 유일한 사람이야. 그게 바위 근처에 쌓인 낙엽 위를 그냥 막 걸어 다녔다니까? 내 손등 위로도 슬그머니 올라왔다니까? 걔들만이 아니라 또, 눈을 돌려보면 이쪽에는 로키산메뚜기가, 저쪽에는 코나큰자나방이, 이제는 사라진 지 오래라서 옛날 논문에서밖에 못 보는 그 모든 애들이 전부, 전부 제 서식지마다 잔뜩 기어다니고 또 날아다녔어. 다들 거기에 있었다고. 멀쩡하게 살아서, 건강하게, 번성하면서.
그런데, 그런데 그, 그것도 있었어. 더 큰 것들. 더 이상한 것들. 어떤 건 사람을 닮았는데 머리가 많았어. 소 머리도 달렸고, 사자 머리랑 독수리 머리도 달렸고, 날개도 네 개나 달렸고 불타는 칼 같은 걸 들고서 나무 사이로 뚜벅뚜벅 걸어 다녔어. 다른 건 막 바퀴처럼 허공을 굴러다녔어. 그 안에 또 바퀴가 있고, 또 바퀴가 있고, 바퀴마다 눈이 다닥다닥 붙어 있어서 엄청 징그러웠어. 그런 이상한 것들이 몇 번이나 내 앞을 지나갔는데, 그래, 거기에도 어김없이 잔뜩 있더라. 이, 벼룩, 그런 게 털가죽이며 날개며 눈꺼풀 사이사이마다 빼곡하더라. 아, 그리고 아기멧돼지이도. 어디로 사라졌는지 인도 학자들이 도통 설명할 수가 없었다는 그 녀석들도. 사자 머리에 온통 다닥다닥 달라붙어서는 세상모르게 피나 쪽쪽 빨고 있길래, 조금 더 가까이서 보려고 고개를 살짝 기울이는데……. 그때, 그때 그게 말했어. 사자 머리가 나를 똑바로 보고 말했어.
하늘과 땅과 바다와 물들의 근원을 만드신 이를 경배하라.
너무 놀라서 몸이 화들짝 뒤로 넘어가는데, 그러면서 하늘이 눈에 딱 들어오는데 거기에는 해도 아니고 달도 아니고, 그런 게 떠 있지 않고 대신 다른 게, 그래! 양! 그건 양이었어. 어린 양 말이야. 그런데 그 양의 눈하고 코에서는 구더기가 줄줄 흘러내리고 털이 뭉텅이로 빠져서 울긋불긋한 피부 위로 기어다니는 작은 것들이 있고 뱃가죽은 온통 게와 조개와 따개비로 뒤덮여서 진물이 뚝뚝 떨어지고 그것이 계속 알이며 애벌레를 토하면서 말하는데 붕붕거리고 또 달그락거리는 소리였지만 틀림없이 틀림없이 이렇게 말하고 있었던 거야 그게 뭐였느냐면 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그들의 것임이요 애통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위로를 받을 것임이요 온유한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땅을 기업으로 받을 것임이요 계속 계속해서 그렇게 그러다가 그게 나를 봤어 양이 나를 봤어 양이 나를 봤어 양이 나를 봤어.
뜨겁고, 아팠어. 엄청. 그렇게밖에 표현 못 해.
이것만큼은 웃으면서 말할 수가 없네.
아주 잠깐이었을 거야. 하지만 그 잠깐이 영영 안 끝나는 것 같았어. 죽을 것 같았는데 죽지도 않고, 미칠 것 같았는데 미칠 수도 없더라. 그러다가 갑자기 정신이 툭 끊기는가 싶더니, 꿈에서 튕겨 나오는 것처럼 눈이 번쩍 뜨이더니……. 다시 산속이었어. 계곡 얕은 데에 누워 있었어. 차갑고, 축축하고, 하늘 저 높은 데서는 희미한 빛이 점점 멀어지는 중이고. 그걸 계속, 하염없이 올려다봤어. 빛이 완전히 사라질 때까지. 아무리 시야를 넓게 잡고 눈을 굴려도 별빛 말고는 아무것도 안 보이게 될 때까지.
다음날 다시 계곡에 가 봤을 때, 칼세오리옆새우는 한 마리도 못 찾았어.
*****
그럼, 당연히 병원 가봤지. 멀쩡하다던데? 정신과에서도 그랬고, 뇌 CT 찍어 봤는데도 전혀 이상 없었고. 네가 아무리 걱정해도 그쪽은 의사들이 더 전문가야. 난 전문가 말을 듣는 사람이라고. 그리고, 봐, 그때 이후로 내 정신건강은 오히려 엄청나게 좋아졌다니까? 잘 웃고, 잘 자고, 밥도 훨씬 잘 먹지. 그럼 된 거 아냐? 아, 그래, 그렇게 말할 줄 알았다. 내 머리가 이상해진 게 아니라면, 대체 방금 늘어놓은 구구절절한 얘기를 뭐라고 해석해야 하느냐는 거지? 몰라, 나라고 다 알겠냐. 하지만 가설을 못 세워볼 건 없지. 우리 일이 그거 아니겠니.
어쩌면, 정말 만약의 이야기인데, 우리는 여태 절지동물의 환경 적응 능력을 과소평가해 왔는지도 몰라. 그 애들은 어디든지 비집고 들어가서 살 수 있는데도, 고생대 때부터 계속 그렇게 살아왔는데도. 그중에서도 특히 기생은 절지동물의 전문 분야지. 어떤 갑각류는 불가사리 몸속에 파고들어서 자기 몸을 별 모양에 딱 맞춰. 물고기 혀를 잘라내고 그 자리에 자리 잡는 애들도 있어. 심지어는 숙주가 된 수게의 호르몬을 조절해서 암컷이 된 것처럼 자기를 품게 만드는 따개비까지 있다고. 만일 빛 너머에서도 정확히 그런 일이 일어났다면 어떨까? 지구 환경이 나빠지니까 절지동물들이 그쪽으로 우르르 탈출해서는, 시간이란 게 의미가 없는 영원한 약속의 땅에 자리를 잡고서 진화하고 또 진화한 끝에, 원래 우리한테 약속돼 있던 구원을 냉큼 가로챌 방법을 찾아냈다면 말이야.
나는 믿어. 그 애들은 틀림없이 해낼 수 있었을 거야. 여기서처럼 거기서도, 땅에서 이룬 것같이 하늘에서도, 기생이야말로 전문 분야니까. 그래서 게가 제 자식 대신 따개비를 품도록 조종하듯이, 그 어린 양이 온 인류 대신 온 절지동물에게 무한한 사랑을 느끼도록 본능을 교묘하게 매만져서……. 아마 그래서 멸종위기종들이 먼저 사라졌을 거야. 고생하고 핍박받는 절지동물일수록 더 귀하게 여겼을 테니까, 먼저 하늘로 데려가고 싶었을 테니까. 우리 제보자가 1992년 10월 28일에 본 게, 두 달 전쯤에 내가 전곡 산속에서 본 게 바로 그런 장면이었는지도 몰라.
아니면 뭐, 원래부터 구원은 그 애들 몫이었는지도 모르고.
그거야말로 무엇보다 자연스러운 일이니까.
있지, 뭐가 사실이든 나는 그냥 다행이라고 생각해. 걱정했단 말이야. 손쓸 새도 없이 다 멸종해 버릴 것만 같아서. 정말로 그렇게 되어 가는 것처럼 보여서. 그런데 사실 그게 아니었다면, 전부 다른 데에 잘 살아남아 있었다면 나야 더 바랄 게 없지. 얼마나 다행이니? 얼마나 기쁜 일이니? 맞아, 그래서 오늘 토론회 때도 화를 안 낸 거야. 그 사람 말이 맞았거든. 절지동물들은 이미 멋진 새 서식지를 찾아서 적응했고, 거기서 영원토록 얼마든지 번성할 거야. 그 애들한텐 미래가 있어. 어쩌면 원래 우리 것이었을지도 모르는 찬란한 미래가 나라와 권세와 영광이 영원히! 그래서 기분이 좋아진 거야. 이제는 드디어 걱정을 좀 안 해도 되니까. 그냥 웃어도 되니까.
어, 뭐라고? 말해 봐. 그래. 으응……. 아니, 그건 진짜 도대체 말이 안 되는 소리다. 여기서 더 뭘 걱정하라는 거야? 지구상 동물의 적어도 80%가 절지동물이야. 그 애들이 언젠가는 저쪽으로 몽땅 떠나갈 텐데, 그 뒷일을 지금에 와서 걱정한다고 무슨 뾰족한 수가 생기기라도 할 것 같아? 텅 비어서 완전히 망가진 생태계를 갖고 우리가 도대체 뭘 할 수 있겠니. 하다못해 절지동물 개체수만큼 로봇을 만들 수도 없는데. 그러니 뭐, 이제는 다가올 미래를 대비해 봐야 정말로 아무 소용 없지. 그냥 좋아하는 연구 설렁설렁 하면서, 가끔 만나서 이렇게 수다나 떨면서 마음 편하게 말라비틀어지면 돼. 아무 대책 없이. 아무 고민 없이.
상상해 봐.
기쁘지 않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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