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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이지 않는 빛으로 가득한 우주

2025년 7월 통권 238호

우리는 태양 빛을 통해 세상을 바라본다. 태양 빛에 적응하며 진화해 온 결과, 우리의 눈은 태양 복사 스펙트럼의 중심 대역인 가시광선(약 400~700nm)에 가장 민감하게 반응하게 되었다. 우리가 오랫동안 ‘빛’이라 불러온 파장대는 태양 빛에 의지하여 살아온 인간의 매우 좁은 ‘가시광역대’에 해당한다.


하루가 저물면, 인류는 밤하늘을 올려다 보았다. 밤하늘은 한동안 미지의 대상이자 상상의 무대였다. 인류는 점차 밤하늘의 변화로부터 규칙을 찾기 시작했고, 밤하늘은 이내 시간과 계절, 그리고 방향을 알려주는 대상이 되었다. 그렇게 인류는 과학이라는 언어를 갖게 되었다.


밤하늘의 어둠은 오랫동안 당연한 것이었다. 어둠은 설명되어야 할 무엇이 아니라, 자연 질서의 일부였다. 하지만 우주의 크기가 무한하다는 시각이 등장하자, 밤하늘이 어둡게 보이는 이유가 의문으로 떠올랐다. 무한한 개수의 별이 밤하늘을 빈틈없이 채운다면, 별빛이 누적되어 밤하늘 전체가 밝게 빛나야 하기 때문이다. ‘올버스의 역설’로 알려진 이 의문은 우주에 대한 기존 상식을 되돌아보게 했다. 혹자는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별빛이 우주상의 먼지나 기체에 의해 흡수되기 때문이라고 주장하였다. 그러나 흡수된 빛은 언젠가 다시 방출되어야 하기에, 이 주장은 밤하늘이 어두운 이유를 제대로 설명하지 못했다. 


빅뱅 우주론이 등장하면서 우주를 이해하는 패러다임이 바뀌었다. 새로운 시각에 따르면, 우주는 유한한 시간 동안 팽창해 왔다. 빛의 속도 역시 유한하기에 우리가 볼 수 있는 우주의 범위는 빛이 우주의 나이 동안 나아갈 수 있는 거리로 제한된다. 관측할 수 있는 우주의 범위가 유한하게 제한됨으로써, 밤하늘에 ‘무한’ 한 별빛이 가득 차야 한다는 전제가 무효해진다. 


별이 우주 전체에 고르게 퍼져 있다는 기존의 통념과 달리, 모든 별은 은하라는 집단을 이루어 분포하고 있다. 우리가 맨눈으로 관측할 수 있는 별들은 우리은하 내부의 별들이며, 대부분의 별은 다른 은하에 속한 채 우리로부터 매우 멀리 떨어져 있다. 은하는 우주의 팽창에 따라 서로 멀어지는데, 멀어지는 천체에서 오는 빛은 도플러 효과로 인해 파장이 늘어나게 된다. 우리로부터 멀리 떨어진 은하일수록 더 빠른 속도로 멀어지고, 그 빛은 더욱 긴 파장대로 이동하게 되어 가시광선 영역을 벗어날 가능성이 높아지게 된다. 따라서, 가시광선으로 본 밤하늘에서는 빛보다 어둠이 훨씬 더 많은 면적을 차지하게 된다.


                                                                                                                                     

             
 가시광선이라는 좁은 틀을 벗어나 다른 파장대로 우주를 바라보면 전혀 다른 모습이 펼쳐진다. 그 대표적인 사례로 우주 마이크로 배경복사(CMB, Cosmic Microwave Background)가 있다. 1965년 펜지어스와 윌슨은 벨 연구소에서 전파 안테나의 성능을 테스트하고 있었다. 이들은 안테나의 방향을 어느쪽으로 바꾸더라도 마이크로파대의 잡음이 사라지지 않는다는 것을 확인했다. 초기 우주에서 방출된 빛의 이론적 예측치와 이 잡음의 특성이 정확히 일치한다는 것이 밝혀짐으로써, 이 마이크로파는 빅뱅 우주론을 뒷받침하는 가장 직접적인 증거가 되었다. 관측할 수 있는 가장 오래된 빛인 CMB는 오늘날에도 우주의 모든 방향에서 균일한 온도와 밝기로 감지되고 있다. 즉, 마이크로파로 바라본 우주는 그리 어둡지 않은 것이다.


지구 대기에 의한 마이크로파의 흡수와 산란을 피해 우주 궤도로 보내진 Planck 위성과 CMB 관측 결과. 대기권 밖에서는 CMB 전천 지도를 백만분의 일 수준으로 정교하게 측정할 수 있다. CMB에서 빨간색과 파란색으로 표시된 지역은 평균 온도에 비해 십만분의 일 수준으로 온도가 더 높거나 더 낮은 지역을 의미한다. 이 온도차이는 은하 형성의 씨앗이 되는 초기 우주의 밀도요동의 흔적을 나타낸다. 


한편, 21cm 파장의 전파신호는 중성 수소의 분포를 드러냄으로써 가시광선에서는 볼 수 없었던 우주의 또 다른 모습을 보여준다. 이는 수소의 에너지상태가 초미세구조 사이에서 변할 때 방출되는 전자기파로써, 개별 수소 원자에서는 수천만 년에 한 번 일어날 정도로 매우 희귀한 현상이다. 그러나 우주에는 워낙 방대한 양의 중성수소가 존재하기 때문에, 누적된 21cm 전파 신호는 관측할 수 있는 세기를 갖는다. 우주의 암흑시대, 즉 별이 생겨나지 않은 시기에는 거의 모든 수소가 중성수소 상태로 존재했던 것으로 추정된다. 따라서, 이 시기에 방출된 21cm 신호는 별빛이 존재하지 않았던 우주의 물질 분포를 엿볼 수 있는 유일한 단서가 된다.


암흑시대의 21cm 신호는 아직 관측되지 않았는데, 이때 만들어진 21cm 신호는 도플러 효과에 의해 지구에서는 관측이 거의 불가능한 초저주파(7~50MHz)가 되어 도달하기 때문이다. 이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지구 밖 혹은 달 뒷면에서 이 신호를 감지하려는 다양한 시도가 구상되고 있다. 언젠가 암흑시대의 21cm 신호를 감지하게 된다면, 별빛조차 없어 '암흑'이라 불리우는 우주의 가장 어두웠던 시기를 보게 되는 것이다.


놀랍게도, 우리가 '어둠'이라 믿어왔던 밤하늘이 희미한 가시광선으로 가득 차 있다는 사실이 밝혀지고 있다. 낮은 표면 밝기(LSB: Low-Surface Brightness)를 갖는 은하 및 은하 주변의 희미한 구조물들은 우주의 어둠 속 잔광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이다. 한동안 학계의 관심은 특정 밝기 이상의 천체를 더욱 정밀하게 분해하여 보는 데에 집중되었다. 관측 기기 역시 희미한 빛을 감지하기 보다는 해상도를 높이는 방향으로 설계되었다.


'어둠'이라 여겼던 배경에 정보가 숨어 있다는 사실이 주목받으면서, LSB를 탐지하기 위한 새로운 시도들이 이루어지고 있다. 그 결과, 은하와 은하 사이의 공간이 은하 간 상호작용으로 형성된 희미한 구조들로 채워져 있음이 밝혀졌고, 그동안 인식되지 않았던 희미한 은하들도 새롭게 발견되었다. 나아가, 너무 희미하고 작아 개별적으로 분해되지 않는 수많은 은하의 빛들이 중첩되어 배경광(Sky Background)을 이루고 있다는 것이 밝혀졌다. 너무 희미해서 잘 보이지 않을 뿐, 밤하늘의 전 영역이 LSB 배경광으로 가득 채워져 있는 것이다.


Canada-France-Hawaii Telescopoe(CFHT)로 관측한 은하들의 LSB 칼라 합성 이미지. 관측 이미지에서 거의 빈틈없이 은하 및 LSB 구조로 채워진 것을 확인할 수 있다. 관측 기술의 발달로 지금보다 더 희미한 빛을 감지할 수 있다면 이미지가 모두 빛으로 채워질 것이다. 빨간색 사각형 안에 들어온 영역을 기존의 관측 이미지와 비교하면 근접한 흰색 사각형과 같다 (참고: Duc et al. 2018).


                                                                                                                                      

                       

우리는 어둠 속에 묻혀있는 희미한 빛을 감지하기 위해 인간의 한계를 극복할 수 있는 다양한 관측 기술을 개발해 왔다. 대형 구경의 망원경을 개발함으로써, 동공에 비해 수백만 배 더 많은 빛을 받아들이고 있다. 또한, 순간적으로 빛을 감지하는 동공과 달리, CCD(Charge-Coupled Device)처럼 빛을 오랫동안 모으고 저장할 수 있는 능력은 우주의 어둠을 응시하는 데에 결정적인 역할을 하고 있다. 관측 파장 영역도 가시광선을 넘어 X선, 감마선, 자외선, 적외선과 전파로 확장되었으며, 이 과정에서 지구 대기의 방해를 피하고자 우주 망원경을 제작하여 궤도에 올리고 있다.


아직 다 보지 못했을 뿐 우주의 빛과 정보는 끝없이 펼쳐져 있다. 우리는 우주의 다층적인 시공간에 다가서기 위해 주어진 한계에 머물지 않는다. 어쩌면 '어둠'은 우리가 아직 다 보지 못한 빛의 또 다른 이름인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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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지혜
한국천문연구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