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F Review

우주적 느와르의 세계

2025년 5월 통권 236호

 해도연 작가는 현직 천문학자이며, 과학적 지식과 상상력을 바탕으로 한 이른바 ‘하드SF’를 쓴다. 그의 작품을 처음 펼칠 때는 언제나 ‘이렇게 어려운 걸 내가 읽을 수 있을까’ 하는 걱정이 앞선다. 그런데 읽다 보면 ‘어떻게 이렇게 엄청난 상상을 할 수 있지!’ 하고 한 문단에 평균 세 번씩 감탄하게 된다. 여기서 ‘엄청나다’는 규모가 우주적으로 크다는 의미이기도 하고, 사건과 설정의 바탕이 되는 지식의 넓이와 깊이가 방대하다는 뜻이기도 하며, 그런 탄탄한 학문적 기반 위에 펼쳐지는 상황들의 생생함과 흡인력이 상상을 초월한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이렇게 말하면 해도연의 작품 세계가 굉장히 어렵게 들리는데, 진입장벽이 높은 구간은 대부분의 작품에서 도입부 몇 페이지의 설정 설명 정도다. (작품마다 대략 비슷하게 도입부에 막 각주도 달리고 여러 설명이 많아서 무서워 보이는 점으로 미루어 작가가 독자를 강하게 키우기 위해 일부러 통일된 형식을 고수하는 것 같기도 하다.)

줄거리 전개의 특성상 해도연 작품들은 대부분 추리소설 혹은 추리 스릴러의 구조를 따른다. 그의 작품 세계를 관통하는 키워드는 ‘위기’다. 「위그드라실의 여신들」에서는 우주적인 바이러스가 처음에는 지구 식물을, 다음으로는 곤충을 공격해서 지구가 멸망할 위기에 처한다. 「위대한 침묵」에서 지구에 위기를 일으키는 것은 거대한 다국적 기업의 무분별한 욕심이다. 반면 『마지막 마법사』에서는 일단 재난부터 일어나고 이야기가 시작된다. 서울 한복판에서 거대한 재난이 일어나는데 그 희생자들의 시신을 탈취한 사람들이 특정한 ‘마법적’ 힘을 가지게 되는 것이다. 

그러면 어째서 이런 위기 혹은 재난이 발생했는가? 작품 속에서 주인공들이 이 질문에 대한 대답을 찾으려 하기 때문에 해도연 작품이 추리 장르의 특성을 보인다고 설명할 수 있다. 추리소설의 필수요소는 수수께끼다. 전형적인 추리소설에서는 어떤 피해가 일어나고, 그로 인해 피해자가 발생한다. (피해는 살인사건처럼 큰 범죄일 수도 있고 아주 작은 일일 수도 있으며 피해자가 죽거나 죽지 않아도 추리소설은 성립한다.) 탐정은 주변 정황, 인물들, 무엇보다 현장에 남은 증거를 바탕으로 추리력을 발휘하여 사건의 본질을 파헤친다. 그리하여 누가 어째서, 어떤 동기로 인해 범죄를 저질렀는지에 대한 수수께끼를 푼다.

『베르티아』에 수록된 「바람메뚜기는 왕이 없는 세상을 꿈꾼다」에서는 의료용 로봇이 병원에서 오작동을 일으키는 사건이 일어나고, 이 때문에 의료용 로봇에 의존하던 환자가 피해를 입는다 (다행히 죽지는 않는다.) 그리고 주인공 진서가 이 사건의 원인을 파헤치기 위해 투입되면서 이야기가 숨 가쁘게 전개된다. 그런데 진서는 수사하던 도중에 의료용 로봇이 ‘유령’을 보았기 때문에 오작동을 일으켰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그리고 곧 진서 자신도 맨눈으로 볼 수 없었던 세계를 본다는 것이 어떤 일인지 직접 체험해서 알게 된다. 추리소설의 본질이자 핵심인 수수께끼의 답을 폭로할 수는 없으므로 자세한 설명은 이쯤에서 생략한다.

그런데 해도연 작가는 전체적인 작품 세계에서 과학적 지식으로 수수께끼의 답을 척 내놓는 단순한 구조에만 의지하지는 않는다. 그의 작품 속에서 대부분의 경우 하나의 사건, 하나의 위기 뒤에 그와 연결되는 더욱 큰 위기나 재난이 다가오고 있다. 주인공은 당연히 그 재난이나 위기를 막아내고 싶다. 그런데 한 인간의 힘만으로 우주 전체를 구할 수는 없다. 그래도 위기의 원인을 알고 다가올 재난의 규모를 짐작할 수 있다면 이성과 지식, 그리고 양심과 공감능력을 모두 갖춘 인간으로서 주인공은 어떤 결단을 내려야 한다. 

여기에 해도연만의 독특한 느와르, 해도연식 ‘어두운 스릴러’의 특징이 있다. 스릴러는 추리소설에 인접한 장르인데, 추리소설의 핵심이 수수께끼라면 스릴러의 핵심은 음모다. 어떤 개인이나 조직이 악한 마음을 가지고 위기나 재난을 일으킬 음모를 꾸미는 것이다. 그리고 주인공은 이 재난과 위기를 막아 음모를 좌절시키기 위해서 동분서주하게 된다. 작품에서 음모의 내용이 어떤 것이고 그 음모를 꾸미는 자가 누구인지부터 먼저 파헤쳐야 한다면 줄거리는 수수께끼 풀이가 이후 악당과 음모에 맞서는 사건으로 이어지는 추리 스릴러가 된다. 도입부에서 음모의 내용이 먼저 제시되고 음모를 막고 재난과 위기를 미연에 방지하기 위해 주인공이 노력하는 과정에서 그 음모를 꾸민 악당이 누구인지 수수께끼가 풀린다면 스릴러 추리소설이라고 할 수 있다. 인접한 장르이다 보니까, 그리고 추리소설보다는 아무래도 스릴러가 역동적인 장면들이 많이 들어가고 이야기의 범위도 커지기 때문에, 스릴러와 추리 기법은 함께 사용되는 경우가 점점 많아지는 모양이다.

미국의 대중문화학자 제리 파머(Jerry Palmer)의 분류에 따르면 스릴러 중에서 주인공이 악당의 음모를 분쇄하여 사건이 근본적으로 해결되고 세계가 평화를 되찾는 이야기는 ‘긍정적 스릴러’이다. 반면 한 번의 음모를 분쇄하고 하나의 악당을 제거했더라도 세계 혹은 사회 구조의 부조리와 거대 조직의 악한 의도가 그대로 살아남아 미래에 불안한 그림자를 드리운 채로 끝나면 ‘어두운 스릴러’가 된다. 요즘 헐리우드 영화계가 속편을 만들고 프랜차이즈를 형성하기 위해서 이런 어두운 스릴러의 구조를 많이 사용하는 것 같다.

해도연 작품은 대부분 어두운 스릴러에 속한다. 그 이유는 헐리우드 영화계처럼 얄팍하게 속편을 자꾸 만들기 위해서가 아니라 (속편이 나오면 반가울 것 같다) 인간의 근본적인 한계 때문이다. 하나의 위기를 막아냈다 해서 인간이 우주 전체의 움직임을 통제하고 미래를 관리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인간은 연약하고 무지하기 때문이다.


“암흑 에너지는 우주를 팽창시키는 척력이기도 하지만, 가짜 진공을 유지해주는 에너지이기도 해.” [...]

우리가 사는 우주의 진공은 진짜가 아니다. 아무것도 없는 완벽한 진공으로 보여도 사실은 그보다 더 낮은 에너지 단계가 있다. (해도연, 「텅 빈 거품」, 『텅 빈 거품』 168쪽) 


우주는 보이지 않는 것들로 가득 차 있다. 그러나 인간은 추측하고 짐작할 수 있을 뿐 암흑 에너지를 느낄 수도, 가짜 진공의 속을 볼 수도 없고 진짜 진공이 태양계를 덮쳐오는 위기를 막아낼 수도 없다. 


기생선이 호버만-다이슨 스피어에 다가갈수록 상미는 느껴본 적 없는 경이감에 압도되었다. 스피어의 고리 하나의 두께가 목성보다도 컸다. 그럼에도 질량조차 없는 것처럼 보이는 빠르고 매끄러운 움직임은 눈앞에 있는 것이 1000만 킬러미터 규모의 구조물이라는 걸 잊게 했다. (해도연, 「텅 빈 거품」, 203-204쪽)


주인공이 느끼는 경이감은 즐거움이나 기쁨이 아니라 압도되는 경험, 두려움에 더 가깝다. 주인공 상미는 이 우주선의 구조나 ‘진공 붕괴’의 원인을 누군가 자신에게 설명해준다 해도, 다가오는 위기를 막기는커녕 이해조차 할 수 없다는 것을 안다. 


「우린 저... 미소 공간을... 얼마나... 이해하고... 있을까...」

(해도연, 「위대한 침묵」, 『위그드라실의 여신들』 58쪽)


인간은 거대한 우주도 작디 작은 원자 속 세상도 이해하지 못한다. 인간은 그토록 하찮은 존재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해도연의 주인공들은 포기하지 않는다. 인간의 힘과 지식이 모자란다면 우리에게 남은 것은 공감과 연대뿐이다. 의식을 가진 생명체로서 이것은 가장 강력한 능력이기도 하다. 「위그드라실의 여신들」에서 주인공인 여성 연구자 세 명은 지구에 닥친 위기를 타파하고 동시에 목성의 여섯 번째 위성인 유로파의 생태계를 구하고 이제까지 연구를 통해 얻은 지식을 보존하기 위해 그 어떤 희생도 마다하지 않는다. 「위대한 침묵」의 미후도, 『마지막 마법사』의 세나도, 위기의 구조를 알고 나서 자신을 포함한 개별 생명체의 삶은 모두 연결되어 있음을 깨닫자 자기 한 명의 안락과 행복을 내던지기로 결심한다. 그것은 모두가 함께 연결된 세계 전체를 구원하는 결심이다. 

개인적으로 해도연 작품 중에서 장편 『마지막 마법사』가 이과적 진입장벽이 가장 낮고 액션이 많아서 즐겁게 읽을 수 있었다. 작가가 꾸준히 더 많은 작품을 발표하는 것은 반가운 일이다. 해도연 작가가 보여주는 웅대하고 장엄한 우주, 그 경이로움과 압도적인 두려움, 그리고 그만큼이나 복잡하고 경이로운 인간의 모습을 계속해서 기대하며, 언젠가 해외에도 진출하여 세계 정복하시기를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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