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바라보는 행위를 매개로 하여 보이는 것 너머의 의미를 파악하려 애쓴다. 대상을 관찰하고 이해하는 방식에는 여러 길이 존재하지만, 과학은 보편적인 이해에 도달하기 위해 대상을 있는 그대로 관찰하려 노력한다. 그러나 우리가 실제로 마주하는 것은 우리의 관점에 의해 구성된 세계일 뿐이다. 우리의 감각 기관은 우주의 극히 일부만을 감지할 수 있으며, 이를 보완하기 위해 고안된 관측 장비 또한 나름의 한계를 지니기 때문이다.
실제로 우리의 감각을 통해 볼 수 있는 우주의 범위는 전자기파 스펙트럼의 극히 일부분, 약 0.0035%에 불과하다. 태양이 가장 강하게 방출하는 빛의 파장대는 가시광선(약 400~700nm)인데, 인간은 그 빛에 가장 잘 반응하도록 진화해 왔다. 가시광선은 우리의 눈으로 직접 감지할 수 있지만, 그 외의 파장대는 특수한 관측 장비를 통해서만 볼 수 있다. 전자기파는 파장에 따라 물질과 상호작용하는 방식이 서로 다르므로, 어떤 파장으로 보느냐에 따라 같은 대상이 전혀 다른 모습으로 관측된다. 예를 들어, 가시광선으로는 사람의 외형을 볼 수 있지만, 적외선으로 관찰하면 신체가 방출하는 열 분포를, 자외선으로 보면 피부 아래의 손상이나 멜라닌 분포를, X선으로는 뼈와 같이 밀도가 높은 내부 구조를 관찰할 수 있다. 만약, 우리 눈이 X선을 감지하도록 진화했다면, 우리는 상대방의 생김새를 '골격'으로 기억하고 있을 것이다.
우주를 가시광선이 아닌 다른 파장대로 바라보게 된 것은 우연한 계기에서 비롯되었다. 1932년, 미국 벨 연구소의 물리학자 카를 얀스키는 전화 잡음의 원인을 조사하던 중, 매일 같은 시간, 같은 방향에서 반복적으로 잡음이 감지된다는 사실을 알아차렸다. 얼마 뒤, 그 잡음은 지구 밖, 우리은하 중심부에서 날아온 전파 신호라는 것이 밝혀졌다. 우주에서 오는 전파 신호를 처음으로 감지한 이 역사적 순간을 계기로, 인류는 우주를 바라보는 새로운 눈을 얻게 되었다. 그 후, 1950년대 이르러 세계 곳곳에 전파 망원경이 세워지며 가시광선으로는 보이지 않았던 퀘이사, 펄서, 전파은하와 같은 새로운 천체들이 발견되기 시작했다.
그러나 다른 파장대의 천문학은 전파에 비해 한참 뒤처지게 되었다. 적외선, 자외선, X선, 감마선 등과 같은 파장대는 대부분 지구 대기에서 흡수되기 때문에 지상에서는 관측이 거의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이들 파장을 감지하려면 대기 밖으로 나가야 했기에, 우주개발이 본격화되고 인공위성이 발사되기 시작한 1960년대 이후에야 비로소 전개되기 시작했다.
1990 년, 인류는 허블 우주망원경을 통해 지상에서는 결코 볼 수 없었던 우주의 다채로운 모습을 마주하게 되었다. 자외선과 가시광선, 일부 근적외선까지 관측할 수 있는 고해상도의 허블 덕분에 우주를 향한 인류의 시야는 비약적으로 확장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러나 허블에게도 명백한 한계가 있었다. 우주 초기의 빛, 먼지에 가려진 별 탄생 지역, 은하 형성 초기 단계에서 방출되는 전자기파는 대부분 중적외선과 원적외선 영역에 위치하는데, 허블은 이러한 우주 모습을 제대로 들여다보기 어려웠기 때문이다.
허블의 명맥을 잇는 제임스웹 우주망원경은 허블로는 볼 수 없었던 우주의 영역을 들여다보기 위해 적외선 전용 망원경으로 설계되었다. 적외선 관측에는 열이 곧 노이즈가 되기 때문에, 제임스웹은 지구 저궤도 대신 태양-지구의 L2 지점(달보다 먼 지점)에 배치되었고, 거대한 태양 차폐막을 이용해 태양, 달, 지구를 동시에 가림으로써 적외선 관측에 최적화된 열 환경을 갖추었다. 또한, 주경의 크기를 허블의 2.4m에서 6.5m로 대폭 확장함으로써, 더 어두운 천체, 더 먼 우주, 더 미세한 구조까지 관측할 수 있게 되었다.
위의 이미지는 '창조의 기둥(Pillars of Creation)'이라 불리는 성운을 허블과 제임스웹으로 관측한 결과이다. 기둥 모양의 두터운 성간 물질 내부에는 새로운 별들이 형성되고 있지만, 허블로는 그 구조물의 내부를 직접 들여다볼 수가 없다. 이는 가시광선과 근적외선이 성간 물질과 상호작용하며 대부분 차단되기 때문이다. 반면, 제임스웹이 감지하는 중적외선과 원적외선은 거의 방해받지 않고 성간 물질을 투과할 수 있어, 구조물 안에 숨어 있던 별의 탄생 현장이 잘 드러나게 된다. 더불어, 기둥 뒤로 옅게 깔린 성간 물질로 인해 배경의 별들이 허블에서는 거의 보이지 않지만, 제임스웹의 적외선 관측에서는 배경의 별이 함께 드러나고 있다. 적외선이 성간 물질을 자유롭게 통과할 수 있는 성질 덕분에 제임스웹은 멀리 떨어진 은하, 즉 오래 전의 은하들까지도 관측할 수 있다.
다양한 파장대로 천체를 관측하면 천체의 특성에 대해 더욱 자세히 알 수 있다. 위의 이미지는 '수레바퀴 은하(Whirlpool Galaxy)'로 불리는 나선은하를 다섯 가지 서로 다른 파장대로 관측한 결과를 보여준다. 가장 파장이 긴 전파(첫 번째)는 분자 형태로 존재하는 차가운 가스구름의 밀도 분포를 드러내며, 적외선(두 번째)은 태양보다 가볍고 표면 온도가 낮은 별들의 분포를, 가시광선(세 번째)은 태양과 비슷한 질량과 온도를 갖는 별들의 분포를 보여준다. 자외선(네 번째)은 매우 질량이 크고 뜨거운 별들의 분포를, X선(다섯 번째)은 원자나 플라즈마 상태로 존재하는 고온의 가스 분포를 보여주고 있다. 이렇듯, 어떤 파장대로 관측하느냐에 따라 같은 우주를 보더라도 전혀 다른 모습이 펼쳐지게 된다. 심지어 같은 파장 영역 내에서도 세부 파장에 따라 전혀 다른 구조나 현상이 드러나기도 한다. 따라서 관측 대상의 실체를 파악하기 위해, 최대한 다양한 파장의 관측 데이터를 수집하고 이를 종합적으로 분석하는 과정이 필요하다.
오늘날, 우주의 데이터를 수집하는 방식은 빛을 넘어 새로운 방식으로 확장되고 있다. 중성미자는 태양의 핵융합 반응이나 초신성 폭발, 활동 은하핵이나 감마선 폭발과 같은 매우 격변적인 이벤트에서 발생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중성미자는 전자기파와 상호작용을 하지 않을뿐더러, 물질과도 상호작용을 거의 하지 않는 까닭에 지구를 대부분 통과해 버리고 만다. 그리고 현재, 검출의 빈도는 여전히 낮지만, 학문적인 의미를 가질 만큼의 중성미자가 검출되고 있다. 이렇듯, 고에너지 천체에서 방출된 중성미자는 빛으로는 볼 수 없는 우주의 정보를 제공하고 있다.
100 여 년 전, 아인슈타인은 질량이 큰 천체가 가속 운동할 경우 중력장의 요동이 생기고, 그 요동이 시공간을 따라 빛의 속도로 전파된다고 예측했다. 그리고 2015년, 인류는 마침내 중력파를 관측하는 데에 성공했다. 검출된 신호의 파형은 일반상대성이론 시뮬레이션 결과와 완벽히 일치했고, 그로부터 이 중력파가 두 블랙홀의 병합에 의해 발생했다는 것임이 밝혀졌다. 지금까지 공식적으로 발표된 중력파는 수십 건에 이르지만, 검출과 분석 기술이 발달할수록 그 수는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날 것이다.
우리는 바야흐로 최첨단 과학기술을 동원하여 우주를 심층적으로 들여다보는 시대에 접어들었다. 그러나, 여전히 우주의 95%를 차지하는 암흑물질과 암흑에너지는 관측 불가능한 영역에 머물러 있다. 이들의 존재는 다양한 관측을 통해 간접적으로 확인되고 있지만, 직접적인 검출은 아직 이루어지지 않았다. 암흑물질을 밝히기 위한 다양한 가설과 그에 맞는 실험 방식들이 활발히 제안되고 있지만, 암흑에너지의 실체는 여전히 오리무중이다.
우리는 우주의 5%에 해당하는 일반 물질만을 관측할 수 있다. 그마저도 모두를 다 아는 것이 아니라, 지엽적인 대상에서 단편적인 정보를 얻는 데 그치고 있다. 즉, 우리가 지금의 과학기술로 관측하는 우주는 전체 우주의 극히 일부에 지나지 않는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정말 '실제 우주'를 보고 있다고 말할 수 있을까? 그리고, 그 너머의 실체를 이해하고 있다고 말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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