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CI-FI

퍼즐이 있는 방 <1부>

2024년 9월 통권 228호

(일러스트레이터: 박재령)

<1부>


“퍼즐 상자나 포스터 같은 건?”

세라의 질문에 진우는 고개를 흔들었다.

“뭘 맞추는지 모르는 상태로 맞춰야 한다고 했어.”

몇만 조각은 될 것 같은 퍼즐 더미, 아니 퍼즐의 미로 앞에서 세라는 고민에 빠졌다.  

“우리 둘로는 안 되겠어. 더 똑똑한 사람이 필요해.” 

그러므로 세상을 구하는 퍼즐을 가져온 것이 진우였다면, 퍼즐을 맞출 사람을 모은 것은 세라였다. 그녀는 혜정을 우선 섭외했다. 혜정은 세라가 아는 사람 중에 가장 똑똑하면서, 세상을 구하자고 해도 코웃음 치지 않을 것 같은 유일한 친구였다. 

“퍼즐을 다 맞추면 ✴✴들이 주기로 한 건 뭐야?” 

혜정의 질문에 세라는 잠시 말이 막혔다. 세상을 구하면 세상이 구해지는 이외에 어떤 좋은 점이 있는지, 진우는 말해주지 않았던 것이다. 하지만 ✴✴의 부탁을 들어주면 어쨌든 뭔가 선물을 받게 된다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었다. 

“랜덤인 거야? 뭐, 좋아. 괜찮을 것 같아. 공부만 하기 답답한데 기분 전환도 하고, 랜덤 선물도 받고, 세상도 구하는 거지.” 

혜정은 말했다. 태훈을 끌어들인 건 혜정이었다. 태훈은 세라의 머릿속에서는 똑똑하지만 세상을 구하자고 하면 코웃음 칠 것 같은 타입으로 분류되어 있었다. 아마 그렇지 않을 걸, 혜정은 확신을 갖고 말하고, 태훈을 강력하게 추천했다. 태훈은 의외로 세라의 말을 진지하게 듣고, 별로 아무 것도 따지지 않고 선선히 하겠다고 했다. 

“그런데 그렇게 큰 퍼즐을 어디서 해?” 

태훈의 유일한 질문이었다. 그건 세라가 알려줄 수 있었다. 


세라가 혜정과 태훈을 퍼즐이 있는 방으로 데려간 것은 이미 여름도 한창일 때였다. 진우와 세라가 한 학기 동안 한 일은 간신히 퍼즐을 색깔 별로(아주 대충) 분류하는 정도였다. 

“테두리부터 해야지!” 

혜정은 보자마자 말했다. 태훈은 팔짱을 끼고 심각하게 퍼즐을 노려보았다. 

“만 피스가 아니라 최소 이만 피스는 될 것 같은데. 전체 그림도 모르고. 테두리부터 하는 게 불가능할 수도 있어.” 

두 사람은 어쨌든 테두리 조각을 추려서 따로 빼놓아야 한다는 데 동의했다. 

“그리고 그걸 담아둘 그릇 같은 게 있어야겠다.” 

혜정은 말했다. 혜정과 태훈은 막연히 엄청난 일처럼 보이던 것을 순식간에 제대로 된 프로젝트로 만든다. 다음 주 흐린 날에 혜정과 태훈은 퍼즐 소분용 작은 플라스틱 컵과 접시 잔뜩에, 계획을 가지왔 온다. (✴✴들의 퍼즐이 있는 방은 흐린 날에만 열렸기 때문이다. 태훈은 일주일 내내 매우 초조해 하지만 다행히 곧 장마철이었다.) 태훈은 방 안에 있는 삼단장에서 찾은 베개를 껴안고, 가부좌를 틀고 앉아 아주 진지하게 말했다. 

“퍼즐을 하려면 일단 무슨 퍼즐인지를 알아야 하잖아. 그래서 전체적으로 어떤 그림인지 미리 추측해보려고 했는데, 일단 검은 조각은 거의 확실히 밤하늘이라고 생각해. 밤하늘 일부에는 빛이 비치고 있어. 형광색과 검은 색이 섞인 조각이 있으니까. 남은 부분이 뭔지 찍는 건 좀 더 어려웠는데... 메인은 아무래도 책상 같아. 이것처럼 나무결이 보이고, 다른 건 그려져 있지 않은 조각은 전부 책상이라고 보면 될 것 같아.” 

그는 예시가 되는 조각을 들어서 보여주었다. 

“그러니까 퍼즐은 밤하늘 아래 책상의 모습인 거지. 나머지는 그림 안의 그림이야. 책상 위에 사진이나 엽서 같은 게 흩어져 있는 거지. 그게 아니면 나머지 조각 색이랑 질감이 이 정도로 제각각인 게 설명이 안 되거든. 이건 좋은 소식일 수 있어. 하나의 큰 그림으로 된 퍼즐을 하는 것보다 오히려 쉬울 수도 있거든. 어느 조각이 어느 엽서에 들어가는지만 찾으면, 작은 퍼즐 여러 개를 하는 것과 똑같으니까.”

태훈과 혜정이 한참 퍼즐을 연구한 끝에 내린 결론인 모양이었다. 완벽하게 말이 되는 계획처럼 들려서, 세라는 고개를 끄덕이는 것 말고 덧붙일 말이 없었다. 그건 거기 같이 있던 나머지 두 사람도 마찬가지 같았다. 

유리와 윤수는 세라의 같은 반 친구들이었다. 세라가 그들을 섭외한 것은 초대형 프로젝트를 위해서는 첫째도 참을성, 둘째도 참을성이라는 혜정의 말 때문이었다. 유리는 예체능반도 아니었는데 미술 시간마다 그라데이션이 차곡차곡 들어간 엄청난 수채화를 그렸고, 윤수는 야간 자습 시간 내내 같은 수학 문제에 매달릴 수 있는 타입이었다.  


고등학교 2학년 여름이 끝날 무렵, 그들은 태훈과 혜정의 계획대로 퍼즐 조각들을 아홉 묶음으로 분류하는 일을 마쳤다. 테두리, 밤하늘, 책상, 그리고 책상에 흩어진 사진엽서로, 엽서는 총 여섯 장으로 추정되었다. 엽서 각각이 어떤 모양인지도 조금씩 짐작이 갔다. 조각 묶음 하나는 연한 하늘색 조각에 색깔 있는 조각이 조금 섞여 있었고, 다른 묶음은 그라데이션된 정도만 다른, 반짝반짝한 반투명 파란색 조각으로 되어 있었다. 관찰력이 좋은 유리는 첫 번째는 맑은 날 연날리기하는 그림이고, 두 번째는 바다나 냇물을 가까이서 본 그림 같다고 했다. 다시 말하면 흔한 스타일의, 예쁜 풍경 그림이었다.

가장 세라의 눈길을 끈 것은 분홍색 노란색 조각이 결이 거친 회색 조각과 섞인 묶음이었다. 

“뭔지 모르겠는데 이게 제일 예쁘다.”

“비 내리고 나서 아스팔트에 꽃잎 떨어진 것 같아.”

유리는 말했다.

“그러면 이건 복숭아 꽃이려나. 나도 이쪽부터 할까 했어. 다른 것보다 좀 쉬울 것 같은데?”

어느새 가까이 온 태훈이 분홍색 조각들을 뒤집어 보면서 말했다. 늘 계획성 있는 혜정은 퍼즐 전체의 예상도를 그리자고 제안했다.

“대충 전체가 어떤 모양인지 보면서 할 수 있으면 좋을 것 같아. 예상이니까 다 맞지는 않겠지만, 그건 하면서 차차 고치면 되고.” 

태훈은 엽서의 배치만 서로 다른, 두 가지 안의 예상도를 그려왔다. 유리는 태훈의 그림 실력을 보고 한숨을 쉬고 두 장 모두 다시 그려왔다. 꽃잎 엽서가 책상 맨 오른쪽이 아니라 맨 왼쪽에 놓여 있는 안도 하나 추가되어 있었다. 세라는 학교 앞 문방구에서 세 장의 그림을 확대 복사하고 책받침처럼 코팅해서 퍼즐이 있는 방에 자랑스럽게 가져다 두었다. 


그 해와 그 다음 해 퍼즐이 있는 방의 환경 개선에 가장 많이 기여한 것 역시 혜정이었다. 

“진우인가 걔도 오는 거 맞아? 그냥 다섯 개 사도 돼?” 

신발주머니를 사러 가서 혜정은 세라에게 전화로 물었다. 

“아냐, 여섯 개야. 여섯 명이잖아.”

진우는 너무 한참 나타나지 않았으므로 그들은 여섯 명이라고 볼 수 없었지만, 세라는 그래도 신발 주머니가 여섯 개여야 한다고 강하게 주장했다. 신발주머니는 꼭 필요했다. 퍼즐이 있는 방은 들어가는 길과 나오는 길이 달라서 유독 신발을 두고 다니기 쉬운 구조였기 때문이다. 꼼꼼한 유리는 단 한 번도 그러지 않았지만, 그 외에는 다들 한 번은 양말 바람으로 번쩍이는 강남의 사무실 빌딩들 뒷골목으로 나서는 사고를 겪었다. 

퍼즐이 있는 방에 들어가려면 흐린 날이어야 했고, 학교 근처 세계아파트 단지의 11동을 통해야 했다. 11동 경비실은 항상 비어 있었다. 1층 복도 맨 끝 집의 현관문은 항상 열려 있었다. 집은 사람 사는 곳 같았지만, 그들은 현관문을 열고 바로 왼쪽의 방으로 들어가기만 하면 됐고, 그 과정에서 누구와도 마주치지 않는다. 일단(세라가 자주 그러듯이) 이때 신발을 들고 들어가는 것을 깜빡하고, 이 집 현관에 신발을 벗어두고 올 수 있었다. 신발은 다음에 가면 있었지만, 그 다음 흐린 날까지 실내화나 슬리퍼만 신고 다녀야 하는 문제가 있었다.

그 다음 실수가 일어날 수 있는 길목은 한옥집의 어두운 복도였다. 11동 맨 끝 집의 현관 왼쪽 방문은 전혀 다른 공간의 내부로 열렸다. 지붕이 낮고, 나무 바닥이 까끌까끌하고, 미로처럼 거대한 한옥집이었다. 바깥은 보이지 않았지만, 흙냄새 때문인지 항상 조금씩 비가 내리는 것만 같았다. 복도를 오른쪽으로 하나만 돌아가면 비가 시원하게 내리는 대청 마루에 도착할 것만 같다고 세라는 매번 생각했다. 그렇지만 진우는 다른 방은 절대로 기웃거리지 말고 복도를 왼쪽으로 돌아서 처음 보이는 미닫이문을 열고 들어가라고 했고, 어쨌든 그 과정에서 가장 잃어버리기 쉬운 것도 신발이었다. 

혜정은 미닫이 문 앞 복도에 신발을 정리해 두고 들어가는 버릇 탓에, 2학년 여름에만 삼선 슬리퍼를 네 켤레나 새로 샀고, 유달리 맑았던 같은 해 가을에는 한 달 가까이 동생 신발을 빌려 신고 다녀야 했다. 신발주머니가 도입되기 전에는 말이었다. 신발주머니는 이년 뒤 대학생이 된 혜정이 고속터미널 지하 상가에서 사온 신발장으로 대체되었다.


유리와 윤수는 CD플레이어 겸용 라디오를 들고 와서 수능 준비를 거의 퍼즐이 있는 방에서 했다. 퍼즐이든 공부든 그저 침묵 속에서 할 때도 많았지만, 유리는 음악을 좋아해서 유리가 있으면 항상 라디오 방송이 흘러나왔다. (유리와 윤수만큼 자주는 아니었지만, 세라도 종종 독서실에 간다고 핑계 대고 와서 같이 음악을 들으면서 공부했다.) 유리는 방 한쪽의 장롱에서 꽃무늬 이불 세 채와 한 사람이 두 개씩 써도 될 만큼 많은 방석, 그리고 긴 베개들도 발견했다. 그 발견으로 인해 그들은 퍼즐하다 지치면 구석에서 체육복 윗도리를 덮고 쪽잠자는 대신, 방석을 하나씩 끼고 퍼즐을 하고, 피곤해지면 제대로 자리를 펴고 잘 수 있게 되었다. 

미나를 데리고 온 것도 유리였다. 

“퍼즐을 진짜 많이 했대. 어릴 적에 엄마랑 언니랑 시간만 나면 했다고.” 

유리는 그렇게 미나를 소개했다. 옆 여학교 교복을 입고 온 미나는 아주 어릴 적부터 퍼즐을 아주 아주 좋아했다고 했다. 

“진짜 좋아해. 천천히 계속하기만 하면 되잖아. 그러면 언젠가는 완성되게 되어 있고, 그런게 좋아.” 

퍼즐을 좋아한다는 미나의 말은 진실이었지만, 미나는 퍼즐을 좋아하는 만큼 잘 하는 것 같지는 않았다. 한 번에 많이 하려는 생각이 있는 것 같지도 않았다. 그녀는 자기 말대로 퍼즐을 아주 천천히 조금씩 맞췄다. 그리고 다섯 조각쯤 맞추고 나면 이불을 덮고 앉아서 졸거나 방 안을 여기저기 탐색하기 시작하곤 했다.  

그러다가 방의 한쪽 벽이 또 다른 미닫이 문이고, 문 밖에는 작은 공간이 있으며, 그곳은 툇마루 있는 정원으로 통한다는 걸 발견한 것이 고등학교 3학년 봄이었다. 그때까지 어떻게 아무도 그 공간을 발견하지 못했는지는 미스터리였지만. 미닫이문과 툇마루 사이 공간에는 슬리퍼와 더 많은 이불과 여름용 방석이 있었고, 정원 한쪽 구석에는 수도와 화장실과 그 전에 찾지 못했던 모든 것이 있었다. 

정원은 아주 작았고, 담으로 막혀 있었고, 지구 어느 곳에 위치해 있는지 알 수 없었다. 시간은 바깥세상과 겹쳤지만 계절은 항상 비 내리거나 비 내리기 직전이거나 직후였다. 밤에는 어쩌다 맑을 때도 있었지만, 낮에는 구름 사이로 가끔 빛이 드는 정도였다. 간혹 눈발이 날렸지만 정말로 추워지거나 더워지는 법은 없었고, 여름옷에 체육복 겉옷을 걸치거나 이불 하나 덮고 있으면 딱인 그런 날씨였다. (그래서 세라는 항상 여름 반팔 하나, 스웨터 하나는 방에 두고 다녔다.)

미나는 자신이 발견한 그 공간을 단연코 가장 좋아해서, 그들이 모두 고등학교 3학년이었던 해에 정말 많은 시간을 퍼즐이 있는 방에서 보냈다. 세라가 올 때마다 퍼즐이 아주 조금 더 진전되어 있거나 반쯤 열린 장지문 너머로 도란도란 소리가 들렸기에 알 수 있었다. 미나와 유리였다. 미나가 있으면 유리도 정원으로 문제지를 가지고 나가서 풀곤 했기 때문이다. 미나는 때로는 퍼즐이 있는 방에서 몇 밤씩 자고 가기도 하는 것 같았다. 그녀는 여섯 번째 신발주머니도 ‘임시로’ 쓰게 되었다.


태훈은 유리나 윤수, 미나만큼 자주 오지는 않았고, 세라와는 유난히 시간이 겹치지 않았다. 하지만 그가 왔다갔는지 아닌지는 항상 확실히 알 수 있었다. 태훈은 한 번 올 때마다 정말 세상을 구하기라도 할 기세로 엄청난 양의 조각을 맞추고 갔다. 태훈은 ‘퍼즐 잘하는 법’도 몇 번이나 새로 검색해서 출력 해오지만, 대부분의 퍼즐 스킬은 그들의 경우에는 전혀 적용되지 않았다. 전체 그림을 가지고 있지 않았기 때문이다. 

태훈은 그래도 포기하지 않고, 혹시라도 등잔 밑 어딘가에 퍼즐 전체의 진짜 도안이 숨어 있지는 않을까, 미나에게 방을 같이 찾아봐 달라고 부탁한 모양이었다. 미나와 태훈은 함께 방을 뒤지면서 많은 좋은 것들을 발견했다고 한다. 정원 구석배기에는 온갖 청소 도구가 있었고, 작은 방 수납장 안 눈이 닿지 않던 곳에는 간식을 담기 딱인 자개 접시들이 있었으며, 장롱 뒤쪽 구석에는 220v 콘센트가 숨겨져 있었다. 하지만 그들은 퍼즐의 숨겨진 도안만큼은 발견하지 못한다.

“여긴 ✴✴의 공간이잖아. 그러면 ✴✴들이 보고 있는 것 아닐까?” 

태훈은 어느 날 세라에게 말했다. 그건 그랬다. 사소한 신비한 일이라면 세라도 몇 번 겪은 적이 있었다. 분명 목요일 저녁에 들어와서 잠깐 잔 것 같았는데 나가보니 여전히 목요일 오후였던 적도 있었고, 토요일 아침에 들어와서 한 나절 정도 퍼즐을 했을 뿐인데 하루가 꼬박 지나 있던 적도 있었다. 

그들은 다음 날 바로 카드를 사 와서 “안녕하세요”로 시작해서 “퍼즐 완성 도안이 있으면 퍼즐을 더 빨리 마칠 수 있을 것 같습니다”로 끝나는 편지를 썼다. 그렇지만 큰 방 삼단장 위에 올려둔 그 카드는 끝까지 아무도 가져가지 않는다. 들어가는 길과 나오는 길의 미스터리를 제외하고, 세라가 결국 퍼즐이 있는 방에서 신비한 일을 경험한 것은 딱 한 번이었고, 아주 나중의 일이었다. 

“나는 여기 날씨가 정말 좋은 것 같아. 뭐라고 해야 되지. 서늘하면서 온화하다고 해야 하나.” 

카드에 답장이 없던 것에는 혜정도 실망한 것 같았지만, 혜정은 미나만큼이나 그 방에 만족하고 있었다. 혜정은 학교에서는 졸지조차 않았기 때문에 세라는 그녀가 낮잠을 얼마나 좋아하는지 그곳에서 처음 알게 되었다. 조금씩 비 내리는, 겨울에도 여름에도 속하지 않은 그 날씨 덕이라고 그녀는 말했다. 혜정은 이불도 안 덮고 문 바로 앞 같은 데서 웅크리고 자고 있어서 모든 사람을(특히 세라를) 여러 번 놀라게 하지만, 모두 그녀를 아무 데서나 발견하고, 보면 이불을 꺼내 와서 덮어주는 데 익숙해졌다. 

태훈은 날씨에 대해서만큼은 혜정과 반대 의견이었다.

“자다가 추워서 일어나는 게 제일 싫어.” 

그는 자기 말에 충실하게 매번 차라리 반대 극단을 택해서, 따뜻하다 싶은 날에도 반드시 이불을 여러 개 덮어쓰고 땀을 흘리면서 잤다.

 

퍼즐이 있는 방에서 가장 적은 시간을 보낸 멤버는 의심의 여지 없이 진우였다. 처음에는 몇 번 세라와 같이 색깔 분류를 하던 그는 팀이 제대로 돌아가기 시작한 다음에는 정말로 단 한 번도 찾아오지 않았다. 진우가 다시 모습을 나타낸 것은 그들이 따로 통에 담아두고 있던 밤하늘 조각들을 꺼내서 바닥에 펼친 지 며칠 지나지 않았을 때였다. 

여섯 장의 엽서는 완성되고 책상을 배경으로 흩어져 있는 작은 소품도 다 맞추어, 이제 책상을 결 따라 맞추고, 엽서와 소품 조각들의 자리를 찾아주고, 밤하늘로 넘어가면 되는 시점이었다. 즉 운이 좋지 않으면 하루에 한 조각도 맞추기 어려운 단계로 접어들었고, 그 사실을 그들은 슬슬 깨닫기 시작한 참이었다. 반짝이는 장식 끈이 책상을 사선으로 가로지르며 가이드라인이 되어 주었지만, 가위나 테이프 같은 것들의 상대적 위치를 찾는 일도 만만치 않았고, 밤하늘은 퍼즐 전체의 삼 분의 일 이상을 차지하고 있었다. 

밤하늘은 전체가 검지는 않았다. 아랫부분은 도시 같아 보였고 반 이상이 빛으로 가득 차 있었지만 어느 조각이 어느 자리에 들어가야 할지 알 수 없기는 마찬가지였다. 유리의 예상도에 따르면 책상은 밤하늘 아래 놓여 있고, 밤하늘은 환상적으로 그려진 도시로 열려 있었다. 밤인데 이상할 정도로 빛으로 가득한 하늘이었다. 태훈은 도시에 불이 난 것 같다고 했다. 

“불꽃 축제 같기도 하고.” 

윤수는 말했다. 

“혜성이 떨어지는 날 같지 않아?” 

미나가 대꾸했다. 신비로운 총천연색 때문이었는지, 세라는 근거 없이 놀이공원을 떠올렸다. 퍼즐에 그려진 빛은 놀이공원에 가면 받아서 돌아오던 작은 장난감들의 빛 같았다. 정체를 알 수 없고, 조금씩 흔들리고, 저녁에 손에 들고 올 때면 이상하게 뒤를 돌아보게 하던.  


예상도 못했던 얼굴이 문을 밀고 들어온 것은 세라가 저녁 늦게까지 혼자 남아 있던 저녁이었다. 유리와 윤수가 돌아가고서도 세라는 포기하지 못하고 퍼즐의 도시 부분을 조금이라도 맞춰보려고 하고 있었다. 

“나 좀 도와줄래?” 

세라의 말에 진우는 가방을 내려놓고 앉지만 퍼즐에 재능이 없는 건 변하지 않은 채였다. 대신 진우는 세라가 방을 정리하고 쓰레기 봉지를 두 개 만드는 것을 도와주었다. 그들은 번화가 뒤편의 조용한 주택가로 나서서, 함께 지하철 역으로 걸어갔다. 퍼즐이 있는 방으로 들어가는 문은 학교 근처였지만, 나오는 곳은 동네에서 꽤 멀어서 지하철을 타고도 또 한 번 갈아타야 했다.

세라는 일 년 가까이 진우를 퍼즐이 있는 방에서 보지 못했을 뿐 아니라 학교에서도 보지 못했다는 것을 깨달았다. 원래 다른 반이라서 우연이나 일부러 보는게 아니면 볼 수 없었는데 그 긴 시간 동안 단 한 번의 우연도 없었던 것이다. 진우는 2학년 때와 똑같이 잠이 부족한 것 같은 얼굴이었지만, 그때와는 달리 이상하게 말이 없었다. 그것은 좋아하는 사람들과 있을수록 조용한 편인 세라가 말을 시작하게 만들었다. 

“아, 보여줄 걸 그랬다. 우리 퍼즐 완성 예상도도 세 종류나 만들었는데. 유리가 그렸어. 그리고 혜정이랑 태훈이가 정말 잘 해. 효율성 그 자체야.” 

유리와 윤수는 진우와 1학년 때 같은 반이었다고 했으므로 따로 소개할 필요는 없을 것 같았다. 

“미나는 퍼즐 전문가라고 추천을 받아서 데려왔는데 퍼즐 전문가는 아닌 것 같고, 사실 아무 것도 안해. 그런데 좋은 애야. 너도 보면 바로 무슨 말인지 알걸.” 

진우는 뭔가를 확인하려는 듯 열심히 귀 기울이기만 했다. 역으로 향하는 길의 어둠 속 한강변 아파트 단지들은 어딘지 평소보다 환상적으로 밝혀져 있었다. 연등 축제가 다가오고 있었기 때문인지도 몰랐다. 주말이나 휴일 저녁에 그 같은 거리를 걷는 것은 언제나 약간 위험할 정도로 마음이 차갑고 까슬까슬해지는 일이었다. 그렇지만 그날 역으로 가는 길에서, 그리고 지하철 환승 터미널에서 세라의 마음은 근거 없이 밝았다. 진우는 자주는 아니더라도 몇 번은 또 퍼즐을 하러 올 것만 같았고, 그런 말 없는 밤들을 걸어갈 일이 앞으로도 많이 있을 것만 같았다. 그 미래 중에 하루쯤은 같이 터널을 지나 한강 고수부지로 걸어 내려가서 불꽃축제 같은 걸 볼 수 있을지도 몰랐고, 어느 날은 창문이 크고 빈자리로 가득한 카페 중 하나에서 퍼즐 얘기를 할 수 있을지도 몰랐다. 

“다음에 오면 예상도 그린 거 보여줄게.” 

강을 건너는 지하철의 흔들리는 밝음 속에서 세라는 문득 말했다. 진우는 그녀를 보고 뭔가를 말하려다가 그만두고, 

“응. 금방 또 올게.” 

라고만 했다.

“너무 늦게 오지는 마.” 

세라는 덧붙였다. 그들, 퍼즐하는 사람들은 그때만 해도 퍼즐의 미래에 대해 매우 긍정적 전망을 갖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 해는 입시로 바빠서 못한다고 해도 다음 해 여름쯤에는 완성할 수 있지 않을까, 태훈은 생각하고 있었다. 그의 조사에 따르면 이만 피스 넘는 퍼즐의 경우도 대체로 일 년 안팎 해서 퍼즐을 완성한다는 것이었다. 그들은 전체 그림을 모른다는 패널티를 가지고 있었지만, 여섯 명이었고 예상도도 세 가지나 있는 터였다. 혜정은 조금은 더 길게 보고 있었지만 비슷하게 낙관적이었다. 

하지만 솔직히 말하면 세라는 아무런 전망도 가지고 있지 않았고, 나머지도 마찬가지였다. 그들은 마치 영원히 퍼즐을 할 수 있을 것처럼, 자신들에게 영원이라는 시간이 있고 그걸 퍼즐에 쓸 수 있을 것처럼 생각하고 있었다. 그러므로 그 같은 밤들이 앞으로도 계속 되리라는 세라의 예감이 맞지 않았던 것처럼, 퍼즐이 완성되는 타이밍에 대한 그들의 예상도 당연히, 전혀 맞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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짐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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