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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기술 연구자가 국민과 소통하는 길, 과학기술문화 활동 참여

2024년 5월 통권 224호

최근 과학기술계에서 가장 큰 화제는 ‘R&D 예산의 재조정’이다. 정부는 과학기술 R&D를 추격형에서 선도형으로 바꾸기 위해 예산 재조정을 계획한다고 밝혔다. 이에 많은 과학기술 연구자들이 자신의 연구에 미칠 영향을 우려하며 예민하게 반응했다. 특히 R&D 예산 재조정이 연구비 감소로 이어져 현재 진행 중인 연구에 차질이 생길까 걱정하는 목소리가 높았다. 과학기술 연구자들의 우려가 커지면서 국민들도 이 문제에 주목하기 시작했고, 결국 이 문제는 총선에서도 중요한 정치 이슈로 부상했다.


지금까지 R&D 예산은 국민들 사이에서 특별한 관심사는 아니었다. 우리나라의 과학기술 성과가 전 세계적으로 자랑할 만큼 우수했기에, 국민들은 직접 챙기지 않더라도 전문가들이 시스템적으로 잘 관리할 것이라 믿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어려운 환경에서도 연구에 매진하는 과학기술인에 대한 긍정적 이미지는 사회 전반에 '연구자들이 제안하는 프로젝트를 가능한 한 많이 지원하자'라는 분위기를 조성하는 데 큰 도움이 되어왔다. 덕분에 우리나라의 R&D 예산은 꾸준히 증가하여 2023년 기준 30.7조 원에 도달했고, 여전히 다수의 국민들이 현재보다 더 많은 R&D 예산 투자를 원하는 것으로 나타난다.


하지만, 성공과 실패의 경계에서 불확실성을 가진 선도형 R&D에 대한 국민들의 지속적인 지지 여부는 걱정거리다. 국민들은 그간 성공 가능성이 높은 추격형 R&D에 익숙해져 있었기에, 실패했더라도 그 과정에서의 도전적 가치를 인정하는 데에서는 경험이 축적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또한, 과학기술 R&D에 국민의 관심이 커지며 각 영역을 세밀하게 살펴보기 시작하면서, 지금까지 쌓아온 신뢰가 깨질 수 있다는 우려도 있다. 충분한 설명이 없으면, 연구비 확보 목적으로만 진행되었다고 오해받을 연구과제도 나올 수 있기 때문이다.


과학기술 연구는 궁극적으로 호기심에서 시작된다. '왜'와 '어떻게'라는 질문들은 새로운 발견을 이끌고, 기존의 이론에 도전하며, 혁신적 기술을 탄생시키는 원동력이 된다. 이러한 관점에서, 많은 과학자가 결과물보다는 연구 과정에 더 큰 가치를 두며, 자신이 추구하는 탐구에 집중한다. 또한, 시장에서의 즉각적인 성공을 연구의 주된 목표로 설정하는 것에 대한 의문을 품기도 한다. 특정한 결과물을 목표로 하는 연구는 창의성과 상상력에 제약이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과학기술 연구자는 연구비 사용의 타당성을 납세자, 즉 국민에게 설명하고 이해시켜야 하는 중대한 의무를 지고 있다.


세상을 바꿀 새로운 연구를 추진 함에 있어 핵심은 국민의 이해와 지지를 얻는 것이다. 때때로, 연구의 목표를 경제적 이익과 연계하여 설명하고, 또한, 장기적 비전을 분명히 드러내는 것이 중요하다. 그러나 과학기술 연구는 본래부터 성공이 보장되지 않는 불확실성을 내포하고 있다. 과학기술의 지속적인 발전을 위해서는 이러한 불확실성을 수용하고, 실패도 연구 과정의 일부로 인식하며, 연구의 장기적 가치를 사회적으로 공유하는 문화적 변화가 요구된다. 이런 관점에서 볼 때, 과학기술 연구의 성공과 실패 모두, 그 과정을 국민과 공유하는 것은 중요한 연구의 과정이다. 과학기술 연구자들과 국민 사이의 활발한 소통이 있어야 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이런 이유로, 필자는 과학기술자들이 과학기술문화 활동에 적극적이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과학기술문화’라는 개념은 과학기술 연구자들에게 낯설게 느껴질 수 있지만, 과학기술문화는 과학기술 연구와 동떨어진 새로운 개념이 아니다. 이 용어는 과학기술이 대중과 연결되는 모든 활동을 포괄한다. 과학기술 연구자의 과학 소통 활동, 교육 프로그램, 과학 관련 행사, 그리고 전시회 등 일상에서 대중이 과학기술을 체험할 수 있는 모든 활동이 포함된다. 이러한 과학기술문화 활동은 일정한 형식이나 내용에 얽매이지 않으며, 사회의 변화와 요구에 맞춰 지속해서 발전하는 유연하고 동적인 활동으로 이해할 수 있다.1)

과학기술문화를 통해 일반 대중은 과학기술에 대한 이해를 얻을 수 있으며, 이는 과학기술 연구의 중요성과 가치를 널리 알리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하기도 한다.


따라서, 과학기술 R&D에 대한 국민의 관심이 커지는 현시점에서, 과학기술문화는 ‘국민이 과학기술 연구의 중요성을 인지하고 지지하게 만들어, 과학기술 혁신에 이바지하는 사회 문화적 노력’으로 정의될 수 있다.  


필자는 현재 한국과학창의재단에서 과학기술문화 조성 및 청소년 과학교육 개선을 지원하는 업무를 수행하고 있지만, 이 역할을 맡기 전에는 반도체 소자 연구를 수행하는 과학기술 연구자였다. 필자 역시 세상을 바꿀 새로운 연구에 가슴이 뜨거웠던 경험이 있다. CMOS 이미지 센서(이하 CIS)를 대체할 디지털 필름 개발 연구였다. 광자(photon) 하나도 감지할 수 있는 단일 광자 센서(single photon sensor)가 있다면, 감광물질의 빛 감지 여부만 중요한 아날로그 필름과 유사하게 작동할 수 있는, 디지털 필름개발이 가능하다는 아이디어였다. 기존의 CIS보다 명암 대비(contrast)를 비약적으로 항상 시킬 수 있는 기술로 예상되었다.


필자에게는 단일 광자 센서에 대해 기발한 아이디어가 있었다. 이 아이디어는 컴퓨터 시뮬레이션을 통해 입증되기도 했다. 그래서 꼭 실제 개발에까지 성공시키고 싶었다. 하지만, 이 프로젝트는 계속 진행되지 못하였다. 당장에 단일 광자 센서 작동을 실제로 증명하는데 수억 원의 연구비가 필요했고, 단일 광자 센서 개발에 성공한다 해도 디지털 필름을 작동시킬 아키텍처 설계는 또 하나 넘어야 할 산이었기 때문이다. 기업 연구소의 연구개발 과제 기획이었기 때문에, 비교적 소수 전문가 그룹만 설득하면 연구비를 확보할 수 있었지만, 결코 쉬운 일은 아니었다.


기후 변화, 우주 탐사, 뇌 연구와 같이 큰 예산이 필요한 연구 과제는 국가적 차원의 연구비 지원이 핵심이다. 정부 기관이나 국회와 같은 결정권자뿐만 아니라 일반 국민들도 연구의 중요성을 인지하고 지지해야 연구비를 확보할 수 있다. 문제는, 과학기술 연구의 복잡한 내용을 이해하는 데 필요한 전문 지식이 이들에게 부족할 수 있다는 점이다. 그럼에도, 연구비 확보를 위해서는 국민과 이해관계자들을 설득하고 이해시키는 것은 꼭 거쳐야 할 과정이다.  

한국과학창의재단이 실시한 2022년 과학기술에 대한 국민 인식 조사에 따르면, 국민들은 '과학자들이 인류의 이익을 위해 일한다'는 인식이 높은 반면 (성인 66.8, 청소년 69.6), '과학자들이 과학적 내용을 대중과 적극적으로 소통한다'고 인식은 상대적으로 낮았다(성인 51.4, 청소년 60.0). 이는 많은 과학기술 연구자들이 자신의 주된 임무를 연구 활동에 집중하는 것만으로 여기며, 과학기술문화 활동에는 상대적으로 덜 노력해 왔기 때문일 것이다. 


과학기술문화는 과학기술 연구자가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이끌어야 하는 중요한 분야이다. 이를 통해, 과학기술 연구자들은 자신의 연구 목표를 국민들과 공유하고, 그들의 꿈을 현실로 만들어가는 과정이 왜 중요한지를 설명해야 한다. 이를 바탕으로, 적절한 R&D 예산의 필요성에 대한 지지를 얻어야 한다. 이런 방식으로 과학기술 연구자가 국민들에게 접근한다면, 국민들로부터 연구자들이 이끄는 선도형 R&D 프로젝트에 더 큰 신뢰를 끌어낼 수 있다. 그 결과, 과학기술 R&D의 실패에 대해서도 국민들은 책임을 묻지 않고, 장기적인 프로젝트에 대한 투자를 지지하며, 그것을 자신들의 일부로 받아들일 것이다.


1) 과학기술문화 미래전략보고서 '국내외 과학기술문화의 흐름'(부산대 송성수 교수, 2022년)

   https://www.kofac.re.kr/com/file/filedown?_ci=5862&_ck=f09dad88-b0d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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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대길
한국과학창의재단 과학창의교육본부 본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