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CI-FI

하연 <1부>

2024년 5월 통권 224호

(일러스트레이터 : 박재령)


<1부>


하연은 내게 언제 죽고 싶었었냐고 물었다. 나는 일주일 전을 떠올렸다. 그러니깐 하연의 신고로 내 자취방에 경찰이 쳐들어왔을 때 말이다. 

그렇게 말하자 하연은 마시던 맥주를 내뿜고 크하하하! 웃기 시작했다. 눈물을 흘리며 배를 끌어안고 웃었다. 나도 너무 웃기면 저렇게 웃고는 했다. 컥컥거리던 하연은 숨을 골랐다.

“그러면 어떻게 하냐 운동하고 집에 왔더니 웬 미친놈이 내 침대에서 자고 있는데.”

웃음기가 남은 하연의 눈이 축축했다.

하연이 말했던 순간을 나는 흐릿하게 기억하고 있었다. 써지지 않는 붙잡고 끙끙대느라 새벽 늦게 잠들었었다. 잠결에 누군가가 문을 여닫은 소리를 들었는데 그때는 그게 꿈인 줄 알았다. 알고 보니 운동을 다녀온 하연이 들어오는 소리였다. 하연은 침대에서 퍼질러 자고 있던 나를 보고 조용히 되돌아 나왔다. 그 후 침착하게 엄마와 동생, 경찰에 전화를 걸었다. 경찰은 정확히 10분 뒤에 도착했다.


경찰은 초인종을 눌렀고 그 소리에 나는 잠에서 깨어났다. 부스스한 머리를 긁적이며 일어난 나는 인터폰 단말기에 비친 경관의 모습에 정신이 번쩍 들었다. 경찰들이 문을 두드렸다. 속옷 차림이었던 나는 황급히 바지를 챙겨입고 문 쪽으로 뛰어갔다. 도대체 왜?왜?왜? 하는 생각이 들었다. 뭐가 잘못된 건가? 하는 생각이 연이어 떠올렸다. 잘못이 없어도 경찰 앞에 서면 일단 쪼그라드는 게 나라는 사람인지라 내 심장이 북을 치는 것처럼 쿵쿵거렸다. 나는 진정해보려 숨을 가다듬었다. 물론 아무 도움도 되지 않았다. 

나는 현관문을 향해서 조심스럽게 말했다.

“누구세요?”

“경찰입니다.”

경찰이라고 밝힌 목소리는 말을 이었다. “자택 무단침입으로 신고가 들어왔습니다.”

뭔가 이상했다. 여기는 내가 3년 동안 살아온 자취방이었다. 주위를 둘러봤다. 침대, 책상, 책장에 꽂힌 책의 순서까지 이곳이 내 집이라는 걸 알려주었다. 심지어 천장에 모기가 눌려 죽은 자국까지 정확하게 일치했다. 여기서 가장 합리적인 추론은 경찰이 집을 잘못 찾아왔다는 것이었다. 찰나의 순간에 모든 판단을 끝낸 나는 조심히 문을 열었다.

문 앞에는 남경과 여경이 서 있었다. 그들은 날카로운 눈으로 나를 노려봤다. 그 눈빛에 나는 움찔하면서도 해야 할 말을 했다.

“뭐가 잘못된 것 같은데요. 여기 집주인은 접니다. 뭔가 착각하신 거 아닐까요?”

내 말에 남경은 냉소를 지었다. 여경의 얼굴은 딱딱하게 굳어서 사포로 긁으면 각질이 아니라 돌가루가 떨어질 것 같았다. 초긴장한 나는 그들의 사소한 표정 변화도 예민하게 감지했다.

“여기가 로얄타운 B동 208호 맞지 않나요?” 남경이 내게 물었다.

정확히 우리 집 주소였다.

“여긴 제가 4년 가까이 산 집입니다.”

“야! 무슨 헛소리야!”

나는 소리가 난 쪽을 쳐다봤다. 경찰들 뒤에 체구가 작은 여자 하나가 서 있었다. 두 눈이 레이저라도 쏠 듯이 맹렬히 타오르고 있었다.

“야! 이 미친놈아! 여기가 어디라고 들어와서 네 집이다 뭐다 헛소리를 해!”

그 여자의 말에 경찰들이 퍼뜩 정신을 차린 건지. 내게 조사를 받아야 한다고 했다. 내 집이 내 집이 아니라고 하는 이들을 보고 나는 어이가 없었다. 그때 소란을 듣고 관리인 아저씨가 복도 끝에서 걸어오고 있었다. 드디어 내 편이 되어줄 사람이 등장한 것이었다.

“아저씨! 아저씨!”

관리인 아저씨는 경찰을 보고 당황하는 듯하더니 내게 고개를 살짝 숙여 인사했다. 관리인 아저씨의 팔을 동아줄 마냥 필사적으로 붙잡았다.

“아저씨. 이 경찰분들이 뭔가 오해가 있으신 것 같아요. 자꾸 여기가 제집이 아니라고 하네요. 관리인이니깐 아시죠? 여기서 계속 산 건 저잖아요.” 

관리인 아저씨는 내 말에 고개를 선선히 끄덕였다.

“어휴 그럼 당연하죠.”

관리인의 말에 경찰들은 당황한 듯했다.

“아니 그럼 이 분이 여기에서 실제로 거주하는 분이란 건가요?”

“네. 맞습니다.” 관리인 아저씨가 동의했다.

“그게 무슨 소리예요! 아저씨! 저 미친놈이 어떻게 여기 산다는 거예요!”

관리인의 말에 작달 만한 여자애가 소리쳤다.

소리치는 것을 듣고서야 그 여자의 존재를 알아챈 듯 관리인은 어!하며 멍청한 소리를 냈다. 그는 나와 여자를 번 갈아보면서 머리를 긁적거렸다.

“이상하네요.”

“뭐가 이상한데요?” 남경이 관리인에게 물었다. 

“저분도 여기에서 살고요. 저 아가씨도 여기에서 삽니다.” 관리인은 멍청한 표정을 지으며 나와 여자를 번갈아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말했다.

믿었던 관리인의 반응에 나는 앞으로의 일이 꼬일 거라는 걸 본능적으로 느꼈다. 척추 반사적으로 말이 튀어나왔다.

“그게 무슨 소리야!”

“그게 무슨 소리야!”

나와 여자는 같은 말을 외쳤다.

경찰들과 관리인은 멍청한 표정을 지으며 우리 둘을 번갈아 봤다. 이대로는 이 상황이 해결될 것 같지 않았다.

그렇게 나는 태어나서 생전 처음으로 경찰서에 가게 되었다. 갓 잠에서 깨어나서 씻지도 옷도 챙겨입지 못하고 경찰차에 올라타니 수치와 불안과 혼란스러운 감정에 휩싸여 뭐가 뭔지도 모를 기분으로 뒤죽박죽이 되었다. 예전에 이런 기분을 여러 번 느껴 본바. 딱 죽고 싶은 기분이 이랬다.


모 대학에서 양자역학을 주제로 한 교양강의를 들은 적이 있었다. 강사는 그 대학 물리학과 교수였다. 가르치는 태도를 보면 좋은 교육자라고 생각되었지만, 문제는 그 강의를 들으러 온 사람들은 양자역학은커녕 물리학의 기본도 모르는 사람들이었다는 것이다. 뉴턴의 고전물리학을 설명하는 것에서 시작된 강의는 아인슈타인의 상대성이론과 코펜하겐 해석을 넘어서 양자역학의 여러 속성을 설명하는 것으로 이어졌다. 온갖 복잡한 수식을 동원한 그의 설명을 나는 하나도 이해하지 못했다. 혹시나 해서 다른 사람들을 살펴봤다. 그들도 모두 멍청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교수는 사람들의 반응을 눈치채고는 멋쩍은 표정을 지었다.

“허허허. 좀 어렵지요? 양자역학의 성격은 인간의 뇌로는 이해하기 어렵다고 합니다. 하지만 수식으로 계산할 경우 양자역학의 예측이 틀린 적은 거의 없습니다. 절대로 양립할 수 없어 보이는 두 현상이 공존하는 것도 가능한 것이죠.”

교수는 그렇게 말한 뒤에 유명한 양자얽힘에 대한 설명을 이어나갔다. 나는 그것도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다. 강의가 끝나고 화장실에 가니 내 얼굴이 보였다. 나도 강의실에 있던 다른 수강생들처럼 멍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내 설명을 듣는 경찰관들의 표정이 딱 그때 그 수강생들이 짓던 표정과 똑같았다. 경찰차에 오르면서도 불안하기는 했지만 나는 자신이 있었다. 이 사건은 어떤 전산오류나 오해로 빚어진 해프닝 같은 것이고 금방 해결될 거라는 확신이 있었다. 대한민국이 어떤 나라인가? 19세 이상 성인의 지문정보와 개인정보를 의무적으로 수집하는 나라 아닌가. 이 상황에서 국가는 내 결백을 증명해줄 증인이었다. 나는 아까부터 계속 쿵쾅거리던 심장을 진정시키고 경찰에게 상황을 정확히 설명하려 노력했다. 경찰은 내 말을 들으며 고개를 끄덕이더니 컴퓨터로 무언가를 검색했다. 아마 내 주민등록 소재지 같은 것을 검색해보는 것 같았다.

“그 집의 명의는 이하연씨 이름으로 등록되어 있는데요.” 경찰이 말했다.

“그게 뭔 소리야!” 내가 소리쳤다.

옆에서 그 말을 들은 여자. 그러니깐 하연은 벌떡 일어서서 그것 보라는 듯이 나를 쏘아봤다.

“이 미친놈아 어디서 자꾸 개수작을 부려!” 하연이 소리쳤다.

이상하게 돌아가는 상황에 내 장이 꼬이기 시작했다.

“어!” 모니터를 쳐다보던 경찰이 탄성을 내질렀다.

“또 뭔데요?” 우리를 경찰서로 데려온 여경이 물었다.

“지금은 이호영씨 집으로 나오네요.”

경찰이 멍청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그게 뭔 소리야!” 하연이 소리쳤다.

여경도 그의 말이 이상했던지 경찰과 같이 모니터를 살펴봤다. 그리고 여경의 표정도 점차 예의 멍청한 표정으로 변해갔다.

나는 상황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도통 이해가 되지 않아서 경찰들의 표정을 살폈다. 그러다가 옆에 앉은 하연을 봤는데 그녀도 나와 같이 경찰들의 얼굴을 살피는 게 보였다. 상황이 우리를 다투게 했지만, 지금 이 공간에서 나와 같은 마음을 품은 이는 하연이 유일했다.

경찰들은 뭔가 이상한지 자기들끼리 귓속말을 나눴다. 나는 초조함에 오른 다리를 떨었다. 옆을 보니 하연도 오른 다리를 떨고 있었다.

마침내 상의가 끝난 건지 경찰관들이 입을 열었다. 그들도 이 상황이 이해가 안 되는 듯이 계속 고개를 갸웃거렸다.

“혹시 두 분이 가족이신가요?” 경찰이 조심스럽게 물었다.

“무슨 소리예요? 오늘 처음 보는데.” “무슨 소리예요? 오늘 처음 보는데.” 나와 하연이 동시에 말했다.

“아니 그게….” 경찰관이 머리를 긁적거리다 말했다. “두 분 부모님이 같은 분으로 나오는데…. ” 경찰관은 엄마와 아빠의 이름과 생년월일을 말했다.

“네 맞아요. 제 부모님입니다.”

내 말에 하연이 눈을 부라렸다.

“야! 무슨 소리야. 우리 엄마 아빠가 왜 네 부모님이야. 아니 이상하잖아요.”

하연이 답답하다는 듯이 가슴을 두드리며 말했다.

“내가 29년을 살면서 우리 엄마한테 저런 미친놈이 내 형제라는 얘기는 처음 들어요.”

“드라마처럼 어린 시절에 헤어진 형제 같은 건 아닐까요? 지금 보니깐 두 분 얼굴이 좀 닮아 보이시는 데.” 경찰 중 하나가 의견을 냈다.

나와 하연은 그를 쏘아보며 동시에 말했다.

“말도 안 되는 소리야. 진짜.”

“죄송합니다.” 의견을 낸 경찰이 풀이 죽어서 뒤로 짜졌다.

경찰들은 이 상황에 그저 멍청한 표정만 짓고 있을 뿐 상황은 해결될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나와 하연은 거의 미치기 일보 직전이 되어 가고 있었다.


그때 엄마가 도착했다. 


나는 경찰차에 타기 전에 엄마와 통화를 했었다. 경찰이 나를 찾아온 것도 처음이었고 경찰서에 가는 것도 처음이었다. 더럽게 무서웠다. 그렇다고 내가 뭐 부끄러운 짓을 한 것도 아니니 엄마에게 전화를 거는 데 망설임은 없었다. 전화를 받은 엄마는 어디에 가고 있다고 했다.

“어디를 가는데?” 내가 물었다.

“어… 잠깐 갈 일이 생겼어. 근데 나중에 가도 될 거 같아.”

“그럼 빨리 와줘. 상황이 이상해.” 내가 말했다.

“아들. 걱정하지 말고 엄마가 금방 갈 게.” 엄마가 말했다.

이 말도 안 되는 상황이 계속되면서 나는 내가 이호영이며 내가 알고 있던 것들이 명백한 사실이라는 것을 확인시켜줄 증인이 필요했다. 그렇기에 엄마가 오기를 간절하게 기다리고 있었다.

엄마는 불안한 표정으로 조사실로 들어오고 있었다. 경찰들을 둘러보다가 나를 발견한 엄마가 내 쪽으로 총총 걸어왔다. 나는 반가움에 벌떡 일어났다. 서러움이 밀려와 눈가가 축축해졌다. 엄마도 마찬가지인 것처럼 눈가가 반짝였다. 엄마는 일어선 나를 보고 말했다.

“하연아! 아이고 내 딸!”

“엄마!!!”

하연이 엄마를 향해서 달려갔고 나는 그 자리에 서서 딱딱하게 굳었다. 엄마에게 안긴 하연은 조잘대며 이 상황을 설명하고 있었다. 나는 배신감과 당혹감과 앞으로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모른다는 공포감과 버려졌다는 고립감이 뒤섞인 부정적인 감정의 늪에서 허우적거리고 있었다. 23살 이후로 지겹도록 자주 느꼈던 감정이었다.

엄마의 품에 안겨 있던 하연은 그것 보라는 듯이 나를 흘겨봤다. 나는 소금기둥이 된 롯의 아내처럼 딱딱하게 굳어서 경찰서 가운데에 우뚝 서 있었다.

하연을 안고 있던 엄마는 나를 쳐다보더니 눈을 반짝거렸다.

“아들!” 엄마가 외쳤다. 그 말에 내가 움찔했다. “엄마 왔어.”

“엄마 왜 그래? 쟤가 왜 엄마 아들이야!” 하연이 당황해서 소리쳤다.

하연이 말에도 엄마는 내 쪽으로 다가왔다. 뒤에 남은 하연이 엄마! 엄마! 하고 외쳤다. 나를 알아본 엄마가 반가웠지만, 이 이상한 상황이 이제는 무섭기까지 했으므로 입이 완전히 굳어버렸다.

그건 하연도 마찬가지인 것 같았다. 자신에게서 멀어지는 엄마를 보고 하연은 귀신을 보는 것처럼 딱딱하게 굳었다.

“어… 그러니깐 이호영, 이하연씨의 어머님이신가요?” 아까부터 우리를 상대한 경찰이 물었다.

“네. 맞아요. 그러니깐…. 제가 하연이의 엄마예요. 또 호영이의 엄마고요.”

엄마는 이 상황이 혼란스러운 듯 말을 더듬었다. 엄마의 표정이 경찰들이 짓던 멍청한 표정으로 변해갔다.

“엄마 도대체 무슨 소리야? 누가 누구인데?” 하연이 엄마에게 물었다. 내가 생각한 걸 그녀가 정확히 말했다.

하연의 물음에 엄마는 당황해하며 나와 하연의 얼굴을 번갈아 쳐다봤다.

“너는 내 딸이지….”

“그래 나는 엄마 딸이지.”

“그런데 호영이도 내 아들이야.” 엄마가 멍하게 중얼거렸다.

“아니지 엄마! 쟤가 어떻게 엄마 아들이야. 나하고 지호 말고는 엄마 자식이 또 어디에 있냐고!” 하연이 외쳤다.

“내가 하고 싶은 말이 그거야!” 나는 하연의 말에 동의했다.

“근데 여기에 있네?” 엄마가 멍하니 중얼거렸다.

엄마의 반응에 나는 당혹감을 넘어서 공포를 느꼈다. 그건 하연도 마찬가지인 것 같았다.

“엄마 나 진짜 너무 무서워! 장난 그만해!”

하지만 엄마는 방금 했던 말을 반복할 뿐이었다. 나도 하연처럼 뭐가 뭔지 하나도 알 수 없는 상황이 무서웠다. 나는 언젠가부터 하연과 같이 소리치고 있었다.

“나 무서워! 진짜 그만해! 그만해!!!”

나와 하연이 소리쳤지만, 사람들은 멍한 표정만 지을 뿐이었다. 마침내 우리의 좌절감과 당혹스러움이 분노로 치환되면서 소리를 지르기 시작했다. 너무 무서워! 무서워! 무서워! 그만해! 우리는 동시에 소리쳤다. 사람들이 우리를 말릴 때까지 우리가 지쳐 나가떨어질 때까지 계속해서.


내가 잠에서 깨어난 건 아침 댓바람부터 걸려온 전화 때문이었다. 번호를 보니 엄마였다. 나는 전화를 받았다.

“야. 나야.” 짧게 한 말이었지만 누구인지는 금방 알 수 있었다. 하연이었다.

“어.”

“말이 좀 짧다.”

“어.”

“…….”

어제 경찰서에서 벌어진 소동은 해결되지 않았다. 문제를 해결하길 포기한 경찰들은 전산에 어떤 오류가 생긴 것 같다며 알아본 뒤에 연락 주겠다고 했다. 하지만 내게는 이 일이 쉽게 풀리지 않을 거라는 강렬한 예감을 느꼈다.

엄마는 나보고 집에 가라고 했고 하연에게는 자기를 따라서 엄마의 집으로 가자고 했다. 나와 하연을 제대로 구분하지도 못하면서 남자와 여자가 한방에 있으면 안 된다는 분별력은 정확히 발휘했다.

“그래서 전화는 왜 했어?” 내가 하연에게 물었다.

“우리 둘이서 뭔가 합의를 봐야 하지 않겠어?”

“무슨 합의?”

“이대로 계속 이렇게 지낼 수는 없잖아. 나도 내 집에 들어가야 하는데 네가 그 집에서 딱 버티고 있으면 어떻게 해.”

“누가 뭐라고 해도 여긴 내 집이야.” 내가 단호하게 말했다.

“아니 하….” 하연이 잠시 말을 멈췄다. 내 말에 열이 받는 모양이었다.

하연을 골려주는 건 나름 재미있었지만 나도 그녀와 진지하게 얘기할 필요는 충분히 느끼고 있었기에 한번 만나기로 했다.

그녀는 내게 집 근처에 있는 카페에서 만나자고 했다. 전화를 끊고 샤워하면서 하연과 부딪히며 느껴지는 기묘한 느낌에 대해 생각했다. 하연은 자꾸 내가 할 말을 가로챘다. 내 습관과 버릇을 반복하기도 했다. 어떨 때 하연은 나와 같은 생각을 하는 것 같았다.

거기까지 생각하고 나는 고개를 저었다. 말도 안 되는 생각이었다. 무슨 웹 소설도 아니고. 두 인간이 계속 비슷한 말, 행동, 생각을 반복한다는 건 잘 쳐봐야 우연에 지나지 않았다.

나는 드라이기로 머리를 말리며 내가 했던 어처구니없는 생각을 날려버렸다. 그런데도 내가 떠올린 한가지 발상은 끈질기게 내 머리에 달라붙었다.



시작은 화이트딸기크림 프락푸치노였다.


하연은 나보다 먼저 카페에 도착해 있었다.

“빨리 왔네.” 내가 말했다. 하연은 고개를 끄덕였다.

“동생이 차로 데려다줬어.”

하연의 말에 나는 이마를 찌푸렸다. 걔가 그렇게 친절하다고?

“걔랑 친한가 보다.”

“맞아. 내가 지호랑 좀 친하지.” 하연이 순순히 인정했다.

경찰서에서 서로 한바탕 푸닥거리를 했기에 하연을 보는 순간에 다시 감정이 널을 뛰는 건 아닐까 했지만, 그녀를 보는 내 마음은 고요하기만 했다. 나는 한번 화를 쏟아낸 뒤에는 마음이 고요해지고는 했다. 그건 하연도 마찬가지인 것 같았다.

“아직 주문 안 했어.” 하연이 말했다.

나와 하연은 계산대로 가서 음료를 주문하려고 했다. 그녀는 걸어오는 나와 하연을 번갈아 보더니 혼란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이 카페는 가끔 오고는 해서 알바생이 나를 기억하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뭐 이상한 거 있나요?” 하연이 아르바이트생에게 물었다.

“네? 네? 아뇨.”

민망한지 멋쩍게 웃는 그녀는 무엇을 주문할 거냐고 물었다.

“화이트딸기 프락푸치노요.” 나와 하연이 동시에 말했다.

“왜 그걸…. 아냐 좀 이따 말하자.” 하연이 뭔가를 캐물으려다 뒤에 기다리는 사람이 있었으므로 말끝을 흐렸다.

잠시 뒤에 음료가 나오고 나와 하연은 음료를 테이블에 올렸다. 하연은 방금 하려다 만 질문을 마저 했다.

“왜 화이트딸기 프락푸치노를 시켰어?”

나는 종이 빨대로 음료를 한번 빨아 먹은 뒤에 설명했다.

“나는 카페인에 민감에서 커피를 마시면 밤에 잠을 못 자지 그래서 보통은 밀크티나 다른 논 카페인 음료수를 마시는 편인데. 이 카페는 밀크티가 맛이 없는 편이거든. 초코 음료는 너무 달고, 말차도 좋지만, 오전에 빈속에 그걸 먹으면 속이 쓰려지니깐. 내가 선택할 수 있는 건 이거 하나지.”

하연은 내 설명을 가만히 들었다. 이번에는 내 차례였다.

“너는 왜 이걸 시켰어?”

음료를 한번 쭉 빨아 먹은 하연이 입을 열었다.

“너랑 똑같은 이유로 시켰어.”

하연의 말에 내 머릿속의 혼탁하던 생각들이 깨끗하게 쓸려나갔다. 상식적이지도 이성적이지도 않았지만 쏘아진 화살이 과녁의 정중앙을 맞춘 것처럼 모든 상확히 정확하고 시원하게 설명되었다. 내 짐작이 맞다 면 하연도 나와 같은 생각을 하고 있을 것이었다. 때마침 하연이 한숨을 쉬었다. 그녀가 한 말은 내가 하려던 말과 똑같았다.

“하. 이게 무슨 일본 만화 같은 상황이냐.”

그러니깐 하연은 평행세계에 사는 또 다른 ‘나’인 것이었다.


나로 말할 거 같으면 내 부모님의 장남이고 아래로는 한 살 차이의 남동생이 있다. 태어나 29년을 살았다. 15살 즈음에 소설 대여점에서 빌린 더럽게 유치하고 재미없는 판타지 소설을 읽고 “이 정도면 나도 쓰겠네.”라고 말한 게 소설가가 되기로 한 계기였다. 그 후 남고 졸업, 4년제 대학 문예창작과 입학, 군입대, 전역 후 기업형 서점에서 2,3년 단위로 취직과 퇴직을 반복하며 독서와 글쓰기를 이어오다가 28살에 소설 공모전에 입상하면서 꿈에 그리던 소설가가 되었다.

“그리고 청탁은 하나도 없고.” 하연이 뻔하다는 듯이 물었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한 1, 2년 정도는 진짜 청탁이고 뭐고 없어. 그 이후에는 가뭄에 콩 나듯이 있다가 책 한 권 내면 그때부터 좀 생기더라고. 책부터 먼저 내야 해.”

평소에도 내가 왜 잘 풀리지 않을까 고민하며 해왔던 분석을 하연은 토씨 하나 틀리지 않게 말했다. 하연의 말을 듣던 나는 어느 부분에서 잘랐다.

“근데 네가 어떻게 그렇게 확신을 해?”

“응? 당연히 잘 알지 이래 봐도 나 책도 냈어.” 하연이 짐짓 아무 일도 아니라는 듯이 말했다.

“뭐! 책을 냈다고!” 놀란 내가 소리쳤다.

목소리가 컸기에 주위에 있던 사람들이 우리를 쳐다봤다. 민망해진 나와 하연이 주변 사람들에게 죄송하다며 사과했다.

이번에는 하연이 어떻게 살았는지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하연은 내 부모님의 장녀이며 한 살 아래의 남동생이 있었다. 나이는 29살이며 15살 즈음에 소설 대여점에서 빌린 더럽게 유치하고 재미없는 로맨스 소설을 읽고 “이 정도면 나도 쓰겠네.”라고 말한 게 소설가가 되기로 한 계기였다. 그 후 여고 졸업, 4년제 대학 문예창작과 입학한 후, 졸업 후 기업형 서점에서 일하며 독서와 글쓰기를 병행하다가 소설 공모전에 입상. 꿈에 그리던 소설가가 되었다.

“내 생각에 네가 군대 간 2년 동안에 나는 사회생활을 했으니깐 그 시간이 이런 차이를 만든 거 아닐까?” 우리 둘의 인생에서 발생한 차이점에 대해 하연이 나름의 가설을 냈다.

“그럴듯한데?”

하연은 내가 여자였다면 살았을 것 같은 모습으로 살았다. 책 읽는 거 좋아하고 글쓰기로 먹고살려고 하는 것들. 하연이 하루를 보낸다고 치면 내가 하는 것과 그리 다를 것 같지 않았다. 

이미 내심으로는 나와 하연은 우리가 거의 동일인물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하지만 도저히 해명되지 않은 부분이 있었다. 그건 하연이 먼저 짚었다.

“근데 유전적으로 다른 두 사람이 동일인물이라고 볼 수 있나?”

나와 하연은 서로의 행동이나 생각이 겹치는 부분 때문에 서로를 평행세계의 또 다른 ‘나’가 아닐까 생각했지만, 솔직히 말해서 우리는 절대 같은 인간일 수 없었다. 아무리 같은 부모의 자식이더라도 타고난 몸의 조건이 다른 이상 형성되는 습관과 살아갈 시간이 만들 성격, 심지어 생각까지 같을 수는 없었다. 유전적 유사도가 높은 일란성 쌍둥이도 성격이 비슷할지언정 같은 사람이라고 할 수는 없었다.

나와 하연은 나란히 팔짱을 끼고 이게 무슨 상황인지 고민했다. 무슨 판타지 소설도 아니고 세상이 이런 식으로 돌아갈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우리가 같은 사람일 수는 없는데. 근데 어떻게 하는 짓이 이렇게 비슷하냐고.”

하연은 무언가를 고민하다가 내게 어떤 어플을 깔라고 했다.

“그게 뭔데?” “잔말 말고 깔아.”

하연이 말한 어플을 깔았다. 설명란을 보니 MBTI 관련된 어플 같았다.

“너… 이런 거 믿니?”

“믿지는 않은데 한번 확인할 게 있어서 해보라는 거야,”

나는 하연의 말대로 어플을 실행하고 연달아 등장하는 선택지에서 하나씩 답을 골랐다. 다 푸는데 한 10분 정도 걸렸다.

“결과가 뭐로 나왔어?” 하연이 물었다.

“열정적인 중재자, 잔 다르크형이 라는 데 이게 뭔데?”

“INFP구나 혹시 뒤에 뭐가 붙어 있어?”

“T.” 

내가 대답했다. 하연의 표정은 아무 변화도 없었다. 마치 예상한 일이 그대로 이루어졌다는 태도였다.

“당연히. 너도 똑같은 거지?”

하연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거까진 예상했던 대로야. 그거 뒤에 버튼 한 번 눌러봐. 그래 그 버튼.”

하연이 시키는 대로 나는 버튼을 눌렀다. 내가 무슨 선택지를 골랐는지를 확인할 수 있는 표가 나왔다. 하연도 같은 걸 켰는지 내 핸드폰에 나타난 표와 자신의 표를 비교했다. 나도 가만히 있지는 않고 하연의 표와 내 표를 비교해봤다. 그리고 우리는 할 말을 잃었다.

“…….”

“…….”

거의 50개가 넘는 선택지가 있었다. 우리는 50개가 넘는 선택지를 토씨 하나 틀리지 않고 똑같이 선택했다. 이걸 확률로 환산하면 얼마나 될까? 대충 생각해봐도 그 확률이 천문학적이라는 건 금방 알 수 있었다.

“이게 우연일까?” 내가 하연에게 물었다.

“우연일 수 있겠지. 근데 이 정도로 우연이 계속되면 그건 그냥….”

인정하고 싶지 않지만, 나도 그 생각에 동의할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방금 내가 한 생각을 정확히 하연도 똑같이 거라는 걸 알 수 있었다.

“진짜 이게 뭐 판타지 소설도 아니고….”

나와 하연이 동시에 한탄했다.


“그럼 이제 합의하자.” 하연이 말했다.

“그래.”나도 동의했다.

우리에게 일어난 일이 원인이 무엇이든 간에 그걸 해결할 수는 없을 것 같았다. 그렇다고 해서 계속 이렇게 살 수는 없었다. 다행스럽게도 통장은 분리되어 있었지만 사는 집은 하나밖에 없었다. 거기에서 누가 지낼지 결정해야 했다.

“네가 엄마 집에서 지내면 되겠다.”

나는 뻔뻔하게 나가기로 했다. 마음 한구석이 찔리는 게 사실이었지만 하연도 나와 똑같은 생각을 한다는 걸 알고 있기에 뻔뻔해도 상관없을 것 같았다. 나는 준비해둔 종이 한 장을 꺼내 하연에게 내밀었다.

“이게 뭔데?”

“등기부등본.”

자고로 증거란 법적인 효력이 강제되는 것이 제일이다. 아침에 서류를 준비하며 혹시 내 이름 대신에 하연의 이름이 적혀 있을까 걱정했지만, 뽑힌 서류에는 내 이름 석 자가 적혀 있었다.

하연은 등기부등본을 쓱 살펴봤다. 그 무덤덤한 반응에 나는 이상함을 느꼈다. 하연은 가져온 가방 속에서 종이 한 장을 쓱 빼더니 내게 내밀었다. 나는 그 종이를 살펴봤다. 등기부등본이었다. 주소는 내 집이었고 거주자를 표시하는 항목에는 나 대신에 하연의 이름이 적혀 있었다.

우리는 말을 잃고 음료수만 마셨다.

“나는 못 나가.” 내 말에 하연은 그럴 줄 알았다는 듯이 고개를 까딱거렸다.

“나라도 안 나간다고 하지. 뭐 엄마네 집이 끔찍하다는 건 아니고.”

“그건 그렇지.”

“근데 오늘 내가 집에 친구를 초대했거든.”

“그래? 그럼 같이 만날래? 네 친구면 내 친구이기도 할 거 같은데.”

“너 다연이도 알아?”

“…무슨 다연?” 

“뭐 그런 걸 물어. 김다연인데.”

나는 잠시 정신이 아찔했다. 하연의 친구인 김다연은 내 전 여자친구이기도 했다.

“나 그냥 엄마 집에 가서 잘게,”

갑자기 변한 내 반응에 하연은 얼굴을 찌푸리다가 뭔갈 떠올렸는지 아아. 하고 묘한 웃음을 지었다. 뭐. 뭐. 내가 뭐 어쨌다고!

“다연이가 평소 나보고 남자였으면 사귀자고 했을 거라고 했는데 그게 술 먹고 헛소리한 게 아니구나.” 하연은 그렇게 말하곤 쿡쿡거리며 웃었다.

일단 집에서 누가 지내느냐 하는 문제는 일 단락 되었다. 물론 해결할 문제는 많았지만 가장 큰 문제가 해결된 것이었다. 그러나 문제를 해결한 뒤에는 다음 문제가 기다리고 있는 법이다. 나는 우리가 해결해야 할 새로운 문제를 떠올렸다.

“근데 우리 일주일 뒤에는 어떻게 하냐?”

“일주일 뒤에? 뭐가?” 하연은 내 물음에 뭔가를 생각하다가 아아 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맞다 나 제주도 가기로 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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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진상
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