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F Review

이경희의 포스트모더니즘

2024년 5월 통권 224호

포스트모더니즘(Postmodernism)은 ‘모더니즘+이후(post)’라는 뜻으로 문학에서는 대략 20세기 초중반 이후의 문화예술 사조를 통칭한다. 우리가 현재 포스트모더니즘(혹은 포스트-포스트모더니즘일지도) 시대를 살아가고 있기 때문에 문화권에 따라, 연구자에 따라 포스트모더니즘에는 여러 가지 정의와 학설이 존재한다. 대체로 가장 큰 포스트모더니즘의 특징은 ‘해체’인 듯하다. 포스트모더니즘 예술작품은 장르 규범, 고전의 권위는 물론 경제 체제나 사회구조가 쌓아 올린 가치체계와 사고방식, 심지어 현실과 허구의 경계까지도 해체한다. 이러한 관점에서 볼 때 이경희는 한국 포스트모더니즘 SF의 대표 작가라 할 수 있다.


해체와 혁명


『모두를 파괴할 힘』은 초능력을 가진 ‘데비안트’들이 혁명을 일으키는 이야기다. 헐리우드 영화 X맨 시리즈에서 초능력자들은 학교에 모여 살았는데, 한국 작가가 쓴 소설에서 초능력자들은 혁명을 한다. 매우 자랑스럽다. 『모두를 파괴할 힘』의 데비안트들은 X맨 시리즈 등장인물보다 훨씬 더 약한 초능력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도시를 점거하고 모든 억압에 대한 저항을 선언하고 사용 언어와 출신 국가를 넘어서는 시위 공동체를 형성한다.

소설의 내용만 혁명적인 것이 아니라 서사의 표현 방식 또한 고전적인 문장형 서술이 중심이 되는 방식을 해체한다. 2부에서 ‘혁명하는 민들레 혁민이들’은 데비안트의 혁명을 따라 세계를 여행하며 SNS 컨텐츠를 제작한다. 소설은 이들의 기획 회의 영상을 채팅 형식으로 보여준다.


PD: 내가 열차표를 알아봤는데...

                              ▶▶▶설명 중(32배속)▶▶▶

나미: 에엣, 거짓말! 일주일이나 걸려?

PD: 중간중간 다른 콘텐츠도 병행해서 진행할 거야. 그냥 가면 아깝잖아. 여행하는 기분으로 한 번 잡아봤어.

까: 신의주에서 하루, 베이징에서 하루, 울란바토르, 이르쿠츠크, 노보시비르스크, 예카테린부르크, 모스크바, 그리고 파리. 

(『모두를 파괴할 힘』, 155-156쪽)


이 기획 회의 장면은 후원을 독려하고 “구독과 좋아요, 알림 설정”을 강조하는 대사로 끝나며 페이지에 다음 영상, 관련 영상 안내와 댓글까지 첨부되어 있다. 물론 작가는 “댓글 27,642개” 중에서 다섯 개 정도만 골라서 제시했지만, 전체적으로 2부에는 ‘혁민이’들이 제작하는 진짜 동영상 컨텐츠 페이지가 소설 속에 그대로 옮겨진 부분들이 서사의 자연스러운 일부로 나타난다. 등장인물이 현수막 등을 촬영하는 장면에서는 해시태그도 사용된다. 


#STOPDEVHATE #우린너희와다르게볼뿐 

(『모두를 파괴할 힘』, 160쪽)


단편 「바벨의 도서관」에서 주인공 로봇 ‘제이’는 인공지능 ‘알파’를 구할 수 있는 방법이 담긴 책을 찾아 최후의 아카이브 ‘바벨’에 찾아간다. 책을 찾는 과정에서 선택의 기로에 설 때마다 제이는 여러 알고리즘을 동원해서 자신에게 가장 유리한 선택지를 계산한다. 그 결과는 게임에서 흔히 보는 표의 형태로 제시된다. 글자체마저 1990년대 말, 2000년대 초 PC통신에서 사용되던 고전적인 글자체를 닮았다.


므이에게 

협조한다

81.09%

책을

빼앗는다

11.23%

므이를

죽인다

7.68%

(「바벨의 도서관」, 『너의 다정한 우주로부터』 210쪽)


사실 이처럼 문장형 서사에 의존하는 인쇄매체 이외의 다양한 매체와 형식을 차용하는 기법은 그래픽 노블, 웹툰, 그리고 웹소설이나 다른 신진 서사 장르에서는 이미 흔하게 사용되고 있다. 그러한 점을 고려하면 『모두를 파괴할 힘』은 주제와 표현기법 양쪽에서 적극적으로 포스트모더니즘적인 SF 작품이다.


해체와 비판

포스트모더니즘에서 해체의 의미는 문화권과 문학 전통에 따라 다르게 나타난다. 해체를 위한 해체, 새로운 예술적 시도를 위한 해체일 수도 있고, 역사적이고 사회적인 변동, 즉 현실의 해체가 문학에 반영되어 나타난 필연적인 결과인 경우도 있다. 이경희 작품에서 해체는 사회비판을 통한 새로운 가치의 재건으로 이어진다.

사회비판은 한국문학의 특징이자 힘이다. 거슬러 올라가면 『홍길동전』 혹은 그 이전부터 내려오는 한국 소설 문학의 유구한 전통이기도 하다. 이경희 작품세계를 관통하는 주제 의식이 있다면 바로 현실비판, 사회비판이다. 이러한 비판 정신을 표현하는 풍자와 해학의 기법은 장편보다는 단편에서 더 강하게 나타난다.  

「살아 있는 조상님들의 밤」에서는 죽은 조상님들이 좀비가 되어 돌아와서 후손들에게 정말 ‘죽도록’ 잔소리를 한다. 집에서는 시어머니 좀비가 나타나 주인공에게 ‘노력해서 애를 낳으라’고 잔소리를 하고, 회사에서는 선배 좀비들이 나타나서 ‘라떼는’ 잔소리를 쏟아놓으며 후배들이 퇴근을 하지 못하게 막는다. 「신체강탈자의 침과 입」에서 주인공 한나는 회사가 사람의 외모를 한 외계인들에게 점령당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한나는 외계 바이러스에 감염되지 않은 동료들을 모아 대책을 강구하려 하지만 쉽지 않다.


“물이 약점인 건 어떻게 알았어요?”

“아무도 손을 안 씻더라고요. 물을 싫어하는구나 싶었죠.”

“그 외에 알아낸 건 없어요?”

“저도 딱히... 일하느라 바빠서요. 우리 팀 지금 크런치 모드거든요.”

망할 헬조선. 지금 프로젝트가 문제야? (「신체강탈자의 침과 입」, 『너의 다정한 우주로부터』 245쪽)


평범한 한국인이라면 누구나 쓴웃음을 지을 수밖에 없는 이런 종잡을 수 없는 상상력의 풍자뿐 아니라 한국 사회의 제도적 차별과 체계화된 소외에 대한 날카로운 비판도 드러난다. 「저 먼 미래의 유크로니아」에서 은하는 장애가 있는 여성이기 때문에 살해당한다. 경찰은 ‘묻지 마 폭행’이라는 말로 사건을 묻어버리고, 죽어가는 은하를 업고 병원에 도착한 정원은 환자와의 관계를 묻는 간호사 앞에서 머뭇거린다. 여성 살해, 혐오 범죄가 만연하고, 동성혼 법제화나 생활 동반자법 등의 제도가 부재하기 때문에 소외된 사람들이 더욱 사회 바깥으로 밀려나는 현실이 가슴 아프게 드러나는 장면이다.


해체와 유토피아

「저 먼 미래의 유크로니아」에서 정원은 은하가 살아서 존재할 수 있는 미래를 찾아 나선다. 은하는 약자를 보호하지 않고 약자의 죽음을 방관하는 사회 체제 때문에 살아남을 수 없었다. 장편 『그날, 그곳에서』에서 주인공 해미는 과거에 일어난 재난에서 어머니와 쌍둥이 동생을 구하기 위해 과거로 몇 번이나 돌아간다. 재난이 일어난 이유는 부산 기장군에 있는 고리 1호 원전에서 화재로 방사성 물질이 유출되고, 이로 인해 부산에서 지진이 일어나 해운대역에서 지하철 사고가 발생하기 때문이다. 2017년 포항 지진과 2003년 대구 지하철 화재 참사를 연상시키는 장면들이다. 이러한 재난과 참사는 과거의 일이지만 노후한 원자력 발전소의 위험은 현재 진행형이다. 

그러므로 이경희의 주인공들이 해체하고 혁명하고 변혁하는 이유를 거칠게 요약하면 인간의 자유와 존엄과 안전이 보장되는 사회를 만들기 위해서이다. 물론 이리저리 시도해 봤지만 다 소용없고 싸그리 망해버리는 작품도 있는데 (스포일러 방지를 위해 어느 작품인지는 밝히지 않겠다) 어쨌든 주인공들은 끝에 가서 망할지언정 기득권을 무너뜨리고 체제를 변혁하고 자신이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행복할 수 있는 세상을 위해 결코 포기하지 않고 뛰고 또 뛴다. 그래서 이경희의 창의적이고 엉뚱하고 때로는 신나고 때로는 가슴 아픈 광활하고 다채로운 이야기들의 세계에 대해 아래와 같이 결론지을 수 있을 것 같다.



모든 것을 잊어버린 아이에게 욕망 구현 장치가 물었다.

- 아이야, 무엇을 원하니?

그러자 아이는, 주체할 수 없이 환희에 가득 찬 목소리로 춤추며 이렇게 이야기하는 것이었다.


“자유!” 


(「다층구조로 감싸인 입체적 거래의 위험성에 대하여」, 『너의 다정한 우주로부터』 17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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