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은 말하곤 하지. 예수가 십자가에 못 박히던 골고다 언덕에, 부처가 명상에 잠겼던 보리수 앞에, 마호메트가 계시를 들었던 히라산 동굴 앞에, 사진기를 들고 온 관광객들이 바글거리지 않았다는 것만으로도, 인류가 미래의 그 어느 시간에든 시간여행기를 만들지 못한다는 증명이 된 것과도 같다고.
-김보영, <0과 1 사이>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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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광가이드란 대개 필요악이다. 학교나 병원, 교도소, 신병훈련소처럼, 정보 혁명 이후에도 잔존하는 몇 안 되는 지식 정보 격차를 활용해서 살아남은 구시대적 잔재일 뿐이다. 도대체 잘 아는 지역이라면 가이드가 왜 필요하겠는가? 그러나 또한, 잘 아는 지역이라면 왜 관광을 하겠는가? 이것이 관광가이드의 유일한 존재 이유이다.
지역만이 아니다. 시대도 마찬가지다. 잘 아는 시대라면, 그 시대의 언어와 문화와 관습을 숙지한 상태라면 가이드 따위는 필요 없겠지. 아니, 그러나―시대의 문제라면, 앞서 말한 문제들을 차치하더라도 최대 난제는 여전히 남는다. 상용화된 텔레포트를 통해 모든 제한이 풀린 공간적 이동과 달리 시간적 이동은 여전히 과점도 아니고 전적으로 독점된 상태다. 시간선―그러니까 기존 역사-의 변경은 인류 존립에 치명적인 위협을 가할 수 있다,라는 대중들의 불안은 시간관광청을 초국가적 특수 기관으로, 어떠한 강압, 회유, 매수에도 넘어가지 않는 절대적이고 완벽한 관료 체제로 정립시켰다. 대개 엄선된 역사학자들만 엄격한 심사를 거쳐 학술적 탐사를 할 수 있을 뿐이고, 예외로 일부 시공간 영역만이 (엄선된다는 점에서는 마찬가지지만) 일반인에게도 개방된다.
집안 대대로 독실한 불자였던 그의 어머니는 불교 성시聖時 순례 코스가 개설된 뒤 얼마 되지 않아 시간 관광 자격을 얻었다. 그야말로 시간관광청의 폭압적 영향력을 짐작하게 해주는 사례라고 그는 생각했다. 그 누가 감히 한 사람의 신앙을 검토하고 평가할 수 있단 말인가. 그러나 시간관광청은 당연하다는 듯 그렇게 한다. 성시 순례를 신청하면 면접 및 조사, 시험, 심지어 심층 심리 탐사까지 거치게 되며, 엄정한 심사 결과 순례 자격을 얻게 되는 것은 극소수에 불과하다.
그의 어머니는 최종 단계에서 탈락할 뻔 했다. 3단계 신체-인성-신앙 심사를 모두 통과했으나 여행 전 최종 점검에서 노쇠한 몸이 시간 도약의 충격을 견디지 못할 수도 있다는 판정이 나온 것이다. 그러나 그의 어머니는 엄격한 이미 심사를 통과했다는 점을 내세워 끝끝내 순례를 고집했고, 결국 시간관광청은 가족 중 동반자 1인을 추가하고, 어떠한 불미스러운 사태에도 시간관광청에 책임을 묻지 않겠다는 각서를 쓰는 타협안을 제시했다. 시간 여행을 통한 성시 순례에―혹은 시간관광청 자체에 대한 반감에도 불구하고 생업에 바쁜 다른 형제들과, 고령의 어머니 앞에서 차마 거부할 수 없어 그는 결국 수락했다.
*
1898년, 카필라 성에서 약 13킬로미터 떨어진 곳, 네팔 남부 국경에서 한 고분이 발굴되었다. 그곳에서 출토된 유골함에는 “이것은 사키아 족의 붓다, 세존의 유골이며 명예로운 형제 및 자매, 처자들이 봉납한 것이다”라고 적혀 있었다. 그 전까지 유럽의 실증적 학자들은 그의 수태와 탄생, 성장에 대한 신비로운 전승들을 근거로, 석가모니 역시 태양신 신화의 변종에 속할 뿐이며, 실존 인물이 아니라고 주장했지만, 이 발견을 계기로 고타마 싯다르타의 실존에 대한 반론은 그 기세가 크게 꺾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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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해서 그가 지금 여기, 석존 적멸 직전의 고대 인도에 그의 어머니와 함께 누워있는 것이다. 물론 시간관광 가이드와 함께. 시간 관광은 전문용어로 풀자면 텔레포트와 마찬가지로 플랑크-시간단위 동안 스캔한 플랑크-존재단위들의 정보 집합에 대한 전송 및 복구 과정이다. 플랑크-존재단위 낱낱에 대한 스캔은 대상 존재를 해체―무화하여, 물질은 정보로 완전히 전화轉化되고, 전송된 정보는 스캔의 역과정을 거쳐 다시 물질로 복원된다. 여기까지는 일반적인 텔레포트 과정과 동일하다. 텔레포트와 다른 점은 다만, 광섬유 혹은 전리층을 통한 유무선 중계 대신 플랑크-길이의 웜홀을 통해 모든 시간여행 역설들을 우회해서 존재에 대한 일련의 정보를 과거 시간대로 전송한다는 점뿐이다. 이것은 모두 아름다운 수학 공식으로 증명된 원리에 의한 실무적 실현 과정일 뿐이며 아무런 부작용도, 실패 사례도 보고되지 않았다(고 한다.)
그러나 시간 전송 직후 그는 거역할 수 없는 힘에 의해 위장에 들어있던 내용물들을 구강을 통해 밖으로 내놓았으며, 가이드는 늘상 있는 일이라는 듯이 낡은 천조각―나중에 알았는데 구시대에 걸레라고 불렀던 바로 그것이었다-으로 무심하게 둘의 구토물을 치웠다.
- 어서 오십시오, 열반경입니다.
지금까지의 시간관광청 답지 않은 낭만적인 인사에 그의 어머니가 감격했다.
- 여기가 정말로...
- 기원전 480여 년 경 쿠시나가라 마을입니다. 부처님은 오늘 파바 마을에서 금속세공인 춘다의 공양을 받으셨고, 내일 이 마을로 오십니다.
*
붓다의 입멸 이후 오래도록 그의 제자와 신자들은 그의 상을 만들지 않았다. 열반에 든 성자를 인간의 모습으로 표현하는 것은 당시 통념에 어긋났기 때문이었고, 후대 경전에서도 若見諸相非相 則見如來라고 했거니와, 감각 기관에 입력되는 정보와 그 내적 표상들에 집착하지 않도록 한 붓다의 가르침에 따르더라도 그의 겉모습을 본떠 상을 만들고 숭배하는 것은 옳지 않았다. 마침내 불상이 제작되기 시작한 것은 서기 1세기 말에 이르러서였다. 그러므로 우리는 붓다의 진정한 얼굴을 알지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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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 이동의 충격을 누그러뜨리기 위해 세 시간 정도, 거친 천을 깐 흙바닥에 누워서 휴식을 취했다. 멀리서 풀벌레 소리가 들려왔다. 무료하고 따분한 시간이어야겠지만, 그렇지 않았다. 텔레포트는 몇 번인가 경험해본 적이 있었지만 시간 이동은 마치 맨 처음 텔레포트했을 때처럼 생소했다. 남의 육신에 들어간 느낌. 마치 또 한 번 출생한 듯한 충격. 심장 소리도, 숨소리도, 모두 자신의 몸에서 나는 것이지만 낯설었고, 공복에 울리는 꼬르륵 소리에서 짚이는 내장의 느낌조차도 생소했다. 근육감각적 심상. 고등학교 시절 들었던 단어 하나가 아득한 기억 저편에서 문득 떠올랐다.
- 괜찮으세요, 어머니?
- 응. 부처님을 친견하게 된다니, 가슴이 좀 뛰는 거 말고는 다 괜찮구나.
연세가 연세니만큼 슬쩍 불안해져서, 그는 가이드를 불렀다. 귀찮더라도, 뭐, 그러라고 있는 가이드니까.
- 심박이나 맥박 모두 정상치 안에서 조금 빠른 정도예요. 물 가져다드릴 테니까 마시고 계속 쉬세요.
가이드의 말에 조금 안심하면서도 그는 어머니에게 물었다.
- 저는 몸이 이상하게 낯설고 어색하네요, 어머니는 어떠세요?
- 나? 난 괜찮다.
힘없이 늘어진 채로, 그의 어머니가 미소 지었다.
- 너도 나중에 알겠지만, 오십 이후부터는 몸이 내 몸 같지 않더라.
*
생전에 붓다는 자신은 승가의 일개 한 비구일 뿐이며, 단지 먼저 깨달음을 얻어 그 길을 안내하는 안내자일 뿐이라고 했다. 그리고 열반에 들 때까지 거듭, 믿고 의지할 것은 자기가 아니라 스스로의 깨달음이라고 강조했다. 그러나 시간이 흘러 인간 붓다로부터 너무 멀리 떨어진 사람들의, 위대한 스승에 대한 그리움과 안타까움, 열망은 결국 붓다의 영원성에 대한 믿음으로 이어졌으며, 삼천대천세계에 무수한 부처들이 영원한 미소를 짓도록 했고, 마침내 신성한 부처와 보살들에 대한 경건한 숭배와 공양이 시작되도록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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낯선 곳, 낯선 때에서의 불안과 불편 속에서도 피로한 정신은 금세 잠이 들어, 그가 다시 눈을 떴을 때는 어느덧 하룻밤이 지나고 늦은 아침이었다.
- 워낙 음식이 변변찮은 곳이라, 입에 맞으실지 모르겠네요.
우유죽과 콩이 섞인 보리밥, 작고 신 과일들을 내려놓는 가이드는 걱정스런 표정이었지만 어제 점심부터 굶은 입에는 진수성찬이었다.
아침을 먹고 나서는 드디어 밖으로 나가 산책을 했다. 밤에 부처님을 친견하려면 시간여행 증후군 특유의 신체부적응 상태에서 빠져 나와야 하고, 그러기 위해선 천천히 걷는 것이 제일이라는 가이드의 권유에 따른 것이었다. 아니, 어쩌면 단순히 관광 분위기를 내기 위한 프로그램일지도 몰랐다. 예전에도 그는 어머니를 모시고 성지 순례로 인도를 다녀온(아니, ‘다녀올’일까?) 적이 있었다. 삼천 여년 전의 인도의 시골 풍경도 크게 다를 바 없어 낯설지 않았지만, 전세계에서 온 순례객들로 붐비던(붐비게 될?) 쿠시나가라를 겹쳐보면 기묘한 느낌이 들었다. 그러니까 그들을 이곳으로 불러 모을 그 역사적 사건은 아직 일어나지 않았다는 그 기묘한 사실로부터 비롯된 기묘한 느낌이.
거리는 한적했다. 인근 사라 숲에서 새들이 지저귀는 소리만이 나직하게 퍼져왔고, 여느 농촌 마을이 그렇듯이 사람들은 대개 들일을 나가고 없었다. 그는 어머니와 천천히 구불구불한 흙길을 걸었다. 걸음마를 처음 배우는 아이처럼 발걸음이 낯설었다. 시간 여행 증후군. 그는 혼잣말로 되뇌어 보았다. 치과 수술을 받았을 때처럼 얼얼한 입 안에서 혀가 둔하게 움직였다. 생전 처음 걸쳐보는 인도 옷도 언제 어디가 풀리고 밟힐지 불편해서 더욱 신경이 분산됐다.
- 이제 제법 걸으시는데요. 이따 저녁 먹고 세존께서 마을 사람들을 부르실 때 같이 나가실 수 있겠어요.
앞서 걷던 가이드가 톤이 조금 높은 업무용 목소리로 그와 어머니를 격려했다.
- 그러고 보니, 부처님께서는 지금 어디 계실까요?
그러자 생각났다는 듯 어머니가 물었다. 가이드는 조금 불안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 아마 카쿠타 강을 건너시거나 춘다를 위로하고 계시지 않을까요? 물론 오시기 전에 충분히 듣고 숙지하고 계시겠지만, 심야에 말라족 전체가 가서 뵐 때 외에 사사로이 접근하거나 접촉하시면 절대 안 됩니다.
- 걱정 말우, 젊은 양반. 난 그저 그분과 같은 장소, 같은 시간에 와 있다는 것만으로도 가슴이 설레서, 그래서 계속 그분이 지금 어디 계실까, 무엇을 하고 계실까 생각해보는 거라오. 어쩌면 막상 그분을 눈앞에서 뵈올 때보다 지금이 더 행복한 건지도 모르겠어. 살아보니 좋은 거, 반가운 게 다 그렇더구먼.
가이드는 꽤 감동받은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말이 나온 김에 그는 궁금했던 걸 물어보았다.
- 아, 그러고 보니 예전에 어디서 들은 게 있는데요, 골고다 언덕이나 히라산 동굴에, 사진기를 든 관광객들이 없었으니 시간여행이란 불가능하다는 말이요. 이 마을 전체 인구수가 그닥 많지 않을 거 같은데, 시간관광청은 적어도 이, 쿠시나가라 코스를 쉰 번 넘게 진행했던 거 같고, 앞으로도 끊이지 않을 거 같단 말이죠. 설마 이 마을 주민들이 모두 사실은 시간관광객들이었던 건가요? 그러니까 말라족 전체가?
가이드는 작게 웃었다.
- 그렇다면 지금 이 거리에도 두 분처럼 어색하게 걷는 사람들이 빽빽하게 오가고 있어야 되지 않나요? 앞으로 미래에서 올 무수한 순례객들이 이곳에 함께 있어야 될 테니까요. 사실은 저도 정확히는 이해할 수 없으니까, 설명이 될지 모르겠는데요, 전문적인 논증 빼고 결론만 이야기하자면, 미래와 마찬가지로 과거도 확정되고 고정된 실체로서 존재하는 게 아니래요. 이 우주 안의 모든 사건들은 서로 인과 관계에 따라 연결된 상태로서만 존재하고, 따라서 어쩌면 우리가 위치하고 있는 이 시간, 이 장소도 객관적으로 확고한 무언가가 아니라 저와 두 분의 관계망 속에 연결된 상태일 뿐이라는 거죠. 그러니까 두 분이 불교로부터 직간접적인 영향을 받으며 이루어지는 존재들이기 때문에, 두 분 존재의 과거를 거슬러 올라오면 부처님과 만날 수 있는 거라고요. 사실, 어쩌면 두 분도 제게는, 그리고 두 분께 저는, 고정된 한 사람이 아닐 수도 있어요. 무엇보다 오늘 투어가 끝나면 두 분과 마찬가지로 저도 미래로 다시 송신되고, 그 다음에 미래에서 다시 새로운 관광객 분들과 함께 우리가 처음 도착했던 그 순간으로 재송신되거든요. 제 주관적인 체험 시간 속에서 지금 이곳은 서른 몇 번째 방문이에요. 그 때 그 때마다 손님들은 달랐고, 이전에 함께 했던 손님이나, 과거에 방문해온 저는 아직까지 본 적이 없어요. 혹시 이해가 되시나요?
- 부처님께서 설법하신 연기론 그대로네!
어머니가 눈을 반짝이며 속삭였다. 속삭임에 깃든 경외 때문에, 그는 그건 아닐 거라고 생각했지만 말참견할 수 없었다. 다만,
- 그럼 혹시 그, 평행우주 어쩌고 하는 그런 건 걸까요?
- 어, 저희 업무 연수 때 오셨던 교수님도 지금 제가 말씀드린 설명으로 이해가 안 되면 그렇게 생각해도 된다고는 하셨어요. 하지만 굳이 그럴 필요는 없다고요. 사실은 저도 그 차이를 잘 모르겠지만요.
*
붓다의 가르침은 그 제자들 사이에서 오래도록 입에서 입으로 전해졌다. 그리하여 그 가르침이 문자로 기록된 후에도, 구전의 흔적은 유려한 운율로서 경전 곳곳에서 영원히 노래되고 있다. 말씀이 글자로 고정된 것은 붓다 사후 400여 년 뒤의 일이었다. 그 동안 입에서 입으로 전해지는 구전의 과정에 필연적으로 수반되는 누락과 변형 그리고 첨가로 인해 우리는 붓다의 진정한 목소리 또한 알지 못하는 것이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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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책길 내내 그는 지금까지 미뤄뒀던 고민들이 한꺼번에 밀어닥치는 것을 느낀다. 언제나 그랬다. 그는 미루기 선수였다. 학창 시절 언제나 마감 전날 마지막 밤에야 허겁지겁 밀린 숙제들을 해치우곤 했으며, 직장에서도 결코 막바지에 몰리기 전까지는 움직이지 않았다.
지금도 그는 내면에 가득 차오르는 혼란과 불안을 최대한 외면했다가 이제야 한꺼번에 물어뜯어 곱씹기 시작한다. 어렸을 때 그는 어머니를 따라 해마다 한 번 혹은 두 번씩 절에 다니곤 했다. 사월 초파일은 항상, 그리고 정월 보름이나 음력 칠월 칠석 중 한 번씩. 그 때 그는 여러 부처님들과 보살님들을 모두 절대적인 신으로 믿었고, 어려운 일이나 힘든 일이 있을 때면 언제나 마음속으로 나무아미타불이나 나무관세음보살을 외우곤 했다. 그러나 사춘기에 들어선 어느 날부턴가 그는 아줌마와 할머니들 사이에서 엎드려 절하는 것이 왠지 부끄러워져서 법당 안에 들어가지 않게 되었다. 그리고 고등학생이 되자 공부해야 된다는 핑계가 절에 가지 않도록 도와주었다. 그러나, 그렇다면 도대체, 대학시절 그가 한 학기 동안 불교 철학 강의를 들은 것은 도대체 무슨 까닭이었을까. 메마른 졸음이 느릿하게 떠도는 낡고 좁은 강의실에서 늙은 교수는 공허한 눈으로 고등학생 티가 채 가시지 않은 젊은이들에게 도대체 왜 우리가 철학을 해야 할까 물었고, 그는 졸다말고 그럼 우리보고 뭘 어쩌라고, 속으로 반문했다.
법륜이 그의 머리 위에서 다시 회전하기 시작한 것은 군대에서였다. 훈련소 시절 주말 종참으로 가본 법당에서 그는 진흙 위로 일어선 연꽃의 향기를 맡았다. 의례적인 법회의 의례적인 법어들도 훈련소에서의 고된 충격들 속에서 새롭게 살아났다. 그리고 입정(入定) 때 그는 입소한 뒤 처음으로 그 자신으로 되돌아갈 수 있었다.
그러나 자대배치를 받은 후로 그는 법회에 나가지 않았다. 그 대신 주말이면 외출 때 학교 앞 헌책방에서 사들고 온 불교 서적들을 읽었다. 주로 일본 학자들이나 유럽 학자들이 쓴 개론서들이었다. 그는 점점 더 철학으로서의 불교에, 그리고 인간으로서의 붓다에 빠져들었다.
이곳에―혹은 이때에 처음 왔을 때부터 짜증을 낸 것도 그래서였다. 그는 자신이 가이드에게 신경질을 내는 이유를 어렴풋이 짐작했다. 가이드는 이 관광이라는 이름의 시간 여행이 그에게 주는 불편함을 환기시키는 표지판이었으니까. 그는 살아있는 붓다를 무슨 구경거리인양 관광이랍시고 보러 오게 된 것도 불편했고, 부처님과 보살님들의 신통한 영험과 가호를 강조하는 한국 불교의 독실한 불자인 그의 어머니가 가슴에 소중하게 간직하고 있는 부처님과 이곳에서 실제로 대면하게 될 붓다 사이의 거리가 얼마나 될지 생각만 해도 불편했다.
많은 해외 SF들에서 시간 여행이 종교와 연결 될 때에는, 신앙하던 것이 실재하지 않을 경우 인간의 충격과 혼란이 이야기되곤 했다. 그러니까 서구 기독교적 관점에서의 근본적인 불안과 공포의 반영으로서. 그는 쓰게 웃었다. 그가 직면한 문제는 정반대였다. 우리는 과연 실재하는 것을 신앙할 수 있을까? 그러니까 인간은, 그 때까지 신앙하던 것의 실존을 확인했을 때 과연 어떤 반응을 보일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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붓다가 어떤 사람이었는지는 그의 죽음을 기록한 열반경에서도 엿볼 수 있다. 깨달음을 얻은 후 평생 멈추지 않고 제자와 신자들에게 설법하고 격려하며 북인도 전역을 순행하던 그는 작은 마을에서 금속세공인에게 음식 공양을 받은 뒤 식중독에 걸린다. 노쇠한 몸으로 죽음을 예감한 그가 제자들에게 당부한 것은 두 가지였다. 첫째, 결코 금속세공인을 책망하지 말고 그가 자책하지 않도록 위로할 것. 둘째, 존재하는 모든 것은 무상하니 열심히 정진하여 해탈에 이를 것. 그가 죽은 후 가르침 받지 못한 것을 슬퍼하지 않도록 제자들에게 묻고 싶은 것이 없는지 세 번 물은 다음, 그는 선정 속에서 죽음을 받아들였다.
6
그들은 조금 더 걷다가 돌아서서 다시 숙소-흙집 오두막도 숙소라고 부르니 정말 관광 중인 것처럼 들린다고 그는 생각했다-로 삼고 있는 마을 회당에 돌아왔다. 가이드의 말에 따르면 그들은 어제 저녁 늦게 도착한, 여행 중인 상인 가족으로 얘기가 다 되었다고 했다. 나그네를 환대하는 관습에 따라 마을 회당 한쪽에 숙소를 얻은 것이며, 오늘 저녁의 마을 회의에도 이미 초대를 받았다고.
뉘엿뉘엿, 기원전 인도에 해가 저무는 동안 그들은 저녁-마찬가지로 채소 죽과 풀기 없는 밥, 과일 몇 개-을 먹고 옅은 어스름 속에서 마을 회당 전면의 큰 회의실로 자리를 옮겼다. 숙소와 별 다를 것 없이 크기만 훨씬 큰 오두막 흙방에서 구리빛 주름살투성이의 사람들이 한데 모여 시시콜콜한 얘기를 주고받는 것을 듣자니 별 수 없이 하품만 나왔다. 전송 전에 고대 마가다어 방언을 현대 한국어로 알아듣도록 언어 중추를 개조했었기 때문에, 그는 농촌 드라마 한 대목을 길게 늘인 것 같은 그 모든 수다를 알아듣지 않을 수 없었다. 실제로 그의 어머니는 귀를 종긋 세우고 이따금씩 아, 저이가 저 집안 아들인 게로구나, 그렇지, 남의 밭에 말도 없이 들어가면 안 되지, 에구야, 저 남자는 부인이 싫어진 모양이구나, 추임새를 넣어가며 일일 연속극을 보듯이 회의를 흥미진진하게 지켜보았다. 지루해진 그가 이제나 저제나 한참 애타게 기다리다 마침내 슬쩍 잠이 들기 시작할 즈음, 마침내 기다렸던 순간이 왔다.
머리를 짧게 밀고 누덕누덕 기운 옷을 입은 사문이 회당에 들어오더니 앞으로 나아가 마을 원로들과 뭐라고 짧게 대화했다. 원로들의 동의를 얻은 사문은 마을 사람들에게 큰소리로 말했다.
- 바세타여! 그리고 모든 말라 족들이여, 오늘 밤이 깊었을 때 여래께서 이 마을 옆 사라숲에서 열반에 드실 것입니다. 그러니 바세타여! 그리고 모든 말라 족들이여, 나중에 ‘여래는 진실로 우리 마을에서 열반에 드셨는데, 우리들은 그 마지막 때가 되도록 여래를 뵙지 못하였다’하고 후회하는 일이 없도록 지금 모여서 여래를 뵙도록 하십시오.
그러자 지금까지와는 확연히 다른 분위기로 마을 사람들이 일제히 떠들기 시작했다. 많은 사람들이 크게 놀라고 흐느끼기 시작했고, 또 많은 사람들이 큰 호기심을 보이고 궁금해 했다. 그는 마을 사람들의 그러한 순진함이 이해되지 않았다. 저들은 과연 붓다의 적멸이 이후 역사 속에서 지닐 의미를 도대체 만 분의 일이라도 짐작한 걸까?
이윽고 원로들의 인도에 따라 회당에 모였던 마을 사람들이 모두 일어나 마을 밖의 사라나무 숲으로 걸어갔다.
그건 오후 산책과는 차원이 달랐다. 기원전 인도 벽지의 밤길은 껌껌하기 그지없었고, 어머니와 그는 가이드의 능숙한 부축과 인도에도 불구하고 장님처럼 더듬거리며 더디게 숲길을 걸어야만 했다. 힘들고 지루하고 짜증나는-그는 신병 훈련소에서 받았던 야간 행군을 떠올렸다-길이었지만, 그의 어머니는 곁에서, 아난다 존자시다, 얘야, 나는 지금 그분 육성을 들었구나, 그에게 말했다.
그 감격한 어조만으로도 그는 지금 이 고생을 하는 보람이 있구나 싶었다.
*
불경에 의하면, 여성은 부처가 될 수 없다. 흔히 착각하는 관세음보살은 여성이 아니라 남성이다. 어떤 탱화에서도 그는 가늘게 말려 올라간 콧수염을 잊지 않는다. 불교의 여성 차별에 대해 더 알고 싶다면 정법500년감소설이나 여인오장설, 여성불성불론, 혹은 변성성불설 등을 찾아보라. 그러나 이 문제에 공정하려면, 여성의 출가를 허락할 것을 간청한 아난다에게 붓다가 여성도 성불할 수 있다고 답했다는 전승도 언급해야 할 것이다. 학자들이 인도의 시대별 여성관의 변천이라든지 마하가섭과 아난다 사이의 갈등을 거론하는 것도.
7
모든 것이 경전에서 읽고 생각했던 것과 달랐다. 숲은 적요했고, 무엇보다 어두웠다. 아니 아주 컴컴했다. 태고의 숲, 태고의 어둠. 마을 청년들 중 일부가 횃불을 가지고 왔지만, 정작 그들은 부처님과 그 제자인 아라한들 앞에 황송하여 감히 나서지 못했고, 덕분에 가장 중요한 장면-사라쌍수 사이에 사자와獅子臥하신 부처님은 하나도 안 보였다. 다만 어둠 속에서 아난다 존자의 목소리만 어눌하게 울려 퍼졌다.
마을 사람들은 그 말에 따라 아들, 부인, 딸, 일족, 하인들-즉 가족과 식구들끼리 모여 어둠 속으로-열반 직전의 부처님 앞에 나아가 마지막 인사를 드렸다. 캄캄한 숲의 밤공기 속으로 나직이 마을 사람들 하나하나의 가계를 읊어 소개하는 소리와 부처님을 찬탄하는 속삭임이 이어졌다.
독경 같이 나직한 소리의 반복 속에 졸다가 문득 수근거리는 소리에 놀라 깨어보니 달이 한참 숲 너머로 기울고 있었다.
- 무..무슨 일이래요?
궁금증보다는 하품이 먼저 나왔다.
- 부처님의 마지막 제자가 오셨어!
어둠 속에서 어머니의 목소리가 별처럼 반짝였다. 잠결에도 웃음과 울음이 목구멍을 동시에 간질이는 느낌에 그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여자들은 도대체 언제까지 소녀인 걸까? 수많은 세월 속에서 흰머리와 주름살에도 아랑곳 않고 마음 속 깊은 곳에 소녀로 살아남는 여자들의 그 힘은 과연 어디에서 오는 걸까. 어머니의 목소리에는 소녀들 특유의 순진무구한 설렘과 열정, 기쁨과 기대가 오롯이 담겨 있었다.
편력행자 스밧다. 그는 예불하는 차례가 밀려 답답했는데, 어머니는 전혀 신경 쓰지 않는 눈치였다. 스밧다와 아난다, 아난다와 부처님, 부처님과 스밧다가 나누는 대화는 그들에게까지는 거의 아무 것도 들리지 않았다.
- 부처님께서 마지막으로 설법하시는 건데, 좀 들을 수 없을까요?
처음으로 조바심을 내며 어머니가 가이드에게 속삭였다. 그는 어둠 저편의 흐릿한 그림자를 향해 보일지 안 보일지 알 수 없는 애원의 눈길을 애타게 보냈다. 제발, 평생 욕심 없이 사신 분의 마지막 부탁이오, 제발 들어주시오.
그러나 가이드는-젠장, 그러면 도대체 왜 있는 가이드야?-단호했다.
- 안됩니다. 부처님의 대개의 설법이 그렇듯이 저 설법 역시 저 분께 한정된 설법입니다. 게다가 그 내용은 익히 다 알고 계시지 않습니까?
어둠 속에서 침묵이 조용히 흘렀다. 어둠 너머에서 누군가의 음성이 나직이 들려왔지만 무슨 말인지는 알 수 없었다.
- 물론 그렇지요.
잠시 후에야 어둠 속에서 어머니가 대답하셨다.
- 미안해요. 늙어서 주책이 없어진 모양이구랴.
정말로, 그는 가이드를 한 대 치려고 했다. 평생 누구에게도 아쉬운 소리 한 번 안 해보신 분에게서 이런 말이 나오게 하다니.
하지만 가이드의 나직한 말에 그는 다시 주먹을 풀 수밖에 없었다.
- 어쩔 수 없습니다. 만일 여기서 시나리오에서 조금이라도 벗어나면 관광은커녕 우리 모두 송두리째 변할 수밖에 없거든요. 이해해 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 그게 무슨 소리죠? 변하다니요?
- 어...
가이드는 다소 당황한 어조로 그에게 대답했다.
- 말씀드렸다시피, 여기는 두 분의, 아니 저까지 우리 셋의 과거일 뿐입니다. 만일 지금 이곳에서 우리의 과거와는 다른 사건이 벌어진다면, 당연히 우리 셋의 존재 자체도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지요. 최악의 경우 우리들 중의 누군가가, 혹은 우리들 모두가 사라질 수도 있습니다.
그는 아찔해졌다. 아니, 아득해졌다. 전에 혹시 그런 경우가 있었는지 물어보고 싶었지만 한참 망설이다 결국 관뒀다. 왜 없었겠어?
*
불교에서 유래한 낱말 중 가장 널리 쓰이는 인연은 인과 연을 아울러 일컫는 말이다. 인이란 사상事象들의 직접적인 원인을, 그리고 연은 그 원인이 결과로 발현될 수 있게 하는 제반 조건, 바탕을 가리킨다. 불교에서는 제1원인을 말하지 않는다. 모든 것이 모든 것에게 인 또는 연이고, 고로 제법諸法은 고정된 실체가 아니라 끊임없는 생성 변화 소멸 과정 속의 한 단면일 뿐이다. 이것이 있음으로 저것이 있고 이것이 없어지면 저것이 없어진다. 당신이 있음으로 내가 있고 내가 없어지면 당신도 없어진다.
8
어느덧 스밧다도 물러나고 다시 말라 족의 예불 행렬이 이어졌다. 점점 줄이 짧아지고, 어머니와 그는 어둠 속으로 한 발 두 발 걸어 들어갔고, 마침내...
- 마지막입니다. 여행 중에 쿠시나가라 마을에 들른 상인 계급 사내와 그 모친입니다.
아난다 존자의 목소리가 꿈결처럼 귓전을 때렸다. 그는 잠시 뒤에야 그것이 그와 그의 어머니를 소개하는 말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아, 가장 늦게 하는 게 좋은 점도 있구나. 그는 생각했다. 우리가 가장 마지막이란 말이야?
자, 어서 앞으로 나가세요. 가이드의 재촉에 어머니와 그는 한 걸음 앞으로 나아갔다.
누군가 가지고 온 작은 등불로 부처님 앞은 사람들 얼굴이 어렴풋이 분간될 정도로 밝았다. 침통한 표정으로, 머리를 짧게 밀고 검게 그을리고, 주름살투성이에 기운 옷을 입은 사문들이 둘러앉은 가운데, 우람하게 자란 사라나무 밑 간소한 침상 위에는 마찬가지로 머리를 짧게 자른, 검게 그을리고 주름지고 마른 체구의 노인이 고통 속에서 엄격하면서도 부드러운 표정으로 길게 누워 있었다.
절에서 보는 불상 같은 부처님을 기대한 건 아니었지만, 죽음을 앞둔 한 인간의 적나라한 모습은 정말로 뜻밖이었다. 그는 말을 잃었고 모든 생각이 지워졌다.
누군가 옆에서 팔을 건드렸다. 어머니였다. 황급히 어머니를 따라 노인의 발치에 깊이 절했다. 한참을 기다려도 어머니는 몸을 일으키지 않았고, 슬쩍 몸을 들던 그는 무안해져서 다시 머리를 조아렸다. 그리고 다시 한 번, 지금 자신의 절을 받고 있는 노인에 대해 생각해보았다.
깨달음이란 무엇일까? 종교란 과연 무엇일까? 과학 기술로 이렇게 시간을 거슬러 올라와서 보게 된 한 종교의 진정한 모습에는 도대체 무슨 의미가 있을까? 불상과 절을 꾸민 그 수많은 금과 보석, 꽃과 비단은, 수많은 경전과 논論과 소疏와 그리고 현대의 무수한 논문들 위로 잔뜩 쏟아진 그 무수한 현학적인 단어들이 도대체 지금 이 순간과 무슨 상관이란 말인가.
마침내 어머니가 일어서시는 기색에 그도 따라 일어섰다.
일어서서 다시 두 손을 모아 공손히 합장을 하고 고개를 들어 다시 보았을 때 노인은 희미하게 고개를 끄덕이며 웃었다.
*
神足通, 天耳通, 他心通, 宿命通, 天眼通, 漏盡通. 불경에서 흔히 말하는 여섯 가지 신통력이다. 붓다의 가르침은 지극히 이성적이고 현실적이었으나 세월이 지남에 따라 점점 신비주의적 색채와 신화적 성격이 가미된 것을 생각해보면 六神通 역시 인간들의 그런 어리석음과 나약함의 소산으로 생각해볼 수 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나약하고 어리석은 인간들의 눈에 당시 붓다가 보여줬던 정신적 탁월함, 인격적 감화력이 얼마나 강렬했을지도 생각해볼 수 있다.
9
밤이 깊었을 때, 노인은 잠들듯이 고요히 숨을 거두었다. 불경에 기록된, 하늘이 찢어지는 소리나 땅이 흔들리는 지진은 없었다. 남아 있던 마을 노인들 몇이 슬피 울었고, 노인을 따르던 제자들은 침통한 표정으로 말없이 삶과 죽음의 덧없음에 대해 명상했을 따름이었다. 꽃비는 내리지 않았다. 당연했다. 꽃이 피는 계절이 아니었으니까. 그러나 어느 순간 소리 없이 불어온 바람에 높이 솟은 사라나무가 그 깃털 같은 이파리만 소소히 떨구었을 때,
누군가 경외의 어조로 속삭였다. 쿠시나가라 마을만큼이나 보잘 것 없고 배운 것 없는 이의 목소리였다 : 저것 보아, 선생님이 돌아가싱게 나무들도 섧디야.
날이 밝자 간밤에 돌아가 잠들었던 마을 사람들이 다시 숲으로 돌아왔다. 많은 아낙네들이 소리 높여 울었고, 철없는 꼬맹이들도 분위기에 압도되어 어른들 다리 사이에서 가만히 눈만 크게 뜨고 서있었다. 성자가 열반에 들었어도 남은 이들의 일상은 계속되었다. 낮이 되자 많은 사람들이 일하러 들로 나갔고, 다만 마을 원로들이 노인의 제자들과 다비 일정을 의논했다.
가이드의 애써 조바심 감춘 재촉에 그는 소리 없이 눈물만 흘리시는 어머니를 모시고 마을로 돌아왔다.
- 하루를 넘기면 전송이 힘들어집니다.
숙소로 돌아와 다시 자리에 눕자 가이드는 다시 스캐너를 꺼내어 그들의 몸에 붙여주었고―
*
세상에는 교주를 만나면 죽여 버리라고 가르치는 종교 분파도 있다. 동북아시아에 널리 퍼진 선불교는 그토록 급진적이고 우상파괴적인 종교이다. 부처를 만나면 부처를 죽이고 조사를 만나면 조사를 죽이라는 임제의 화두는, 그러나 붓다가 이미 예비해놓았던 오래된 길일뿐이다. 붓다는 그의 죽음의 순간에 이미 자신의 가르침이 사후 교조화될 것을 우려했고, 제자들에게 오직 바른 가르침과 자기 자신만을 믿고 정진할 뿐, 외부의 죽은 언어에 집착하지 말라고 거듭 당부했었다.
10
눈을 다시 떴을 때 주변은 어제 출발했던 시간관광청 플랫폼으로 바뀌었다. 밀리세컨드 단위로 줄어들던 카운트다운이 종료되었고, 전송팀 스텝들이 다가와 전송대에서 부축해 부양침대로 옮겨주었다.
- 한 번 겪어 보셨으니까 재적응은 금방 끝나실 거예요. 다만 우리가 시간 멀미라고 부르는 대체로 무해한 후유증이 혹시 생길 수 있으니까, 한두 시간 회복실에서 기다렸다 귀가하세요.
회복실에 단 둘이 남게 되었을 때, 그는 이제 드디어, 그동안 내내 마음에 무겁게 걸려있던 문제와 직면할 때가 되었다고 스스로를 몰아붙였다. 그는 떨어지지 않는 말문을 간신히 떼어 어머니에게 조심스레 물었다.
- 괜찮으셨어요, 어머니? 너무 초라하고 볼품없지는 않으셨나요…?
그의 질문에 어머니는 작게 웃으며,
- 얘야, 난 이제 죽는 것이 두렵지 않구나.
그 미소가 낯설면서도 또 한편으로는 낯익어 그는 어머니의 주름진 얼굴을 생전 처음 보는 것처럼 천천히 들여다보았다. 주름진 얼굴 위의 편안한 미소. 한밤의 숲, 어둑한 등잔불빛 속에서 마지막으로 보았던 붓다의 얼굴이 문득 떠올랐다. 다음 순간 둔중한 충격이 그의 마음을 내리쳤다. 가난한 여인의 초라한 연등 하나-슬라브 여인의 마음속에 가라앉은 놋쇠 항아리-이성의 테두리에 갇힌 것을 우리는 종교라 부를 수 있을까-과연 진정으로 인간의 눈을 가리는 것은 무엇인가-신앙인가-이성인가-부질없다-옳은 질문은 이것이다 : 그 때 내 눈을 가린 것은 무엇이었나-若見諸相非相 卽見如來 : 그렇다면 또한 여래를 본 사람은 결국 모든 상이 상 아님을 보게 되는 것일까-오오, 나는 도대체 무엇을 보고 왔단 말인가-내 자만이, 내 무지가 내 눈을 가렸다-그는 다시 눈을 떴다. 여전히 어머니는 미소 지은 채 그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는 떨리는 몸을 조용히 일으켜 가만히, 어머니를 향해 고개 숙여 합장했다. 잠시, 의아해하던 어머니도 다시 미소하며 아들을 향해 마주 합장하고 고개를 숙였다.
f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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