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F Review

배명훈의 <화성과 나>: 화성에서 살아가려면 식량이 아닌 음식이 필요하다

2024년 4월 통권 223호


“먼 미래 화성 이주가 본격화되면 화성에 어떤 세계가 들어설까?” 배명훈 작가는 2020년 우리나라 외교부의 연구 의뢰를 받는다. 내가 보기에도 국제정치학을 전공한 SF 작가인 저자가 연구를 수행할 적임자다. 지금까지 화성 이주를 다룬 논의는 많았지만, 어떻게 갈지, 그리고 그곳에서 살 수 있을지가 주된 관심이었다. 작가는 그 너머를 바라본다. “어떻게 인간이 화성에서 사회를 이루어 살아가게 될까?”를 묻는다. 지구의 기후 환경이 인간으로 말미암아 회복 불가능한 지경으로 악화되는 미래가 우리에게 닥치는 것을 원하는 이는 아무도 없다. 하지만 화성으로의 이주가 인류에게 주어질 유일한 선택지가 될 암울한 미래도 상상해 볼 수 있다. 그렇다면, 화성에 우리는 어떤 세상을 만들어야 할까? 좁은 지구의 구역마다, 때로는 보이고 때로는 보이지 않는 울타리를 치고 서로 싸우고 죽여온 것이 인류 역사의 한 줄 요약이라면, 화성에서의 우리는 달라야 하지 않을까? 그곳마저도 떠나야만 할 더 먼 미래를 막으려면, 화성에서는 그래도 이곳 지구와는 다른 방식으로 살아가야 하지 않을까? 그렇다면 화성의 정치와 사회는 어떤 모습이어야 할까? 


<붉은 행성의 방식>은 초기 정착에 필요한 군인 신분 조종사, 과학자, 엔지니어에 이어 인문, 사회, 그리고 행정의 전문가도 이주해 거주자가 2400명에 이른 시점의 화성이 배경이다. 결국 화성에서도 첫 살인 사건이 발생한다. 해결해야 할 문제가 많다. 사법권은 어디에 귀속될지, 재판과 처벌의 절차는 어떻게 할지, 재판 이전의 피의자는 어디에 머물게 할지.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우주의 무한한 공백을 마주해 두려운 인간은 화성에도 국가를 그려 넣게 될까? 작가는 어렵지만 낙관적인 미래를 상상한다. 서로 상해를 입힌 일보다 다른 사람의 목숨을 구한 일이 훨씬 더 많았던 화성인들이 “여백을 직시하는 법”을 잊지 않은 미래다. 결국 “행성의 광대한 여백에는 리비이어던이 한 마리도 그려지지 않았다.” 화성의 지속 가능한 미래에 이곳 지구에 지금 존재하는 것과 같은 국가는 어울리지 않는다. 


<김조안과 함께 하려면>의 멋진 주인공 김조안은 어려서부터 육상, 배구, 수학, 영어 스피치, 댄스 오디션 등, 다방면에서 두각을 나타냈다. “제일 좋은 대학에 들어갈 것 같지는 않지만 언젠가 제일 먼 데까지 날아갈 사람”으로 친구들이 믿었던 서른 살 김조안은 농작물 재배를 위해 화성으로 이주한다. 김조안의 연인인 소설의 화자 ‘나’는 종말의 시대에 유망해질 기상학을 전공해 지구의 행성 관료가 되어 화성인들과의 연락을 이어간다. 밤늦게 야근하고 자리에서 일어난 어느 날, 사무실 복도 앞 소파에서 잠든 김조안을 발견하고 깜짝 놀란다. 잠에서 깬 김조안과 “눈이 마주친 순간, 온 세상이 나에게로 쏟아져 들어왔다. 세계는 전기로 이루어져 있었다. 나의 반쪽 김조안이 몸을 날려 나를 와락 끌어안았다.” 소설은 여기서 멈추지만, 그래도 뒷 얘기가 궁금하다. 짧은 만남 이후 김조안은 다시 또 화성으로 홀로 떠나게 될까? “화성의 문명이 완성되는 것은 임무를 지니지 않은 ‘쓸모없는’ 사람이 화성으로 건너가는 순간부터일 것”이라는 문장에서 화성에서는 필요치 않을 지구 기상 전문가인 ‘나’와 김조안이 함께 화성으로 이주하는, 둘의 행복한 미래를 떠올려본다.


<위대한 밥도둑>의 주인공 이사이는 3D 프린팅 공간 조형 기술이 뛰어나 서른한 살에 화성으로 이주했다. 더 이상 사용하지 않는 건축물을 분해해 다시 재료로 쓰는 화성에서 꼭 필요한 기술이다. 억누를 식욕 자체가 없던 이사이는 여느 화성인처럼 “음식이 아니라 식량”을 먹으며 살아간다. 혀에 착용하면 전기자극으로 음식 맛을 흉내 내는 장치인 일명 “혀 콘돔”을 이용하기도 하지만, 화성인들은 늘 음식에 대한 갈망을 느낀다. 지구에서 본 행성이 태양의 건너편에 놓이는 것이 외합이니, 지구에서 화성을 보나 화성에서 지구를 보나 외합은 같은 날짜다. 미래 인간이 화성에 이주할 때, 두 행성인이 함께 같은 날 축하하기에는 딱 제격인 날이다. 외합축제 때 화성인들은 축제의 마스코트로 우주 괴물을 디자인한다. 딱딱한 외골격과 두 개의 집게발을 가진 상상의 괴물이다. 이 모습을 보고 한국인 이사이는 “아, 망했다. 간장게장이 먹고 싶어”하며 “지구병”에 걸린다. 분명 어딘가(지구) 존재한다는 것을 알지만 여기에는 절대 있을 수 없어 느끼는 아쉬움과 갈망의 고통이다. 지구에서 간장게장을 경험한 세 화성인이 “미래 식량자원 구성 위원회”에 “간장게장이 밥도둑”이라는 얘기를 펼치며 꽃게를 화성으로 들여오자고 주장한다. 게와 같은 해산물은 살아있는 상태로 화성으로 들여오는 것이 무척 어려울 수밖에 없어 결국 위원회는 요청을 승인하지 않지만, 미래 도입 계획의 “30년 이상” 항목에 꽃게가 기재된다. 화성에서 ‘식량’이 아닌 간장게장 같은 ‘음식’을 먹을 수 있는 먼 미래가 화성 문명이 드디어 시작하는 시점이다. 간장게장과 함께 하면 밥의 반감기는 순식간이어서 밥이 게눈 감추듯 사라지는 것은 우리 대부분이 경험한 바다. 화성 가기 전, 지구에서 살아갈 때 부지런히 먹어야겠다. 불쌍한 이사이는 30년 동안 먹지 못할 밥도둑이니까. 


<행성봉쇄령>의 무대는 지구와 화성 궤도를 모두 만나는 태양 공전 궤도로 운행하는 사이클러 ‘큰 순환’ 우주선이다. “배설한 물질만 순환하는 것이 아니라 배설한 감정도 흩어질 공간이 없어 고립계로 순환”하는 5인승 ‘작은 순환’보다는 훨씬 큰 우주선이다. 느린 회전으로 약한 인공중력을 만들어내는 큰 순환에는 장기 우주 여행의 체력 손실을 막기 위한 운동 트랙이 있다. 가능한 긴 운동 경로를 구현하기 위해 트랙의 모습은 무한대 기호(∞)를 닮았다. 승객의 운동을 돕는 수석 트레이너 정우연은 큰 순환에 망명한 ‘행성주의 반체제 예술가’ 차나나를 만나고 둘은 아직 고백하지 않은 사랑을 느낀다. 지구 어느 나라의 명령권도 유효하지 않은 중립 지역인 큰 순환에 지구 ‘궤도 동맹’의 명령서가 도착한다. 큰 순환에 다가오는 망명 승객 운송 셔틀의 도킹을 거부할 것, 그리고 만약 탑승시키면 미사일로 큰 순환을 요격하겠다는 협박이 담겼다. 명령을 거부한 선장은 승객들을 탑승시키고, 궤도동맹의 미사일이 발사된다. 우주 여행 대비를 위한 운동으로 큰 순환의 트랙을 따라 걷던 승객들은 트랙 교차로에서 우연과 나나의 오랜 키스를 바라본다. 큰 궤도 선장의 말이다. “우리는 미사일 같은 게 없지만, 저 일(둘의 키스)이 계속되는 동안에는 우리가 이기고 있는 거거든.” 우주의 무한, 궤도의 순환, 큰 순환의 무한 트랙의 이미지를 떠올린다. 길게 길게 이어지는 것이 지속이라면, 지속은 순환으로만 가능하지 않을까. 유한이라는 구속 조건을 만족하면서도 무한을 구현할 수 있는 유일한 방안이 순환이 아닐까. 끊임없이 돌아와야 계속 갈 수 있는 것이 아닐지.


<행성 탈출 속도>의 화자 ‘나’의 엄마는 박사학위가 2개인 우주선 조종사로 지구를 떠나 지금은 화성 행성 관리위원회에서 일하는 능력자다. 화성에서 태어난 평범한 주인공은 수학에는 영 재능이 없다. 엄마는 화성에서 태어난 평범한 이들로부터 화성의 문명이 비로소 시작된다고 말하지만, 위안이 되지는 않는다. 어른이 된 ‘나’는 역사기록관에서 화성의 여러 다양한 지형에 이름을 붙이는 일도 하지만 화성에서의 삶에서 벗어나고 싶어한다. “내가 화성의 탈출 속도에 조금 더 가까워졌다는 것. 그것은 타협이 아니라 포기였다.” 결국 지구 귀환 프로젝트에 지원해 지구로 와, 원격 연애를 이어가던 이채라의 부산집을 찾아간다. 하지만 채라는 이미 화성으로 떠난 뒤다. “세상 만물은 수로 이루어져 있다. 화성처럼 척박한 곳은 더 그렇다.”라고 하지만, 채라는 “세상이 수로 이루어져 있다니, 화성 사람들이 잘못 생각하는 거야. 세상은 사실 언어로 이루어져 있는데.”라고 말한다. 화성으로 간 채라와의 통화에서 채라는 “여기는 너의 세계고 나는 너의 세상으로 날아왔어. 너는 여기 없지만 내가 오늘 비로소 너의 세계를 만났다.”고 말하며 ‘내’가 붙여놓은 화성 지형의 작명에 감탄한다. ‘내’가 채라의 방에서 ‘부재라는 형태의 존재감’을 느꼈듯, 채라는 나 없는 화성에서 내가 남긴 이름을 통해 나를 만났다. 어떤 부재는 존재의 증명이고, 수학으로 굴러가는 덧없는 세상에 의미를 주는 것이 언어다. 


<나의 사랑 레드벨트>의 주인공 정반음은 지구의 그린벨트에 해당하는 화성 레드벨트의 유지와 해제를 결정하는 권한을 가진 행성 대리인이다. 지구에서 화성으로 오는 작은 우주선에 탑승한 우주선 동기는 원수가 되었든 소울메이트가 되었든, 미운 정 고운 정으로 끈끈한 사이가 되어 무언가를 청탁하면 거절하기가 대단히 어렵다. 반음의 우주선 동기 도시 건설 전문가 문결은 신시가지가 들어설 목 좋은 부지를 미리 구매할 기회를 제공하며 반음에게 건설 예정지의 레드벨트 해제를 청탁한다. 반음의 업무 파트너는 비인간 대리자인 인공지능 인격 ‘아흐네’다. 아흐네는 반음의 갈등을 알아채고 레드벨트를 심도에 따라 다르게 적용하는 안을 제안해 반음이 문결의 청탁을 들어줄 수 있도록 배려한다. 하지만 회의에서 아흐네가 제안한 레드벨트 해제안이 승인되기 직전 반음의 갑작스런 반대로 레드벨트는 해제되지 않는다. “화성의 붉은 풍경의 그림을 그린다면 그 풍경화에 초가나 암자를 그려 넣어서는 안된다. 레드벨트니까.”


과학과 공학이 화성에서 무엇을 먹고 살 수 있을지, 식량을 물을 때, 작가는 먼 미래 그곳의 음식을 묻는다. 작가는 식량이 아닌 음식을 고민하기 시작할 때, 우주선 조종사나 박사학위자인 초기 이주민들로부터 평범한 이들이 태어나 함께 살아가기 시작할 때, 그 때가 바로 화성의 인류 문명이 시작하는 시기라고 말한다. 작가는 “충분히 예측할 수 있는 것과 아직 예측해서는 안 되는 것을 섞어서 화성에 도달한 인간의 삶을 구체적으로 형상화하는 사고실험”을 SF 단편 소설집 <화성과 나>에 담았다. 우리가 어떻게 갈 수 있을지 알아냈다고 해서, 그곳에서 어떻게 살아갈지 알아낸 것은 아니다. 발생 확률이 작을지는 몰라도 개연성 있는 미래를 상상하지 않으면 우리는 대비할 수도 없다. 물론, 화성으로 가야만 하는 미래가 닥치지 않도록 우리 모두가 힘껏 함께 이곳 지구에서 애써야 한다. 하지만 누군가는 암울한 미래를 상상하고 그 미래가 더 끔찍한 모습이 되지는 않도록 지금 이곳에서 상상을 시작해야 한다. 그 누군가가 배명훈 작가다. 책을 덮고 간장게장을 주문해 먹었다. “위대한 밥도둑” 간장게장 만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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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범준
성균관대학교 물리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