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의 거실에 놓여 있는 TV를 가만히 살펴보자. “LED TV”, “OLED TV” 등 다양한 종류의 TV가 있지만 혹시 “QLED TV”라는 종류가 놓여 있다면 이 글이 무척 흥미롭게 읽힐 것 같다. 그 TV 속에는 최근 수여된 두 건의 노벨상이 관련되어 있기 때문이다. 하나는 2014년 노벨물리학상 수상자들(아카사키 이사무, 아마노 히로시, 나카무라 슈지)이 발명한 청색 발광다이오드(light emitting diode, LED)고 다른 하나는 2023년 노벨화학상 수상자들(모운 바웬디, 알렉세이 에키모프, 루이스 E. 브러스)이 발명하고 연구한 양자점(quantum dot, QD)이다. QLED TV의 “Q”가 바로 양자점을 가리킨다.
그림1. QLED TV 제품 사진
(사진 출처: https://commons.wikimedia.org/wiki/File:Samsung_QLED_TV_8K_-_75_inches_-_2018-11-02.jpg)
우리에게 사물을 투시하는 능력이 있다고 가정해 보자. QLED TV의 뒷면으로부터 스크린 쪽을 향해 투시해 들어가면 무엇이 보일까? 투시를 시작하기 전에 우선 QLED TV는 액정표시장치(liquid crystal display, LCD)의 한 종류라는 점을 기억해 두자 . 즉 우리가 보는 스크린은 스스로 빛을 만들지 못하는 액정 패널이고 그 뒤에 빛을 공급하는 백라이트(backlight)라는 조명 장치가 부착되어 있다. 백라이트에서 빛을 만드는 광원으로 과거에는 형광등이 사용된 바 있지만 오늘날에는 주로 LED가 사용된다. 그래서 LCD의 제품명이 “LED TV”로 탈바꿈된 것이다.
그림2. 액정 패널 뒤에 위치한 조명장치인 백라이트의 두 종
(그림 출처: https://commons.wikimedia.org/)
이제 QLED TV의 뒷면으로부터 출발해 TV 내부를 차례대로 투시해 보자. 본체를 뚫고 들어가면 우선 백라이트의 뒷면에 자리잡고 거울 역할을 하는 반사필름을 만난다. 다음으로는 반사필름 위에 2014년 노벨물리학상의 주인공인 청색 LED가 모자이크처럼 촘촘하게 박혀 있는 장관이 펼쳐질 것이다. 이 구조가 직하형 백라이트다([그림 2] 참조). 경우에 따라선 도광판이라는 투명 플라스틱의 측면에 LED가 배치된 엣지형 백라이트가 사용된다. 백라이트 내부 공간을 가득 채운 청색빛이 향하는 곳에서는 여러 장의 광학필름과 함께 양자점 필름이 기다리고 있다. 광학필름들은 점광원인 LED에서 방출되는 빛을 퍼뜨리고 균일하게 만들거나 시청자 방향으로 빛을 모으는 역할을 하지만, 액정 패널이 고대하며 기다리는 백색광은 양자점 필름을 거쳐야 만들어진다. 올해 노벨화학상의 주인공인 양자점은 어떤 원리로 청색광을 흰색 빛으로 바꾸는 것일까?
양자점의 ‘양자(quantum)’는 양자역학(quantum mechanics)에 포함된 ‘양자’와 동일한 단어다. 뉴턴의 고전역학이 로켓이나 자동차처럼 우리의 일상 속 운동을 기술한다면, 양자역학은 원자나 분자 등의 미시세계, 혹은 이들이 협동해서 만드는 현상들, 가령 반도체, 초전도체나 자성 현상 등을 설명하는 기본이 된다. 투시 능력을 높여서 양자점 필름 속을 들여다보자. 천 배, 이천 배를 확대한다 해도 사실 아무것도 보이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사람의 눈이나 광학현미경으로는 불가능하겠지만, 우리의 놀라운 투시력으로 양자점 필름을 천만 배 정도 확대해 볼 수 있다면 작은 공과 같은 입자들이 점점이 박혀 있는 모습이 보일 것이다. 바로 양자점이다.
그림3. 축구공을 지구 크기로 확대하면 양자점이 축구공 정도로 보인다.
(그림 출처: 스웨덴 노벨상 위원회 보도자료 중)
양자점의 크기는 보통 수 나노미터(nanometer) 정도의 나노반도체로, 수천~수만 개 정도의 원자로 구성된다. 이처럼 작은 공간 속에 국한된 전자들은 미시세계 특유의 양자적 성질을 나타낸다. 가령 전자가 가질 수 있는 에너지가 연속적으로 허용되지 않고 불연속적인 값만 가지는 “에너지의 양자화”가 대표적인 성질이다. 이공계 학생들이 대학에서 양자역학 과목을 배울 때 슈뢰딩거 방정식을 처음으로 적용해 보는 대상이 소위 무한 퍼텐셜 우물(infinite potential well)에 갇힌 입자다. 전자와 같은 입자가 일정한 폭을 가진 공간 속에 갇히고 여기를 절대 빠져나갈 수 없는 상황을 가정하는 것이다. 이처럼 작은 공간에 구속된 입자의 에너지는 오른쪽 [그림 4]처럼 불연속적인 에너지 상태, 즉 띄엄띄엄 떨어져 있는 에너지 준위를 갖는다. 부드럽게 기울어진 언덕의 경사면 대신 계단이 놓여 있어 특정 높이에만 있을 수 있는 상황과 비슷하다. 게다가 이 계단의 높이, 즉 에너지 준위 사이의 간격은 우물의 폭, 즉 입자가 갇혀 있는 공간이 좁을수록 더 크게 벌어진다.
그림4. 무한 퍼텐셜 우물에 갇힌 입자가 가질 수 있는 에너지 준위. 높은 에너지 준위에서 낮은 에너지 준위로 입자가 전이하면서 빛알이 방출되는 과정을 개략적으로 표현했다.
(그림 출처: Wikipedia)
낮은 에너지 준위에 있는 입자를 높은 에너지 준위로 올리기 위해선 외부에서 에너지가 공급되어야 한다. 에너지 보존법칙을 생각하면 이는 당연한 일이다. 반면에 높은 에너지 준위에 있던 입자가 낮은 에너지 준위로 내려올 때는 에너지를 포기해야 하는데 이것이 보통 빛알(광자)로 방출된다. 파장이 짧을수록 빛알의 에너지가 커지기 때문에 에너지 간격이 증가하면 나오는 빛알의 색은 파란색 쪽으로 치우친다. 따라서 입자가 갇힌 공간이 줄어들수록 단파장의 빛이 방출되고 입자가 갇힌 공간을 키우면 장파장의 빛이 나온다. 양자점 속 전자가 처해 있는 상황도 이와 비슷하다. 양자점의 크기가 줄어들수록 청색계열의 빛이 방출되고 양자점의 크기를 점점 키우면 청록색, 녹색, 노란색을 거쳐 빨간색 빛도 나오게 할 수 있다. 물론 이를 위해선 양자점에 외부 에너지를 공급해야 한다.
그림5. 외부 에너지를 흡수한 양자점이 자신의 크기에 따라 다른 색의 빛을 방출함을 보여주는 그림과 사진.
(그림 출처: 스웨덴 노벨상 위원회 보도자료 / 사진 출처: Wikipedia)
물질의 크기를 줄여 양자역학적 효과를 보려는 이론적, 실험적 모색은 양자역학이 탄생한 이후 계속 이어져 왔고, 이런 노력의 결과로 1970년대 박막처럼 한 방향의 크기가 나노미터 스케일로 줄어든 2차원 구조가 가지는 양자 효과가 상세히 연구되기 시작했다. 반면에 양자점은 3차원 상에서 모든 방향으로 크기를 줄인 0차원 구조에 가깝기 때문에 이에 대한 정밀한 연구의 가능성을 과거에는 높게 보지 않았다. 그런데 이번에 노벨화학상을 받은 에키모프와 브러스는 각자 독자적으로 색유리 속의 양자점 및 용액법을 통해 합성한 양자점의 양자 구속 효과를 뚜렷하게 관측하고 연구한 공로로 노벨상을 받게 되었다. 마지막 수상자인 바웬디는 양자점을 쉽고 효율적으로 만들 수 있는 방법을 개발함으로써 본격적인 양자점 연구의 시대를 열었고 그의 방법은 양자점의 대량 생산을 가능케 함으로써 상용화의 토대도 만들었다.
이제 다시 우리의 놀라운 투시력으로 QLED TV의 백라이트 내 양자점 필름을 들여다보자. 필름의 내부에 균일하게 퍼진 양자점은 모두 두 종류다. 외부 에너지를 받아 녹색과 적색 빛을 내는 서로 다른 크기를 가진 두 종류의 양자점들이 필름 속에 고르게 섞여서 퍼져 있다. 청색 LED가 방출한 푸른색 빛알들은 양자점 필름으로 쏟아져 들어온 후 이 두 종류의 양자점에 의해 녹색 및 적색 빛으로 변환된다. 양자점이 방출하는 빛은 일반적으로 스펙트럼의 폭이 좁고 날카로운 형상을 보인다. [그림 6]을 보면 일반 백색 LED를 이용한 백라이트(왼쪽)와 양자점 필름을 활용한 백라이트(오른쪽)의 스펙트럼과 구조가 비교되어 제시되어 있다. 액정 패널에 백색광을 공급한다는 면에서 백라이트의 역할은 동일하지만, 양자점 백라이트의 경우 발광스펙트럼의 형상이 흡사 삼지창처럼 세 개의 피크로 잘 구분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이처럼 빛의 삼원색이 잘 분리된 스펙트럼의 경우 액정 패널의 칼라필터를 거치며 높은 색의 순도 를 유지할 수 있어 디스플레이가 구현할 수 있는 색상의 영역, 즉 색역(color gamut, 색재현성이라고도 한다)을 크게 넓힐 수 있다. 양자점 덕분에 가을철 화려한 심홍색 단풍잎이나 태평양의 아름다운 에메랄드 바다의 모습이 스크린에 훨씬 더 자연스럽게 구현될 수 있는 것이다. 청색 LED와 적록 양자점이 협력해 만든 백색광은 드디어 액정 패널을 거치며 영상 신호에 맞춰 화소 단위로 밝기가 조절되고 칼라필터를 통해 빛의 삼원색으로 나뉘어진다. TV 스크린을 떠난 빛은 최종적으로 우리 눈으로 들어와 우리의 삶의 경험을 훨씬 더 풍부하게 만들어 준다.
그림6. LED TV란 명칭의 LCD 속에 포함된 백라이트의 구조와 발광스펙트럼(왼쪽) 및 QLED TV 내 양자점 필름을 포함한 백라이트의 구조와 발광스펙트럼(오른쪽).
이런 양자점의 능력은 백라이트에만 사용되지는 않는다. 최근 등장한 양자점 디스플레이는 [그림 7]과 같이 청색 유기발광다이오드(OLED) 위에 적록 양자점 부화소(subpixel)를 올린 구조를 가진다. OLED 역시 발광 스펙트럼이 날카로운 편이라 청색 OLED의 높은 색순도를 활용할 수 있고 이 빛이 에너지원이 되어 적록 양자점을 여기하면 화려한 색감의 영상 구현이 가능하다. 게다가 백라이트가 필요 없는 OLED를 채택했기 때문에 향후 롤러블(rollable) TV 등 다양한 형상 요소(form factor)를 갖는 플렉서블 디스플레이로 진화할 가능성도 갖는다. 이런 이유로 이번 노벨상 수상위원회에서는 양자점을 일컬어 “spread their light from television screens and LED lamps”(텔레비전 화면과 LED 램프에서 빛을 발산합니다)라 표현한 것이다.
그림7. 최근 등장한 양자점 디스플레이의 기본 구조(왼쪽) 및 이 기술이 적용된 디스플레이의 실물 사진(오른쪽, 출처는 IMID2022 전시회).
그런데 위의 수상 이유에 “LED 램프”가 포함된 이유는 무엇일까? 그것은 양자점이 현재 대세로 자리잡고 있는 백색 LED 조명의 성능을 개선할 가능성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백색 LED는 보통 청색 LED 위에 황색 형광체를 코팅해 구현한다. 따라서 발광 스펙트럼 상에 장파장의 빨간색 성분이 부족한 게 일반적이다. 이렇게 특정 파장 대역의 세기가 부족하면 물체들의 색상을 자연스럽게 연출하는 조명의 능력, 즉 연색성(color rendering property)이 줄어들게 된다 . 이때 적색 양자점을 원격(remote)형 부품으로 가공해 일반 백색 LED와 결합하게 되면 부족한 적색 성분을 보강해 연색성을 크게 개선할 수 있다. [그림 8]을 보면 필자의 연구실에서 연구했던 두 종류의 양자점 부품, 즉 적색 양자점 필름과 적색 양자점 캡 및 이를 일반 백색 LED 조명에 결합한 사진들이 제시되어 있다. 일반 백색 LED의 스펙트럼과 비교했을 때 양자점 부품이 적용된 조명의 경우 적색 영역의 스펙트럼 세기가 뚜렷이 증가함이 보인다. 연색성을 나타내는 연색지수(color rendering index)의 최대값은 100이고 일반 백색 LED의 연색지수가 80 정도인데 비해 양자점이 적용된 조명의 연색지수는 95~96 정도에 달해 매우 우수한 연색성을 달성할 수 있다는 점이 확인되었다. 특히 양자점 캡과 같이 조명에 결합시키는 숫자를 조절할 수 있는 부품을 활용할 경우 조명의 색감을 흰색에서 따뜻한 느낌의 노란색에 이르기까지 넓은 범위에서 자유롭게 조절할 수 있는 장점도 생긴다.
이처럼 양자점은 이미 우리 생활 깊숙이 들어와 있다. 양자점은 디스플레이와 조명 분야 외에도 촉매, 센서, 태양전지, 양자통신, 바이오 등 광범위한 분야에서 활용되고 있는 첨단 나노소재다. 양자점을 처음으로 체계적으로 연구했던 노벨화학상 수상자들은 양자점이 오늘날 이처럼 광범위한 분야로 확산되고 거대한 산업분야를 형성하리라 아마 짐작하지 못했을 것이다. 필자의 전공은 ‘물리학’이다. 물리학자가 2023년도 노벨’화학’상의 배경과 맥락을 설명하는 글을 작성하는 게 다소 이상하게 보일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양자점이야말로 양자역학의 원리가 직접적으로 적용되고 우리 눈으로 확인할 수 있는 물질이다. 에키모프와 브러스는 양자점의 특성이 양자점의 크기에 따라 바뀌는 사실을 확인한 후 이를 양자역학적 지식을 기반으로 체계적으로 이해했다. 여러분이 오늘도 감상하는 QLED TV는 현대 정보통신 문명의 개화에 가장 크게 기여한 양자역학을 직접 눈으로 실감할 수 있는 대상이다. TV가 연출하는 화려한 색감의 오케스트라를 즐기는 것도 좋지만 그 이면에서 이 오케스트라를 지휘하는 양자역학적 원리, 그 원리에 따라 다양한 색감을 내며 춤을 추는 양자점의 존재도 한 번쯤 생각해 보는 건 어떨까?
그림8. 원형 고출력 백색 LED 조명에 적색 양자점 필름 혹은 적색 양자점 캡을 결합해 발광 스펙트럼의 적색 성분을 강화시킨 연구 결과.
• 감사의 글: 원격 양자점 부품을 제공해 주신 철원플라즈마산업기술연구원 및 주식회사 지엘비젼에 감사드립니다.
1. 디스플레이 기술의 전반적인 현황에 대해서는 필자가 과거에 크로스로드에 쓴 “디스플레이 기술 들여다보기”란 글을 추천한다. https://crossroads.apctp.org/cop/bbs/000000000000/selectArticleDetail.do?nttId=1595
2. 색순도(color purity)는 미술 용어로 비유하자면 색의 ‘채도’와 비슷한 개념이다. 어떤 색상을 가진 빛의 스펙트럼이 좁을수록 이를 구성하는 파장 성분이 적어서 그만큼 순수한, 즉 순도가 높은 빛이라 할 수 있다. 반면에 같은 색이라 하더라도 스펙트럼의 폭이 넓으면 여러 파장이 섞여 있는 만큼 색순도가 낮고 디스플레이의 영상 품질을 떨어뜨린다.
3. 백화점에서 멋진 색상의 옷을 발견하고 구매해 집에 와서 입어 보니 백화점에서 느꼈던 색감과 다르다는 걸 느낀 적이 있을 것이다. 이것은 백화점의 조명과 가정의 조명이 가진 연색성이 다르기 때문이다. 백화점, 미술관 등에서는 전시품의 색상을 제대로 연출하기 위해 일반적으로 고연색성 조명을 활용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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