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F Review

웹소설의 바다에서 SF라는 등불을 비추어

- 한국 웹소설에서의 SF와 <어두운 바다의 등불이 되어>

2023년 8월 통권 215호

웹소설이라는 새로운 매체


매체의 발달은 단순히 이야기를 소비하는 방식의 변화뿐 아니라, 새로운 서사 스타일에 대한 가능성을 만들어 내기도 한다. 한국의 경우 21세기에 접어들면서 웹을 기반으로 하는 변화들이 빠르게 자리를 잡았고, 그 과정에서 한국이 만들어 낸 고유한 형식으로 자리 잡은 것이 바로 ‘웹툰(Web-toon)’이라고 할 수 있다. 이와 같은 경험을 바탕으로, 현재 한국에서 이야기의 생산과 소비가 가장 활발하게 일어나고 있는 매체 형식은 바로 ‘웹소설(Web-novel)’이라고 할 수 있다. 웹소설은 2000년대 들어 기존에 장르문학(판타지, 무협, 로맨스 등)을 창작하고 있던 작가들이 PC통신을 지나 인터넷 소설 플랫폼으로 이동하면서 형성되기 시작했다. 그러기 때문에 한국의 웹소설은 장르문학이라는 특징을 강하게 가지고 있고, 이것이 일본을 비롯한 다른 나라들에서의 인터넷을 통해 창작되고 소비되는 소설들과 차이를 보이는 지점이라고 할 수 있다. 이후, 2014년도에 포털사이트인 네이버에서 공모전 이름에 웹소설이라는 명칭을 부여하면서 웹소설이라는 용어의 정착이 이루어졌다고 볼 수 있다.

이러한 맥락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웹소설에서는 판타지를 비롯한 장르 형식들이 활발하게 창작되고 소비된다. 미국에서의 영어덜트 소설(Young Adult Fiction, YA)들이나 일본에서의 라이트노벨(ライトノベル)이 그러했던 것처럼 사실주의 문학의 형식에서 벗어난 다양한 장르들이 뒤섞이는 과정들이 한국의 웹소설에서도 빈번하게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다양한 장르의 뒤섞임이 있음에도 유독 SF 장르는 그동안 독립된 영역을 형성하는데 애를 먹고 있었다고 볼 수 있다. 2020년대를 전후하여 수집된 웹소설 사용자의 장르 선호도를 보더라도 선호 장르의 10위 권 내에 SF라는 단어는 찾아보기 힘들다. 물론 판타지나 로맨스 내에서 SF에서 발현되고 발달한 다양한 소재나 캐릭터, 혹은 세계관의 형식들이 발견되긴 하지만 독립된 장르로 창작자나 독자들에게 인식되는 경우가 드물었던 것이다.

이는 웹소설이 형식적인 특징으로 보았을 때 어느 정도 예상 가능한 영역이기도 하다. 기존의 장르 관습들이 누적되어 있는 중세 유럽 배경의 검과 마법의 세계라고 불리는 판타지의 관습이나 코드, 할리퀸부터 쌓여 온 로맨스의 관계들을 소비하고 의미부여 하는 로맨스의 형식들을 유용함이 명확하게 존재한다. 특히 해당 장르들은 한국에서 20세기 중엽부터 대중문화로서의 경험을 차근차근 만들어 왔다고 할 수 있다. 장르 판타지의 경우에도 1990년대 <드래곤 라자>를 비롯한 한국의 판타지 작품들로부터 시작되어, 이후 게임과 만화/애니메이션을 비롯한 다양한 매체들을 통해 이미 오랜 시간 동안 장르의 문법들이 광범위하게 노출되었다는 사실을 간과할 수 없다. 그리고 비슷한 시기에 한국에서 <스타워즈>와 <스타트랙> 등과 같은 SF 대작들이 글로벌 흥행 성적과는 상이한 관심을 받았던 것과는 다르게, <반지의 제왕>이나 <해리포터> 시리즈들은 글로벌 흥행성적과 호응하는 흥행을 거뒀다는 사실 역시 이러한 차이를 만들어내는 요인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기 때문에 SF는 매번 새롭게 새로운 세계를 만들어 경이감(sense of wonder)을 유발하는 세계를 축조하고 설명해야 하는 부담감이 따르는 것이 사실이다. 최근의 종이책으로 출판되는 작품들에서는 이러한 세계들을 압축하고 다양한 주제들을 유용하면서 한국 SF의 성과들이 새롭게 나타나고 있지만, 연재 형식의 거대한 서사를 다루면서 독자들의 흥미를 유도하면서 이야기를 이끌어야 하는 웹소설에서 매번 작가가 설정한 세계를 독자들에게 납득시키면서 이야기를 꾸려나가는 것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라고 할 수 있다. 특히 산업적인 측면의 의미들이 중요하게 작용하는 웹소설 시장에서 한국 사회에서의 SF 장르에 대한 대중적 경험의 문제들이 결국 창작의 문턱으로 작용하면서, 웹소설에서 SF가 가지고 있는 장점들을 찾아보기 힘든 환경들을 만들었다.


어바등이 보여주는 웹소설 SF의 가능성


하지만 최근 들어 이러한 웹소설 장에서도 조금씩 새로운 가능성이 발견되기 시작했다. 2020년을 전후로 해서 한국에서 SF에 대한 대중적 경험들이 확장됨과 동시에, 이를 이야기 대상으로 명확하게 인지하고 활용하고자 하는 움직임들이 지속적으로 확장되고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예들은 ‘한국 SF 어워드’ 시상식의 선정작들을 통해 확인해 볼 수 있는데, 해당 시상식은 2019년도부터 웹소설 부문을 신설하고 그 해에 발표된 웹소설 작품 중 ‘과학기술이 세계관의 형성과 이야기의 진행에 중요한 영향을 미치는’ SF 장르의 특성이 잘 드러난 작품들을 시상하고 있다. 이러한 작업을 통해 현재 한국 웹소설 장에서 SF가 가지고 있는 형태와 위치 등을 어느 정도 짐작해 볼 수 있는데, 지금까지 수상한 작품들을 보면 다음과 같다.


수상연도수상명작가작품명
2019대상글쟁이S 사상 최강의 보안관
우수상임이도 나 혼자 천재 DNA
클로엘(CLOEL) 내 안드로이드
2020대상흉적 피자 타이거 스파게티 드래곤
우수상FromZ 거대 인공지능 키우기
Havoc 함장에서 제독까지
2021대상시아란 저승 최후의 날
우수상다카엔 덴타 클로니클
가짜과학자 철수를 구하시오
2022대상연산호 어두운 바다의 등불이 되어
우수상산호초 합체기갑 용신병
레고밟았어 따개비


이 중에서 우선 주목해 보아야 할 것들은 지난 4년간의 선정작들이 보여주고 있는 주제의 다양성이라고 할 수 있다. <사상 최강의 보안관>이나 <내 안드로이드> 같은 작품들은 게임판타지의 세계 혹은 현실에서 기술이 비약적으로 발달해 있는 세상에서의 다양한 가능성을 흥미롭게 풀어낸 전형적인 작품들이라고 볼 수 있다. 이러한 양식은 웹소설에서 SF를 유용하는 가장 대표적인 방법론들이 되며, <피자 타이거 스타게티 드래곤>이나 <덴타 클로니클> 같은 작품까지도 이어지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이러한 방법론들 외에도 웹소설에서 특징적으로 나타나는 ‘전문가물’과 같은 ‘~물’의 형식을 적극적으로 차용해 <나 혼자 천재 DNA>, <거대 인공지능 키우기>와 같은 과학기술의 특정 영역을 소재적으로 확대하여 이야기를 형성하는 작품들이 만들어지기도 했다.

이러한 시도들은 <저승 최후의 날>과 같이 다양한 장르들이 혼합되는 가운데, SF가 가지고 있는 세계관이 혼합된 세계관들의 중심과 논리를 잡아주는 완성도 높은 작품들로 나타나기도 했고, <철수를 구하시오> 같은 과학기술에 대한 논의를 재치있게 풀어내는 예외 지점들을 만들어 내기도 했다. 이와같은 다양한 시도들은 비교적 이야기의 구성 방식과 유용하는 주제 등의 제한이 자유로운 웹소설이라는 매체 형식 때문에 가능한 것이기도 했다. 물론, <함장에서 제독까지>나 <합체기갑 용신병>과 같이 전형적인 스페이스 오페라나 거대 로봇물로 대표되는 SF의 전형들을 보여주는 작품들도 시도되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이러한 시도들이 발견되는 중에 2022년도에 대상을 수상한 <어두운 바다의 등불이 되어>(이하 <어바등>)의 등장은 이전과는 다른 새로운 시사점들을 확인할 수 있게 하는 작품이었다고 할 수 있다.

<어바등>은 심해 3000m에 있는 해저 기지에서 일어나는 다양한 재난과 위기 상황들을 치과의사라는 직업을 가지고 있던 주인공 박무현이 주변 사람들과의 관계를 통해 해결해 나가는 스토리틀 담고 있다. 특히 주인공이 속해 있는 북태평양 해저 기지(NPIUS)에서는 다양한 시설들과 그 안에서 지켜야 하는 규칙들이 정해져 있어 하나의 작은 세계를 형성하고 있다. 이러한 설정들은 SF 장르에서 월드빌딩(World Building) 등의 요소로 정형화 되어왔던 영역이다. 멸망 이후의 세계를 그리는 포스트 아포칼립스(Post Apocalypse) 장르에서부터, 다른 행성에 이주하여 새로운 세계를 구축하는 유토피아(Utopia), 테라포밍(Terraforming) 서사로 구체화된 영역들이다. 대표적인 SF 작품들로는 프랭크 허버트(Frank Herbert)의 <듄(DUNE)> 시리즈들로부터 한국에서는 배명훈 작가의 <타워>, 그리고 <설국열차(Snowpiercer)>와 같은 작품들도 이렇게 구성된 세계를 통해 이야기를 만들어 내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이와 같이 <어바등>은 SF에서 만들어 놓은 세계의 구조들을 잘 활용하여, 기존의 웹소설에서 볼 수 없었던 새로운 세계를 구축해 독자들에게 보여주는데 성공하였다고 볼 수 있다. 특히 심해라는 공간은 SF의 역사를 통틀어 보더라도, 우주에 비해 구현된 예가 적은 공간이기도 하고, 한국으로 그 예를 돌리면 더더욱 희귀한 영역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생경한 공간이 주는 낯섦과 그 안에서 초인적이고 웹소설에서 난립하는 소위 먼치킨 캐릭터와 같은 설정도 가지고 있지 않은 주인공이 자신의 선의와 의지로 주변과 연대하면서 역경을 극복하는 과정은 웹소설이 가지고 있는 다양한 의미들을 확장시켜주면서, SF가 가지고 있는 현실에 대한 다양한 낯설게 하기와 사고실험의 영역들이 가장 현대적이면서 대중적인 매체 내에서도 의미를 획득할 수 있다는 예를 보여주는 것이었다고 할 수 있다.



매체를 횡단하며 확장되는 한국 SF의 가능성


이러한 의미 부여는 단순히 한 작품에 대한 상찬이나 과잉 해석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가능성에 대한 선언이기도 하다. <어바등>의 한국 SF 어워드 심사평을 보면 공통적으로 등장하는 단어가 있다. 바로, 기존의 웹소설의 형식 혹은 속도와는 다른 작품이었다는 것이다. 여기서 언급된 기존과 다르다는 것은 바로 속도감과 장르 관습에 대한 경험에 대한 의존 여부를 극복했다는 것이다. 실제 <어바등>의 초반부는 해저 기지라는 낯선 공간의 논리와 법칙들을 설명하는데 많은 공을 들이고 있다. 물론 장르문학이라 불리는 서사 형식에서 이와 같은 논리들은 너무나 당연한 것이었지만, 웹소설이라는 매체로 넘어오면서부터는 익숙한 장르 관습들을 토대로 하여, 스펙터클하고 긴박한 이야기의 전개로 진입하는 형식이 그동안 선호되어 왔다. 그러기 때문에 기존의 장르 관습이 가지고 있던 세계관에 대한 공을 들인 설명과 설득은 오히려 지난한 영역이라 여겨지고, 대중성에 반하는 것이라 여기기도 했다.

하지만 <어바등>은 그와 같이 작가가 만들어 놓은 세계에 대해 공을 들여 설명하면서도 독자들을 잡아두는데 성공한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이는 작가가 가지고 있는 필력의 문제이기도 하겠지만, 독자들 역시 새로운 세계에 대한 납득이 가능하다면 그에 대한 설명을 기꺼이 받아들일 여지들이 생겨났다는 것이기도 하다. 그러기 때문에 앞서 설명했던 SF의 세계관에 대해서 가지고 있던 사회적인 경험의 차이들을 극복할 수 있는 여지들이 비로소 생겨난 것을 <어바등>을 통해 발견할 수 있었다고 할 수 있다. 또한 다양한 작품들이 연속해서 쏟아져 나오고 그에 대한 대중들의 반응을 실시간으로 확인하게 되는 웹소설이라는 매체는 이야기의 다양성을 끊임없이 종용받는 곳이기도 하다. 일정 기간 어떠한 유행들이 생겨날 순 있지만, 그 역시 얼마 지나지 않아 새로운 것들을 요구받게 되고, 그렇게 그 어떤 이야기 소비 매체보다 훨씬 더 빠른 속도로 다양한 이슈들에 접근하는 것이 가능하다.

이러한 특징들 때문에 <어바등>에서는 우주나 미래와 같은 기존에 일반적으로 활용하던 세계에 대한 감각에서 벗어나 과감하게 해양이라는 영역을 이야기의 장으로 끌고 들어올 수 있었던 것이다. 또한 같은 2022년도 수상작으로 선정된 <따개비> 역시 바이러스와 해양, 좀비 등의 다양한 요소들을 얽어냈는데, 이러한 요구들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던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기 때문에 2023년에 접어들면서 등장한 웹소설 서사들에서 가장 많이 소재화되고 있는 것은 바로 ‘인공지능’이기도 하다. 물론 아직까지는 인공지능에 대한 과학적인 고찰이나 깊은 이해를 바탕으로 하는 작품들을 찾아볼 수 없는 것은 아쉬운 상황이지만, 기존에 로봇이나 인공지능을 다루던 막연한 공포와 대상화에서 벗어나 인공지능과 함께하는 생활에 대한 문제들로 출발지점이 설정된 이야기가 많아졌다는 것은 긍정적인 변화라 할 수 있다.

과학기술이 우리의 세계에 미친 영향들을 비판적으로 사고하고, 그 변화에 대한 성찰을 토대로 이야기를 꾸려 수용자들에게 능동적이고 이성적인 변화를 이끌도록 하는 것이 SF라는 장르의 역할 중 하나라고 한다면, 2023년도에 한국에서 웹소설을 통해 나타나는 SF 장르의 가능성과 의미들을 놓쳐서는 안 될 것이다. 기존에 그러한 영향력과 가능성을 확인할 수 있는 여지들이 다소 부족한 현실이었다면, <어바등> 등의 등장으로 인해 좀 더 많은 가능성을 기대해 볼 수 있는 장이 비로소 열렸다고도 할 수 있다. 그러기 때문에 SF 장르의 가장 역동적이고 다양한 시도들, 조금은 날 것 같지만 과감한 도전을 확인하고 싶다면 웹소설이라는 매체를 간과하지 말아야 한다. 웹소설은 이미 콘텐츠의 원소스(One Source)로서 그 중요성이 계속 커지고 있다. 웹소설을 원작으로 웹툰, 그다음에는 드라마나 영화, OTT 시리즈로의 작업이 연속적으로 진행 중이기 때문이다. 그 안에 SF 장르가 새로운 가능성을 부여받고 있기 때문에 웹소설에서의 SF 장르에 대한 기대감 역시 간과하지 않아야 영역이라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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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지용
문화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