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F Review

SF의 세계가 내려와 일상에 닿는다

오정연, 󰡔단어가 내려온다󰡕(허블, 2021)

2023년 1월 통권 208호


SF의 세계와 일상이란 모습


일상은 반복적이고 소소한 삶에 주목하는 것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것이 무의미하거나 가치가 없다고는 할 수 없다. 특히 사회가 복잡한 형태로 발전하면서 일상은 역설적으로 그것을 설명할 수 있는 하나의 방법으로 발전해 왔다고 할 수 있다. 현대 사회의 일상성을 이야기했던 르페브르(Henri Lefebvre)는 일상성이 가지는 생산 활동의 재생산과 재시작의 변화 모습들이 현대성을 만들어내는 요소라고도 했다. 그러기 때문에 일상성에 대한 담론들은 단순히 소소하고 무의미한 반복되는 행위에 머물지 않고, 다양한 의미들을 만들어내면서 현대사회에서 자리매김해 왔다. 또한 일상이 예술작품 등을 통해 형상화되는 과정에서 합리주의적 문화의 어떠한 단절을 맞닥뜨리게 함으로써 사회구조의 부조리한 환각을 극복할 수 있는 시도들로 이어지기도 했다.


이는 너무나도 당연하고 소소하게 느껴지던 일상의 모습들이 더 이상 당연하게 되지 않는 지점들에 도달하면서 그동안 은폐되어 있었던 부조리한 지점들이 확연하게 드러나게 한다는 데서 환상이 가지고 있는 특성들과도 닮은 면이 있다. 이렇게 본다면 표면적으로만 보았을 때 거리감이 있게 보이는 일상성의 형상화와 경이감의 세계를 구체화하는 SF는 비슷한 특징을 지니고 있다고도 할 수 있다. 그러한 이유 떄문인지 SF에서 일상성의 문제를 다루는 것은 프로파간다 적이고 정치·사회적인 구조의 문제를 거대담론적으로 접근하지 않으면서도, 오히려 더 직접적으로 이 세계의 산재한 문제들을 전달하기도 한다. 물론 이는 현대 사회가 거대담론으로 대표되던 일종의 이데올로기의 시대에서 개인적인 존재들의 인정투쟁의 장으로 변모하면서 일상성에 대한 감각들이 확대되었기 때문이기도 할 테지만 말이다.


그리고 현대 한국 SF들은 이러한 일상성을 통해 세계의 문제들에 진입하는 방법론들을 반복적으로 다루고 있다고 보여진다. 소프트하다는 평가 혹은 인간 냄새가 난다거나 구조적인 문제들을 개인적인 연대와 관계 등으로 풀어낸다는 일련의 감상들은 이러한 방법론들에 대한  인식의 결과일 수 있다. 그런데 방법론들은 오히려 SF가 현대 사회의 문제들에 대해 능동적으로 모색하는 것의 증명이라고 할 수 있다. 실제 일상성의 형상화는 수용자들의 공감을 불러일으키고 있고, 오히려 구조적으로 은폐되어 있는 부분들을 드러내기도 하기 때문이다. 그러기 때문에 SF에서 보여주는 일상성의 형상화를 통한 메시지 전달은 이후로도 새로운 의미들을 만들어 낼 수 있는 가능성이 있다. 거대한 구조속에서의 헤게모니 단위의 힘이 약동하는 방식의 문제 해결만으로는 우리의 삶이 바뀔 수 없는 것을 이미, 알아버렸기 때문이다.


이러한 한국 SF의 최근 경향 중에서도 오정연의 『단어가 내려온다』에서 보여주는 일상성의 형상화는 개성적이고 치밀한 구조를 만들어 놓고 있다는데서 주목해볼 만하다. 오정연의 소설들에서 보여주는 일상성은 단조로만 것들의 반복이나 소소한 것들의 전시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일상에서 수행하는 행위들에 대한 구체적인 지점들을 묘사하는 특징을 보여준다. 이는 사실주의 문학에서 즐겨 사용하던 현실의 문제에 대한 집중력 있는 천착이기도 하고, 영화적 기법으로 디테일하게 미장셴을 채워나가는 정밀하고 집요한 시선처럼 보이기도 한다. 하지만 모든 작품이 전적으로 SF의 세계를 두르고 있기 때문에 그 모든 집요한 시선들이 시뮬라크르를 통해 반사되는 것을 볼 수 있다. 그리고 이것이 오정연의 소설들을 읽은 재미이다. 기존의 문학이나 영화와 같은 스토리텔링에 익숙했던 이들을 SF가 보여줄 수 있는 세계로 옮겨가는 것 말이다.


일상을 통해 질문하는 정체성의 문제


이러한 방법들로 접근성을 만들어 놓은『단어가 내려온다』라는 소설집은 작품들을 통해 하나의 주제들을 관통하기도 하는데, 그것이 바로 정체성에 대한 문제들이다. 일상이라는 평범한 모습들을 SF라는 세계관을 통해 새로운 인식의 장으로 옮겨놓으면서 그 안에서는 정체성이라는 주제들을 다루고 있는 것이다. 기술의 발달로 안락사에 대한 선택이 일반화된 세계를 그리고 있는 「마지막 로그」도, 모든 사람에게 단어가 내려와 일생에 영향을 미치는 세계에 대한 「단어가 내려온다」에서도, 이주해 간 화성에서 지내는 한민족의 차례 문제가 흥미롭게 설정된 「분향」에서도 결국 이야기의 중심을 관통하는 질문 중 하나는 정체성에 대한 것들이다. 죽음을 선택할 수 있는 세계에서도, 우리가 알고 있었던 세계가 완전히 바뀌면서도 결국 삶이란 문제 앞에서 내가 나를 어떻게 인식해야 하는가에 대한 정체성 문제가 드러난다.


보통 정체성에 대한 문제들은 관념적이거나 형이상학적인 메시지나 상징들로 끝맺기 십상이다. 하지만 SF의 세계라는 시뮬라크르에서 이러한 문제를 다루고 있음에도 오정연의 소설들은 오히려 일상적이고 소소한 문제들을 통해 이를 풀어낸다. 특히 「마지막 로그」에서 보여주는 정체성은 일상성의 형태와 직결된다. 특히 안락사를 위해 들어간 시설에서 이상적으로 채워진 일상을 수행해 나가는 세계관은 죽음에 대한 인식에서 역설적으로 삶에 대한 인식이 명확해져야 함을 깨닫게 만들어준다. 그리고 결말에서의 메시지들을 통해 결국 소설은 죽음이 아니라 삶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다는 것을 명확하게 드러낸다. 결국 기술을 통해 죽음까지도 내 선택에 의해 능동적으로 할 수 있는 세계에서 결국 일상성으로 드러나는 삶의 모습이 더 중요해지고, 그것들이 모여서 만드는 나라는 존재 가치가 더 중요해진다는 것이다.


또 다른 작품인 「단어가 내려온다」는 오정연이 보여주는 SF적 세계의 개성을 한껏 드러내는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작가가 ‘국어학 SF’라는 분류를 스스로 한 이 작품은 언어 자체가 사람들에게 얼마나 많은 영향을 주었는지에 대한 사고실험들이 흥미롭게 개진된다. 배명훈 작가에 대한 언급이 작가의 말에 등장하는 것을 보면서 「차카타파의 열망으로」가 생각나는 작품이기도 하다. 「차카타파의 열망으로」 역시 언어가 가지고 있는 인식의 문제를 포착하고, 이를 흥미로운 설정으로 풀어낸 작품이다. 하지만 「단어가 내려온다」는 단순히 한국어 자체에 대한 이야기에서 그치지 않고 언어 자체가 가지고 있는 의미들에 대한 확장을 통해 좀 더 폭넓게 사고실험 하면서 언어를 통해 형성되는 정체성의 문제들 역시 사고실험 하는 흥미로운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소설에서는 만 15세 즈음, 사람들에게 단어가 갑자기 턱하고 내리는 지학(志學)이라는 현상이 등장한다. 이것은 그 사람의 인생뿐 아니라 사회·문화적인 구조의 형성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는 중요한 현상이다. 실제 그것이 그러한 영향력을 행사하는지에 대한 명확하고 논리적인 증명은 되지 않았지만, 세간의 소문들과 사람들의 인식은 그것을 완전한 사실과 논리로 만들어 버린 세계인 것이다. 소설 속의 세계는 언어와 세계의 구성에 대한 비트겐슈타인(Ludwig Wittgenstein)의 사고실험들이 현실화 되어있는 세계이기도 하며, SF에서 종종 사용되었던 ‘사피어 워프 가설(Sapir-Whorf hypothesis)’의 형상화된 세계이기도 한 것이다. 이러한 설정은 이 세계의 흥미와 함께 큰 균열을 야기하는 원인이기도 하다.


하지만 「단어가 내려온다」는 거대한 구조의 문제나 권력에 대해서 이야기하지 않는다. 오히려 균열의 상황들을 지극히 일상적인, 하지만 개인들에게 오히려 절대적인 영향력을 행사하는 것들을 보여주는 방식으로 이야기를 전개한다. 오히려 기회와 새로운 가능성이 될 수 있었던 문제들을 현재에도 그대로 산재해 있는 부조리들이 뒤덮으면서 문제를 만들어 내는 것을 보여준다. 거기에는 거대 권력의 뚜렷한 음모도 존재하지 않고, 그러기 때문에 이를 해결하기 위한 방법 역시 명확하지 않다. 어떠한 현상이 결과를 직접적으로 연결하지 않고, 부조리에 있어서도 간단하게 구분되는 가해자와 피해자들이 존재하는 것도 아니다. 일상성의 형상화를 통해 드러나는 부조리들은 그렇게 직접적이면서도 오히려 더 난해한, 하지만 그래서 더 현실적인 모양을 하고 있다.


하지만 문제만 부각시켜 냉소주의나 회의로 흐르지도 않는다. 새로운 현상의 등장은 말 그대로 새로운 가능성의 등장이기도 한 것이다. 지학이라는 현상은 일종의 유행을 보이면서 바뀌기도 하고, 단순히 단어에서부터 시작해 품사나 음절 단위로 세분화 되기도 한다. 또한 각기 다른 언어에 따라서 특성을 가지기도 하고, 그러한 것들이 세계와 구조의 변화들을 만들어 내기도 한다. 이러한 세분화와 끊임없는 변화는 결국 다양한 가능성들을 만들어 낼 수밖에 없음을 소설에서 확인할 수 있다. 그중에서도 특히 흥미로운 부분은 한국 사회가 다문화 가정의 한국어 교육에 대해 다문화 가정의 청소년들이 비한국어로 단어를 받는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서부터라는 서술이다. 변화와 그에 대한 정보의 발견은 인식의 전환으로 이어질 수 있고, 단어가 분절화되고 끊임없이 변모하는 세계에서 인식의 확장과 변화는 필연적으로 수행될 가능성이 있다는 걸 소설이 말해주는 것이다.


또한 이러한 변화의 모습들을 통해 결국 소설에서 말하는 단어는 한 사람 한 사람이 갖고 있는 정체성 그 자체이다. 그리고 그것들을 온전히 인식하고 존중할 수 있을 때 새로운 가능성들이 생긴다는 것을 주지하고 있는데, 이는 인간-비인간을 구분하지 않고, 생물-비생물을 가르지 않으며, 전개체적인 함께-되기(becoming-with)를 사고실험 해왔던 SF에서 익숙한 스토리텔링 방식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단어가 내려온다」는 이러한 지점들을 일상성의 구체적인 형상화를 통해 아주 진지하게 대하고 있다는데서 개성적이라고 할 수 있다.


일상의 문제들이 도달하는 곳


앞서 이야기한 것과 같이, 『단어가 내려온다』에서 정체성을 말하는 것은 단순히 어떠한 뿌리를 찾고자 함이 아니다. 국가주의적이거나 민족주의적인 정체성의 확립을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라, 개개인이 가지고 있는 정체성들을 모두 존중해야 한다는 메시지들에 일관되게 수렴된다. 그것은 어떠한 환경의 변화 가운데서든지, 나를 인식하려고 하는 구조적이고 제도적인 형태로서가 아니라 내가 능동적으로 나를 인식하고 있는 대로의 지점들을 존중해야 한다는 것을 이야기하는 것이다. 이러한 문제는 전형적으로 민족주의적인 형태의 서사를 가지고 있는 것처럼 보이는 「분향」에서도 마찬가지다. 21세기에 지구도 아닌 다른 행성으로 이주해 가면서도 차례를 지내고 있는 한민족을 이야기하지만, 거기에서도 중요한 것 한민족이라는 개념 자체가 아니다. 오히려 보급품 낙하 쇼 등의 행위로 연결되어 있는 관계 맺기의 다양한 형태들에 대한 존중이다.


이는 화성에서 나고 자란 인류가 지구로 이주해 가야 하는 이야기를 그리는 「미지의 우주」에서도 마찬가지이다. 한국이라는 특정한 지명이 등장하고, 그곳에서의 적응이라는 문제들이 제기되는 서사를 보여주지만 결국엔 그러한 특수성들과 함께 보편적이고 개별적인 것들이 존재한다는 것을 주지하는 메시지들이 나타나는 것을 볼 수 있다. 이러한 메시지 형태들은 「행성 사파리」나 「일식」과 같은 작품에서도 반복적으로 나타난다. 이러한 모습을 전쟁이나 음모 같은 형태가 아니라 일상적이고 드라마적인 형태를 통해서 드러내고 의미짓는 것은 충분히 개성적인 서사 전개 방식이라고 할 수 있다. 혹자들에게 이러한 방식은 SF 장르를 통해서 기대하는 스펙터클이나 경이감의 고양과는 거리가 있어 보일 수 있어도, 그 안에서 발생하는 일상적 형태들에 대한 구체성이 보여주는 사고실험은 그 어떠한 형태의 서사들보다도 수용자들에게 가깝게 와 닿기 때문이다.


이렇듯 『단어가 내려온다』에는 작가 오정연의 일상에 대한 세밀한 관찰과 인식들이 이야기의 전반에 소복하게 쌓여 있다. 마치 단어가 어느날 갑자기 내려오고 그것을 인지하게 되는 순간이 있는 것처럼, 오정연의 소설들 역시 한 권을 읽어 나가는 동안 어느 순간 쌓여 있는 메시지들을 마주하게 된다. 그것이 비록 일상적인 형태들로 엮여 있다고 할지라도 그 무게와 가치들을 쉬이 부정할 수 없는 것은 작가가 살아온 삶에 대한 진지한 모습들이 소설을 통해서 그대로 나타나고 있기 때문이다. 작가의 말에서 밝히고 있는 소설의 창작 배경과 작가의 삶, 그리고 작품들에 도움을 준 이들에 대한 언급을 보고 있자면, 한 편 한 편의 소설들에서 언급되었던 정체성의 문제들이나 관계의 가치들에 대한 메시지들이 결코 가볍지 않음을 확인할 수 있다.


특히 나는 누구인가를 진지하게 사고하고, 그것에 대한 중요성과 질문들을 다양한 환경에 처해 있으면서도 지속해야 한다는 자세들은 오히려 현대 사회에서 중요한 메시지들로 다가오게 된다. 과학기술에 의해 불가능한 것들이 가능해지고, 그러기 때문에 인간이 할 수 있는 것들이 많아지지만 거기에서 허무주의나 무분별한 탐닉에 빠지지 않고 오히려 삶과 존재에 대한 무거운 성찰이 필요하다는 것을 『단어가 내려온다』가 이야기하고 있다. 그리고 그러한 질문과 성찰들이 세계를 구하거나 거대한 음모로부터의 영웅적 서사에 필요한 것이 아니라, 소소하고 반복되는 일상을 살아나가면서도 항상 다양한 부조리와 세계의 균열들을 마주하는 개개인들에도 충분히 필요하다는 것을 말해주고 있다. 모험이나 경이가 아니라, 감각이나 감성이 아니라 삶에 대한 진지한 사고실험들을 SF 소설을 통해서 경험하고 싶다면 이 소설집을 읽어볼 것을 추천한다. 그러한 또 하나의 스펙트럼을 오정연이 만들어 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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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지용
문화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