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CI-FI

별뜨기에 관하여.

소설가

2008년 12월 통권 39호

별들은 움직인다. 우주의 모든 것과 당신 애인의 마음과 마찬가지로. 그 녀석들이 잠깐만이라도 그 수십억 년째 계속되는 조깅을 멈춰주면 얼마나 좋을까. 어이, 커피 브레이크! 말 안 듣는다. 줄기찬 놈들이다.

“별들은 네가 자기들을 본받길 바란다고 생각하지 않나?”

“못 생긴 위탄인이나 별들이 뭐라고 말하든 난 커피를 마실 거야.”

“남은 시간이 이미 두 자리 수로 떨어졌음을 알려줘야 한다는 사실이 유감스럽군.”

나는 스크린에서 카운트다운되고 있는 시계를 보았다. 137시간. 멍한 정신으로 위탄인은 12진법을 쓰던가 하는 생각을 하다가 가까스로 저 빌어먹을 위탄인이 내 수면 시간을 뺐다는 것을 깨달았다. 나는 유들유들해 보이는 표정을 지으려 애쓰며 말했다.

“이걸 마시면 세 자리로 늘어날 거야. 제르비.”

제르비의 영상 주변에 떠오르는 이모티콘들을 종합해 보건대 느긋한 태도 조성은 실패한 것 같다. 하긴 눈에 핏발이 서고 수염이 덮수룩하게 난 지구인은 같은 지구인에게도 위엄을 보이기 어렵겠지. 나는 홧김에 목젖을 향해 뜨거운 커피를 직사한 다음 한참 동안 고통스러워했다.

잠도 안 자는 외계인은 동정심과 미소 이모티콘들을 골고루 띄우며 말했다.

“아무래도 계산이 잘못된 것 같군. 자네들은 우주에 도통 나오지 않으니 그럴 수 있겠지. 남은 시간도 얼마 없으니 지구 스타일로 그 곳에서 폭탄을 몇 방 터뜨리는 것은 어떨까?”

나는 문교촉위를 의심하기 시작했다. 오십 년 전 위탄인이 지구인의 짝패로 결정된 것은 기지세계에서 지구인과 가장 죽이 잘 맞는 종족이 위탄인이기 때문이라고? 그거 혹시 지구인들을 심인성 질환으로 멸망시키려는 지구정복 시나리오 아니었어?

언제나 점잖은 문교촉위는 위탄인들 중에도 비슷한 의심을 하는 자들이 있다고 대답할 것이다. 그리곤 그것이 바로 지구인과 위탄인의 상성이 잘 맞는 증거임을 나에게 납득시키려 할 것이다. 서로 알고 지낸지 오십 년 쯤 되면 상대방이 어떻게 반응할지는 대충 짐작할 수 있는 법이다.

“그런 건 필요없어. 내 계산은 틀리지 않았고 그 적색거성은 분명히 저기 있으니까.”

“엄밀하게 말해서 그 적색거성은 거기 없지. 삼천 년 전에 폭발했으니까.”

나는 별을 찾고 있다. 지구인의 케케묵은 비유법을 쓰는 것이 아니라 템섹 우주선에 탄 채 진짜로 별을 찾고 있다. 하지만 그 별은 제르비의 지적대로 지구 시간으로 이미 삼천 년 전에 초신성 폭발을 일으켰다. 이제 당신은 나를 비웃거나 중성자성을 들이받는 건 지나치게 호사스러운 자살법이 아니냐고 묻고 싶어졌겠지. 이봐. 난 그 별이 있던 곳에서 삼천오백 광년 떨어진 장소에서 입 안을 익히고 있다고. 따라서 내가 있는 위치에서 그 초신성 폭발은 앞으로 오백 년 후에 일어날 사건이란 말이야. 그러니 나를 비웃고 싶다면 내 커피 음용법에 대해서만 그렇게 하시길.

당신이 고집스럽다면 이렇게 되묻고 싶을지도 모르지. 삼천오백 년 전의 적색거성을 볼 수는 있겠지만 그냥 보는 것만으로 무슨 소용이 있냐고. 그런데 내게 필요한 것이 바로 그것이다. 삼천오백 년 전에 그 별을 떠나왔던 빛. 내게 필요한 것은 그 적색거성의 빛이다. 그게 없으면 화합의 신이 어깨를 잃게 되기 때문에. 무슨 소린지 모르겠다고? 젠장. 나도 내가 무슨 소리를 하는지 모르겠다. 내가 왜 외계 문명에게 계시를 내려줘야 하지? 별을 가지고 계시를 내리는 건 천사들의 업무 아냐?

나는 그저 점성학자일 뿐인데.


우리 은하 어딘가에 리볼피트인이라는 자들이 있다. 그게 정확한 이름인지는 확신할 수 없다. 리볼피트인들이 자신들을 부르는 이름을 위탄인들이 흉내낸 소리는 통역기를 거치면 지구인의 귀에 리볼피트라고 들린다. 봐서 알겠지만 도저히 신뢰감이 안 생기는 유래다. 하지만 리볼피트인들에게 가서 당신네들 이름이 정확히 어떻게 되냐고 물어볼 수도 없다. 지구인은 리볼피트인들을 만날 수 없으니까. 사실 이 우주의 그 누구도 리볼피트인을 만날 순 없다. 저 문교촉위가 그렇게 결정했기 때문이다.

그런 일이 일어났다는 것을 믿을 수 없는 우연의 결과로 위탄인들이 리볼피트인들과 조우한 후에야 문교촉위는 그들의 존재를 지구인과 위탄인에게 알려주었다. 그리고는 리볼피트인들이 아직 문화 교류의 준비가 되지 않았기 때문에 그들의 존재를 비밀로 하고 있다는 것도. 그 사실에서 우월감을 느꼈던 지구인도 있었다. 어쨌든 우리 지구인들은 위탄인들과 문화 교류를 하고 있고 원활한 문화 교류를 위해 초광속 통신기와 초광속 우주선의 임대권도 허락받고 있으니까. 초광속 우주선은 우리 물리 수준에선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기술이다. 에너지를 무한정 뽑아낼 수 있는 우주에서 온 삼포(Sampo)인 셈이다. 결국, 우리가 알지 못하는 장부에서 꾸준히 차감되고 있을지도 모르지만, 지구상에는 에너지가 넘쳐나게 되었다. 그런 행운을 누리지 못한 자들에 대해 지구인은 우월감을 느꼈던 것이다. 지금의 나는 그것이 말도 안 되는 착각임을 알고 있지만.

상황을 설명한 문교촉위는 곧 위기 대응 프로그램을 개시했다. 리볼피트인들의 입장에서 생각해보라. 그들은 종족 역사에서 처음으로 외계인을 만난 것이다. 그런 충격적인 사건을 없었던 것으로 할 수는 없다. 그래서 문교촉위는 위탄인을 리볼피트인의 신화 구조에 편입시켰다. 신들은 모든 이들과 만나는 대신 선택된 몇몇 매개자 - 선지자, 신관, 예언자. 마음대로 불러라. - 들하고만 이야기하겠다고 고집 부릴 수 있다. 접촉 수위를 이쪽에서 통제할 수 있는 것이다. 지구와 마찬가지로 이미 경제 구조가 초광속 우주선 기반으로 바뀌어 있었던 위탄은 문교촉위의 점잖은 제안을 거절할 수 없었다.

그리하여 위탄인은 리볼피트인의 신이 되었다. 최소한 문화영웅 쯤은 되는 것 같다.

“지구인의 입장에선 정말…… 웃기는 일이라고. 어떤 위대한 영웅도…… 고향에서는, 그러니까 어릴 때 콧물 줄줄 흘리고…… 다니던 것까지 생생히 기억하는…… 고향 어른들이 즐비한 곳에서는 대접받기 어렵단…… 말이야. 우리의 짝패인 위탄인이…… 신이 되었다? 자다가도 웃을 일이지.”

“안 물어봐서 대답하는데 112시간 남았어. 잠 깨.”

나는 얼굴을 비비다가 끔찍한 기분에 젖어들었다. 이게 내 피부가 맞나. 뻑뻑한 눈을 비비고 스크린을 쳐다보니 초조감에 미쳐가는 외계인이 보였다. 속이 타기도 하겠지. 스스로는 아무 것도 할 수 없어서 사태를 해결해야 하는 동행이 잠이라는 희한한 짓을 하고 있는 것을 물끄러미 쳐다만 봐야 했을 테니. 하지만 겨우 3시간만에 자는 사람을 깨운 건 너무하다고 생각하는데. 무중력 상태에서 유일하게 중력을 느끼는 듯한 눈꺼풀과 사투를 벌이며 그런 의견을 피력하자 제르비는 화를 냈다.

“지구인의 그 수면이라는 것에 대해 검색해봤어. 3시간씩 잔 인물들에 대한 이야기가 많더군.”

“그건 특이한 경우라서…… 기록되었을 거라는 생각은…… 안 들었어?”

“들었어. 하지만 그 이야기는 3시간의 수면이면 생명 활동에 무리가 없다는 뜻이기도 하잖아. 그러니 너도 문제 없겠지. 빨리 그 커피라는 각성제 마시고 정신 차려.”

“거절이야. 나는 다시 잘 거야. 앞으로 다섯 시간 내에 나를 또 깨우면 삶의 부조리함을 실감하게 해주겠어. 그럼 잘 자지마.”

“아무리 지구인이지만 너무하잖아!”

훨씬 가벼워진 눈꺼풀을 밀어올리고 나는 다시 스크린을 노려보았다. 제르비가 말했다.

“112시간 남았다고 했잖아. 틸로막에게 남은 시간이 3시간이나 줄어든 거라고. 그런데 넌 아직 어깨도 찾지 못했어. 그런데 꼭 필요한 것도 아닌 다섯 시간을 낭비하겠다고? 틸로막의 다섯 시간을 생각해봐. 지구인이라 힘들겠지만 그래도 상상해보라고.”

목까지 차오른 독설을 도로 삼키는 것이 쉽지 않았다. 나는 말없이 스크린에 천구 영상을 띄웠다. 거기엔 ‘어깨를 가지고 있는’ 화합의 신이 나타났다.

제르비는 잠시 침묵했다가 말했다.

“어떻게 된 거지?”

“평범한 식(蝕)이었어. 어떤 우주선이 별빛의 진로를 막고 있었던 거야. 그런 우연이 일어났다는 것 자체는 기가 막히지만. 그거 확인하고 잠들었던 거야.”

“무슨 소리야. 그렇게 가까이 있었다면 그 우주선은 오래 전에 항해도에 나타났어야 할 텐데?”

“아. 그 식은 몇 년 전에 일어난 일이거든. 계산해 보니 대충 5광년 거리인 것 같아. 5년 전에 일어난 일이지.”

제르비의 얼굴 주위에 이모티콘들이 혼란스럽게 나타났다. 표정 해석 프로그램이 판단을 내리지 못할 표정을 짓고 있나 보다. 내 표정도 마찬가지일 테지.

“상상이 돼? 5광년 거리에서 삼천오백 광년 떨어진 적색거성을 가렸단 말이야. 그렇다면 그 우주선의 지름은, 젠장. 적색거성 지름의 최소 700분의 1이겠군. 한참 동안 식을 일으켰으니 그보다 더 클 거야. 무슨 우주선이 지구보다 수백 배나 더 크냐. 그 작자들이 지구를 친선 방문하겠다고 하면 극구 사양해야겠군.”

상상해보라. 지구보다 수백 배나 더 큰 우주선이 지구로 서서히 접근하는 끔찍한 모습을. 상상해보라고 한 건 난 도저히 상상이 안 되기 때문이다. 초광속 경제권에 들어선 종족들은 도대체 무슨 짓을 할 수 있는 것인지. 어지간한 행성보다 훨씬 더 큰 우주선이면 그거 자체 질량 때문에 중력 붕괴를 일으켜야 하는 것 아닌가? 내부 압력이 항성에 비할 바는 못될 테니. 아니, 애초에 그런 우주선을 만들 수 있어도 되는 건가?

나는 맥이 풀린 채 말했다.

“어쩌면 템섹인이었을지도 모르지. 이봐. 짝패. 직업란에 신이라고 새겨진 명함을 사용하려면 저 정도는 되어야 하지 않겠어?”

제르비는 다시 침묵했다가 말했다.

“이제 어깨를 찾았으니 지느러미만 찾으면 끝나겠군. 너도 알고 있겠지만 지느러미가 없으면……”

“거꾸로 선 멸망의 짐승이 될 수 있지. 알아. 이 주변 반 광년 내에서 틀림없이 지느러미를 찾을 수 있어. 이 암흑 성운이 옅어지면서 분명히 1.8등급짜리 불규칙 은하 하나와 G형 항성 한 개가 나타나게 되어 있지. 그 두 개면 지느러미는 충분히 만들 수 있어. 틸로막은 이미 살아난 거나 다름없다고. 몇 시간 잔 다음 바로……”

제르비는 그대로 선내 통신을 끊었다.

우주선 가운데로 가서 격벽을 한 방 걷어차주고 싶었다. 실질적으로 내가 고려해볼 수 있는 유일한 분풀이 수단이다. 두 가지 선내 환경을 간단히 구현하기 위해 우리 우주선에는 가운데 통과 불가능한 격벽이 놓여있었다. 그래서 에어락도 둘이고 밖으로 나가지 않고선 다른 쪽으로 갈 수 없다.

어쩐지 우리에게 어울리는 우주선이라는 생각이 든다.


제르비는 지구인을 싫어하고 그런 감점을 숨기려 하지도 않는다. 나는 위탄인에 대해 별 관심이 없지만 제르비는 싫어하게 되었다. 이런 두 지성체가 같은 우주선에 타고 우주를 돌아다니고 있는 상황을 뭐라고 부르면 좋을까. 소름끼치게도 구원이라고 불러야 되는 모양이다.

지구인인 나는 어떻게 생겨먹었는지도 모르는 리볼피트에 어떻게 생겨먹었는지도 모르는 틸로막이라는 인물이 있다. 얻어들은 것으로만 종합해보면 그 틸로막은 마하트마와 킹 목사를 합쳐놓은 것 같은 인물인 모양이다. 그런 인물이 어떤 무대에 등장하는지는 잘 알 테지. 그렇다. 최근 리볼피트에선 심각하다는 말조차 온화하게 들릴 정도의 사회 갈등이 일어나고 있다. 틸로막은 에너지 준위가 낮은 쪽의 챔피언인 것 같고 에너지 준위가 높은 쪽에 의해 사형을 당할 위기에 처해 있다. 엄밀하게는 사형이 아니다. 사법 체계에 의해 죽는 것은 아닌데 비합법은 아닌, 뭐 그런 리볼피트적인 방식으로 죽는 것인 듯하다. 그가 어떻게 죽게 되는가는 중요한 문제가 아니다. 중요한 것은 평화적인 방법으로 열형평을 이룩하려 했던 틸로막이 죽게 될 경우 리볼피트의 열평형이 대단히 과격하게 이루어지게 될 거라는 점이다. 민란, 분쟁, 내전. 뭐 그런 것들.

에너지 준위의 고저와 상관없이 상식인이라 불릴 수 있는 리볼피트인들은 틸로막의 죽음을 저지하려 했다. 하지만 사태는 이미 인간의 손으로는, 아니 리볼피트인의 손으로는 어떻게 할 수 없게 되었다. 지상의 힘이 닿지 않는다면 천상의 힘에 기대게 되는 것은 당연하다. 그들은 신에게 구조 요청을 보냈다. 리볼피트의 매개자 - 선지자, 신관, 예언자. - 중 하나가 위탄인에게 하늘이 틸로막의 죽음을 바라지 않는다는 별의 계시를 내려달라고 요청했다. 그 요청을 받은 이가 리볼피트 접촉 전담부서의 연구원이었던 제르비였다.

제르비는 당혹했던 것 같다. 위탄에는 점성술 문화가 없다. 내가 위탄인에게 관심이 없는 것도 그 때문이다. 문화적 배경이 없기 때문에 제르비는 리볼피트인이 바라는 것이 무엇인지도 이해할 수 없었다. 그래서 제르비는 위탄인과 지구인의 신에게 도움을 요청했다. 도대체 그 정체를 알 수 없고 그 목적은 오직 문화 교류뿐인 듯한 저 미지의 문교촉위는 실로 문교촉위다운 방법으로 대답했다.

“당신들에게 짝패를 준 취지를 생각해보시면 될 텐데요. 지구인을 만나세요. 그곳에는 점성학이라는 고전 학문이 있습니다. 최근 꽤 현대적인 방법으로 재해석된 점성학을 다루는 점성학자가 있지요. 그는 자신을 별뜨기꾼이라고 부릅니다.”

그래서 제르비는 지구인 별뜨기꾼인 나를 찾아왔다. 지금도 그 첫만남에서 제르비가 꺼낸 기품 있는 인삿말을 생생히 기억한다.

“제가 연구하고 존경하는 제 동료들 대부분이 동의한 바에 따르면 리볼피트인들은 우주의 특정 좌표에서 바라본 천구에 있는 별들의 배치나 분포, 그 형태가 해당 좌표를 점유하고 있는 인물이 경험하는 사건의 인과 관계나 그 해석 행위에 모종의 영향을 끼칠 수 있다고 믿는 것 같은데, 물론 항성의 빛이 행성의 생물에게 영향을 끼친다는 것은 의심할 여지 없이 분명하고 그것은 또한 진화의 중요한 요인이기도 하지만 그들이 믿는 것은 그런 것이 아니라……”

문화적 배경이 없는 위탄인치곤 점성학에 대해 상당히 잘 이해하고 있었다고 말해야겠다.

“무슨 말인지 알겠습니다. 별자리 말이군요.”

“별자리요? 점성학 아닙니까? 문교촉위가 제게 말해주기로는……”

“별자리가 글자이고 점성학은 그걸 읽는 방법입니다. 최근엔 읽기 외에 쓰기도 추가되었습니다만.”

제르비는 잠시 침묵했다가 말했다.

“문교촉위에서도 그러더군요. 당신은 필요한 별을 만들어낸다고.”

“별을 만들어내지야 않습니다. 적절한 시점을 찾아낼 뿐이지요. 저는 그걸 별뜨기라 부릅니다.”

별 더하기 실뜨기로 별뜨기. 그것이 내가 하는 일이다. 초광속 우주선은 과거의 점성학자들이 상상할 수도 없었던 능동성을 점성학에 부여한다. 결론부터 말한다면 나는 그곳에서 바라보았을 때 천구에 별들이 가장 적절한 방식으로 배치되어 있는 우주 좌표를 찾아낼 수 있다. 별자리를 만들어내는 것이다.

“그렇군요. 그러면 제가 특정 이미지를 원한다면 당신은 그런 이미지를 볼 수 있는 특별한 우주 좌표를 찾아낼 수 있겠군요?”

“그렇습니다. 제가 하는 일이 그거죠. 지구에 얽매여 있던 우리 조상들은 주어진 별자리를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지요. 하지만 초광속 우주선은 우리를 별들에게 데려갈 수 있습니다. 이를 테면, 제가 어떤 산모에게 특정한 좌표를 제공할 경우 그 산모가 그 좌표에 가서 아이를 낳으면 그 아이는 길한 운수를 타고 태어나는 거지요. 별들의 축복을 받고 태어난다고 할 수 있습니다.”

제르비는 나를 물끄러미 보다가 담담하게 말했다.

“혹은 부모 살해의 저주를 받거나?”


긴장감에 어깨가 굳었다. 위탄인을 만나게 되었다고 했을 때 내 지인들이 해줬던 경고를 기억했어야 하는 건데. 이 자식. 나에 대해 이미 모든 뒷조사를 해놓고는 아무 것도 모르는 체했군. 위탄 문화권에서 뒷조사는 성실함의 표현이고 아무 것도 모르는 척하는 건 사려 깊음의 표현이라던가. 물론 둘을 합치면 지구식으론 왕재수다. 한 마디 튕겨주려 했지만 제르비는 그 분위기를 간단히 날려보내고는 사무적인 태도로 말했다.

“대충 알겠습니다. 문교촉위의 판단대로 당신이 제 일을 도와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저는 그 점성학 문화를 가지고 있는 리볼피트인들에게 보여줄 특별한 별자리가 필요합니다. 별들을 이용하여 그들의 신화에 나오는 화합의 신을 만들어주셨으면 합니다.”

화합의 신이라면 내게 더 필요할 것 같았다. 나는 제르비를 째려보다가 대답했다.

“그런 건 불가능합니다. 이미 말씀드렸듯이 전 별을 만들어내는 것이 아니라 관찰 좌표를 찾아내는 것이니까요. 그들의 거주 행성을 그 좌표로 가져갈 순 없잖습니까. 그러니 굳이 그런 것이 필요하다면 리볼피트인들의 거주 행성 위에 인공위성 몇 개를 풀어놓으면 될 텐데요?”

제르비는 나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감탄하지 않을 수 없었다. 제르비가 침묵한 시간은 정확하게 지구인으로 하여금 ‘내가 무슨 멍청한 소리를 했나?’하고 자문하게 만들 만큼의 시간이었다.

“흥미로운 제안입니다만 리볼피트인들의 천문학 수준을 고려한다면 시도할 가치가 없다고 하겠군요. 어쨌든 기지세계 내에서 자체 기술력으로 초광속 우주선을 만든 다섯 번째 종족이니까요.”

다시 한 번, 턱이 빠질 뻔했다.

“그 사람들이 템섹인보다 먼저 초광속 우주선을 만들었다고요?”

“예.”

“그렇게 머리가 좋은 자들이 문교촉위한테서 아직 문화 교류 프로그램의 대상이 될 수 없다는 판정을 받았단 말입니까?”

선입견은 지양해야 하는 것이지만 내겐 변명의 여지가 있다고 본다. 리볼피트인인가 하는 그 친구들은 위탄인을 신으로 모시고 있다. 지구인의 짝패인 위탄인을 말이다. 그러니 내가 그들을 말 타고 칼 휘두르는 수준일 거라 넘겨짚는 것도 당연하잖은가.

“그렇습니다. 어쨌든 그들은 충분한 이동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조만간 리볼피트에서 초광속 탐사선이 출발하게 되어 있습니다. 당신이 특정 좌표를 알려주면 저는 그 초광속 탐사선의 항행 경로에 그 좌표가 포함되도록 유도할 겁니다. 그러면 리볼피트인들은 그 장소에서 화합의 신을 그리고 있는 별들을 목격하게 될 겁니다. 나는 그 발견이 모종의 사회 문제를 겪고 있는 리볼피트인에게 일종의 계시가 되기를 기대하고 있습니다. 이해하셨습니까?”

초광속 우주선과 외계인, 그리고 사회 문제와 별의 계시가 이렇게 얽혀버리니 정신 혼란스러워지기 딱 알맞았다.

“잠깐, 잠깐만요! 초광속 우주선을 스스로 만들어냈다…… 그렇다면 그 자들은 초광속 통신수단도 가지고 있다는 말일 텐데요. 그럼 그 자들은 문교촉위가 허락하든 말든 스스로 우주를 탐색해서 다른 종족들과 조우할 수 있는 것 아닙니까? 어, 설마?”

“예. 문교촉위가 방해하고 있습니다. 문교촉위는 리볼피트인들이 다른 종족을 만나는 것도, 다른 종족이 그들을 만나는 것도 막고 있지요. 알고 계시겠지만 우리가 리볼피트인들과 조우한 것은 아무도 예상하지 못했던 우연 때문이었지요. 그 때문에 문교촉위도 우리를 신으로 만드는 고식적인 수단을 써야 했고요.”

숨이 막혔다. 알고 지낸지 오십 년이 지났는데 아직도 문교촉위에 놀랄 일이 있다니. 그 자들은 초광속 우주선의 우주 탐사도 방해할 수 있단 말인가? 상대방 모르게? 항의 서한은 포기해야겠군. 그리고 이 일도. 문교촉위라면 그런 강력한 자들을 속인 것이 탄로난다 하더라도 괜찮을지 모르지만 지구인 점성학자도 그럴 수 있다고는 생각하기 어려웠다.

그리고 다음 순간 나는 자신을 꾸짖었다. 이것이 기회임을 모르다니. 이 지구상에는 내 목을 노리고 있는 일본인들이 있지 않은가.

“당신도 가야겠지요? 매개자들과 연락을 계속 취해야 할 테니까요. 그럼 우리가 타고 갈 우주선은 두 가지 환경을 구현할 수 있어야겠군요.”

제르비는 의아해하며 말했다.

“당신도 간단 말입니까? 좌표만 알려주면 될 텐데요.”

“예. 대충은 할 수 있습니다. 그렇지 않아도 출발하기 전에 대강 좌표를 결정할 테고요. 하지만 마지막 정밀 작업은 현장에서 해야 합니다. 천구의 모습이라는 건 몇 광년 차이로도 엄청나게 달라질 수 있거든요.”

“그렇겠군요. 그렇다면 당신은 이전에도 지구 밖으로 나와본 적이 있단 말입니까? 지구인은 지구를 거의 떠나지 않는 것으로 알고 있어서 하는 말입니다만.”

“저는 자주 나갑니다. 템섹 우주선 조종 면허도 있지요.”

내 면허를 확인해본 제르비는 안심하고선 동행을 허락했다. 일찌기 프라이팬에서 뛰쳐나갔던 용감한 자들의 기나긴 목록에 내 이름을 덧붙이는 순간이었다.

물론 프라이팬 바깥은 불꽃이었다. 다른 이름으로는 제르비라고 한다.


이미 말했듯이 우리 우주선은 가운데 격벽이 있다. 그래서 양쪽의 환경도 서로 다르다. 하지만 양쪽의 압력은 대강 맞춰야 했기 때문에 제르비는 약한 고산병의 위탄판에 해당하는 상태였고 나는 그대로 1기압에 노출되었다간 잠수병을 염려해야 할 상태였다. 남은 시간이 85시간으로 줄어들었을 때 나는 잠수병에 이미 걸린 듯한 기분을 느꼈다. 핏속으로 기포가 흐르는 기분이었으니까.

무분별하게 들이킨 카페인이 내 안전핀을 뽑은 모양이다. 보다 평온한 상태였다면 나는 쓴웃음을 짓는 정도로 반응했을 것이다. G형 항성인 줄 알았던 것이 F형이라는 것은 충분히 일어날 수 있는 실수다. 우리는 리스한 템섹 우주선의 항법 데이터를 번역해서 써야 하고, 템섹인과 우리의 항성 분류 기준이 서로 다르기 때문에 그런 오역은 일어날 수 있다. 그런 것이 우주사에게 큰 문제가 되지도 않는다. 우주사에게 더 중요한 건 항성의 위치와 질량 등이니까. 하지만 별뜨기꾼에겐 그렇지 않다. 실시 등급이 대충 비슷하다 해도 G형 항성과 F형 항성은 색깔이 다르다. 전자가 노란색이면 후자는 백색이다. 그 때문에 지느러미여야 하는 것이 지느러미가 아니게 되었다.

당신이 지구인이라면 백조좌를 떠올려보라. 만약 데네브가 좀 더 어두웠다면 나는 백조좌가 활과 화살 자리라고 불렸을 수도 있다고 본다. 좀 비뚤다고? 사수좌가 들고 있는 활 봐라. 활을 뭘로 만들었는지 뒤집혀 있다. 그에 비하면 백조좌는 훨씬 활답다. 하지만 데네브는 지나치게 빛나기 때문에 ‘거기가 더 무거운’ 것처럼 보인다. 화살깃이 화살촉보다 더 무거울 수는 없고, 그래서 그것은 꼬리가 되었다. 별자리를 만들기 위해선 별의 위치뿐만 아니라 별의 색깔이나 밝기도 대단히 중요한 요소다.

내게는 목이 구부러진 장화처럼 보이는 리볼피트의 ‘화합의 신’을 보자. 원래 내 계획대로라면 별자리 전체의 포인트는 신이 들고 있는 신화적 보물에 있어야 했다. 그런데 지느러미에 불과한 별들 중 하나가 더 밝아지는 바람에 전체의 인상이 바뀌어버렸다. 그 결과 나온 것은 어째서인지 내 눈에는 슬럿머신처럼 보이는 별자리였다. 제르비가 리볼피트의 매개자에게 문의해본 결과는 실로 참담했다. 그 별자리는 리볼피트인의 눈에 고전적인 살인 도구처럼 보인다고 한다.

제르비는 폭소의 이모티콘을 남용하며 말했다.

“화합의 별자리를 만들려고 했더니 서로 린치를 가하라고 촉구하는 별자리를 찾아냈군. 지구인다운데. 아, 이건 틸로막의 반대자들에게 보내는 계시인 거야?”

그 정도만 해도 치명타이건만 그건 컴비네이션 공격의 시작타였다. 제르비는 나를 외면한 채 흥얼거렸다.

“이상한 열매가 유명한 나무들에 매달려 있네.”

낭심 가격이라 하지 않을 수 없군. 페어플레이 정신에 따라 눈찌르기로 대응했다.

“솔페랑의 털을 묻혔다고 피잘이 웃심을 잡아먹을까.”

결과적으로 세컨드들이 링으로 뛰어들 분위기가 되고 말았다. 하지만 세컨드는 없었고 링도 사실 없다. 튼튼한 격벽이 우리를 가로막고 있으니. 제르비는 지구인의 특정 손가락을 묘사한 이모티콘들을 스크린에 잔뜩 띄우곤 선내 통신을 끊어버렸다. 몇 분 후 격벽에 대고 날린 내 드롭킥은 스스로 생각해봐도 꽤 볼품없었다.

무중력의 좋은 점은 아픈 발을 절뚝거릴 필요가 없다는 점이다. 나는 벽을 툭툭 치며 내 방으로 돌아왔다. 온갖 부정적 감정들이 나를 성대히 환영했다. 나는 커피를 잔뜩 빨아마시곤 스크린을 노려보았다. 그리고 제르비를, 리볼피트인을, 템섹인을, 문교촉위를 저주했다. 카츠무라 부부도 저주하려다가 그만두었다. 아무래도 그건 도리가 아닌 것 같았다.

근대 미국의 문제는 한숨이 나올 만큼 간단하면서 유서 깊은 것이다. 스파르타인들과 미국인에겐 모두 싸구려 노동력인 노예가 있었다. 그리고 그 숫자가 만만치 않았다. 공통점은 여기서 끝나고 그 다음부터는 차이점이다. 첫째, 스파르타인들은 총이 없었기 때문에 노예에 대항하여 자신을 죽도록 단련해야 했지만 미국인들은 총포상에 가서 돈만 내면 테르모필라이 협곡의 300명을 혼자 쓸어버릴 힘을 손에 넣을 수 있었다. 둘째, 스파르타인들은 인권이 무슨 소린지 몰랐지만 미국인들에겐 골치 아프게도 그런 개념이 있었다. 총기에 대한 집착이나 노예들에 대한 암살은 전부 저런 차이점 때문에 나타났다. 자기 밥벌이를 남의 힘으로 해결하려 했던 자들이 처하게 되는 당연한 말로다. 참으로 한심한 그런 실수는, 애석하게도 인류의 실수다. 위탄인 제르비가 지구인 나를 비웃을 근거가 될 수 있는 것이다.

그리고 이제 나는 범우주적 KKK단 취급을 받고 있다. G형인 줄 알았던 별이 사실은 F형임이 드러나 목이 구부러진 장화가 슬럿머신이 되었기 때문에. 화합의 신 대신에 린치 도구를 그렸기 때문에.

제기랄보다 속시원한 말이 간절했다. 그런 말이 도통 떠오르지 않았기에 나는 스트랩으로 몸을 고정하고 잠에 빠져들었다.


“피잘이 아니고 웃심이야.”

“뭐? 뭐라고? 어, 여기 어디야. 그 여자 어디 갔어?”

“피잘이 아니고 웃심이라고. 잠 깨.”

환장하겠군. 주변 수 광년 내에 나 이외의 인물은 한 사람밖에 없어서 잠들기 더없이 좋은 환경인데 하필이면 그 한 명이 잠도 안 자는 외계인이라니. 정신을 차리기 위해 벽이라도 한 번 들이받을까 고민하는 동안 제르비는 계속 말했다.

“솔페랑의 털을 묻혀서 포식자를 속이는 건 웃심이야. 피잘이 웃심을 잡아먹는 동물이고. 내가 문교촉위원이 아니라 지구인의 짝패인 위탄인일 뿐이라고 말하고 싶었던 거라면 ‘솔페랑의 털을 묻혔다고 웃심이 피잘을 잡아먹을까.’라고 말해야 해.”

아, 그 이야기였나. 나는 손가락 끝에 묻어나는 눈곱을 비통한 심정으로 보며 말했다.

“빌리 홀리데이를 인용하려는 거였다면 유명한(Popular) 나무가 아니라 포플러(Poplar) 나무라고 했어야 해. 그리고 난 인종 차별은 차별당해도 된다고 믿어. 리볼피트에서 일어나고 있는 것이 인종 차별 문제야?”

제르비는 대답하지 않았다. 지구인에게 리볼피트의 정보를 함부로 노출시켜도 되나 고민하는 것 같았다. 아무래도 더 잘 수 있을 분위기가 아닌 것 같아서 나는 저장고로 다가가 커피팩을 꺼냈다.

자리로 돌아와 스크린에 천구를 띄웠다. 하지만 내가 잠든 사이에 항성 요정이 다녀간 흔적은 없었다. 저 새하얀 F형 항성 가져가고 대신 노란 G형 항성을 놓고 갔으면 정말 좋을 텐데. 제르비가 대답할 기미가 없었기에 나는 음울한 심정으로 커피팩을 빨면서 해결책을 모색해보았다.

좀 더 물러나면 어떨까. 불가능하다. 저 빌어먹을 F형 항성은 별자리를 이루고 있는 다른 천체들에 비해 거리가 가깝다. 그 항성이 어두워지기 전에 다른 천체들이 사라질 것이다. 게다가 더 물러났다간 내 ‘뒤편’에 있던 밝은 천체들 중 몇 개가 앞으로 나와서 그림을 죽여버릴 것이다. 이곳은 천체가 제법 많은 지역이다. 각도를 약간 바꿔볼까? 암흑 성운으로 F형 항성을 조금 덮을 수 있다면…… 안 된다. F형 항성이 가까운 곳에 있기 때문에 그걸 조금 이동시키면 멀리 있는 천체들이 크게 움직여버린다. 그림이 완전히 깨지는 것이다. 그 때 제르비가 말했다.

“비슷해.”

잠깐 동안 대화의 맥락을 못 찾고 허둥거리다가 겨우 내가 했던 질문을 떠올렸다.

“어, 그럼 백인들이 킹 목사를 죽이는 거야?”

“비슷해. 죽는 쪽도 죽이는 쪽도 같은 인종이지만.”

“인종이 같아?”

“리볼피트인은 단일 인종이야. 원래는 여럿 있었지만 다른 인종들은 까마득한 옛날에 다 정리된 거지.”

“정리라니. 멸종당했다고?”

“네안데르탈인처럼.”

나는 크로마뇽인의 후손을 대표하여 커피팩을 스크린에 던지려다가 그것이 돌도끼가 아니라는 이유에서 참기로 했다.

“단일 인종인데 무슨 인종 차별이라는 거야?”

“버스에서 쫓겨난 숙녀가 가난한 백인이고, 킹 목사도 가난한 백인이야.”

“뭐야? 그럼 인종 갈등이 아니라 계층 갈등이잖아.”

“리볼피트에선 인종이나 다름없어. 단일 인종이다 보니 그런 것이 구분 기준이 되나 봐.”

“허. 빈자와 부자 사이의 내전이라고? 부자가 위험하겠군. 잃을 것이 더 많을 테니.”

“허? 대단히 시적이군. ‘허’라.”

“도대체 그 종족은 어디 있어?”

“무슨 말이야? 리볼피트인들의 위치는 알려줄 수 없어.”

“아니. 선조를 선택해서 태어날 수 있는 그 복 받은 종족 말이야. 제기랄!”

제르비는 대답하지 않았다. 수면 부족 상태에서 들이킨 카페인 때문에 속이 울렁거렸다.

“이봐, 제르비. 그래. 나는 나무에 사람을 매달던 자들의 자손이고 여자를 산 채로 태우던 자들의 자손이야. 정복자, 학살자, 제노사이더의 자손이야. 후손을 남길 수 있는 건 멸종당한 자들이 아니라 멸종시킨 자들이니까. 성별이 셋이나 되고 결합 방식도 셋이나 되는 너희들이 부러워. 우리는 결합 방식이 하나뿐이라서 경쟁은 필수적이었지. 그래. 경쟁이라는 점잖은 말로 표현된 그 모든 학살을 인정해. 하지만 자신이 선택할 수 없었던 것 때문에 비난받아야 한다면 그것도 인종 차별이잖아. 꼭 그래야겠어? 그런 식으로 우리를 짝패로 결정한 문교촉위가 옳았다는 것을 증명해보여야겠어?”

제르비는 물끄러미 나를 쳐다보았다. 한참 후 통역기가 다시 작동했다.

“오해를 하고 있었군.”

“뭐?”

“나는 너라는 개인을 비난했던 거야. 이 우주선을 나와 공유하고 있는 살인자 말이지.”


여러 번 들었던 이야기지만 들을 때마다 가슴 한 구석이 풍화되는 것 같은 기분을 느끼는 건 어쩔 수 없다. 나는 한참 후에 입을 열었다.

“나는 살인자가 아니야.”

“효율성을 고려해야지. ‘임산부를 초광속 우주선에 태워 우주로 날려버리는 짓으로 빵을 구하는 자’라고 말하는 건 너무 길지 않아? 일본인들도 그렇게 생각하는 것 같은데.”

어렵게 제르비가 여성임을 떠올렸다. 위탄의 여성은 지구의 여성과 좀 다르지만 출산을 수행한다는 점은 같다. 그녀에게 내가 어떻게 보일지 상상하기도 두려웠다. 나는 나직하게 말했다.

“그건 그들의 선택이었어.”

“치졸하군.”

“딱 한 건이었어. 빌어먹을. 그 많은 별뜨기 중에서 딱 한 건이었다고. 딱 한 번 내 고객이 행방불명이 되었다고 나를 살인자로 모는 거야? 카츠무라 부부의 사고에 책임을 져야 하는 자가 있다면 그 부부가 타고 간 템섹 우주선을 만든 템섹인이야. 그게 상식이잖아. 템섹인을 만날 수 없어서 나를 비난하는 거야?”

“넌 안 믿잖아.”

“뭘!”

“점성학을 믿지 않잖아.”

녹아웃 펀치다. 어디서 숫자 세는 소리가 들리는 것 같다.

나는 커피팩을 꽉 움켜쥔 채 고개를 떨구었다. 반박을 해야 한다는 생각은 이미 그러기 어려운 시점에 떠올랐다. 선내 통신을 끊어버리고 싶은 충동과 내 마지막 품위는 지키고 싶다는 욕망이 부딪혀 몸이 덜덜 떨렸다. 갑자기 목욕이 하고 싶었다. 물이 아래로 떨어지는 곳에서.

“지금에 와서 믿는다고 말하지는 마. 네가 그 별의 힘인지 뭔지를 믿는다면 화합의 영향력을 줄 수 있는 별의 배치를 너 스스로 제안해야 했어. 주어진 도안을 정확히 그려내는 것에 열중하는 대신에. 넌 점성학을 믿지 않아.”

“……카츠무라 부부는 믿었어.”

“정말 볼썽사납게 구는군.”

“그리고 나도 믿어.”

제르비의 표정을 대신할 만한 이모티콘이 통역 프로그램 내부에 없는 것 같았다. 통역 프로그램은 물음표를 띄웠다. 아마 말로 표현하기도 힘든 혐오를 보이고 있겠지.

“그만두고 돌아가자. 리볼피트 탐사선이 지구인을 보게 될 위험은 피해야 해. 그리고 시간 낭비도 피해야지. 틸로막을 구할 ‘현실적’인 방법을 찾아보려면. 조종은 내가 할 테니 넌 그 잠이라는 것이나 실컷 해.”

“너는 내 별뜨기를 몰라.”

“그만두자니까! 그 점성학이라는 헛소리엔 아무 관심도 없어! 그게 말이 되는 소리야? 별이 사람들에게 영향을 준다고? 그러면 왜 그러고 있는 거야. 재복을 나타내는 별자리 아래에서 주식 투자나 하시지? 그런 별자리를 얼마든지 찾을 수 있잖아? 몸이 아프면 치유를 나타내는 별자리 아래로 가면 되고 반려를 원하면 사랑을 이루어주는 별자리 아래로 가면 되겠군. 그곳에 가면 텅 빈 우주 공간에 지구인 여성이 둥둥 떠다니고 있겠지?”

“실례하겠습니다. 이선생님. 카츠무라 에리에요. 다녀왔어요!”

나는 커피에 익사할 뻔했다.

다행히 커피팩은 충분히 질긴 용기로 만들어져 있었고 안전 장치도 달려 있었다. 그래서 커피팩을 꽉 움켜쥐었음에도 불구하고 내 호흡기로 커피를 직사하는 꼴은 겪지 않았다. 제르비도 뭔가 굉장한 반응을 보인 것 같다. 스크린에서 그 녀석의 모습이 사라지며 의미심장한 소리가 울려퍼졌으니. 하지만 그 꼴을 음미할 여유는 없었다. 지구인 남성과 위탄인 여성밖에 없는 우주선에서 지구인 여성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선외 영상을 몽땅 스캔하고 싶어졌다. 정말로 텅 빈 우주 공간에 여자가 떠다니고 있으면 어떻게 하지?

“여보세요? 이선생님? 다녀왔어요. 저기요. 저쪽엔 안 들리는 모양인데요. 좀 봐주시겠어요?”

나는 커피팩을 놓고 정신없이 통신 장치를 점검했다. 그리곤 신음했다. 어떻게 된 영문인지 모르겠지만 나나 제르비의 허락도 없이 초광속 통신이 제멋대로 연결되어 있었다. 들어오는 건 오디오 신호뿐이지만 우리 우주선은 그런 상태에 대해 아무 불만이 없는 모양이다. 좋아. 나는 지금 누군가와 통신하고 있는 상태란 말이지. 그 상대는 카츠무라 에리이고. 카츠무라 에리…… 카츠무라 에리!?

“어, 어서 오세요. 카츠무라 부인.”

“아, 이선생님! 잘 들리세요?”

저승은 요새 어떻게 돌아가냐고 물을 뻔했다. 카츠무라 부부는 6년 전에 실종된 내 고객이다.


6년 전, 곧 부모가 될 예정이었던 카츠무라 다이스케와 카츠무라 에리는 출산 예정일을 계산해보곤 실망에 빠졌다. 그들은 자식이 물병자리를 타고나길 바랐지만 예정일은 애석하게도 사수자리였다. 지구 공전에 개입할까 하는 충동까지 느꼈던 그들은 다행히 더 온건한 방법을 찾아 나를 방문했다. 그리고 나는 위기에 빠진 지구를 구하기 위해 일, 월, 화, 수, 목, 금, 토의 일곱 별을 대신할 천체와 멋지게 물병자리 모습으로 배치된 천체들이 천구에 근사하게 늘어서 있는 우주 좌표를 그들에게 건네주었다. 부부는 냉큼 템섹 우주선에 올라 내가 가르쳐준 좌표로 날아갔고 구조신호 하나만 남긴 채 그대로 사라져버렸다. 그 때문에 나는 내 목을 노리는 일본인들에게 쫓기고 외계인에게 살인자 소리를 듣게 되었다.

그 카츠무라 부인이 전혀 예상치 못한 시간에, 전혀 예상치 못한 공간에서 내게 말을 걸어오고 있는 것이다. 이 우주는 정말로 잘 계획된 미로이고 신은 쥐를 사랑하기에 더 끔찍한 미로를 구상하는 과학자인 건가?

“잘 들립니다. 이건 정말 예기치 못한 기쁨이군요. 틀림없이 무슨 사고가 일어날 줄 알았습니다. 6년이나 연락이 없어서……”

내 이야기는 카츠무라 부인의 비명으로 지워졌다.

“거짓말! 진짜 6년이에요? 정말로? 근사해! 그 우라시마 효과라는 거 정말이었어요. 어머, 죄송합니다. 선생님. 바깥 양반이 그렇게 된다고 설명해줬는데 정말 믿어지지 않았거든요. 정말 6년이 지났어요? 며칠 밖에 안 지난 것 같은데. 진짜 우라시마 타로 같네요!”

시간 지연 효과? 카츠무라 부인이 지난 6년 동안 아광속으로 여행하고 있었다고?

“저, 어떻게 되신 건지 설명해주시겠습니까? 6년 전에 사고를 당하신 것이 아니었습니까? 분명히 6년 전에 구조 신호가 접수되었는데요.”

“있었어요. 사고. 정말 이렇게 죽는구나 싶었어요. 그런데 바깥 양반이 구조 신호를 보내니까 엄청나게 큰 우주선이 와서 우리 우주선을 구해줬어요. 선생님. 어떤 우주선인지 아시겠어요?”

“템섹 우주선의 구조 신호에 반응했으니 템섹 우주선이겠지요.” 하지만 그랬다면 카츠무라 부인이 어떤 우주선인지 맞춰보라고 하진 않았겠지. “설마 6년 전에 조우하신 것이 진짜 ‘템섹’ 우주선입니까?”

“역시 선생님이네요. 예. 템섹인들이에요. 템섹인들이 바깥 양반이랑 저랑 카나를 구조해줬어요. 아, 카나는 제 딸입니다. 물론 선생님 덕분에 물병자리죠.”

물병자리의 카츠무라 카나에 대한 관심부터 보여야할 테지만 그럴 정신이 없었다. 빅뱅이 시시한 소식처럼 여겨지는 이야기를 들었으니.

“부, 부인! 지, 지금 템섹인들의 우주선에 타고 계신 거란 말씀입니까?”

스크린 한쪽에 겨우 나타난 제르비도 미칠 지경인 것 같았다. 하지만 카츠무라 부인은 학교 동창의 차를 우연히 얻어타기라도 한 양 천연덕스럽게 말했다.

“예. 정말 큰 우주선이에요. 바깥 양반이 그러는데 지구보다 훨씬 더 크대요. 거짓말 같죠. 별보다 더 큰 우주선이라면 그걸 별 위에서 만들 수는 없잖아요. 어린 왕자의 바오밥 나무 같은 모습이 될 것 같아요. 당치 않은 모습이잖아요. 하지만 우라시마 효과도 사실이었으니까 그 말도 사실일지 모르겠네요. 선생님 생각은 어떠세요?”

카츠무라 부인의 높은 평가에 몸 둘 바를 알 수 없었다. 어떻게 부인은 내가 이 상황에서 생각이라는 고등한 활동을 할 수 있다고 믿는 거지. 부인의 기대에 부응하기 위해서는 아니지만 나는 열심히 생각해보았다. 그래. 우리 우주선은 템섹인들이 만든 것이다. 자기들이 만든 우주선의 통신망에 연결하는 건 간단하겠지. 오디오 신호만 오는 것은 자기들을 감추기 위해서일까. 엄청나게 큰 우주선이라. 설마 5광년 저편에서 식을 일으켰던 그 우주선?

안되겠다. 6년 밖에 생각나지 않는다. 나는 제르비가 미친듯이 탐지 장치를 괴롭히는 모습을 일별하곤 카츠무라 부인에게 말했다.

“부군의 말씀이 맞을 겁니다. 그런데 왜 6년 전에 바로 돌아오지 않으셨습니까?”

“총리가 싫어서요.”

“하?”

도저히 예의 바른 대답이랄 수 없지만, 믿어다오. 저건 내 최선이었다. 나는 카츠무라가 아니다. 다행히 카츠무라 부인은 카츠무라가 아닌 자들에게 관대했다.

“우리 부부가 떠나왔을 때 선출되었던 총리 말이에요. 바깥 양반도 싫어하고 저도 싫거든요. 그래서 그 우라시마 효과라는 것 시험해보기로 했어요. 템섹인들이 그러는데 자기들 우주선은 초광속 우주선보다 느리게 움직여야 하는 업무가 있대요. 그래서 여기에 있으면 시간도 느리게 흐르나 봐요.”

선량한 카츠무라 부인. 그건 아니올시다.

“그래서 여기 며칠 있다가 지구에 가면 지구에서는 이미 몇 년이 지난 후래요. 그러면 총리를 순식간에 쫓아내는 것과 같잖아요. 도편 추방보다 낫죠. 근사할 것 같다고 생각했어요. 정말로 6년이 지났으면, 선생님. 혹시 총리가 바뀌었는지 아시나요?”

총리라. 납득은 간다. 확실히 도편 추방보다 낫다. 하지만 그것 때문에 내가……

“부인! 두 분이 실종되는 바람에 제가 무슨 꼴을 당했는지 아십니까? 카츠무라 가문에서 제 수급을 노리고 있단 말입니다!”

“예? 쿠비기리요?”

화를 낼 기운이 싹 사라졌다. 누가 카츠무라 아니랄까봐.

“무지막지한 소송을 통해 저를 법적으로 매장시키려 하고 있다는 말이었습니다.”

“그런가요? 폐를 끼쳤군요. 저희들이 돌아가면 다 해결될 테니 걱정마세요. 그런데 총리는?”

“……귀국의 총리 말씀이죠? 바뀐 걸로 압니다. 두 번 바뀌었던가? 어쨌든 두 분이 떠나셨을 때의 그 총리는 확실히 물러났습니다.”

“정말이에요? 기뻐요! 감사합니다. 선생님. 이것도 저것도 전부 선생님 덕분이에요. 카나도 선생님 덕분에 물병자리가 되었고 바깥 양반이랑 저도 총리를 쫓아낼 수 있게 되었군요. 사고는 정말 싫었지만 이렇게 되고 보니 사고가 다행이었던 것 같은 느낌이에요. 이젠 지구로 돌아가도 되겠네요. 템섹인들이 우리 우주선을 고쳐줬거든요. 원래 그 사람들이 만든 거니까 잘 고쳤을 텐데 우리 바깥 양반은 뭐가 불안한지 지금도 확인하고 있어요. 그 사람들이 우주선 고칠 때도 계속 옆에 붙어 있어서 정말 민망했어요. 남자들은 왜 알지도 못하면서 꼭 정비공 옆에 서서 한 마디 하려고 벼르는 거죠?”

나는 카츠무라 다이스케가 태풍을 부르는 서퍼이며 주식시장의 푸른 수호신인 동시에 괜찮은 응용물리학자이기도 하다는 사실을 떠올렸다. 그 친구, 정비공 옆의 사내 역할을 하려는 것이 아니라 템섹 우주선의 수리 광경을 보면서 뭐라도 이해해보려고 눈에서 불을 뿜고 있었던 것이겠지. 뭐라도 이해했으면 정말 좋겠다. 그래준다면 지난 6년 동안 내가 받았던 고통도 다 잊어줄 수 있다. (잊지 않는다 해도 별 도리 없겠지만. 카츠무라니까.)

“부인과 따님이 탈 우주선이니 또 고장날까봐 걱정이 되는 것이겠지요. 어쨌든, 예. 돌아오셔도 됩니다. 아니, 꼭 돌아오셔야 합니다.”

“예, 이선생님. 그럼 지구에서 뵐게요!”

초광속 통신은 시작되었을 때처럼 무지막지하게 종료되었다. 나나 제르비의 허가도 없이.


나와 제르비는 자다가 집에 불이 나서 잠옷바람으로 뛰쳐나와 골목에 선 두 생존자처럼 서로를 바라보았다. 물론 스크린을 통해서. 이후 몇십 초 동안 두 종족이 나눈 대화는 꽤 심오했다.

“저?” “어.” “음.” “아.”

혼란과 흥분을 삭일 시간이 필요했다. 한참 후 내가 말했다.

“찾았어?”

“못 찾았어. 그렇게 큰 질량이 있다면 나타나야 하는데. 저쪽에선 우리를 찾았잖아. 그런데 어떻게 우리는 못 찾는 거지.”

“이 우주선은 템섹인들이 만든 거잖아. 그러니 템섹인들이 이 우주선에게 자기들을 못본 체하라고 명령하면 이 우주선은 안 보겠지. 그 이유도 알 것 같군. 아마 금지되어 있을 거야. 리볼피트인들이 우리와 접촉하는 것이 금지되어 있는 것처럼 우리도 템섹인과 접촉할 수 없는 것이겠지.”

우울함의 이모티콘이 떠올랐다.

“그럴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지. 받아들이고 싶지는 않았지만.”

나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제르비가 갑자기 생각난 것처럼 말했다.

“그래도 넌 살인자야.”

스크린에 대고 드롭킥을 날릴 뻔했다.

“살아 있잖아. 카츠무라 부부.”

“그건 행운이지. 템섹 우주선이 우연히 그 근처에 있었다는 행운. 네가 노력한 결과는 아니잖아.”

“행운? 좋아. 행운 하나 더 보여줄까?”

“무슨 말이야?”

“제르비. 초광속 이동이 일상화된 녀석들은 우주선을 너무 크게 만드는 것 같지 않아?”

‘바오밥 나무 같은 모습이 될 것 같아요.’ 별보다 더 큰 우주선. 5년 전에 일어난 식에 대해 말했을 때 제르비의 얼굴 주위에 떠올랐던 혼란스러운 이모티콘들. 그것은 제르비가 당황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건 어떤 당황이었을까? 우주선이 그렇게 크다는 것에 대한 놀라움이었을까, 아니면 리볼피트인과 접촉이 금직된 지구인에게 정보를 노출시킬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이었을까? 제르비는 지느러미를 찾으라는 말만 하고 선내통신을 끊었다. 혹시 그 우주선에 대해 계속 말하고 싶지 않았기 때문일까?

제르비가 말했다.

“그래서?”

오케이, 오케이, 오케이!

“내 질문에 먼저 대답해줘. 리볼피트인들도 오래 전에 초광속 우주선을 자체 개발했다고 했지. 그 자들의 그 탐사선도 거대해?”

“도대체 그게 왜……”

“틸로막을 구하고 싶다면 대답해. 탐사선은 거대해?”

한참 후 제르비는 스크린에 리볼피트 탐사선의 크기를 띄웠다. 고맙게도 그것은 정말 언어도단적인 크기였다. 나는 그 수치를 이용하여 몇 가지 계산을 해 보곤 씨익 웃었다. 제르비가 조심스럽게 말했다.

“방법이 있어?”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이 제스처는 번역할 필요도 없겠지.


리볼피트의 매개자와 비밀 회담을 끝낸 제르비가 다시 선내 통신을 연결했다.

“제대로 됐어. 탐사선 선장은 이런 메시지를 모성에 보냈다더군. 우주가 알려주었다. 그 많은 탐사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왜 외계인들을 만날 수 없는 것인지. 우리가 외계인들을 만나고자 한다면 먼저 우리끼리 잘 지내는 법을 터득해야 한다.”

나는 고개를 끄덕이곤 앞쪽의 천구에 늘어서 있는 화합의 신을 바라보았다. 얼마 전 그 신은 적색 편이를 일으키고 있는 은하와 빛을 잔뜩 머금은 성운, 작열하는 항성, 이제는 더 이상 존재하지도 않는 별의 빛…… 그리고 리볼피트인의 우주선으로 이루어져 있었다.

제르비가 말했다.

“좋은 발상이었어.”

나는 대답 없이 커피팩을 들었다. 그리 대단한 발상이라고 생각하진 않는다. 임기응변에 가깝다고 해야 할 것이다.

우리가 보는 별은 모두 과거의 별이다. 초광속 우주선을 타고 5천 광년 쯤 날아간 다음 지구 쪽을 보면 이집트인들이 피라미드 쌓는 모습도 볼 수 있다.(초현실적 수준의 망원경이 필요하겠지만.) 나는 그 상식과 5년 전에 식을 일으킨 미지의 우주선에 대한 정보를 사태 해결에 적용했다.

대략 열 시간 전, 우주를 이동하던 리볼피트 탐사선은 초광속 이동 장치에 모종의 문제가 생겼다는 것을 발견했다. 그들은 관성 비행을 하며 초광속 이동 장치에 생긴 문제를 조사했다. 9시간 가량 조사와 수리에 매진한 리볼피트인들은 수리가 제대로 되었는지 확인하기 위해 시험삼아 30,000 광초 정도 초광속 이동을 했다. 우연히도 그들이 초광속 이동을 한 장소는 어떤 지구인 별뜨기꾼이 결정한 장소였다. (따라서 이 모든 것을 짧게 말하면 제르비의 농간이 된다.) 초광속 이동은 성공적이었고 리볼피트인들은 안도하며 천구를 보았다.

그곳의 천구엔 화합의 신이 장엄하게 떠 있었다.

모든 것이 완벽한 화합의 신이었다. 물론 지느러미까지도. 그 지느러미는 두 개의 빛으로 구성되어 있었다. 불규칙 은하 하나와 리볼피트의 우주선. 그렇다. 그들이 그 좌표에서 보았던 것은 8시간 20분 전, 30,000초 전의 그들 자신이 포함된 별자리였다.

초광속 이동이 일상화된 녀석들은 왜 그렇게 우주선을 크게 만드는지. 초광속 경제권에 익숙해지면 이해할 수 있는 어떤 이유가 있는 것일까. 5년 전의 식을 일으킨 그 미지의 우주선만큼은 아니지만 리볼피트인들의 탐사선도 정말 거대했다. 그 거대한 리볼피트 우주선은 내 계산대로 30,000 광초 거리에서 그 뒤편의 F형 항성을 완전히 가릴 수 있었다. 또한 그 우주선은 반대편에 있던 천체들에서 오는 빛을 받아서 실시등급으로 2.6등급 항성으로 보일 정도로 빛났다.

“필요한 건 1.8등급 별이었잖아. 2.6등급이라면 훨씬 더 어두운데 어떻게 성공할 수 있었지?”

“그 친구들은 그게 자기 모습이라는 걸 알고 있었지. 그런데 거울에 비친 자기 모습은 더 빛나 보이게 마련이거든. 그래서 무의식적으로 눈에 보이는 알베도를 높였겠지. 자기 모습이 포함된 별자리를 린치 도구로 보이게 할 정도로 높이지는 않았을 테고.”

제르비는 기가 막히다는 이모티콘을 띄웠다. 한참 침묵하던 제르비는 의혹의 이모티콘과 함께 말했다.

“그런데 그건 지구인의 심리 아니야?”

“리볼피트인들도 마찬가지일 거라 확신했어. 화합과 상호 이해가 어쩌니 해도 생물은 자기애를 포기할 수 없으니까. 그건 진화론적인 진리야. 자기애가 없는 생물은 도태될 테니까.”

제르비는 미심쩍은 듯이 말했다.

“뭔가 더 하고 싶은 말이 있는 것 같은데. 그 자기애는 결국 배타성, 공격성으로도 나타난다는 말을 하고 싶은 거야?”

“아니. 내가 말하고픈 것은 난 내 별뜨기를 믿는다는 것뿐이야.”

제르비는 탐탁찮은 것 같았다. 고민하는 그녀에게 나는 말해보라는 제스처를 보냈다. 번역이 제대로 되었는지 제르비가 말했다.

“그 리볼피트인 선장이 한 말에서 뭐 느끼는 것이 없어?”

“서로 잘 지내고 아껴줘야지 돈벌이를 위해 산모를 우주로 쏴버리면 안 된다는 거야?”

“초광속 우주선 덕분에 지구에도 에너지가 넘쳐나잖아. 왜 자기가 믿지도 않는 논리를 남에게 팔아먹으면서 돈을 벌어야 하지?”

명백히 지구는 황금 시대다. 대가 없이 풍요를 제공하는 삼포가 노예에서 문교촉위로 바뀌었지만 오래된 버릇은 바뀌지 않는다. 지구인들은 장원의 영주 흉내를 내고 있다.

바꿔 말하면 지구라는 장원에 얽매여 있다.

“카츠무라 카나는 카이퍼 벨트 바깥에서 태어난 열아홉 번째 아이야. 그리고 조만간 백 번째 아기가 태어날 거야.”

제르비의 얼굴 근처에 의문을 표시하는 이모티콘들이 주르륵 떠올랐다. 그러다가 갑자기 그것들이 일시에 사라졌다. 제르비는 놀라움의 이모티콘들과 함께 나를 주시했다.

“제르비. 우리는 잠을 자.”

“……정말이야?”

“지구인은 어떻게 보면 참 괴상한 생물이야. 에너지가 많으면 활동적으로 변하고 에너지가 적으면 비활동적으로 변하는 것이 상식일 것 같지만 지구인이나 지구의 다른 척추생물들은 그렇지 않지. 우리는 에너지가 풍부하면 잠에 빠져. 최소한의 소비만 하려고 하지. 그러다가 에너지가 적어지면 활동적으로 바뀌지. 적은 에너지로 쉽게 많은 에너지를 얻는 방법은 남의 에너지를 뺏는 것이고.”

빌리 홀리데이를 비참하게 만들었던 문제들이 모두 잠 때문에 일어났다고 말하면 그녀가 받아들일 수 있을까? 아마 그러긴 어려울 것이다. 하지만 제르비는 동요를 보였다.

“그래. 제르비. 네 말처럼 지구에도 위탄처럼 에너지가 넘쳐. 하지만 리볼피트인을 발견한 건 너희들이야. 그 에너지를 가지고 우주로 나간 너희들. 우리는 잠이 들었거든. 화려한 꿈을 꾸면서 말이야.”

제르비는 한참 머뭇거린 후에 말했다.

“하지만 너희들은 템섹인을 발견했지.”

“행운이지.”

“우리가 리볼피트인과 만난 것도 우연이었어. 하지만 그런 우연이 있으려면 일단 우주로 나오긴 해야 하지. 너, 지구인들을 우주로 보내고 있었던 것이지? 아기에게 길한 운명을 줄 수 있다고 말하면서.”

“황금시대에나 통하는 수법이지. 비싸고 비효율적이고 비이성적일수록 근사하다고 믿는 시대에. 그 아이들이 커서 자기 고향을 어디라고 말할까? 외계인에게 빌린 우주선의 화물 창고라고 시니컬하게 말할 녀석도 있겠지. 하지만 우아하게 ‘별들의 바다’라고 말할 녀석도 있겠지.”

“하아.”

템섹 통역기의 성능엔 항상 놀랄 수밖에 없다. 저런 감탄사까지 번역하다니. 우리 아이들은 언젠가 저런 물건을 만들 수 있게 될까?

“조금만 기다리라고. 짝패. 늦었지만 우리 아이들 중 일부는 너희들을 따라갈 수 있을 거야. 리볼피트인과 별들은 화합의 신을 그렸지. 우리 아이들과 별들은 무슨 그림을 그릴지 궁금해.”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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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자 이영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