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CI-FI

솔로몬의 심판 <1부>

2022년 5월 통권 200호

(일러스트레이터: 박재령)


가상의 사형이 집행될 서버에 접속한 나는 안도와 실망의 경계에서 헛웃음을 짓는다. 뒤이어 접속한 지혜 씨가 제복 차림의 엄숙한 모습으로 나타나는 바람에 상황의 비현실적인 느낌이 한층 더해져서 결국 나는 헛웃음을 참지 못한다. 참으로 오랜만에 웃는다는 생각이 나로 하여금 가시덤불을 뒤집어 쓴 듯한 느낌을 받게 해서, 애써 웃음을 지우고 내가 말한다.


“진짜예요?”


지혜 씨는 가상현실 세팅을 마저 하느라 초점이 맞지 않는 눈을 한 채로 되묻는다.


“뭐가요?”


“이거요. 이게 정말 그 프로그램이냐고요. 솔로몬.”


지혜 씨가 그제야 초점이 돌아온 눈으로 우리가 있는 세계를 둘러보더니 말한다.


“왜요, 그렇게 별로예요? 이래 봬도 천문학적인 비용과 데이터가 투입된 건데. 물론 인적 자원을 포함해서.”


그러고는 지혜 씨가 윙크한다.


“아니, 그런 건 아니고요. 그냥 좀… 상상했던 거하고는 달라서요.”


아닌 게 아니라 이곳은 심리 치료의 일환으로 사형 집행을 체험할 공간이라기보다는… 단순한 놀이방에 가까워 보인다. 어디선가 영이가 엄마, 하고 뛰어올 것만 같아 나는 두 손을 가슴께에서 꼭 붙든 채 주변을 두리번거린다.

허술하기 짝이 없는 공간은 전체적으로 환하고 알록달록한데, 곳곳에 각종 장식과 인형이 놓여 있다. 영이의 흔적을 찾듯 두리번거리던 나는 뒤늦게 그 인형들이 특정한 방향을 바라보게 배치돼 있다는 것을 깨닫고 그 시선을 따라 방의 한가운데로 돌아선다.

저게 언제부터 저기 있었지? 중앙에는 사람 크기만 한 곰인형 하나가 나무 의자 위에 놓여 있다. 저게 뭐냐는 얼굴로 내가 지혜 씨를 돌아보자 기다렸다는 듯 말한다.


“집행을 시작하겠습니다.”


내가 무슨 반응을 보이기도 전에 지혜 씨는 정말이지 근엄한 태도로 곰인형이 저지른 범죄에 대해 읊기 시작한다. 하지만 그 또한 우스꽝스럽긴 마찬가지다.

문제의 곰인형이 터진 속을 게워냄으로써 소유자 아이에게 심각한 정신적 상해를 입혔고, 아이의 마음을 위로하기 위해 존재하는 곰인형으로서 그것은 폐기되어 마땅한 중죄라며 지혜 씨는 나의 동의를 구한다. 내가 얼결에 고개를 주억이자 지혜 씨는 곰인형에게 최후 변론을 명령하고는 아무 변명도 하지 않는 태도를 높이 평가한다. 곰인형 쪽으로 다가간 지혜 씨는 곰인형의 머리에 두건을 씌운다. 그리고 밧줄을 목에 거는데 꼭 목도리를 둘러주는 것처럼 보인다. 지혜 씨가 다시 돌아오면서 나지막이 말한다.


“뭐 하는 건가 싶죠?”


네… 그 말밖에 달리 할 말이 없다. 지혜 씨는 그저 덤덤하게 밧줄에 목이 걸린 곰인형을 돌아보며 말한다.


“애들 장난 같은 이게 가을 씨 마음을 보호해 줄 거예요. 믿어도 좋아요.”


그리고 지혜 씨는 버튼을 누른다. 그 순간 천장에서 뭔가가 쉭 떨어져 곰인형과 우리 사이를 가리고, 그 너머에서 쿵 하는 소리가 들린다. 사형이 집행된 것이다.

시야를 가린 커튼이 다시 요란하게 걷혀 사라지고, 조금 전까지 목도리를 두르고 있던 곰인형이 어느새 축 늘어져 우리를 내려다보듯 나타난다.

나는 심란한 심정으로 집으로 돌아가며 생각한다. 앞으로가 문제라고. 계속 해야 할지 알 수가 없다. 지금은 그냥 곰인형을 목매다는 수준이지만, 지혜 씨의 설명에 따르면, 앞으로 점점 체험의 리얼리티를 높여갈 것이다. 곰인형은 곰이 되고 로봇이 될 것이다. 로봇은 점점 사람의 모습이 되어가며 불쾌감의 골을 깊게 하다가 다시 벗어나는데, 그때쯤 그에게는 이름이 생길 것이다.

김민준.

그자를 꼭 닮은 아바타를 마주할 생각만으로도 욕지기가 올라오고 가슴께가 뻑뻑하게 굳어지지만 그것도 잠깐이다. 꿈 속에서, 보육원을 향해 김민준이 장난감 총을 겨누는 순간, 나는 소리를 지르며 잠에서 깨어난다. 베개를 끌어안고 소리 죽여 울면서 각오를 다진다.

집행인이 되겠다고. 그것이 설사 심리 치료를 위한 가상의 체험에 불과할지언정. ‘솔로몬’에서 나는 보육원을 향해 총기를 난사한 사형수 김민준의 아바타를 처형할 것이다.

그러고 나면… 해방될 수 있을까? 형언할 수 없는 분노와 절망으로부터? 그럴 수 있을까, 영아?


다섯 번째 처형을 체험하고 돌아온 뒤, 나는 몇 달 만에 집안일다운 집안일을 시도하는 데 성공한다. 세탁기에 다 들어가지 않는 빨랫감을 마주하고는 솔직히 조금 막막한 감이 없잖아 있지만, 센터에 다니기 전처럼 금방 포기해 버리는 대신 한 번의 한숨과 함께 빨랫감을 나누어 세탁기에 넣고 시작 버튼을 누른다. 그 사소한 행동이 왠지 지금은 지혜 씨의 안정적인 목소리처럼 힘이 되는 기분이다. 그래서 또 움직일 수 있다. 그렇게 정신 없이 오가며 나는 모처럼 편안함을 느낀다.

그러나 볕이 드는 창가에서 빨래를 널다가 불현듯 들려온 멜로디에 나는 깜짝 놀란다. 쪼그라든 옷을 두 손으로 꼭 움켜쥐고 집 안을 구석구석 둘러본다. 창문 밖도 꼼꼼히 살핀다. 어느새 봄기운이 완연한 바깥 세상에는 그럼에도 여전히 두껍게 옷을 껴입은 사람들이 겨울을 붙잡고 있다. 멜로디의 근원은 없다. 잘못 들었나 보다 하면서 옷들을 다시 탁탁 쳐 건조대에 걸던 나는 막바지에 가서야 멜로디의 정체를 깨닫고 빈 바구니를 든 채 잠시 가만히 서 있는다. 믿기지 않아서다.

멜로디의 정체는 내 콧노래였다. 그것도 영이에게 불러주던 동요의 멜로디를.

그러한 사실을 깨달은 동시에 반사적으로 죄책감이 엄습해 온다. 나는 떨리는 다리를 억지로 옮겨 어디에든 앉은 다음, 지혜 씨의 목소리를, 그가 했던 말을 떠올리려 애쓴다. 당연한 반응이라 했다. 하나도 이상할 것이 없는, 지극히 자연스러운 반응…….

불과 몇 시간 전, 그렇게 말하며 내 등을 토닥이는 지혜 씨가 괜히 야속해서 나는 쏘아붙이고 말았다.


“그 작자가 참 좋아하겠네요. 자연스러워서.”


그 작자, 김민준은 벌건 대낮에 보육원을 향해 총을 난사했다. 그 보육원에 특히나 많은 ‘정부의 아이’가 있다는 이유로. 급감하다못해 말 그대로 나락으로 떨어진 출산율을 만회하고자 정부 차원에서 잉태시킨 아이들이 ‘자연스럽지 못한 존재’라며 총기 소지가 금지된 이 땅에서 3D 프린팅한 총기를 난사한 일은 그렇다면 ‘자연스러운’ 일인가?

심리 치료사인 지혜 씨는 물론 가시 돋친 내 말의 맥락을 알 테지만, 역시나 직업적인 이유로 조금의 동요도 보이지 않았다. 마치 그 또한 자연스러운 일이라는 듯이. 나는 솟구치는 분노를 참을 수가 없었다.


“언제까지 해야 되는 거예요? 난 모르겠어요. 역겹기 짝이 없는 이게 정말로 절 편하게 해줄지 모르겠다고요. 이게 정말 효과가 있는지 어떻게 확신하죠? 증거가 있어요?”


이번에는 지혜 씨의 표정에 변화가 있었는데, 역시나 동요와는 거리가 멀었고, 놀랄 만큼 쌀쌀해진 태도로 이렇게 대꾸했다.


“증거요?”


“아니, 제 말은, 그러니까…….”


지혜 씨가 팔짱을 끼고 손가락으로 팔꿈치를 톡톡 두드리더니, 그 손으로 자기를 가리켰다.


“여기 있어요. 증거. 바로 나요. 이 프로그램, 솔로몬의 첫 번째 사용자가 바로 나예요.”


그런 생각을 하고 있는데, 휴대폰이 울려 나는 크게 놀란다. 꼭 렘 수면에서 강제로 깨어난 것처럼 심장이 뒤집어질 듯 쿵쾅거린다. 가슴에 손을 얹은 채, 휴대폰을 찾아 확인해 본 나는 화면에 보이는 메시지의 내용을 이해할 수가 없어서 문장을 읽고 또 읽는다. 가슴이 진정되면서 서서히 메시지의 의미가 와 닿고, 그 때문에 심장은 다시 뛰기 시작한다.

메시지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김민준을 담당하고 있는 교도관 방수환이라고 합니다. 지금 하고 있는 일을 당장 그만 두세요. 당신이 알지 못하는 것이 있습니다. 설명 드릴 테니 이야기 좀 합시다. 아래 링크는 제가 운영하는 블로그입니다. 보시면 이해에 도움이 될 겁니다. 연락 기다리겠습니다.’


그 날 밤, 불을 끈 방에 태아처럼 웅크리고 누워 입술을 뜯으며 휴대폰 화면 속 문자 메시지를 노려보다가 결국 링크를 눌러본다. 시한폭탄의 뇌관을 건드리듯 조심스럽게.

경고 메시지가 뜬다. 해당 블로그는 출처가 불분명한 게시물이 다량으로 업로드되어 알고리즘에 의해 주의 라벨이 붙은 사이트라고. 간혹 해킹 위험이 있는 사이트를 경고하는 메시지에 비하면 유순한 어조다. 확인을 누르고 넘어가 보니 회색 톤의 블로그가 나타난다. 마이크로를 넘어서 나노 단위로 자신을 삼차원 전시하는 세상에 인터넷 블로그라니. 어쩌면 그래서 알고리즘에 걸러진 것은 아닐까. 그런 생각은 블로그 상단의 내용을 발견함과 동시에 눈 녹듯 사라진다.

가장 최근 포스팅에 실린 사진에 그자, 영이와 아이들을 죽인 남자가 있다. 경찰들에게 둘러싸인 김민준의 흐릿한 이목구비가 날 보고 있다.


‘다음 사적 처형의 피해자가 될 사람입니다.’


감히 그 어떤 행동도 할 수가 없어서 나는 그저 김민준을 마주 노려본다. 그러면 그자를 죽일 수 있다고 생각하기라도 하듯이. 그러다가 눈에서 눈물이 흐른다. 휴대폰 화면이 너무 밝아서 그러는 거라고 스스로를 속이면서 나는 애써 그 얼굴을 밀어 올리고 다른 게시물을 읽어 본다.

여기 있는 내용대로라면, ‘사적 처형’이라는 것은 약 5년 전부터 시작돼 지금까지 열 명이 넘는 사람들이 형장의 이슬처럼 사라졌다… 이걸 어디까지 믿어야 할까.

총기 난사 사건이 발생한 이후, 아이를 잃은 우리가 범인에 대한 강력한 처벌과 사건의 재발을 막을 수 있는 법안의 처리를 요구하기 위해 단체로 목소리를 내는 동시에 신상이 털린 뒤로, 정말이지 다종다양한 연락이 빗발쳤다. 사람이 아닌 대상으로부터 온 것도 부지기수였다. 도저히 그 목적을 가늠조차 할 수 없는 그것들과 유사한 것일까? 그러니까 말하자면 ‘대안적 사실’ 같은? 그래서 알고리즘에 의해 자동으로 스팸 처리되는 류의 것이라면 차라리 수긍할 수 있을 텐데.

나는 결국 휴대폰을 내려놓는다. 그리고 잠을 청하려 애쓴다. 당연히 실패한다. 머릿속에서 도통 떠나질 않는다.

김민준의 흐릿한 이목구비.

그리고 지혜 씨의 이름.

지혜 씨가 언급된 건 블로그 초기의 게시물에서다. 헤어진 여자친구의 집에 찾아가 여자친구와 그 일가족을 살해한 죄로 사형을 선고 받은 남자가 구치소에 수감된 지 6년 만에 돌연사했다는 기사를 시작으로 SNS 및 커뮤니티 사이트 캡처 사진 속에 지혜 씨에 대한 이야기가 유리 파편처럼 흩뿌려져 있었다.

나는 결국 그것들을 하나하나 읽는다. 누군가 졸업 앨범 속 지혜 씨를 찍은 사진을 올리며 지혜 씨가 피해 가족의 일원이라 했다. 살해를 저질러서 사형 선고를 받은 인간을 뻔히 두고서 누군가는 지혜 씨만 탓하기 바빴다. 유학 가서 제 길을 걷는 동안 동생과 가족은 처참하게 살해당했다고. 온몸의 피가 마르는 듯한 익숙한 느낌 때문에 나는 더 이상 화면 속 칼날을 마주할 수가 없다. 한치도 벗어나지 않는 뻔한 반응. 목에서 신물이 올라와서 나는 그 길로 벌떡 일어나 화장실로 뛰어가 변기에 대고 토악질을 한다.

조짐이 좋지 않다. 나는 대충 입을 훔치고 플라스틱 약통을 찾아 화장실 선반을 쑥대밭을 만든다. 치료에 차도가 있어 기쁜 마음으로 치워두었던 약통이 꽁꽁 숨어서 내 목을 조이다가, 방 서랍장을 헤집어 놓아서야 나타난다. 물도 없이 약을 꼭꼭 씹어 먹으며 나는 이 지긋지긋한 떨림을 외면하기 위해 휴대폰을 집어 든다. 이 역겨운 상황에서 벗어나려면 무슨 짓이든 해야 한다. 나는 따지듯이 블로그 주인이자, 사형수 김민준을 담당하고 있는 교도관 방수환에게 묻는다.


‘내가 지금 뭘 하고 있는지 그쪽이 어떻게 알아요?’


그러자 돌아온 대답은 뜻밖이다.


‘이지혜가 운영하는 센터에서 솔로몬이라는 프로그램을 하고 있지 않습니까. 저는 처음부터 경고했습니다. 그 여자가 운영하는 센터는 이상한 점이 많아요.’


경고했다니? 언제?


‘사적 처형만큼은 막아야 하지 않겠습니까?’


이 익숙한 멘트. 어디서 봤더라? 나는 아, 하고 스팸 메시지함을 확인한다. 거기 있다. 지혜 씨의 센터에서 집단 심리 치료를 받기 얼마 전 받은 메시지. 그걸 보낸 게 이 사람이었어?

지혜 씨가 운영하는 센터는 집단 심리 치료로 유명한 곳이었다. 피해자 가족인 우리 중에는 이미 그곳에 대해 알고 있는 사람도 있었는데, 안 그래도 상담을 받아볼까 고민하던 차에 연락이 와서 깜짝 놀랐다고 했다. 몇몇은 이러한 곳의 정당성을 의심했다. 한 엄마는, 스팸 차단이 되어 있었다면서 장문의 메시지를 보여주었는데, 센터를 향한 비방이 주 내용인 그 메시지는 뜬금없게도 ‘사적 처형은 또 다른 범죄일 뿐’이라며 링크 하나를 거는 것으로 마무리됐다. 그걸 본 사람들이 하나둘 자기도 받았다며 똑같은 메시지를 주변에 보였고, 혹시나 해서 확인해 보니 나도 있었다. 스팸으로 차단된 메시지는 물론 그것만이 아니었고, 확인하고 있는 동안에도 그 목록은 꾸준히 불어났다. 처음 메시지를 보여준 엄마는 결국 한 소리 듣고야 말았다.


“언니, 핸드폰이 왜 차단시켰겠어? 제발 기계를 믿어.”


그뿐만이 아니었다. 심리 치료의 효과 자체를 미심쩍어 하는 사람도 없지 않았다. 그런데도 우리가 여기 이렇게 모여 있다는 것은 분명 의미하는 바가 컸다. 지혜 씨가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수완이 매우 뛰어나다는 것이고, 한편으로는 우리가 그만큼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심정이었다는 것이다.

어찌 됐든 일단 두고나 보자는 마음이 대세를 이루는 가운데 우리는 지혜 씨의 말을 들었고, 행동을 보았으며, 지시에 따랐다. 우리는 말했고, 움직였으며, 그리고 느꼈다. 우리는 우리가 얼마나 형편 없는 모습으로 겨우 버티고 서 있었는지를 그제야 비로소 알게 되었다. 그래서 울었다. 사실 우리한테는 암묵의 금기 사항이 있었다. 울지 않기. 하지만 우리는 울었다. 지혜 씨가 우리에게 준 선물이었다.

그랬는데, 지금 나는 또다시 스팸성 주장에 휘둘리고 있다니. 차라리 다행이다 싶은 마음에 성마른 미소를 지으며 나는 방수환의 연락처를 차단시킨다.

그러고 나서 후련한 마음으로 잠을 청하고는 꿈 속에서 지혜 씨를 기다린다. 어떤 남자가, ‘정부의 아이’인 내게 있을 리 없는 부모를 죽이고 나를 죽이러 다가오는 동안 나는 지혜 씨… 언니를 기다린다.


김민준에게는 사형이 선고되었다.

판사가 담담하게 판결문을 읽는 동안 우리는 소리 죽여 울며 서로를 다독였다. 됐다고, 이제는 됐다고, 우리는 우리에게 말해 주었다. 그러나 그 말은 고요한 재판장 안에서 너무나도 공허하게 들렸고, 이내 사라져 버렸다.

가지고 있던 전부를 빼앗긴 이후 손바닥 안에 쥐어진 작은 성과. 작아도 너무 작은 그것을 세상은 어떻게든 부풀리려 하지 못해 안달이었다. 세상은 사형이 선고된 그날을 정의가 다시 확인된 기념비적인 날이라 했다.

눈과 귀를 의심했다. 대체 뭘 기념하겠다는 건지? 그 맥락을 이해하지 못하는 건 아니었지만, 굳이 꼭 그런 식으로 표현해야 할까? 급기야 한 TV 프로그램에서 출처를 알 수 없는 아이들의 사진과 영상을 이용해 마치 세상을 바꾼 작은 영웅들처럼 묘사하기에 이르렀고, 겨우 숨을 돌리던 우리는 다시 목소리를 내지 않을 수 없었다. 그것은 적절하지 않다고. 많은 사람들이 우리가 하려는 말을 이해했고 공감하는 사람들도 있었지만, 언제나 균열은 보이지 않는 곳에서, 눈에 띄는 법 없이 생겨나 방심한 사이 사람을 주저앉히고야 만다.

극단적인 성향의 소수 의견이 지속적으로 우리를 향해 칼날을 휘둘렀다. 우리가 예민하고 과민하며 만족을 모른다고 했다. 그나마 그 정도는 애교에 가까웠다. 칼날은 성실하게 반복되며 다가왔고 예리해졌다. 인간은 본능적으로 눈앞의 위협에 대처하도록 만들어졌고 우리는 본능에 저항하지 않고, 우릴 향해 무차별적으로 가해지는 공격에 맞섰다. 그 시기의 우리는 하나같이 전사 같았다. 심지어 영이가 헬륨 같은 비활성 기체 같다고 했던 나조차 그랬다.

아니… 영이가 꼭 집어 그렇게 말했던 건 아니다. 보육원에서 가져온 주기율표를 펼쳐 놓고 한참을 들여다보던 영이가 맨 오른쪽 18족에 위치한 비활성 기체를 가리키며 나 같다고 했을 때 나는 왠지 창피해서 시치미를 떼고 왜 그렇느냐고 물었다. 그러자 영이는 말했다.


“든든해.”


나는 놀랐다. 영이의 말대로, 헬륨부터 시작되는 맨 오른쪽 18족의 원소들이 흔히 ‘비활성 기체’라 불리는 까닭은 그것들이 화학적으로 안정적인 전자 배치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그것들은 전기적으로 빈틈이 없어서 주변 환경의 영향으로 쉽게 이온화되지 않는다. 그래서 반응성이 낮고 다른 화합물을 생성하지도 않는다.

그것은 나를 표현하는 말이기도 했는데, 왜인지 사람들은 그런 나를 가리켜 의뭉스럽다고 했다. 겁쟁이라 했다. 비겁하다 했다. 회색분자라 했다. 기회주의자라 했다. 그리고는 대서사시로 남을 만한 여정을 마치고 돌아온 듯 당연한 귀결처럼 내가 ‘정부의 아이’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걸로 나라는 존재는 더 이상의 주석이 필요 없는, 해체가 끝난, 종이 쪼가리에 불과한 사람이 됐다. 평생을 따라다니는 꼬리표 같은 평가들은 내 안에서 차곡차곡 쌓여 마침내 나라는 존재 그 자체를 형성했고, 나조차 더는 그 실체에 대해 관심을 두지 않은 지가 십여 년이 돼가는데, 그것을 영이가 그 또랑또랑한 목소리로 흔들어 댔던 것이다.

나는 내재화된 심성을 이기지 못하고 떠보듯이 물었다.


“누가 그래?”


영이는 대번에 선생님, 하고 고개를 돌렸다. 그럼 그렇지, 살며시 웃으며 나는 그래도 그 선생이라는 사람이 궁금해졌다. 틀림없이 공상을 즐기며 아무도 보지 않는 글을 끄적이는 사람일 거야. 기회가 되면 한 번쯤 보고 싶었다. 그래서 묻고 싶었다. 도대체 화학적 안정과 든든한 사람됨이 무슨 관계가 있느냐고. 몇 달 뒤 그의 모습을 볼 수 있었지만, 질문을 할 수는 없었다. 그는 영정 속에서 아이들을 지키고 있었다. 적어도 사진 속 그는 든든해 보였다. 헬륨이 된 태양의 신처럼.

그에 비하면 나는, 우리는, 감히 태양의 권위를 넘보는 이카로스에 가까웠나 보다. 우리의 투지는 보이지 않는 자들의 칼날에 베이고 찔려 너덜너덜해졌다. 우리의 추락은 이야기의 결말처럼 너무나 당연한 것처럼 느껴졌다. 피해자가 속출했고 전력은 감소했다. 마치 피를 보고 흥분한 황소의 돌진 같은 확인 사살이 가해졌고, 결국 우리는 와해됐다. 다시 개인이 됐다. 깃털만으로는 아무것도 할 수가 없었다.

그런 우리를 다시 한데 불러 모은 것이 지혜 씨였다.

지혜 씨는 나와는 달리 사람을 끌어당기는 능력을 타고난 사람이었다. 말하자면 수소 같달까? 그의 전기적 인력에 우리는 어렵지 않게 다시 모였는데, 지혜 씨가 대표로 있는 심리치료센터 강당에 모인 우리는 꼭 학부모 모임을 하기라도 하는 것 같았다. 물론 그것이 위장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을 우리는 물론이고 지혜 씨도 알았다.


“이곳에서까지 그럴 필요는 없어요.”


세미 정장 차림의 지혜 씨는 문자와 휴대폰 너머의 목소리를 통해 받았던 인상 그대로 당차면서도 따뜻한 분위기를 풍겼는데, 나는 왠지 태양, 그리고 헬륨을 떠올렸다. 그것이 설사 직업적으로 만들어진 이미지에 불과할지언정 나처럼 속을 알 수 없고 그늘진 모습보다는 백 번 낫다는 것에 이견은 없을 듯싶었다. 지혜 씨는 중저음의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그런 거추장스런 껍데기는 벗어 던지세요. 물론 말처럼 쉬운 게 아니라는 거 알아요. 누구보다 잘. 저희가 돕겠습니다. 그러려고 있는 곳이니까요.”


나는 우리 중에서 가장 마지막에 울었다. 저항한 건 아니었다. 나란 사람은 무언가에 저항하는 부류가 결코 못 됐다. 실은 피해자 가족 모임에 참석해 활동하는 일 자체가 오롯이 나의 의지인지 확신할 수 없었다. 영이가 오해했듯이, 나는 정말이지 비활성적인 존재였다. 개별 면담에서 내가 이런 얘기를 하자 한참을 묵묵히 듣고 있던 지혜 씨가 한마디 했다.


“영이는 똑똑한 아이였네요.”


모임에서 금기시 되는 것이 또 있다면 단연 아이에 대한 언급이었다. 그런데 저렇게 아무렇지 않게 입에 담다니? 그것도 아이’였다’니? 더는 그럴 수 없다는 것을 지시하는 그 과거형의 말이 나를, 내면을, 내 몸과 마음을 이루는 구성 요소 하나하나를 후려갈겼다. 나는 비로소 울었다. 내가 그렇게 울 수 있을 거라고는 생각도 못 했을 정도로. 오열. 드라마 속 배우가 열연하듯 나는 울었다. 오로지 울기 위해 우는 것처럼 우는 일에 최선을 다했다.

어느 정도 진정이 된 내 어깨를 토닥이며 지혜 씨는 다만 이렇게 말했다. 됐다고. 이제 됐다고. 나는 지혜 씨에 의해 그제야 영이를 놓아줄 수 있었다. 지혜 씨가 내게 준 가장 큰 선물이었다.


“아마 많이 아플 거예요. 몸살 크게 앓아본 적 있어요?”


나는 훌쩍이면서 고개를 저었다.


“한 번쯤은 크게 앓아도 괜찮지 않겠어요?”


그럴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한 건 정말로 아파 보기 전까지였다. 다음 면담 때 은근히 탓을 하자 지혜 씨는 그저 담담히 말했다.


“달리 무슨 말을 하겠어요.”


그것도 그랬다.


“그래도 이제는 알잖아요. 앓는다는 게 뭔지. 그리고 안다는 건 생각보다 유용하죠.”


그래도 아픈 건 싫다. 아직까지도 그 마음에는 변함이 없다. 어쩌면 그 마음이 나를 ‘정부의 아이’로 만들어왔는지도 모를 일이다. 외부에서 타인의 시선이 나를 억누르는 만큼이나 내 안에서도 그 못지않은 억압이 있었던 것은 아니었을까. 그럼 결국 모든 게 내 탓이 되는 건가? 늘 빠지고야 마는 자기비하의 늪. 비활성 기체처럼, 다른 화합물을 만드는 일이 없는 내가 영이를 선택한 이유를 딱 하나만 꼽으라면 이것 때문이었을 것이다. 나와 같지만, 그만큼이나 나와 다른 존재로서 나는 영이를 원했다. 그래서… 영이는 죽었다.

지혜 씨는 내가 늪에서 좀처럼 헤어나오지 못하는 것을 지켜보다가 마침내 말했다.


“부숴야 하는 게 단단할수록 더 큰 힘이 필요한 법이죠. 그런데 다행인 건, 그만큼 단순한 것도 없다는 거예요.”


나는 간혹 영이가 날 올려다보듯 지혜 씨를 쳐다봤다. 지혜 씨가 두 손을 맞잡은 채 날 똑바로 바라보면서 했던 말은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더 진지한 것이었다.


“집행인이 돼 보시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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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의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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