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원히 빛이 있다는 아름다움이란
누구의 것도 될 수 없는 날이랍니다.
그러므로 모두들 머물러 있는 날이랍니다.
받기 어려웠던 선물처럼―
- 김종삼, 「받기 어려운 선물처럼」 中
그가 일요일오후에 도착한 것은 밤이었다.
밤의 일요일오후는 검푸른 하늘을 배경으로 거칠게 뭉쳐진 그림자들의 마을이었다. 여기저기 작고 둥근 창문에 달빛이 부서져 희미하게 반사되었고, 그는 마치 은하수 속을 헤매는 우주선이 된 기분 속에서 쉴 곳을 찾았다. 거리에는 인적이 없었고, 물어볼 데도 없이 오랫동안 밤거리를 헤매다 마침내 절망 속에서 아무 집에나 가서 문을 두드렸다.
- 계십니까?
창에 불이 켜지며 집이 깨어나고 나서도 한참 뒤에야 문이 열리고 그림자가 나타났다.
- 누구십니까?
갑자기 쏟아진 불빛에 눈을 깜빡이며 그가 고색창연한 대사로 답했다.
- 지나가던 나그네입니다. 여관이나 호텔이나 가까운 숙소가 어딘지 알려주실 수 있겠습니까?
그러나 주인은 그와 같은 언어를 사용하면서도 그가 사용한 어휘들을 전혀 못 알아듣는 눈치였다. 그러니까, 나그네와 여관, 호텔, 숙소들.
그가 사정을 다시 장황히 설명하자 주인은 그제야 이해한 것 같았다. 그리고 하는 말이,
- 말씀하신 것처럼 대가를 받고 잠을 잘 수 있도록 해주는 곳은 여기에는 없습니다. 잘 곳이 없으시면 누추하지만 여기에서라도 밤을 보내지 않으시겠습니까?
그리고는 돌아서서 집안으로 들어갔다. 그는 잠시 망설이다 따라 들어갔다.
*
아침. 그는 둔탁한 두통과 명료하지 못한 의식 속에서 눈을 떴다. 낯선 냄새, 낯선 빛깔, 낯선 촉감. 그는 비로소 간밤에 자신이 깃들어 잠들었던 곳이 어디인지 확인할 수 있었다. 마른 누룩 냄새. 하얀 햇살. 옅은 그림자. 반짝이며 부서지는 새 소리. 그리고 그릇 달그락거리는 소리. 그는 낡았지만 깨끗한 이불을 걷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문을 열고 나가려다 돌아서서 이불과 요를 간단히 개고 다시 나갔다.
방 바깥은 거실 겸 부엌이었다. 부엌의 화로에서는 크고 작은 냄비 둘이 김을 내며 끓고 있었고, 주인은 개수대에서 그릇을 씻고 있었다. 간밤에 제대로 보지 못했던 주인의 뒷모습은 한 순간 팔이 네 개, 목이 길고 머리가 둘인 외계인으로 보여 섬짓했지만―다시 보니 팔은 둘, 머리는 하나에 목은 길지도 짧지도 않은 그냥 평범해 보이는 이였다.
- 앉으시지요.
주인은 거실과 부엌 사이에 놓인 식탁을 가리키며 말했다. 망설이며 앉자 주인은 능숙하게 접시와 그릇을 꺼내놓고 냄비들을 가져와 그릇에 던 다음 그에게 주었다. 따뜻하게 김이 올라오는 덮밥. 막상 입에 넣고 씹어보니 밥은 쌀도, 보리도 아닌 알 수 없는 곡물이었고, 국물도 알 수 없는 채소와 알뿌리 등을 섞어 조린 음식이었지만 어쨌거나 맛이 있어서 그는 주인의 수저질을 훨씬 앞질러 한 그릇을 깨끗이 비우고 수저를 놓았다. 뒤늦게 민망해하는 그에게 주인은,
- 먼 길을 오시느라 고단하셨군요. 조금 더 드시겠습니까?
바로 일어나 냄비를 가져올 듯이 꾸밈없이 물었고, 그는 진심으로 손을 저어 사양했다. 그러자 주인은 다시 수저를 들며 오늘 무엇을 할지 물었다. 그는 망설이며 생각을 정리하고 답했다.
- 글쎄요, 별 계획이 없습니다. 당분간은. 시간이 꽤 남아 있는 편이니까, 괜찮으시다면 며칠 더 이 집에서 묵으며 이 집을 중심으로 여기가 어떤 곳인지 돌아다니며 보고 듣고 알아보려 합니다. 혹시 불편하시다면, 따로 제가 머물 수 있는 곳을 어떻게 알아봐 주실 수 없을까요? 그렇게만 해주신다면 정말 감사하겠습니다만.
그러나 주인은 가볍고도 쉽게 고개를 끄덕였다.
- 어젯밤에 묵으신 방은 몇 년 동안 쓰지 않은 방입니다. 불편하지 않으셨다면 얼마든지 원하시는 만큼 머무셔도 좋습니다. 괜찮으시다면 주변을 돌아보시는데 제가 안내를 해드릴까요?
- 정말 그래도 괜찮겠습니까? 따로 바쁘신 일이 있는데 폐 끼치는 것 아닙니까?
그는 반가우면서도 조심스레 물었다. 그러나 주인은,
- 하나도 바쁘지 않습니다. 오히려 적적하던 참이었는데 감사하게 되었습니다.
*
그들은 같이 설거지를 하고―도와주지 않으셔도 괜찮습니다, 주인은 극구 사양했지만 그가 반쯤 우겨서 같이했다. 결국 도왔다기보단 방해만 됐지만―잠시 거실에 앉아서 차 한 잔을 마신 다음 외투를 입고 밖으로 나섰다.
길가에는 꽃향기가 가득했다. 늦은 아침 햇살이 두툼한 장막처럼 매 순간마다 부드럽게 드리워져 한 걸음 한 걸음 옮길 때마다 묵직하게 코끝부터 이마와 볼을 차례로 쓰다듬고 지나갔고 그때마다 떨어진, 떨어지는, 떨어질 꽃들의 향기가 뭉클뭉클 손에 잡힐 듯이 번져 나왔다.
거리에는 많은 이들이 나와 있었다. 그러나 웃거나 떠들거나 몰려다니는 대신 햇살을 쬐고 꽃향기를 맡고 긴의자에 앉아 오가는 이들을 바라보거나 졸거나 또 거리를 거닐며, 이리 저리 거닐며 풍경을 즐긴다.
점심은 거대한 기둥들의 숲을 벗어난 모퉁이에 있는 노점상에서 먹었다. 따뜻한 국물에 만 국수. 노점상은 목로 하나와 가마솥이 끓고 있는 아궁이 하나가 전부였고, 끼니때가 되어 모여든 이들은 주변의 기둥 그루에 앉아 국수를 먹었다. 면은 부드러우면서도 퍼지지 않고 국물은 맑으면서도 맛이 깊어서 별다른 고명이 없어도 맛있게 먹을 수 있었다.
다 먹은 다음에는 주인을 따라 근처 샘에서 그릇과 젓가락을 씻어 노점상에 돌려주었다.
- 음식 값을 내지 않나요?
국수를 받을 때부터 그릇을 돌려줄 때까지 궁금했던 것을 결국 돌아오는 길에 물어보자,
- 값이요?
그는 망연자실해졌다. 국수 값을 왜 내냐고 반문하는 게 아니라 값이 무엇인지 몰라서 묻는 질문이었다. 글쎄, 값이란 도대체 뭘까?
- 여긴 돈이 없나요? 그래도 남의 것을 먹었으면 대가로 무언가 주어야 하는 게 아닙니까?
주인은 여전히 어리둥절한 표정이었다.
- 돈이요? 남의 것이라뇨?
순간적으로 그는 모든 것을 알아버렸는데, 이곳은 화폐도 소유도 없는 곳이었고, 집주인이 선뜻 낯선 그를 재워준 것도 그래서였던 것이었다. 애초에 집을 자기 소유로 생각하지 않을 테니까 집주인이라고 부르는 것도 잘못된 일이겠지만.
- 국수 아줌마는 국수 마는 게 좋아서 마는 것뿐입니다. 밀가루는 밀 키우는 걸 좋아하는 이들과 방앗간 돌리기 좋아하는 이들이 좋아서 만드는 거고요. 옷을 만드는 이는 옷 만들기가 좋아서, 길거리를 쓰는 사람은 청소를 좋아해서 하는 것뿐입니다. 우리의 일상은 덜할 나위 없이 단순하고 간결하며, 일상을 구성하는 모든 요소들은 대부분 모두 우리 손으로 스스로 만들고 유지할 수 있습니다. 그러니 음식을 만들어 나누는 이와 곡식을 농사지어 나누는 이, 옷과 신발을 만들어 나누는 이들은 모두 일을 나누어 하는 것이 아니라 좋아하는 일을 스스로 하는 것뿐입니다. 다른 이와 나누지 않고 스스로의 삶의 모든 요소를 스스로 해결하는 이들도 많습니다. 그렇지만 그보다는 이러는 편이 훨씬 더 삶이 단순해지죠.
- 그러면, 그렇게 삶을 단순하게 만들면, 만들어서는 도대체 남는 시간엔 뭘 하는 겁니까?
- 보시다시피 산책입니다.
*
정말로 그곳에서의 나날들에 대해 그는 산책과 잠 외에는 기억나는 것이 없다. 아침에 일어나면―일찍 일어나는 것도 아니었다. 실컷 자서 아침 해가 높이 떠올라 그림자가 짧아지고 새들도 울다 그친 즈음에야 일어나면 집주인과―이름을 물어봤으나 이름이 없다고 해서 결국 처음처럼 집주인이라고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간단하게 아침을 지어먹고 설거지 한 다음 청소를 하고 잠시 쉬었다가 날이 더워지기 전에 산책에 나섰다. 매번 산책 나갈 때마다 길을 달리해서 끝까지 한 번도 같은 길을 걸은 적이 없었다. 걷다가 끼니때가 되어 배가 고프면 길가의 노점에서 점심을 먹었다. 국수와 만두, 튀김, 잡채, 빵, 떡, 김밥, 덮밥, 쌈밥, 국밥, 주먹밥, 꼬치, 과일… 단 한 번도 같은 것을 먹은 적이 없었다. 모든 길들이 서로 다른 점심을 향해 나 있는 것 같았다. 하루하루 새로운 길이 새로운 점심으로 향했다.
그리고 오전 내내 걸었던 길을 오후 내내 되짚어 걸어 돌아오면 간단하게 씻고 저녁을 먹은 다음 다시 설거지를 하고 같이 이야기를 하거나 각자 하고 싶은 일을 하다가 잠을 잤다.
다른 이들도 대개 그런 것 같았다. 많은 이들이 아침부터 오전 사이에 길거리에 나와 산책을 하거나 그러다가 다리가 아프거나 풍경이 마음에 들면 멈춰 앉아 멍하니 하늘과 땅, 바람과 숲과 풀들을 바라보았다. 대개는 편안한 침묵 속에서 서로를 또 다른 풍경이나 배경인 것처럼 희미하게 미소하며 그저 스쳐 지나갔다. 마치 수도원 정원을 산책하는, 묵언 수행 중인 수도사들 같았다.
정말로, 훗날 그는 그곳에서의 하루하루를 수도원에서의 피정으로 기억한다. 옅은 청회색의 나날들. 날마다 새로운 곳을 걷고 새로운 이들을 만나고, (며칠 뒤부터는 집주인과는 다른 길로, 다른 시간에 산책을 나서기도 했고, 그때마다 새로운 이들과 만나 함께 걷고 점심을 같이 먹었다) 이야기하며, 매일 매일이 새로운 날이고 새로운 경험이었지만, 지난 뒤에 되돌아보면 결국은 평화로운 침묵 속에서 세상의 소리를 모두 꺼버리고 오로지 혼자 남아 결국엔 그 자신조차도 스스로 아닐 정도로 내면이 텅 비었던 시간이었다.
그러니까 정말로, 일요일 오후. 월요일 출근이 생각나는 일요일 저녁이나 밤이 아니라, 아직은 저녁과 밤이 남았다는 여유 속에서 휴일을 즐길 수 있는 일요일 오후가 영원히 이어지는 것 같은 나날들.
*
그렇다고 산책만, 침묵 속에 명상만 한 것은 아니었다. 그는 가능한 한 일요일오후의 모든 것을 알기 위해 노력했고 그 결과 다음과 같은 것들을 알게 되었다 :
1) 일요일오후는 유한한 무한 속의 세계이다.
일요일오후는 중앙 광장과, 광장을 둘러싼 고대의 열주 회랑과 오래된 벽돌집들의 마을, 마을을 둘러싼 숲으로 이루어져 있고, 숲 바깥은 무한의 사막과 평원이다. 사막과 평원 너머에 무엇이 있는지 아는 이는 아무도 없다. 어떤 이들은 지표면이 굽어 있기 때문에 계속 가다보면 결국 광장 중앙을 중심점으로 한 대칭 지점의 일요일오후 가장자리가 다시 나올 거라고 짐작한다. 그러나 무한의 순례자들이 출발한 뒤 아무리 관찰해도 그들의 뒷모습이 점점 아래로 내려가거나, 반대로 점점 올라가는 모습은 확인되지 않는다.
그래서 다른 많은 이들과 함께, 그도 일요일오후는 척도가 왜곡된 공간으로 둘러싸인 곳이리라고 추측한다. 공간 자체는 유한하지만, 공간 안의 축척이 무한히 작아져서, 그 공간에 들어선 존재는 아무리 걸어도, 걸어도 점점 작아지기만 할 뿐, 결코 그 끝에 가닿지 못할 것이다. 그러니까 제논의 장벽. 0과 1 사이의 모든 소수를 결코 다 헤아릴 수 없는 것처럼.
2) 일요일오후의 모든 이들은 모두 사람이 아니다.
사람의 정의는 과연 뭘까? 여러 정의가 있겠지만 결국 동물을 유개념으로 삼는 것에서 벗어날 수 있는 것은 없을 것이다. 그러나, 동물은 결국 생물을 전제로 한 개념이고 생물이란 결국 생명―죽음을 전제로 한, 유한한 현상을 본질로 한다는 점을 생각해보면…
이들은 모두 불멸이다. (그러나 불멸을 과연 어떻게 판정할 수 있을까? 불멸을 확정하기 위해서는 관찰자 역시, 관찰자부터가 먼저 불멸의 존재여야 할 것이다. 그리고 관찰 시간은 영원이어야 할 것이다. 그러므로, 불멸은 결코 언제까지나 누구에게나 확정받을 수 있는 상태가 아니다)
그러나 그는 이들이 모두 불멸로 보인다고 생각한다. 여러 번 만나 친숙해진 이들 외에도 거리에서 목로에서 지나치는 이들도 모두 건강했고, 몸가짐에는 오랫동안 살아온 방식 그대로 살고 있는 것이 확연히 느껴지는 부드러움이 작은 동작 하나하나에, 말씨 하나하나에 깊이 배어 있었다. (영원 속에서 말과 행동은 과연 어떻게 나타날까? 더 이상 아무 것도 덜어낼 수 없으리만치 단순한 삶이 하루하루 매일 똑같이 반복되는 것은?)
이들의 언어에 죽음이나 질병, 파괴와 소멸 등의 단어가 없으나, 그는 그 사실에는 큰 의미를 두지 않았다. 언어는 실재를 담아내는 그릇이라기보다는 걸러내는 성긴 체에 가깝다고 생각하니까. 그 대신에 가능한 한 많은 이들을 만나보고, 계속 만나보려 애썼다. 그 결과 아픈 이들, 갑자기 모습이 보이지 않는 이들은 아무도 없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그러나 결국 불멸은 불가지에 속하는 문제일 것이다. 그가 생각하는 것은 이들이 정말로 불멸인가, 여전히 사람인가 등의 문제가 아니라, 불멸로 생각되는 존재들의 삶이다. 이것이 과연 영원히 살 가치가 있는 삶일까? 이렇게 단순하고 조용하고 건조하고 단조로운 삶을?
그리고 이들은 성별이 없다. 직접 확인할 수는 없었지만 성의 구별이 없는 것으로 보인다. 출생도 사망도 사랑도 미움도 질투도 좌절도 이들이 모두 여읜 것은 그 때문일까?
3) 일요일오후의 정치, 경제, 사회, 문화, 예술, 학문, 기타 등등
모두 없다. 있어도 거의 없다.
가) 정치
이들은 어떤 사회 조직도 이루지 않고 산다. 집주인의 말처럼 생활 형태가 극도로 단순하고 그래서 삶의 모든 문제를 각자가 다른 이의 도움 없이 해결할 수 있는, 개인의 역량을 넘어서는 문제가 발생하지 않는 세계에서는 누구나 다른 이들과 조직을 만들고 역할과 책임을 나누고 권리를 제한하고 갈등하고 반목하고 중재하고 화해하고 불만하고 불평하고 타협하고 경쟁하고 승리하고 패배하는 모든 번잡한 일들에 자신의 생명을, 영혼을, 시간을 소모할 필요가 없을지도 모른다. (비록 이들이 정말로 불멸이더라도, 무한정한 시간이 보장되어 있다고 하더라도)
이상적인 삶. 이상향에서의 삶. 영원한 일요일 오후. 그러나 이것은 결국 잘 가꿔진 온실에서 간신히 피워 올린 한 송이 꽃에 불과하다. 온실 문이 열리고 바깥바람이 불어오면 아리따운 꽃잎들은 곧 지리라.
나) 경제
자급자족 혹은 증여 경제. 재화와 용역은 필요한 이가 스스로 충족하거나 필요한 이에게 주변에서 나누어준다. 분업도, 협업도 없다. 한정되지 않은 자원이 자율적으로 절제된 필요에 따라 실시간으로 분배된다. 그러나 과연 삶의 필요가 그렇게 가혹하리만치 절제되고 단순화되어야만 하는 걸까? 조금만 더 복잡한 기술, 둘 혹은 셋만이라도 손을 맞춰 일을 하면 한결 더 편리하고 안락한 삶을 살 수 있지 않을까?
그러나 일요일오후에서는 그렇지 않다. 더위도 추위도, 파리도 모기도, 지진도 해일도 우박도, 벼멸구도 바퀴벌레도 병균도, 홍수도 가뭄도 태풍도 폭우도 모두 없는 이곳에서는 있는 그대로가 가장 편리하고 안락한 상태이며 구태여 기술과 조직을 더해 편리와 안락을 따로 구할 필요가 없다.
인류가 지구 환경을 완전히 통제하고 불노와 불사를 얻는 데 성공한다면 삶과 세상은 결국 이런 모습에 수렴하게 될까? 국가와 사회는 해체되고 산업과 경제는 폐기되며 전쟁과 범죄는 모두의 기억 너머로 잊혀지고 마침내 개개인의 삶은 잘 간수해 오래도록 입어온, 잘 빨아 말린 셔츠처럼 단조롭되 편안한 것이 될까?
다) 사회
전술했다시피, 이들은 어떤 사회 조직도 구성하지 않고 살아간다. 그렇지만 그렇다고 고립과 은둔의 외롭고 쓸쓸한 삶을 사는 것은 아니다. 산책길에는 함께 걸으며 담소를 나누는 이들이 간간히 보이며, 거리나 집 앞 정원에도 나란히 앉아 햇볕을 쬐거나 지나가는 이들과 그 너머의 풍경을 조용히 바라보는 이들이 종종 보이곤 한다.
불멸자들은 영원 속에서 어떤 관계를 맺을까? 일요일오후에 살고 있는 이들의 수를 모두 세어보진 못했지만 그 수가 무한할 리는 없다. 그러므로 이들은 모두 서로에 대해서 부모와 자식 혹은 남편과 아내보다도 더 잘 알아야 했으나…
그는 아직도 그것을 뭐라고 불러야 할지 알지 못한다. 예의바른 무관심? 지혜로운 거리 유지? 혹은 그저, 지적 게으름의 세련된 위장? 뼛속까지 철저하게 개인주의자인 이들은 결코 다른 이들의 삶에 필요 이상으로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가장 사교적인 이도 알고지내는 이들의 숫자는 열 손가락을 넘지 않았고, 이 조그만 도시에 얼마나 많은 이가 살고 있는지 아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이들의 대화 주제는 대개 그날그날의 사소한 이야기들에 국한되었고, 그 이상 서로의 삶에 접근하지는 않았다.
이들의 사회 아닌 사회에 대해서는 다음 한 가지면 충분한 설명이 될 것이다 : 이들은 모두 이름이 없다. 결코 서로를 구별해서 지칭할 고유한 단어가 필요 없는 삶.
라) 문화
依 : 추위나 더위를 피할 필요가 없으나 다만 간간이 내리는 가벼운 비나 눈을 가릴 필요는 있기 때문에 이들은 대개 바지와 저고리에 간단한 덧옷을 걸쳐 입는다. 풀에서 뽑아낸 섬유로 짠 옷감을 넉넉하면서도 불편하지 않게 재단한 옷은 두 벌에서 세 벌 정도 마련해서 돌아가며 입고 빨고 말려 잘 관리하기 때문에 좀처럼 헤지지 않지만, 그래도 너무 오래 입어 낡고 닳은 옷은 해체해서 수건이나 행주로 쓰고, 더 낡고 닳고 지저분해지면 걸레로 쓰다가 마침내는 퇴비더미에 버린다. 염색해서 쓰는 경우는 거의 없고 섬유 자체의 색과 질감을 그대로 이용하지만 취향에 따라 간단한 무늬를 넣는 경우도 있다.
食 : 요리법은 대개 간단하고 단순해서 준비하는 데 많은 품이 들지 않지만 철에 따라 재료 고유의 맛을 잘 살려내기 때문에 식사가 결코 단조롭거나 지루하지는 않다. 어쩌면 이들의 가장 즐거운 오락이 요리와 식사가 아닐까 생각될 정도이다. 재료는 곡식과 버섯, 다양한 식물들의 열매, 잎과 줄기, 덩이줄기, 뿌리들이 주를 이루었고 꽃과 씨앗, 나무껍질 등이 향신료로 조금씩, 하지만 다채롭게 사용된다. 이들은 결코 고기는 먹지 않는다. 나뭇가지 사이로 작은 새들이 날아다니며 지저귀고 나무줄기 사이로는 토끼나 사슴 같은 짐승들이 그러나 그 실체가 아니라 모두 그림자인 양 언뜻언뜻 보였으나, 그러나 죽은 새나 짐승은 볼 수 없다. (새와 짐승들도 모두 불멸이자 단성으로 불임인 걸까? 아니면 실재하지 않는, 다만 풍경과 소리에 지나지 않는 걸까? 나무와 풀들이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는 것을 보면 이곳 역시 ‘열매가 떨어지면 툭하고 소리가 들리는 세상’이지 시간과 움직임과 생명이 영원의 진공 속에 얼어붙은 저승이 아니었으나…) 이들은 결코 가축을 키우지 않는다. 애완동물도 없다. 개는 아예 볼 수 없고, 고양이는 간혹 보이나 도도하게 지나가기만 할 뿐 누구에게도 다가오지 않는다.
住 : 여름도 겨울도 없는 이곳에서 집은 다만 눈과 비를 가리고 옷을 걸어놓기 위한 최소한의 지붕과 벽으로만 이루어진다. 결코 둘 이상 함께 살지 않고 한 채에 한 명씩 살기 때문에 원칙적으로는 주방 겸 욕실 겸 침실로 쓸 수 있는 방 하나만 있어도 족할 것이지만, 대개는 필요에 따라 여러 개의 방으로 공간을 나누어 쓴다. 살림살이가 많지 않기 때문에 가구도 때에 따라 식탁도 되고 책상도 되는 탁자와 작은 옷장과 찬장 정도가 거의 전부인데, 언제 만들어졌는지 알 수 없지만 잘 관리된 오래된 목제 가구들이고 집은 목제 뼈대에 흙벽돌로 벽을 쌓고 지붕은 마른 풀을 엮어 올리는데 비바람에 낡고 헤질 때마다 새로 올린다.
마) 예술
시와 노래, 춤은 그나마 종종 보이는 예술 형태인데, 모두 즉흥적이어서 하나의 시나 노래가 반복되거나 아예 글로 기록되는 일은 극히 드물어 보인다. 영화는 기자재가 없기 때문에 불가능하거니와 연극도 여럿이 모여 협업을 해야 하는 특성상 행해지지 않는다. 일인극도 없다. 애초에 설화나 소설 같은 언어를 매체로 한 서사물도 존재하지 않는데, 다른 이들에 대해서 절대적으로 무관심한 이들이 꾸며낸 이야기에 흥미나 관심을 보이리라고 기대할 수는 없다. (이름이 없는 세상에서 서로 구분되는 기호로 표기할 수 없는 인물들로 이루어진 서사가 가능할까?)
그림이나 조각은 아예 찾아볼 수 없다. 옷에 간혹 추상적인 무늬를 그려 넣는 것을 좋아하는 이들이 있긴 하지만 문양 수준을 넘어 구체적인 형상을 평면이나 입체로 재현하는 경우는 없었다. (불멸과 구상은 어딘가 상충되는 면이 있는 걸까?)
다만 물질적 속박으로부터 가장 자유로운 연주만큼은 모든 이들이 즐기는 유일한 예술 형태이다. 피리가 가장 인기 있는 악기이고, 간혹 작은 울림통에 서너 현을 얹은 간단한 현악기를 가진 이들도 있다. 그러나 이마저도 연주를 자주 들을 수는 없는데, 주변에 다른 이가 있을 때는 그의 고요에 방해가 되거나, 혹여 각자 연주할 때에 간섭되고 불협화음을 울릴 것을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러니 자연히 한적한 숲에서만 간혹 정교하되 역시 즉흥적인 독주곡이 들려오곤 한다.
바) 학문
정치도 경제도 사회도 문화도 예술도 거의 없는 이들이 세울 수 있는 학문은 수학과 철학, 물리학 정도가 가능할 것이나 실제로는 그마저도 모두 찾아볼 수 없다. 불멸의 대가는 감정 외에 지성도 포함되는 것일까? 이들이 지적으로 열등하다고는 결코 말할 수 없지만, 하등의 지적 성취를 쌓거나 유지하지 못하는 것은 사실이다. 물론, 못하는 것이 아니라 안하는 것일 수도 있고 지식의 궁극적인 끝은 무지인지도 모르겠으나…
*
결론 : 엘로이들. 월요일이 결코 오지 않는 영원한 일요일 오후처럼, 결코 몰록에 대한 두려움 없이 즐겁게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나이 많은 엘로이들.
*
그는 아침을 먹으며 집주인에게 말했다.
- 오늘 오후, 광장에 모두 모일 수 있을까요? 모두에게 드리고 싶은 말씀이 있어서 그럽니다.
- 모두 모이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이미 아시겠지만, 우리는 그런 식으로 움직일 수 없습니다.
- 그래도 가능하면 많은 분들에게 말씀 전해주세요. 저도 그렇게 하겠습니다. 왜냐하면 이 세계에 관한 일이기 때문입니다.
주인은 조금도 표정이 변하지 않았다. 그러나 아침 인사를 받을 때와 똑같은 표정으로,
- 그렇다면, 알겠습니다.
아침을 먹고 설거지를 끝낸 뒤 집주인은 외출했다. 그도 집을 나와서 반대 방향으로 걸으며, 만나는 모든 이들에게 같은 이야기를 되풀이했다.
*
오후, 광장에는 지금까지 봤던 이들을 모두 합친 것보다도 더 많은 이들이 모였다. 어쩌면 정말로 모두 모인 것인지도 모르겠다고 그는 생각했다.
광장 한쪽에는 이미 누군가 나무 상자를 짜맞춰 단을 마련해 놓았는데, 나중에도 그는 그 일로 오랫동안 고민하게 된다. 이들은 과연 독립된, 개별적인 사고와 행동을 하는 것일까? 아니면 이 세계 이면에서 모든 이들의 정신은 하나로 묶여 있는 걸까―벌이나, 개미처럼?
애초에 그 자신은 결코 이런 일에 적당하지 않았다는 생각이 다시금 들었다. 여럿 앞에서 말하는 것은 자신 없는 일이었다. 그러나 어차피 예정에 없었다. 그는 도둑처럼 들어와 살며시 보고, 듣고 다시 도둑처럼 살며시 나갈 생각이었다. 그러나, 그렇지만, 여기에서 보고 들은 결과, 그는 그럴 수 없게 되었다. 말할 수밖에 없게 되었다.
단상에 올라간 그는 모든 이들 앞에서 입을 열었다.
- 아마 맨 처음에, 시작은 모래 한 알이었을 것입니다. 상상할 수 있으십니까? 마음속에 구체적인 물체의 뚜렷하고 지속적인 상을 만들어낼 수 있는 집중력이란 과연 어떤 것이었을지―모래 한 알을, 그 까끌한 감촉과 가볍되 0은 아닌 질량, 햇빛 아래서의 반짝임, 그늘 속에서의 차갑고 단단한 촉감을 마음속에서 실재처럼 구체화하기 위한 노력은 과연 어떤 것이었을지?
- 그는 세계 보안법 제3조 반세계단체의 구성 등에 따라 2146년에 영원징역형을 선고받았습니다.
- 영원징역형은 수형자의 뇌 회로 전체를 컴퓨터 프로그램 속에 복제한 뒤 육체를 말소해버리는 형벌입니다. 뇌 회로의 컴퓨터 복제 기술은 처음에는 영생으로 오르는 계단으로 보였습니다마는 실제로는 지옥으로 내려가는 지름길이었습니다. 복제된 뇌 회로가 원본과 동일하게 작동하는 것을 외적으로는 확인할 수 있었지만, 뇌 회로의 기능으로 만들어진 의식-정신-자아-영혼-그 무엇이든-과 접촉할 수 있는 방법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외부와의 연결점이 끊어진 정신은 과연 무엇을 어떻게 느끼고 생각할까요? 그래서 이 기술은 사형제 폐지 이후 최고형이 되었습니다. 수형자는 죽는 것은 아니지만 두 번 다시 사회로 돌아올 수 없습니다. 대부분의 경우에는 한 달이 채 되지 않아 뇌 회로 전반이 비활성화되었으며, 일 년 이상을 버티는 수형자는 없었습니다.
- 그러나 그의 뇌 회로는 계속 활성화된 것은 물론 활성화 정도가 점점 더 비약적으로 증대되었습니다.
- 그동안 우리는 그의 뇌 회로에 대한 지속적인 관찰과 실험 끝에 뇌 회로가 발현, 유지하고 있는 정신세계에 제3자의 의식을 연결하는 프로토콜을 만들 수 있었습니다. 그의 뇌 회로의 시냅스 발화 패턴은 매우 일정하고 안정적이어서 분석하기에 용이했습니다. 그리고 시험 접속해 본 결과…
- 이곳은… 정말 뭐라고 말할 수 없군요. 그리고 사실은 누구에게 말해야할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는 어디에 있죠? 아직도 존재하기는 하는 걸까요? 이런 것을 과연 존재라고 할 수 있을까요? 자신의 자아를 유지하는 정신을 낱낱이 부숴서 하나의 새로운, 거대한 세상을 만들어낸다는 것이 과연 가능한 일일까요?
- 최초의 시작은 아마 한 알의 모래알 혹은 한 알의 겨자씨였을 것입니다. 그러나 내면에 의식을 집중하여 구체적인 사물을 만들어내는 것이 가능해지고, 익숙해지자 한 알의 모래알 혹은 한 알의 겨자씨로부터 차츰차츰 범위를 넓혀 모래 한 줌, 겨자 싹 한 웅큼을 만들어내고, 이내 이 모든 것들―저 푸른 하늘과 해, 그림자, 구름, 바람, 저 숲, 나무들, 시냇물들과 강, 강변의 조약돌과 풀들, 그리고 돌길과 흙집들, 그 위를 걷고 그 속에서 사는 당신들까지 만들어냈겠죠.
- 그러는 과정에서의 노력도 헤아리기 힘들지만, 당신들이 살아가는 이 세상은 정말…
- 제4차 혼란기였던 당시에 제대로 된 수사 및 재판 기록은 남아있지 않지만 그는 2차 유니버셜에서 핵심 인물로 활동한 것으로 보입니다. 내행성계와 외행성계 사이의 억압과 착취 구조의 분쇄를 기치로 한 2차 유니버셜은 실상은 아동과 여성들까지 동원한 흉악한 테러 단체에 불과했다는 것이 중론이니 그 역시 그다지 긍정적인 인물은 아니었을 것으로 추정됩니다.
- 그러면, 그런 그가 구현한 이 세계는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요? 모든 것이 조화롭고 평화로우며 그러면서도 개별적이고 독립적인 삶으로 채워진 이 세계는?
- 그는 원래는 무차별 테러와 무관한 아나키 성향의 평화주의자였던 걸까요? 구제불능의 이상주의자? 혹은, 그렇지 않다면, 이 모든 것은 한 인간의 속죄의 결과인 걸까요? 생전의 자신이 파괴했던 모든 것들을 순수한 뉘우침 속에서 조화롭고 평화롭게 그의 내면 속에서, 그 스스로를 부수어 새롭게 만들어낸 걸까요?
- 알 수 없습니다.
- 당신들도 알 수 없으리라고 생각합니다.
그는 말을 멈추었다. 이제 무슨 말을 더 해야 할 지 알 수 없었다. 어쩌면 이제부터 하는 말은 이곳에서 나가서 쓸 보고서의 초안이 될지도 몰랐다.
- 이곳은 이제 어떻게 될까요?
- 징역 대상인 그가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 것으로 결론 내려진다면 징역이 계속될 이유는 없습니다. 이 세계를 구성하는 뇌 회로 시뮬레이션은 종료될 것이고, 그러면 이 세계는 끝이 날 것입니다.
- 그러나 형 집행의 의미 외에 가상현실 혹은 사회 실험 등의 의미가 인정받는다면 이 세계는 계속 존속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 경우 이곳은 계속 관찰 및 실험, 방문의 대상이 될 것입니다.
- 최악의 경우 민영화되어 일종의 휴양지나 테마 파크가 될지도 모르겠습니다. 확언할 수 없지만, 당신들의 인권은 인정받기 힘들 것으로 보입니다. 아직 우리 사회는 인공지능과 가상 인격 등의 법적 권리에 대한 합의가 이루어지지 않았습니다.
- 그렇기 때문에, 어쩌면 지금 이 자리는 당신들의 세상의 마지막 순간이 될 지도 모릅니다. 최악의 경우 이 세상은 이제 종료될 것이며, 그렇지 않더라도 지금까지의 이 풍경, 이 삶의 모습이 계속되기는 힘들어 보입니다.
- 애초에 저는 단순한 관찰자로서 변화 이전 이 세계의 모든 것을 가능한 한 많이 알아내는 것만이 임무였습니다. 지금 제 이 행위는 어쩌면 일종의 월권이나 배임이 될지도 모릅니다.
- 그러나 저는 이럴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곳이 어떤 곳인지, 이곳에서 당신들이 어떤 삶을 살고 어떤 세상을 이루고 있는지 알게 된 지금, 이렇게 할 수밖에 없습니다. 자, 이제 제가 당신들에게 할 말은 모두 끝났습니다. 이제 여러분이 저에게 말해주실 차례입니다. 한 세계의 끝에서 그 세계의 사람들이 남기는 마지막 말은 누군가 반드시 들어야 되지 않겠는가, 저는 그렇게 생각합니다.
그가 전혀 예상치 못했던 일이 일어났다.
광장에 모인 모든 이들이 입을 모아 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러나 그것은 이제까지 그들이 보였던 개별적, 독립적 모습들이 거짓이거나 허상이었다는 의미로 보이지는 않았다. 나중에 한참 뒤에도 그는, 그들이 모두 개별적이고 독립된 상태에서 그러나 같은 마음과 같은 결론으로 같은 말을 각자 한 것이었으리라고 생각한다. 어쨌거나 그들이 말했다 :
- 이 세상과 우리들의 삶과 우리들 자신이 모두 누군가 한 사람의 꿈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은, 그러나 우리는 이미 모두 알고 있었던 사실입니다. 우리는 이미 경험적 관찰과 실험, 그리고 논리적 사변의 두 갈래 길을 통해 오래 전에 그러한 결론에 다다랐습니다.
- 우리의 이 하루하루의 삶은 그러한 결론 뒤의 결과입니다. 이 모든 것이―우리들마저도 모두 허망한 가상에 불과하다고 할지라도, 그렇다고 해서 아무런 의미도 없는 것까지는 아니지 않습니까? 지금 이 한 순간 한 순간의 햇살과 바람, 숲의 향기, 돌길의 작은 반짝임, 들이쉬고 내쉬는 호흡 하나하나가 모두 의미를 잃는 것은 아니지 않습니까?
- 그러니 ‘바깥’에서 오신 분이여, 그리고 ‘바깥’에 계신 분들이여, 이 세상은 우리 손에 매인 것이 아니고 당신들 손에 매인 것도 아니니 당신들은 당신들이 할 수 있는 것을 당신들 마음대로 하십시오. 이 세계가 끝이 난다면 덧없는 한 꿈이 사라지는 것뿐이고 이 세계가 다른 무언가로 바뀐다 해도 덧없는 한 꿈이 다른 한 꿈으로 바뀌는 것일 뿐이니, 우리는 개의치 않습니다. 모든 것이 꿈이고―꿈의 안팎 모두 꿈이고, 꿈속에서는 영원이 순간이고 순간이 영원입니다. 마지막 한 순간일지언정 이곳은 영원한 일요일 오후일 것이며, 우리는 그것으로 만족합니다. 우리는 일요일 오후를 즐길 것입니다.
*
그가 일요일오후를 떠난 것은 저녁이었다. 집주인과 몇몇 친하게 지냈던 이들이 배웅 나왔다. 그들은 희미하게 웃으며 손을 흔들었고, 그는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 알 수 없는 기분 속에서 말없이 손을 흔들고 돌아섰다.
이윽고 밤이 되었다.
- 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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