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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문학 왜 필요한가 - 어리둥절한 천문학자의 고백

2025년 11월 통권 242호

강연을 통해 대중과 만나는 자리에서 유독 나를 긴장하게 만드는 질문이 있다. 바로 천문학 분야에 왜 정부 예산이 투입되어야 하는지를 묻는 질문이다. '천문학을 왜 꼭 해야 하는지', '천문학이 우리 삶에 어떤 의미를 지니는지' 등의 질문도 비슷한 결을 갖고 있다. 이때 타깃이 되는 천문학 분야는 우주탐사를 통해 인류가 도달하거나 개발할 수 있는 영역보다 훨씬 먼 우주, 일상과는 접점이 없어 보이는 심우주를 일컫는다. 처음 이러한 질문을 받았을 때 나는 당황한 나머지 두서없는 말만 늘어놓았다. 

그 후 당황스러운 순간을 다시 마주하지 않기 위해, '우주를 이해하는 것은 곧 인간 존재의 근원을 이해하는 것과 같다'라는 그럴듯한 답변을 마련하여 활용하기 시작했다. 답변이 다소 막연하고 함축적이었기에 좀 더 친절한 설명이 뒤따라야 했지만, 스스로 고민하여 도출한 결론이 아니었기에 디테일을 조목조목 설명할 엄두가 나지 않았다. 그렇게 난 무책임하게 다음 질문으로 넘어가곤 했다. 

고백하건대, 난 천문학을 공부하고 연구한 지 20년이 지났지만, 정작 천문학의 당위성에 대해 깊이 고민해 본 적이 없었다. 천문학이 내게 너무도 당연한 일이었기에 그랬노라 변명할 수도 있겠지만, 사실은 어설프게 생각을 이어가다 보면 우주의 무용함에 압도되곤 했기 때문이다. 일상에서 마주하는 모든 것들과 견주어 몹시 무용한 듯 보이는 우주. 그 함정에서 빠져나오는 데에는 언제나 상당한 에너지가 필요했다. 이 질문은 내게 판도라의 상자 같았다. 

                                                                                                                                             


어느 날 불현듯, 우주가 우리의 일상에 끼치는 영향은 우리가 일상에서 다루는 보통의 가치, 보통의 단위를 넘어선다는 생각이 들었다. 활용 가치가 수년 내에 증명되는 응용학문과 달리, 기초학문의 가치는 단기간에 드러나지 않는다. 마찬가지로 천문학 역시 그 성과가 일상에 파급되기까지 매우 오랜 시간이 걸리며, 파급되는 양상 또한 매우 입체적이다. 

그 가운데 비교적 일상으로 빠르게 환원되는 것은 천문학을 위해 만들어진 기술들이다. 우주의 극도로 어둡고 희미한 신호를 잡아내려는 천문학자의 집념은 새로운 기술을 개발하는 동력이 되어왔다. 이 과정에서 만들어진 관측 기술, 즉 천문학의 부산물들은 산업과 사회에 흘러 들어가 일상에까지 영향을 미치곤 한다. 예를 들어, 스마트폰에 하나씩 들어가 있는 CCD(Charged-Coupled Device) 카메라는 본래 천체에서 오는 희미한 빛을 더 정확히 기록하기 위해 개발된 것이다. 1980년대 천문학 연구의 패러다임을 바꾼 CCD는 오늘날 우리 일상에도 당연한 기술이 되었다. 


일상으로 스며든 기술의 또 다른 예로 Wi-Fi 네트워크가 있다. 천문학자들은 전파 망원경으로 천체에서 오는 전파 신호를 수신할 때, 잡음과 간섭 왜곡에 늘 시달렸다. 전파 천문학자들은 이 문제를 극복하기 위해 천체에서 오는 순수한 신호를 복원할 수 있는 수학적 기법을 고안하였고, 이 기술은 후에 무선 통신에 응용되어 오늘날의 Wi-Fi 네트워크의 핵심 알고리즘이 되었다. 

위성에서 오는 전파신호의 도착 시간을 이용해 위치를 측정하는 GPS(Global Positioning System) 기술이 오늘날처럼 정교해질 수 있었던 것도 전파 천문학자들의 집념에서 시작되었다. 전파망원경 여러 대를 네트워크로 연결하여 동시에 천체를 관측하는 VLBI(Very Long Baseline Interferometry, 초장기선 간섭계) 기술에는 여러 전파망원경의 위치와 시각을 나노초까지 정확히 맞추는 동기화 작업이 매우 중요하다. 이를 위해 전파 천문학자들은 지구 자전이나 대기 상태는 물론, 상대성 이론에서 예측되는 효과까지 고려해 보정하는 기술을 개발하였다. 천문학자의 보정 기술이 GPS에 적용되어, 오늘날 우리가 누리는 수준의 정확도에 이르게 된 것이다. 

또한, 우주를 관측하기 위해 개발된 엑스선(X-ray)과 적외선 검출기는 엑스레이, CT, PET 등의 의료용 영상 장치로 파생되었으며, 우주의 미약한 전파 신호를 포착하기 위해 고안된 신호 증폭 및 보정 기법 등은 MRI 데이터 처리에 응용되어 인체 내부의 희미한 신호를 선명한 영상으로 재구성하는 데 이바지하고 있다. 이 외에도 천문학을 위해 개발된 수많은 기술과 부산물들이 예상치 못한 방식으로 우리의 일상 깊숙이 스며들어 있다.

                                                                                                                                             


그렇다면, 왜 우리는 첨단 기술을 개발하면서까지 우주를 관측하는 걸까? 적지 않은 사람들이 아름답고 신비한 우주의 사진을 찍는 것이 천문학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천문학자는 우주의 아름다움보다는 경이로움을 좇는다. 그 경이로움은 천체의 화려한 색감이나 모양이 아니라, 대상의 본질을 마주하는 것에서 비롯된다. 천체의 규모, 특성, 형성과 진화의 역사 등의 '맥락'을 이해하는 과정에서 느껴지는 것이다. 우주를 관측하는 과정은 흩어져있는 단서를 모으는 단계에 비유될 수 있다. 첨단 기술을 동원하여 더 멀리, 더 깊이, 더 자세히 볼 수록, 더 다양한 단서를 확보하게 되는 것이다. 천문학자는 과학적 사고를 기반으로 그 단서들을 연결하고 해석함으로써, 우주가 어떤 섭리로 작동하는지 밝혀나가게 된다. 

자연스레 그다음 질문이 이어진다. 우주에 대해 이해하는 것이 대체 왜 중요할까? 그 이유는 우주에 대한 이해가 곧 인간의 근원을 묻는 핵심 질문과 이어지기 때문이다. 한때 해, 달, 별의 배경처럼 보였던 하늘이 만물을 품은 공간이자 세계 자체임이 밝혀지면서, 인간의 기원과 정체성을 묻는 질문 역시 우주를 무대로 확장되었다. 즉, '우리는 어디서 왔는가? 우리는 무엇인가? 우리는 어디로 가는가?'의 질문을 우주의 공간과 시간의 맥락 속에서 묻게 된 것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볼 때, 천문학은 인간의 근원과 미래, 그리고 세계관을 과학적으로 탐구하는 학문인 것이다.

우주를 이해하는 일이 모든 개인의 삶에 필수 요소라고 할 수는 없다. 인간의 근원에 대해 질문하고 탐구하지 않아도, 우리는 충만한 삶을 살 수 있다. 또한, 우주에 대한 이해가 없어도 철학, 예술, 종교 등 다양한 경로로 인간의 '근원적 질문'에 접근해 나갈 수 있다. 그러나 사회 차원으로 보았을 때 이야기는 달라진다. 특히 그 공동체가 인류라면, 우주에 대한 이해는 인류가 한데 연대하고 협력해야 하는 이유와 통찰의 근거를 제공한다. 비록 우주에 대한 이해가 문명의 이기로 단기간에 환원되지 않지만, 장기적인 안목을 갖고 이를 축적한 경우와 그렇지 않은 경우의 인류의 미래는 크게 달라져 있을 것이다. 

인간의 눈으로 해, 달, 별 외엔 좀처럼 보이지 않지만, 인류는 이 한계를 극복하고 지식을 체계적으로 누적함으로써, 우주가 어떻게 시작되었는지, 어떤 원리로 천체들이 태어나고 사라지는지 이해하게 되었다. 나아가 지구를 이루는 물질들이 한때 빛을 냈던 별들의 잔해에서 비롯되었고, 지구의 모든 생명 역시 그 물질을 바탕으로 태어났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수소 같은 원소는 빅뱅 기원임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빅뱅에서부터 인류의 기원까지 하나의 연결된 스토리로 이해함으로써, 우리는 삶을 더 넓은 시각과 더 긴 안목으로 볼 수 있게 되었다. 우리가 의식하지 못 할 뿐, 우주와 인류를 관통하는 서사는 우리 삶의 기반이 되어 있는 것이다. 

모든 천문학자가 늘 대의를 품고 우주를 연구하는 것은 아니며, 나 역시 마찬가지다. 많은 이들이 우주의 화려한 색채와 방대함에 매료되듯, 나 또한 그랬고, 지금은 우주의 비밀을 하나씩 풀어나가는 과정이 재미있을 뿐이다. 가끔, 심우주 연구 결과의 가치를 우주탐사, 기기/기술 개발, 근지구 우주 환경과 같은 천문학 내 다른 분야와 견줘 어필해야 할 때엔, 냉소 섞인 한숨을 쉬거나, '심오하고 고상한 학문'이라는 말로 자신을 달래거나, 혹은 아무 말을 이어 붙이며 장황해지기 일쑤였다. 글을 마치면서도, 이 주제는 여전히 어렵게 느껴진다는 것을 고백한다. 그러나, 적어도 지금의 나는 이렇게 믿는다. 우주는 큰 보폭으로 걸어가는 인류의 지도이자 나침반이라는 것을.

댓글 1
  • 정민섭 2025-12-04 03:40:49

    행성과학도 마찬가지에요 ^^. 과학자들이 신기술을 개발하는 것도 아니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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