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ross Street

사냥꾼의 신경계(2)

2025년 10월 통권 241호

해파리와 말미잘을 비롯한 자포동물의 신경계는 해면동물의 뉴로이드 세포나 판형동물의 펩타이드 분비세포와 같은 프로토뉴런을 넘어 우리 인간의 뉴런과 비슷한 뉴런으로 이루어져 있다. 계통적으로 봤을 때도 자포동물은 인간을 포함한 좌우대칭동물과 가장 가까운 자매 분류군이다. 하지만 그런 자포동물 중에서도 특히 해파리와 비슷하게 생겼지만, 오히려 해파리와 인간 사이보다 유연관계가 해파리와 더 먼 사이인 빗해파리(ctenophore, 유즐동물)는 신경계란 무엇인지에 대해 근본적인 질문을 던진다(빗해파리에 대한 자세한 소개는 첫 번째 연재 참조 - https://crossroads.apctp.org/cop/bbs/000000000000/selectArticleDetail.do?nttId=4255).


빗해파리의 신경계와 뉴로펩타이드의 발견


빗해파리는 특유의 매혹적인 움직임과 빛깔을 만들어내는 섬모 빗(comb plate)으로 유영하고, 접착 세포(colloblast)로 먹이를 붙잡는 포식자다. 이들의 신경계는 표피 아래의 피하 신경망(subepithelial nerve net, SNN), 젤리층 속 중간엽의 뉴런들, 방향 감지의 중심인 아보랄 기관(aboral organ), 촉수 신경 등으로 구성된다. 포식 활동과 번식을 시작하는 생애 초기의 시디피드(cydippid) 단계에서 이미 이 신경망의 3차원 구조가 정교하게 드러난다.


2021년 노르웨이 베르겐대학교의 Pawel Burkhardt 연구팀은 에 빗해파리의 신경계에서 작용하는 뉴로펩타이드(신경계에서 작용하는 단백질보다는 짧은 50개 미만의 아미노산 사슬)를 연구한 결과를 발표한다(Sachkova et al. 2021). 뉴로펩타이드는 신경계의 기원과 관련하여 중요한 물질임을 앞선 연재에서 여러 번 다루었다. 젝켈리의 ‘화학적 뇌 가설’에 따르면 (연재 10화 - ‘신경계 탄생의 새벽: 뉴로펩타이드 기반 화학적 소통 체계의 등장’ 참고) 뉴로펩타이드가 초기 신경계 진화에서 핵심적인 역할을 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뉴로펩타이드가 단세포 조상 단계에서 외부 자극을 감지하고 세포 내 반응을 유도하는 신호 물질로 사용되었다가, 다세포 동물의 진화 과정을 통해 ‘신경성’ 세포를 포함하여 세포 간 정보 전달의 주요 매개체가 되었다고 추정했다.


실제로 신경계는 없지만 뉴런과 유사한 ‘프로토뉴런’의 특성을 지닌 세포군이 관찰되는 판형동물에서 그 흔적을 찾을 수 있다. 예컨대 단일세포 RNA 시퀀싱 분석 방법을 통해 판형동물에서 발견된 다양한 펩타이드 분비세포들은 전형적인 시냅스 구조나 축삭 돌기 같은 것은 발견되지 않지만, 유전자 발현 프로그램 전반에 걸쳐 자포동물·좌우대칭동물의 뉴런과 높은 유사성을 나타낸다(연재 8화 - ‘뉴런의 탄생(4)’ 참고).


빗해파리의 신경계는 이러한 뉴로펩타이드 기반 화학적 뇌 가설을 검증하는데 중요한 추가적인 단서를 제공할 수 있다. 현존하는 신경계를 지닌 동물 가문 중 가장 오래된 가문으로 추정되기 때문이다. 만약 빗해파리의 신경계가 초기 신경계의 특징을 보존하고 있다면, 뉴로펩타이드들이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을 가능성이 크다. 이런 이유로 Burkhardt 연구팀은 빗해파리의 유전체에서 뉴로펩타이드를 탐색했고, 그 결과 빗해파리 계통특이적 뉴로펩타이드 후보들을 다수 확인할 수 있었다. 그리고 직접 실험을 통해 이러한 뉴로펩타이드들 중 일부가 실제로 뉴런(성) 세포인 SNN·구극기관·감각세포에서만 특이적으로 발현한다는 것을 확인했으며, 이러한 펩타이드들을 합성하여 처리한 실험에서 유영 속도가 달라지는 등의 효과를 관찰하여 이들이 직접적으로 신경활성과 행동을 조절한다는 사실을 보여주었다.


그런데 뉴로펩타이드를 발현하는 뉴런 중 SNN(피하신경망) 뉴런의 특징을 분석하는 과정에서 뜻밖의 놀라운 발견이 이뤄졌다. 이 발견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근대 신경생물학이 정립되던 19세기 후반으로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빗해파리, 신경그물설을 되살리다?       


신경계란 신경세포들의 연결로 이루어진 체계이다. 뉴런이라는 이름이 붙여지기 이전, 신경세포와 이들이 이루는 네트워크를 처음으로 선명히 관찰한 사람은 카밀로 골지(Camillo Golgi)였다. 1873년 이탈리아의 젊은 의사였던 골지는 질산은을 활용한 ‘흑색 반응(la reazione nera)’으로 신경세포를 선명하게 염색하는 골지 염색법(golgi staining)을 발명해냈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신경세포를 최초로 관찰한 골지는 신경세포의 존재를 인정하지 않았다. 그는 신경계가 수많은 신경세포들이 시냅스로 연결된 구조가 아니라, 마치 온몸에 구석구석 퍼져 있는 혈관처럼 뇌와 신경계가 거대한 연속체, 즉 그물망으로 연결되어 있다는 신경그물설 혹은 망상 이론(reticular theory)를 주장했다. 즉, 개별적으로 분리된 ‘뉴런’이라는 신경세포의 실체를 믿지 않았던 것이다.


반면 골지 염색법을 계승 발전시킨 스페인의 신경해부학자 산티아고 라몬 이 카할(Santiago Ramón y Cajal)은 신경세포(뉴런)가 독립된 세포 단위로 존재하며, 신경계는 이러한 뉴런들의 연결로 구성되어 있다고 주장했다. 이른바 뉴런 독트린(neuron doctrine)이다. (골지와 카할은 1906년 신경계의 구조를 규명한 공로로 노벨생리의학상을 공동 수상했지만, 기념 강연장의 분위기는 냉랭했다. 골지가 뉴런의 존재를 인정하지 않고 그물 이론을 고수했기 때문이다.) 신경과학계에서 카할의 뉴런 독트린은 여러 정황 증거들을 통해 점점 지지세가 강해졌지만, 망상 이론과의 논쟁은 1950년대에 들어서야 완전히 종결됐다. 전자현미경을 통해 실제로 신경계에서 ‘틈’, 즉 뉴런과 뉴런 사이의 시냅스(synapse)가 확인되었기 때문이다.


<산티아고 라몬 이 카할이 골지 염색법을 계량해 관찰한 인간 소뇌의 퍼킨지 뉴런>


그런데 완전히 배격된 줄 알았던 망상 이론의 중요성이 빗해파리의 신경계 연구를 통해 다시 대두된다. 아이러니하게도 망상 이론을 완전히 쫓아냈던 전자현미경 기술이 골지가 주장했던 그물망 구조의 신경계를 빗해파리에서 드러냈기 때문이다. 뉴로펩타이드 분비 뉴런를 연구하는 과정에서 전자현미경으로 빗해파리의 신경계를 3차원으로 재구성했는데, 여기서 예상치 못한 골지의 그물신경망과 비슷한 구조가 확인된 것이다. 


연구진은 전자현미경 분석을 더 심층적으로 진행하고 2년 뒤  지에 ‘Syncytial nerve net in a ctenophore adds insights on the evolution of nervous systems’라는 제목의 논문을 발표한다(Burkhardt et al. 2023). 여기서 ‘syncytial nerve net’이라는 것은 분기되었던 신경돌기가 세포막의 연결을 통해 융합되어 형성한 신경그물망을 뜻한다. 바로 카할이 반대하고 골지가 주장했던 망상 구조라고 할 수 있으며, 제목은 이러한 망상 신경계의 발견이 신경계 진화에 대한 새로운 통찰을 제공한다는 뜻을 담고 있다. 이러한 구조는 오래전 자포동물에 속하는 해파리의 한 종 폴립에서 보고된 적이 있을 뿐, 그마저도 엄밀한 방법으로 입증된 것은 아니었다.

             

이 논문에서는 발달된 전자현미경 기술(serial block face scanning electron microscopy, SBFSEM)을 활용하여 빗해파리의 신경계를 개별 뉴런의 자세한 구조와 뉴런들의 연결로 이루어진 회로까지 매우 세밀하게 분석했다. 빗해파리의 여러 뉴런 중에서도 SNN 뉴런(피하 신경망 뉴런)은 하나의 세포와 이 세포로부터 뻗어 나온 신경돌기(neurite)가 융합되어 이루는 거대한 그물망으로 이루어져 있다. 이 신경망 뉴런의 신경돌기들은 시냅스가 아니라 세포막이 물리적으로 이어져 있다는 점에서 골지가 주장한 신경그물설에 부합하는 구조를 지니고 있다. 이 신경그물을 형성하는 신경돌기들은 축삭과 수상의 경계가 분명하지 않고, 자세히 확대하여 보면 펩타이드를 담은 소포(vesicle)를 품은 구조물이 구슬 팔찌 같은 형태(“pearls-on-a-string”)를 형성한다.



<빗해파리의 망상(그물망) 신경 구조. 다섯 개의 SNN 뉴런이 거대한 그물망 구조를 이루고 있다. SNN 뉴런끼리는 시냅스를 이루지 않고, 신경돌기가 서로 만나는 부분은 시냅스가 아니라 직접적인 세포막 연결(융합)으로 연결되어 있다. 출처 : Burkhardt et al. (2023) Science>


과연 일반적인 뉴런과는 전혀 다르게 생긴 SNN 뉴런을 뉴런이라고 불러도 될까? SNN 뉴런들은 자기들끼리는 시냅스를 형성하지 않지만, 다른 종류의 세포(ciliary groove cell)와 시냅스를 이룬다는 점이 확인되었다. 즉, 뉴런의 두 가지 기준, 시냅스의 형성과 길쭉한 신경돌기의 형성을 모두 만족시키는 진짜 뉴런인 것이다. 게다가 SNN 뉴런에서 발현이 확인된 유전자들 또한 이 그물망 세포의 ‘뉴런성’을 지지한다. SNN 뉴런에는 분비 소포 방출에 필요한 SNARE, Munc13/18, complexin, synaptotagmin과 같은 고전적 분비 기구가 발현되고 있으며, 전압개폐 칼슘·나트륨·칼륨 채널과 이온성 글루타메이트 수용체 등 뉴런으로 작용하기 위한 기본적인 기구들을 잘 갖추고 있다.


종합하자면 빗해파리의 SNN 뉴런은 일종의 카할의 뉴런 독트린과 골지의 망상 이론이 공존하는 특이한 뉴런이라고 할 수 있겠다. 이는 SNN 자체에서는 골지의 신경그물망 이론처럼 완전히 연결된 신경돌기들 내부로 전기신호가 오고가고, 또 다른 종류의 세포들과는 시냅스를 통해 카할의 뉴런 독트린을 따르는 시냅스-전 뉴런으로 기능한다. 요컨대, SNN 내부는 연속막으로 신호를 돌리고, 바깥으로는 시냅스로 명령을 내리는 하이브리드 네트워크인 셈이다. 그리고 이러한 하이브리드 네트워크가 섬모 박동·기계감각·포획 행동을 정밀하게 조율하고 있는 것이다.


빗해파리의 이러한 독특한 신경계는 신경계의 기원과 진화에 관한 많은 상상력을 불러 일으킨다. 해면·판형동물에서 보인 펩타이드 기반 화학 소통과 자포동물에서 확인되는 우리와 비슷한 뉴런을 기반으로 한 정교한 신경망 사이에, 빗해파리는 펩타이드 기반 신경그물망이라는 제3의 풍경을 펼쳐 보이고 있다.



참고문헌

Burkhardt, Pawel, Jeffrey Colgren, Astrid Medhus, Leonid Digel, Benjamin Naumann, Joan J. Soto-Angel, Eva-Lena Nordmann, Maria Y. Sachkova, and Maike Kittelmann. 2023. “Syncytial Nerve Net in a Ctenophore Adds Insights on the Evolution of Nervous Systems.” Science (New York, N.Y.) 380 (6642): 293–97.

Sachkova, Maria Y., Eva-Lena Nordmann, Joan J. Soto-Àngel, Yasmin Meeda, Bartłomiej Górski, Benjamin Naumann, Daniel Dondorp, Marios Chatzigeorgiou, Maike Kittelmann, and Pawel Burkhardt. 2021. “Neuropeptide Repertoire and 3D Anatomy of the Ctenophore Nervous System.” Current Biology: CB 31 (23): 5274–85.e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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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대한
성균관대학교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