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스턴 미술관에 소장된 폴 고갱의 명화 D’ où Venons Nous / Que Sommes Nous / Où Allons Nous (“우리는 어디에서 왔는가? 우리는 누구인가? 우리는 어디로 가는가?”)는 인간 존재에 대한 근원적인 질문을 던지고 있다.
이 질문에 대한 대답을 오래된 뼛조각에서 찾아내려는 사람들이 있다. 바로 고인류학자들이다. 고인류학자는 우리가 어떻게 출현하게 되었는지 알아내기 위해 인간의 조상뿐 아니라 이미 멸종하고 사라진 고인류의 뼛조각을 찾아 헤맨다. 이들이 뼛조각을 꿰맞출 때마다 인간의 기원에 대한 퍼즐도 조금씩 풀려왔다.
고인류학자들의 노력 덕분에 우리는 우리의 기원에 대한 새로운 관점을 갖게 되었다. 지구에는 현생 인류, 즉 호모 사피엔스 외에도 많은 인류가 한때 살다가 사라졌다는 것을, 호모 사피엔스는 여러 갈래로 뻗어 온 인류 진화의 나무에서 현재까지 살아남은 유일한 가지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게다가 불과 수만 년 전만 하더라도 지구 위에는 최소한 두 종 이상의 인류가 살고 있었다는 놀라운 진실을 깨닫게 됐다. 마치 아마존의 열대우림에 여러 종의 원숭이가 서식하고 있는 것처럼, 아프리카와 유라시아 대륙에서 여러 종의 인류가 살아가는 것이 일반적이었으며, 오늘날처럼 한 종의 인류(호모 사피엔스)가 존재하는 것이 오히려 예외적인 상황임을 인식하게 된 것이다.
특히 4만여 년 전쯤 멸종한 것으로 알려진 네안데르탈인은 많은 궁금증을 자아냈다. 40만여 년 전부터 유라시아 대륙 서편에 살고 있던 그들은 우리처럼 커다란 뇌를 가지고 있었고, 각종 석기를 만들고 불도 다룰 수 있었다. 가장 흥미로운 사실은 7만 년 전쯤, 현생 인류의 직계 조상 집단이 고향인 아프리카를 빠져나왔을 때, 유라시아에는 이미 네안데르탈인이 살고 있었다는 것이다. 이는 수만 년 동안 호모 사피엔스와 네안데르탈인의 활동 영역이 겹쳤음을 뜻한다. 과연 두 종의 인류는 물리적으로 접촉했을까? 접촉했다면, 두 종은 몸을 섞었을까?
이집트 덕후, 고유전체학의 시대를 열다
유물과 유적은 지나간 역사를 알려주는 귀중한 자료이다. 하지만 오늘날 우리가 조선이나 고려, 혹은 삼국시대에 대한 세밀한 역사적 지식을 지니게 된 것은 문자로 쓰인 문헌 자료가 없었다면 불가능했을 것이다. 문헌 자료에는 유물과 유적에서는 추출하기 힘든 수준의 방대한 정보가 들어있다. 사극에서 다루는 역사적 사건의 디테일은 바로 그 텍스트 정보로부터 왔다.
고인류학자들은 기본적으로 문자가 발명되기 전의 인류, 즉 선사시대의 인류를 연구하기 때문에 유물과 유적만을 가지고 연구를 진행해왔다. 예컨대 뼛조각을 통해 얼마나 오래된 사람의 뼈인지, 이전에 발견된 화석인류들과 어떤 관련을 맺고 있는지를 파악해냈다.
그런데 유물인 줄로만 알았던 뼛조각 속에 사실은 방대한 정보가 담긴 문헌 자료가 들어있다는 사실이 밝혀진다. 바로 고대 DNA(ancient DNA, 줄여서 aDNA) 말이다. ‘호랑이는 죽어서 가죽을 남기고, 사람은 죽어서 이름을 남긴다.’라는 속담이 있지만, 사실 호랑이도 사람도 모두 죽어서 DNA를 남긴다. 2022년 노벨생리의학상 수상자인 스반테 페보(Svante Pääbo) 박사는 멸종한 인류의 뼛조각에서 삭고 부스러져 가던 고대 DNA를 구출해내 인류 진화 역사를 다시 쓴 고유전체학(paleogenomics)의 창시자이다.
고유전체학을 향한 페보 박사의 학문적 여정은 ‘이집트 덕질’에서 시작됐다. 페보 박사가 피라미드와 미라로 상징되는 고대 이집트 문명에 심취해있던 열네살 때, 페보 박사의 어머니가 그를 데리고 직접 이집트로 여행을 떠난다. (한 번도 아니고 세 번씩이나 어머니는 페보 박사를 데리고 이집트 여행을 다녀왔다.) 물 오른 그의 덕질은 웁살라 대학에 진학하여 이집트학을 전공하는 데까지 이른다.
그런데 대학에서 막상 학문적으로 접한 이집트학은 페보 박사의 표현을 빌리자면 기대만큼 ‘로맨틱’하지 않았다. 실망한 페보 박사는 1년 반 뒤 직업 전망이 좋은 의학으로 전공을 바꾼다.
하지만 전공을 바꾸고 대학원에 입학한 후에도 페보 박사의 이집트 덕질은 멈추지 않았다. 아데노바이러스와 면역 체계를 연구하던 실험실에서 페보 박사는 야밤에 지도교수 몰래 비밀 프로젝트를 진행했다. 이집트학과 교수와 의기투합하여 미라의 샘플을 구하고, 당시 떠오르던 DNA 클로닝 기술을 이용하여 미라의 DNA를 클로닝하고 염기서열까지 밝혀낸다. 그 결과가 1985년 <네이처>지에 단독 저자 논문으로 발표된다. (현재 이 DNA는 미라의 DNA보다는 박물관 큐레이터 등 샘플과 접촉한 사람에게서 유래한 오염 DNA로 추정되고 있다.)
DNA는 몸을 이루는 다른 거대 분자들과 마찬가지로 사체에서 분해되고 변성되어 흙으로 돌아간다. 게다가 미생물에서 생성된 DNA로 고시료가 오염되기도 한다. 고시료를 발굴하고 보존·분석하는 과정에서 사람의 접촉이나 비말을 통해 사람의 DNA가 시료를 오염시키기도 한다. 이러한 오염 문제를 극복하고 상하고 조각난 DNA를 꿰맞추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페보 박사는 여러 어려움을 극복해내고 고대 DNA로부터 사라진 인류에 대한 이야기를 읽어내는 데 성공하여 고유전체학의 시대를 열었다.
내 안의 네안데르탈인
박사를 마치고 본격적으로 고유전체학의 세계에 뛰어든 페보 박사는 세 가지 큰 장벽을 뛰어넘는다. 첫째, 고시료를 다루는 과정에서 오는 오염을 막기 위해 무균 청정한 클린룸에서 실험을 진행했다. 둘째, 인간과 미생물의 DNA로 오염된 고시료에서 고대 DNA만을 여과하거나 집적할 수 있는 기법을 개발했다. 마지막으로, 고시료 속에 미미하게 남아있는 DNA를 증폭하기 위해 연쇄중합효소반응(PCR)이나 차세대염기서열분석법(Next-generation sequencing, 줄여서 NGS)을 기술개발 초기에 적극적으로 도입했다.
이러한 기술적 혁신에 힘입어 페보 박사의 연구팀은 미라보다 훨씬 오래된 고시료에서 고대 DNA를 읽어내는 데 성공한다. 그 하이라이트가 2010년 <사이언스>지에 발표된 네안데르탈인의 유전체 논문이다. 이 논문은 수만 년 된 네안데르탈인의 뼛조각에서 유전체 DNA를 추출해 해독하고, 이를 현생 인류의 DNA와 비교하여 많은 수의 유전 변이를 찾아냈다. 그리고 이 유전 변이들로부터 꽤나 충격적인 소식을 인류에게 전하게 된다. 바로 멸종한 네안데르탈인의 변이가 담긴 DNA가 현생 인류, 즉 우리의 DNA 속에 들어있다는 사실 말이다.
페보 박사팀의 고유전체학 연구는 가설의 영역에 존재하던 호모 사피엔스와 네안데르탈인의 ‘성접촉’에 대한 증거를 찾아냈다. 집단과 집단 사이에서 교배, 즉 개체 간 섹스가 이루어지면 유전자가 뒤섞인다. 네안데르탈인의 변이가 호모 사피엔스 집단으로 유입되었다는 것은 이종 간 교배가 이루어졌다는 명백한 증거라고 할 수 있다.
흥미롭게도 네안데르탈인의 변이는 아프리카 바깥의 현생 인류 집단에서 더 높은 빈도로 발견이 되었다. 이는 네안데르탈인의 서식 범위와 일치하는 패턴이었다. 네안데르탈인이 아프리카 바깥에서 거주하고 있었기 때문에, 호모 사피엔스가 아프리카를 벗어난 후 네안데르탈인과 교배하였다면, 네안데르탈인의 변이는 아프리카 바깥의 인구 집단에서 더 자주 발견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반면 아프리카 바깥의 여러 인구 집단 간에는 (예를 들어, 유럽인 대 아시아인) 네안데르탈인 변이의 발견 빈도가 별 차이가 없었다. 이는 호모 사피엔스가 아프리카를 나온 후 오래되지 않은 시점에 이종교배가 이루어져 네안데르탈인의 DNA가 유입되었고, 이 ‘혼종’ 집단이 전 세계 곳곳으로 이주했음을 뜻한다.
새로운 인류의 발견
네안데르탈인의 유전체가 발표된 2010년, 페보 박사의 연구팀은 호모 사피엔스 및 네안데르탈인과 동시대를 살았던 새로운 화석인류의 발견이라는 또다른 빅뉴스를 발표한다. 시베리아 남쪽의 데니소바 동굴에서 발견되어 ‘데니소바인(Denisovan)’이라고 명명된 이 종은 고인류학자들에겐 발견된 적 없던 화석인류였다.
새로운 인류의 존재는 놀랍게도 아주 작은 손가락 뼛조각을 분석하는 과정에서 밝혀졌다. 당연히 현생 인류의 조상이나 네안데르탈인의 것으로 여겨졌던 뼛조각의 DNA를 분석한 결과, 별개의 종으로 분류해야 할 만큼 유전적으로 거리가 먼 DNA 서열을 가지고 있음이 확인된 것이다. 뼛조각의 형태적 특징으로는 밝혀낼 수 없었을 뼛조각의 주인이 고유전체학 연구를 통해 드러난 순간이었다.
이어서 데니소바인과 현생 인류의 DNA를 비교한 연구 결과가 발표됐다. 아니나 다를까, 멜라네시아에서 멸종한 데니소바인의 DNA를 무려 전체 유전체의 6%나 지니고 있는 사람이 발견됐다. 이 사람은 네안데르탈인의 DNA도 지니고 있었다. 즉, 호모 사피엔스가 아프리카를 빠져나와 전 세계로 퍼져나가면서 먼저 네안데르탈인과 교배했고, 그 이후에 동진하면서 데니소바인과도 교배했다는 사실을 현생 인류의 DNA가 입증하고 있는 것이다.
페보 박사와 고유전학 덕분에 우리는 이제 알게 되었다. 멸종한 네안데르탈인과 데니소바인이 우리의 조상들과 몸을 섞었고, 사라진 줄만 알았던 그들이 여전히 우리의 DNA 속에서 동거하고 있다는 사실을.
고유전체학의 쓸모
페보 박사의 연구는 인간의 기원에 관한 흥미로운 옛날이야기를 들려주는 데에서 그치지 않는다. 그랬다면 노벨 ‘생리의학상’을 수상하지 못했을 테다. 고대 DNA의 연구는 현재를 살아가는 인간의 건강 및 환경 적응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네안데르탈인과 데니소바인은 호모 사피엔스보다 먼저 유라시아 대륙에 정착했고, 서식 환경에 적합한 적응 변이들이 집단 내에서 선택됐을 것이다. 호모 사피엔스 집단에서 네안데르탈인과 데니소바인과의 이종 교배를 통해 이러한 적응 변이를 획득하는 ‘적응성 유전자 이입(adaptive introgression)’이 일어났을 수 있다.
페보 박사 연구팀을 통해 네안데르탈인과 데니소바인의 유전체 DNA 정보가 밝혀진 이후, 실제로 이러한 사례들이 보고되었다. 예컨대 티베트인들은 저산소증과 관련된 EPAS1 유전자에 대해 고산지대 적응에 유리한 대립유전자를 지니고 있다고 알려져 있었는데, 이 대립유전자가 데니소바인으로부터 물려받은 대립유전자임이 밝혀졌다. 그뿐만 아니라 현생 인류의 유전체에서 면역기능을 수행하는 유전자들에서 고인류로부터의 적응성 유전자 이입 패턴이 빈번하게 관찰되었다. 페보 박사 연구팀은 최근 코로나19 감염증과 연관된 네안데르탈인 유래 변이를 보고하기도 했다.
그렇다면 고인류로부터 유입된 변이들은 항상 이롭기만 할까? 사실 이로운 변이들과 함께 질병과 연관이 된 해로운 변이들도 함께 흘러 들어왔을 수 있다. 실제로 현생 인류 집단에서 자가면역 질환, 당뇨병, 크론병, 심지어 흡연과도 연관된 네안데르탈인 변이들이 발견되었다. 이는 우리의 DNA 속에 남아 있는 멸종된 고인류의 유전 변이들이 우리를 살게도 하지만 아프게도 한다는 뜻이다.
끝으로 페보 박사는 고유전체학을 통해 ‘인간의 조건’을 분자 수준에서 탐구하고 있다. 전제는 단순하다. 네안데르탈인과 데니소바인을 비롯한 고인류에는 없는, 오직 호모 사피엔스에게서만 발견되는 유전 변이, 그중에서도 모든 사람이 공유하는 유전 변이를 발굴하고 있다. 모든 인간이 지니고 있는, 하지만 어떤 멸종 인류도 지니지 않은 유전 변이들이 오직 호모 사피엔스만이 고도의 문명을 이룩한 비결을 품고 있을까? 스반테 페보 박사와 고유전체학이 계속해서 들려줄 흥미진진한 이야기들이 기다려진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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