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5년 10월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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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권 2 호(2005 년 11 월)
향기
노성래 -
   
[보이기/감추기]
1.

나는 잠에서 깨어났다. 며칠인지 모르지만 참으로 오랫동안 잠들어 있었다. 그러나 잠에서 깬 것은 분명한데 눈을 뜰 수 없었다. 팔과 다리를 움직여 보려 했지만 소용없었다. 아무런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아픈 곳은 없었다. 가위에 눌렸다고 생각했지만 편안하고 쾌적했다. 스르르 잠들고 꿈을 꾸다 깨어나기를 반복해도 상태는 바뀌지 않았다. 내 몸에 의심이 생긴 나는 눈의 감각에 정신을 집중했지만 아무것도 느낄 수 없었다. 내가 뜨려고 하는 눈은, 그곳에 있을 것이라는 당연한 믿음이 만들어낸 감각의 착각이었다. 눈이 없기 때문에 떠지지 않는 것이고, 귀가 없기 때문에 들리지 않는 것이고, 팔과 다리가 없기 때문에 움직일 수 없었던 것이다. 내 몸은 사라졌다. 나는 죽은 것이다.

생각 이외에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기 때문에 무척이나 지루하고 따분했다. 생각을 하면 의식의 흐름은 뒤죽박죽이 되어버린다. 어떤 생각은 다람쥐 쳇바퀴 돌 듯 짧게 반복될 뿐이다. 그러다 잠이 들고 꿈을 꾼다. 꿈에선 보고, 듣고, 말할 수 있다. 주로 먹는 꿈을 꾸는데 조금 전에는 테이블 가득 차려진 해물 요리를 탐식하고 있었다. 죽음이란 살아 있을 때보다 더욱 많은 꿈을 꾸는 것이다. 그러나 대부분의 꿈은 잠시 다른 궁리만 하여도 잊혀진다. 죽음이 이런 것이라면 정말로 재미없다. 의식이 맑을 땐 기억을 거슬러 올라간다. 꿈과 달리 기억은 잊혀지지 않기 때문이다.

기억은 끔찍했던 사고에서 시작된다. 비릿한 피 냄새와 살이 타는 역겨운 냄새, 오렌지색 제복을 입은 소방관들에게 둘러싸여 들것에 실리던 기억에서 어린 시절로 갔고, 지겨웠던 군 생활을 기억했고, 만나고 헤어졌던 여자들도 떠올려보았다. 최근까지 만나던 연희는 어떻게 되었을까? 진지함이 결여된 채 서로의 몸을 탐하던 관계였지만 작별 인사를 못한 것이 마음에 걸린다. 그리고 잊고 있던 죄들을 기억해냈다. 친구를 불러내어 내가 우울하다는 이유로 마음을 상하게 한 적이 있었다. 생각해보니 나는 사람들에게 상처가 되는 말을 많이 하며 살았다. 성적인 욕구를 해결하기 위해 만났던 여자들도 있었다. 길거리에서 구걸하는 이들에게 연민을 느꼈지만 그들을 도운 적은 없었다. 거짓말도 많이 하며 살았으니 나는 참으로 죄가 많은 사람이다. 죽음은 삶을 심판 받기 전에 스스로의 죄를 기억해내고 반성하는 과정을 거치는 모양이다. 그리고 나는 음식에 대한 기억 속으로 빠진다. 죽음과 식탐이라니 전혀 어울리지 않는다.

처음에는 서른둘이라는 젊은 나이에 죽은 것이 억울했다. 그러나 곰곰이 생각해보면 안타까울 것이 없었다. 내가 죽지 않았을 미래를 생각해보았다. 3년 안에 대출을 끼고 아파트를 장만했을 것이다. 혼자 사는 게 지쳤을 때 무난한 여자를 만나 결혼을 했을 것이다. 아이를 낳아 키우다 보면 20년 정도는 눈 깜짝할 사이에 지나갈 것이고 그 사이 집을 몇 번 옮기고 가보고 싶던 곳으로 여행도 다녔을 것이다. 노인이 될 때까지 일이 잘 풀렸다면 한적한 시골의 전원주택에서 앞마당에 개를 키우며 텃밭을 일구거나 낚시를 다니며 살았을 것이다. 나는 이렇게 죽어서 내 삶의 미래를 모두 지켜보았다. 나는 더 이상 죽음이 억울하지 않았다. 내가 이루지 못한 일들은 누군가 대신 이루어줄 것이다. 삶에 대한 미련보다는 정리하지 못한 일 몇 가지가 마음에 걸린다. 책상 서랍과 장롱 속에 숨겨놓은 비밀스러운 물건들, 사람들에게 약속했던 일들, 얼마 되지 않지만 빌려놓고 갚지 못한 돈들, 나는 미래를 위해 정신없이 살아가는 것 보다 자신의 주변을 깔끔하게 정리하는 것이 더욱 중요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아무것도 없는 상태에 익숙해지자 나는 잠들어 있는 시간과 깨어 있는 시간을 조절하는 요령과 꿈을 기억하는 방법을 터득했다. 그러나 어떨 때는 내 의지와 상관없이 몽롱한 상태가 되었다가 잠들어버린다. 나는 깨어 있는, 몽롱한 그리고 꿈을 꾸는 세 가지 상태를 주기적으로 겪는다. 과거의 기억보다 잠들어 있을 때 꾸었던 꿈에 대해 생각하는 시간이 많아졌다. 날아갈 듯 상쾌하고 기분 좋은 꿈을 꾸었다. 낡고 지저분한 역의 플랫폼에서 출발한 기차는 다도해처럼 수많은 섬들이 펼쳐진, 하늘빛 바다 위의 철로를 완만한 커브를 그리며 달리고 있었다. 창 밖으로 지나가는 신비로운 섬들과 깎아지른 절벽, 플라스틱처럼 하얀 빛을 반사하는 모래가 가득 찬 해변을 바라보는 것만으로 가슴이 벅차게 뛰었다. 꿈에서 깨어난 나는 생전에 여행했던 장소들 중에서 비슷한 곳을 떠올려보았지만 그렇게 아름다운 바다는 없었다. 어떤 꿈은 순수한 상상력으로 이루어지는 것 같다. 꿈속에서 살 수만 있다면 나는 행복해질 수 있을 것이다.

꿈에서 깬 내가 깜짝 놀란 이유는 오래전에 사라져버린 육체가 느껴졌기 때문이다. 내가 느낀 것은 따뜻한 온기와 무게로 이루어진 존재감이었다. 나는 오랜 시간 심심했던 내 영혼이 무료함을 달래기 위해 가상의 감각을 만들어낸 것이라 추측했다. 그러나 꿈에서 깨어날 때마다 감각은 더욱 뚜렷해졌고 의심은 확신으로 변해갔다. 존재감은 아무것도 없던 나의 시공간에 끼어들어 자유로운 사색을 방해했다. 나는 쾌적함과 편안함에 끼어든 불편함에 대해 궁리해보기로 했다. 나는 누워 있다. 옆으로 비스듬히 누워 있는 것이 영 어색하다. 궁리는 계속되었고 꿈에서 깨어날 때마다 새로운 감각이 더해졌다. 희미한 심장 박동이 느껴졌고 일정한 리듬으로 호흡이 더해졌다. 곰곰이 궁리한 나는 ‘환생’이라고 결론지었다. 나는 어미의 자궁 안에서 온전한 생명으로 자라고 있는 중이리라. 나는 무엇으로 자라고 있을까? 또다시 인간으로 태어나는 것일까? 아니면 짐승으로 자라고 있을까? 우리 안에 갇혀 사는 가축이 아니길 빌었다. 그리고 나는 내 의식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했다. 전생을 기억하는 사람이 없으므로 앞으로 나는 기억들을 잃어버릴 것이다.

2.

사후 세계와 환생에 대한 나의 추측은 모두 빗나갔다. 믿기 어려웠지만 나는 자궁이 아닌 병원의 침대에 비스듬히 누워 있었다. 물론 이런 ‘알 수 없는’ 상태에서 깨어나 침대에 누워 있는 내 모습을 확인한 것은 아니지만 단절되어 있던 감각들이 조금씩 돌아오면서 더욱 구체적으로 나를 ‘느낄 수’ 있게 되었다. 나는 그동안 몸을 움직이지도, 느끼지도 못하는 상태에서 잠들고 꿈꾸고 깨어나기를 반복했던 것이다. 내 입에는 튜브가 물려져 있었다. 튜브는 강제로 내 호흡을 돕고, 굶어 죽지 않도록 위장에 죽 같은 음식물을 밀어 넣는 용도일 것이다.

눈을 뜰 수 없었지만 낮과 밤은 구별할 수 있었다. 낮이 반쯤 지나면 사람들은 나를 반대 방향으로 눕힌다. 다른 모든 감각은 애매모호했지만 후각은 완벽히 회복되었다. 정신을 집중하면 들이키는 공기에 섞인 냄새가 콧구멍 깊숙한 곳을 지나 대뇌에 스며드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내가 누워 있는 방에 하루에 열댓 명 정도의 사람들이 왕래했지만 나 이외의 다른 환자는 없다는 사실을 냄새로 알아낼 수 있었다. 그리고 예의 몽롱한 상태 이전에 톡 쏘는 약물 냄새도 느낄 수 있었다.

달콤한 꿈에서 깨었다. 나는 고개를 움직여보았고 차례로 팔과 다리를 움직여보았다. 온 몸이 결박되어 있는지 꼼짝할 수가 없었다. 낮에는 사람들이 서너 차례 방문해 내 몸을 이리저리 만져보거나 바늘로 찔러댔다. 나는 온 몸의 감각에 집중해보았다. 내가 느낄 수 있는 감각의 영역들이 확대되면서 내 피부를 찌르고 있는 수많은 바늘이 느껴졌다. 바늘은 몇 초 간격으로 나에게 따끔한 전기 신호를 보내고 있었다. 후각에 이어 청력이 회복되었고 주변 사람들의 목소리를 절반쯤 알아들을 수 있게 되었다. 그날은 정신이 맑았고 나는 남자와 여자가 나누는 대화에 귀를 기울이고 있었다. 무슨 동물 실험에 대해 대화를 나누고 있었는데, 두 사람의 얘기를 듣던 나는 몸을 움찔했다. 틀어 막힌 입 사이로 그르렁거리는 신음이 터져 나왔다. 깜짝 놀란 남자가 다가와 내 몸의 여기저기를 손으로 만져보았고 귀에 똑딱이를 가져다 대었다. 나는 꼼짝하지 않은 채 누워 있었지만, 그들은 내가 얘기를 엿듣던 것을 눈치 챈 것 같았다. 그 이후로 내가 누워 있는 방에서 대화를 나누는 사람은 없었다. 나는 이 병원에서 진행되고 있는 음모에 대하여 궁리해보았다. 며칠 후, 드디어 그들 중 하나가 내게 말을 걸었다.

"강일수 씨 내 말 들려? 들리면 고개를 살짝 움직여볼래요?"

50대 초반의 인자하면서도 익숙한 목소리가 내 이름을 불렀다. 나는 그 목소리가 이 병원의 최고 책임자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두려움에 사로잡힌 나는 있는 힘을 다해 고개를 살짝 움직였다.

"내가 하는 말을 정확히 알아들을 수 있으면 다시 한번 고개를 움직여 볼래요?"

나는 다시 한번 고개를 끄덕였고 톡 쏘는 냄새가 나더니 예의 몽롱한 상태가 되어버렸다.

"약간 어지럽지? 안정제를 투여해서 그래. 몸에 무리가 안 가도록 양을 조절하고 있으니까 걱정하지 말고. 지금은 무엇보다 정신적인 안정이 최우선이니까. 강일수 씨, 교통사고 난 것은 기억해요?"

물론 기억한다. 그 사고는 내 모든 기억의 출발점이었으니까. 나는 끔찍한 사고 이후 내 몸이 어떻게 되었는지 알게 된다는 두려움과 기대감에 빠져들었다. 팔과 다리는 제대로 붙어 있는 것 같았지만 화상 때문에 끔찍한 몰골이 되어 있으리라. 인자한 목소리는 자신을 홍박사라고 소개했다. 정신이 몽롱해서 정확히 기억나진 않았지만 어디선가 들어본 적이 있는 이름이었다.

"강일수 씨, 이제부터 내가 하는 얘기 잘 들어요. 일수 씨는 수술이 불가능할 정도로 내상을 입었어. 화상도 심해서 얼굴에 제대로 붙어 있는 게 없을 정도였지. 그런데도 끝까지 잘 버텨주더라고."

나는 불이 운전석에 옮겨 붙었을 때 정신을 잃었고, 소방관들이 들것으로 실어 나를 때 잠시 깨어났었다. 그 이후는 기억이 끊겨 있고 아무것도 없는 암흑 속에서 깨어났다.

"여기는 한국 대학의 생명공학연구소인데 들어본 적 있지? 병원에서 일수 씨를 포기했기 때문에 우리가 연구소로 데려왔어. 어머니가 수술에 동의했고 수술은 성공했어. 그런데. 그게 말이야……."

홍박사는 말하기 곤란하다는 듯 잠시 뜸을 들였다. 약에 취한 나는 홍박사의 말이 끝나길 기다렸다.

"일수 씨를 살리기 위해 장기 이식용 무균 돼지에 일수 씨의 두뇌를 이식했어. 그것 말고는 방법이 없었어."

아! 그래서 내가 죽지 않고 살아남았구나. 나는 돼지가 되었구나. 그래서, 똑바로 누워 있지 못한 것이구나. 그래서 음식에 대한 꿈들을 많이 꾸었던 것이구나. 지금까지 느꼈던 육체의 이질감에 대한 궁금증이 깨끗이 풀렸다.

"강일수 씨, 상심이 크겠지만 지금은 살아남는 게 죽는 것보다 나아. 나중에 뇌사자의 몸을 구하면 다시 사람이 될 수 있고. 그러니 마음 편하게 먹어. 쓸데없는 걱정으로 몸 상하지 말라고."

홍박사가 처방한 진정제에는 최면 효과가 있음이 분명했다. 나는 기분 좋게 몽롱한 상태에서 홍박사의 말에 설득되고 있었다. 그가 꺼져가는 내 영혼을 돼지가 아닌 기계에 이식했다 해도 나는 믿었을 것이다. 그날 이후, 홍박사는 나와 대화를 자주 나누었다. 나는 여섯 달째 연구소 병실의 침대에 누워 있었다.

"강일수군. 몸을 묶고 있는 결박은 얼굴 붕대를 풀고 난 이후에 풀어주도록 하지. 자네가 현실을 받아들이고 살려는 의지가 확실하기 전까지는 무엇보다 안정이 중요해. 동경에 계신 어머니께는 보름 후 얼굴의 붕대를 풀 때 오시라고 했어."

약 기운에서 깨어난 나는 심각한 우울증에 빠졌다. 그러나 잠시라도 우울해지면 바로 진정제가 투여되었고 몽롱함에 빠져들었다. 홍박사가 이 세상에서 제일 무서워하는 것이 나의 자살이었기 때문이다. 이러다 약물중독에 걸리는 것이 아닐까?

(C) 조경아

얼굴의 붕대를 푸는 날이었다. 나의 자해를 두려워하는 홍박사의 배려로 인해 입에는 재갈이 물렸고 어느 때보다 몽롱하게 약에 취해 있었다. 다시 말하지만 약에 취하는 것은 기분 좋은 경험이다. 방에서는 종류가 다른 스물세 가지의 화장품과 향수 냄새와 여덟 가지의 약품 냄새가 났다. 방 안에는 서로 다른 냄새를 풍기는 아홉 명의 사람들, 홍박사와 그를 도와주는 의사들, 장비를 살피거나 캠코더로 역사적인 순간을 기록하고 있는 조교들, 동경의 상점을 잠시 닫아두고 세상과 다시 대면하는 아들을 보기 위해 먼 길을 오신 어머니가 있었다. 침대가 우웅거리며 비스듬히 누운 내 몸을 일으켜 세웠고 차가운 가위가 얼굴의 붕대를 스스륵 잘라내며 콧수염을 간질이자 나는 귀를 쫑긋거렸다. 눈을 뜨자 밝은 빛과 함께 주변이 흐릿하게 보였다. 나는 눈을 몇 번 깜빡였다. 제일 먼저 시야에 들어온 것은 흰색 털이 듬성듬성 자라고 있는 분홍빛 코였다. 목 근육이 덜 풀어져 뻣뻣한 나는 눈알을 굴려 주위를 돌아보았다. 환희에 찬 사람들의 모습이 보였다. 흰색 와이셔츠에 노란 줄무늬 넥타이, 머리가 반쯤 센 홍박사는 온화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그 뒤에서 어머니는 돼지가 되어버린 아들을 딱한 표정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그리고 나는 눈을 아래로 굴려 비스듬히 일으켜진 나의 몸을 바라보았다. 분홍빛 돼지 한 마리가 침대에 누워 있었다. 약물에 취해 있던 나는 웃음이 나오는 것을 참을 수 없었다.

"꾸에에에에에엑."

주사기를 들고 있던 의사가 돼지의 두툼한 허벅지에 신경안정제를 놓았다. 여기 모인 사람들이 가장 두려워하는 것은 정신적 충격을 이기지 못한 내가 혀를 깨물고 죽는 것이었다. 약물에 취해 한참을 졸다가 일어나서 어머니가 떠 먹여주는 밥을 먹었고, 누군가 기저귀를 갈면서 내 몸을 닦아줄 땐 수치심 때문에 일부러 잠든 척했다. 며칠 후 어머니는 동경의 상점을 비운 것이 걱정된다며 떠나버렸다. 홍박사는 나에게 거울을 보여 주었다. 거울 속에선 삐쩍 마른 돼지 한 마리가 고개를 기웃거리고 있었다. 홍박사가 자상한 목소리로 말했다.

"머리에 십자 형태의 수술 자국이 보이지? 성형 수술을 하고 털을 심으면 흉터가 감쪽같이 사라질 거야."

돼지 얼굴에 성형 수술이라니, 나는 또다시 터져 나오는 웃음을 참을 수 없었다. 그러나 곧 심각한 우울증에 빠졌고 차라리 암흑 속에서 이런저런 상념에 빠져 있을 때가 나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에겐 홍박사보다 정신과 의사가 필요했다.

붕대를 풀고 3주 정도 지났을 때 나는 정말로 성형 수술을 받았다. 수술이 끝난 후 조교들은 지저분한 나를 씻기고, 짧은 털을 깨끗하게 손질해 주고 옷을 입혀주었다. 그리고 홍박사는 나에게 개 목걸이처럼 생긴 것과 조끼를 보여주었다.

"자네 구강 구조상 말을 할 수 없잖아. 자네가 예전에 말하던 것처럼 입을 웅얼거리면 목걸이가 성대와 턱 근육의 움직임을 해석하고, 조끼에 달린 스피커로 목소리가 나오게 해줄 거야. 처음엔 힘들어도 자꾸 연습하면 익숙해질 테니 열심히 하라고. 그리고 부탁이 있는데 얼마 있으면 기자들이 찾아올 거야. 이것저것 물어보면 대답 잘 해주라고."

목걸이를 통해 겨우 대화가 가능해졌을 때 기자들이 찾아왔다. 홍박사와 인터뷰가 끝나고 그의 연구 결과를 확인하기 위해 찾아온 것이다. 나는 기자들을 통해 새로운 사실들을 알게 되었다. 내 두뇌를 돼지에 이식한 이후 홍박사는 열 차례가 넘게 해외 학계에서 발표회를 가졌고, 홍박사와 나는 세계적인 유명인사가 되었다. 얼마 전부터는 정부 기관에서 홍박사와 나를 지키기 위해 경호원을 파견했다고 했다.

한바탕의 난리 법석이 끝나고 잠잠해질 즈음 나는 돼지의 몸을 이끌고 병상에서 일어나 네 발로 걸어 다닐 수 있는 정도가 되었고 비록 연구소의 정원으로 제한되었지만 산책도 다닐 수 있게 되었다. 그러나 부쩍 더위를 타게 된 나는 8월의 태양을 피해 아침저녁으로 잠깐 정원을 산책할 뿐, 하루의 대부분을 연구소 건물 내에서 보냈다. 연구소 사람들은 복도를 거니는 내 모습에 애써 무심한 척 행동했지만 그들은 흥분과 관심의 냄새를 발산하고 있었다. 서른두 해를 살아오면서 이렇게 많은 사람들의 관심을 가져본 적이 있었나? 낙관적으로 변해버린 나는 돼지의 몸 안에서 살아가는 것도 나쁘지 않다고 생각했다.

3.

멀게만 느껴지던 가을이 왔다. 향긋한 포도 향기가 연구실 복도를 따라 흐르고 있었다. 조금 열린 창문 사이로 들어오는 시원한 바람을 음미하며 창 밖을 바라보던 나는, 연구실 밖으로 나서자고 마음먹었다. 인자한 표정의 홍박사와 뻣뻣한 티를 없애지 못하는 두 명의 경호원이 산책길의 동행이었다. 연구실 근처는 반듯하게 정돈된 주택가였고 옷 가게와 술집, 노래방 등이 밀집되어 있는 4층짜리 상가가 제일 높은 건물이었다. 동네 주민의 절반 이상이 바이오 연구 단지의 과학자와 학생들과 그들의 가족이었는데 나를 알아본 사람들은 말로만 듣던 돼지 인간을 직접 보았다는 상기된 표정을 지으며 디지털 카메라를 꺼내 들었다. 모르는 사람들은 괴상한 전자 부품이 달린 옷을 입은 돼지와 함께 산책을 하는 홍박사를 힐끗힐끗 쳐다보았다. 산책은 양보할 수 없는 나의 일과가 되었고 홍박사가 자리를 비운 날에는 연구소의 의사들이나 조교들에게 떼를 써서라도 연구소 문 밖으로 나섰다. 새로운 골목에서 낯선 사람들과 마주치고, 작은 가게에서 물건을 사는 일에 익숙해질 즈음 나는 홍박사에게 연구실을 떠나 내 삶을 살아가고 싶다고 말했다. 연구소와 홍박사에게 신세를 진 것은 사실이지만 나는 실험실의 돼지가 아니었고 나에게 자유가 없다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홍박사는 당황한 기색을 감추지 못하며 연구소로 돌아가는 길을 재촉했다.

연구소는 독립하겠다는 내 고집을 꺾지 못했고, 유명인사가 되어버린 나를 강제로 감금할 수도 없었다. 나는 건강 상태를 체크하는 장치를 24시간 착용해야 하며 일주일에 하루는 연구소를 방문한다는 조건으로 자유를 얻었다. 정부 기관에서는 내 안전을 핑계로 경호원을 붙여주었는데 운전기사가 필요하던 참이었기에 마음 편하게 받아들이기로 했다. 홍박사는 내가 세상에서 살아가기 위해 필요한 것들을 준비해주었다. 말을 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목걸이와 컴퓨터, 비상 연락 장치, GPS 등이 장착된 조끼는 기본이었고 내 조그만 아파트는 돼지가 사용할 수 있도록 특별히 제작된 가전제품과 가구들로 채워졌다. 오전에는 연구소에서 고용한 가정부가 방문해 집안일을 도와주었다.

내가 연구소를 나와 집으로 돌아왔다는 뉴스는 또다시 이슈가 되었다. 나는 신문이나 텔레비전의 뉴스에서 돼지의 모습을 보는 데 익숙해졌고 방송국에서 찾아온 사람들을 즐겁게 맞이하며 인터뷰에 응했다. 낙천적으로 변해버린 성격 탓도 있지만, 세상으로부터 나를 보호하기 위해서는 나를 세상에 알려야겠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내가 사람이라는 사실을 안다면 다리를 물릴까 두려워 소란을 피우거나 내 등에 자신의 아이를 태우고 사진을 찍으려는 몰상식한 사람들은 사라질 것이다. 길거리의 모든 사람들이 나를 알고 있을 때 나는 그들로부터 안전해지고 존중 받을 수 있었다.

방송에 자주 나오다 보니 나는 자연스럽게 방송계로 진출할 수 있었다. 방송국을 직접 방문해 촬영한 첫 방송은 진지한 사회자가 진행하는 토크쇼였다. 나는 최대한 밝고 쾌활하게 보이려 노력했고 얼마 후 코미디 프로그램에서 돼지 인간으로 출연해 달라는 제의를 받았다. 나는 흔쾌히 승낙했다. 생활에 필요한 모든 것들은 연구소에서 지원해주었지만 언제까지라도 지속된다는 보장은 없었고 스스로 경제 활동을 해야겠다고 마음먹었기 때문이다. 내가 출연한 돼지 인간 코너가 성공을 거두면서 나는 온갖 쇼 프로그램에 불려 다녔다. 그러나 이내 나는 불쾌함과 우울증에 빠져들었다. 처음엔 조심스럽던 방송이 시간이 지나면서 선정적이고 음란하게 변질되고 있었기 때문이다. 연예인들이 출연해 저질 농담으로 한 시간을 때우는 생방송 쇼 프로그램에서 얼굴이 일반 사람들의 반쪽만한 인형 같은 여가수가 나에게 질문했다.

"저기요. 돼지씨도 돼지고기를 먹나요? 김치 찌게 같은 거에 돼지고기가 들어가 있을 수도 있잖아요."

나는 돼지고기에 아무런 혐오감이 없었지만 의식적으로 돼지고기를 피했다. 나는 돼지의 몸을 잠시 빌린 사람이고 적당한 육체가 생기면 언제든 인간으로 돌아갈 수 있으며 돼지고기를 일부러 안 먹을 이유가 없다고 대답했다. 얼굴이 반쪽만한 여가수는 잠시 역겨운 표정을 지어 보이곤 멍청한 말투로 또다시 질문했다.

"그러면 돼지씨는 여자 돼지에게 매력을 느끼나요?"

난 아니라고 분명히 대답했다. 어떻게 돼지를 보고 성욕을 느낀단 말인가? 나는 변태 동물 성욕자가 아니다.

"그래도 사람하고는 사랑에 빠질 수 없잖아요. 징그럽게……."

얼굴이 반쪽인 여가수는 무슨 상상을 했는지 두 손으로 얼굴을 가린 채 키득거리며 웃었다. 나는 화가 났고 이런 싸구려 토크 쇼에선 다른 출연자들의 약점과 상처를 파고들면서 시청자들을 즐겁게 해야 하는 의무가 있었다.

"정말로 궁금하면 저처럼 돼지가 되어보세요. 그런데 당신에게선 어젯밤 두 명의 남자와 침대에서 뒹군 냄새가 나거든요!"

그날 나는 방송 출연 금지 처분을 받았다. 방송이 원하는 것은 내가 아니라 사람의 말을 할 줄 아는 돼지였다. 그리고 나에겐 저급한 농담으로 사람 흉내를 내며 시청자들의 말초 신경을 자극하는 것 말고는 할 수 있는 일이 없었다. 나는 내 자신도 속이고 있었다. 가수도 배우도 아닌, 그렇다고 지성인도 아닌 내가 방송에 출연해 돈을 벌겠다고 마음먹었던 것 자체가 방송의 속성과 돼지의 몸을 이용해 한몫 잡겠다는 계산이었다. 나는 더 이상 나에게 상처를 주지 않는, 돼지가 아닌 사람으로 인정받을 수 있는 일을 찾아야 했다. 그러나 내가 무엇을 할 수 있단 말인가?

나보다 나이가 세 살 적은 한지혜는 다큐멘터리를 다루는 케이블 TV의 취재 기자로 사교성이 좋은 아가씨였다. 나는 방송 출연은 물론 어떤 인터뷰에도 응하지 않겠다고 결심했지만 한지혜의 방문은 거절하지 않았다. 쇼 프로그램에서 내가 당한 수모를 잘 알고 있는 한지혜는 무리한 촬영이나 인터뷰를 강요하지 않았다. 나는 홍박사가 주인공인 다큐멘터리에 몇 번 출연했는데 홍박사의 도전과 성공을 그린 프로그램으로 나라는 존재에 대해 매우 객관적으로 보여준 프로그램이었다. 그러나 상처가 없는 것은 아니었다. 나는 다큐멘터리를 보는 내내 발가벗겨진 내 모습을 보는 것 같은 수치심에 사로잡혀 있었다.

바람이 불어오자 나는 기분이 좋아졌다. 약속도 없었는데 무슨 일일까? 오전에 집안일을 돌봐주는 가정부가 나간 지 얼마 되지 않은 시간에 한지혜 기자가 내가 좋아하는 음식들을 가지고 나의 아파트로 다가오고 있었다. 경호원은 아침 식사 이후 자신의 방에 들어가 컴퓨터 게임에 열중하고 있었다. 나는 잠긴 문을 열고 복도에서 한지혜를 맞이했다.

“제가 오는 걸 알았어요?”

“지혜씨가 건널목을 건널 때부터 알고 있었지. 커튼 사이로 들어오는 시원한 바람에서 지혜씨의 향기를 느낄 수 있었거든."

“제가 사용한 화장품이나 향수는 다른 사람들도 사용하는 평범한 것인데…….”

“그것들을 사용하는 조합이 틀리지. 그리고 사람들은 저마다 다른 향기를 가지고 있어.”

“……!"

4.

한지혜 기자를 따라 간 곳은 서울 변두리에 위치한 조그만 방향제 회사였다. 전원 콘센트에 꽃아 사용하는 방향제, 스프레이 방향제와 냄새 제거제 같은, 나에게도 익숙한 제품들을 내놓는 회사였는데 생각했던 것보다 젊은 30대 중반의 사장과 비슷한 또래의 이사 한 명이 내 이력서를 훑어보고 있었다.

"예전에는 IT 업체에서 근무하셨군요. 향기에 대한 지식이나 경험은 전혀 없고요. 화학을 공부한 적도 없고, 조향사는 힘든 직업입니다. 향수 회사에서 다루는 향기의 원료만 2,000여 종이 넘는데 그 재료들을 조합해 새로운 향기를 만들어내고 새로운 향기의 원료를 찾아내는 것이 조향사의 일입니다. 각 원료들을 구분해내는 것은 물론 화학적 특성들도 이해하고 있어야 합니다. 한지혜 기자가 찾아왔을 때 사실 당황스러웠어요. 조향사는 뛰어난 후각을 가지고 있어야 하지만 후각이 뛰어나다고 해서 조향사가 될 수 있는 것은 아니거든요. 아마도 여러 곳에서 거절당했을 겁니다. 어쨌든 저희는 강일수씨를 채용하기로 결정했습니다. 저희 회사는 방향제를 만드는 회사이지만 라는 신규 브랜드로 고급 향수 시장에 뛰어들기 위해 오랫동안 준비해왔습니다. 강일수씨는 의 연구실에서 조향사 보조로 일을 시작할 것입니다. 언제부터 출근 가능해요?"

박사장 그리고 한이사와의 첫 만남은 일방적인 인터뷰로 끝났지만 질문에 대답할 거리가 없던 나에겐 잘된 일이었다. 한이사가 맡고 있는 연구실에는 스무 명 남짓 되는 연구원들이 있었고 두 명의 전문 조향사가 있었다. 다른 연구원들은 화학과 관련되어 보이는 복잡한 장비를 다루거나 하루 종일 컴퓨터 앞에서 데이터를 분석하는 일을 했다.

나의 일과는 사람들이 일하는 모습을 지켜보면서 향수에 대한 자료 파일을 읽어보는 것이 전부였다. 피에르는 하얗게 센 머리가 반쯤 벗겨진 67세의 깡마른 노인이다. 파리의 유명한 향수 회사에 근무했었고 후각이 무뎌져 은퇴했는데 박사장과 만나 사업팀으로 오게 되었다. 그는 경험에 의한 전통적인 향기 제조법을 선호했고 조향 기술은 오로지 개인적인 능력과 훈련에 달려 있다는 원론적인 믿음을 가지고 있었다. 반면, 나와 비슷한 또래인 최동훈은 화학자에서 향기의 세계로 빠져든 친구이다. 그는 원료들의 화학적 성분 분석에 집착하는 경향이 있었다. 그리고 보조 조향사인 나는 라는 브랜드를 세상에 알리기 위해 실험실의 자리를 차지하는 천덕꾸러기였다. 나에게 가장 중요한 업무는 이따금 찾아오는 방송국과 신문, 잡지사 등의 기자들을 위해 포즈를 잡아주는 일이었다. 그래도 나는 내가 하는 일이 좋았다. 나는 연구실에 있는 2,000여 종의 원료들이 발산하는 향기를 일일이 기억에 새기고 있었다. 실험실에는 향기 이외에 복잡한 장비들도 많았다. 성분 분석기, 기체 크로마토그래피, 미생물 분석기, 그러나 물건 하나 집어 들기 힘든 돼지의 앞발로 그런 장비들의 사용 방법을 배우는 것은 무리였고 향수의 원료가 담긴 병의 뚜껑이 열릴 때마다 나를 사로잡는 향기에 집중하느라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누가 돼지를 자신의 배설물과 뒤범벅되어 지내는 더러운 동물이라 했던가. 돼지는 향기 속에 파묻혀 살아가는 동물이다. 처음에는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다양한 향기 속에서 혼란 상태에 빠져 있었지만 시간이 흐르자 수많은 향기들이 어떻게 이루어져 있는지 구분할 수 있게 되었고, 석 달 후 나는 연구실의 모든 향기를 기억하게 되었다.

내가 라임 향을 조금만 넣어보자고 했을 때, 이미 스무 가지 이상의 원료가 배합된 시험관을 흔들고 있던 피에르는 인자하면서도 완고한 눈빛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그동안 말썽을 부린 적도, 고집을 피운 적도 없던 내가 앞발을 동동 구르며 꼬리를 동그랗게 말자 피에르는 라임 향 한 방울을 시험관에 첨가했다. 잠시 향기를 음미하던 피에르는 나에게 시험관에 들어있던 원료들에 대해 물었고 나는 어떤 원료가 사용되었는지 정확히 대답했다.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을 잠시 지어 보인 피에르가 서툰 우리말로 나에게 물었다.

"가르쳐 준 적도 없는데 어떻게 알았어?"

"저 대신 유리병의 뚜껑을 열어주었잖아요. 그때마다 저는 향기 속으로 빠져들었어요."

뚜렷한 진전이 없던 향기 연구실은 나로 인해 활기를 되찾았다. 도박판도 벌어졌다. 피에르와 최동훈이 수십 개의 원료를 마구잡이로 혼합한 시험관을 내밀면 나는 그 용액 안에 첨가된 향기의 재료들을 알아 맞췄다. 나에게 돈을 건 사람들이 항상 승리했고 이 사실은 박사장과 한이사의 귀에도 들어갔다. 나는 3개월 만에 보조 조향사에서 조향사로 진급했다.

피에르와 최동훈 그리고 나는 새로운 향기를 만드는 일에 박차를 가했다. 피에르는 풍부한 경험으로 향수의 주제를 결정했다. 파티에 어울리는 향수, 사랑을 이루어주는 향수, 아침에 어울리는 향수, 정렬적인 빨간 옷에 어울리는 향수 등 여러 가지였다. 나는 피에르가 선택한 주재료에 다른 보조 재료를 혼합에 향기를 완성했다. 최동훈은 그 향기들을 분석한 후 화학적 안정성을 갖도록 가공했다. 아쉽게도 어떤 향기들은 시간이 지나면서 변질되었기 때문에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우리의 작업은 가속도가 붙었고 나는 잠결에서조차 향기에 빠져버렸다. 온갖 향기가 잠들어 있던 내 두뇌를 일깨우고 있는 느낌이었다. 나는 어떤 향수 디자이너도 느낄 수 없는 향기를 감지했고 어떤 돼지보다 향기를 표현하는 데 자유로웠다. 나는 코가 아닌 생각에 집중해 향기의 근원을 파헤치고 정제하고, 그것들을 조합해 새로운 향기를 만들었다. 향기를 만드는 작업은 수많은 재료를 굽거나 끓이고 마늘, 생강, 파와 같은 양념을 첨가하고, 소금과 간장으로 간을 맞추고, 참기름이나 후추로 마무리를 하는 요리와도 같다. 향기에 빠져 있는 순간 나는 돼지의 몸에 갇혀 있는 현실에서 자유로울 수 있었다.

뛰어난 사업가인 박사장은 피에르와 최동훈 그리고 내가 조합한 수 십 개의 향수를 가지고 런던에서 전시회를 열기로 결정했다. 전시회의 주인공은 바로 나였다. 전시회는 웃음거리가 될 수 있었고, 코끼리가 그린 추상화 전시회처럼 돼지가 만들어낸 독특한 향기의 전시회 정도로 전락될 수 있었다. 그러나 박사장은 승부사 기질로 무장한 채 기관차처럼 돌진했다. 피에르와 최동훈도 박사장의 생각에 힘을 실어주었다.

'처음에는 돼지 인간의 향수 전시회가 매스컴을 장식할 것이다. 그러나 호기심으로 전시회를 찾은 사람들이 돌아갈 땐 향기에 매료되어 있을 것이다.'

박 사장은 전시회에 선보일 향수 개발을 위해 해외에서 수많은 원료를 구입했다. 실험실의 원료 보유량은 8,000 종 이상으로 늘어났고, 재고 부담과 전시회 준비로 인해 회사 재정이 휘청거릴 정도였다.

5.

세상에 하나밖에 존재하지 않는 향기. 의 향기 전시회는 대성공으로 막을 내렸고 나는 전시회에 거의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음에도 유명인사가 되어 있었다. 신문의 1면에는 티셔츠와 바지를 입고 있는 돼지의 얼굴 사진이 헤드라인으로 실렸으며 서울로 돌아오는 비행기에선 항공사의 배려로 짐칸의 동물 우리가 아닌 1등석 객실을 이용할 수 있었다.

과거와는 다른 이유로 인터뷰 요청이 쇄도했지만 나는 모두 거절했고 확장 이전하는 향기 연구실을 꾸미는 데 온 신경을 쏟았다. 아침저녁으로 최첨단 장비들이 들어오고 있는 향기 연구실만큼 내 주변의 많은 것들이 변했다. 싸구려 방향제를 만들던 는 세계의 주목을 받는 고급 향수 브렌드가 되었고 나는 졸지에 기술이사 겸 연구소장이 되었다. 사람들의 시선에 섞여 있던 조롱과 미래에 대한 불안감은 사라졌다.

생명공학 연구소의 홍박사로부터 특별한 연락을 받은 것은, 무더운 여름을 다시 한 번 견뎌낸 선선한 가을이었다. 나는 외부와의 접촉을 단절하고는 새로운 향기를 찾기 위해 주문한 허브들을 분류하는 일에 몰두하고 있었다. 나는 전화 통화 후 잠시 멍한 상태가 되었고 한참 머뭇거리다가 저녁 식사에 한지혜 기자를 초대하기로 마음먹었다. 기쁜 일을 가장 먼저 알리고 싶은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그녀와의 관계가 개선될 수 있다는 막연한 기대감도 있었다.

"연구소에서 나에게 맞는 뇌사자의 몸을 찾았다고 하더군. 홍박사님이 수술 일정을 잡자고 연락했어. 뇌사자가 어떤 사람인지 물어봤지만 끝까지 가르쳐주지 않았어."

전채 요리가 나오기도 전에 말을 꺼내버렸다. 한지혜 기자는 놀라움을 감추지 못하며 축하해주었다.

"인간으로 돌아가는 과정을 저희 방송국에서 다큐멘터리로 제작할 수 있을까요?"

물론 나는 한지혜 기자의 요청을 승낙했다. 지금까지 그에게 많은 도움을 받았고 그가 속한 방송국에서 제작하는 프로그램은 다른 방송국의 쇼 프로그램처럼 저속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한지혜 기자는 나에게 다큐멘터리 제작에 관한 독점권을 요구했고 그것도 승낙했다. 한지혜 기자는 기쁨에 들떠 있었지만 나는 두 사람 사이의 간격을 느꼈고 음식이 빨리 나오기만을 기다렸다.

홍박사의 치밀한 준비 덕분에 수술 일정은 빠른 속도로 진행되었고 그 사이 나는 미친 돼지처럼 새로운 향기를 조합해내는 일에 매달렸다. 잠을 줄였으며 식사 시간을 아끼기 위해 연구원들이 챙겨준 음식들을 물과 섞어 마셔버렸다. 한지혜 기자와 다큐멘터리 촬영팀이 가끔씩 질문을 던져 내 작업을 방해했지만 몇 초 안에 집중력을 회복할 수 있었다.

(C) 조경아

꽁꽁 얼어붙은 대지를 녹인 겨울비가 흙 속에 잠들어 있는 대자연의 향기들을 깨우던 날 나는 마지막 검사를 받기 위해 생명공학 연구소를 찾았다. 나는 그날 처음으로 내 두뇌가 이식될 죽은 사람을 볼 수 있었다. 짧은 머리, 건강한 근육질의 잘생긴 남자였다. 나는 이 사내가 격투기 시합에서 뇌진탕으로 쓰러진 후 깨어나지 못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강일수군. 다시 사람이 되는 기분이 어때? 사람의 몸을 되찾으면 여행도 마음대로 다니고 연애도 할 수 있을 거야."

홍박사가 물었다. 며칠 전부터 24시간 내내 나를 쫓아다녔던 촬영감독과 한지혜 기자가 동행한 자리였다. 심장이 너무 심하게 뛰어 예전에 홍박사가 자주 처방해주던 안정제가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강일수군의 몸 상태는 최고이고 수술이 실패할 가능성은 없어. 그러나 쉽지 않을 거야. 겪어봐서 알겠지만 수술 후 몇 달 동안 감각으로부터 완전히 단절될 거야. 그래서 준비한 것이 있어"

홍박사가 와이셔츠의 단추만한 전자 부품을 보여주었다.

"우린 자네의 두뇌에 이 칩을 이식할 거야. 이것을 통해 자네에게 메시지를 전달할 수 있고, 자네의 심리 상태도 파악할 수 있어. 그때보다는 준비가 많이 되어 있지. 예전처럼 일수군을 암흑 속에 혼자 내버려두지는 않을 거라고."

홍박사에게서 물씬 향기가 느껴졌다. 런던의 향기 전시회를 마치고 돌아와 우정과 감사의 뜻으로 선물한 세상에 단 하나밖에 없는 향기였다. 나는 향기를 놓치지 않기 위해 천천히 숨을 들이마셨다. 혼란스러웠던 마음이 차분히 가라앉았다.

"홍박사님 죄송하지만, 당분간은 돼지로 지내고 싶어요. 아직 찾고 싶은 향기가 너무 많거든요. 이제 세상 밖으로 나가, 세계 곳곳을 돌아다니며 향기를 찾고 싶어요."

생명공학 연구소에서 출발한 차가 서울 시내로 들어서고 있을 때, 조금 열린 검은색 창문 사이로 들어오던 차가운 바람을 음미하던 나는, 사람들이 붐비는 시내를 산책하고 싶어졌다. 나를 말리던 경호원 겸 운전기사는 뒤따라오던 방송국 차에서 촬영감독과 함께 내린 한지혜 기자와 대화를 나누고 나서야 안심을 한다. 나는 몇 발을 걸었다. 온갖 매연 냄새, 속이 안 좋은 취객이 남기고 간 역겨운 악취, 다양한 쓰레기 냄새가 인도의 바닥을 향하고 있는 내 코를 괴롭혔다. 나는 눈을 감고 무겁고 뻣뻣한 고개를 한껏 들어 코를 킁킁거렸다. 길거리 곳곳에서, 빌딩과 빌딩 사이에서 내가 조합한 향기들이 느껴졌고, 기쁨에 충만해진 나는 가슴이 터질 듯 외쳤다.

"꿰에에에에에엑."

주) 2000년경 주간지 '뉴스피플'에 필자가 실었던 짧은 꽁트를 단편 소설로 꾸며보았습니다. 언젠가 제대로 된 단편으로 써 보고 싶다는 욕심이 있던 소재였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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