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타버스로부터 시작되는 새로운 상상
신기헌 / 미디어 아티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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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 동안에도 여러 매체를 통해 ‘메타버스란 무엇인가’에 대한 논의를 반복적으로 접하게 되는 상황 가운데, 앞선 질문의 답에 조금이나마 가까워지기 위한 장치로 두 개의 SF적 시나리오를 설정해보고자 한다. 

먼저 하나는 우리가 자각하고 있는 현실 세계 안에서 기술의 도움을 통해 여태껏 경험해보지 못했던 새로운 가상 세계를 구현하고 그 속에서 살아가게 될 것이라는 설정이다. 지금의 산업 내 여러 IT 기업들을 중심으로 지속해서 제시되어온 시나리오이다. 



다른 하나는 우리가 태어나서 지금까지 현실로 자각하고 있던 세계가 사실은 반대편의 세계로부터 만들어진 여러 개의 가상 세계 중 하나였다는 설정이다. 

우리에게는 익숙한 몇몇 소설이나 영화를 통해 익숙한 시나리오이다. 나는 이따금 ‘메타버스란 무엇인가’에 대한 논의에 열심인 우리의 모습을 후자의 시나리오에 대입해보며, 우리가 현재 인식하는 것 중 많은 부분이 가상에 불과하다면, 마치 철학자 플라톤이 말하는 동굴의 우화에서 그림자를 통해 바깥세상을 상상하는 속박된 사람들과 다르지 않겠다는 생각을 가져본다. 메타버스를 흔히 초월적인 무언가로 정의하지만, 이러한 초월적이라는 수식의 반대편에는 우리가 보고, 듣고, 만지며, 경험하는 현실 세계에 대한 인식이 전제된다. 메타버스가 존재한다는 것은 그에 앞서 우리의 삶이 있고, 새로운 세상을 탐험하고 발견하는 ‘나’와 ‘우리’라는 능동적 주체가 있음을 의미하는 것이다. 메타버스를 떠올릴 때 기술의 발전 속도에 치우쳐 ‘가상’, ‘초월’에만 시선을 빼앗기는 것과 조금은 다른 관점에서의 이야기이다. 증강현실에서의 ‘증강’이라는 표현은 증강의 대상으로서의 현실이 필요하고, 가상현실에서의 ‘가상’이라는 표현에는 현실이라는 상대적 기준이 없이는 그 의미 자체가 성립하지 않는다. 하지만 여기서의 현실이라는 기준은 절대적이지 않다. 

현실이라고 믿었던 것들이 사실은 가상이었고 (영화 ‘트루먼 쇼’에서와 같이), 당연히 가상이라고 생각한 것이 정교한 트랜스 미디어적 기획과 대규모의 미디어 연출을 통해 우리의 지각과 감각을 속이려고 함에 따라, 어느덧 우리는 현실과 가상의 모호한 경계를 헤매다가, 어느 순간 이 둘을 구분하는 것에 별 의미를 두지 않는 완벽한 몰입의 단계로 진입하게 된다. 특정 서비스나 콘텐츠, 그것을 경험하는 매개로서의 디스플레이나 인터페이스가 강조되는 지금의 메타버스 플랫폼이 진정한 메타버스라고 할 수 없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메타버스는 특정 플랫폼 안에 종속되어 있는 개념이 아니고, 특정 기술, 특정 연출이 필수 요소로 한정되지도 않는다. 

궁극적 메타버스의 개념으로 갈수록 오히려 세계관, 정체성, 상태, 경험, 관계 등의 비기술적인 요소가 더불어 중요해진다. 물론 이런 확장된 관점을 언급할 수 있다는 것 자체가, 이미 우리가 과거에 비해 발전된 기술과 경험을 일상 가운데 즐기고 있기 때문이라는 점은 부정할 수 없을 것이다. 현재를 즐기되, 다음을 향한 보다 넓은 관점을 가지기 시작할 때라는 것이다.



지구의 상공의 궤도를 인공위성이 빠르게 이동하며 수집한 이미지와 데이터를 통해 구글 어스와 같은 서비스가 세상에 등장한 지 벌써 오랜 시간이 흘렀다. 지금 이 시각에도 구글 스트리트맵은 다수의 카메라와 센서를 탑재한 자동차들이 우리의 일상 공간을 돌아다니며 최신의 데이터를 수집하고 업데이트한다. 공간의 개념, 이동의 개념은 이러한 인터넷 기반의 서비스들을 통해 많은 부분 ‘텔레프레즌스(Telepresence)’라는 개념으로 새롭게 정의된다. 나아가 줌이나 오큘러스 퀘스트 등에서 경험되는 소셜 VR 플랫폼을 통해 가상 세계에서의 ‘소셜 프레즌스(Social Presence)’는 점점 더 극대화된다. 




로블록스나 포트나이트와 같은 게임 형식의 플랫폼 안에서 새로운 사람을 만나고 공통의 관심사를 실시간 상호작용하는 일은 더 이상 낯선 풍경이 아니게 되었다. 



아직은 우리의 인식 속에 구글 어스나 스트리트맵, 줌 등은 우리의 일상에 편익을 제공하는 서비스로 인식되는 반면, 소셜 VR이나 로블록스, 포트나이트 등은 일탈 속 새로움과 즐거움에 초점을 둔 콘텐츠 경험으로 받아들여지는 것이 보편적이다. 그런데 만약 우리의 현실 공간으로부터 수집된 데이터의 업데이트 주기가 지금보다 10배 더 빨라진다면, 아니 100배, 1,000배를 넘어 네트워크 인프라가 허용하는 최소한의 딜레이에 거의 근접하게 된다면, 우리가 스마트폰의 애플리케이션 상에서 지구의 원하는 위치, 원하는 각도를 실시간으로 감상할 수 있다면, 그것은 현실일까 가상일까. 그것은 서비스일까 콘텐츠일까. 왓챠를 통해 국내에 배급된 드라마 ‘데브스(Devs)’는 과학과 기술의 발전을 통해 앞서 시나리오가 실제가 되어버린 미래를 배경으로 이야기가 전개된다. 또 다른 드라마인 ‘웨스트월드(Westworld)’는 극대화된 인간의 욕망을 현실 세계 위에 연출된 공간과 인공지능에 기반해 작동하는 휴머노이드를 통해 자신이 원하는 대로 분출할 수 있는 가상의 물리 세계를 사실적으로 표현한다. 




마지막으로 ‘이어즈 앤 이어즈(Years and Years)’와 같은 드라마에서는 현실 세계의 사람의 정신과 기억을 인공지능 스피커로 이식하여 사랑하는 사람과 영원히 함께하는 포스트 휴먼으로서의 ‘버츄얼 이모탈리티(Digital immortality)’에 대한 존재론적 질문을 던진다. 

이미 우리가 일상적으로 소비하는 소셜 미디어 속 타임라인과 콘텐츠는 애초에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버츄얼 빙(Virtual Being)’으로서의 인플루언서의 활약에 새로운 경쟁이 시작된 지 오래다. 단순히 보이는 것, 인식되는 것, 소유하는 것을 넘어, 사회적 영향력과 같은 무형적 가치 또한 메타버스를 함께 살아가게 될 새로운 존재들에게 부여되는 속성 중 하나이다. 

그들은 이미 ‘버츄얼 인플루언서(Virtual Influencers)’라는 타이틀을 넘어, 아티스트로, 뮤지션으로, 패션모델로, 심지어는 영화감독의 정체성으로 현실 세계의 우리와 경쟁하고 있다. 

인공지능을 통해 스스로 행동하는 12명의 아바타가 험준한 자연환경을 무대로 마지막까지 살아남기 위해 경쟁하는 ‘라이벌 피크(Rival Peak)’는 페이스북에서 영상을 통해 24시간 내내 생중계되는데, 이 서바이벌 쇼의 관객들은 일 대 다수로 실시간 상호작용하며 쇼의 일부가 된다. 미국의 폭스(Fox)가 선보인 '알터 에고(Alter Ego)'라는 제목의 컴피티션 쇼에서는 실시간 모션 캡쳐와 페이셜 캡쳐 기술을 통해 실제 자신이 아닌 아바타의 모습으로 공연을 펼치며 경쟁한다. 

개봉을 앞둔 영화 매트릭스4는 최신의 언리얼 엔진5의 기술이 적용된 게임 형태의 콘텐츠를 선보이고 블록체인상의 NFT로 발행된 10만 개의 서로 다른 모습의 3D 아바타 판매했다. 도대체 어느 것이 실사이고 그래픽인지 구분이 어려울 정도라는 찬사가 연일 이어진다. 

이처럼 메타버스로부터 시작된 상상은 이처럼 우리의 현실과 맞닿아 있다. 과연 무엇이 현실이고 무엇이 가상일까. 자신이 동굴 속에 있다는 것을 자각했다면, 이제는 동굴 밖 세상을 꿈꾸며 새로운 한 걸음을 내디딜 때이다.

- ‘라이벌 피크(Rival Peak)’  https://rivalpeak.com 
- ‘알터 에고(Alter Ego)’ https://www.fox.com/alter-e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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