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명이 만든 시간의 물성_천선란의 <천개의 파랑>
김범준 교수 / 성균관대학교 물리학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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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개의 파랑』(2020 천선란 지음, 허블)



지금부터 그리 멀지 않은 2035년이다. 그해 3월 제작되어 첫 작동을 시작한 경마 기수 로봇 C-27이 같은 해 9월 ‘콜리’라는 이름으로 짧은 ‘삶’을 마칠 때까지의 이야기다. 이 문장을 읽고 살아있다고 하기 어려운 로봇의 ‘삶’이 어색하게 들렸다면, 소설의 중심 주제를 딱 알아챈 셈이다. 콜리는 태어난 것이 아니라 공장에서 제작되었지만 결국은 다른 생명과 함께 삶을 산 로봇이다. 아직 소설을 읽지 않았다면, 이쯤에서 이 리뷰 읽기를 멈추고 소설을 먼저 보시길. “눈으로 같은 것을 바라보고 있어도 각자가 다른 것을 볼 수 있는 존재가 인간(p. 343)”이니, 어쩌면 소설 하나도 각자가 따로 읽는 천 개의 소설일 수 있으니까. 아래 이어지는 글은 내가 본 소설의 하늘 빛 파랑일 뿐이다. 

소설 속 미래는, 가깝지만 다른 미래다. 말 등에 오른 기수 로봇이 경주로를 질주하고, 청소 로봇 스트린이 거리를 청소한다. 편의점 로봇 베티는 알바를 대신하고, 휴머노이드 폴리가 인간 경찰을 대신해 경비를 서는 미래다. 스스로의 인지과정을 거쳐 저절로 학습하는 인공지능 칩이 개발되었고, 은행원이 휴머노이드로 대체된 지는 이미 오래다. 암수술과 내시경은 이제 나노봇이 맡고, 아직 비보험이지만, 돈만 있다면 생체적합성 의족으로 지체장애도 해결할 수 있다. 심지어 남자도 임신이 가능한 세상이다. 벽걸이 TV는 풍족한 집안 경제를 반영하는 것이 아니라 집안 형편이 남들만 못하다는 표지가 된 미래다. 변한 것이 많다. 

그래도 여전히 변하지 않은 것도 많다. 나도 무척 좋아하는 메로나 아이스크림과 알로에 음료, 그리고 매운 맛 새우깡이 여전히 인기고, 떡볶이에 어묵튀김을 추가해 스마트폰 배달앱으로 쉽게 주문하는 것도 지금과 같다. 진작 바뀌었어야 했는데 여전히 바뀌지 않은 것이 많다. 1만 5천원으로 오른 최저시급이 부담되어 알바를 해고한 편의점 주인의 모습은 지금도 낯설지 않고, 서울대, 포항공대, 그리고 카이스트는 입시생들의 여전한 선망의 대상이다. 장애인이 일상을 살아가는 것이 매순간 위험과 모험이라는 것도, 살아있는 생명을 대하는 사람들의 잔인함도 지금과 마찬가지다. 그때도 여전히 과천 과학관은 그곳에 있고, 지금처럼 주말마다 여전히 성황인 과천 경마공원이 소설의 주 무대다.

소설의 첫 장면이자 마지막 장면에서, 콜리는 스스로의 의지로 낙마해 결국 짧은 삶을 마친다. 말 등에서 땅까지, 3초 동안 이어진 짧은 낙하의 시간에 되돌아본 콜리의 6개월 이야기가 소설에 아름답게 담겼다. 딱 천 개의 단어가 장착되어 작동을 시작한 콜리의 짧은 삶을 행복, 좌절, 그리움 같은, 비슷하지만 서로 다른 천 개의 파랑으로 함께 채운, 연재, 은혜, 보경, 복희, 그리고 경주마 투데이의 이야기다. 

인지와 학습 기능이 내장된 인공지능 칩이 어쩌다 실수로 한 기수 로봇에게 장착된다. 칩을 떨어뜨린 연구생의 실수는 로봇에게는 다른 삶을 살 기회가 된다. 경주 중 푸른 하늘에 시선을 빼앗겨 낙마(p. 65)해 크게 부서진 C-27의 실수는 기회가 되어 결국 연재와의 만남으로 이어진다. “실수는 기회와 같은 말(p.286)”일 수도 있으니까. 힘들게 모은 편의점 아르바이트 월급을 주고 C-27을 불법 구매해 집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