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대한 침묵 1
해도연 /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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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PTER ONE - 인텍 루나


01.


   (청중을 바라보며 잠시 침묵하다가)

 침묵은 깨졌습니다.

 아니, 침묵이란 처음부터 없었습니다. 우린 그저 잘못된 방향을 향해 귀를 기울이고 있었을 뿐입니다. 전파는 범우주 통신에 적합한 수단이 아니었던 것입니다.

 이제 우리에겐 중력파가 있습니다. 세기 , 우리는 중력파의 귀를 열었습니다. 하지만 중력파 통신은 상상을 초월하는 일이었고, 우리는 겨우 20년 전 중력파의 자유로운 수신과 해석이 가능해졌을 뿐입니.

 중력파의 수신과 해석이 시작되자마자, 우리는 목소리를 들었습니다. 머나먼 우주 어디선가 우리에게 보내는 메시지를 들었습니다. 우주는 결코 외로운 공간이 아니었습니다. 우리가 귀를 열기 전부터, 중력파 메시지가 우주를 가로지르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리고 , 우리도 대열에 합류할 것입니다. 중력파 발신이 가능해지기 때문입니다. 이제 그들의 이야기를 듣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이야기를 들려줄 때입니다. 우리는 혼자가 아니니까요.

 (물을 마시며 3 정도 침묵)

그동안 인류는 모든 자원을 한계까지 이용해가며 한 걸음씩 앞으로 나아갔습니다. 비극도 있었습니다. 플루토늄 5년은 결코 잊어서는 비극이었습니다. 사고 이후, 우리는 에너지에 굶주렸습니다. 지구와 화성에서는 에너지 부족으로 내전이 이어졌습니다. 목성계와 토성계의 주민들은 버려졌습니다. 출산이 제한되고 차별과 기아가 이어졌습니다.

사람들은 묻습니다. 어마어마한 에너지를 소비하며 중력파 통신을 해야 하는 이유는 무엇이냐고. 하지만 인류를 에너지 위기에서 구한 것이 바로 인텍입니다. 달의 헬륨3 깨끗한 핵융합을 실현하고 목성계와 토성계의 주민들을 고용해 메탄을 공급하기 시작한 것이 인텍입니다. 인텍에게 있어 가장 중요한 임무가 인류의 존속입니다.

하지만 에너지 위기가 완벽하게 해결되지는 못한 것이 사실입니다. 헬륨3 는 한정되어 있고, 메탄은 채굴비용이 어마어마한 데다 더불어 공급 역시 수요를 따라가지 못하고 있지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텍이 항상간통신에 아낌없는 투자를 하는 것은 인류의 존속을 위해 필요한 가지가 바로 에너지와 통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인간이 혼자서는 없듯이, 인류도 미래를 위해서 홀로 남아 있어서는 됩니다. 우주에서 우리가 혼자가 아니라는 것을 깨달은 이상, 우리는 소통해야 합니다.

중력파는 신의 선물입니다. 신이 내려준 입과 귀입니다. 그리고 신은 속에 힘을 숨겨 놓았습니다. 중력파 통신을 하는 과정 자체가 필연적으로 막대한 에너지 생산과 이어지기 때문입니다.

중력파를 만들어낼 있는 미소공간(微小空間) 속에 숨겨진 에너지는 '양' 이라는 표현조차 어울리지 않습니다. 사실상 무한한 에너지이기 때문입니다. 인류가 지금까지 사용해온 에너지보다 훨씬 많은 것을 깜박할 사이에 얻을  있습니다.

중력파 기술은 하나의 관문이었습니다. 중력파 통신은 새로운 차원의 귀와 입을 열어 것입니다. 그리고 거기서 얻어지는 에너지는 우리에게 우주를 가로지를 힘의 원천을 제공해 것입니다.

인류는 이제 우주로 나갈 준비가 되었습니다. 모든 것은 이제 시간 문제에 불과합니다.

 


 

02.

 

미후는 잠시 고민하다가 마지막 문장에 마침표를 찍고 펜을 내려놓았다. 조금 진부한 표현이 많긴 하지만 대본을 읽을 홍보부장에겐 그런 진부함을 인식할 교양이라곤 없었으니.

미후가 인텍 사() 홍보부에 처음 들어왔을 하는 일이 직속상사들의 대필 따위라고는 생각도 하지 못했었다. 이런 일엔 젊은 여성의 감성이 필요하다며 미후에게 일을 던졌지만 필요한  여성의 감성 따위가 아니라 무능한 상사의 머릿속을 읽고–그들이 참고하라고 적어주는 노트 쓰레기였다– 적당한 문장에 녹여내는 것이었다. 가끔 홍보부다운 일이 들어오긴 하지만 정작 중요 홍보업무는 회사의 일부 임원들이 직접 다루고 있었다. 의외이긴 했지만, 간혹 사소한 일에 재능을 가진 임원들도 있는 법이었다.

"준비 다 됐어?"

홍보부장의 비서 지아가 미후의 어깨 뒤로 고개를 빼꼼히 내밀며 물었다. 비서라고 해도 홍보 부장의 부족한 교양을 메꿔줄 수준은 아니었다.

"네. 근데 손으로 쓴 거라서요. 파일로 준비되면 바로 보내드릴게요."

지아는 오른손 엄지를 치켜세우며 미후에게 윙크를 보내고는 자기 자리를 향해 걸어갔다. 하지만 책상 앞에서 두 걸음 정도를 남기고는 다시 미후를 향해 뒤돌아보며 말했다.

"아, 그러고 보니 크로포드 씨가 미후 씨를 찾고 있던데, 혹시 무슨 일 저질렀어?"

크로포드는 인텍 사의 자회사 중 하나인 인텍 루나의 부사장이었다. 언제나 심각한 얼굴로 복도를 걸어다니고 엘리베이터에서 마주쳐도 눈동자는커녕 머리카락조차 꼼짝도 하지 않기로 유명했다. 그런 사람이 홍보부 말단 직원을 찾는다고 하자 미후는 등골이 오싹해졌다.

"크로포드 씨가요? 딱히 생각나는 일은 없는데...."

"그래? 나도 사실 그 사람이 먼저 나한테 말을 걸었다는 것도 신기하긴 했는데 무슨 일인지 짐작이 가질 않네. 너무 걱정하진 마. 누구처럼 하지도 않은 일로 시비 걸 사람은 아니니까."

지아는 배꼽 부근에서 손가락으로 홍보부장의 방을 슬쩍 가리키며 말했다.

"크로포드 씨는 지금 회의 중인데, 한 시간 뒤면 끝날거야. 크로포드 씨 방 알지? 시간 되면 거기 가서 기다려봐."

크로포드의 방은 L2 스테이션 최외곽층에 있었다. 인공중력을 위해 끊임없이 회전하고 있는 이 곳에서 원심력이 지구의 중력과 가장 비슷한 곳이었다. 그리고 달 뒷면의 코롤료프 크레이터 정중앙에 세워진 중력파 시설이 한눈에 보이는 곳이었다.

"오랜만에 사람답게 걸어볼 수 있겠네요."

미후는 그렇게 말하며 의자를 밀고 일어났다. 약한 중력이 충분히 당겨주지 못해 미후의 몸은 오리처럼 뒤뚱거릴 수 밖에 없었다.

"미후 씨, 어제 아들은 만나고 왔어?"

지아의 물음에 미후는 잠시 기분이 언짢아진 듯 얼굴을 찡그렸다. 아들은 전남편과 함게 달과 지구 사이의 L1 궤도에 있는 호화 콜로니에 있었다. 언제나 지구를 볼 수 있는 L1 펜트하우스 모듈의 주민들이 달 뒷면 궤도에 살고 양육권조차 잃은 이혼녀에게 보내는 동정어린 시선은 미후에 겐 역겨움 그 자체였다.

"아뇨, 일이 너무 많아서요. 그 애도 이젠 여덟 살이니 이해해 주겠죠. 간다고 해도 전남편이 노려보고 있을거고."

"여덟 살이 뭘 알겠어. 지난 달에 여기 왔을 땐 엄마한테서 떨어지려고 하지도 않더구만."

그야 여기 L2 스테이션–콜로니조차 아니다–에선 지구가 보이지도 않고, 달 뒷면은 징그러운 곰보투성이인데다 헬륨3 채굴기가 그어놓은 상처가 가득하니까. 무서워서 그런거지. 상사의 비서들이란 왜 항상 무뚝뚝하거나 쓸데없이 관심 많거나 둘 중 하나인걸까. 미후는 그렇게 생각하며 소리내어 한숨을 쉬었지만 지아는 계속 떠들었다.

"미후 씨가 있어서 홍보부가 돌아가고 있기는 하지만 그래도 가족이 더 중요하지. 매달 양육비도 보내고 있잖아."

"양육비 안보내고 한동안 만나지도 말까 생각하고 있어요."

지아의 표정이 순간적으로 얼어붙는 것이 보였다. 미후는 '플루토늄 5년 재앙’ 때 지아가 가족을 모두 잃었다는 것을 떠올렸다. 조금 미안한 마음을 품으면서도, 미후는 아무렇지도 않게 말을 이어나갔다.

"그나마 L2 스테이션에서 일하고 있으니까 만날 수나 있었던 거죠. 조금만 한눈팔면 다시 L4 공장으로 튕겨나걸거고, 그럼 지구든 달이든 땅이란 걸 밟으러 내려갈 돈도 없을 거예요."

미후는 천장에 달린 창을 바라봤다. 운석구가 가득한 창백한 달이 천천히 모습을 드러내고는 다시 유유히 사라졌다. 미후에겐 달 뒤에서 보는 보름달도 이젠 식상했지만 20분마다 창밖을 가로지르는 달을 보는 것이 잠시나마 마음의 평화를 찾는 순간이었다.

"L1 콜로니 가운데 무중력 모듈에라도 집을 하나 구할 수 있다면, 그때나 마음 놓고 만나러 갈 수 있겠죠."

그런 날은 오지 않을거야, 미후는 확신했다.

 



03.


"자네, 우리 회사에 들어온 지 얼마나 되었나?"

미후가 문을 열고 들어와 한 발짝 내딛기도 전에 크로포드가 말했다. 미후는 살며시 문을 닫고는 말했다.

"5년 반 정도 됐습니다."

크로포드의 방은 별다른 장식 없이 업무용 책상과 접객용 소파, 그리고 커피 테이블만이 자리를 잡고 있었다. 부사장의 방이라고 하기엔 굉장히 검소한 모습이었다.

"그럼 우리 회사가 무슨 일을 하는지도 잘 알겠군. 간단히 이야기해 보게."

미후는 의아할 수 밖에 없었다. 인텍은 세계에서–달리 말해 태양계에서– 가장 큰 기업 중  나였고 이미 경제적 규모 면에서는 지구에 남아있는 국가들을 아득히 초월하고 있었다. 외계인이 아니고서는 인텍을 모를 수가 없었다. 특히 미후가 소속된 인텍 루나는 중력파 통신과 미소공간 에너지 채굴의 가능성을 발견한 덕분에 전세계의 주목을 받고 있었다.

"중력파를 이용한 항성간 통신시설을 개발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제가 입사했을 때 즈음부턴 미소공간 에너지 채굴 사업도 시작했고 본격적인 발전시설의 시동을 앞두고 있지요."

만족이나 불만을 전혀 읽을 수 없는 크로포드의 표정이 미후를 불안하게 만들었다. 설명이 부족했던 걸까?

"그리고 수신된 중력파 신호의 분석도 진행하고 있지요. 신호 속 숫자들의 의미는 아직 밝혀지지 않았지만."

미후는 크로포드의 콧등을 바라봤다. 눈을 보며 대화하기 힘든 사람과 있을 때는 그 정도가 딱 좋은 높이라고 들은 적이 있었다. 크로포드가 드디어 입을 열었다.

"그런 건 사소한 일에 불과하네."

아차. 후회감이 미후의 가슴을 덮쳤다.

"우리가 하는 건 인류를 해방하는 일이야. 공허로 세워진 우주의 벽을 무너뜨리는 일이지."

크로포드는 미후에게 소파에 앉으라는 손짓을 보내면서 그도 소파를 향해 걸어왔다. 미후는 소파에 앉으면서 자기 자리에서는 느낄 수 없는 편안한 무게감에 잠시 마음의 평화를 느꼈다. 크로포드가 맞은편 소파에 앉을 거라고 생각한 미후의 예상과 달리, 그는 미후가 앉은 소파 뒷편으로 다가왔다. 미후는 목덜미 뒤로 크로포드의 몸이 만들어내는 바람을 느낄 수 있었다.

"자네에게 부탁하고 싶은 일이 있네. 개인적인 부탁이야."

미후는 놀랄 수밖에 없었다. 인텍의 부사장에 홍보부 말단 직원에게 개인적인 부탁을 하다니.

크로포드가 다시 입을 열기까지의 수 초 동안, 수많은 추측이 미후의 상상력을 자극했다. 가장 나중에 떠오른 건 잠자리 요청이었다. 미후는 스스로도 자신이 충분히 매력적인 여성이라고 생각하고 있었고 크로포드의 시선이 지금 입고 있는 연보라색 블라우스와 쇄골 사이를 몇 번 스쳐 지나갔다는 것 정도는 알고 있었다. 그렇다면 어떻게 거절해야 할까. 불안이 다시 미후를 엄습했다.

"회사 안에 배신자가 있어."

크로포드는 왼손을 미후의 어깨에 얹으며 말했다. 거친 일 한 번 하지 않은 듯한 부드러운 손길이었다.

"자네가 배신자를 잡는데 도와줬으면 하네."

불안이 사라지면서 새로운 불안을 만들어내는 기묘한 감정이 미후의 심장을 뛰게 했다. 크로포드의 시선이 이번엔 미후의 목을 따라 블라우스 옷깃을 향했다. 미후는 심장박동이 옷깃을 흔든 것은 아닐까 생각했다. 크로포드는 왼손을 미후의 어깨에서 떼고는 맞은편 소파에 가서 앉았다. 크로포드의 손이 남긴 온기는 여전히 미후의 왼쪽 어깨에서 아른거렸다. 왠지 쉽게 지워지지 않을 것 같은 온기야, 미후는 생각했다.


 


 

CHAPTER TWO - 미후와 지아


04.


인텍 루나 내부에 배신자가 있다. 크로포드는 그렇게 말했다.

"중력파 사업은 단순한 비즈니스가 아니야. 인류의 역사를 바꾸고 태양계를 고독에서 구원할 사업이지. 중력파는 외계에 인류 문명의 존재를 알리고 항상간 교류에 첫발을 내딜 도구야.

인텍의 밥줄인 에너지는 미소공간 채굴이 시작되면 더이상 사업이 아니라 복지의 일부가 되겠지. 그런데 경쟁사들은 그렇게 생각 안 해. 그놈들은 중력파 통신 따위에는 관심도 없어. 미소공간 에너지를 사람들에게 조금씩 뿌리면서 태양계 경제를 장악할 생각만 하고 있으니까."

이미 인텍이 헬륨3와 메탄으로 그러고 있는 거 아닌가? 미후는 생각했다. 크로포드의 모습이 유대교 지도자를 바라보는 베드로와 묘하게 겹쳐졌다.

"심지어 인텍 내부에도 적은 있어. 인텍 주피터 앤 가스는 여전히 우릴 싫어하지."

주피터 앤 가스는 목성과 토성, 그리고 그들의 위성에서 메탄을 채굴하고 있는 인텍의 자기업이었다. 인텍 루나가 달의 헬륨3를 채굴을 시작하고 저온핵융합에 성공하면서 메탄의 수요가 줄어들어 아슬아슬하게 적자만 면하고 있기에, 인텍 루나와는 앙숙이었다.

"'그물망'이라는 이름, 들어봤나?"

"아니요, 딱히 들어본 적은 없습니다."

"그물망이라는 이름으로 수상한 뭔가가 진행되고 있는 것 같아. 우리 사업에 대한 위협은 예전부터 있었어. 인간이 신의 입과 힘을 가져서는 안 된다는 종교 나부랭이들부터 이젠 있으나 마나 한 정치인들까지."

크로포드는 날카롭게 솟은 코를 가볍게 어루만졌다. 기름기로 번들번들한 콧등에 달빛이 반사되었다.

"그놈들은 입만 살아서 별거 아닌데 말이야. 그런데 겁쟁이 간부들이 설레발 치면서 중력파 시설 시험운용을 일주일 앞으로 당겼어. 근데 내가 보기에 이건 실수야. 결국 방해자들을 극단적인 행동으로 몰고 갈 게 분명해. 말이 시험운용이지, 사실상 미소송간 채굴 시작이나 마찬가지니까.

지금까지 정신 나간 놈들이나 경쟁사 쪽의 테러가 없었던 건 아니지만, 이번엔 좀 달라. 그물 망 놈들은 이미 우리 내부에 침투해있는 것 같아. 어쩌면 임원 중에도 배신자가 있는지도 모르지."

"...그래서 제가 뭘 하면되나요?"

미후가 묻자, 크로포드는 주머니에서 작은 종이 한 조각을 꺼냈다.

"이 사람들을 찾아가게. 가장 의심 가는 인물들이야. 홍보부의 취재 명목으로 접근하면 될 거야. 그들을 면밀히 살피고 수상한 게 없는지 알아봐. 자네가 눈썰미 좋다는 건 알고 있으니까. 시간은 이미 잡혀 있어."

미후는 크로포드의 종이를 받아 읽었다. 다섯 명의 이름과 인터뷰 시간이 적혀 있었다. 첫 인터뷰는 고작 두 시간 후였다.


 


05.


"지아 씨, 우리 사업에 대해 얼마나 알아요?"

모니터에 얼굴을 박고 키보드를 두들기고 있던 지아에게 미후가 물었다. "응? 우리 사업?"

"네, 중력파 통신이니 미소공간 에너지니... 하는 것들."

"미후 씨, 벌써 5년이나 지났잖아. 아직도 몰라? 자기 홍보부잖아."

지아의 커진 눈을 보며 미후는 고개를 저었다. 알 턱이 있나. 처음 3년은 무중력 상태에서 커피나 뽑는 일을 하며 시간을 보냈고, 다음 2년은 원고 대필이나 하고 있었다.

지아는 자리에서 일어나 미후 앞에 다가왔다. 미후와 지아의 책상 사이에는 작은 커피 테이블이 하나 있었다. 두 사람은 그곳에 앉았다.

"중력파 자체를 발견한 건 벌써 지난 세기의 일이야. 근데 중력파는 너무 미약해서 대개는 블랙홀이 충돌한다느니 하는 엄청난 사건이 있었을 때나 겨우 볼 수 있었어. 지금처럼 행성이나 항성 규모에서 발생하는 중력파를 수신할 수 있게 된 건 최근의 일이야. 그러다가 인공적인 신호가 담긴 중력파를 수신하게 된 거고. 그때 정말 난리가 났었지. 거의 200년 동안 우주인 신호를 찾기 위해 전파망원경으로 우주를 탐색했는데, 뜬금없이 중력파 속에서 우주인 신호가 발견되었으니 까."

여기까진 미후도 알고 있는 이야기였다. 지아가 설명을 이어갔다.

"그런데 중력파 신호를 인공적으로 만들어내는 건 쉬운 일이 아니야. 수십 년 동안 물리학자들과 엔지니어들이 뛰어들었어."

덕분에 다른 과학 분야가 성장을 멈췄었지. 미후는 생각했다.

"여기서부턴 나도 자세히 아는 건 아닌데.... 플랑크 길이라는 게 있는데 물리적으로 다룰 수 있는 가장 작은 크기인가 뭔가 하는 거래. 그거보다 아주 조금 큰 공간 속에 복잡하게 얽힌 새로운 차원이 있다는 거야. 그걸 미소공간이라고 부르게 된 거고. 미후 씨, 중력이 다른 힘들보다 매우 작다는 거 들어본 적 있어?"

미후는 고개를 살짝 갸우뚱하며 대답했다.

"네. 네 개의 근본적인 힘이 있는데..., 중력, 전자기력, 그리고..."

"중력, 전자기력, 약한 핵력, 그리고 강한 핵력이야. 그런데 여기서 중력이 다른 힘들에 비해 너무 약해. 이상하리만큼. 물리학자들 설명으로는..., 중력은 다른 힘들과 달리 그 미소공간으로도 퍼져나가기 때문에 약해진 거래. 실제로는 다른 힘들 못지않게 큰 힘이고."

"잘 이해가 안 가네요."

"굳이 이해할 필요 없어. 나도 이해하고 하는 이야기는 아니니까. 선임이 만든 홍보자료를 그냥 외우고 있는 거야. 물리학자들 말에 의하면 그 미소공간을 확장해서 진동시키면 중력파를 만들어낼 수 있대. 그리고..."

지아가 말을 끊었다. "그리고...?"

"그리고 중력파가 빠져나오면서 거기서 반물질이라는 것도 같이 튀어나온대. 그것도 어마어마한 양으로."

반물질에 대해서는 미후도 들어본 적이 있었다. 전기적 성질이나 자기적 성질 따위가 일반적인 물질과 반대인 것들. 예를 들어 전자와 전기적 성질이 반대인 양전자나, 중성자와 내부자기적 성질이 반대인 중성자 따위. 그리고 물질과 반물질이 만나면 서로의 모든 질량이 완벽하게 에너지로 전환된다는 것. 핵융합이 고작 1%도 안 되는 질량을 에너지로 바꿀 수 있는 것과 비교하면 차원이 다른 규모의 자원이었다. 하지만 우주에 반물질은 극히 드물었다.

"처음엔 우주에 반물질이 부족한 이유를 아무도 몰랐대. 우주가 태어날 때 같은 양 만큼 만들어졌는데 지금 우리 주변엔 물질밖에 없다는 거야. 지금에 와서야 이유가 알려졌는데..., 우주가 태어난 직후엔 미소공간의 크기가 제법 컸고, 우주가 식으면서 미소공간이 반물질을 가득 담은 채로 작아진 거래. 그래서 지금 이 순간에도 미소공간 안에는 반물질이 우주의 물질 만큼이나 많이 있다면서..."

"그래서 '채굴'이라고 부르는 거였군요."

미후의 말에 지아가 고개를 끄덕였다.

"맞아. 사실 미소공간을 확장할 때도 반물질이 많이 필요한데, 그만큼 만들고 또 그걸 보존할 수 있는 기술을 가진 게 인텍 뿐이래. 홍보부에서 가장 자주 하는 이야기이기도 하고. 그리고 미소 공간 채굴에 성공 만하면... 반물질은 마구 쏟아지니까..."

"중력파도 다시 얼마든지 만들 수 있겠네요. 또 그때마다 반물질이 튀어나올 거고...." "황금알을 낳는 불사조인 셈이지."

"...어떤 사람들이 날뛰고 반대할 만도 하네요."

"안 그래도 에너지 부족 때문에 여기저기서 문제인데 지금 인텍은 중력파 시설에 에너지를 어마어마하게 투자하고 있기도 하니까."

"지아 씨는 어떻게 생각해요?"

미후의 물음에 지아가 대답을 잠시 망설였다. 지아는 손목 옷깃을 손가락으로 어루만지며 대답했다.

"만약 성공적으로 미소공간 채굴이 성공한다면... 적어도 에너지가 부족해서 힘들어지는 사람들은 줄어들겠지. 한 가지 걱정은... 안전할까, 하는 거야."

미후는 지아의 눈빛에서 지아가 과거를 회상하고 있다는 것을 읽을 수 있었다.

"난 다섯 살 땐가 여섯 살 때, 가벼운 교통사고 때문에 병원에 입원한 적이 있었어. 다른 가족들은 오빠 졸업식 때문에 애리조나에 가 있었는데... 플로토늄 5년이 거기서 시작됐어."

지아의 입에서 '플루토늄 5년'이 나오자 미후는 조금 놀랐다.

전세계 곳곳의 매장되어 있던 플루토늄이 5년 동안 산발적으로 핵분열을 일으키며 폭발해버린 사건. 안전하다고 알려진 플루토늄과 갈륨의 합금이 만들어진 지 150여 년 후 갑자기 반응을 일으키리라고는 아무도 생각지 못했었다. 남아있는 핵발전소와 폐기된 핵무기 속 플루토늄을 모두 우주공간으로 버리는 것으로 수습되기까지 10억 명 이상이 죽었다. 그리고 에너지 위기가 찾아왔고 여러 국가에서 내전이 이어지며 다시 1억 명이 죽었다. 인텍이 지구 밖에서 헬륨3와 메탄을 가져오기 전까진, 아무도 인류의 밝은 미래를 그릴 수 없었다.

미후는 지아의 표정을 살폈다. 미후의 반응을 기다리는 듯한 얼굴이었다. 지아에겐 플로토늄 5년과 에너지 위기 중 어느 쪽이 더 고통스러운 기억일까? 두 사람이 잠시 침묵을 지켰다.

먼저 입을 연 건 지아였다.

"미후 씨!"

지아의 외침에 미후는 정신이 번쩍 들었다.

"미후 씨, 아까 보내준다던 원고. 어떻게 된 거야?"

미후는 그제야 자기가 원고를 홍보부장에게 보내지 않았다는 것을 떠올렸다. 보내기는커녕 손으로 쓴 것을 파일로 옮기지도 않았다. 그전에, 원고를 쓴 종이는 어디로 갔을까? 미후는 옷이 식은땀에 젖어 등에 바싹 달라 붙어가는 것을 느꼈다.

"죄송합니다! 당장 보내드릴게요!"

미후의 손과 머리가 바빠졌다. 원고를 한참 찾다가 결국 기억력에 의존해 써내려가기 시작했다.

무사히 작성과 전송을 마쳤지만 방송 녹화를 마치고 돌아온 홍보부장이 미후를 붙잡고 한참이나 화풀이를 했다. 원고가 어떻게든 무사히 넘어갔음에도 그저 방송국 기자의 태도가 마음에 들지 않은 걸 자신에게 털어내고 있다는 것 정도는 미후도 금방 읽어낼 수 있었다.

미후는 홍보부장의 불만에 찬 목소리보다 인터뷰에 늦을 것 같다는 것이 더 걱정이었다.


 


06.


"홍보부장이 해고됐대."

미후가 출근해 사무실에 들어서자마자 지아가 훌쩍이며 말했다. 그리고는 인사이동에 대한 메일을 인쇄한 종이를 미후에게 건네줬다. 그 종이에는 지금의 홍보부장을 해임한다는 것과 오늘 오후부터 새롭게 홍보부장이 될 사람의 이름이 적혀있었다. 어제 미후에게 대본을 핑계 삼아 화풀이를 했던 홍보부장은 아직 출근도 안 한 상태였다. 미후가 미처 상황을 파악하기도 전에 지아의 책상에 있던 전화가 울렸다. 내선 전화였다. 지아는 손가락으로 눈물을 훔치고 목을 가다듬고는 전화를 받았다.

"네, 홍보부장실입니다."

지아의 시선이 미후를 향했다.

"네, 방금 출근했어요. 아뇨, 부장.., 전 부장님은 아직 안 오셨어요. 네. 알겠습니다. 바꿔드릴게요."

지아가 전화를 들고 있는 팔을 미후를 향해 내밀었다. 미후는 잠시 머뭇거리다가 호흡을 가다듬고는 전화를 받았다.

"네, 홍보부 미후입니다."

「미후 씨. 전 새 홍보부장입니다. 예전 부장은 오늘 회사에 오지 않을 거고 앞으로 올 일도 없을 겁니다. 그리고 저를 볼 일도 없을 겁니다. 지금까지 미후 씨가 하던 일은 모두 홍보부의 다른 팀에게 돌아갈 겁니다. 그러니 이제 대필 같은 일에 시간을 쓰지 마세요. 어제 크로포트 씨를 만났죠?」

네, 라고 대답하면서 미후는 요동치는 심장을 진정시키기 위해 소리 없이 천천히 호흡했다.

「그럼 미후 씨가 해야 할 일은 잘 알고 계실겁니다. 인터뷰 일정엔 변동 없을거니 걱정하지 마세요. 앞으로 한 달 동안, 미후 씨를 방해할 사람은 없을 겁니다. 크로포드 씨의 지시사항은 지아 씨를 통해 전달해 드리죠. 지아 씨를 다시 바꿔주세요.」

"지아 씨, 다시 받으래요."

전화를 이어받은 지아는 안절부절못하며 네, 네를 몇 번 반복했다. 그리고 한참을 불안한 표정으로 침묵하더니 전화를 책상에 내려놓았다. 그리고 미후를 향해 고개를 돌리고 말했다. 말투 속에 평소와 다른 거리감이 담겨있었다.

"미후 씨, 저는 이제 미후 씨 비서입니다. 제게 시킬 일 있으면 뭐든 말씀하세요."

지아의 달라진 말투를 듣고서야, 미후는 자기가 지금 탐정놀이를 할 상황이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다. 크로포드는 30년을 인텍에서 일한 홍보부장을 단숨에 잘라버렸다. 상사의 비서는 이제 미후에게 공손한 말투를 쓴다. 어제부터 미후의 어깨에 올라 앉아있는 크로포드의 왼손은 상상한 것보다 훨씬 무거웠다. 왼쪽 어깨에 남은 것은 온기가 아니라 주체할 수 없는 압력이었다. 미후는 문득 크로포드가 오른손잡이라는 것을 떠올리고는 그가 등 뒤로 가리고 있을 오른손엔 무엇이 있을지 궁금해졌다.

"지아 씨."

미후는 힘이 빠진 듯 천천히 의자에 앉으며 말했다. 지아가 미후와 눈을 맞추며 "네?"라고 대답하자 미후는 책상 위로 양팔을 얹고는 질문을 던졌다.

"지금 우리가 수신하고 있다는 중력파 신호. 누가 보낸 걸까요?"

"글쎄요. 자세히는 모르지만, 중력파는 방향성이 없잖아요. 연못에 돌멩이를 던졌을 때의 물결 처럼 모든 방향으로 뻗어 나간다나.... 그래서 지금 수준의 수신 장비를 적어도 두 대 더 설치하지 않는 이상 어디서 보내는지 알 수 없다고 해요."

지아의 대답을 들은 미후는 고개를 양쪽으로 저으며 다시 말했다.

"제 말은 그게 아니에요. 제가 궁금한 건 어디서 보내느냐가 아니라 누가 보내느냐예요. 그들은 정말 우리처럼 우주로 뻗어 나가려는 문명 같은 걸까요?"

과학자들이 말하길, 그 신호는 결코 자연적으로는 발생할 수 없는 종류라고 했다. 그게 뭔지는 알 수 없었지만, 문명이 아니라면 무엇이란 말인가? 생각해봤지만, 답이 나올 것 같지는 않았다.

지아가 말했다.

"저도 예전에 크로포드 씨와 얘기를 한 적이 있었는데, 그때 크로포드 씨는 중력파 통신을 신의 귀와 입이라고 했어요. 그리고 미소공간 에너지는 신의 힘이라고 했고."

미후도 들은 적 있는 말이었다. 하지만 종교단체와의 마찰을 줄이기 위해 최근에는 그런 말을 쓰는 사람이 없었다.

미후가 말했다.

"그렇다면..., 우리보다 훨씬 오래전에 신의 귀와 입, 힘을 손에 넣은 존재는 지금쯤 어디까지 진보했을까요? 왜 우주를 가로지를 수 있는 신의 힘을 가지고도 우리에게 오지 않고 신호만 보내고 있는 걸까요? 그들은 혹시 이제 문명이라고 부를 수 없는 다른 존재가 되어버린 건 아닐까요?"

쏟아지는 의문에 미후는 머릿속이 혼란스러워졌다. 그 모습을 안쓰럽게 지켜보던 지아가 말했다.

"어제 크로포드 씨가 갑자기 미후 씨를 부를 때부터 왠지 예감이 안 좋았어요. 크로포드 씨는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 걸까요?"

내부에 배신자가 있다. 크로포드는 그렇게 생각하고 있다. 하지만 미후는 그 말을 입 밖에 내지는 않았다. 그저 창밖을 천천히 가로지르는 상처투성이 달을 바라봤다. 달이 구슬프게 우는 소리가 들리는 것만 같았다.


 





CHAPTER THREE - 151개의 좌표



07.


"숫자들의 의미를 알 수 없는 건 아니에요."

유민이 숫자가 가득 적힌 종이를 내밀며 말했다. 크로포드가 건네준 리스트의 마지막 용의자. 표면상으론 일개 연구원이었지만 사실상 중력파수신해석과의 최고책임자나 다름없었다. 과학자들로만 이루어진 해석과에서 직위는 그저 서류상의 문제에 지나지 않았고 그것이 인텍을 여기까지 이끌어 온 원동력 중 하나였다. 유민은 10여 년 전, 그저 노이즈일 뿐이라고 여겨졌던 중력파 신호 속에서 결코 자연적으로 발생할 수 없는 패턴을 발견했다. 그리고는 동적 비선형 기하학이라는, 이름만으로도 미후의 정신을 아찔하게 만드는 도구를 개발해 중력파 신호 속에 숨겨진 숫자들을 읽어냈고 단숨에 해석과의 리더로 자리를 잡았다.

크로포드의 의심은 바로 거기에 있었다. 수신된 모든 중력파 신호는 기본적으로 유민을 거쳐간다. 유민이 외계에서 도달한 어떤 신호를 감추고 있는 게 아닐까 하는 소문이 항상 있었지만 크 로포드는 더 나아가 그가 외부조직에 중력파 데이터와 해석결과를 밀매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이 숫자들은 간단히 말하자면 물리상수와 좌표예요."

"물리상수..., 그리고 좌표요?"

미후는 오늘 아침 홍보용 인터뷰를 명목으로 유민과의 대화를 시작하고부터 지금까지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 하나로 일관하고 있었다. 유민은 미후의 얼굴을 거들떠보지도 않고 설명을 이어나 갔다.

"네. 신호를 보내고 있는 존재와 우리가 쓰는 단위가 일단 일치해야 무슨 말이든 할 수 있거든요. 그래서 그들은 물리량을 나타내는 신호를 반복해서 보내고 있어요. 가장 먼저 나오는 건 수소와 헬륨의 스펙트럼 속 방출선의 파장비에요. 예를 들어, 수소의 가시광선 방출선은 네 개가 있는 데 파장이 410, 434, 486, 656나노미터에요. 그럼 1:1.06:1.19:1.60 라고 보내는 거죠. 수소와 헬륨은 우주에서 가장 흔한 물질이고 원자의 스펙트럼은 가장 기본적인 물리량 중 하나니까, 과학 기술을 가진 문명이라면 누구라도 알아볼 수 있어요."

과학 기술을 가진 문명 속에 난 포함되어 있지 않을거야, 미후는 생각했다.

"그렇게 길이 단위를 전달하는 거죠. 사실 수소와 헬륨 모두 휘선을 여러 개 가지고 있어서 파장비로 길이를 전달하기 위해선 둘 중 하나만으로도 충분한데 둘 다 보낸 건 길이 단위와 더불어 시간 단위를 전달하기 위해서였어요. 휘선의 파장비와 같은 방법으로 두 원자의 고유진동수의 비를 통해 그들이 어떤 시간 단위를 쓸 것인지 알려주는 거죠. 그리고 물리량은 그게 전부였어요."

미후는 안심했다. 물리상수 이야기는 그걸로 충분했다.

"그들이 알려준 시간과 거리 단위를 토대로 신호의 다음 부분을 분석했더니..."

유민이 말을 줄이더니 책상 서랍에서 커다란 종이 한 장을 꺼냈다. 가운데 빨간 점이 하나 있고 주변에 검은점들이 듬성듬성 찍혀있었다. 그리고 빨간 점과 검은 점은 가느다란 직선으로 이어져 있었다. 검은 점과 직선 주변에 숫자가 가득 적혀있었지만 미후는 그 의미가 결코 궁금하지 않았다.

"이건 펄서들의 주기와 은하 중심에서의 거리를 나타낸 일종의 펄서 지도에요. 그들은 우리 은하에 있는 펄서의 위치를 알려주고 있었어요. 펄서는 각자가 고유의 주기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그 주기와 은하 중심에서의 거리가 주어지면 그게 어느 펄서인지 알 수 있거든요. 그리고 그 펄서들이 은하계 좌표의 기준점이 되는 거예요."

미후가 머릿속에 그린 그림은 유민이 전달하고자 하는 것과는 전혀 닮지 않았지만, 미후는 그래도 대충 이해했다는 듯 가볍게 미소지으머 고개를 끄덕였다. 유민이 펄서 지도를 보며 다음 말을 생각하려는 듯 머뭇거리자 미후가 먼저 입을 열었다.

"그럼 신호의 그 다음 부분은 그들이 사는 별의 위치인가요? 펄서 지도를 기준으로?"

유민은 미후가 말을 마치자마자 미후의 눈을 들여다보며 크게 미소짓고 말했다.

"맞아요! 아니, 비슷했어요. 어떤 위치를 알려주는 건 맞아요. 하지만 그건 그들이 사는 별이 아니었고, 게다가 신호에 담긴 좌표는 하나가 아니라 151개나 있었어요. 어쩌면 별이 아닐지도 몰라요."

미후가 궁금하다는 듯 유민에게 몸을 기울였다. 유민은 계속해서 미후의 눈을 지긋이 바라보며 말했다.

"그들이 알려준 위치를 샅샅이 뒤졌지만, 아무것도 없었거든요. 인텍이 보유한 모든 망원경을 동원해 모든 파장으로 살폈지만 텅 빈 공간 뿐이었어요. 제 눈으로 직접 확인했어요."

유민은 오른손 검지와 중지로 자신의 양 눈을 가리켰다가 그대로 손가락을 모아 펄서 지도를 툭툭 두드렸다.

"아무것도, 없었었다고요."

유민이 자신의 극적인 연출이 마음에 들었는지 잠시 침묵하는 동안, 미후는 그가 자신에게 성적인 관심이 전혀 없다는 결론을 내렸다. 서늘한 연구실의 공기를 가로질러 미후의 몸이 뿜어내는 방사열이 충분히 전달될 만큼 유민에게 접근했었지만 그는 미동도 하지 않았다. 사리사욕 때문에 회사를 팔아넘기기에 그는 너무 순진해 보였다. 대개 이런 사람들은 눈앞의 이익보다는 인류가 어쩌니 진리가 어쩌니 하는 말을 더 중요하게 여기기 마련이다. 아니면 게이거나.

"아무것도 없다는 건 어떤 의미죠?"

미후가 묻자 유민은 몸을 의자에 기대며 어깨에 힘을 뺐다. 그리고는 시선을 천장으로 옮기며 말했다.

"그 의미를 밝히는 건 관측천문부랑 중력파문명연구과에서 할 일인 것 같네요. 좌표가 가리키는 위치는 틀림없어요. 이건 장담할 수 있어요. 결국, 그 빈 공간이 신호를 보내는 외계문명에게 무엇을 의미한다는 거죠. 우린 그 의미를 모르는 거고."

"그렇군요. 하지만 수신된 중력파 통신은 몇 개 더 있지 않나요?"

"맞아요. 더 있어요. 나머지 신호들은 인공적인 신호임은 분명하지만, 뭐랄까, 방금 얘기한 신호와는 달라요. 단말마처럼 순식간에 끊어졌어요. 말을 하고 있는 게 아니라 소리치고 있는 것처럼 보이기도 했고. 아직 두 개 정도밖에 발견된 게 없어요. 자세한 건 중력파 안테나 네트워크가 완성돼야 알 수 있겠죠."

미후는 수첩을 덮고 펜을 내려놓았다.

"오늘 인터뷰는 이 정도면 충분한 것 같아요. 응해줘서 고마워요. 마지막 인터뷰는 다음 주가 될 것 같아요."

미후가 손을 내밀자 유민 역시 손을 내밀며 가볍게 악수를 했다. 유민은 미후의 손을 잡은 상태로 그녀에게 물었다.

"궁금한 게 있는데, 홍보부에선 무슨 일을 하는 거죠? 지난달 5년 만에 지구에 내려가서 하와이에 다녀왔는데, 돌아다니는 동안 딱히 인텍에 대한 홍보라고 할 만한 게 보이지 않았거든요. 그래서 이번달 인터뷰 요청을 처음 받았을 때부터 궁금했어요."

"말 그대로 홍보이긴 한데.... 사실 회사 내부자들을 위한 거예요. 아시다시피 인텍은 이미 지구상의 모든 국가보다 거대해요. 직원수도 어마어마하고. 그러다보니 직원들도 자기가 속한 부서 말고는 별로 아는 게 없어요. 제가 하는 일은 그런 사람들에게 협업을 위한 동기를 부여하는 거죠. 우리가 하는 일은 이렇게 위대한 일이다, 라는 식으로. 그리고 인텍 내부 경제를 위한 것도 있어요. 인텍 미네랄즈, 인텍 에너지, 인텍 커뮤니케이션, 인텍 주피터 앤 가스..., 모두가 인텍 안에서도 경제적으로 이어져 있죠. 인텍은 이미 하나의 초국가예요. 전..., 글쎄요, 말하자면 인텍의 프로파간다 담당이려나요."

미후는 그렇게 대답하면서 스스로도 어이없다는 듯 웃음을 지었다. 그리고는 불쌍한 전 홍보부장을 위해 3주 전에 썼던 대본을 문득 떠올렸다. 대본 안에 '직원 여러분' 따위의 말은 없었다.  ' 우리'와 '인류'라는 단어가 사용되었을 뿐이었다. 인텍에게 인류란 어떤 의미일까.

미후가 생각에 빠져있는 사이에 유민이 말했다.

"그렇군요. 그럴 만도 하죠. 이미 지구에 사는 사람들은 인텍의 우주 자원 없이는 생활이 불가 능하게 됐으니 딱히 홍보의 필요성도 없겠네요. 심지어 경쟁사들도 인텍 미네랄즈에 의존하고 있으니. 인텍에겐 인텍 외부의 사람들은 사실 별 의미가 없을지도 모르겠네요."

유민은 이제야 미후의 손을 놓아주고는 새하얀 팔을 우아하게 움직이며 팔짱을 꼈다. 이번엔 미후가 유민을 바라보며 물었다.

"유민 씨, 혹시 '그물망' 음모에 대해 들어보셨나요?"

"그물망이요?"

진심으로 궁금해하는 유민의 표정을 보자 미후는 괜히 물었나 하고 가벼운 후회를 느꼈다.

"네. 종교단체 아니면 경쟁사에서 다음주의 중력파 시설의 가동을 방해하려고 한다는 소문이 돌고 있거든요. 아마 그저 소문일 뿐이겠지만."

"홍보부에선 그런 소문 따위도 신경 쓰이겠네요. 많이 힘드시겠어요. 전 들어본 적은 없어요."

미후는 가볍게 웃어 보이고는 유민의 연구실을 빠져나왔다.


 


08.


지아가 서류 다발을 하나 가지고 와서는 미후에게 건넸다.

"지구관측부에서 자료가 도착했어요. 인텍 광적외선 망원경 35지구 오퍼레이션 로그 파일, 이라고 되어 있네요."

"고마워요."

미후는 서류를 받아들고는 한 장 씩 훑기 시작했다.

"무슨 자료예요? 전 전혀 모르겠는데."

"하와이 마우나케아에 있는 망원경의 관측 기록이에요."

"중요한 건가요? 그거 반입한다고 크로포드 씨 승인까지 받았던데."

미후는 서류를 다시 덮고는 지아를 바라보며 웃었다.

"네, 중요한 자료예요."

지아는 의아한 표정을 지으며 자기 자리로 돌아갔다.

미후는 유민의 새햐안 팔을 떠올렸다. 7월의 하와이에 다녀왔다고 하기에는 탄 흔적이 전혀 없었다. 밤에 돌아다닌 걸까, 하고 생각하자 미후의 머릿속에 문득 떠오르는 것이 있었다. 하와이 힐로 섬에 있는 마우나케아라는 해발 4300미터의 산이었다. 그 산꼭대기에는 인텍이 소유한 오래된 관측소가 있었다. 한 세기 전까지는 세계 각국의 거대망원경 시설이 모여 있었지만, 에너지 위기 시절에 내버려지자 인텍이 지구관측부를 신설하면서 사들인 곳이었다. 그리고 하와이에서 시간을 보내면서도 살을 태울 일이 없는 곳이었다.

해석과의 일이 아니라면 관심을 두지 않을 유민이 왜 관측부들이나 관심을 가질 오래된 관측소를 찾아간 걸까. 미후는 크로포드의 말대로 유민이 무언가를 감추고 있다고 확신했다.

미후가 서류 앞면에 인쇄된 있는 바코드를 컴퓨터에 읽히자 같은 내용이 화면에 나타났다. 미후는 이해할 수 없는 내용을 굳이 읽으려 하지 않고 곧장 유민의 이름을 검색했다. 하지만 아무것도 나오지 않았다. 중력파, 인텍, 크로포드, 그물망, 미후는 생각나는 단어들을 이것저것 조합해서 검색해봤지만, 아무것도 나오지 않았다. 수신된 좌표의 수가 151개였다는 것을 떠올리고 151을 검색하자 컴퓨터가 결과를 하나 내놓았다. 유심히 들여다봤지만 의미를 알 수 없는 수열 속에 우연이 들어가 있을 뿐이었다.

미후는 잠시 팔짱을 끼고 생각했다. 유민은 왜 마우나케아에 갔을까. 관측부를 거치지 않고 직 접 관측하려고 한 것은 무엇일까. 유민의 일은 수신된 중력파 데이터를 해석하는 일이다. 천체관 측과는 무관한 일이다. 중력파 데이터에 무언가 있었던 걸까. 한 달 전까지는 없던 새로운 무언가가.

미후는 갑자기 팔짱을 풀고 152를 검색했다. 컴퓨터는 다시 한번 재빠르게 결과를 하나 내놓았다.


OBJ: pul_coord0152_converted

RA: 154417.03441

DEC: +062533.2535


변환된 펄사좌표 152번. 그 아래 숫자는 아마 천구상의 위치일 것이다. 늦어도 한 달 전, 중력 파 신호에 새로운 좌표가 등장한 것이 분명하다. 그리고 유민은 그걸 감추고 있었다.

"지아 씨, 마우나케아 관측소에 대해서 뭔가 아는 것 있어요?"

미후의 물음에 지아는 고개를 빼꼼히 내밀며 대답했다.

"아니요, 그런 곳이 있는 줄도 몰랐어요. 그런데 자료 받을 때 지구관측부 사람이 거긴 이제 사용하지 않는 무인시설이라고 얘기하는 것 같았어요. 엔지니어들도 다들 퇴직해서 자료 모을 때 고생 좀 했다고 하네요."

달 궤도의 L2 포인트에 거주하는 연구원이 지구의 사용되지 않는 오래된 무인 관측소까지 가서 무언가를 보고 왔다. 미후는 의자를 밀고 일어서면서 말했다.

"지아 씨, 크로포드 씨를 연결해 주세요."

전화기를 들자 연결음이 들리더니 곧 딸깍하는 소리가 흘러나왔다.

"크로포드 씨, 의심가는 정보 하나는 찾았어요. 하지만 한 가지 부탁이 있어요."

「지금 그 정보 가지고 나와 거래하겠다는 건가?」

내가 무슨 말을 한 거지? 미후는 스스로를 의심했다. 자기도 모르게 부탁이라는 말을 뱉어버렸고, 크로포드는 얼마 전 30년을 다닌 홍보부부장을 단숨에 잘라버린 사람이다. 나도 잘릴까? 미후는 기왕 잘릴 거면 일단 해보기로 마음먹었다.

"아니요, 정보는 드릴게요. 제가 아무리 감추더라도 크로포드 씨는 금방 찾아내시겠죠. 제가 뭘 하는지 감시하고 있었다는 것 정도는 알아요."

미후는 그렇게 말하면서 지아를 슬쩍 바라봤다. 지아는 컴퓨터 화면 앞에서 키보드로 무언가를 열심히 쓰고 있었다. 미후는 시선을 다시 돌리고는 말했다.

"신뢰 관계를 위해서라도, 최소한의 보상은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원하는 게 뭔가?」

"제 거주구를 L2 최외각층으로 옮겨주세요. 그뿐이에요."

크로포드의 목소리가 잠시 들리지 않았다. 미후는 조금 불안해졌다. 너무 많은 걸 바란 걸까? 아니면 너무 사소했던 걸까?

「생각해보지. 자료는 지금 당장 보내게.」

전화가 끊어졌다.


 


09.


크로포드는 임원 휴게실에서 창밖의 달을 바라보고 서 있었다. L2 스테이션이 인공중력을 만들기 위해 천천히 돌아가면서 달도 조금씩 이동했다.

"마침 L1 콜로니 지구조망권 때문에 분쟁이 생겨서 빈 거주구가 몇 개 생겼다더군. 그 중에서 적당히 골라서 들어가면 될 거야."

미후는 믿을 수가 없었다. 크로포드가 제공해준 집은 무려 L1 콜로니의 펜트하우스 모듈이었다. 하지만 미후는 그다지 내키지 않았다. 그동안 미후를 깔봤던 사람들이 사는 곳이자 미후에게서 아들을 앗아가고 양육비마저 착실하게 빨아먹고 있는 전남편이 사는 곳이었다. 게다가 전남편을 포함해 인텍 주피터 앤 가스의 임원들이 텃새를 부리고 있어서, 인텍 루나의 일개 직원 출신인 미후가 환영 받을 리도 없었다.

"제가 부탁한 건 L2 최외곽층이에요. L1 콜로니는 홍보부와 너무 멀고..., 아니, 거기선 아예 일을 못 해요. 전 일을 하고 싶어요. 그리고 거기 펜트하우스 사람들은 쓰레..."

내가 지금 크로포드 앞에서 무슨 말을 하고 있는 건가.

미후는 정신을 다시 가다듬었다. 일개 홍보부 직원이 지금 부사장의 어마어마한 제안에 불평을 늘어놓다니. 미후는 크로포드의 반응을 살폈다. 내 입장을 다시 각인시키기 위해 위압적으로 나올까. 그나저나, 왜 갑자기 이렇게 대인배적인 선택지를 준 거지? 내 아들 때문인가? 그럼 아들이 거기 있다는데 왜 거절하냐며 내 모성을 의심할까? 미후의 추측은 하나도 들어맞지 않았다.

크로포드는 그저 어두컴컴한 창에 비친 미후를 바라볼 뿐이었다. 미후는 침묵을 이기지 못하고 말을 이었다.

"...아무튼 L2 최외곽층으로도 충분합니다. 이미 빈 거주구가 몇 개 있다고 알고 있어요."

"자네가 원한다면 그렇게 해주지. 지난 번에 준 정보는 나쁘지 않았어."

크로포드가 미후를 향해 돌아섰다. 웃음기 하나 없는 차가운 얼굴이었다. 커다란 창문 너머로 달이 천천히 모습을 드러냈다. 운석이 만든 둥그런 구덩이들과 헬륨3 채굴기가 만든 가지런한 직선들이 기분 나쁜 조화를 이루고 있었다. 코롤료프 크레이터 가운데에서는 중력파 시설이 새하얗 게 빛났다.

"자네에게 다음 일을 주지."

미후가 살짝 벌리고 있던 입을 다물었다.

"코롤료프로 가게. 이유는 내가 준비해 두지. 지금 당장 준비해."

"달에 내려가란 말씀이신가요?"

크로포드는 대답하지 않았다. 뒷짐을 진 크로포드의 손에서 작은 열쇠 하나가 반짝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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