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과 1사이
김보영
소설가
[첨부이미지 보이기]
 

1. 


사람들은 말하곤 하지. 예수가 십자가에 못 박히던 골고다 언덕에, 부처가 명상에 잠겼던 보리수 앞에, 마호메트가 계시를 들었던 히라산 동굴 앞에, 사진기를 들고 온 관광객들이 바글거리지 않았다는 것만으로도, 인류가 미래의 그 어느 시간에든 시간여행기를 만들지 못한다는 증명이 된 것과도 같다고.

요람에 누운 히틀러를 찾아온 암살자가 없었다는 것만으로도, 수용소에 갇힌 유태인들을 탈출시키러 온 이스라엘 군대가 없었던 것만으로도, 노예선에 실려 끌려가는 흑인들을 찾아온 국제인권단체가 없었던 것만으로도. 1차, 2차 세계대전의 그 어느 전장에도 조국의 역사를 바꾸러 온 미래의 지원군이 없었던 것만으로도 말이지. 트로이 전쟁과 적벽대전 한복판에 노트북을 들고 뛰어다니는 종군기자들에 관한 기록이 없다는 것만으로도 말이야.

고호는 결코 가난하게 살지 않았을 거야. 그가 붓을 씻은 걸레 한 조각이라도 구하러 미술상들이 몰려들었을 테니까. 모차르트도 젊은 나이에 죽지 않았겠지. 진료가방과 수술도구를 든 의사들이 죽어가는 그의 옆에 구름처럼 모였을 테니까. 솔거의 노송도(老松圖)를 찾아, 유기(留記), 신집(新集), 서기(書記)같은 역사서를 구하러 박물관장들이 다투어 몰려가겠지. 이 세상에 소실된 역사적 유물이라는 것은 존재하지 않을 것이고, 불행하게 살다 간 천재란 존재할 수도 없을 거야.

경찰은 범죄가 일어나기 전에 막을 수 있겠지. 법정공방도 진실구명도 필요 없을 거야. 재판은 사건이 벌어지는 현장을 직접 보면서 열리겠지. 운전자들은 추돌사고 전에 도로국의 연락을 받을 거고, 소방관들은 불이 나기 전에 문을 노크하고 들어와 담뱃불을 끄고 가스를 잠글 거야. 부모를 잃은 아이들은 부모의 품에 안길 거고, 길을 잃은 아이들은 집으로 돌아오겠지.

그러니 우리는 시간여행기를 만들 수 없을 거야! 누구든 그 결과를 알았다면 다른 방법으로 했을 일들이, 수많은 시행착오와 돌이킬 수 없는 실수가 역사에 존재했다는 것만으로도. 우리들이 살아오며 수없이 많은 실수를 했다는 것만으로도, 지금이라도 되돌리고 싶은 후회스러운 순간에 그 누구도 나타나 경고해주지 않았다는 것만으로도, 이미 증명된 것과 같아.

그래도 우리는 연구를 계속했단다. 외부에는 ‘이론을 쌓는 작업’이라고 했어. 금을 만들지는 못했지만 화학의 기초를 다진 연금술사들처럼, 영구운동기관을 만들지는 못했지만 물리학의 기초를 다진 19세기 학자들처럼, 우리도 무엇인가를 쌓게 될 것이라고.

물론 우리는 그렇게 얌전한 목적을 갖고 있지 않았어. ‘정말로’ 시간여행기를 만들 생각이었단다.



2.


김여사는 갑자기 세상이 덜컹거리는 바람에 머리를 흔들었다. 그는 현기증을 느끼며 시계를 확인했다. 초침이 분침 뒤에 쪼그리고 숨어서 눈치를 보다가 시침을 뚝 떼고 주행을 시작한다.

여섯 시 반이다. 벌써 몇 번째 여섯시 반으로 되돌아 온 걸까. 앞에 앉아 있는 여자는 분명히 아까 너댓 번은 했던 말을 다시 한다. 조금 전에는 비워져 있었던 과자접시가 어느 새 다시 수북이 쌓여 있다.

아유 그럼요, 말이나 말아요. 우리 담임선생님은 어찌나 성질이 불같으셨는지, 애들이 부러진 마대자루 사대기 바빴다니까요. 언젠가는 애들을 일렬로 세워놓고 엉덩이를 치는데, 중간에 기절하고 실려 가고 난리도 아니었어요. 저는 그 와중에 꼼수 부린다고 제일 끝에 섰는데, 글쎄 마지막이라고 남은 마대자루가 다 부러질 때까지 치시는 거예요. 한 달 동안 앉지도 못했어요. ……그래도 그 때가 좋았죠. 그런 게 다 추억이잖아요. 짧게 단발머리하고 교복치마 입고 깡총깡총 뛰면서 나가면 동네 남자들이 다 돌아봤다고요. 단발머리가 그 때엔 어찌나 보기 싫었는지, 어떻게든 예쁘게 보이려고 앞머리에 풀 발라 세우고 유난을 떨었지요.

그 앞에 앉은 여자도 처음 듣는 것처럼 진지하게 맞장구친다.

그럼요, 정말 그 때가 좋았죠. 뭐 생각할 필요가 있었나요. 시키는 대로만 하면 됐죠. 선생님 몰래 까먹는 도시락이 어찌나 맛있는지, 그렇게 맛있는 건 아마 평생 못 먹을 거예요. 떡볶이가 너무 먹고 싶어서 어느 날은 담장을 넘었는데, 걸려서 일주일동안 온 학교 선생님에게 불려 다녔어요. 그 때 어찌나 혼이 났는지 그 뒤로 내가 떡볶이를 못 먹는다니까. 그래도 그런 게 다 추억이죠.

저는 좋아하는 가수 콘서트에 너무너무 가고 싶어서, 애들 몇이서 땡땡이를 치고 버스를 타고 간 거예요. 돌아와서 얼마나 맞았는지 지금도 상처가 남아 있어요. 에유, 그 나이 땐 다 그렇죠.


덜컹.

아유 그럼요, 말이나 말아요. 그 때가 좋았죠…….


언제부터인가 시간은 한 방향으로만 흐르기를 거부하는 것 같다. 난 파업하겠어요, 우주의 법칙을 주관하시는 분이여. 이제부터 난 쉬고 싶을 때 쉬고 가고 싶으면 아무데로나 가겠어요! 시간은 이제 널을 뛰고, 낡은 레코드판처럼 튀고, 비디오테이프처럼 되감긴다. 김여사는 불안한 기분으로 생각했다. 이대로 평생 반상회에 갇혀 살아야 하는 건 아닐까.


우리 애들은 아무튼 뭐가 불만인지 모르겠어요. 엄마가 재워줘요, 먹여줘요, 학비 대 줘요, 지들이 부족한 게 뭐가 있어요? 엄마가 돈을 벌어 오라고 해요, 살림을 하라고 해요. 앉아서 공부만 하라는 데 그게 그렇게 힘드나요.

애들이 고생을 안 해봐서 그래요. 좀 굶어 봐야 정신을 차리죠. 왜 예전에는 먹을 것이 없어서, 급식 같은 게 어디 있나요. 간식거리가 어디 있어요. 버스가 있기를 해요, 추운 겨울에도 다 걸어서 학교까지 갔잖아요. 대학에 합격하고도 못 가는 사람은 또 얼마나 많았나요, 똑똑한 애들은 가족 먹여 살리려고 다 일찍 취업했지 대학이 다 뭐예요, 돈 남아도는 사람들이나 다녔죠.

애들이 철이 없어서 그래요. 나중에 이름도 없는 대학 간판 갖고 취업문 두드려 봐야 정신을 차리죠. 말이 나왔으니 말이지 요새 평범한 대학 명함 누가 받아주기나 하나요.

다 나이 들어 후회해요. 사회 나와 봐야 그 때 가서 공부가 제일 쉬웠어요 하고 앉았죠. 그 때 가면 엄마, 왜 날 좀 더 잡아주지 않았어요, 하고 원망한다니까요. 나중에 원망 듣지 않으려면 지금 잡아 놔야 해요.

그런데 어제 신문 보셨어요. 무슨 고등학생 애들이 광화문에 나가서 시위를 했다던데요.

잔망스러워서 원, 아니, 한창 공부해야 할 시기에 그게 대체 그게 무슨 짓이래요. 그럴 시간 있으면 영어 단어 한 자라도 더 보라고 해요.

걔네들이 생각이 있어서 했겠어요. 그 나이 때 애들이 머리에 든 게 뭐가 있어요. 떡볶이 먹을 생각이나 하고 가수 쫓아다니기나 하지. 다 공부하기 싫어서 하는 짓이죠.

수애 엄마는 말이 없으시네.

김여사는 사람들의 시선이 집중된 뒤에야 그것이 자신을 부르는 이름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머리를 흔들자 우수수. 먼지 같은 말들이 귀에서 떨어진다.

수애는 요새 어때요? 얼마 전에 석차 많이 떨어졌다고 걱정했죠. 제가 괜찮은 과외 선생 아는데 소개시켜 줄까요? 과외비가 좀 세긴 한데, 그래도 해 본 엄마들 말이 돈이 아깝지 않대요.

“수애는 자살했어요.”

아, 이제야 조용해졌다.



3.


우리는 지금도 시간여행을 하고 있어. 1분에 1분씩, 1초에 1초씩 미래로 흘러가지. 일어나 어디로든 걸어간다면, 거의 알아차릴 수도 없겠지만 0.0000……001초만큼 더 빨리 미래에 도착할 수도 있겠지. 시간은 공간과 같은 척도니까. 아, 물론 너는 나보다 더 잘 알겠지만……. 달린다면, 기차에 올라탄다면, 비행기를 탄다면, 우주선을 탄다면, 조금씩 더 빨리 미래로 갈 수도 있을 거야. 빛과 같은 속도로 날아가는 우주선에 올라탄다면 이론상 시간을 정지시킬 수도 있겠지.

그래, 우리는 미래로 가는 방법을 알아. 하지만 되돌아갈 수는 없어. 그건 음수의 속도와 음수의 거리를 가정하는 것이나 다름없어. ‘어찌나 빨리 달렸는지 오늘 출발했는데 어제 도착했다니까.’라든가, ‘학교가 어찌나 가까운지 첫 발을 떼기도 전에 도착했다니까.’ 하는 것이나 마찬가지로 이상한 이야기지.

하지만 훈(HUN)은 ― 우리 컴퓨터 이름이란다. ― 매번 높은 가능성의 결론을 내놓는단다. 우리는 그가 왜 그런 결론을 내리는지 알 수가 없어. 누구도 알 수 없겠지. 그가 1초 동안에 하는 연산의 가짓수가 이론상 이 우주의 모든 입자를 합친 것보다 많으니까. 물론 우리는 그 문제에 관해서도 매번 혼란과 모순을 느끼지만…….


우리는 시간여행기가 갖게 될 문제점에 관해 토론하곤 해. 어떤 사람은 영화에서처럼 도착 지점 일대를 전자기적으로 소멸시켜야 할 것이라고 하지. 그렇지 않으면 우리가 이동한 뒤, 그 장소에 있는 어떤 물건과 합쳐져 버릴 지도 모른다고. 나무나 자동차 같은 것에 끼어버릴 수도 있다고 말이야.

또 누군가는 시간 이동을 한 뒤에 우주 한 가운데에 떨어질 지도 모른다고 했어. 지구는 자전과 공전을 하고 은하계 전체가 회전하니까. 다른 사람은 시간여행기가 지구에 놓여 있는 이상 관성과 중력의 영향을 받을 테니 걱정 없을 거라고 하지.

5분 전의 과거로 가서 나를 만난다고 생각해 보자. 정중하게 허리를 굽히고 서로 인사를 하는 거지. ‘안녕하세요, 난 나예요.’ ‘안녕하세요, 난 5분 뒤의 나예요.’ 두 사람이 인사를 나눈 뒤, 5분이 지난 뒤에 다시 과거로 돌아가 인사를 나누는 거야 ‘모두 안녕하세요, 난 10분 뒤의 나예요.’ 그런 식으로 우주를 나로 가득 채울 수도 있겠지. 오래 전부터 사람들은 그런 문제를 생각하다가 골치가 아파져서 ‘같은 사람이 같은 시공간에 있으면 폭발해서 죽어버린다.’고 하고는 이불 뒤집어쓰고 자 버렸지.


우리는 서로에게 안부 인사를 하듯 물어본단다.

언제로 돌아가고 싶어요.

다들 영화 같은 사연들을 하나씩 가슴에 품고 있지. 연인을 잃은 사람들, 자식을 잃은 사람들, 첫사랑의 추억을 가슴에 안고 있는 사람들, 고향을 그리는 사람들, 젊은 시절에 했던 사소한 실수를 되돌리고 싶은 사람들.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어느덧 술잔이 놓이고, 그러다 희여멀건하게 날이 새기도 한단다.

내 사연을 묻는 사람은 없어. 아무도 내게는 묻지 않지. 다들 나를 허깨비 같다고들 해. 있는지 없는지 알 수 없는 사람이라고. 좋은 점도 있단다. 일에 전념할 수 있으니까.



4.


어디서부터 잘못되었던 걸까. 김여사는 계속 생각했다. 내가 뭘 그리 잘못했던 걸까. 다른 엄마들과 특별히 달랐던 걸까. 다들 같은 싸움을 한다고 들었다. 아이들이란 대개 그런 질문들로 시간을 낭비하기 마련이지 않는가. 왜 공부를 해야 해? 왜 학교를 다녀야 해? 왜 밥을 먹어야 해? 왜 야채를 먹어야 해? 왜 목욕을 해야 해? 왜 손을 씻어야 해?

애와 마지막으로 싸웠던 날이 떠올랐다. 성적표가 날아온 날이었다. 김여사는 설거지하던 손을 닦지도 않고 떨리는 손으로 봉투를 뜯었다. 또다시 몇 십 등씩 추락한 석차를 보고는 머리를 붙잡고 의자에 주저앉았다. 내가 속상해서 못 살겠어. 내가 속상해서 못 살아.

그러다 열쇠로 문을 따고 딸애 방으로 들어가 수사관처럼 방을 뒤집어엎었다. 서랍을 열고 일기장을 찾고, 가방을 뒤집었다.

하지만 도통 괜찮은 증거물을 찾을 수가 없었다. 요새 애들이 갖고 다니는 것들은 도통 뭐가 뭔지 알 수가 없다. 장신구 같기도 하고 머리핀 갖기도 한 것이 무슨 해괴망측한 장치가 있는 것 같기도 한데, 뒤집어보고 두들겨 보아도 뭐가 어떻게 작동하는지를 알 수가 없다. 하지만 가방을 탈탈 뒤져서 간신히 김여사의 머리로도 이해할만한 물건들은 찾아낼 수 있었다. 뱃지와 머리띠와 타다 남은 촛불, ‘시대착오적인 교육을 중지하라’ ‘무한경쟁을 중지하라’ ‘입시교육철폐’ 따위의 글씨가 쓰여 있는 종이들.

얘가 미쳤어.

김여사는 머리끝까지 화가 치밀었다. 때 마침 현관문이 열리며 딸이 집 안으로 들어왔다. 김여사는 가방 속에서 찾아낸 물건들을 내던지며 속사포 같이 퍼부었다.

너 지금 정신이 있어 없어. 1분 1초가 중요한 시기에 이게 무슨 짓이야. 응? 영어 단어 한 자라도 더 외워야 할 시간에, 이럴 정신이 어디 있어? 수능이 내일 모렌데, 남들은 먹고 자는 시간도 아깝다는데 넌 무슨 깡으로 이래. 너 이러다 대학도 못 가고 엄마 망신살이 뻗치게 할래? 왜 이렇게 엄마 속을 썩여, 응?

딸애는 눈을 꿈벅꿈벅하며 이게 무슨 난리인가 하는 얼굴을 하다가, 바닥에 널브러진 물건들을 보더니 이해한 얼굴로, 사실은 별로 이해하지 못한 얼굴로 물끄러미 자신을 바라보았다.

너 대학 안 갈 거야? 한국에서 대학 안 나오고 사람대접 받는 줄 알아? 너 이러다 남들 다 대학생 됐는데 너 혼자 재수하고 있으면, 엄마 동네 창피해서 어떻게 살아!

아, 그래? 공부하기 힘들어? 너 사회 나가면 공부할 때가 좋았는데 소리 나와! 너 때가 좋은 줄 알아. 니가 행복에 겨워 불평이지. 이런 것도 못 버티면 사회 나가서 버틸 수 있는 줄 알아? 그렇게 근성이 없어서 어떻게 살아! 그럴 거면 당장 죽어 버려!

얘가 어딜 나가? 너 엄마 말이 말 같지 않아? 어디서 배운 버르장머리야, 애가 대가리가 크더니 못된 것만 배웠어! 이리 못 와?


덜컹.

다시 세상이 흔들렸다. 김여사는 심장이 조여 오는 바람에 옷자락을 쥐어뜯었다. 내가 정말 죽으라고 했을까. 잘 기억이 나지 않았다. 그냥 하다 보니 나온 말이었지, 설마 진심으로 듣지는 않았을 거야.

내가 뭘 잘못했을까. 뭘 잘못했든, 그렇게 많이 잘못했을까. 그게 다 자기 잘 되라고 하는 일이었지, 나 좋으라고 한 일도 아니었잖아. 내버려두면 나도 편하고 좋았어. 엄마가 애정으로 하는 말인 줄 알았어야지.

묵묵히 현관에 서서 자신을 바라보던 딸애의 눈이 떠올랐다. 언제부터 나를 그렇게 원수를 대하는 눈으로 보았을까. 마치 자신을 철저히 배신하고 짓밟은 연인을 보는 것처럼, 예전에 바쳤던 신뢰와 사랑을 뼛속 깊이 후회하는 얼굴로. 나와의 모든 관계성과 연결고리를 끊어내고 싶은 얼굴로.

내가 그렇게 잘못했을까, 잘못했다고 해도, 이런 형벌을 받을 만큼 잘못했을까. 조금 더 기다려주었어야 했다. 조금만 더 나이가 들고 시간이 지나다보면 서로 생각도 달라지고, 서로를 용서할 시간이 있었을 것을.

내게 다른 기억을 남기고 갔어야 했다. 좀 더 기회를 주었어야 했다. 아니, 이미 주었을까. 자신을 붙잡아달라는 신호를 끊임없이 내게 보냈는데, 그것을 증오와 반항이라는 형태로 전했을 뿐이었는데, 내가 바보 같이 알아채지 못했던 걸까. 그래서 내게 이런 벌을 내린 걸까.


덜컹.



5.


꽃이 피는 순간을 기다려 보았니. 꽃은 지켜보고 있으면 피지 않아. 아무리 그 순간을 포착하고 싶어도, 꽃은 언제나 네가 잠시 한 눈을 판 사이에 이미 피어 있지. 그건 네 관찰이 양자적 혼돈 상태를 안정된 상태로 만들기 때문이란다.

동물들이 떠나버린 땅은 사막이 되고, 사람이 살지 않는 집은 폐가가 되어 버리지. 방사능물질조차도 지켜보는 사람이 있으면 분열을 멈추고, 주전자에 담긴 물도 지켜보고 있으면 끓지 않아. 물론 너는 나보다 잘 알겠지만…….

생명이 태어나기 전의 바다는 혼돈 상태에 머물러 있었어. 누군가가 하늘을 올려다보기 전에 하늘은 아직 존재하지 않았어. 사람들이 망원경을 만들어 우주 너머를 들여다보기 전까지 우주는 자신의 형태를 결정하지 않았어. 우주선이 달에 도착하기 전까지만 해도, 달은 무한한 가능성을 갖고 있었단다. 처음 달에 발을 내디딘 우주비행사들이 과학자가 아니라 예술가들이었다면, 그보다 더 아름다운 달을 창조할 수 있었으련만.

지금도 너는 매 순간 혼돈에 질서를 부여하고, 확률과 가능성만으로 존재하는 세상의 방향을 결정한단다. 엄마는 네게 유전자를 제공함으로써 너를 낳았지만, 또한 너를 지켜봄으로써 다시 낳았단다. 

과거가 변하지 않는 까닭은 과거가 이미 관찰되었기 때문이야. 수많은 사람들의 시선이 과거를 고정시켰기 때문이야. 미래가 가능성의 영역으로 열려 있는 까닭은, 아직 아무도 미래를 관찰한 적이 없기 때문이야. 만약 이 세상에 아무도 없다면, 과거도 미래도 그저 끝없는 혼돈으로만 존재할 거야.

 

먼 옛날 젊은 학자들이 조심스럽게 이런 가능성에 관해 이야기했을 때, 늙은 학자들은 코웃음을 쳤지. 세상은 그런 식으로 돌아가지 않는다고. 아무도 그런 식의 세상을 본 적이 없었거든. 그건 누구도 ‘관찰되지 않은’ 세상을 볼 수 없기 때문이야. 무엇인가를 보기 위해서는 자신의 눈이 그것을 관찰해야만 하니까.

그게 우리가 보는 세상의 전부야. 사람은 자신이 관찰한 것밖에 알 수가 없어. 누구나 일생 자신의 인생밖에 살아 본 적이 없지. 그런데도 사람들은 나이가 들면 온 세상을 보고 온 것처럼 큰소리치곤 한단다.



6.


돈 들어가는 것 아깝게 생각할 필요 없어요. 나중에 재수하는 비용 생각하면 지금 투자하는 게 이익이라니까요.

이 약이 그렇게 용하대요. 옆 아파트에서는 벌써 3개월 전부터 구매하고 있대요. 애들이 잠을 안 잔대요. 삼당사락이라는데 한 시간 덜 자는 게 어디예요. 내 말 믿고 구입해보자니까.

우리 애는 괜히 과고를 보냈어요. 진학률이 높으면 뭐 해요. 내신이 안 나오는데. 아유, 우리 애가 다른 학교만 가면 전교 1등은 따 놓은 당상인데, 겨우 반에서 턱걸이로 상위권이에요. 잘난 애 기 죽여, 내신 낮아져, 속상해서 못살겠어요.

우리 애도 어렸을 때 미국으로 보내야 했는데, 남들 다 하는 걸 우리 아빠는 왜 못하는지. 미국 살다온 애들 또랑또랑하게 영어 하는 걸 보면 얼마나 속이 답답한지 몰라요. 머뭇머뭇하다가 애 인생 망가트린 거죠. 예? 영어 못하면 인생 망가진 거나 다름없죠. 남들은 다 저 앞에서 출발하는데, 우리 애만 한참 뒤에서 쫓아가야 하잖아요. 그런 안일한 정신으로 경쟁사회에서 어떻게 살아남아요.

“우리 애는 학교에 가기 싫대요.”

김여사는 입을 열자마자 후회했다. 이런 말 밖에 할 말이 없었을까.

애들은 다 그런 소리해요. 철딱서니가 없어서 그러지.

우리 애는 대학에 갈 생각이 없대요. 애가 정신이 나갔지. 요즘 세상에 대학 안 나오면 뭐 해먹고 산대요.

이번에는 초등학생 애들이 성명서를 냈다는데요. 뭐라더라, ‘구시대적 교육을 중지하라’ 라던가?

그걸 걔네들이 냈겠어요. 누가 뒤에서 조종하는 사람이 있다니까요. 걔네 엄마들부터 조사해 봐야 해요.

다 공부 못하는 애들이 열등감에 벌이는 일이예요. 공부 잘 하는 애들은 행동도 얼마나 바른데요. 우리 애는 집에 오면 의자에 딱 앉아서 일어나지 않아요. 화장실 가는 시간도 아깝다고 물도 안 마셔요. 우리는 애 때문에 TV도 컴퓨터도 다 치웠다고요. 애 방해될까봐 걸을 때 소리도 안 내요.

우리 애는 꼭 덤벙대서 한두 개씩 틀려 와서 속상해 죽겠어요. 애가 왜 그렇게 칠칠치 못한지 몰라요. 남편 닮아서 그러나 봐요. 반에서 1등하는 걸로 만족해서 큰일이에요. 반에서 1등하면, 전교 1등은 왜 못하나요? 한 두 문제 안 틀리면 되잖아요. 조금만 노력하면 되잖아요. 그게 그렇게 힘들어요?

김여사는 입을 다물었다. 내 얼굴에 침을 뱉는 격이지. 주위를 둘러보니 말이 없는 여자들은 자신과 비슷한 처지들인 모양이었다. 다들 집에 돌아가 ‘다른 애들은 다 그렇다는데 너는 왜 그 꼴이니.’ 하고 역정을 낼 준비에 바쁜 것 같다.

불편한 마음으로 말을 곱씹는데, 누군가가 옆에서 톡톡 건드렸다. 돌아보니 한 여자가 헤죽 바보스러운 미소를 짓는다. 얼굴을 반쯤 가리는 뿔테 안경을 쓰고 며칠은 감지 않은 듯한 부스스한 머리를  대충 곱창으로 묶고, 화장도 하지 않은 얼굴에 남자 와이셔츠와 양복을 입고 있다. 한참만에야 생각이 났다. 얼마 전에 이사 온 새댁이라던가, 공부를 너무 많이 해서 머리가 이상해졌다는 소문이 돌고 있었다.

“우리 애도 그래요.”

“뭐가요.”

“학교 가기 싫다는 거요. 애가 똑똑한가 보네요. 똑똑한 애들은 다 학교 다니는 거 싫어해요.”

김여사는 약간 더 불편해진 기분으로 엉덩이를 조금 움직여 피했다. 여자는 헤죽헤죽 웃으며 눈치 없이 따라붙었다. 그 손가락에 끼워져 있는 물체를 본 김여사는 더욱 불편해졌다. 검지에 지저분한 토끼인형이 하나 끼워져 있다. 그는 여사의 얼굴에 토끼를 들이대며, 인사를 하듯이 손가락을 까닥했다.

“수애 어머님, 용서하세요, 이 친구가 예의가 좀 없어서. 날씨 이야기부터 하라고 그렇게 당부했는데 말이죠.”

김여사는 눈썹을 가볍게 모았다.

“애들이 좋아하겠어요. 저도 애 어릴 때 놀아주려고 인형극을 좀 배웠는데.”

뿔테 여자는 그게 무슨 소리냐는 얼굴로 눈과 입을 둥그렇게 모으더니 토끼로 눈을 향하고는 뭐가 재미있는지 깔깔 웃었다.

“아, 제가 한 말이 아녜요. 이 친구가 한 말이죠. 최신 인공지능 컴퓨터예요. 에, 그 일부라고 할까요. 메인 서버와 통신 중인데, 뭐라고 해야 하나. 어쨌든 말하고 있는 건 그 친구예요. 이건 통신기고요.”

아, 그렇군요. 김여사는 엉덩이를 조금 더 빼며 고개를 끄덕였다.

“컴퓨터예요, 통신기예요, 어느 쪽이죠?”

“아, 그러니까 말한 친구는 컴퓨터지만 이 토끼는 통신기……. 뭐, 그렇다는 이야기죠. 중요한 건 아녜요.”

물론 그렇겠지요.

“왜 이렇게 전화를 안 받아, 내가 직접 그쪽으로 가야 쓰겠어?”

이번에는 다른 목소리였다.

“컴퓨터가 전화도 하네요.”

“아, 이건 컴퓨터가 아니라…….”

여자는 토끼인형을 휴대폰처럼 귀에 대더니 ‘이따 전화해, 지금 바빠.’ 따위의 말을 지껄였다.

“화성에서 온 전화였어요.”

그러시겠지요. 김여사는 서둘러 주위를 돌아보았다. 이 많은 여자들이 모여 있는 반상회에 하필 이 순간에 자신에게 관심을 두는 여자는 아무도 없었다. 김여사는 여자를 돌아보지도 않고 마뜩한 목소리로 말했다.

“외계인 친구가 있는 줄 몰랐네요.”

“와하하하, 수애 어머님 재밌으시네. 화성에 외계인이 어디 있어요.”

“다리가 세 개 달린 문어 모양 외계인이 사는 줄 알았는데요.”

“그거야 만화에나 나오는 거죠. 화성에는 산소도 물도 없어서 외계인은 살지 않아요.”

이 여자 보게, 미친 주제에 나름대로 논리가 있잖아.

“방금 화성에서 전화가 왔다고 했잖아요.”

“아, 외계인이 아니라 제 친구에요. 얼마 전에 가족이 화성으로 이주했거든요.”

“화성이 살만 한가 보네요.”

“아무래도 지구보다는 낫죠. 아, 나도 지구를 떠나고 싶어요. 화성에서 살고 싶은데.”


저녁이 되어 여자들이 하나 둘 일어나고, 김여사도 일어나 인사를 나누는데, 뿔테 여자가 허공에 대고 허리를 숙이며 악수를 하는 것이 눈에 들어왔다.

“예, 알겠습니다. 그럼 잘 들어가세요.”

그녀는 김여사와 눈이 마주치자 잘못이라도 하다 들킨 사람처럼 헤죽 웃었다.

“홀로그램 통화 중이거든요. 안경에 비치는 영상이라 제 눈에만 보이죠.”

“누구랑 통화했는데요?”

“음…… 보건복지부 장관이랑요.”



7.


시간은 상대적인 수치야. 높은 곳보다 낮은 곳의 시간이 느리게 흐르고, 서 있는 사람보다 빨리 달리는 사람에게 느리게 흐르지. 시간은 사람의 인식 속에서 흘러간단다. 너도 가끔은 깜박 잠이 든 사이에 몇 시간이나 며칠 분량의 꿈을 꾸어본 적이 있겠지.

그런데 학자들은 속도나 중력에 따른 시간의 차이에 관해서는 공식을 만들어 놓았으면서, 왜 시간과 나이의 관계에 대해서는 공식을 만들지 않았을까. 어린 시절이 가장 느리게 흘러간다는 걸. 네 1년과 내 1년이 같지 않다는 걸…….

내가 1년을 하루처럼 보내는 동안, 너는 수십 년의 세월을 살아가는데. 내가 겨우 하루만큼 성장하는 동안, 너는 몇 십 살쯤 나이를 먹고, 내가 몇 년은 살아야 얻을 수 있는 지식과 경험을 며칠 안에 알게 된다고. 누구든 그 문제를 숫자와 기호를 섞은 공식으로 만들어 교과서에 써 넣었어야 했을 거야. 사람들은 숫자로 쓰지 않으면 믿지 않으니까.

그래야 어른들이, 너희들의 시간을 그리 하찮게 여기지 않을 텐데. 너희가 어른이 되어 살아갈 고작 며칠의 시간을 위하여, 수백 년의 시간을 버리고 희생할 것을 강요한다는 사실을 깨닫는다면, 조금은 세상이 달라질 수도 있으련만.



8.


국영수 중심으로 교과서 위주로 했어요. 과외는 하지 않았어요. 수업 시간에 집중해서 듣고 예습 복습 열심히 했어요. 이렇게 말하면 되나요?

해가 졌습니다. 일몰 시간의 집회는 위법입니다. 귀가시간이 늦었으니 중고생들은 모두 집으로 돌아가 주십시오. 우리 야자 열두시까지 하는데요.

거기 나오는 애들 다 공부 못하는 것들이야. 공부 잘 하는 애들은 사회에 불만도 없어요. 공부 못하는 것들이 꼭 차별이니 뭐니 뭐니 떠들어대지.

청소년에게는 집회결사의 자유가 없어. 헌법 읽어 봤어? ‘만 18세 이상의 대한민국 국민은 집회 결사의 자유를 갖는다’고 되어 있어. 그게 무슨 뜻인지 알아? 그 자유가 너희에게는 없다는 이야기야. 뭐? 아닌 것 같다고? 너희가 검사야, 판사야, 헌법조항에 쓰여 있는 걸 니들이 뭘 안다고 토를 달아? 법적으로 동아리 활동도 불법이야. 범죄라고. 니들이 모여서 노는 건 좋아. 하지만 회의를 하든, 조금이라도 동아리에 관계된 이야기를 할 거면 반드시 교무실에 와서 너희가 어디서 뭘 하고 있는지 보고서 올려. 그런데 이게 꼬박꼬박 선생님 말에 말대꾸네. 너 어디서 이런 태도 배웠어? 선생이 니 친구야?

친구가 다 무슨 소용이야. 모두 네 적이고, 네 라이벌이야. 한 명이라도 밟고 올라서야 해. 대학 가면 어차피 다 찢어져. 이름 없는 대학 나와서 명문대 들어간 애들 쪽팔려서 만날 수나 있는 줄 알아? 친구는 대학 가면 얼마든지 사귈 수 있어. 그럴 시간에 수학 문제 하나라도 더 풀어.

인성교육 그거 다 헛소리예요. 고등학교가 해야 할 일이 뭡니까? 대학 보내는 거죠? 학생의 본분이 뭡니까? 면학입니다. 대학 가서 인성교육 얼마든지 할 수 있어요. 지금은 공부할 때죠. 지금을 놓치면 다신 공부 못해요. 1분 1초가 중요한 시기란 말입니다. 지금 뒤쳐지면 영원히 뒤쳐지는 거예요.



9.


내가 시간여행기를 써서 1979년으로 이동한다고 생각해 보렴. 나는 내가 살던 시대까지의 과거를 모두 알아. 그리고 나는 일어난 일은 변하지 않는다는 것도 알아. 나는 곧 대통령이 암살당할 것을 알고, 88년에 서울에서 올림픽이 열리고 2008년에 금융위기가 찾아올 것을 알아. 모두 이미 일어난 일이야. 나는 원하기만 한다면 신문자료나 기록을 동원하여 얼마든지 더 자세한 미래를 알아낼 수 있겠지.

하지만 1979년에 살고 있는 사람의 입장에서는 어떻게 될까.

그의 미래는 무한한 가능성을 향해 열려 있었어. 그는 세상을 변화시킬 수도 있었고 파괴할 수도 있었어. 누구든 사랑할 수 있었고, 미워할 수도, 죽일 수도 있었지. 그런데 그의 시공간에 갑자기 내가 나타난 거야. 그는 나의 존재를 알지 못하고 나도 그를 만나지 않았어. 나는 단지 잠깐 그 시공간에 출현했을 뿐, 미래에 영향을 미칠 만한 아무런 일도 하지 않았어.

그런데 그 순간 그가 갖고 있던, 어쩌면 갖고 있다고 착각했던 모든 가능성이 사라지는 거야. 이제 모든 일은 이미 일어난 일에 불과해. 그는 예정된 시간에 예정된 일을 할 것이고, 예정된 사람과 결혼하여 수많은 유전자 중 예정된 유전자를 택해 아이에게 전달하겠지. 그의 자유의지는 끝나 버렸고, 가능성으로 열려져 있던 미래는 이제 사방이 벽으로 가로막힌 좁은 길처럼 한 방향으로만 진행되는 거야.

그런 일이 가능할까?

미래에서 한 명의 사람이 날아온 것만으로, 시공간 전체가 자유의지를 잃게 되는 일이. 결정되지 않은 미래를 향해 나아가던 인류가 이제는 운명의 노예가 되어, 대본대로 행동하는 기계처럼 살게 되는 거야. 그런 일이 가능할까?

우주가 끝나는 날에, 시간이 끝을 고하는 날에, 단 한 명의 사람이 - 사람이 아니어도 좋겠지 - 누군가가, 우주가 시작되던 지점으로 시간이동을 하는 것만으로, 그 우주의 모든 역사가, 별의 탄생과 소멸이, 수억의 행성에서 앞으로 살아가고 진화하고 자손을 낳고 멸종해갈 모든 생명들의 역사가 결정되어버린다는 일이, 과연 가능한 일일까?

HUN은 말했어. 그럴 ‘가능성’도 존재한다고. 가능성이라는 말은 훈이 좋아하는 말이지. 그는 어느 한쪽으로 말하는 법이 없어. 또, 그것과 반대의 현상이 일어날 가능성이 그보다 약간 더 높다고 했어. 왜냐하면, 고정된 것은 고정되지 않은 것보다 불완전하며, 또 불안정하기 때문에…….



10.


이 동네는 반상회를 너무 많이 해. 김여사는 생각했다. 수다는 간식거리가 바뀌면서 다대 다에서 삼대 삼으로, 이대 이로, 일 대 일로 소규모로 짝을 짓는 방향으로 발전하는 중이었다.

수애는 학교에 가기 싫대요. 우리 애도 그래요, 애들이 다 그렇죠. 살고 싶지가 않대요. 그 나이 때 다 하는 이야기죠. 공부가 지겹대요. 애들은 다 놀고 싶어 하죠. 수애가 어렸을 때엔 늘 전교 1등이었는데. 우리 애도 그래요. 수애는 어릴 때 신동이라고 했어요. 돌 지나자마자 글을 줄줄 읽었다니까. 어머, 우리 애도 그래요.

정말로 다른 집도 마찬가지일까. 다른 집도 아침마다 우리 집처럼 전쟁을 치를까. 잠긴 문을 두드리고, 고함을 지르고, 문을 열쇠로 열고, 아직 침대 속에 박혀 있는 애를 억지로 일으켜 세우고, 밥을 떠다 먹이고 가방을 등에 지울까. 매일 아침 애원하고 협박하고, 옆집에 다 들리도록 싸움을 벌이는지. 아침마다 오늘은 또 어떤 전쟁을 벌이고 무엇을 부술까 걱정할까. 이미 판은 기울어져 애는 벼랑으로 미끄러져 내려가는데, 멀쩡한 판에 서 있는 엄마들이 짜고서 ‘아이, 다 그래요. 우리 애도 그런다니까.’하고 합창을 하는 건 아닐까.

“좋지 않았어요.”

“에?”

고개를 돌아보니 뿔테여자가 자신을 향해 헤죽 웃고 있었다.

“제 학창 시절이요. 그닥 좋지 않았어요.”

누가 물어봤나.

“왜요, 무슨 일이라도 있었어요?”

“글쎄요, 별다른 일은 없었어요. 남들과 비슷했는데, 그래도 안 좋았어요. 사실 잘 기억은 안 나요.  여러 가지 가능성이 섞여 있어서 말이죠. 돌이킬 때마다 조금씩 바뀌거든요.”

대체 무슨 소리야.

“무어의 법칙에 대해 들어본 적 있어요?”

여자가 뜬금없이 질문했다. 이 여자는 아주 나로 대화상대를 잡았군. 걸려도 된통 잘못 걸렸어. 김여사는 퉁명스럽게 대꾸했다.

“무우가 뭐요?”

“반도체 칩에 들어가는 부품의 수가 2년에 2배로 증가한다는 거죠. 그러니까 뭐랄까, 기계가 점점 작아진다는 이야기죠.”

“그렇긴 하더군요.”

“이 속도로 가면 얼마 지나지 않아서 모든 기계가 양자역학의 영향권 안에 들어가게 된다는 거예요.”

늘 생각하는 것이지만, 이 여자는 미친 사람치고는 제법 있어 보이는 용어를 써 댄다.

“양자가 뭐라고요?”

“부품이 점점 작아져서 미시 세계로 들어가면, 뉴턴역학이 아니라 양자역학의 지배를 받는다는 말이죠.”

“나쁠 게 없죠.”

“나쁠 게 있어요. 왜냐하면 그 세계는 확률의 영향을 받거든요. 컴퓨터는 기본적으로 0과 1로 계산을 수행하죠. 그러니까, 스위치가 켜졌는가, 꺼졌는가로요. 그게 기본이에요. 아무리 방대한 계산도 결국은 얼마나 많은 스위치를 켜고 껐는가의 차이일 뿐이죠. 그런데 양자는 두 가지 상태에 동시에 존재해요. 0과 1의 중간상태가 생겨나 버리는 거예요.”

“그러면요?” 

“혼돈이죠! 데이터가 모두 엉키게 돼요. 1이 일정확률로 0이 된다면, 1더하기 1이 2가 될 수도 1이 될 수도 0이 될 수도 있는 거죠.”

대체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거람.

“물론, 그렇게 되지 않도록 하는 장치가 있죠. 그 장치를 개발하느라 양자 컴퓨터를 만드는 데 오래 걸렸어요. 그런데 그 방법을 역으로 이용하는 해커들이 등장했어요. 일부러 혼돈의 확률을 더 늘려서, 이론상 불가능한 결과물이 튀어나오게 한단 말이죠. 요즘 젊은 애들은 아무튼 무서워요. 아날로그에서 디지털로 이행할 때도 비슷한 현상이 있었는데, 이제는 따라갈 수가 없어요. 태어날 때부터 양자론에 접촉되어, 세상이 확률로만 존재한다는 사실을 ‘완전히’ 이해하는 사람들만이 할 수 있는 일들이 있거든요. 수억만 분의 일의 확률로 존재하는 것들을, 수억만 분의 일의 확률을 계산하여 만들어낸다고요.”

이 사람을 치료할 의사는 머리가 좋아야겠어. 김여사는 생각했다.

“그래서요. 애들이 뭘 만들었는데요.”

“시간여행기요.” 

뿔테여자가 말했다. 김여사는 여자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시간여행기요. 그건 설마 뭔지 아시겠죠?”

설마 내가 생각하는 걸 말하는 건 아니겠지.

“그게 뭔데요?”

“시간을 넘나드는 기계죠. 과거나 미래로 가는 거요. 기본 로직이 밝혀진 뒤로 최근 1년 사이에 최소한 스물여섯 개가 만들어졌어요. 사람들이 말하기를 양자 컴퓨터의 숫자와 시간여행기가 만들어질 확률을 생각해 보면 가능한 숫자라더군요.”

“그래서요.” 

“이게 그 중 하나예요.”

여자는 주머니에서 성냥갑을 꺼내들었다. 좋아. 재미있어지고 있군. 적어도 시시껄렁한 반상회 수다보다는 재미있을지 몰라. 이 여자가 칼을 꼬나들고 우리 집 문을 열고 들어오지만 않으면 말이지.

“성냥갑처럼 생겼죠? 속임수예요. 그렇게 보이게 만든 거죠.”

“그렇겠지요.”

“국제정부(무슨 정부라고?)에서는 발견하는 즉시 폐기하도록 하고 있죠.”

“왜요?” 

“세상을 뒤죽박죽으로 만들어 놓거든요. 하지만 막을 도리가 없어요. 이미 과거로 간 사람들이 현재를 망쳐 놓고 있죠. 미래로 넘어 온 과거의 사람들이 다시 망쳐 놓았고요. 지금으로서는 사람들을 화성으로 이주시키는 것밖에는 다른 방법이 없어요.”

“그게 시간 여행기라면, 그걸 통해 과거로 갈 수 있나 봐요?”

“물론이죠.” 

“사람도요?” 

“뭐든 가요.”

“어디 보여 줘 봐요.”

여자는 심각한 표정을 지었다.

“곤란해요. 시간을 더 망가트리게 될 테니까.”

어련하시겠어요.

“하지만 작은 물건이라면 괜찮아요. 아주 가까운 시대 정도로. 생물이 아니라면요. 그런 것은 지금도 확률적으로 사라졌다가 나타났다가 하니까요. 양말 한 짝씩 없어지는 경험 있으시죠? 연필이나 지우개 같은 거요. 존재확률이 낮기 때문이에요.”

그는 연필을 하나 땅에 내려놓고, 마치 사진기로 찍듯이 ‘성냥갑’을 눈에 가져갔다. 한참 뭔가를 계산하는 것처럼 땀을 흘리더니, 한숨을 쉬고 내려놓았다.

“방금 과거로 보냈어요.”

그래, 미친 사람이었지. 그런데 왜 나는 이 사람과 계속 이야기를 하는 걸까. 요새 계속되는 위화감 때문이야. 김여사는 생각했다. 계속 시간이 덜컹거리는 것 같은 위화감. 위화감과 이 사람이 어떻게 연결되는지는 모르겠지만. 뭔가 내가 잃어버린 나사를 이 여자가 갖고 있는 것 같은 기분이 든단 말이지.

“아무것도 변하지 않았잖아요.”

“보기에는 그렇죠. 하지만 이 연필은 시간 여행을 하고 돌아온 연필이에요.”

김여사는 무표정하게 뿔테여자를 바라보았다.

“지금은 현재잖아요. 연필은 조금 전에 과거로 갔고요. 그러니까 지금은 갔다가 돌아온 거죠. 물론 본인은 아무 일도 없었다고 생각하겠지만…….”

“생각이요?”

“만약 생각할 수 있다면요. 생물이라고 가정하면 말예요.”

김여사는 한숨을 쉬었다.

“어쨌든 과거에는 그 연필이 존재한다는 거네요.”

“그럴 수는 없어요. 질량 보존 법칙에 위배되거든요. 질량 보존 법칙은 아세요?”

왜 계속 이런 질문에 대답을 해야만 하는 걸까. 김여사는 뿔테여자를 무표정하게 바라보았다.

“우주에 어떤 일이 일어나든 질량의 총량에는 변화가 없다는 법칙인데요. 아무튼 그렇게 연필이 두 개 생겨나는 일은 없어요. 그런 식으로라면 과거로 계속 연필을 보내서 우주를 연필로 가득 채울 수도 있겠지요. 패러독스예요. 그런 일은 안 일어나요.”

“그러면요?”

“<의식>만 이동하는 거예요. 그래서 과거의 자기 자신 안으로 들어가는 거죠. 어린 시절의 자기 자신의 몸으로요. 다른 물체 안으로 들어갈 수 있다는 소문도 있는데, 그럴 확률은 아주 낮아요. 연계성이 많지 않거든요. 윤리적인 문제도 있고요. 누군가의 몸을 빼앗아버리면 곤란하잖아요. 그러니까, 일반적으로, 우리가 이동할 수 있는 시간대는 자신이 살아있을 때뿐인 거죠."

“과거의 자신 안으로 들어가면 뭐가 달라지는데요?”

“그 연필은 어린 연필의 모습을 하고 있는 나이 든 연필이 되는 셈이죠. 물론 기억은 유지가 안 되겠지만요. 어쩔 수 없어요. 아무래도 뇌나 신경 구조마저 어린 시절로 돌아가니까. 아, 물론 연필이 뇌가 있다면요. 사람으로 설명하면 더 쉽겠는데.”

“미래로 보내면요?”

“마찬가지에요, 미래의 자신의 몸으로 들어가죠.”

김여사는 슬슬 화가 나기 시작했다.

“다시 말하면 이런 뜻이군요. 내가 이 시간여행기를 써서 과거로 가면, 어린 시절의 내 몸 안으로 들어가게 되는데, 그 때에 지금까지의 기억을 잃고 그 시절의 기억만 갖게 된다.”

“맞아요.”

“미래로 가면, 미래의 내 몸으로 들어가는데, 그 때에도 미래의 나 자신의 기억을 이어받는다. 시간여행을 했는지 안 했는지도 기억할 수 없다.”

“맞아요! 야, 어려운 문제인데 이해하셨군요.”

여자는 박수를 쳤다. 김여사는 조금도 기뻐하지 않았다.

“그러면 뭐가 달라진 거죠? 아무것도 변한 게 없잖아요!”

“달라진 게 있어요.”

“뭐가요!”

“<자아>요.”

“자아가 뭔데요?”

“자아가 뭔지 모르겠어요? 수애엄마는 누군가가 자신과 똑같은 모습을 하고 똑같은 기억을 갖고 있다면, 그걸 자신과 같은 사람이라고 할 거예요?”

“그건…….”

“아니겠지요? 자신이 기억을 잃거나 수술로 다른 사람의 모습을 하게 된다면, 그건 자신이 아니므로 죽여 버려도 되겠어요? 아니죠? 정체성이 이동하는 거예요. 다른 사람의 입장에서는 달라진 것이 없겠죠. 하지만 본인 입장에서는, 세상의 종말과 같은 일을 겪은 거예요. 자신의 인격과 기억에서부터 세상까지 모두 뒤집어진 셈이니까.”

“하지만, 기억할 수 없다면 본인도 알 수가 없잖아요?”

“물론 그렇죠.”

“그러면, 시간여행기가 실제로 작동하는지, 작동하지 않는지 대체 무슨 수로 알 수 있죠?”

“시간여행기는 작동해요.”

“어떻게 아는데요?”

“실제로 자신의 몸을 갖고 이동할 수 있는 사람이 있거든요.”

“무슨 보존의 법칙인가 때문에 안 된다면서요.”

“예, 그런데 그럴 수 있는 사람이 있어요. 존재 확률이 낮은…….”

김여사는 입을 다물고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자신의 말의 여운에 빠져 한참 정지해 있던 뿔테여자는 머리를 긁으며 웃었다.

“수애 엄마 말이 맞아요. 작동하지 않았을 수도 있어요.”

놀라운 일이군요.

“이론상 불가능에 가까운 확률을 이용하는 기계라서, 성공확률이 좀 낮아요.”

“잘 됐군요.”

“잘 된 일이 아니에요. 종종 오류가 일어나곤 하거든요. 의식이 아니라 시간이 이동해온다고 해야 하나. 에, 그러니까, 시간은 사람의 인식 속에서 흘러가니까요. 의식은 아직 현재에 남아 있는데, 그 의식이 인식하는 시간대에 오류가 생기곤 해요. 21세기의 사람이 20세기로 이동을 시도했는데, 이동에 실패한 줄도 모르고 지금이 20세기라고 생각하게 되는 거죠. 시간감각이 회복되려면 오래 걸려요. 회복이 안 될 때도 있고요.”

“본인은 알 수 없고요.”

“물론 알 수 없지요. 그리고 두 경우가 결과적으로는 비슷한 문제를 일으키고요.”

뿔테여자는 말을 끝내고 김여사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두꺼운 안경에 가려진 여자의 눈빛이 묘하게 낯이 익었다.

“이런 상상을 하면 재미있잖아요. 안 그래요?”


집에 돌아오던 김여사는 문득 눈이 내리는 것을 깨닫고 걸음을 멈추었다. 이 계절에 눈이라니?

가만 보니, 아파트 창문마다 종이비행기가 눈처럼 쏟아져 내리는 중이었다. 머리가 파르란 코흘리개 꼬마 애들에서부터 교복을 입은 아이들까지 창문과 발코니에서 비행기를 날렸다. 거리를 지나던 사람들이 놀라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구시대적 교육을 중지하라.’는 플랫카드가 어느 집에선가 길게 늘어트려졌다.

“쟤네들이 왜 저러는지 도통 모르겠어.”

김여사는 고개를 저었다.



11.


사람은 모두 어느 정도는 확률적으로 존재해. 나는 어떤 확률에서는 존재하지 않을 수도 있어. 너도 마찬가지지.

우리는 독립된 존재라기보다는 어떤 파형, 장(場)이라고 불러야 할 거야. 지금 이 순간에도 끊임없이 주위와 원자를 교환하고 있으니까. 시간이 지나면, 그 몸을 구성하는 원자 모두가 다른 것으로 교체되지. 그러니 어쩌면 어린 시절의 나와 지금의 나는 다른 사람으로 불러야 할지도 몰라.

부부가 서로를 닮아가는 이유는 그들이 계속 서로의 원자를 교환하기 때문이야. 엄마와 너도 마찬가지야. 엄마의 몸에서 나온 원자가 다시 네 몸으로, 그리고 네 몸에서 나온 원자가 다시 그의 몸으로 들어갔지. 우리들은 구별된 존재가 아니야. 모두 서로 섞여 있어. 같이 보낸 시간만큼 서로를 공유하고 있단다.



12.


“아무튼 무슨 1더하기 1이 0이 될 수도 있다고 하지 않나. 별 놈의 이상한 사람이 다 있지. 왜 그 집에서는 병원에 데려가지 않고 사람을 그리 놔두나 몰라. 원, 무서워서 살 수가 있어야지.”

김여사가 식탁 앞에서 한참을 떠들던 중이었다. 묵묵히 듣고 있던 딸이 고개를 들었다.

“0이 될 수도 있잖아.”

김여사는 화가 치밀었다. 그래, 너는 내 말은 콩으로 메주를 쑨다고 해도 싫겠지.

“쓸데없는 소리 말고 밥이나 먹어.”

“1더하기 1은 아주 큰 확률로 2가 될 뿐이야. 아주 적은 확률이지만 0이 될 가능성도 있어.”

화를 내려던 김여사는 딸의 눈빛을 보고 자신도 모르게 입을 다물었다. 딸은 마치 바보의 말을 참다 참다가, 도저히 참을 수 없어서 결국 입을 열어 버린 것 같은 표정을 짓고 있었다.

“그래, 그래서 성적이 그 모양으로 나왔구나? 시험지에다가 1더하기 1이 0이라고 썼어?”

“세상은 불확정성의 영향 아래에 있어. 작은 물건들은 끊임없이 나타났다가 사라지곤 하지. 지켜보지 않는 것들은 혼돈 상태에 머물러 있어. 사람의 시선이 오랫동안 닿지 않는 것들은 때론 완전히 소멸하기도 해. 불확정성이 너무 커지기 때문이야. 기억도, 사물도, 사람도 모두 마찬가지야.”

얘가 대체 무슨 소리를 하는 걸까. 혹시 요새는 이런 놀이가 유행인 건가.

“대체 지금 무슨 소리를 하는 거니?”

“자신의 기억을 믿어? 매순간 기억이 다시 만들어지고 고쳐지고, 새로운 형태로 바뀌는 걸 알아? 빛만 파동과 입자의 성질을 동시에 갖고 있는 것이 아니라, 모든 사물이 다 그래. 거시적인 세계에서 그 진동은 무시할만한 수준이었는데, 언제부터인가 그렇지 않게 되었어. 시간 여행기 때문이야. 시간 여행기가 퍼져나가는 것을 국제 사회에서 제대로 막지 못했기 때문에…….”

김여사는 혼란스러웠고, 점점 불안해지기 시작했다. 딸애가 자신을 놀리고 있다는 생각과 자신이 알지 못하는 것을 알고 있다는 생각이 동시에 솟구쳤다. 김여사는 이런 상황에서 할 수 있는 유일한 대응을 했다. 그는 식탁을 치며 화를 내었다.

“대체 어디서 무슨 책을 본 거야? 불확정성이라고? 그런 게 시험에 나오니? 수능에 나오느냐고? 교과서에 나와? 쓸데없는 책은 대학 가서 보라고 엄마가 말 했어, 안 했어? 그럴 시간에 영어 단어 한 자라도 더 외워! 교과서에 나오지 않는 책은 보지도 말라고 엄마가 말했지? 외울 것도 많은데 왜 머릿속에 쓸데없는 걸 집어넣어?”



13.


우리는 알고 있어. 처음부터 알고 있었지. 시간을 되돌아가는 일은 일어난 일을 바꾸지도, 고정시키지도 않아.

단지 흔들리게 할 뿐이라는 걸.

마치 정지한 소리굽쇠의 바다에 던져진 새로운 진동하는 소리굽쇠처럼, 파도가 가라앉은 호수에 던져진 돌멩이처럼, 고정된 세계에 새로운 파형을 던져 넣는 거야.

이제 과거도 미래처럼 고정되지 않게 되었어.

세상이 확률로서 존재하지 않았던 시절이 있었을까. 부부가 서로 닮지 않고, 사람이 살지 않는 집도 폐가가 되지 않고, 기억이 회상할 때마다 변화하지 않고, 양자는 확률적으로 흔들리지 않고, 빛은 입자와 파동의 성질을 동시에 갖지 않고, 광자가 두 개의 지점을 동시에 통과하지 않는 그런 세상이 존재한 적이 있을까. 이제는 알 수가 없게 되었어. 설사 그런 세상이 있었다고 해도, 이미 우리의 기억에서 지워져 버렸을 테니까.

이렇게 될 줄 알고 있었다고 했지만, ‘정말로’ 처음부터 그랬는지도 알 수가 없어.

내가 죄책감을 느껴야 할까.

훈은 내게 말했지. 어차피 모든 발명품은 미래를 돌이킬 수 없는 방향으로 변화시킨다고. 증기기관이 발명되지 않았다면, 자동차가 만들어지지 않았다면, 탄소연료를 이용하는 방법을 인류가 알지 못했다면, 인쇄술이 없었다면, 전기가 없었다면, 원자력이 없었다면, 폭탄이나 총이나 미사일이 없었다면, 인류의 미래는 완전히 다른 방향으로 나아갔을 거라고. 우리는 그저 과거를 같이 바꾸었을 뿐이라고. 사람이 아무것도 만들지 않았어야 한다고 말하는 것은 의미가 없다고 했어. 결국은 만들게 될 테니까. 그저 다음에는 더 나은 것을 만들려고 노력해보라고 하더구나.

어차피 알 수 없는 일이라고 했어. 시간여행기가 생겨난 그 순간에, 수많은 시작점이 다시 생겨날 거라고. 우리들이 무의식중에 이 지식을 과거에 흩뿌릴 것이고, 그 영향에 의해 누군가가 과거에서 다시 시간여행기를 만들게 될 거라고. 우리는 확률적으로 시간여행기를 만들었을 가능성이 높은 사람들일 뿐인 셈이야.



14.


수애는 아파트 베란다 난간에 한 다리를 걸치고 앉아 있었다. 머리를 양 갈래로 따고, 여드름이 가득한 얼굴에 고집 세어 보이는 입을 가진 아이였다. 손가락에 토끼모양의 통신기를 끼우고, 뭐라고 중얼중얼하는 중이었다. 한 손을 가슴에 얹고 눈을 감고, 뭔가 숭고한 맹세라도 하는 것처럼.

뿔테 안경의 여자가 다가왔을 때, 수애는 손가락을 뒤로 숨기며 경계하는 빛으로 노려보았다. 그리고 여자가 입고 있는 촌스러운 파란 줄무늬 나팔바지며 시대착오적인 체크무늬 셔츠를 의심스러운 눈빛으로 살폈다.

“뭘 쳐다보고 있어요? 저리 가요.”

“어머, 여기 전세 놨니?”

여자는 모든 것을 알고 있다는 듯이 미소를 지었다. 수애는 난간에서 내려서서 반대쪽으로 달려갔다. 여자는 차분한 발걸음으로 수애를 따라왔다. 낑낑거리고 다시 올라가 앉은 수애는 기분 나쁜 표정으로 물었다.

“왜 쫓아와요?”

“난 가고 싶은 곳으로 가는 것뿐이야.”

수애는 여자를 묵묵히 살펴보다가 물었다.

“아줌마는 정부에서 파견 나온 심리 상담사죠?”

“왜 그렇게 생각하는데?”

“양자역학을 이해하는 어른은 이곳에 없으니까요.”

맞은편 아파트에서 불이 붙은 종이비행기가 떨어져 내렸다. 이에 화답하듯 그 아래층에서, 또 위층에서 종이비행기가 떨어졌다. 아까 시위의 남은 불씨처럼.

“오늘 난 엄마한테 1더하기 1이 0이 될 수도 있다고 했다가 맞을 뻔 했어요.”

수애는 한숨을 푹 쉬었다. 뿔테 여자는 이해하는 듯이 웃었다.

“옛날 사람들은 그런 개념을 갖고 태어나지 못했나 봐요. 인식 단위가 적은 게 아닐까요? 매양 그러잖아요. 애들은 다 똑같다, 사람 사는 게 다 똑같다, 여자는 똑같다, 남자는 똑같다, 엄마는 똑같다, 자식은 똑같다. 얼마나 인식범위가 작으면, 그 수없이 많은 파형이 다 똑같게 보일까요? 세상을 평균값 하나로밖에 보지 못하나 봐요.”

수애는 입술을 내밀며 아파트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어른들은 무지개가 일곱 색깔이래요. 파장의 흐름이 이어진 것뿐인데. 백인과 황인과 흑인을 구분해서 말해요. 그들 사이에 있는 무수한 색소의 변화를 보지 못하고요. 단어는 단지 평균값을 대표하는 상징일 뿐인데, 단어에 세상을 끼워 맞추려 해요. 얼마나 많은 종류의 검은 색과 흰 색이 있는지 어른들이 이해할 수 있을까요?”

수애는 손가락에 끼워 둔 토끼모양 통신기에 음성 메시지를 입력하고, 손가락을 구부려 입력 신호를 보내고는 피아노를 치듯이 허공을 두드렸다.

“이 동네는 엄마들에서부터 선생님들까지, 70년대가 온통 삼켜버렸어요. 현재에 살고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어요. 그러니까, 그렇게 우리 집도 일찌감치 화성으로 이주해야 한다고 했는데.”

수애의 손끝의 움직임을 따라 통신기에 접속해 있던 다른 아이들의 홀로그램이 뿌려지듯이 나타났다. 침대에 누워 책을 들여다보는 안경잽이 소년도 있었고, 의자에 거꾸로 앉아 발끝까지 내려오는 잠옷드레스를 입고 곰인형을 껴안은 소녀도 있었다. 영어로 떠들고 있는 눈이 파란 아이도 있었고 국적을 알 수 없는 언어를 쓰는 각국의 아이들도 조그만 홀로그램 속에서 떠돌았다.

“30대부터 발병하는 병이었는데, 요즘에는 20대에도 발병한대요. 정부에서 하는 일이라고는 정신과의를 보내서 한 달에 두 번 하는 집단치료가 전부죠. 어른들은 반상회인 줄 알고요.”

수애는 그 중 한 홀로그램을 토끼의 귀로 가리켜 확대했다. ‘폴란드’라고 자막이 쓰여 있는 소년이 뭐라고 떠들자, 수애는 그에 화답하고 손가락을 휘돌려 파일을 전송받았다. 전송된 파일은 선물상자 모양으로 손가락 위에 떠돌았다.

“엄마는 완전히 과거에서 살고 있어요. 애들은 모두 160개국의 언어를 실시간으로 번역해주는 번역기를 갖고 다니는데, 나보고 영어 단어를 외우고 있으래요. 미국이 망하고 영어가 세계어의 지위를 잃은 게 언제인데 말이죠. 대학 등급이 사라진 지가 언제인데 아직도 대학에 안 가면 사람 취급도 못 받는다는 말을 입버릇처럼 해요.”

맞은편 아파트에 걸려 있는 ‘구시대적 교육을 중지하라’는 플랫카드가 바람이 불 때마다 슬프게 휘날렸다. 수애는 폴란드에서 받은 선물 상자 모양의 홀로그램을 손끝으로 건드렸고, 상자가 열리며 음악이 빛 무늬와 함께 흘러나왔다.

“난 학교에 가고 싶지 않아요. 학교 선생님들도 모두 과거에서 왔어요. 입시교육에 모의고사까지 부활했다고요. 물리 시간에는 이제는 쓰이지도 않는 뉴턴 역학만 가르치고, 세계사와 한국사는 70년대식 해석법을 써요. 하루에 다섯 시간씩 국영수만 가르치죠, 그나마도 옛날 언어와 계산법이고, 우리더러 글쎄 친구는 대학 가서 사귀래요. 70년대에서 온 분들은 그나마 양반이에요. 일제시대나 조선시대에서 온 사람들도 있어요. 6.25때 피난 온 분도 있어요. 빨갱이란 말을 입에 물고 사시죠. 오래 전에 통일이 된 줄도 모르고요. 살기 힘든 시대였다는 건 이해하지만, 그 시대에서 오려면 다른 사람의 몸을 빼앗아야 하는데 말예요, 양심도 없어요.”

수애는 손가락을 움직였다. 종이비행기 모양의 홀로그램이 나타나 폭죽과 같은 소리를 내며 아파트 아래로 떨어졌다. 그에 화답하듯이 같은 홀로그램이 아파트 여기저기에 나타났다.

“뭐라고 말 좀 해 봐요.”

“내가 뭐라고 해야 할까?”

“정부에서 파견 나온 심리 상담사잖아요. 불쌍하지도 않아요? 위로라도 좀 해 줘요. 난 정말로 죽고 싶다고요. 어떻게 해 주지 않으면 죽어 버릴지도 몰라요. 왜 어른들은 애들이 죽고 싶다고 하면 농담인 줄 알아요? 정말 농담이 아니라니까요?”

“농담이 아닌 것 알아.”

뿔테 여자는 조용히 고개를 숙이고, 수애의 귀에 입을 가져갔다. 수애는 눈을 크게 뜨고 여자를 바라보았다.



15.


시간여행기는 처음에 사람들이 과거를 그리워하는 마음에서 생겨났을 거야. 늙은 사람들이 과거를 그리워하며 돌아보았기 때문에, 그 마음이 병을 만들고, 시간곡선을 휘게 만들었을 거야. 이제는 어느 쪽이든, 알 수 없는 일이 되고 말았지만.

지금도 네 죽음을 기억해.

내가 죽었던 것을 기억해.

내가 시간여행기의 원인이 아니라, 결과로서 존재한다는 것을 알아. 과거가 흔들려서 태어난 존재라는 것을 알아. 결과가 어떻게 원인을 제공할 수 있느냐고 물을지도 모르지만, 너는 이해할 수 있겠지……. 미래는 확률로서만 존재하고, 내가 그 확률을 내 미래로 끌어들였다는 걸.

시간 여행기가 영원히 만들어지지 않으면 나는 사라져버리겠지. 그 문제를 분명히 할 필요는 있었지만, 그 때문에 시작한 일만은 아니었어. 뒤섞인 과거를 통제할 방법을 찾기 위해서는, 나 자신이 시간 여행기의 시작점이 될 필요가 있었으니까. 그 작동원리와 형태를 내가 결정해야만 했어. 내가 아니더라도 누군가가 만들게 되겠지만, 그렇게 되면 내 영향력을 벗어나게 되니까.

하지만 지금으로서는 이 기억도 확신할 수가 없어. 최초에 내가 어떤 의도로 이런 일을 했는지, 이미 알 수가 없게 되었으니까. 원인과 결과가 뒤섞여 있어서 뭐라 말하기가 어렵지만, 네 죽음은 내 탓일지도 몰라……. 화성기지를 건설하고, 지구인을 이주시키고, 혼돈을 정리할 방법을 찾아다니는 와중에도 종종 그럴 가능성을 생각하곤 해.


나는 어떤 세상을 보았어. 그 시대에는 시간여행기가 사람들 사이에 유행처럼 퍼져 있었지. 많은 사람들이 자신들의 시대에서 도망쳐 다른 시대로 갔어. 그들은 자신들의 시대를 함께 갖고 왔지. 낡은 사고방식과 행동방식을 그 시대에 뿌려 놓았어. 먹물에서 도망쳐 나온 먹처럼, 먼지구덩이에서 나온 먼지 알처럼.

하지만 아무도 자신들의 시대에서 도망칠 수 없었어. 그들이 싫어했던 모든 것은, 결국 그들 자신이 만들어 놓은 것이었으니까. 그들은 자신들이 다른 시대에서 왔다는 것을 기억하지 못했어. 시간의 흐름을 알지 못하고, 시대를 읽지 못하고, 자신들이 떠나온 시간에 머물렀지.

과거에서 온 어른들은 아이들이 자신들보다 영리한 줄 모르고, 부끄러움도 모르고 과거의 방식으로 가르치고 있었어. 자신들이 아는 것을 모두 아는 줄도 모르고, 자신이 경험한 것이 모두 지나간 시대의 것인 줄도 모르고, 너희들의 시간을 낭비하고, 옭아매고, 어리석은 일에 시간을 들이게 만들고, 낡고 고루한 가치관을 강요하며 자신들이 너희들의 인생의 선배고 많은 것을 아는 사람인 척 했어. 자신들이 과거의 사람들이라는 것을 잊어버리고.

그곳에서 너를 만났어. 엄마도 만났지. 그 시대의 정부 일을 하면서 엄마를 치료해보려고 했는데 잘 되지는 않았어. 엄마는 자신이 시간여행을 한 것을 기억하지 못했고, 되돌아갈 방법도 알지 못했으니까.

그래, 너도 짐작하겠지만, 내가 몸을 갖고 과거로 갈 수 있는 까닭은, 시대를 떠돌아다닐 수 있는 까닭은, 내가 존재할 확률이 지극히 낮기 때문이야. 나는 0과 1 사이에 존재하기 때문에, 같은 장소에 두 명이 있어도 문제를 일으키지 않아. 두 명이 모여 있어도 결국 높은 확률로 0이 되곤 하니까.

내 죽음을 기억해.

네가 죽었던 것을 기억해.

어린 내가 죽었던 것을 기억해.

난간에 앉아 있던 너를 기억해. 네가 한 다리를 난간에 내놓고 앉아 자신에게 속삭이던 말을 기억해. 너는 많은 경우에 죽음을 택하지만, 그 때에 너는 살 가능성이 있었어. 그날 확률이 흔들렸고, 네 미래가 갈라졌어. 지금 나는 그날의 아주 조그만 가능성으로서, 네가 택하지 않은 길에서 갈라져 나온 희미한 그림자로서 살고 있어.

시간여행을 할 때마다, 내가 다시 돌아갈 수 없게 되기를 기도해. 그건 내가 존재할 확률이 높아졌다는 의미일 테니까. 그래도 다시 과거로 가게 되면, 나는 그 날의 너를 찾아가 귀에 대고 속삭일 거야. 내가 아직 그 날을 기억하고 있고, 아직 네가 했던 작은 맹세를 지키고 있다고.

넌 그 날 한 손을 가슴에 올려놓고 속삭였어.

‘나는 아이들에게 너희 때가 좋았다는 말을 하지 않을 거야.’

그 시절이 좋았다는 말을 하지 않겠어.

너희 때엔 다 그런 거라는 말도, 누구나 겪는 일이라는 말도 하지 않겠어. 내게 그 말을 ‘하지 않는’ 어른이 아무도 없다면, 그럴 수 있는 어른이 이 세상에 남아 있지 않다면, 내가 나이를 먹고 그 말을 하지 않는 사람이 되겠어. 그 말에 담긴 무심함과 비겁함을, 어리석음을 아는 어른이 되겠어.

그 맹세를 지키기 위해 어른이 되어야 한다면 오늘 죽지 않고 나이를 먹어갈 거야. 서른이 되고 마흔이 되고, 쉰이 되고 예순 살이 되겠어. 오늘의 나를 위해서 늙어갈 거야. 지금 이 순간의 나를 위해서.



HOT CLICK
(C) 2005~2021 Asia Pacific Center for Theoretical Physics ALL RIGHTS RESERVED. sc(at)apctp.org
크로스로드는 정부의 과학기술진흥기금 및 복권기금 지원으로 국민과 함께하고 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