죄악의 행성에서 <1부>
Havoc /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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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원이 낙원이기 위해서는 평범한 현실이, 현실이 그나마 만족스럽기 위해서는 지옥이 필요했다. 인간은 끊임없이 주변과 자신을 비교하는 한 영원히 그렇지 않을까.

본디 글로디아는 영광이란 뜻의 단어에서 유래한 이름을 가진 것에 걸맞게 썩 살기 좋은 행성이었다. 토질이 척박하긴 했지만, 이 행성의 지표에서는 어디를 파든 금, 은, 백금 같은 귀금속에 철, 구리, 알루미늄 같은 중요한 금속들, 그리고 채굴하기 힘든 희토류까지 없는 것이 없이 쏟아져 나왔다. 이 행성의 얼마 안 되던 주민들은 이내 돈방석에 앉았고, 노동을 하지 않고도 풍족하게 살 수 있었다.
비록 광업으로 인한 환경오염에 시달리긴 했지만, 빈부격차와 온갖 사회문제에 시달리던 다른 행성들과 비교하면 이 땅은 분명 낙원이라 할 만한 곳이었다.
하지만 모든 자원이 바닥나고, 전 우주로부터 흘러들어오던 돈이 끊기자 낙원은 더 이상 낙원이 아니었다. 소행성 표면처럼 울퉁불퉁한 대지와 중금속으로 오염된 강과 바다만이 남았으니까.
이렇게 돼서 먹고 살길이 막막해진 주민들은 기발한 방법을 생각해냈다. 이 행성에 범죄자들을 수용하고 먹고 사는 것이었다.
이 폐광이 감옥으로 적절하다는 사실은 금방 증명되었다. 일반적인 감옥처럼 교도관을 고용할 필요도 없었고, 그 어떤 산업도 불가능한 행성이기에 식량으로 죄수들을 통제하기도 유리했다. 그저 폐광이 가득한 대륙에 처박아 두고, 이따금 먹을 걸 던져 주면 되었다. 그 어느 곳보다 저렴한 비용으로, 안전하게 죄수들을 격리할 수 있었다.
이렇게 지옥은 우주에 현실로 나타났다. 계속 일을 안 하고 돈을 벌어 보려는 행성 주민들의 욕심, 비용을 아껴 보려는 우주 통합 정부의 계산이 맞물려서.
감옥행성 글로디아는 비용 면에서도 효율적이었지만, 우주의 치안을 유지하는 데도 효과적이었다. 이 행성의 악명이 퍼지자, 사람들은 이 행성에 갇히지 않기 위해서라도 범죄를 저지르지 않았다.
지옥이 종교적 교리를 지키게 하듯, 사람들은 글로디아를 두려워해서 우주 정부의 법을 지키려 했다.

다소 불합리한 면이 있어도, 글로디아에 가는 것보다는 현실에 순응하고 사는 것이 낫다. 지원은 지금껏 그렇게 생각했다.
현실도 썩 나쁘진 않았다. 정보통신기술의 발달로, 예전에는 몇몇 국회의원들이 할 법령 제정도 모든 사람들이 참여할 수 있었다. 이 세상에 내 뜻을 반영할 수 있으니 이 정도면 괜찮은 세상 아닐까.

-법률 개정에 따른 국민투표 결과가 공표되었습니다. 고용된 노동자에게 주 7일, 일 12시간 근무를 강제하는 법은 투표율 54%에 찬성률 84%로 통과되었습니다. 자연인 매춘부가 매수자의 요구가 무엇이든 생명의 위협이 없는 한 받아들이게 하는 법은 투표율 82%에 찬성률 54%로 통과되었습니다.

“쳇.”

지원은 자신이 관심 가지고 있던 법안의 투표 결과를 보고 혀를 찼다. 주 7일, 하루 12시간 근무가 말이 되나. 이런 법에 동의하는 사람들이 이토록 많을 줄 몰랐다.
뉴스 아래 달린 사람들의 댓글을 보니 왜 그런지 이해가 갔다.

‘지금 실업률이 95%인데 일하는 것만 해도 감지덕지지.’

‘꼬우면 관둬. 대신 나 시켜주면 얼마든지 할 수 있어.’

어차피 자기 일 아니니 좆되보라는 심보로 그렇게 투표한 백수들, 그리고 노동 강도가 너무 과도하단 의견을 귀족 노동자들의 배부른 투정으로 생각하는 사람들이 태반이었다.
지원은 질투심에 미친 잉여인생들의 악성 댓글을 보며 한숨을 푹푹 쉬었다. 그는 노력했기 때문에 명문대에 가고, 좋은 학점을 받고, 일자리를 얻을 수 있었다. 취업할 수 있는 상위 5%에 들 노력을 안 한 인간들이 성공적인 삶을 사는 사람들의 일상을 망치려 하고 있었다.
그래도 매춘부가 매수자의 요구를 무조건 받아들여야 한다는 법이 통과된 건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자동화 때문에 인간이 거의 필요 없는 세상에서, 실업자들은 뭐라도 해야만 했다. 매춘도 그런, 살길이 막막한 사람들의 대놓고 내세우기 뭣한 아르바이트 중 하나였다.
아르바이트, 그랬다. 지원은 그게 정확한 표현이라고 생각했다. 점수와 시험으로 능력을 증명한 그와 달리 몸뚱아리 하나 가지고 하는 걸 일이라 할 수 있겠는가. 노력하기 싫은 자들이 쉽게 살려고 몸을 굴리는 거라 여겼다.
거기다 인간의 몸이 그리 가치있는 존재가 아니란 사실이 창녀와 남창에 대한 그의 경멸을 더욱 부추겼다. 그가 근무하는 복제인간 회사에서는 고객들이 좋아할만한 미인의 육신을 만들어 낸다. 뇌가 없이 컴퓨터로 제어되는 인간이기에, 상대의 요구에 절대 복종한다.
여기서 문제가 생겼다. 자연인, 그러니까 정상적인 인간이 낳은 사람은 복제인간보다 외모가 떨어졌다. 거기다 돈 들여서 만들지 않아도 생겨나는 존재라 복제인간보다 더 저렴했다. 이런 저렴한 존재가 복제인간과 달리 이런저런 조건을 붙인다. 이건 싫고, 다치면 안 되고, 같은 사람으로 대해 달라고 하고.
이건 아주 가당치도 않은 일이었다. 물론 이건 지원 개인의 분석이지만, 그만의 유별난 생각도 아니었다. 이 불공정함을 시정하기 위해 사람들이 움직인 건 당연한 것이었다. 사람이란 가치에 따라 대우받아야 하기에.
이 법안은 법정노동시간 개악-물론 지원의 생각이다-보다 훨씬 관심을 끌었다. 일하는 사람이 열에 하나도 안 되는 세상에서, 노동시간보다 이런 일상적인 불공정이 더 관심을 끌기 마련이었다. 높은 투표율이 이를 반영한다.
이 법안은 아슬아슬하게 통과됐다. 지원은 누가 찬성하고 누가 반대했는지는 별 관심이 없었다. 어쨌든 통과되었고 세상은 좀 더 공정해졌다는 것이 중요했다. 값어치 없는 존재에게 그에 걸맞은 대우를 하는 공정함, 이건 아주 만족스러웠다.

“아흠”

어쨌든 이제 휴일도 없어졌으니, 얼른 자야겠다. 출퇴근에만 8시간을 쓰는데, 12시간을 일하면 침대에 세 시간이나 누울 수 있을지 모르겠다. 직장 근처는 집값이 너무 비싸서 그의 월급으로는 월세를 내기도 벅찼다.

법이 바뀐 이후로 졸린 눈을 비비며 출근하고, 출퇴근 시간에 꾸벅꾸벅 조는 나날이 이어졌다. 지각이 잦아졌고, 그때마다 연차가 까이고 경고가 누적되었다.
아예 집에 들어가지 않고 회사에서 잠을 자가며 일하기 시작했다. 출퇴근을 하기보단 그러는 것이 덜 피곤했다.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도 모르는 나날이 이어졌다.
그가 그렇게 정신없이 사는 와중에도 법은 계속 늘어났지만, 그는 자신을 어떤 법이 옭아매는지도 알 겨를이 없었다. 인간이 우주에 나간 지 오래지만, 그의 세계는 회사밖에 없었다. 다시금 법안 바꾸는 데 찬성한 백수들을 욕했다.
경영진은 요즘 회사에서 숙식을 해결하는 사람들이 많고, 그것이 비용 증가를 가져온다며 회사에서 잠을 자는 걸 금지했다. 지원은 이제 어떻게 해야 할지 막막했다.
그때 눈에 들어온 것이 회사 바로 옆에 있던 아파트였다. 밤낮으로 불이 켜져 있는 회사와 다르게 불이 들어온 집이 거의 없는 아파트들, 저 아파트들이 거의 비어 있는 건물이란 건 그도 잘 아는 사실이었다.
그건 다 부자들이 투자용으로 사 놓은 것이라, 집이라기보단 콘크리트로 된 증권에 가까운 존재들이었다. 이 우주에서 땅값 비싼 곳의 아파트들은 다 그 모양이었다. 감당 안 되는 월세에 항상 비어 있어도, 집값은 항상 올라가기만 했다.

‘비어 있으니 잠깐 들어가서 눈만 붙이다 나와도 괜찮지 않을까. 어차피 주인은 없으니…….’

워낙 몸이 힘들다 보니 그런 생각이 들었다. 누구에게도 들키지 않으면 되는 거 아닌가? 안 쓰는 빈집에서 잠만 자고, 흔적 없이 나오면 손해 보는 사람은 아무도 없지 않은가. 빈집이니 들킬 염려도 없겠지 싶었다.
그 생각이 화근이었다. 그가 글로디아로 끌려가게 만든 화근 말이다.

지원은 하룻밤 빈 집에서 지내보고, 그것이 꽤 편하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한 번 매력적인 선택지를 알게 된 그는 빈집에서 잠을 자고, 씻는 건 회사에서 해결하는 식으로 한 달여간 살았다.
그러다가 무단침입으로 잡혀갔다. 하필이면 그가 잠을 자던 집 주인이 자신 소유의 부동산을 구경하는 낙으로 살던 사람이었던 게 화근이었다. 각지에 소유한 집과 땅을 돌아가면서 구경하려면 한 번 순회하는 데 두 달 정도 걸린다던데, 그 주기가 돌아왔고, 그가 남겨놓았던 이불을 발견한 것이다.
퇴근 후 빈집으로 돌아왔던 그는 잠복하고 있던 경찰에게 체포되었다.

“난 명문대를 나왔고 직업을 가진 사람입니다. 이런 스펙을 가진 사람이 어찌 죄를 짓겠습니까. 전 죄를 지을 생각은 없었어요.”

이렇게 자신이 남에게 폐를 끼칠 사람이 아니라 호소했지만, 씨알도 먹히지 않았다.

“당신은 주인의 재산권을 침해했습니다. 그건 명백한 범죄입니다.”

그가 체포되자, 회사는 곧바로 그를 해고했다. 회사의 명예를 떨어뜨렸다며 추가적인 보상금을 요구하는 소송도 걸렸다.
그는 알지 못하는 사이에, 소득을 가진 사람이 부동산을 불법적으로 점유했을 때의 처벌을 강화하는 법률이 통과되었음을 알았다. 당연히 5%의 기득권층-지원은 자신이 기득권층이라 생각했다-을 질투하는 백수들의 몰표로 통과된 법률이었다.
그들은 자신보다 나은 사람들을 끌어내리는 데만 관심이 있었다. 그래야 자신이 들어갈 자리가 생긴다고 여겼으니까 말이다.
지원은 그에게 불리한 법률을 보며 뉴스에 관심을 갖지 않았던 과거를, 투표에 참여하지 않았던 일을 후회했다. 저 무식하고 질투심만 가득한 놈들을 채찍질하는 법들이 나올 때마다 꼬박꼬박 찬성표를 던져서 저들을 응징했어야 했는데.

“제 행위로 손해를 본 사람은 없다고 봅니다. 반성하고 있으니 부디 선처를 부탁드립니다.”

그는 자신의 행위가 아주 경미한 잘못임을 입증하려 애썼다. 그의 입장에서는 그랬다. 건물은 조금도 상하지 않았고, 손해 본 사람은 아무도 없지 않는가. 자신만 나가면 모든 게 원상복구 될 거라 여겼다.

“피고는 피해자가 받았어야 할 임대료 수익을 편취했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러니 피해가 없다고 말할 수 없습니다.”

검사는 이렇게 말했고, 판사도 그에 동의했다. 그들은 지원을 벌레 보듯 바라보았다. 지원이 상위 5%라도, 더 높은 사람이 볼 때는 그냥 대체할 수 있는 노동자 1이며 범죄자에 불과했던 것이다.

“판결은 다음과 같습니다. 모든 혐의에 대해 유죄가 인정되며, 이에 대한 처벌로 글로디아로의 20년 유배를 선고합니다.”

글로디아로의 유배가 선고되었을 때, 그는 길길이 날뛰었다. 공정하지 않았다. 글로디아는 도둑질 같은 진짜 범죄를 저지른 사람들이 가는 곳 아니던가? 왜 그처럼 사소한 실수를 저지른 사람까지 그곳으로 보내는 건가.

“말도 안 됩니다. 판사님, 제가 잘못했습니다. 하지만 글로디아로 갈 만큼 잘못했다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부디 재고해 주시기를 청합니다.”

판사는 그를 한심하단 눈으로 바라보았다.

“김지원 씨, 지금 우주의 모든 시민들은 범죄자를 엄벌에 처하는 걸 바라고 있습니다. 더욱이 지원 씨처럼 다른 사람보다 여유 있는 사람에게는 권리만큼이나 더 엄중한 책임이 따르길 원하죠.”

그 와중에도 ‘여유 있는 사람’이란 표현이 그의 마음을 다소 풀어주었다. 자신이 평생 노력해서 성취한 것들을 그보다 공부를 더 잘한 사람이 인정해 준 것 같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뒤 판사의 꾸짖음이 그의 마음을 더욱 나락으로 떨어뜨렸다.

“피고보다 못한 처지의 사람들도 법을 존중하며, 주어진 권한 내에서 생활하고 있습니다. 전 우주의 2천억 인구 중 글로디아에 유배된 사람은 100억 남짓인 것만 봐도 이 점을 알 수 있습니다. 그 점만 봐
도 당신의 죄는 선처의 여지가 없습니다. 지금 당신의 죄를 가볍게 처벌한다면, 시민들은 그걸 불공정하게 여길 겁니다.”

그는 고개를 떨궜다. 100억, 당연하게만 느껴졌던 이 숫자가 이제 와서야 불합리하게 느껴졌다.
판사는 마지막으로 뭐가 생각났는지 한 마디를 덧붙였다.

“글로디아는 우리가 질서를 지키게 하는 원천입니다. 그곳으로 죄인을 보내는 건 우리 사법부의 신성한 의무입니다.”

눈에 보이는, 언제든 떨어질 수 있는 지옥, 지구 시대의 교도소와 달리 유지비용도 얼마 안 드는 이상적인 징벌의 공간, 이 글로디아에 대한 판사의 믿음은 실로 절대적이었다. 그곳에 한 명이라도 더 많은 죄인을 보내는 일을 ‘신성하다’고 표현할 만큼.
모든 희망이 사라지자, 지원의 눈에서 눈물이 흘렀다. 명색이 20년 유형이지, 사실상 무기징역이나 다름없었다. 글로디아로 유배된 사람들은 평균적으로 5년 만에 사망했기 때문이다.

그는 글로디아로 가는 호송 우주선에 타는 그 순간까지 혹시 모를 기적을 기다렸다. 그가 겪은 일이 불합리하다고 주장하는 여론이 생기고, 탄원이 올라가길 바랐다. 그가 겪은 일에 동정하고, 그와 같은 일이 자신에게도 생길 거란 불안감을 느끼는 사람이 2천억 중 아무도 없을까.
그래서 매일같이 교도관에게 여론을 물어봤다. 아이러니하게도, 교도관은 그가 회사에서 엔지니어로 재직할 때 개발한 모델이었다. 자신이 프로그래밍한대로 무뚝뚝한 교도관의 태도를 볼 때마다 씁쓸했다. 태도야 그랬지만, 부당하게 수형자를 괴롭히지 말라는 프로그래밍 덕분에 물어보는 것에 꼬박꼬박 대답을 들을 수 있었다.
그에게는 절망스럽게, 여론은 그에게 전혀 우호적이지 않았다. 사람들은 그를 자신과 같은 인간으로 생각하지 않았다. 딱 그와 비슷한 수준의 대학 졸업, 고용된 사람, 도심에 소유한 집이 없는 사람, 이 모든 조건을 충족시키는 소수의 사람들만이 그에게 동정적인 글을 조심스럽게 남길 뿐, 나머지 사람들은 그를 신나게 비난하기만 했다.
호송선에 타는 그 순간까지 기적은 일어나지 않았다.
작은 변화는 있었다. 한 달 간의 여행을 같이할 감방 동료가 생긴 것이 그 변화였다. 줄리아와 만난 건 호송선의 작은 감방 안에서였다.

“여자와 한 방에 가둘 줄은 몰랐는데.”

줄리아, 죄수복이 헐거워 보이는 마른 체격의 젊은 여인이 1층을 선점하고 누워 있었다. 그녀는 심드렁한 눈으로 지원을 바라보며 일어섰다.

“어차피 글로디아에 떨어지면 남녀 구분은 의미가 없으니까. 그냥 처음부터 구분을 안 하는 것뿐이야.”

어색했다. 그 어색한 얼굴을 본 줄리아가 피식 웃었다.

“통성명이나 하자고. 난 줄리아 허츠, 10년형을 받았어.”

처음부터 예의 없이 말 놓는 걸 보니 못 배운 사람일 거라 여겼다. 지원도 예의 차리지 않고 말하기로 했다.

“난 김지원, 20년형이야.”

“그렇구나. 그 정도 형량이면 경범죄였나봐?”

어지간한 범죄는 가석방 없는 무기징역으로 처리해 버리니까.
지원은 자신의 억울함을 호소했다. 그저 회사 근처의 빈집에서 잠을 잤다가 잡혀왔을 뿐이라고.
하지만 그의 기대와 달리, 줄리아는 시큰둥한 얼굴이었다. 벌받을 일 했네, 그런 표정.

“멀쩡히 회사 다니고 있으면 회사에서 잘 수도 있잖아?”

“비용절감 한다고 수면실을 없앴다고.”

“그럼 노숙을 하거나 호텔에 가거나 해야지. 백수보단 사정이 나은데 그걸 또 아끼려고 범죄를 저질러? 평소에 잘난 척이라곤 다 하고 다녔을 텐데 참 고소하네.”

그는 울컥했다. 그는 퉁명스럽게 말했다.

“그럼 그쪽은 어떤 죄를 졌기에 글로디아행인 거야?”

“몸 팔다가 손님의 요구를 거절했거든.”

“대체 무슨 요구였기에.”

“분명 혼자 하룻밤을 상대해 주기로 했는데, 가보니 셋이 있더라고. 거기다가 엉덩이에 음탕한 도안을 문신할 것까지 요구하기에 거부했지. 그 죄로 여기 이렇게 와 있어.”

아, 지원이 찬성표를 던졌던 그 법안 때문에 걸려들어온 사람이었었나 보다.

“그러게 왜 그런 일을 해? 공부해서 제대로 된 직장에 취업했으면 그럴 일도 없었잖아. 복제인간보다도 가치 없는 존재니 그렇게라도 팔려야 하는 거 아냐?”

그의 퉁명스러운 말에 줄리아는 뻔히 상대를 바라보았다. 그간 그녀를 샀던 사람들의 모습이 겹쳐 보였다.
사는 곳이 다른 이를 이해할 생각이 없는 자의, 아래로 깔아보는 눈빛.
그 눈빛을 보니 딱히 구구절절 반박하고 싶은 생각도 없었다. 돈이 없으면 공부에 전념하는 것도 힘들다고 토로하거나, 인간이 할 일이 거의 안 남은 세상에서 일자리가 없으면 굶어죽으라는 거냐고 따져봐야 씨알도 안 먹힌단 걸 알았기 때문이다. 지원과 같은 눈빛을 가진 사람은 자신이 성취한 것을 제외한 그 어떤 것도 인정하질 않았다.
이런 사람에게는 논리적인 반박보다 비아냥이 효과적이었다. 그냥 말을 안 섞는 것이 더 효과적이겠지만, 그녀는 그 정도로 정신수양이 깊지 못했다.

“그래, 노력해서 글로디아에서 20년형 살게 된 사람의 충고 명심할게. 10년 뒤 석방되면 그렇게 살아보도록 하지.”

“내 잘못이 아니라 멍청한 놈들이 이상한 법안에 찬성표를 던졌기 때문이라고!”

버럭 소리지르는 지원을 보면 그녀의 비아냥이 무척 효과적이었단 걸 알 수 있었다. 그는 법안에 압도적으로 찬성한 거지새끼들을 욕했다.

“너야말로 그 말도 안 되는 법안에 찬성표를 던졌잖아? 사람을 돈이 되나 안 되냐로만 보는 소시오패스 자식아! 그 거절 못한다는 것 때문에 변태새끼들이 얼마나 살판났는지 알아?”

둘의 언성이 높아졌다. 둘 다 ‘내 일 아니니까, 다른 이들의 삶이 나보다 힘들어야 공정하니까.’란 생각으로 던진 표들이 상대의 인생을 비틀어 놨단 걸 알았지만,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지 않았다. 상대의 잘못은 배부른 소리, 아니면 게으른 자들의 투정으로 치부할 뿐이었다.
이런 말싸움은 그들 둘 사이에서만 일어난 일이 아니었다. 여기저기서 고성이 들리기 시작했다.
그나마 지원과 줄리아가 말싸움으로만 끝낸 건 그들이 근본적으로 악인은 아니었기 때문일 터였다. 다른 방에서는 주먹질로 이어지는 일이 태반이었다. 어차피 글로디아에 가면 형기를 채우다 죽을 가능성이 크니, 더 형기가 늘어봐야 손해 볼 것이 없다고 생각하는 죄수들도 많았다.
살이 터지고 뼈가 부러지는 살벌한 소리, 감시 드론의 마취총 발사음, 누구의 형기가 즉결심판으로 몇 년 늘어났다고 알리는 방송이 끊임없이 나왔다.

“그만하지. 우리가 이러는 것도 누군가는 지켜보고 있을 거야.”

“그건 맞아.”

그 말대로였다. 호송선 죄수들의 일거수일투족은 사람들의 알 권리를 채워준단 이유로, 범죄에 경각심을 불러준단 이유로 전 우주에 방송되었다. 우주의 시민이면 누구나 호송선과 글로디아의 일상을 볼 수 있었다.
지원은 바빠서 자주 못 봤지만, 줄리아는 할 일없을 때 자주 봤었다. 공짜인데다 어떤 영화보다 재밌었기 때문이다. 폭력과 살인, 강간 등 온갖 자극적인 장면이, 연출이 아닌 실제 상황이 중계 어플만 열면 쏟아져 나왔다.
그 점을 생각하면, 지원이 형기 늘어날 짓을 할 사람이 아니라 다행이라 생각했다.
호송선이 우주로 떠오른 뒤, 둘 사이는 한동안 말이 없었다. 그렇지만 보름여의 여행 동안, 서서히 말이 늘기 시작했다.

“그거 안 먹어? 그럴 거면 나 줘.”

줄리아는 지원이 주어진 식사를 깨작거리는 걸 보고 말을 걸었다. 이것이 둘 사이에 다시 시작된 대화의 시작이었다. 지원은 맛대가리 없는 압착 블록을 바라보다 줄리아에게 넘겼다.

“그게 맛있냐?”

오래 묵은 곡물과 말린 식용곤충을 뭉쳐 만든 블록은 인간의 식사라기보다 닭이 먹는 사료에 가까워 보였다. 범죄자에게 조금의 예산도 낭비하지 않겠다는 의지가 돋보이는 식단이었다.
대다수가 실업과 가난에 시달리는데, 범죄자들에게 그보다 나은 처우를 보장하는 건 너무나 불공평한 일이었다. 그러니 범죄자들을 형편없이 대우하는 것이 공정했고 실제로 그렇게 했다. 이 세상은 이토록이나 공평한 유토피아였다.

“맛없어도 살려면 먹어야 하잖아. 앞으로 10년 동안 먹을 건 이것밖에 없는데 익숙해져야지.”

“그 정도나 살 수 있을까. 그냥 이대로 굶어죽는 게 낫지 않을까 싶어.”

지원은 평균적으로 생존하는 기간이 5년이란 걸 떠올렸다. 어차피 살 희망이 없는데, 저 여자는 왜 저리 악착같이 먹으려 하는 걸까 신기했다.
반면, 줄리아는 지원의 말에 실소했다.

“그 말 진심이야?”

“왜 농담이라 생각하지?”

지원은 자신의 진지한 고민을 웃어넘기는 상대가 불쾌했다.

“굶어죽겠다는 말을 너무 쉽게 해서. 진심으로 굶어 본 사람이면 그렇게 쉽게 말하진 못할 것이거든. 진심으로 죽을 마음을 먹은 사람이라면, 죽겠다는 말 따윈 안 해. 옆에 있는 사람이 자살을 방해할 수 있으니까.”

그녀의 말에는 직접 배고픔을 경험해 보고, 죽는 사람을 지켜 보았던 사람의 현실이 담겨 있었다. 그렇기에 더 무겁고, 더 잔혹했다.
지원은 대답이 궁해졌다. 은근히 깔아보던, 어느 대학을 나왔는지도 모를 상대의 대답인데 반박할 수가 없었다. 상대가 자신보다 더 현실을 잘 안다고 생각하자, 기분이 나빠진다. 상대가 맞단 걸 직감하면서도, 자존심이 그걸 인정하길 거부했다.
그렇지 않은가. 그는 자신이 모든 일에 대해 대다수의 인간들보다 더 올바른 통찰을 할 수 있다 자부했고, 눈코 뜰 새 없이 바빠지기 전엔 그 신념으로 열심히 법률 개정안에 투표했다. 가난하고 못 배운 잉여인생들이 그의 자리에 기어오르지 못하도록, 그들이 잘못된 신념으로 이 인류사회의 진보를 막지 못하도록.
그런데 지금 마르고 볼품없는 창녀의 말에 반박하질 못한다면 그가 지금껏 해 온 것들은 뭐가 되겠는가.
지원은 훗날 이 때를 되돌아보며 줄리아에게 반감을 느낀 이유를 이렇게 분석했지만, 이것도 자신은 항상 이성적인 사람이라 포장하기 위한 핑계에 가까웠다. 기실은 지기 싫어하는 어린아이의 고집에 가까웠다.
그 치기야말로 그가 죽기 위해 단식을 결행하게 된 원인이었다. 진짜 자신이 죽고 싶을 정도로 절망했음을 보여주기 위해, 그리고 본능에 따라, 기분에 따라 사는 빈민들과 다르다는 점을 보여주기 위해.

“난 진짜 죽고 싶어서 그러는 거야. 그럴 거고.”

“오, 그거 좋네. 최소한 힘 넘치는 남자에게 돈도 못 받고 겁탈당할 일은 줄어드니까. 응원해 줄게.”

줄리아는 이렇게 그의 결심을 비웃었다. 맛대가리 없고 딱딱한 압착 블록을 씹으면서 말이다. 그녀로서는 쓸데없이 힘이 넘치고 자포자기해서 지독하게 구는 룸메이트보다 굶어서 빌빌거리는 염세주의자가 더 편했다.
그 순간부터, 지원은 끼니 때마다 줄리아의 조롱을 들어야 했다.

‘첫 번째 단식, 배고파서 잠 안 오겠네.’

‘난 살아남을 거야.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줄리아는 지원의 죽음을 응원합니다.’

이런 줄리아의 비웃음은 지원의 단식에 아주 큰 힘이 되었다. 마음이 약해질 때마다 들려오는 이런 비아냥 덕분에 오기가 생겼다.
하지만 그녀의 비웃음도 3일이 지나니 멈췄다.

“지원, 진짜 안 먹을 거야?”

어딘지 걱정이 어린 이런 말이 들리고, 하루는 더 이상 말을 안 걸었다.
이제는 물컵을 들 힘도 안 남아 있었다. 목이 타서 소리도 제대로 나지 않았다.

“무…….”

지원의 입에서 완성되지 않은 발음이 신음처럼 갈라져 나왔다. 그때 누군가 그의 머리를 받치고 입에 물을 흘려 넣어줬다. 그러자 정신이 든다. 줄리아였다.
그녀는 씁쓸한 얼굴로 말했다.

“역시 누군가가 죽어가는 걸 지켜보는 일은 할 짓이 못 돼.”

지원이 식사를 끊고 3일이 지난 뒤부터, 그녀는 진심으로 지원이 걱정되기 시작했다. 포기하고 음식을 먹을 사람이, 자신의 비웃음 때문에 진짜 죽는 것이 아닌가.
자존심의 근원이 옳은지는 일단 제쳐두고, 지원이 무척이나 자존심이 센 사람이란 건 며칠간 같이 있으면서 알 수 있었다. 그 자존심을 지키기 위해서라면 진짜 죽음도 불사할 것 같았다.

“정말 죽을 거야? 그러지 마. 앞으로 다시는 안 놀릴게.”

혼미했던 정신이 돌아왔을 때, 그녀의 말소리가 들렸다. 순전히 그를 걱정하는 마음에서 하는 소리, 그 물음에 마음이 무너진다. 자존심과 다른 사람에 대한 우월감에 금이 가자, 그 안에 갇혀 있던 진실한 마음이 모래처럼 쏟아져 내렸다. 삶에 대한 절실함, 자신을 진심으로 걱정하는 줄리아에 대한 고마움, 이런 보다 솔직한 감정들. 그가 낙오자의 전유물이라 생각했던 나약한 감정들이 눈물과 함께 쏟아졌다.

“살고 싶어…….”

그의 삶에 대한 의지를 확인한 줄리아는 말없이 물을 그의 입에 흘려 넣어 줬다. 압착 블록을 부숴서 물에 탄 뒤, 그걸 마시게 해서 원기를 북돋워 줬다.
그녀의 도움 덕분에, 그는 목숨을 유지할 수 있었다.
그 과정에서 글로디아에 떨어지는 자신의 처지를 받아들였다. 마음이 안정되고 상대에 대한 경멸이 사라지자, 드디어 진정 대화라 부를 만한 행위가 시작되었다.

“어렸을 때, 부모님은 빚을 지고 도망갔어. 난 나이 차 많이 나는 오빠가 막노동을 하며 키웠지. 네 말대로 한껏 노력해서 안정된 일자리를 가지려 해 봤지만, 내 능력으로는 순위가 30% 이상으로 올라가는 건 한계였어.”

그녀는 한심한 듯 웃었다. 로봇보다 더 저렴해야 하니, 오빠도 정말 푼돈을 받고 몸이 부서져라 일해야 했다. 그녀가 지원의 회사에서 생산한 완벽한 외모의 복제인간들보다 싼 값에 팔렸듯.

“우습지? 네 말대로 열심히 발버둥 쳐 봐야, 안정된 일자리를 가진 사람은 5%라. 상위 6%나 99%나 똑같이 실업자야.”

그 95%도 서로를 하나로 인식하지 않았다. 백수, 막노동자, 마약 밀매업자, 폭력배 등등, 그나마 남은 이런 직업들로, 아니면 사는 행성이나 인종, 성별 등으로 전부 쪼개졌다. 이렇게 무수한 소수 집단만이 남아 경쟁하기 시작하자, 사람들은 그나마 남은 이익을 독식하기 위해 평등과 공정이란 미명 하에 다른 이들을 끌어내렸고, 그러기 위해 자신의 정체성을 규정하고 투표했다.
모두에게 자신은 소수였고, 나머지는 전부 다수로 뭉뚱그려서 인식하고 적대했다. 그렇다 보니 누군가를 벌하고 불이익주기 위한 법령들은 직접적으로 불이익을 받는 소수를 제외한 다수들의 지지 하에 통과되었다. 반면 누군가에게 더 나은 처우를 약속하는 법률은 혜택을 보지 못하는 다수의 반발로 전부 부결되었다.
그 결과물이 글로디아란 감옥 행성, 그리고 그 땅에 넘쳐나는 죄수들이었다.
지원도 차근차근 그가 겪은 일을 말해 주었다. 빈집에서 잠을 자다 걸렸고, 그래서 처벌받았다고.

“그거 웃기네. 받았어야 할 수익을 빼앗겼다고? 그럼 왜 나한테는 그 기준을 적용 안 해 줬는데. 두 명에게 받았어야 할 화대를 못 받게 된 거 아냐?”

줄리아가 냉소했다. 지원은 그제야 이상한 점을 깨달았다. 세상을 더 공평하게 만들기 위해 만들어진 법들은 모아놓고 보니 차별과 불합리란 괴물이 되어 있었다. 원하는 법이 통과될 때는 통쾌했는데, 그 법이 지배하는 세상은 더욱 답답해져 있었다.
이런 세상이기에 이득을 얻는 사람도 있겠지. 하지만 이 둘은 그 이득을 얻는 사람이 절대 아니었다.
둘은 상대의 이야기를 들으며 자신이 상대의 처지라면 어땠을까 생각해 보기 시작했다. 억울했다. 둘 다 수십년씩 사회에서 격리될 만한 잘못을 저질렀다고 보긴 힘들었다. 살기 위해 약간의 이기심을 가지고 있긴 했지만, 그 정도는 어느 사람이나 가지고 있는 것 아닐까.
그 이기심을 억누르기보다 부추기고, 다름을 포용하기보다 증오하도록 선동하는 것이 더 나쁜 것이 아닐까.

“힘들었겠네.”

“너야말로.”

이제 상대를 비난하지 않았다. 대신 이렇게 짧게나마 위로의 말을 건넬 수 있게 되었다. 상대를 약간이나마 이해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아니, 이해한 것이 아니라 둘 모두 죄수란 똑같은 신분이 되고, 같은 이해관계를 가지게 되었기에 이해한 것처럼 보이는 것일 수도 있겠다.
좁은 방에 갇혀 할 일은 없으니, 둘의 이야기는 끊이지 않았다. 세상이 가혹하니 그 세상을 살았던 둘의 지난 세월 이야기도 그리 낭만적이진 않았지만, 그럼에도 멈출 수 없었다. 둘은 머리 위의 카메라 렌즈를 응시했다. 죄수들의 추악함을 전 우주에 중계하는 카메라였다.
지원이 그걸 보다 입을 열었다.

“저기서 우리를 지켜보는 사람도 있을까?”

“별로, 더 재밌는 거 많은데 뭐가 아쉬워서 잡담이나 하는 사람들을 지켜보고 있겠어.”

그 재밌는 것이 뭔지는 들려오는 소리로 알 수 있었다. 낮은 신음소리가 들려온다. 중저음의 끙끙대는 소리를 보면 남자들끼리 성관계를 갖고 있단 걸 짐작할 수 있다. 얼마 전 뭔가 때리고 부러지는 소리가 들리던 방향인 걸 깨달았다.

“저런 걸 본단 말이야? 불법 아니야?”

자기 취향이 아니라 지원이 짜증난단 듯 말했다. 동성애 역시 다수의 투표에 따라 금지된 일 아닌가.

“동성애는 불법이라, 합법적인 콘텐츠는 저것밖에 없거든. 유형을 받을 만큼 타락한 사람임을 보여주기 위한 것이라, 저걸 보는 건 합법이야. 저런 게 보기 싫으면 남녀를 같이 가둬 놓은 방을 봐도 되고.”

그러니까 법으로 금지된 성적 취향을 가진 사람들은, 범법자들이 법을 어기는 실제 상황을 지켜보면서 자위를 한단 거였다. 지원은 연출된 포르노를 보고 즐기는 것보다 그게 더 도덕적이라 볼 수 있는지 의문이 들었다.
줄리아도 시간을 때우기 위해 죄수들 영상을 많이 봤던 만큼, 아는 것이 많았다. 막다른 곳에 몰린 군상들이기에 행동이 극단적이고, 그렇기에 자극적이어서 재밌었다고 한다. 글로디아는 범죄를 억제하는 지옥이며, 하나의 엔터테인먼트였다.
그래도 지원은 자신들의 대화에 귀를 기울여 주는 사람이 한 명이라도 있기를 바랐다. 자신들의 억울함을 듣고, 이해해 주는 사람이 있기를.
하지만 정말로 그런 사람이 있을까. 지원은 소망하면서 비관했다. 갑갑한 세상에서 재밌자고 보는 건데 누가 이런 갑갑한 이야기를 듣고 있을까.

“넌 어떻게든 살아남겠다고 했잖아? 어떻게 할 생각이었어?”

“누군가 날 보호해줄 사람을 찾으려고 했어, 이래봬도 난 젊고 건강하니까, 그걸 원하는 사내가 있을 거 아냐. 말하고 보니, 구속되기 전이나, 지금이나 하는 건 똑같네. 그렇게 살다 보니 생각이 그쪽으
로 굳어버려서 그럴까.”

그녀는 자조적으로 말했다. 흉악범들이 섞여 있고, 살아서 나갈 희망이 없는 글로디아, 다들 갇혀 있었으면 죽을 염려는 없었을 텐데, 대륙 내에서는 자유롭게 움직일 수 있으니 더욱 부조리가 심해졌다. 말 그대로 약육강식이 벌어지는 곳이었다.
그런 곳에서 작고 마른, 완력이라고는 없는 그녀가 홀로 살아남기는 어려웠다. 어떻게든 도와줄 사람을 찾아야 했다. 가급적이면 완력이 있고, 다른 범죄자들에게서 지켜줄 수 있는 사람이.

“나는 안 될까?”

지원이 조심스럽게 말했다.
그는 두려웠다. 이 호송선에는 그나 그녀처럼 가벼운 죄로 잡혀온 사람들만이 있는 것이 아니다. 어떤 시대라도 중벌로 다스리는 것이 마땅하다 생각할 법한 사람들도 많았다. 그런 사람들과 엮이자니 두려웠다. 흉악범과 호송선의 같은 방을 썼으면 어땠을지, 생각만 해도 끔찍했다.
살아오면서 습득한 ‘합리적’ 사고는 그녀와 같이 지내는 것이 별 도움 안 되는 일이라 말한다. 그녀같이 싸움에 도움 안 되는 사람과 있어봐야 자신이 희생할 뿐이라고. 더 강한 사람이 소속된 패거리로 들어가서 사는 것이 생존에 유리하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게 과연 옳은 것일까? 자신의 세계관에 금이 간 그는 자신의 판단을 믿을 수 없었다. 대신 그의 마음은 그녀와 같이 있으라고 말한다.

“글쎄…….”

그녀도 망설였다. 이 사람이면 그래도 같이 있어서 손해 볼 일은 없지 않을까, 그런 생각이 들었다.

“내 목숨을 구해 줬잖아. 은혜 갚을 기회를 주었으면 좋겠어.”

어떻게든 인연을 이어나가가고 싶어서, 지원은 애써 말했다. 주변 사람들은 전부 경쟁자고, 이용해 먹어야 할 대상으로 생각했던  그라면 절대 하지 않았을 말이었다.
효용이 아니라, 단순히 존재를 원했다. 그녀의 가치를 따졌다면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그녀도 그의 마음에 응답했다.

“그럼 얼마나 은혜를 잘 갚을지 지켜볼게. 그러니까……, 내가 나갈 때까지 죽지 마.”

둘은 손을 잡았다. 같이 운명을 같이 하기로, 서로를 지켜 주기로 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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