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균학의 황금기
문성실 / 미생물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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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미경으로 미생물을 처음 관찰 한 사람은 네덜란드의 ‘안토니 판 레이우엔훅’이었다. 그는 낮에는 시 공무원으로 일하며 직물 관련 일을 했고, 밤이면 직접 렌즈를 갈아 현미경을 조립하는 소위 현미경 덕후였다. 그는 직접 만든 현미경을 통해 눈에 보이지 않는 것들을 하나씩 정복해 나갔다. 식물, 곤충, 이의 소화관, 적혈구, 식물 조직과 심지어는 그는 자신의 정액까지 현미경으로 관찰하며 현미경의 세계에 푹 빠졌다. 그가 만든 현미경은 <<마이크로 피아>>라는 현미경 관찰기로 세간의 주목을 받던 로버트 훅의 20-50배 배율의 현미경보다 훨씬 더 확대할 수 있는 270배 배율의 현미경이었다. 레이우엔훅은 어느 날부터 물방울을 들여다보기 시작했다. 호수에서 떠온 물을 당시 세계 최고 배율의 현미경으로 들여다본 결과, 그는 인류 최초로 물에서 춤추고 있는 원생동물을 관찰한 사람이 되었다. 레이우엔훅은 자신의 이 사이의 플라크를 채취해 현미경으로 관찰했다. 긴 막대기 모양의 생물들과 그보다 작은 생물들과 뱅뱅 돌아다니는 구형의 미생물도 관찰하였다. 그가 그린 그의 입속의 플라크는 고작 막대와 동그라미에 지나지 않지만 세계 최초 미생물 관찰자라는 명예를 그에게 안겨줬다.


레이우엔훅과 그가 관찰한 그의 입속의 플라크, 출처 위키피디아.


레이우엔훅은 둥둥 떠다니며 춤추는 미생물들을 관찰했다. 슬라이드에 물을 한 방울 떨어뜨리고 그가 만든 작은 현미경을 눈에 바짝 대고 관찰하는 과정에서 그는 물을 말리거나 고정시키지 않았다. 레이우엔훅의 최초의 발견 이후 관찰에 지나지 않던 미생물 연구는 19세기에 들어와 “세균학의 황금기”를 맞이했다. 


독일에서 태어난 로버트 코흐 (Robert Koch)는 둥둥 떠다니는 투명한 미생물을 관찰하기 어려웠다. 그는 고정(fixation)이라는 방법을 고안하는데, 슬라이드에 얇은 층의 박테리아를 도말하고(smear) 약한 열을 주어 슬라이드에 박테리아를 고정시키는 방법을 고안해 냈다. 당시 독일의 화학 및 인공 연료 산업의 거대한 성장 덕에 코흐는 각종 아날린 염료(Eosin, Fuchsin, Safranin, Methyl violet)들을 박테리아를 고정시킨 슬라이드에 떨어뜨려 염색을 했다. 뿐만 아니라 현미경 기술자와 협력해 고해상도의 현미경을 사용했으며, 해상도를 높이기 위한 유침렌즈 (Immersion oil)를 처음으로 사용한 의사이자 현미경 사진을 최초로 출판한 사람으로 기록되기도 했다.


로버트 코흐 (좌)와 그의 첫 번째 탄저균 현미경 사진, 출처 Koch R. Verfahren zur Untersuchung, zum Conservieren und Photographiren der Bakterien. Beiträge zur Biologie der Pflanzen 1877;2:399–434.

지역 의사로 일하던 코흐는 지역에서 유행하는 탄저병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약 4년 동안 528명이 사망하고 5만 6천 두 이상의 가축이 탄저병으로 폐사했다. 코흐는 탄저병 연구를 위해 쥐, 기니아 피그, 토끼, 개, 개구리와 새 등 다양한 동물을 사용했다. 그는 탄저병으로 죽은 양의 혈액을 쥐에게 접종했다. 그 다음날 쥐는 죽었고, 죽은 쥐를 해부한 결과 혈액, 림프 노드, 비장에서 타원형 막대 구조의 탄저균을 발견했다. 코흐는 이 과정을 여러 번 반복해 여러 세대에 거쳐서 탄저균을 관찰했으며, 쥐가 죽은 원인이 탄저균임을 확인했다. 그가 관찰한 막대 모양의 탄저균은 저마다 길이가 달랐다. 무언가 탄저균이 증식하고 분열하기 위해 다양한 모양이라는 것을 인식한 그는 실험실에서 탄저균을 배양할 수 있는 방법을 고안했다. 

코흐는 토끼의 각막액에 여러 조건을 변경하며 탄저균을 배양했다. 따뜻하고 습하고 공기가 통하는 환경에서는 탄저균이 증식하며 긴 필라멘트 같은 구조를 보였다. 그러나 저온의 건조하거나 산소가 부족한 환경이 되면 구형의 포자를 형성했다. 그동안 탄저균으로 사망한 가축들을 키우던 지역에 시간이 한창 지나 다른 가축을 사육할 경우 또 탄저병이 유행하던 현상을 이 내성 포자를 통해 설명할 수 있었다. 즉, 탄저균은 외부 조건에 따라 모양이 다르며, 번식할 수 있는 동물이나 인간의 체내에서는 막대 모양으로 빠르게 번식하고, 영양이나 외부 온도와 습도 등 환경이 열악할 경우 포자를 형성해 극한 환경에서도 오랫동안 살아남을 수 있다.

코흐는 자신이 밝혀낸 탄저균의 생활사를 세균학의 권위가 있는 이들을 통해 검증받고 싶었다. 코흐는 당시 식물학자이자 박테리아 분류를 체계화해 박테리아계의 선구자였던 페르디난드 콘 (Ferdinand Cohn)에게 편지를 썼다. 

“저는 전염병에 대해 연구해 왔습니다. 여러 번 시도한 끝에 탄저균의 생활사를 밝히는 데 성공했습니다. 이 연구를 출판하기 전, 교수님께서 이 연구에 대해 검토하고 유효성을 판단해 주실 것을 부탁드립니다.” 

코흐의 겸손한 편지 한 장과 탄저균의 생활사에 대한 놀라운 발견은 후에 콘이 코흐의 의과학자로서의 인생에 든든한 후원자가 되게 만들었다. 콘은 무명의 의사인 코흐를 자신의 학교로 초대했고, 코흐는 자신의 연구를 증명할 수 있는 데이터와 데모를 가지고 브레슬라우로 향했다. 콘은 코흐의 실험에 흥분하고 열광했으며, 그의 조수와 동료들이 코흐의 실험을 볼 수 있도록 초대했다. 코흐의 검증 시험을 참관했던 그 대학의 병리학 연구소 소장인 줄리어스 콘하임(Julius Cohnheim)은 “코흐는 모든 과학협회와 교류가 없었음에도 간결하고 정확한 방법을 통해 오로지 홀로 놀라운 발견을 해냈다. 나는 그의 업적을 병리학 분야에서 가장 위대한 발견으로 간주하며 그는 또 다른 발견을 통해 우리를 또다시 놀라게 하고, 우리를 부끄럽게 만들 것이라고 믿는다”라며 극찬했다.

식물학 저널에 실린 탄저균의 생활사, 출처: Koch R. Die Ätiologie der Milzbrandkrankheit, begründet auf die Entwicklungsgeschichte des Bacillus Anthracis. Beiträge zur Biologie der Pflanzen 1876;2:277–310.


코흐의 탄저균의 생활사를 밝힌 논문은 1876년 콘의 식물학 저널(Beiträge zur Biologie der)에 출판되었다. 그의 논문에 들어간 탄저균의 생활사 중 포자가 발아하는 그림은 콘이 직접 그렸다고 한다. 콘은 탄저균을 간균에 속하는 Bacillus 이름을 붙여 Bacillus anthracis로 분류하고 명명하였다. 코흐의 이 발견은 특정 질병이 특정 미생물에 의해서 유발되었음을 최초로 입증한 것이자 세균학 황금기의 시작이었다. 

세균학의 황금기를 가져다준 것은 코흐의 또 다른 동역자가 있기에 가능했다. 코흐는 그동안 토끼의 안구액을 이용하거나 혈액 등이 들어간 액체 배지를 사용했다. 그러나, 액체 배지의 경우 액체에 다 섞여 버리기 때문에 순수한 박테리아를 얻기가 어렵다. 코흐는 감자의 단면 조직에서 자라는 곰팡이 군체를 관찰한 후, 고체배지에 개발에 열을 올렸다. 처음엔 닭 육수와 젤라틴을 섞어 냉각시켜 매끈하고 균질한 고체 배지를 만들었다. 코흐의 제자들은 이 고체 배지를 슬라이드에 부은 후 종 모양의 유리 덮개를 덮어 사용했다. 젤라틴 배지의 경우 박테리아는 잘 자라지만 탁해지는 경향이 있고, 많은 박테리아가 젤라틴을 분해하고 증식하면서 오히려 효소를 만들어 액체가 되어버렸다. 혹은 실험실의 실내 온도가 높아질 때면 종종 액체가 되어 버렸다. 코흐의 박사과정 학생이었던 월터 헤세(Walther Hesse)의 아내인 페니 헤세(Fanny Hesse)는 젤라틴 대신 한천으로 고체 배지를 만드는 방법을 고안했다. 젤리처럼 고체이면서, 박테리아 성장에 풍부한 영양분을 제공하고, 투명하고 박테리아가 매끈한 표면에 남아 군집을 형성할 수 있기 때문에 유용했다. 페니는 남편의 조수로 무급으로 실험을 보조했고, 현미경으로 보이는 박테리아 배양의 각 성장단계를 묘사하는 수채화를 그리는 과학 일러스트레이터였다. 코흐는 1882년 결핵균에 대한 논문에서 처음으로 한천 고체배지를 사용했다고 기술했지만, 페니의 공을 인정하지 않았고, 왜 젤라틴에서 한천으로 배지를 바꾸었는지에 대한 설명도 공식적으로 하지 않았다. 페니의 한천 배지에 대한 아이디어는 140년이란 세월 동안 생명과학 연구에 있어서 없어서는 안 될 중요한 재료가 되었음에도 페니와 그의 가족은 어떤 명예나 금전적 이익을 받지 못했다.

페니 헤세, 출처:위키피디아.

한천 배지의 발명에도 불구하고 슬라이드의 박테리아를 관찰하기 위해선 커다란 종 모양의 유리 덮개를 제거하고, 이 과정에서 오염 물질이 노출되는 일들이 빈번하게 일어났다. 군의관으로 베를린에 있는 코흐의 연구실에서 복부 하던 리처드 페트리(Richard Petri)는 종 모양의 덮개가 아닌 접시 위에 좀 더 큰 유리 뚜껑을 덮는 아이디어를 냈다. 박테리아를 관찰하기 위해 뚜껑을 열 필요도 없었고, 투명한 유리를 통해 박테리아 군집을 관찰하기도 용이했으며, 공기 중의 다른 미생물의 오염은 거의 발생하지 않았다. 그가 고안해 낸 이 유리 뚜껑 있는 접시는 지금도 생명과학 실험실에서 쓰이고 있는 페트리 디쉬이다. 

코흐는 1877년 ‘외상성 감염병의 원인에 대한 조사’라는 논문을 발표했다. 이 논문에서 박테리아를 순수하게 분리하는 방법을 발표했으며, 특정 미생물이 특정 질병과 연관된다는 그의 이론을 뒷받침할 “네 가지 코흐의 공리”를 발표했다.

“코흐의 공리”는 다음과 같다.
첫째, 질병에 걸린 모든 숙주에는 병원균이 존재한다. 
둘째, 병원균은 질병에 걸린 숙주로부터 분리되어 배지에서 순수 배양되어야 한다. 
셋째, 실험실에서 배양한 병원균을 동물에 접종하면 반드시 동일한 질병이 발생되어야 한다. 
넷째, 그렇게 감염시킨 동물에서 분리 배양된 병원균은 최초 감염된 숙주로부터 분리된 병원균과 동일한 종이어야 한다. 

코흐의 공리, 출처 microbenotes.com.

코흐는 결핵연구를 통해 자신이 세운 이 네 가지 공리를 증명해 냈다. 당시 폐결핵의 원인은 박테리아가 아닌 영양실조가 원인이라고 알려져 있었으며, 서유럽과 미국에서 4명 중 한 명이 결핵으로 사망했다. 코흐는 새로운 염색법을 도입해 결핵균을 염색하는 데 성공했으며, 그가 검사한 모든 감염된 조직 샘플에서 결핵균을 발견함으로 첫 번째 원칙을 확인했다. 그는 한천 배지로 만든 튜브에 결핵균을 배양하고 (두 번째 원칙), 배양된 결핵균을 기니피그에 접종했다. 기니피그는 4-6주 사이에 죽었으며 (세 번째 원칙), 그로 인해 그의 마지막 원칙을 완성했다. 코흐는 이 논문을 출판하기 전 베를린 훔볼트 대학에서 열린 생리학회에서 구두 발표를 먼저 했다. 당시 결핵은 비병원성이라고 주장하던 독일 병리학자들 앞에서 코흐는 역사적인 시연을 한다. 200장이 넘는 슬라이드, 현미경, 배양 튜브, 페트리 접시와 액체 배양한 결핵균을 준비해 수많은 이들 앞에서 하나하나 자신의 주장을 검증했다.

코흐는 “이번 결핵 연구를 통해 인간 전염병의 기생 특성에 대한 완전한 증거를 최초로 밝혔다는 것이 의미가 있다. 결핵의 병인 규명은 다른 전염병 연구에 새로운 시각을 제공할 것으로 기대된다. 결핵이라는 질병에 대한 예방의학적인 지식은 아직 없지만, 미래 인류의 이 끔찍한 역병과의 싸움은 더 이상 불확실한 것이 아니다.”라고 이야기했다. 

세균학의 황금기는 결코 코흐 혼자 이룬 것이 아니다. 그의 논문엔 언급조차 되지 않은 이들의 이름이 세균학의 역사 곳곳에 남아있다. 시골의 무명 의사를 세균학의 선봉에 세워 전폭적인 지지를 했던 이들과 젊은 의사의 논리적이고 명료한 증명에 감탄과 인정의 박수를 전했던 많은 학자들이 있다. 그가 실험의 고비마다 140년이 지나도 사용될 수 있는 획기적인 실험 테크닉과 기기들을 만든 먼지 속에 가려진 과학자들과 그들을 도왔던 이들이 있기에 코흐는 세균학 황금기의 문을 열 수 있었던 것이다. 

“질병과 죽음에 대한 서사는 미생물학에 대한 우리의 관념을 여전히 지배한다. 그러나 책꽂이에서 두툼한 미생물 교과서를 한권 뽑아들고, 이로운 미생물이 하나라도 적혀 있는 페이지들을 모두 찢어보라. 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