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는 과학적 소재의 느낌, 이미지가 아닌 그 의미와 매력에 집중할 때
지웅배 /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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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는 과학적 소재의 느낌, 이미지가 아닌 그 의미와 매력에 집중할 때 


“자기 혼자 빛나는 별들은 없어. 별은 다 빛을 받아서 반사하는거야.” 

이 대사는 이준익 감독, 안성기, 박중훈 주연의 <라디오스타>의 명대사로 꼽힌다. 물론 이 영화는 SF 장르가 아니지만 재밌게도 바로 이 대사의 표현 방식은 국내 SF 작가들이 과학을 대하는 태도와 유사하다. 

사실 이 대사는 두 가지 큰 문제를 갖고 있다. 우선 과학적으로 잘못되었다. 실제로 밤하늘의 모든 별은 스스로 빛나고 있다. 얼핏 듣기엔 별과 우주를 이야기하는 로맨틱하고 그럴듯한 문장이지만 실제 내용은 전혀 잘못된 “헛소리”를 하는 문장이다. 그리고 또 다른 문제는 바로 과학적 원리와 명제를 지나치게 감성적인 비유 대상으로만 소비했다는 점이다. 실제 국내 SF 작품을 보면 아쉽게도 (과학적으로 옳고 그른지는 차치하더라도) 작가가 관심을 갖고 다루고자 하는 과학적 원리, 키워드에 대해 깊은 고민 없이 그저 피상적으로 그 “느낌”만 다루는 경우가 적지 않다. 

최근 들어 많은 해외 SF 드라마, 영화가 흥행하고 국내 작가들도 과학적 소재에 많은 관심을 갖고 있다. 또 많은 국내 교양 과학 콘텐츠가 늘어나면서 작가들도 다양한 과학적 소재로 멋진 상상력을 그려내는 추세다. 하지만 여전히 SF는 국내 콘텐츠 시장에서 비주류에 속해있다. 그런데 이 비주류라는 점은 아이러니하게도 창작자에게 단점뿐 아니라 장점으로 작용하기도 한다. 아직 비주류인 “덕분에” 여전히 과학적 소재 자체가 독자들에게 낯설고 새로운 소재로 비춰질 수 있기 때문이다. 단순히 과학적인 키워드를 언급하는 것만으로도 작품이 “있어 보이게” 만들어주는 효과를 발휘한다. 그리고 이는 자칫 잘못하면 창작자들을 게으르게 만드는 원인이 되기도 한다. 

한 가지 예를 들어보자. 2020년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은 엔트로피와 시간의 흐름을 주제로 이야기를 그려낸 영화 <테넷>을 개봉했다. 이 영화를 위해 감독은 물리학자들과 만나 엔트로피에 대해 깊이 탐구했다. 그리고 엔트로피의 역전을 통해 시간이 거꾸로 흐를 수 있다는 상상력으로 관객들을 새로운 경험으로 이끌었다. 실제 과학적 원리를 반영한 사건을 통해 주인공이 위기를 만나고 해결해나가는 서사를 멋지게 그렸다. 

그런데 만약 놀란 감독이 단순히 “엔트로피”라는 단어가 있어 보여서, 이 키워드에 대한 과학적 이해와 깊은 탐구 없이 단순히 있어 보이는 대사를 만드는 데에만 이 단어를 활용했다면 어땠을까? 자동차가 거꾸로 달리는 멋진 장면도, 서로 다른 방향으로 흐르는 시간 속에서 전쟁을 벌이는 장면도 없었을 것이다. 그저 대충 어질러진 혼란스러운 세계를 보면서 “이게 바로 엔트로피 때문이지”와 같은 그럴듯한 대사만 남았을 것이다. 

올해 처음 시작된 ‘문윤성 SF 문학상’에서 <슈뢰딩거의 아이들>이라는 매력적인 작품을 통해 최의택 작가가 발굴되었다. 그는 가상 세계에서 학교를 다니는 근미래의 한국을 무대로 기술이 발전하더라도 여전히 소외받는 장애인들의 이야기를 통해 이들의 존재성에 대한 멋진 질문을 던졌다. 그런데 이 작품의 제목을 보면 그 유명한 양자역학의 사고실험 ‘슈뢰딩거의 고양이’에서 영감을 받은 작품인 것을 알 수 있다. 그렇다면 작가는 왜 슈뢰딩거의 고양이를 빌려왔을까? 작품에선 ‘있는 듯 없는 듯 세상에 존재하지만 없는 것 같은’ 가상 세계 속 장애 학생들의 처지를 마치 ‘죽은 것도 산 것도 아닌’ 슈뢰딩거의 고양이의 처지에 빗대 표현하고 있다. 

하지만 난 이 대목을 보면서 가장 큰 아쉬움을 느꼈다. 작품에서 보여주는 작가가 슈뢰딩거의 고양이를 이해한 방식은 사실 과학적으로 많은 오류가 있다. 가상 세계 속 있는 듯 없는 듯 존재하는 장애 학생의 처지를 중첩 상태에 놓인 고양이에 빗대는 건 사실 적절하다고 보기 어렵다. 특히 더 아쉬운 것은 이 작품 역시 양자역학적 물리 현상을 통해 벌어지는 신비로운 사건으로 서사를 이끌어가기 위해 이 개념을 가져다 쓴 것이 아니란 점이다. 역시 이 작품도 슈뢰딩거의 고양이라는 키워드를 단순히 감상적인 비유 대상으로 활용했다는 한계를 보여준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과학적 키워드, 원리를 이야기의 서사에 더 적극적으로 반영할 수 있을까? 히가시노 게이고의 소설 <라플라스의 마녀>는 프랑스의 수학자 라플라스가 제안했던 사고 실험과 유체역학에서 아이디어를 얻어 서사를 전개한다. 라플라스는 우주를 구성하는 요소들이 어느 위치에서 얼마나 빠른 속도로 움직이는지 원자 단위로 정밀하게 파악할 수 있다면 우주의 과거부터 미래를 모두 내다볼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그리고 이 상상 속의 전지전능한 존재를 라플라스의 악마라 부른다. 작가는 작품에서 마치 이 라플라스의 악마와 같이 공기 분자들의 움직임을 감지해 가까운 미래 공기의 흐름을 예측하는 인물을 등장시킨다. 그리고 이 인물의 놀라운 능력을 직접 서사의 핵심으로 활용한다. 덕분에 과학적으로 그럴듯해 보이면서도 신기한 경험을 할 수 있다. 

국내 작품으로는 이영도 작가의 <별뜨기에 관하여>가 아주 좋은 예다. 작가는 지구에서 보는 밤하늘의 별자리가 단순히 지구의 하늘에 투영된 이미지에 불과하며 실제 우주 공간에서는 별들의 입체적인 분포가 전혀 다르다는 사실에 주목했다. 그리고 그저 하늘에 나타나는 별자리만 보는 수동적인 점성술이 아닌, 직접 원하는 별자리의 모양을 볼 수 있는 위치로 이동해서 별자리의 기운을 받는 능동적인 점성술이란 매력적인 상상력을 그려냈다. 몇 광년 씩 우주 항해가 가능한 시대인데도 여전히 더 능동적인 방식의 점성술이 성행한다는 배경 설정은 굉장히 흥미롭다. 단순히 별빛이 아름답고 우주가 거대하다는 막연한 감상적 비유 대상으로만 우주를 활용하는 것이 아니라, 실제로 별은 지구의 하늘에서 보이는 것과는 다르게 각기 다른 거리에 입체적으로 분포하고 있다는 과학적 사실을 기반으로 이를 서사에 직접 반영한다. 

과학 대중화 시장이 확장되면서 이제 국내 작가들도 더 다양한 과학적 키워드를 접할 수 있게 되었다는 점은 아주 고무적이다. 그리고 작가들이 이 새로 접한 키워드를 자신의 작품에 등장시키려 한다는 점도 멋진 변화다. 하지만 여전히 많은 작품에서 이런 멋진 키워드들은 주인공의 멋져 보이는 대사 한 마디에만 쓰이고 사라지는 경우가 많다. 결국 작품을 과학적인 것처럼 보이게 치장하는 장식품의 용도로만 과학적 키워드가 소모되는 것이다. 

나는 단순히 작품 속 세부 설정에 대해 과학적으로 엄밀한 고증과 계산을 해야 한다는 주장을 하는 것이 아니다. 이미 작가가 그려내는 상상의 여정을 함께 하겠다는 독자 입장에서 주인공이 타고 있는 우주선의 속도가 광속의 두 배 인지 세 배인지는 중요하지 않다. 작가가 무엇이라 설정하든 이미 상상의 영역이기 때문에 독자는 그 수치에 연연하지 않고 편안하게 작가의 이야기를 따라갈 준비가 되어있다. 그러한 부분을 고민하는 창작자들에게 그렇게까지 연연할 필요가 없다는 위로를 전하고 싶다. 더 중요한 건 그게 아니니까. 

아쉽게도 내가 만난 예비 작가들, 기성 작가들은 이런 과하게 세밀한 부분에서만 과학적으로 엄밀히 하려는 모습을 보여줄 때가 많았다. “우주선의 속도가 이 정도면 말이 될까요?” “이 정도 중력이면 이게 말이 될까요?”와 같은 부분에 과학적 자문과 조언을 요구할 때가 있었다. 하지만 정작 창작자가 다루고자 하는 과학적 키워드, 과학적 개념에 대해선 깊은 고민을 하지 않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이미 창작자는 자신이 멋지다고 생각한 키워드를 작품 속에서 한 번 “언급”하는 것만으로 만족감을 느끼는 듯 보였다. 아이러니하게도 이러한 창작자들의 모습은 과학적으로 지나치게 엄밀하면서, 동시에 과학적으로 너무나 엉성하게 느껴진다. 창작자 본인이 선택한 더 중요한 본질적인 키워드나 과학적 소재, 개념 자체에 대해선 그저 감성적이고 피상적인 이미지만 따온다. 그러다 보니 창작자가 오해해서 잘못 갖고 있는 이미지를 비유하기 위한 대상으로 과학적 키워드, 개념을 언급하는 사태가 벌어지기도 한다. 마치 <라디오스타>의 민망한 ‘명대사’처럼 말이다. 그러면서 실제론 그렇게까지 중요해보이지 않는 디테일한 요소만 과학적으로 지나치게 엄밀하게 만드려고 고민한다. 나는 창작자들의 에너지가 보다 더 중요한 과학적 주제 의식을 공부하고 탐구하는데 쓰여지길 바란다. 

이제 국내 창작자 뿐 아니라 독자들도 다양한 콘텐츠 소비를 통해 다양한 과학적 개념과 키워드에 노출되고 있다. 단순히 과학적으로 보이는 단어 몇 개를 빌려서 언급하는 것만으로 과학적인 것 같은 느낌을 풍기고, 새로움과 낯선 매력을 어필할 수 있는 것도 곧 한계에 부딪힐 것이다. 이제 우리는 단순히 과학적인 “것 같은” 작품이 아니라 정말 과학적인 작품을 원한다. 이제는 단순히 과학적 소재와 키워드가 풍기는 느낌과 이미지만 빌려오는 것이 아니라 그 소재 자체가 품고 있는 과학적인 매력, 그 원리를 반영해 그려낸 상상을 통해 주인공이 겪는 수난과 감동을 이야기할 때가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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