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자역학적 중첩에 대한 사고실험
한정훈 / 성균관대학교 물리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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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자역학에 대한 호기심을 느껴본 사람이라면 중첩이란 말을 한번 쯤 들어봤을 것이다. 적어도 슈레딩거 고양이란 말은 여러 차례 들어봤을 법하다. 슈레딩거 고양이는 중첩 상태를 상징하는 대표적인 은유이고, 만약 양자역학적인 고양이가 실재한다면 살아있는 고양이와 죽은 고양이의 중첩된 상태로 존재할 수 있을 것이란 취지로 슈레딩거의 1935년 논문에 처음 등장했다. 고양이가 들어있는 상자를 열어봤을 때 그 고양이가 산 채로 발견될 수도 있고, 죽은 채 발견될 수도 있지만 막상 상자를 열기 전까지는 생사를 미리 알 수 없다는 식의 줄거리로 과학적 지식을 다루는 각종 매체에서 회자된다. 과학적인 담론, 그 중에서도 양자역학의 정곡을 찌르는 담론이 이렇게 회자되고 소비된다는 게 물론 긍정적이고 유쾌한 측면도 있지만 물리학자의 관점으로 보면 양자역학의 핵심이 이런 대중적 밈을 통해 비전문가에게 제대로 전달되고 있는지 궁금할 때가 있다. 마침 어떤 방송에서 양자역학의 중첩에 대한 강연을 할 기회가 있었다. 이번 글은 그 강연에서 소개한 간단한 사고 실험을 정리했다. 양자역학적 중첩을 설명할 때 흔히 사용하는 사고실험 대신 이번 강연을 위해 새롭게 만든 사고실험을 통해 중첩의 참 의미를 전달하려고 했다. 이미 강연에서 다룬 내용이긴 하지만 글로 남겨두면 두고두고 참고가 될 것 같아 적어본다.

우선 하나 분명히 짚고 넘어가야 할 점은 중첩이란 현상 자체는 양자역학이 발견되기 훨씬 전부터 잘 알려져 있었다는 사실이다. 뉴턴의 고전역학, 맥스웰의 전자기학에도 중첩의 원리가 굳건히 자리잡고 있고 중첩 그 자체는 양자역학의 고유한 특징이 전혀 아니다. 예를 들어 야구 선수가 던진 공의 포물선 운동을 생각해 보자. 공의 운동은 수평 방향의 운동과 수직 방향 운동의 중첩이다. 원운동은 좌우로 하는 운동과 상하로 움직이는 운동의 중첩이다. 전자기파의 중첩 현상 또한 대단히 보편적이다. 우리 주변 공간은 휴대전화 신호, 라디오 신호, GPS 신호, 그리고 가시광선, 이런 다양한 종류의 전자기파가 중첩된 채 공존하고 있다. 

양자역학에서 말하는 중첩이란 건 무슨 의미일까? 포물선 운동의 경우에 중첩되는 것은 x 방향의 운동과 y 방향의 운동이다. 수학적으로 이야기하자면 물체의 x 좌표와 y 좌표가 중첩되어 그 물체의 포물선 운동을 기술한다고 말할 수 있다. 뉴턴 역학에서 중첩되는 양은 입자의 좌표다. 그럼 양자역학에서 중첩되는 양은 무엇일까? 일단 양자역학은 파동함수로 표현된다는 사실로부터 출발하자. 이 글에서는 파동함수라는 생소하고 어려운 단어 대신 ‘상태'라고 친숙한 단어를 사용한다. 어차피 이름짓기에 불과하니까 단어는 친숙한 것일수록 좋다. 가령 오른쪽으로 움직이는 ‘상태'가 있고, 왼쪽으로 움직이는 ‘상태'가 있다고 치고, 각각을 |오른쪽>과 |왼쪽>으로 표기한다. 그럼 어느 쪽으로도 움직이지 않고 가만히 있는 입자의 상태는 어떻게 표현할까? 

이 질문에 대한 대답에서 고전역학과 양자역학은 결정적으로 갈린다. 고전역학이라면 정지한 물체는 정지한 물체고, 움직이는 물체는 움직이는 물체일 뿐이라고 답할 것이다. 하지만 양자역학에서 이보다 훨씬 기묘한 답을 준다. 답은 |정지>=|오른쪽>+|왼쪽>, 이렇다. 즉 정지한 상태는 양쪽 방향으로 움직이는 상태의 중첩된 상태로 적을 수 있다는 뜻이다. 왜 그러냐고 물으면 양자역학의 구조가 본래 그런 것이라고 답할 수 밖에 없다. 여기에 확률적인 사고를 살짝 도입하면 이해에 도움이 될 수도 있다. 예를 들어 여기 열 개의 입자가 있는데 그 중 다섯 개는 오른쪽, 다섯 개는 왼쪽으로 움직인다고 생각해 보자. 평균적으로 치면 이 입자의 모임은 정지해 있는 것으로 볼 수 있을 것이다. 이런 통계적인 사고가 양자역학의 상태 표기법에 자연스럽게 녹아 있다. 

                                                     <사고실험 1 (그림: 한만형)>

과연 이런 양자역학적 표현법이 정말로 자연을 기술하는 올바른 문법인지 어떻게 알 수 있을까? 실험을 해보면 된다. 진짜 실험 대신 사고실험을 하자. 실험 자체는 아주 간단하다. 상자 속에 전자를 가만히 넣어 두기만 하면 된다. 구체적으로 이런 실험을 어떻게 하는가 고민할 필요는 없다. 물리학 원칙에 위배되지 않는, 따라서 원칙적으로 불가능한 실험은 아니라는 것만 알고 있으면 된다. 이 상자의 한쪽 벽에는 전자가 부딪히면 빨간 불이 켜지는 장치를 설치했다. 다른 쪽 벽에는 아무런 장치가 없어서 설령 전자가 부딪혀도 알 길이 없다. 만약 상자 속에 집어넣은 게 전자가 아니라 탁구공이었다면 당연히 벽에 붙인 장치에 불이 들어오지 않는다. 탁구공을 가만히 상자 속에 내려놓은 채 뚜껑을 닫았으니까 탁구공은 계속 그 자리에 가만히 있을 것이다. 그런데 전자를 집어 넣고 기다리면 벽에 붙은 장치에 불이 켜진다! 전자가 한 쪽 벽으로 움직였다는 뜻이다. 실험을 한 사람이 깜짝 놀라 똑같은 실험을 반복한다. 이번엔 아무리 기다려도 빨간 불이 켜지질 않는다. 세 번, 네 번 실험을 반복하다보면 절반 정도는 불이 들어오고 나머지 절반은 불이 켜지지 않는다. 이런 실험을 누가 진짜 해본 건 아니지만 만약 양자역학이 맞다면 실험 결과가 반드시 이렇게 나와야만 한다. 전자는 절반의 확률로 한 쪽 벽을 향해 이동했다, 이렇게 해석할 수 있다. 이번엔 반대편 벽에 장치를 설치한다. 마찬가지로 실험한 횟수의 절반 정도만 불이 들어온다. 종합하면 전자가 절반의 확률로 왼쪽 벽, 나머지 절반의 확률로 오른쪽 벽으로 이동했다는 뜻이다. 정지한 전자의 상태는 왼쪽으로 이동하는 상태와 오른쪽으로 이동하는 상태의 중첩으로 표현된다, 이 말의 실질적인 의미는 바로 이런 것이다. [사고 실험 1 그림]

이 사고실험에서 우리가 첫번째로 주목해야 할 특징은 바로 ‘불확정성 원리’다. 전자를 상자 속에 잘 넣었다는 건 무슨 뜻인가? 우리가 전자의 "위치"를 제대로 파악하고 있었다는 뜻이다. 뉴턴역학 같았으면 이렇게 상자 속으로 들어간 전자는 계속 가만히 그 자리에 있어야만 한다. 양자역학적으로 행동하는 입자의 경우는 그 사정이 매우 다르다. 속도라는 양과 위치라는 양이 서로 켤레 관계에 있다는 게 양자역학의 특징이다. 켤레라는 건 무슨 뜻이냐, 한 쪽을 정확히 알면 다른 쪽은 그만큼 정확히 알기 어렵다는 뜻이다. 여기에도 ‘왜'가 없고, 본래 양자역학이 그렇다고 받아들여야 한다. 정지한 전자는 오른쪽으로 운동하는 전자, 그리고 왼쪽으로 운동하는 전자, 이렇게 두 상태가 중첩된 상태로 표현된다는 건, 결국 전자가 어느 쪽으로 이동할 지 전혀 모르겠다는 뜻과 같다. 전자의 위치에 대해 완벽한 정보를 갖고 있다는 건 전자의 운동 방향에 대해서는 완벽히 무지하다는 걸 의미한다. 

상자의 벽에 불이 들어오는 건 어떻게 이해할 수 있을까? 전자를 물 속에 떨어뜨린 잉크 한 방울이라고 비유해서 생각하면 좋다. 잉크는 시간이 지날수록 물 속에서 확산된다. 결국엔 물 전체에 퍼진다. 전자도 비슷한 거동을 한다. 직관적으로 이해하긴 힘들지만 전자의 파동함수도 시간이 지나면 확산된다. 그렇다고 전자 자체가 풍선 부풀듯 마구 부풀어 오른다는 뜻은 아니다. 직관적으로 이해하기 힘든 대목이긴 하지만 전자의 파동 함수는 확산되고 전자 자체는 확산되지 않는다. 그게 바로 전자가 확산하는 게 아니고 뭐냐? 이렇게 질문하면 양자역학의 핵심을 찌르는 셈이 된다. 정말로 전자 자체가 부풀어 오르는 것이라면 빵을 조각내듯 전자도 여러 조각으로 잘게 자를 수 있어야 한다. 다행히도 이런 일은 벌어지지 않는다. 

정말로 이런 일이 안 일어나는지, 다시 말하면 전자가 조각조각나는 일이 안 벌어지는지 어떻게 확인할 수 있을까? 전자를 조각내는 과격한 실험 대신 조금 더 온순한 사고실험을 한 번 해 보자. 이번엔 상자를 조금 개조해서 상자 뚜껑 위에 여러 개의 구멍을 뚫어 본다. 전자가 어떤 구멍 아래에서 발견되면 그 구멍에 연결된 전구에 불이 들어오도록 만든다. 뚜껑을 닫자마자 구멍에 연결된 전구를 활성화시키면 전자를 처음 넣은 지점 바로 위에 있는 구멍에서 불이 들어온다. 실험을 반복해도 마찬가지다. 방금 상자에 집어 넣은 전자가 어딜 가겠는가. 

이번엔 전자를 넣고, 뚜껑을 닫고, 잠시 기다렸다가 전구를 활성화한다. 전자 대신 탁구공으로 이런 실험을 했다면 아무리 오래 기다렸다 전구를 활성화해도 여전히 가운데 구멍에서만 불이 켜질 게 분명하다. 하지만 전자의 거동은 탁구공과 같지 않다. 여전히 한 가운데 구멍에서 불이 들어올 확률이 가장 높긴 하지만, 실험을 반복하다보면 다른 전구에서 불이 들어오기도 한다. 한 가운데서 한 칸 옆에 있는 전구에 불이 들어오기도 하고, 두 칸 옆의 전구에 불이 들어오기도 한다. 불이 들어오는 횟수를 측정해보면 (예를 들면) 100:10:1, 이런 식으로 나온다. 이번엔 시간을 좀 더 들인 다음 전구를 활성화시킨다. 이젠 전구에 불이 들어오는 횟수가 4:2:1, 이렇게 바뀐다. 그만큼 전자가 상자 중심에서 멀리 떨어진 지점에서 발견될 확률이 커졌다는 뜻이다. 전자의 파동함수가 확산한다는 건 바로 이런 의미다. 그럼 부풀어 오른 전자를 조각낼 수 없다는 건 어떻게 알 수 있을까? 만약 정말로 전자가 여러 조각으로 갈라지는 것이라면 구멍 몇 개에 동시에 불이 들어와야 한다. 전자가 여기서도 발견되고 저기서도 발견될 테니까. 진짜 전자는 그렇게 행동하지 않는다. 한 번에 한 군데 구멍에만 불이 들어온다. 전자의 파동함수는 부풀지만 전자 자체는 부풀지 않았다는 건 바로 이런 의미다. [사고 실험 2 그림]

                                                          <사고실험 2 (그림: 한만형)>


전자의 파동함수가 계속 부풀다 보면 어느 순간엔 상자의 벽을 건드릴 것이고 그럼 벽에 붙은 장치에 불이 들어온다. 만약 양쪽 벽에 모두 전구를 설치했다고 하자. 어떤 일이 벌어질까? 비록 전자 파동함수는 동시에 양쪽 벽에 닿았지만 실험을 해 보면 한 번은 왼쪽, 한 번은 오른쪽, 이렇게 번갈아가면서 불이 들어온다. 만약 두 군데 전구에 동시에 불이 들어왔다면 본래 하나였던 전자가 두 개로 번식되었다고 말 할 수 있을 테지만 하나의 전자는 어디까지나 하나의 전자일 뿐, 두 개의 전자로 늘어날 수 없다. 처음엔 전자 파동함수의 확산을 잉크 방울의 확산으로 비유했지만, 막상 실험을 해보면 결과가 이렇게 많이 다르다. 잉크 방울은 동시에 모든 벽에 다 닿을 수 있지만 전자의 파동 함수는 동시에 모든 벽에 다 닿아도 막상 관측은 한 군데서만 된다. 그 대신 동일한 실험을 반복해서 평균을 내면 마치 전자가 모든 벽에 다 닿은 것처럼 해석된다 [사고실험 3 그림]. 이것이 양자역학에서 제공할 수 있는 최선의 답이다. 이것보다 더 정확히 전자가 어느 쪽으로 이동해서 전구를 켤 지 예측할 방법은 없다.

  <사고실험 3 (그림: 한만형)>

이제, 양자역학의 마지막 기묘함에 대해 이야기할 차례가 됐다. 어느 한쪽 벽에 붙은 장치에 불이 들어왔다고 하자. 100% 확실하게 전자가 한 쪽 벽에서 발견됐다는 뜻이다. 이제 전자가 어느 쪽으로 움직였느냐에 대한 불확실성은 완전히 사라졌다. 전자의 파동함수는 오직 전자가 도달한 벽, 바로 그 지점에만 존재하고 다른 지점에는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 잉크 방울의 확산에 비유하자면 물 속에서 확산하던 잉크 방울이 어느 한 쪽 벽에 닿는 순간 물 속의 모든 잉크 방울이 갑자기 그 벽으로 몰려든다, 말하자면 이런 일이 전자의 파동함수에 벌어졌다는 뜻이다. 이런 황당한 일은 잉크 방울의 세계에선 절대 일어나지 않는다. 그러나 전자의 파동함수는 이런 식으로 행동한다. 물리학자들은 파동함수가 ‘붕괴했다'고 표현한다. 

자연 현상은 항상 부드럽게 변해야 할 것 같은데, 한 번 관측되었다고 갑자기 파동함수가 붕괴한다는 건 이상하다. 정말 파동함수가 붕괴되는 걸 봤냐? 이렇게 물어볼 수 있지만 이런 질문은 양자역학의 세계에선 무의미하다. 붕괴되는 과정을 관찰하는 순간 파동함수는 붕괴되어 버릴 테니까. 붕괴되기 이전의 파동함수 모습은 원칙적으로 관측이 안 된다. 만약 우리가 파동함수를 관측했다면 그 파동함수는 이미 붕괴된 이후의 모습일 수 밖에 없다. 고백하자면 물리학자들은 파동 함수의 붕괴 과정을 아직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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