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 <2부>
고호관 /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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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러스트레이터: 박재령)

연구소의 음식출력기는 전원을 넣자 제대로 작동했다. 꽤 고급 제품이었는지, 음식이 상당히 맛있었다. 

“역시 군용하고는 다르구만.”

“네, 역시.”

“다친 데는 괜찮나?”

“네, 뭐. 옷 덕분에 깊이 안 들어갔어요. 감염도 안 된 것 같고….”

윤과 보나는 배를 채운 뒤 잠시 쉬었다가 다시 컴퓨터를 들여다보기로 했다. 혹시 이 상황에 유용한 정보가 있을지도 몰랐다. 동물들과 대화를 하는 방법이라거나…. 

“그럴 리가 없잖아요! 차라리 이쪽에서는 이쪽 편인 척하다가 저쪽에 가서는 저쪽 편인 척하는 방법이라거나….”

두 사람은 어젯밤에 대충 훑어만 보고 닫아 버린 기록들을 찬찬히 살펴보기 시작했다. 파일 정리가 별로 깔끔하게 되어 있지 않아서 잡다한 내용이 많았지만, 이내 이곳 동물들의 특이한 행태를 기록한 내용을 찾을 수 있었다. 사실 그게 주요 연구 분야였다. 특별히 지능이 뛰어나지는 않은 동물들의 집단적, 전략적 움직임은 과학자들의 눈길을 끌 수밖에 없었다. 
보나가 뭔가 찾은 듯이 화면에 집중했다. 

“여기 연구소 일지가 있어요. 여기 과학자들도 처음에는 공격을 받았었군요. 위험한 상황이 몇 번 있었나 봐요.”

“그래서 어떻게 했지? 그 사람들도 싸운 거야?”

“아뇨. 애초에 싸우면 안 된다고…, 보호용 장비는 충분했으니까 계속 회피만 했더니 나중에는 적대적인 행동을 하지 않더래요.”

윤은 보나에게 다가가 함께 화면을 들여다보았다. 

“좀 더 뒤쪽으로 가 봐.”

“잠깐만요. 이거…, 너무 많아서.”

보나가 ‘움직임’, ‘행동’ 따위의 단어를 검색했다. 별로 중요하지 않은 내용이 몇 번 나오다가 눈에 띄는 게 있었다. 동물의 행동을 제어하는 실험에 관한 내용이었다. 하지만 그런 실험을 했다고만 적혀 있고, 자세한 내용은 없었다. 
윤과 보나는 컴퓨터를 모두 켜서 하나씩 파일을 뒤졌다. 그리고 결국 그 실험에 관한 자료를 찾아냈다. 밤이 깊어질 때까지 공부한 결과 알아낸 내용은 이랬다. 

낮에 추측했던 대로 이 대륙의 숲은 여러 영역으로 나뉘어 있었고, 그 안에 사는 동물은 평소에 그 영역 안에서 생활했다. 평소 생활상은 여느 생태계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식물은 땅에서 영양을 얻고, 그 식물을 초식동물이 먹고, 그 초식동물을 육식동물이 먹고…. 그런데 가끔씩 동물들을 무리를 지어 이웃 숲을 침범했다. 그러면 그쪽 숲에서 동물들이 나와 방어하는데, 방어에 실패하면 숲의 일부를 잃었다. 초식동물 부대가 상대방 숲의 나무를 베어내고 쓰러뜨려 죽이면, 승리한 숲은 그만큼 그 쪽으로 영역을 확장했다. 이곳의 나무는 성장이 대단히 빨라 땅 속 뿌리에서 새싹이 솟아난 지 몇 달 만에 완전히 성장했다. 과학자들은 나무가 땅 속에서 뿌리를 멀리 뻗어가는 방식으로 영역을 넓힌다고 추측하고 있었다. 

동물들이 무리를 이루어 전략적으로 행동하는 방식에 대한 내용도 있었다. 과학자들이 알아낸 방식은 냄새였다. 화학물질을 이용해 소통하고 명령을 내린다는 것이었다. 윤과 보나가 놀란 건 그렇게 명령을 내리는 존재였다. 과학자들은 그게 숲이라고 생각했다. 동물들끼리 의사소통하며 움직이는 게 아니라 숲의 명령을 받아 일사불란하게 움직이는 거라는 내용이 담겨 있었다. 그러면서 조심스럽게 숲 하나하나가 지성체일 가능성을 제기했다. 

“와, 이거 놀라운데. 그러니까 동물들은 숲의 꼭둣각시라는 거 아냐? 그러니까 초식동물들이 얌전하게 와서 잡아먹히는 거겠지? 전투를 마친 병사에게 영양을 공급하려고. 평소에 풀을 열심히 키워서 동물의 수를 불린 뒤에 이웃 숲에 쳐들어가서 땅을 빼앗는다니. 나 원 참. 우리가 내린 곳은 국경선이었던 거야.”

윤이 진심으로 감탄하며 말했다. 

과학자들은 몇몇 신호 물질의 성분까지 밝혀 두었다. 예를 들어, 소집 명령에 해당하는 물질이 있었다. 어떤 나무에서 특정 물질을 공기 중에 분사하면 동물들이 그 냄새를 감지하고 그곳으로 모여들었다. 어떤 동물을 부를 것인지도 선택할 수 있었다. 여러 나무가 차례대로 스위치가 켜지듯이 절묘하게 신호 물질을 분비하면 동물의 이동 경로를 원하는 대로 만들 수 있었다. 놀랍게도 나뭇잎으로 풍향과 풍속까지 감지해 신호 물질 분비에 반영하는 것 같다는 추측도 있었다. 그리고 동물 군대를 원하는 위치에 배치하고 나면 또 다른 신호 물질을 퍼뜨려 공격을 지시하거나 상대방 숲의 나무를 훼손하라는 등의 명령을 내리는 것이다. 

또, 숲은 일방적으로 명령을 내리기만 하는 게 아니라 자신이 지배하는 동물들에게서 정찰 결과 같은 보고도 받았다. 윤은 연구소까지 오는 동안 자신을 멀리서 관찰하던 동물들을 떠올렸다.  정찰 결과를 바탕으로 적의 방어가 약한 지역을 공격하는 건 기본이었다.  땅의 진동이나 풀의 흔들림 같은 것을 숲이 감지한다는 추측도 있었지만, 상당수는 역시 동물이 분비하는 화학 물질로 이루어졌다. 즉, 이 곳의 숲에는 화학 물질로 이루어진 정교한 소통 체계가 있었다. 

 물론 비가 오는 것처럼 동물 제어가 어려운 환경에서는 어쩔 수 없이 혼란을 겪기도 했다. 그래도 이 정도면 단순한 반응으로 보기에는 어렵고 숲이 상당히 고도의 판단을 할 수 있다는 게 과학자들의 생각이었다.
여기까지는 신기할 뿐 현재 상황을 타개하는 데 큰 도움이 되지 않았다. 도움이 되겠다는 생각이 든 건 실험이었다. 과학자들은 찾아낸 신호 물질을 인위적으로 합성해 동물들이 그에 어떻게 반응하는지 확인하고 기록했다.

“하, 이 사람들 머리 잘 썼네요. 아니, 과학자니까 이 정도는 당연한가?”

화면을 열심히 들여다보던 보나가 기지개를 켜며 말했다.

“왜? 뭐가 있어?”

“화학분석기로 신호 물질의 분자식은 알아냈는데, 실험을 하려면 그걸 많이 만들어야 하잖아요? 근데 그걸 음식출력기로 했어요.”

“음식출력기? 그게 그런 것도 할 수 있어?”

“싸구려는 안 되는데. 괜찮은 음식출력기는 음식에 향을 입히기 위해 꽤나 정교한 분자 합성 장치를 써요. 고형물을 만드는 데 쓰는 원료로 영양이나 질감은 흉내 내는데, 그, 뭐냐, 풍미를 느끼게 하려면 향이 중요하거든요. 생화학 특기병 교육에 그런 내용도 있어요. 음식출력기를 조작해서 즉석에서 독가스 만드는 법을 배우죠. 뭐, 제대로 된 독가스는 아니고 잠깐 적을 곤란하게 하는 정도의 물질을 급조하는 거지만.”

그러고 보니 윤도 그런 이야기를 들어본 적이 있는 것 같았다. 

“그럼 중사도 할 수 있나? 그런 냄새를 만들어서 동물들을 유인하면 우주선까지 길을 낼 수 있을 것 같은데?”

“제가 지금부터 연구해서 하려면 어렵고, 여기 사람들이 세팅해 놓았던 걸 찾으면 할 수 있을 거예요.”

다행히 기록이 남아있었다. 각 신호 물질을 만드는 방법과 원료, 그게 어떤 동물에게 어떤 명령을 내리는지가 적힌 자료를 찾을 수 있었다. 과학자들이 붙여 놓은 이름이 있었지만, 보나는 자신이 붙인 이름을 고집했다. 가장 덩치 크고 위험한 맹수는 바위곰, 풀숲에 낮게 웅크리고 돌아다니며 무리 지어 공격하는 놈들은 악어개, 그리고 두더지와 갈갈이. 불쌍하게 식량 역할을 하는 초식동물은 돼지토끼였다. 연구소 기록에는 날짐승을 비롯해 더 다양한 동물이 있었지만, 그중에는 문외한의 눈으로 구분하기 어려운 종류도 있었다. 윤은 일단 이 정도면 충분할 거라고 생각했다. 

예상보다 시간이 더 걸렸지만, 결국 보나가 해냈다. 이틀 동안 과학자들이 남긴 자료와 음식출력기를 갖고 끙끙거리더니 전투 담당 육식동물 두 종류를 유인하는 신호 물질을 만드는 데 성공했다. 그동안 에흐진은 우주선에서 할 수 있는 만큼 손상된 부위를 고치고 설치해 놓은 호스로 물을 보충했다. 티르민은 윤과 통신을 주고받으며 정찰 드론을 내보내 주변 상황을 파악했다. 그 와중에 드론 한 대가 날짐승의 공격을 받아 추락했다. 이제 남은 드론은 두 기였다. 

드론으로 파악한 정보에 따르면, 별다른 큰 전투는 없는 상태로 연구소 쪽 숲이 꾸준히 밀려나고 있었다. 이따금 기습을 시도하다가 더 많은 병력에 밀려 후퇴하는 모습이 보이곤 했다. 윤은 이 전선이 얼마나 길게 뻗어 있는지 궁금했다. 숲 경계선을 따라 양쪽으로 드론을 보내 관찰하니 각각 약 5킬로미터까지는 전선이 이어져 상태였다. 그 너머는 드론의 귀환 가능 거리 밖이라 알 수 없었다.
양쪽 숲 모두 전체에 비상이 걸린 모양이라 돌아서 걸어가기는 무리인 듯했다. 그때 윤은 인공위성을 떠올렸다. 우주선에서는 안 됐지만, 연구소에서는 연결이 될 터였다. 연구용이었으니까. 위성 제어 프로그램은 쉽게 찾을 수 있었다. 윤은 위성에 접속해 연구소 상공을 지날 때 촬영을 하도록 설정했고, 마침내 위성사진을 얻을 수 있었다. 

지난 며칠 동안 이런 일을 겪고 나자 특이한 점이 확연히 보였다. 지금 착륙해 있는 대륙은 해안가를 제외한 거의 전체가 숲으로 덮여 있었는데, 맨 땅이 드러난 곳이 마치 그물처럼 복잡해 보였다. 그게 모두 이른바 국경인 셈이었다. 이런 숲이 모두 몇 개 있나 세어 보려다가 포기할 정도였다. 이런 숲 하나하나가 살아 움직이는 것처럼 이웃 숲과 싸움을 벌이고 있는 거라면 정세가 얼마나 복잡할지 도무지 상상이 되지 않았다. 

윤은 인간의 국가가 몇몇 대표자의 지시에 의해 움직이는 게 아니라 국가 그 자체가 의식적인 존재라면 과연 어떨지 상상해 보았다. 자신이 인지하지 못하는 채로 거대한 보드게임의 말처럼 움직인다면 어떤 기분일까? 아니, 이미 그러고 있는 게 아닐까? 그런 생각이 잠깐 들었지만, 단순무지한 짐승과 인간은 다를 거라고 생각했다. 그래야 했다. 윤은 고개를 흔들었다. 
지금 적 - 윤은 강쪽 숲을 적, 연구소쪽 숲을 아군으로 구분하기로 했다 - 은 아군보다 훨씬 더 넓은 영역을 차지하고 있었다. 그리고 강을 차지하고 있다는 게 상당히 유리한 것 같았다. 이곳 동물들도 물이 있어야 살 수 있다. 수원을 확보하는 건 숲의 큰 목표일 게 분명했다.  
아군 숲의 영역에는 큰 강이 지나지 않았다. 갈라져 나온 작은 지류 몇 개만이 숲에 물을 대고 있었다. 우주선이 착륙한 곳이 가장 강에 가깝게 접근했던 지역인데, 이번 공격으로 그곳에서도 더 멀리 쫓겨나고 말았다. 

그리고 근처의 숲은 그 둘만이 아니었다. 아군 숲은 북쪽으로는 현재의 적과 마주하고 있었고, 동쪽으로는 작은 숲 두 개, 남쪽과 서쪽으로는 비슷한 규모의 숲과 닿아 있었다. 이곳저곳에서 산발적으로 벌어지는 전투에 동물들을 효과적으로 투입할 수 있는 존재라면 무시할 수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적 숲 역시 사방으로 다른 숲과 마주하고 있었다. 전선을 비교적 곧고 길게 유지하며 밀고 내려온 남쪽과 달리 동쪽의 경계는 침공을 당했는지 안쪽으로 꽤 깊숙이 파먹힌 양상을 보이는 곳도 있었다. 동쪽으로는 우주선에서 10여 킬로미터만 가면 또 다른 국경이었다.  
윤은 우주선에서 500미터쯤 떨어진 곳에 아군 숲의 동물을 집중시켜 공격을 유발하겠다는 계획을 세웠다. 적 동물들이 방어하러 그곳으로 쏠리게 되면 그 틈을 타서 우주선으로 가겠다는 생각이었다. 
보나는 만들어 낸 신호 물질을 냄새가 없는 작은 에너지바에 입혀서 밀폐 용기에 담았다.

“난 아무 냄새도…, 여기 공기가 원체 시큼해서 잘 모르겠는걸.” 윤이 뚜껑을 살짝 열고 킁킁거리며 말했다. “일단 밖에서 실험해봐야겠어.”

“그랬다가 동물들이 죄다 이쪽으로 몰려오면 어떡하죠? 제가 양을 잘 몰라서…, 이게 엄청 강한 신호일 수도 있어요. 직접 동물들을 다 끌고 최전선까지 가실 건가요?”

생각해 보니 그랬다. 윤은 에너지바를 약간 떼어 낸 뒤 문을 열고 바깥으로 힘껏 던졌다. 그리고 창문을 통해 밖을 관찰했다. 
한동안 기다렸지만, 아무 반응이 없었다. 아직도 연구소 주위를 맴도는 바위곰과 악어개 한 무리도 행동에 변화를 보이지 않았다. 

“냄새가 너무 옅은가?”

함께 지켜보던 보나가 중얼거렸다. 윤은 잠시 고민하다가 에흐진을 호출해 드론 한 대를 연구소로 날리라고 지시했다. 

“네, 대위님. 그런데 도중에 날짐승에게 공격을 받을 수도 있습니다.”


윤은 에흐진에게 계획을 설명하고 목표 장소를 전달했다. 보나가 만들어 낸 신호 물질은 네 종류였다. 바위곰과 악어개를 대상으로 했고, 각각에게 집결 명령과 공격 명령을 내리는 냄새였다. 원래 숲은 여러 나무에서 제각기 집결, 대기, 공격 등의 명령을 동시에 혹은 시차를 두고 뿜어내며 복잡한 움직임을 만들었다. 어떻게 조합하느냐에 따라 양동 작전이나 매복, 유인 후 기습 같은 다양한 전술을 쓸 수 있었고, 과학자들이 남긴 기록에 따르면 이와 같은 절묘한 움직임으로 적 병력 일부를 깊숙이 끌어들여 포위 후 몰살한 사례도 있었다. 하지만 지금 윤으로서는 냄새 나는 음식 덩어리 몇 개를 끌고 다니는 수준의 방법밖에 쓸 수 없었다. 

다행히 드론은 무사히 도착했다. 윤과 보나는 준비한 에너지바를 드론에 매달았다. 드론에 로봇팔 같은 게 없어서 어쩔 수 없이 드론이 냄새를 풍기며 동물들을 이끌어야 했다. 
윤은 연구소 밖에서 일부러 감시조 동물들의 시선을 끌며 드론을 날리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혹시나 저번에 윤과 보나에게 그랬던 것처럼 드론도 같은 편이라고 인식하게 될까 싶어서였다.  
티르민이 우주선에서 드론을 조종했고, 에흐진이 상황을 윤과 보나에게 중계했다. 

“공격받지 않고 진행 중입니다. 나뭇잎에 가려서 땅 위의 상황은 보이지 않습니다만, 곧 말씀하신 위치에 도달합니다.”

곧 드론이 목표 지점에 도착했지만, 아래에서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알 수가 없었다. 적이 아군 숲을 무너뜨리고 있는 전선에서 남쪽으로 500미터쯤 떨어진 곳이었다. 방어 병력은 어느 정도 위치에서 대기하고 있을까?

“내려가 봐야 알 것 같은데요?”

티르민은 대답을 듣지도 않고 드론을 내렸다. 윤이 입을 열려다가 그만두었다. 상황을 알려면 그 수밖에 없었다. 

“나뭇잎 아래로 내려왔습니다. 잠시 돌아다니는 중입니다. 아, 동물이 보입니다. 육식동물 같은데, 드론을 보며 쫓아다니고 있습니다. 하지만 높이 때문에…. 아, 티르민, 나무에 붙지 마. 저 녀석들 나무에 올라간다.”

윤은 순간 긴장했다. 드론이 공격받을까봐서인지 티르민이 에흐진에게 간섭하지 말라고 대들까봐서인지는 헷갈렸다. 하지만 티르민은 별 말이 없었다. 지금 이 상황이 재미있는 모양이었다. 이런 재미가 있을 때는 남의 말을 잘 듣지 않는 사람이었다. 티르민은 드론이 나무에 부딪치지 않도록, 혹시 뛰어올라 공격할지 모르는 동물을 피하며 드론을 요리조리 조종했다. 

“아직 동물들이 모여드는 모습은 안 보…, 아, 티르민, 카메라 좀 오른쪽으로 돌려봐!”

“무슨 일이지, 상사?”

윤이 묻자 곧바로 대답이 들렸다. 

“동물들이 이쪽으로 오는 게 보입니다. 몇 마리가 달려오고 있는데, 오, 그 뒤로 더 보입니다.”

윤과 보나가 손뼉을 마주쳤다. 

“좋아. 이제 적진으로 유인을 해보자고.”

티르민이 동물들이 몰려오는 방향의 반대편으로 드론을 날렸다. 육식동물들이 계속 쫓아오는 모습이 보이자 윤은 쾌재를 불렀다. 그런데 에흐진의 당황한 목소리가 들렸다. 

“어? 중사, 그런데 어디로….”

디스플레이로 드론의 위치를 보던 윤도 곧 눈치 챘다. 공격대를 이끌고 북쪽으로 가고 있어야 할 드론이 남쪽으로 움직이고 있었다. 

“중사, 북쪽으로 동물을 끌고 가야 해!”

“네? 이 방향이 맞는데요? 지금 제 뒤쪽에서 계속 동물들이 모이고 있잖아요! ”

“뭐라고?”

“그러면 지금 병력을 후퇴시키고 있는 거라고!”

윤이 외쳤지만, 곧 희한한 일이 벌어졌다. 에흐진이 드론의 진행 방향에서 대규모 병력이 나타나 돌격해오고 있다고 보고했다.  

“뭐라고?”

“적입니다.”

‘후퇴 중인데 앞에서 적이 나타났다고?’

어리둥절해 있는 사이에 에흐진의 목소리가 다시 들렸다. 

“싸움이 벌어졌습니다. 그런데 편이 구분이 되질 않아서…. 지금 여기저기서 계속 동물들이 모여들고 있습니다.”

싸움은 오래 끌지 않고 끝났다. 누가 이긴 건지는 모르겠지만, 수적으로 열세에 놓인 한 무리가 완전히 포위당해 도륙당하고 말았다. 그 와중에 드론도 어디선가 날아온 날짐승에게 공격받아 연구소로 후퇴했다.
드론을 회수하러 문을 열고 나갔던 윤은 하마터면 돌진해 온 악어개들에게 물릴 뻔했다. 보나가 재빨리 문을 닫아걸었다. 
윤은 뭔가 짚이는 게 있어 얼른 연구실로 뛰어갔다. 컴퓨터 앞으로 다가가 위성사진을 불러냈다. 그리고 최근 사진부터 과거로 계속 거슬러 올라갔다. 역시 예상대로였다. 숲의 경계는 대단히 유동적이었다. 이곳의 나무는 자라는 속도가 대단히 빨랐다. 몇 년 사이에 경계가 완전히 바뀌는 것도 가능해 보였다. 

“뭘 보시는 거예요?”

“중사, 과학자들이 실험을 한 게 언제지? 날짜 좀 줘봐.”

보나가 자료를 살펴보더니 대답했다. 윤이 사진을 더 빨리 넘기다가 한숨을 쉬며 의자에 등을 기댔다. 

“역시.”

“뭐가 역시인가요?”

“이걸 봐.”

보나가 위성사진을 들여다보았다. 

“여기가 연구소야.” 윤이 한 지점을 가리켰다. “그리고 숲의 경계는….”

그건 설명할 필요도 없었다.

“아, 그때 여기는 다른 숲의 영역이었군요!”

“그래. 지금 우리가 적이라고 부르는 그 숲이야. 원래 이 연구소는 우리 우주선처럼 숲과 숲 사이의 빈 공간에 있었어. 그러다 시간이 지나면서 저쪽 숲이 그 땅을 먹어버린 거지. 그 뒤에 이쪽 숲이 땅을 빼앗은 거야. 그래, 젠장. 어쩐지 뜬금없이 숲 한가운데다 지었다 했어.”

“젠장, 그러면….”

“그래, 우리가 만든 신호 물질은 저쪽 숲의 동물들에게 통하는 거였어. 우리가 적군을 이쪽으로 끌어들인 거야. 소수의 침입이니까 여기서 쉽게 막긴 했지만….”

“그러면 우리가 첩자? 아니면, 배신자가 된 꼴이네요?”

“그렇지.”

보나가 허탈한 듯이 웃었다. 그때 쿵- 하는 소리가 들리며 건물이 울렸다. 
재빨리 문으로 뛰어나 밖을 내다보니 마침 바위곰 한 마리가 문을 향해 돌진했다. 윤이 흠칫 놀라 뒤로 물러서자 다시 한 번 문이 진동했다. 

“빌어먹을. 완전히 찍힌 모양인데.”

살짝만 내다봐도 연구소가 완전히 포위당한 상태라는 걸 알 수 있었다. 본진 깊숙이 들어와 있는 적을 놔둘 존재가 있을 리 없었다. 윤과 보나는 서둘러 가구 따위로 문과 창문을 막았다. 덩치 큰 맹수라 해도 동물의 수준으로 건물을 어떻게 하기는 어렵겠지만, 탈출은 더욱 힘들게 되어 버렸다. 건물을 두드리던 소리는 곧 잦아들었다. 
한숨 돌린 보나는 위성사진을 다시 천천히 돌려보았다. 

“와, 이거 완전 난세인데요? 국경이 안정적일 때가 없네요. 여기 보세요. 이 숲은 이렇게 컸는데…, 국경이 길어지니까 적이 많아지고, 그렇게 야금야금 줄어들었어요. 작았던 곳이 커지기도 하고. 얘네 혹시 동맹 같은 것도 맺으려나요?”

“글쎄. 불가능하다고는 할 수 없겠는걸.”

“설마 이 행성 전체가 이런 걸까요? 기후가 다른 지역도 있을 텐데, 그런 곳은 또 어쩌려나….”

보나가 다른 지역의 위성사진을 찾아보려는 걸 윤이 말렸다. 

“중사, 지금은 그게 중요한 게 아니야. 신호 물질을 더 만들어야 해. 일단 우리가 만드는 신호 물질이 저쪽 숲의 동물에게 효과가 있다는 걸 알았으니 그걸 활용해야지.”

보나는 군소리 없이 바로 작업에 들어갔다. 

보나가 작업하는 동안 윤은 위성사진을 들여다보며 밤새 궁리했다. 이 숲을 무사히 빠져나가려면 이곳의 육식동물을 다른 곳으로 보내야 했다. 어느 한 곳의 방어에 집중하게 하면 될 것 같았지만, 그 경우에도 다른 곳에 경계 병력은 남아 있는 듯했다. 이쪽 숲에서 확실하게 병력이 빠지게 하려면 전선이 전체적으로 밀고 올라가야 상대방 숲에서 전투가 이루어지게 해야 했다. 
창고를 더 뒤지니 민간용 사냥총이 몇 자루 나왔다. 아쉽지만 잃어버린 윤의 소총 대용으로 쓸 만했다. 조명탄도 있었는데, 어떻게 활용해야 할지 감이 오지 않았다. 숲에 불을 낼까 싶었지만, 불이 잘 붙을 만한 곳은 우주선이 착륙해 있는 경계 지대뿐인 것 같았다. 드론이 더 있다면 좋으련만, 없었다.
아침이 되자 에흐진이 윤을 호출했다. 

“대위님?”

“뭐지?”

“서두르셔야 할 것 같습니다. 우주선이 공격받고 있습니다.”

윤은 어제 연구소 문을 부수려던 바위곰을 떠올렸다. 

“드론을 공격했던 날짐승 무리가 우주선 위로 돌을 떨어뜨리고 있습니다. 돌이 크지 않아 심각한 공격은 아닌데, 자칫 예민한 부품에 맞을까 봐 걱정스럽습니다.”

‘그런 것도 할 수 있어?’

공중 폭격이라니 윤은 진심으로 놀랐다. 군용 우주선이 돌 정도에 부서질 리는 없지만, 가뜩이나 이미 손상을 입은 상태에서 더 충격을 받는 건 바람직하지 않았다. 그때 보나가 말했다. 

“새 말이라면, 새를 유인하는 물질도 만들어 봤어요. 이번에는 전체적으로 냄새의 강도를 높였어요. 아무래도 더 넓게 퍼지는 좋을 것 같아서.”

윤은  보나가 만든 날짐승 유인용 에너지바를 드론 아래에 붙인 뒤 천장문을 열었다. 조심스럽게 고개를 내밀고 주위를 살폈는데, 위험하지 않아 보였다. 하늘을 둘러보니 멀리서 커다란 새 한두 마리가 날고 있었다.

“티르민, 드론을 우주선 근처까지 날렸다가 다시 이쪽으로 보내. 새들을 유인할 수 있을 정도까지만 가까이 붙어. 드론을 잃으면 안 되니까 조종 실력을 최고로 발휘해야 할 거야. 할 수 있겠지?”

“물론입죠, 대위님. 실패하면 우리끼리 가 버리면 그만이고요, 뭐. 하하하.”

“흥, 네가 혼자서 우주선 처분할 수 있어? 그거 대위님 인맥인 거 알지?”

보나가 끼어들어 핀잔을 놓았다. 티르민은 아무 대답이 없었고, 드론이 날아올랐다. 윤은 멀어지는 드론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이제는 운에 맡기는 수밖에 없었다. 동물들이 얼마나 먼 거리에서 냄새를 맡을 수 있을지는 몰랐다. 바람이 어디서 어디로 부는지도 알 수 없었다. 티르민의 감각을 믿는 수밖에 없었다. 

“저 재수없는 놈한테 기대야 한다니 별로네요. 그런데 어떡하실 거예요?”

“일단 우주선을 폭격하는 놈들을 이쪽으로 끌어들이는 거야. 그러면 여기서도 새들이 나서겠지. 그렇게 싸움을 붙여 놓고 드론 둘을 다 우리 쪽으로 가져와서 육상 동물을 유인하는 데 써야지.”

윤은 머릿속의 생각을 보나에게 간단히 설명했다. 보나는 미심쩍은 표정을 지었지만 고개를 끄덕였다. 어차피 더 좋은 생각도 없었다. 

“성공입니다!”

에흐진의 목소리가 들렸다. 

“돌을 던지던 놈들이 드론을 따라가고 있습니다.”

정찰용 드론의 속도가 빨라서 다행이었다. 쉽게 새들에게 따라잡히지 않았다. 얼마 뒤 에흐진이 다시 보고했다. 

“전방에 또 다른 새 무리가 있습니다. 곧 조우합니다.”

“티르민, 믿겠다!”

윤이 외쳤다. 

“됐다!”

티르민의 고함 소리가 들렸다. 

“들려요, 대위님? 양쪽에 잡히기 직전에 급상승해서 피했다고요. 저 놈들이 나무 냄새를 맡고 움직이는 거면 아주 높은 곳으로는 잘 안 올 거 아니겠어요?”

듣고 보니 그럴듯했다. 

“쟤가 머리도 쓸 줄 아네….”

보나가 중얼거렸다. 다시 에흐진이 보고했다. 

“대위님, 드론은 멀찍이 피했습니다. 영상을 확인하니 날짐승들이 뒤엉켜 싸우고 있습니다.”

“상사, 남은 드론도 빨리 새들이 싸우는 곳을 피해서 이쪽으로 보내. 바람 상태를 보고 가능한 한 고고도로 보내도록.”

두 드론이 차례로 연구소에 도착했다. 윤과 보내는 주요 전투 병력을 이루는 육식동물 두 종류에 집결과 공격 명령을 내리는 에너지바를 드론에 부착했다. 방금 새를 유인하는 데 썼던 드론은 미리 가능한 한 깨끗이 닦았다.

“두 드론을 숲 경계에서 머물게 해. 그리고 동물들이 따라오면 강 너머로 가지고 가. 강 너머의 숲 안쪽으로 들어간 뒤 강이 흐르는 방향을 따라 왕복하며 동물을 유인한다. 전장을 강쪽 숲으로 옮겨야 해. 알겠지?”

“그게 계획이에요? 그게 쉽게 되려나….”

티르민이 중얼거렸다. 윤은 에흐진이 그 옆에서 못마땅한 표정을 짓고 있을 게 눈에 선했다. 

“실패하면, 너희들끼리 알아서 떠나든가.”

윤의 말에 보나가 눈을 휘둥그레 뜨면서 손을 휘저었다.

“에? 진심이에요? 난 아니에요. 안 돼. 그러면 죽을 줄 알아!”

“그럴 리는 없으니까 걱정 마, 중사. 만약 이 녀석이 멋대로 이륙하려 들면 내가 모가지를 비틀어 버리겠다.”

에흐진의 말이었다. 티르민은 코웃음만 치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또 다시 드론이 옥상에서 이륙했다. 윤과 보나는 냄새를 입히기 전의 에너지바를 하나씩 먹고 출발 준비를 갖췄다. 

“대위님?”

“상사? 어떻게 되고 있나?”

“성공입니다. 그쪽 숲으로 들어갔던 육식동물들이 다시 나오고 있습니다. 지금 다시 강을 향해 가고 있는데, 곧 강을 건널 것 같습니다.”

윤은 가려 놓은 바리케이트를 치우고 창밖을 내다보았다. 아직은 아무런 변화가 없었다. 

‘적군이 철수했다는 걸 숲이 알아채고 병력에게 전진 명령을 내리려면 얼마나 걸릴까? 혹시 잃어버렸던 영토만 회복하고 공격은 하지 않으면 어떡하지? 아니야, 이 기회에 강까지 영역을 넓혀 놓으면 물 확보에 유리해진다는 걸 숲도 알 거야. 제발.’

숲은 반응이 빨랐다. 땅 속에서 하나로 연결된 뿌리를 통해 정보를 전달한다는 추측이 맞는 모양이었다. 널브러져 있던 바위곰 한 마리가 고개를 번쩍 들었다. 그리고 코를 킁킁거리더니 일어서서 움직이기 시작했다. 곧 주변의 다른 바위곰들도 똑같은 방향으로 향했다. 악어개가 뒤를 따르면서 풀숲이 흔들리는 모습도 보였다. 이윽고 연구소 주변에 진을 치고 있던 육식동물은 모두 사라지고 말았다. 

“갈까요?”

보나가 물었다.

“아니, 조금만 더.”

윤은 에흐진의 보고를 기다렸다. 

“나옵니다! 공격 들어갔던 초식동물들이 쫓겨나오고 있습니다. 호위 병력이 없으니 거의 학살 수준입니다.”

이제 가야 했다. 윤과 보나는 창고에서 챙긴 보급품 가방을 짊어지고 총을 한 자루씩 든 채 천천히 걸어나왔다. 열 걸음 정도 걸어나왔지만, 주변에 동물의 기척은 없었다. 두 사람은 속도를 높였다. 

“에, 대위님? 강 너머 쪽은 좀 혼란스러운데요. 얘들이 드론을 따라오긴 했는데, 우왕좌왕해요.”

당연했다. 그쪽 숲이라고 가만히 있을 리는 없었다. 명령이 서로 뒤섞이는 바람에 동물들이 갈피를 못 잡고 있는 게 분명했다. 윤은 재빨리 생각했다. 어젯밤 열심히 들여다 본 위성사진을 떠올리려고 필사적으로 노력했다. 

“둘 중 동력이 더 많이 남은 드론을 조종하는 게 누구지?”

“티르민입니다.”

“중사, 드론을 동쪽으로 보내. 나무 위로 올라가서 최대 속도로 가. 동쪽에서 10도 정도 북쪽으로 치우친 방향으로 움직여. 거기 있는 동물이 못 따라와도 좋으니 최대한 빨리 가라고.”

“얼마나 가요?”

“드론 회수는 생각하지 말고 가. 조종이 허락하는 대로 고도 높여서 우리가 착륙한 것 같은 경계를 찾아.”

그건 동쪽 숲와 맞닿은 곳으로 가는 가장 짧은 경로였다. 기억에 의존한 데다가 대략적인 드론의 위치만 알고 지시하긴 했지만, 드론을 높이 올려보내면 티르민이 화면으로 찾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적 숲의 동쪽에 있는 다른 숲이 끼어들게 하는 게 목적이었다. 그 숲 역시 영역이 만만치 않게 넓었다. 그쪽으로 동물을 유인해 들어가면 새로운 전투를 일으킬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러면 적 숲은 동쪽 경계로 병력을 보내야 할 것이고, 그 틈을 타 연구소쪽 숲 - 이제는 아군이라고 할 수 없었다 - 이 북쪽으로 치고 올라갈 수 있었다. 
윤과 보나는 통신에 귀를 기울인 채 한적해진 숲을 부지런히 걸었다. 

“대장! 있어요! 다른 경계가 있어요. 저 너머는 또 다른 숲인가요?”

“중사, 이제….”

“아, 걱정 마시길. 다 안다고요. 여기서 동물 유인해서 저 쪽으로 쳐들어가란 소리죠? 자, 갑니다~.”

역시 숲의 반응은 빨랐다. 얼마 뒤 에흐진은 강 건너편에 있던 동물들이 나뉘어 일부는 동쪽으로 가고 있다고 보고했다. 나머지는 다시 강을 건너 연구소쪽 숲의 공격을 방어하러 갔다. 윤은 이 혼란을 틈타 북쪽이나 서쪽의 다른 숲도 쳐들어와 준다면 고맙겠다고 생각했다. 
에흐진이 조종하던 드론은 동력이 떨어져 우주선으로 귀환하던 중 공격을 받아 추락했다. 에흐진은 그때부터 우주선 밖의 상황을 알려왔다. 

“저번과는 다릅니다. 이번에는 북쪽 숲이 밀리고 있습니다. 남쪽에서 온 병력이 강에 접한 숲 속으로 들어갔습니다. 그 안에서 싸움이 벌어지고 있는 것 같은데, 여기서는 안 보입니다.”

“좋아, 상사. 우리는 이제 곧 도착한다.”

“에, 그래도 조심하셔야 합니다. 우주선 주변에도 육식동물이 남아서 적의 초식동물을 사냥하고 있습니다. 아, 이제 초식동물 부대도 강쪽을 향해 밀고나오고 있군요. 그 사이에 호위로 보이는 육식동물도 보입니다.

마침내 윤과 보나는 숲의 경계에 도달했다. 며칠 사이에 경계에 있던 풀과 나무가 상당수 죽는 바람에 숲 경계에서 우주선까지의 거리는 더 멀어져 있었다. 공터에서는 널브러진 동물들의 시체 사이로 초식동물들이 이동하는 중이었다. 그 무리가 우주선을 지나치자 윤과 보나는 우주선을 향해 달렸다. 에흐진이 둘을 맞이하기 위해 문을 열고, 경사로를 내렸다. 
그 소리에 초식동물 틈이 끼어 있던 악어개 몇 마리가 뒤를 돌아보더니 윤과 보나를 향해 달려왔다. 

“빌어먹을.”

소총의 탄약이 떨어져 대신 들고 온 사냥총은 연사가 느려 잽싸게 뛰어오는 악어개를 맞추기 어려웠다. 에흐진이 경사로를 뛰어내려오며 총을 갈기자 악어개 두어 마리가 쓰러졌다. 

“조심해!”

저번과 비슷한 상황이었지만, 좀 더 위험했다. 다소 멀리 있던 바위곰이 덩치에 비해 믿을 수 없는 속도로 뛰어와 억센 팔을 휘둘렀다. 에흐진은 경고를 듣고 반사적으로 앞으로 굴렀지만, 곧바로 악어개 몇 마리가 달려들었다. 에흐진이 맞을까 봐 총을 쏠 수 없게 되자 윤과 보나는 사냥총의 개머리판으로 악어개들과 사투를 벌였다. 육중한 발소리를 내며 바위곰이 성큼성큼 다가왔다. 윤이 총을 치켜들었지만, 악어개 한 마리가 뛰어올라 총을 물고 늘어졌다. 

“빌어먹을!”

이제 끝인가 하는 순간 총 소리가 여러 발 들리며 바위곰이 움찔했다. 그리고 곧 천천히 앞으로 쓰러졌다. 그 아래 있던 에흐진과 보나가 재빨리 옆으로 피했다. 총 소리가 더 울리며 악어개 몇 마리가 더 쓰러졌다. 

“에헤이~, 빨리를 안 뛰고 뭐해요!”

티르민이 경사로에서 총을 들고 쏘며 외쳤다. 윤은 보나와 에흐진을 일으켜세운 뒤 우주선을 향해 달렸다. 티르민은 일행이 공격받지 않도록 주변에 암호 사격을 계속했다. 에흐진이 불같이 화를 내며 외쳤다.

“야, 이 미친 놈아. 우리가 맞으면 어떡하려고!” 

“그럼 팔자려니 생각하쇼!”

다들 죽을 팔자는 아니었는지, 무사히 경사로까지 올라갈 수 있었다. 

“잠깐만 기다려요!”

티르민이 말하며 경사로를 뛰어내려갔다. 

“야, 너 어디 가?”

에흐진이 쫓아가며 소리를 질렀다. 

“마마르 소위 찾으러요. 아무리 죽었어도 두고 갈 수는 없잖아요.”

“미친 놈이 왜 이럴 때 의리를 찾아? 지금 가면 죽어!”

에흐진이 티르민의 멱살을 잡고 다시 경사로 위로 끌어올렸다. 윤과 보나가 기다리고 있다가 모두 안으로 들어간 뒤 문을 닫았다. 
우주선까지 오는 데는 성공했지만, 아직 완전히 안심할 수는 없었다. 윤은 매고 있던 가방을 내려놓고 창을 통해 밖의 상황을 살폈다. 티르민은 에흐진이 끌고 와 조종석에 앉히자 이륙 준비를 시작했다.
어느덧 우주선 주변은 조용해졌다. 강쪽 숲에서 나무가 줄줄이 쓰러지는 모습이 보였다. 다른 숲과의 경계에서는 또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을지 이제는 알 방법이 없었다. 영역 재편이 이루어지고 있을지 지금 협공당하고 있는 숲이 혼란을 수습하고 영역을 지켜낼지 궁금하기도 했지만, 알아보고 싶은 생각은 전혀 없었다. 

“전쟁에서 도망쳐 나온 곳이 하필 전쟁터였다니….”

윤이 읊조리자 티르민이 명랑하게 대꾸했다. 

“그래도 난 재미있었어요. 전쟁이 이렇게 재밌다니 괜히 탈영했나?”

“너가 내 입장이었으면 재미 하나도 없었을걸? 닥치고 조종이나 똑바로 해.”

보나가 티르민의 뒤통수를 때리며 말했다. 에흐진은 거구의 몸을 들썩이며 여전히 씩씩거리고 있었다. 
점검을 마친 우주선이 이륙했다. 고도가 높아지면서 위성사진으로 봤던 숲의 모습을 맨눈으로 볼 수 있었다. 마치 서로 다닥다닥 붙어있는 식물세포 같은 모습이었다. 대륙이 한 눈에 들어올 정도가 되자 경계선은 점차 희미해지다가 마침내 보이지 않게 되었다. 다들 말없이 지상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비록 한 덩어리의 숲으로 보여도 그 안에서는 언제부터 시작되었는지 알 수 없는 전쟁이 지금도 치열하게 벌어지고 있다는 사실을 이제는 알았다. 동물 군대를 조종하는 숲과 숲의 전쟁이.

윤은 숲 자체가 지성체일 수도 있다는 과학자들의 추측에 관해 생각했다. 

‘말 그대로 사는 게 전쟁이라니 저들은 영원히 이렇게 살아야 하는 걸까? 전쟁을 멈추고 서로 평화롭게 지낼 수도 있을까?’

만약 숲들이 전쟁을 그만두고 서로 협력한다면, 아니면 어느 한 숲의 주도로 통일이 된다면, 이 행성이 어떤 모습이 될지 윤으로서는 도무지 떠올릴 수 없었다. 그저 이게 자신이 겪는 마지막 전쟁이기만을 바랄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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