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PCTP Everywhere

끝내지 말아야 할 우리들의 소통

포스텍 물리학과

2010년 3월 통권 54호

나는 아직도 좀 어리다. 순전히 호기심만으로 행동하곤 하는데 이번 APCTP 과학 커뮤니케이션 겨울 학교 참가도 그랬다. 작은 학교 둥지 안에 웅크리고 있어도 ‘소통’이란 구호는 끊임없이 들려왔기 때문이다. ‘통섭’, ‘융합’과 더불어 가장 많이 입에 오르내리는 이 키워드는 내 호기심을 자극하기에 충분했다. 이러한 시대적 분위기가 과열된 것은 아닌지 질문하고 싶었던 것이다. 프로그램이 끝나고 답해본다는 마음가짐으로 난 어느새 과학 커뮤니케이션 겨울 학교 오리엔테이션을 듣고 있었다.

과학 커뮤니케이션 학교는 먼저 두 가지 기술에 초점을 두고 있었다. 효과적으로 쓰고, 효과적으로 말하는 것. 글쓰기와 프레젠테이션 강의의 목적은 넓은 안목을 전제하고 그것을 효과적으로 전달하는 기술에 맞추어져 있었다. 아마도 이 프로그램이 참가자 모두들에게 새로운 능력 개발보다는 자신의 취약점을 깨닫는 중요한 계기가 되었을 거라 짐작한다. 난 특히 군더더기 없이 말하는 능력이 부족했다. 선생님들과 참가자들의 날 선 질문에 대해 내 답변은 장황하기만 했고 허공을 맴돌며 흩어지곤 했다. 힘있는 말일수록 간단명료하다는 신념을 얻었고 내 약점을 메우어나갈 절박한 필요 역시 체감할 수 있었다. 다른 참가자들의 훌륭한 소통 실력과 통찰력에서도 많은 귀감을 얻었으니, 노력하는 내게도 앞으로 큰 진전이 찾아왔으면 좋겠다.

또한 자타가 공인한 선생님들의 강의는 참가자들이 각자의 입장을 성찰할 기회가 되었다. 일례로 난 진중권 선생님에게 과학도로서 느끼는 인문학의 형이상성에 대한 부담감을 털어놨었다. 내가 따르는 입장이 ‘논리실증주의’임을 대번에 간파하신 것도 놀라웠지만, 이어서 전해주신 말씀은 내게 큰 고민을 안겨줬다. 사실들의 집합이더라도 그 요소가 어떻게 배치되는가에 따라 사람들은 다르게 읽는다는 지적이었다. 이 답변을 기회 삼아 난 앞으로 지적해주신 배치와 그에 따른 인식의 문제에 관심을 둘 계획이다. 비단 나뿐만이 아니라 다른 참가자들도 나름대로의 새로운 분기점을 마련했을 것이다.

의사를 상대방에게 ‘표현하는 것’에만 주목하는 프로그램의 단방향성은 재고되기를 바란다. 어떤 언어학 연구에 따르면 ‘듣기’ 활동은 ‘말하기’보다 일면 더 힘든 작업이라고 한다. 사람이 이해할 수 있는 단어는 분당 평균 500~600개 정도인 반면, 말하는 평균 속도는 그에 못 미치는 100~140개이기 때문이다. 영어에 대한 연구였지만 언어마다의 차이는 대동소이할 것으로 추측된다. 결국 청자는 화자의 말을 들으면서도 다른 것에 신경을 쓰게 되고 이는 청자의 집중력에 큰 해를 준다. 혹시 청자의 의식적인 집중만이 이에 대한 유일한 해답이라면, 그 노력의 필요성을 깨닫는 기회를 주어야 온전한 ‘커뮤니케이션’ 교육이 될 것이다.

2박 3일의 짧은 일정을 마치고 안면을 튼 참가자들과 포항 죽도 시장에 나갔다. 아주머니께서 손수 말아주신 물회를 먹으며 다시 질문을 해봤다. 커뮤니케이션? 이는 왜 이 시대의 구호가 된 걸까? 필연적인 요구일까, 아니면 우발적으로 태어난 수명 짧은 유행일 뿐일까? 질문에 확실한 답을 내리겠다는 내 종전의 대담함은 온데간데없었다. 한가지만은 의심의 여지가 없음을 밝혀야겠다. 이번 APCTP 과학 커뮤니케이션 학교에서 난 하나부터 열까지 ‘다른 사람을 통해’ 배웠다. 내가 다른 참가자에게 교훈이 되었을 지도 모를 일이다. 이렇게 서로 배워나가는 걸 권장하는 시대 구호에 새삼 고마움을 느꼈다. 그래서 ‘커뮤니케이션’이란 단어가 혹여 유행으로 끝나지 않도록 잘 보듬고 간직해야겠다고 다짐했다. APCTP 과학 커뮤니케이션 학교가 앞으로도 이공계 학생들에게 큰 영감의 기회로 이어졌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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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지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