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F에서의 로맨스에 대하여
로맨스 장르는 어쩌면 SF와 가장 거리가 있는 장르라는 인식이 있는지도 모르겠다. 과학적 상상력과 경이감, 그리고 사고실험이라는 SF를 정의하는데 사용되는 다양한 언표들은 어쩌면 인간의 감정이 얽히고설키면서 연애라는 상태의 관계에 집중하는 로맨스와는 대척점에 있는 것처럼 느껴질 것이다. 게다가 근대 이후의 로맨스가 연인들 간의 낭만적 사랑(Romantic Love)이라는 언표들을 전면에 내세우면서 장르적 정체성을 구축해온 것을 감안하면 이러한 인상은 더 짙어질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것은 SF의 역사에서 로맨스 요소들이 가지고 있었던 업적들을 망각했기 때문에 할 수 있는 생각이다. SF는 이미 로맨스라는 장르와 친연한 관계를 맺으면서 현재에 이르렀기 때문이다.
SF에서 로맨스 요소는 장르가 1960년대를 지나면서 다양한 매체로 확장되면서 필연적으로 나타난 현상이었다. 특히 <스타트렉> 시리즈에서 SF 작가였던 할란 엘리슨이나 시어도어 스터전이 등이 시나리오 집필에 참여하던 시기에 다양한 시도들이 이뤄졌는데, 거기에서 기존의 TV 드라마 시리즈들에서 사용하던 로맨스적 요소들로 인물들 간의 관계를 얽어내는 에피소드들이 과감하게 차용되었다는 것은 이미 유명한 이야기이다. 이후에도 다양한 기술의 발달과 로봇(안드로이드) 및 인공지능과 같은 인간과 같은 존재들을 상상할 때도 이야기를 구성하는 요소 중 근대 이후의 낭만적 사랑에 의한 연애 관계 및 감정에 대한 요소들은 SF에서도 빈번하게 등장하는 요소였다고 할 수 있다. 그렇다면 SF에서 로맨스를 어떠한 의미로 자리하고 있을까?
에바 일루즈에 의하면 낭만적 사랑은 일종의 현재의 경계들을 넘나들면서 위반적 성격을 가지고 있다. 특히 현실적 구조가 가지고 있는 의미들에 대한 우위를 주장하면서 대안적 사회질서에 대한 가능성을 열어놓는 성격을 지닌다는 것이다. 이를 통해 낭만적 사랑은 일종의 유토피아를 구축하게 되는데, 이 과정에서 필연적으로 사회질서에 반하는 의례들을 상징적으로 재현하게 된다. 그리고 로맨스라는 장르의 이야기에는 이러한 위반적 유토피아에 대한 갈망들이 직간접적으로 구현되어 있다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이러한 구조는 기본적으로 SF가 추구하는 사고실험에 대한 지점들과 맞닿아 있다. 전형적인 SF들이 지금의 구조들보다 우위를 가지는 위반성을 과학기술의 발달에서 찾는다면 로맨스는 그것을 낭만적 사랑이라는 관계성에서 획득한다는 차이만 있을 뿐이다.
SF와 로맨스는 결과적으로 현실에서 우리가 인지하고 있는 어떠한 영역에 대한 새로운 가능성들에 대해 이야기한다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 그리고 그 가능성은 이야기하는 과정에서 현실의 문제에 대한 다양한 사고실험들을 가능하게 하고, 우리 안에 내재되어 있거나 은폐되어 있던 새로운 욕망이나 필요들을 드러내게 한다. 로맨스는 SF에 대해서 이항대립적인 영역에 속해있는 이야기 방식이 아니라, 오히려 SF의 세계관을 새롭게 확장해 줄 가능성과 더 많은 상호작용을 할 수 있는 요소라고 할 수 있는 것이다. 이러한 사실들을 볼 때, SF의 역사적 발달에 있어서 로맨스는 간과할 수 없는 부분이었다고 할 수 있다.
한국의 SF는 이러한 부분들에 대해 더 긴밀한 연관성을 가지고 있다. 한국의 SF가 자신 만의 정체성을 만들어가는 과정에서 1980년대 이후의 순정만화가 가지고 있는 영향력을 무시할 수 없는데, 순정만화를 구성하는 기본적인 이야기 방식은 낭만적 사랑이다. 게다가 한국의 웹소설 로맨스 및 로맨스 판타지 장르에서의 SF적인 요소들은 순정만화가 그러했던 것처럼 웹소설의 어떠한 장르보다 SF적인 장르 요소들을 적극적으로 결합하고 있다. 그러기 때문에 한국의 SF를 이야기할 때 ‘로맨스’는 더 이상 어색한 언표가 아니다. 그 중에서도 제12회 SF어워드의 장편소설 부문의 대상을 받은 박애진의 히아킨토스(고블, 2024)는 현대의 한국 SF가 가지고 있는 다양성과 가능성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소설이라고 할 수 있다.
히아킨토스가 보여주는 타자의 위치
히아킨토스는 전체적인 맥락만 보면 SF라기 보다는 로맨스 판타지에 가까워 보인다. 그것은 작가가 밝힌 것처럼 2003년 7월에 환상문학웹진 <거울>에서 발표했던 「아도니스」에서 제로델을 안드로이드로 변형하는 SF적 요소들을 추가했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외연적으로 보았을 때, 로맨스 판타지적인 인상들을 가지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소설은 중세 유럽과 같은 모양을 취하고 있는 행성 유르베의 안드로이드 제로델이 가드 공작을 강제로 추행한 혐의로 체포되고 재판이 열리는 사건으로 시작된다. 제로델은 안드로이드이지만 튜링 테스트를 통과하고 유르베에서 정식으로 시민권까지 받은 존재였다. 게다가 왕실 근위대의 훈련대장이라는 사회적 지위까지 가지고 있었다. 그렇지만 강제 추행 사건 이후로 제로델에 대해서는 인간이 아니라 안드로이드이기 때문에 보통의 인간들에게 집행되는 행성에서의 추방이 아닌 폐기를 해야한다는 주장이 제기된다.
이러한 상황에서 이야기는 행성 유르베의 추기경인 카이유와가 해당 사건의 중심에 있는 제로델과 그 주변의 인물들을 탐문하는 내용이다. 그 과정에서 카이유와는 제로델이 추행 사건의 피해자로 지목된 가드 공작 이외에도 주변의 다양한 인물들과 연애의 관계를 가졌으며, 모두 다 그에게 호감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그들은 맹목적으로 제로델에 대한 사랑과 호감을 표했다. 만인에게 사랑을 받는 존재, 그것이 제로델이었던 것이다. 제로델은 SF에서 흔히 등장하는 영웅적인 주인공이 아니라, 로맨스 소설에서의 낭만적 주인공과 같은 모습을 보여준다. 제로델을 비호하는 이들이 보여주는 행동은 엘렌 버세이드가 이야기하는 낭만적 사랑에 빠진 이들의 전형적인 모습을 보여준다. 서로의 사랑이 숙명적이고, 운명적이고 이전과 다르다고 생각하며, 상대방에 대한 미화가 기저에 존재한다. 결국에는 독점에 대한 것을 요구하는 것까지 제로델을 경험한 이들의 상당수가 그와 낭만적 사랑의 관계를 형성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그리고 이러한 행위들을 다양한 사람들과 함께 맺은 제로델은 여러모로, 다른 존재였다고 할 수 있다.
보통 SF에서 비인간 존재들이 등장하면 다양한 의미들을 내재하게 되지만 우리 사회가 가지고 있는 타자성(otherness)을 형상화하는 성격을 지니게 되는 것이 일반적이다. 그리고 히아킨토스에서의 제로델 역시 다른 행성들에 비해서 비교적 자유롭다고 여겨지는 행성 유르베에서 다른 존재들을 어떻게 인식하고 대응하는지를 보여주는 표상이라고 할 수 있다. 소설에서 보면 표면적으로는 제로델이 인간인지 안드로이드인지에 대한 논의들이 중요한 것처럼 여겨지기도 하지만, 그것은 사실 중요한 사안이 아니다. 천재적인 능력을 가지고 있는 과학자이자 제로델의 어머니인 에레나 마르가 만든 안드로이드들은 이미 인간과의 구분을 무의미하게 만드는 기술력을 지니고 있었다. 에레나 마르의 피조물들이 인간이나 동물들과 다른 것은 구성물질에서 다소간의 차이를 보인다는 것 외에는 존재하지 않았다. 행동하고 생각하고 반응하는 모든 것들에서는 인간들이 구분해 낼 수 있는 방법이 존재하지 않았다.
제로델이 안드로이드가 아니라 인간이기 때문에 폐기되는 것이 아니라 추방되어야 한다는 생각을 가지고 주변을 탐문하던 카이유와 역시, 주변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이러한 사실을 확인할 뿐이었다. 제로델은 오히려 모두에게 이데아와 같이 이상적으로 존재하는 무언가였던 것이다. 이러한 모습들을 확인하면서 행성 유르베에서 일어난 사건과 두 방향으로 나뉘어서 나타난 반응들은 단순히 인간이나 안드로이드냐에 대한 전형적인 논의가 아니라 그 사회가 다른 존재들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반응하는가에 대한 것들을 명백하게 나타내주는 사건이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그러한 위치의 차이를 보여주는 것은 전적으로 그들이 맺은 ‘관계’에서 나타난다고 할 수 있다. 관계맺은 이들과 그렇지 않은 이들 사이에서 나타나는 차이, 관계맺지 않고 있지만 알고 있다고 여기면서 위치 지어버리는 행위들의 폭력성이 그대로 드러난다.
사랑이라는 진부하지만 불멸한 명제
히아킨토스는 이러한 관계 맺기를 극적으로 강조하고 의미화하는데 ‘사랑’이라는 방법을 사용하고 있다. 제로델은 그가 관계맺은 이들에게 이상적이고 결핍되었던 것들을 채워주는 존재로 자리매김했다. 그렇기 때문에 이들이 증언하고 행동하는 모든 것들은 낭만적 사랑에서 흔히 보여주는 이성보다 감정이 우위에 있어서 비이성적인 행동을 하는 것처럼 보인다. 그들이 아무리 자신들만의 논리로 명확하게 증언을 하더라도 사람들은 아주 쉽게 그것을 비이성적이라고 치부하고 명확한 사실이 아니라고 단정해 버린다. 그렇지만 소설에서는 그들의 반대편에 있는 이른바 이성적이고 논리적인 이들의 이야기가 얼마나 허무한지를 보여줌으로써 낭만적 사랑으로 인해 드러난 사실들이 의미 없거나 현실적이지 않은 것이 아닐지도 모른다고 환기한다.
논리적이고 이성적인 주장을 편다고 주장하는 쪽은 사법대신인 케슬러의 주장들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 케슬러는 제로델을 섹스로이드라고 주장하면서 그의 존재를 하나의 도구적 차원으로 격하시켜 버린다. 물론 제로델이 섹스로이드로서의 기능을 가지고 있는 안드로이드인 것은 맞지만 그는 행성 유르베에서 왕실 근위대의 훈련대장이라는 명백한 역할을 담당하고 있는 존재였다. 그것은 제로델을 인간이 아닌 안드로이드로 명백하게 프레이밍해서 그가 가지고 있는 다양한 존재성을 소거하겠다는 적극적인 행동이었다. 그리고 그것은 우리 사회가 타자들에게 대해서 존재를 납작하게 만들어 너무도 손쉽게 인식의 주변으로 배제해 버릴 때 사용하는 방법이기도 하다. 게다가 제로델의 섹스로이드로서의 기능을 지나치게 강조하는 것 역시 “잘생긴 데다 인간을 능가하는 성기능을 탑재한 로봇이라는 점” 때문이다.
케슬러의 주장엔 편견으로 점철된 비이성 이외에는 그 어떠한 이성과 논리가 존재하지 않는다. 이성이 없는 상태에서의 주장들은 사실과도 거리가 있기 마련이다. 안드로이드라면 폐기할 것이 아니라 프로그래밍을 수정하면 될 일이라는 카이유와의 주장이 사실은 이 사건의 해결에 대한 명백한 해답인데도 부인들과의 자손들과 관계를 맺을 수도 있다며 폐기를 외치는 것은 쉽게 납득하기 어려운 말이다. 카이유와 역시 이러한 지점들을 인지했기 때문에 제로델의 주변인들을 탐문하기 시작한 것이다. 그리고 카이유와는 결국 제로델과 관계를 맺은 이들이 모두 그가 자신들과 함께하지 못한 다른 존재가 아니었다는 사실들을 확인하게 된다. 케슬러의 주장들은 지엽적인 정보이거나 멀리서 지켜본 무언가였다는 것이라는 사실로 미뤄보아. 우리가 어떠한 존재를 인식하는데 관계 맺기의 중요성이 드러난다.
히아킨토스에서 이러한 관계 맺기가 로맨스라는 극단적인 형태로 드러난 것은 극적인 효과도 있겠지만 낭만적 사랑이 이전의 구조들로부터 벗어나는 방법론이었기 때문이다. 특히 근대적 산물로서의 낭만적 사랑은 중세까지의 위계와 계급적인 구조들을 해체하는 방법론으로 작용했기 때문에 행성 유르베가 중세 유럽의 형태를 모방하고 있고, 그 안에서 발생한 결핍들과 허상들이 가지고 있는 지점들을 제로델이라는 존재를 통해서 전복하려 했다는 설정은 퍽 인상적이라고 할 수 있다. 이는 다양한 낭만적 사랑의 유토피아 서사들이 중세 유럽을 배경으로 하는 로맨스 판타지 장르에서 반복되고 있는 이유와도 맞닿아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소설의 낭만적 사랑이 비현실적인 지점에 머무르고 이상적인 사랑의 형태만을 그리고 있는가하면 그렇지 않다.
소설에서 다른 존재로 인식되었던 제로델을 대하는 방식은 지금의 우리 사회가 타자들을 인식하는 방법과 퍽 닮아있다. 이전 시대와는 비교할 수 없는 정보가 쏟아지고, 다양한 방법으로 관계를 맺을 수 있는 기술적이고 구조적인 방법이 발달했지만 우리는 이전과 다르지 않는 인식들에 머물러 있는 것도 사실이다. 너무도 손쉽게 그들은 배제하고, 납작하게 만들어 호도해 소외시킨다. 이러한 문제들을 해소하기 위한 방법들은 어쩌면 진부하겠지만 불멸한 명제인 사랑일지도 모르겠다. 아이러니하게도 논리와 효율과 이성이 중요하게 여겨지고 있는 현대사회에서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것들이 거기에 있는지도 모르겠다. 그 정도의 강력하고 에너지 넘치는 행위들로 우리 주변의 다양한 존재들과 관계 맺기를 시도하지 않는다면, “우리 자신과 다른 존재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인다는 건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를 확인하는 것 밖에 되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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